경제 게시판

전쟁과 에너지: 세계의 동맥이 멈출 때, 패권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작성자
김 경진
작성일
2026-04-01 10:25
조회
67
 


전쟁과 에너지: 세계의 동맥이 멈출 때, 패권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프롤로그 AIS 신호가 사라진 밤

2026년 2월 28일 금요일, 오전 10시 35분(이란 표준시). 호르무즈 해협.

선박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 한 척 한 척이 자기 위치와 속도, 방향, 화물 정보를 VHF 무선 주파수로 쏴 보내는 장치입니다. 2초에서 10초 간격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이 신호를 연안 기지국이 잡고, 위성이 잡고, 전 세계 해상교통 관제센터의 모니터 위에 작은 삼각형 아이콘으로 찍힙니다. 초록색은 화물선, 빨간색은 유조선, 파란색은 여객선. 호르무즈 해협 화면에는 보통 하루에 100척 넘는 배들이 개미처럼 줄지어 지나갑니다.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5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 교역의 4분의 1이 이 21마일짜리 수로를 통과합니다. 배럴로 치면 하루 2,000만 배럴. 지구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의 20%입니다.

그날 아침, 삼각형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 시간 전, 미국 동부시간으로 2월 28일 새벽 1시 15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의 최종 실행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란 현지 시간으로 토요일 아침 7시경, 미 중부사령부(CENTCOM) 소속 함정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이란 영공에 진입했습니다. 동시에 B-2 스텔스 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가 이란 서부와 중부의 탄도미사일 기지를 타격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약 200대의 전투기로 자체 작전명 '포효하는 사자(Operation Roaring Lion)'를 개시했습니다. 첫 12시간 동안 약 900곳의 목표물이 타격됐습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자택 겸 집무실인 '지도부 관저(Leadership House)'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딸, 사위, 손자, 며느리도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란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팍푸르도 이스라엘 공습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VHF 채널 16을 통해 해협 일대에 경고를 발령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런던. 같은 날 오후.

해상보험의 세계에서는 로이즈 합동전쟁위원회(Lloyd's Joint War Committee, JWC)라는 조직이 세계 바다의 위험 지도를 그립니다. JWC가 특정 해역을 '고위험 지역(Listed Area)'으로 지정하면, 그 해역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기존 보험과 별도로 추가 전쟁위험보험료(Additional War Risk Premium)를 내야 합니다. 평시에 호르무즈 해협의 전쟁위험보험료는 선체 가치의 0.2% 수준이었습니다. 1억 5,000만 달러짜리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 척이 해협을 한 번 통과하는 데 드는 보험료가 30만 달러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2월 28일 오후, 이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48시간 안에 보험료가 다섯 배로 뛰었습니다. 0.2%가 1%가 됐습니다. 같은 VLCC의 통과 비용이 150만 달러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보험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3월 1일과 2일 사이, 국제P&I클럽(Protection & Indemnity Club) 그룹에 속한 12개 보험사 중 가드(Gard), 스쿨드(Skuld),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 런던P&I클럽, 아메리칸클럽 등이 일제히 72시간 이내 전쟁위험보험 해지 통보를 발송했습니다. 전 세계 해상운송 톤수의 90%를 담보하는 이 보험사들이 페르시아만, 오만만, 이란 영해에 대한 전쟁위험 보장을 취소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보험이 취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조건으로 재계약이 가능했습니다. 연간 2만 5,000달러이던 보험료가 주당 3만 달러로 바뀐 조건으로. 약 60배의 인상이었습니다. 로이즈마켓협회(LMA)는 나중에 "보험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안전 우려 때문에 선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운업계 입장에서 보면, 보험을 구할 수 없다는 것과 보험료가 60배로 올랐다는 것 사이에 실질적 차이는 없었습니다.

한 그리스 선주의 말이 당시 상황을 압축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보험은 지금 없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피격될 확률이 너무 높아요. 보험도 없이 그걸 하려면 미친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리적 봉쇄보다 경제적 봉쇄가 먼저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호르무즈 해협의 AIS 화면으로 돌아갑니다.

2월 27일, 공습 전날,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약 116척이었습니다. 2월 28일, 공습이 시작된 날, 72척으로 줄었습니다. 3월 1일, 보로사(Vortexa) 위성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초대형 유조선 통과는 4척이었습니다. 전날에는 22척이었습니다. 3월 4일, 해협 통과 선박은 5척. 3월 7일, 3척. 3월 8일, 2척. 3월 10일, 2척. 그리고 3월 14일, AIS로 확인된 선박 통과 건수가 양방향 모두 0이 됐습니다. 0척. 개전 이래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수송로에서 눈에 보이는 상업 선박 이동이 완전히 멈춘 것입니다.

해협 자체가 텅 빈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만만에는 약 400척의 선박이 떠 있었습니다. 들어가지 못하고, 나오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운사 머스크(Maersk), 하팍로이드(Hapag-Lloyd), CMA CGM, MSC 같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들이 호르무즈 통과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약 140척의 컨테이너선, 46만~47만 TEU 분량의 화물이 걸프 해역에 묶여 있었습니다.

AIS 신호를 끄고 야간에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도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아이마 터미널에서 약 10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출항한 한 유조선은 3월 4일경 AIS 신호를 껐습니다. 약 5일간 '암흑 항해(dark transit)'를 한 뒤 3월 9일 오전 7시(UTC)에 신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위성 레이더(SAR) 영상은 해협 안에서 소수의 선박이 AIS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포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해상 운송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습니다.

3월 7일, 몰타 국적 화학물질 운반선 프리마(PRIMA)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다 이란 드론에 피격됐습니다. IRGC는 경고를 무시하고 해협에 진입한 선박을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원 3명이 실종됐습니다. 개전 이후 3주 동안 합동해양정보센터(JMIC)가 기록한 상업 선박 및 해상 인프라 공격은 23건이었습니다.

GPS 재밍(jamming)과 AIS 신호 교란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3월 4일 하루에만 44개의 주입 신호 구역(injected signal zone)과 92개의 신호 거부 구역(denial area)이 탐지됐습니다. 1,650척 이상의 선박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후자이라와 오만만 인근에 수백 척의 선박이 디지털 지도상으로는 한 점에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 위치와 화면에 표시되는 위치가 달랐습니다. 바다 위에 전자적 안개가 깔린 셈이었습니다.

이란만 바다를 봉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란은 보복에 나섰습니다.

3월 5일까지 이란은 50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과 약 2,000기의 드론을 발사했습니다. 발사체의 약 40%는 이스라엘을 향했고, 약 60%는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에 주둔한 미군 기지와 걸프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했습니다. 두바이 제벨알리(Jebel Ali) 항구, 쿠웨이트 캠프 아리프잔,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 바레인 미 해군 지원기지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바레인 마나마의 크라운플라자 호텔에 이란 발사체가 떨어져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카타르의 대규모 천연가스 터미널이 이란 미사일에 피격되면서 정유시설 두 곳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모든 수출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습니다. 전 세계 LNG 공급의 상당 부분이 하룻밤 사이에 중단 위기에 놓였습니다. UAE 후자이라 항구에서도 드론 관련 화재로 원유 선적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라크 남부 유전 지대의 생산량은 하루 약 430만 배럴에서 130만 배럴로 70% 급감했습니다. 수출은 약 80만 배럴까지 떨어졌고, 저장 시설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도 석유를 실어 보낼 배가 없어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집계에 따르면, 3월 10일까지 걸프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량은 하루 670만 배럴 이상 감소했고, 3월 12일에는 최소 1,000만 배럴이 사라졌습니다.

IEA 사무총장은 이 상황을 "역사상 가장 큰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유가가 움직였습니다.

2월 27일, 전쟁 전날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약 72달러였습니다. 첫 주가 끝나는 3월 6일 목요일까지 약 85달러로 올랐습니다. 18% 상승. 시장은 아직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면서 7달러 넘게 추가 상승했습니다. 이후 유가는 매주 계단을 올랐습니다. 120달러에 근접하는 순간도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언급하면 10~15% 급락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시장은 트럼프의 말에 흔들렸습니다. 트레이더들은 이것을 '턱질(jawboning)'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선물 가격과 실제 원유가 거래되는 현물 가격 사이에는 점점 벌어지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중동산 원유의 현물 지표인 두바이유 가격은 2월 27일 대비 76% 올랐습니다. 브렌트 선물의 상승폭인 36%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종이 위의 가격과 실제로 배에 실려 항구에 도착하는 기름의 가격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3월 한 달 동안 브렌트유 선물은 약 63% 상승했습니다. 1988년 브렌트 계약이 시작된 이래 최대 월간 상승률이었습니다. 이전 기록은 1990년 9월 걸프전 당시의 46%였습니다. WTI(서부텍사스중질유)도 약 51% 올라 2020년 5월 이후 최대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WTI는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 브렌트유 5월물은 배럴당 118.35달러에 장을 마쳤습니다.

이 책은 그 숫자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합니다.

21마일의 수로가 닫히면서 벌어진 일은 유가 상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험 시장의 마비는 해상 운송의 마비로, 해상 운송의 마비는 걸프 산유국의 생산 중단으로, 생산 중단은 저장 시설의 포화로, 저장 시설의 포화는 유전 폐쇄로 이어졌습니다. 석유가 멈추자 비료 원료인 나프타와 암모니아 공급이 막혔습니다. 카타르의 LNG가 멈추자 아시아의 발전소들이 연료 부족에 직면했습니다. 유가가 오르자 항공유가 두 배 넘게 뛰었고, 항공사들이 노선을 축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닐라의 거리에서 교통체증이 사라졌습니다. 석유의 98%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필리핀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정부는 에어컨 설정 온도를 27도 이상으로 올리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샤워 시간 단축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일본에서는 1973년 석유파동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화장지 사재기 자제를 호소하는 정부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란은 해협 통과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연결된 선박, 이란 국적 선박, 그리고 이란과 협상을 마친 일부 선박은 통과가 허용됐습니다. 통과료는 건당 수백만 달러. 결제 통화는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였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은 배제되고, 중국은 허용되는 새로운 해상 경제 질서가 21마일의 수로 위에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날 밤 사라진 AIS 신호에서 시작해서, 그 신호가 사라진 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따라갑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가 어떻게 보험 시장의 경제적 봉쇄로 전환됐는지. 유가 급등이 어떻게 비료 위기로, 비료 위기가 어떻게 식량 위기로 번졌는지. 이란이 위안화로 통행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달러 패권에 어떤 균열이 생겼는지.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어떻게 미국의 금융 패권을 약화시키는 역설로 이어졌는지. 걸프에서 타오른 불이 우크라이나 드론 전쟁과 어떻게 맞물렸는지. 배럴당 118달러의 기름값이 미국 국내 정치를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이 있습니다. 에너지의 92%를 수입에 의존하고, 그 수입 경로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나라. 이 위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가면 전쟁의 원인이 보입니다. 전쟁의 결과를 따라가면 에너지 질서의 재편이 보입니다.

AIS 화면의 삼각형이 하나씩 사라지던 그 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위성 사진 (NASA)





목차

프롤로그 AIS 신호가 사라진 밤

제1부 에너지는 어떻게 전쟁의 혈액이 되었는가

제1장 불과 근육에서 석탄까지

제2장 석유, 전쟁의 속도를 바꾸다

제3장 냉전, 석유, 중동의 화약고

제2부 2026년,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제4장 손에 잡힐 듯한 평화

제5장 에픽 퓨리 작전의 12시간

제6장 이란의 보복과 걸프의 불

제7장 전쟁 전의 전쟁

제8장 21마일의 목줄

제3부 해협이 닫히다

제9장 보험이 먼저 항복했다

제10장 이란의 검문소

제11장 통행료 국가의 탄생

제4부 에너지 쇼크

제12장 배럴당 126달러

제13장 4억 배럴의 한계

제14장 파이프라인으로는 바다를 대신할 수 없다

제15장 석유 너머

제5부 마닐라에서 서울까지

제16장 텅 빈 마닐라

제17장 아시아의 긴축

제18장 항공이 먼저 멈추다

제19장 연기로 사라진 횡재

제20장 40%의 마비

제21장 키리시 정유소의 밤

제22장 비대칭 전쟁의 새 문법

제7부 달러, 위안화, 그리고 패권의 균열

제23장 위안화 통행료

제24장 제재의 자기 파괴

제25장 에너지 무기화의 계보

제8부 트럼프의 전쟁, 미국의 분열

제26장 최후통첩의 연장

제27장 이란의 역제안

제28장 No Kings

제9부 전기화 시대의 새로운 전선

제29장 전력망은 새로운 전장이다

제30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소비의 군사화

제31장 원자력의 두 얼굴

제10부 에너지 전환의 지정학

제32장 탈탄소의 역설

제33장 초크포인트 경제학

제34장 핵심 광물과 배터리를 둘러싼 신냉전

제35장 에너지 안보의 재정의

제36장 한국의 선택

에필로그 해협이 열리는 날, 그리고 열리지 않는 세계





제1부 에너지는 어떻게 전쟁의 혈액이 되었는가




제1장 불과 근육에서 석탄까지

1.1 병력보다 중요한 이동 능력

기원전 334년 봄, 헬레스폰토스(Hellespont) 해협을 건넌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6만 5,000명이었습니다. 기병, 보병, 의사, 예언자, 시인, 창녀, 하프 연주자,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사, 페니키아의 상인까지 뒤섞인 거대한 인간 행렬이었습니다. 이 행렬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마주하는 문제는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곡물이었습니다. 사람과 말, 노새를 합쳐 하루에 소비하는 곡물만 약 12만 2,000킬로그램. 물은 별도였습니다. 이 숫자 앞에서 전술의 천재성이나 무기의 우월함은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전쟁을 지배한 에너지는 '근육'이었습니다. 인간의 근육, 말의 근육, 소의 근육. 이 생물학적 에너지(Biological Energy)를 가동하려면 칼로리가 필요했고, 칼로리는 곧 식량이었습니다. 로마 군단의 병사 한 명이 하루 행군과 전투를 수행하려면 약 3,000킬로칼로리가 필요했습니다. 밀 830그램 정도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4,800명 규모의 로마 군단 하나를 일주일만 먹이려면, 병사 한 명당 약 6킬로그램의 곡물, 군단 전체로는 약 29톤의 곡물을 운반해야 했습니다. 물과 포도주, 올리브유까지 합치면 그 무게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납니다.

여기에 치명적인 모순이 하나 끼어듭니다. 식량을 운반하는 동물이 식량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군마(軍馬) 한 필의 하루 사료 소비량은 8~12킬로그램. 인간보다 훨씬 많은 칼로리를 태웁니다. 건초는 부피가 크고 쉽게 상하며, 대량 운송이 어렵습니다. 보급 마차를 끄는 소와 말이 싣고 가는 식량의 일부를 매일 자기 위장에 넣어야 하므로, 보급선이 길어질수록 병사에게 도착하는 식량의 양은 줄어듭니다. 병참학에서는 이를 '거리의 폭군(Tyranny of Distance)'이라 부릅니다. 보급 기지에서 반경 150킬로미터 정도를 넘어서면, 짐승이 소비하는 양이 짐승이 나르는 양을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보급 부대가 아무리 커져도 이 산술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군대는 약탈했습니다. '현지 조달(Foraging)'이라는 점잖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상은 지나가는 길목의 농경지를 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는 메뚜기 떼와 같았습니다. 한 곳에 머무르면 주변의 식량을 모조리 소진하므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22,000킬로미터를 행군하면서 한 곳에 한 달 이상 머무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복 전쟁의 화려한 외양 뒤에는,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대형 포식자 무리의 생태학이 숨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 군대에 도입한 병참 혁신은 바로 이 에너지 수학의 최적화였습니다. 느린 소달구지를 줄이고, 말과 노새를 보급 수송의 주력으로 삼았습니다. 병사 개개인이 자기 장비와 수일치 식량을 직접 짊어지게 했습니다. 꼬리(보급 부대)를 줄여서 이빨(전투 부대)의 기동력을 높인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함대를 병행 이동시켜, 바다에서 곡물을 실어오게 한 것입니다. 풍력(바람)이라는 무상의 에너지를 보급 수송에 결합한 셈입니다. 수로(水路)와 해상 수송은 육상 수송보다 에너지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바지선 한 척이 나르는 양을 육상에서 옮기려면 마차 수십 대가 필요했습니다.

몽골 제국은 생물학적 에너지의 효율성을 다른 방향으로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례입니다. 몽골 전사는 느린 보급 마차를 끌지 않았습니다. 대신 병사 한 명이 3~5필의 말을 끌고 다녔습니다. 몽골 조랑말은 중앙아시아 스텝의 마른 풀만 뜯어도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 효율이 극히 높은 생명체였습니다. 전사들은 말젖(마유)을 마시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말의 목 정맥을 찔러 피를 마셨습니다. 말은 이동 수단이자 전투 플랫폼이자 움직이는 식량 저장소였습니다. 후방과의 보급선이 필요 없었으므로, 몽골군은 정주 민족의 군대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적의 배후를 강타했습니다. 하루 100킬로미터 이상의 기동이 가능했다는 기록은 20세기 기계화 부대에 견줄 만한 수치입니다.

이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전장에서의 용맹이 아니라 전장까지의 이동이었습니다. 아무리 정예한 군대라도 도착하기 전에 굶으면 끝입니다.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이 그 극단적 증거입니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한 나폴레옹의 병참선은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약 900킬로미터에 걸쳐 늘어졌습니다.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들판의 곡식을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풀었습니다. 초토화 전술(Scorched Earth)입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적의 총탄보다 굶주림과 추위에 더 많이 죽었습니다. 60만이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자는 채 10만이 되지 않았습니다. 적을 이긴 것은 러시아 군대가 아니라 러시아의 겨울이었고, 겨울의 정체는 에너지(식량과 난방용 연료)의 고갈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의 전쟁사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전투 장면 뒤에 숨겨진 더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로마 군단이 지중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검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해상 보급로를 통해 곡물을 끊임없이 수송할 수 있는 물류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15년간 유린하면서도 로마를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카르타고 본국에서 보급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칭기즈칸의 몽골이 유라시아를 정복한 것은 궁술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라, 보급선 없이 움직이는 자기완결적 에너지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결국 에너지의 수학이었습니다. 칼로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운반하고, 소비하느냐. 이 수학에서 이긴 쪽이 전장에서도 이겼습니다.

1.2 숲을 먹는 전쟁

1588년 7월, 영국 해협에 스페인 무적함대(Armada Invencible)의 돛이 펼쳐졌습니다. 130척, 3만 명. 그 거대한 함대가 영국 해협의 바람과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화공선 앞에서 무너져 내린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덜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적함대를 건조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의 숲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군함 한 척에는 숲이 통째로 들어갑니다. 18세기 영국 해군의 110문 전열함(First Rate Ship of the Line) 한 척을 건조하는 데 참나무 약 6,000그루가 필요했습니다. 30~40헥타르에 해당하는 삼림입니다. 그것도 아무 참나무가 아니라, 수령 80~120년 이상 된 성숙한 참나무여야 했습니다. 선체의 곡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각도로 자연스럽게 휘어 자란 나무가 필요했고, 돛대(Mast)에는 높이 30미터 이상 곧게 뻗은 소나무가 들어갔습니다. 넬슨 제독의 기함 HMS 빅토리(HMS Victory)에 들어간 참나무만 6,000그루. 빅토리 한 척이 곧 거대한 숲 하나였습니다.

1790년 영국 해군은 약 300척의 군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함대를 건조하는 데 최소 120만 그루의 참나무가 베어졌다는 추산이 있습니다. 평균 12년의 함선 수명을 고려하면, 매년 수만 그루의 참나무가 새로 필요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해군이 매년 소비하는 참나무는 5만 로드(load). 영국 전체 목재 수요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양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에서 나폴레옹 전쟁까지, 목재는 오늘날 석유가 차지하는 위치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건축 자재이자 에너지원이었습니다. 철을 녹여 대포와 총신을 주조하려면 숯(목탄, Charcoal)이 필요했고, 1톤의 연철(Wrought Iron)을 생산하는 데 약 50세제곱미터의 목재가 소비되었습니다. 북유럽 삼림 약 10헥타르의 연간 성장량에 맞먹는 양입니다. 군함 건조와 무기 생산이라는 이중 수요가 유럽의 숲을 양쪽에서 잠식했습니다.

영국의 숲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해군의 탓만은 아닙니다. 농경지 확대, 가축 사육, 가죽 무두질용 타닌 추출 등 여러 요인이 겹쳤습니다. 올리버 래컴(Oliver Rackham) 같은 역사생태학자는 1990년 저서에서 조선업이 영국 삼림을 파괴했다는 전통적 주장의 과장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재생합니다. 영국의 삼림 관리는 생각보다 체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18세기 문헌들은 영국의 참나무 공급 능력이 점차 줄어들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영국 해군이 필요로 하는 목재를 브리튼 섬 안에서만 충당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목재 부족이 만들어낸 지정학적 파장은 거대했습니다.

영국은 스칸디나비아와 발트해 연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18세기, 영국 왕실은 발트해의 목재 부국들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해군 물자(Naval Stores, 목재, 역청, 타르, 밧줄용 대마)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는 동시에 프랑스 같은 경쟁국의 접근을 차단하려 했습니다. 1800년에서 1815년 사이,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이 해군 물자를 둘러싸고 세 차례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1801년 한 해에만 영국은 발트해에서 1,186개의 돛대를, 북미에서 198개의 돛대를 수입했습니다. 자국의 나무로 군함을 지을 수 없게 된 해양 제국이, 지구 반대편의 숲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와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북미 대륙은 이 '목재 지정학'의 핵심 무대가 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화이트파인(White Pine)은 영국 해군이 갈망하던 돛대 재료였습니다. 곧고, 높고, 가벼우면서도 강한 이 나무는 발트해산 소나무보다 품질이 뛰어났습니다. 1691년 매사추세츠만 헌장(Massachusetts Bay Charter)에는 '돛대 보존 조항(Mast Preservation Clause)'이 포함되었습니다. 지름 24인치(약 60센티미터) 이상의 소나무는 모두 왕실 재산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식민지 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자란 나무를 마음대로 베지 못하게 한 이 조항은, 훗날 미국 독립혁명의 불씨 중 하나가 됩니다.

목재를 둘러싼 이 쟁탈전의 구조를 보면, 21세기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과 놀랄 만큼 닮아 있습니다. 자국의 자원이 고갈되면 해외에서 확보해야 합니다. 해외 자원의 수송로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경쟁국이 같은 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자원 공급이 끊기면 군사력 자체가 마비됩니다. 숲을 잃은 제국은 바다를 잃었고, 바다를 잃은 제국은 세계를 잃었습니다.

바람은 이 시대의 숨은 동력이었습니다. 범선 함대는 바람이라는 무상의 에너지를 이용해 대양을 건넜습니다. 인간의 근육이나 동물의 힘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바람이 열어주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람 에너지를 담아내는 목재 구조물, 즉 범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람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불 때가 없었습니다. 바람은 인간의 의지대로 불지 않습니다. 역풍이 불면 항해할 수 없고, 무풍 지대에 갇히면 수일, 수주를 바다 위에서 표류해야 합니다. 해전에서 바람의 방향을 먼저 잡는 쪽이 유리했고('풍상, Windward'을 점하다), 이 자연의 변수는 제독의 전술적 천재성으로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은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에는 언제나 자연의 변덕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 족쇄를 끊어버린 것이 석탄입니다.

1.3 증기기관이 바꾼 전장

1866년 6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프로이센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는 아직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철도로.

몰트케는 철도의 군사적 잠재력을 일찍 간파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를린-함부르크 철도의 초기 투자자이자 이사였고, 1843년에는 "철도 노선의 선택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프로이센이 첫 번째 철도를 건설하기도 전에 그는 참모본부에 철도 건설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것을 촉구했고, 나중에는 참모본부 내에 '철도부(Railway Section)'를 신설했습니다. 한 동시대인의 기록에 따르면, 몰트케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독일 철도 시각표를 반드시 참고했습니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몰트케는 프로이센 각 주에서 남쪽 국경 지대로 향하는 5개 철도 노선을 동시에 가동시켰습니다. 각 군단이 평시 주둔지에서 국경으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이었습니다. 약 20만 명의 병력과 5만 5,000필의 군마가 철도에 실려 전선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아직 집결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이센군은 이미 전투 대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4년 뒤인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이 철도 동원 체제는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몰트케는 9개 프로이센 및 독일 철도 노선을 따라 13개 군단을 이동시켰습니다. 각 노선에는 군과 민간 관리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배치되어 수송을 감독했습니다. 민간 열차 운행을 중단시키고, 복잡한 시각표에 따라 약 50만 명의 병력, 군마, 대포, 장비가 11일 만에 집결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프로이센보다 더 많은 철도와 더 많은 기관차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리적 인프라에서 프랑스가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 군사사학자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에게 없었던 것은 몰트케가 가진 것, 즉 철도 운용을 포괄적인 동원 계획과 작전 계획에 통합하는 참모본부 시스템이었습니다. 철도라는 기계(하드웨어)와 그것을 전쟁에 맞춰 운용하는 체계(소프트웨어)의 결합. 이것이 프로이센의 결정적 우위였습니다.

바다 위의 변화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석탄을 태워 움직이는 증기선이 범선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입니다. 1827년 나바리노 해전이 범선만으로 치러진 마지막 대규모 해전이었습니다. 크림전쟁(1853~1856)에서 증기 군함은 바람과 조류의 변수에서 해방된 기동력을 입증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역풍이 불어도, 증기기관은 돌아갔습니다. 해군 전술에서 '풍상(Windward)을 점하라'는 수백 년간의 금과옥조가 하루아침에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러나 증기선은 새로운 족쇄를 채웠습니다. 석탄입니다. 범선은 바람이라는 무한한 에너지를 이용했지만, 증기선은 석탄이 떨어지면 고철 덩어리가 됩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범선과 달리, 증기 군함은 정기적으로 석탄을 보급받아야만 바다에 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만들어낸 지정학적 변화는 거대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세계 최고 품질의 웨일스산 무연탄(Welsh Steam Coal)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해군성은 전 세계의 석탄을 시험하여, 웨일스산 석탄이 톤당 열량, 연소 청결도, 저장 내구성 모든 항목에서 다른 어떤 석탄보다 앞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고의 연료를 손에 쥔 영국은, 이 연료를 전 세계 바다의 요충지에 미리 쌓아두는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지브롤터, 몰타, 포트사이드(수에즈), 아덴, 콜롬보, 싱가포르, 홍콩, 버뮤다, 포클랜드, 세인트헬레나. 대영제국의 석탄 보급소(Coaling Station) 네트워크는 전 세계를 한 줄기 사슬처럼 엮었습니다. 한 해양사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석탄 보급 시설의 유지와 관리는 영국 글로벌 해양 패권의 숨겨진 기반이었습니다.

석탄 보급소의 지리는 곧 제국의 지리였습니다. 석탄 보급이 가능한 항구를 잃으면 해군 작전 반경이 줄어들고, 보급소를 확보하면 바다가 열렸습니다. 19세기 후반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전략적 가치가 분명치 않은 작은 섬이나 항구를 두고 격렬한 외교전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석탄 보급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러일전쟁(1904~1905)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가 유럽에서 극동까지 18,000해리를 항해하면서 겪은 최악의 고난은 일본 해군이 아니라, 영국의 동맹국 일본을 의식한 각국 항구의 석탄 보급 거부였습니다. 석탄을 구하지 못해 헤매는 함대는, 쓰시마 해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석탄이 육상에서 만들어낸 혁명은 철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석탄은 공장을 돌렸고, 공장은 무기를 찍어냈습니다. 기관총, 연발 소총, 수십 발을 쏘아대는 야포, 수만 킬로미터의 철조망.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이 무기들은 석탄 에너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석탄이 제철소의 용광로를 달구고, 용광로에서 나온 강철이 총신과 포탄 껍데기가 되고, 그 총과 포가 철도에 실려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전쟁의 전 과정이 석탄이라는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연결된 산업 사슬이 되었습니다.

이 사슬이 완성된 형태가 제1차 세계대전의 '총력전(Total War)'입니다. 총력전은 전선의 군인만이 아니라 후방의 모든 것을 전쟁에 동원하는 체제입니다. 탄광 노동자는 석탄을 캐고, 석탄은 기차를 움직이고, 기차는 강철을 실어 나르고, 강철은 포탄이 되어 전선으로 갑니다. 징집된 병사는 기차에 실려 전선에 도착하고, 전선에서 쓰러지면 후방에서 다시 징집된 병사가 기차에 실려 옵니다. 방어하는 쪽은 기차를 타고 공격자보다 빠르게 전선에 충원되었습니다. 양쪽 모두가 무한한 물자와 인력을 철도로 쏟아부으면서 서부전선은 교착되었고, 참호 속에서 수백만이 죽었습니다.

1914년 8월, 독일 동원령이 내려진 날의 풍경이 이 총력전의 본질을 압축합니다. 카이저 빌헬름 2세는 8월 1일 동원을 승인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은 철도 시각표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몰트케의 조카인 소(小) 몰트케가 이끄는 참모본부는 수십 년간 준비한 동원 계획을 기계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예비군이 소집 영장을 받고 지정된 역에서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카이저가 뒤늦게 "러시아만 상대하는 전쟁으로 제한할 수 없는가"라고 묻자, 소 몰트케는 이미 가동된 철도 동원 체제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참모본부 철도부장 헤르만 폰 슈타프 장군은 훗날 기술적으로는 되돌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순간의 현실에서 철도 시각표는 외교보다 강했습니다.

이것이 석탄과 증기기관이 전쟁에 가져온 궁극적 변화입니다. 전쟁이 인간의 의지에서 벗어나 기계의 관성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원 체제가 가동되면 정치인도 장군도 그것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철도가 병력을 실어 나르는 속도는 외교관이 전보를 주고받는 속도보다 빨랐습니다. 한 군사사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1914년 유럽의 등불이 꺼진 것은 몰트케가 1866년에 확립한 군사-기술적 논리가 정치의 우위를 잠식한 결과였습니다.

근육의 시대에 전쟁의 규모를 제한했던 것은 식량이었습니다. 군대는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만 클 수 있었고, 식량 보급이 닿는 만큼만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목재와 바람의 시대에 전쟁의 범위를 넓힌 것은 숲과 풍력이었지만, 바람의 변덕과 나무의 성장 속도가 제약이 되었습니다.

석탄은 이 모든 제약을 깨뜨렸습니다. 땅속에 수억 년간 압축된 태양 에너지를 한꺼번에 꺼내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석탄이 철도를 굴리고, 철도가 병력을 나르고, 공장이 무기를 찍어내는 산업 전쟁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전쟁은 더 빨라지고, 더 커지고, 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수만 명이 싸우던 전장이 수백만 명의 전장으로 확대되었고, 며칠이면 끝나던 전투가 수년간의 소모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석탄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석탄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운반이 쉽고, 기계를 더 빠르게 움직이는 새로운 연료가 전쟁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1911년, 영국 해군 제1경(First Sea Lord) 재키 피셔(Jacky Fisher)와 해군 장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영국 해군의 주력함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영국은 자국 안에 세계 최고의 석탄을 갖고 있었지만, 석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 결정이 영국을 중동으로,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nglo-Iranian Oil Company, 훗날의 BP)의 설립으로, 그리고 페르시아만의 지정학이라는 20세기 최대의 화약고 속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근육에서 목재로, 목재에서 석탄으로. 에너지원이 바뀔 때마다 전쟁의 문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은, 전쟁의 문법을 다시 한 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뒤흔들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제2장에서 시작됩니다.



이수스 전투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폼페이 모자이크)





제2장 석유, 전쟁의 속도를 바꾸다

2.1 석탄에서 석유로

1911년 10월, 서른일곱 살의 윈스턴 처칠이 영국 해군성 장관(First Lord of the Admiralty) 집무실에 들어섰습니다. 책상 위에는 독일 제국 해군의 건함 계획 보고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독일은 해마다 새로운 전함을 진수시키고 있었고, 영국의 바다 위 패권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잠식당하고 있었습니다. 처칠이 직면한 질문은 간단했습니다. 어떻게 독일보다 빠르고, 강하고, 멀리 나가는 군함을 만들 것인가.

답은 석탄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해상 패권을 떠받치던 연료는 웨일스 지방의 무연탄이었습니다. 전 세계 주요 항구마다 석탄 보급 기지가 깔려 있었고, 영국 해군은 그 거미줄 위를 달리는 거대한 증기 함대였습니다. 석탄은 영국 땅 밑에 무한정 묻혀 있는 자원이었으니, 안보의 관점에서 이보다 확실한 에너지원은 없었습니다. 영국은 세계 최대의 석탄 생산국이었고, 석탄은 제국의 물리적 토대였습니다.

그런데 처칠 옆에는 존 피셔(John Fisher) 제독이 있었습니다. 1904년부터 제1해군경(First Sea Lord)을 지낸 피셔는 해군 안에서 "석유 광인(Oil Maniac)"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석유 동력으로의 전환을 집요하게 밀어붙인 인물이었습니다. 피셔는 1903년 구축함 HMS 하니발(HMS Hannibal)에서 석유 연소 시험을 실시했고, 1904년에는 HMS 스파이트풀(HMS Spiteful)을 최초의 석유 전용 구축함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잠수함과 구축함에는 이미 석유를 쓰고 있었지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력 전함에까지 석유를 쓰자는 주장은 해군 안에서도 "미친 소리"에 가까웠습니다. 영국 본토에서 석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셔는 1912년 처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초고속함입니다. 전부 석유로. 장갑 따위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방어 수단은 오직 하나, 속도뿐입니다!"

처칠은 해군 참모대학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독일 대양함대의 기동을 압도하려면 고속 전대에 어느 정도의 속력이 필요한가. 돌아온 답은 25노트. 당시 석탄 전함의 한계인 21노트보다 4노트가 빨라야 했습니다. 처칠은 나중에 이렇게 회고합니다. "석유 없이는 그 속도에 필요한 출력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박이 시작되었습니다. 1912년 6월 15일, 영국 해군성은 차기 주력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급(Queen Elizabeth-class)의 건조를 승인합니다. 이 군함은 석탄을 한 톨도 쓰지 않는, 순수 석유 전용 전함으로 설계되었습니다. 5척이 건조되었고, 첫 번째 함선 HMS 퀸 엘리자베스는 1912년 10월 21일 기공됩니다. 배수량 3만 1,500톤, 381밀리미터(15인치) 주포 8문, 설계 속도 25노트. 그때까지 바다 위에 떠 있던 어떤 전함보다 빠르고, 강하고, 멀리 나갈 수 있는 배였습니다.

석유가 석탄을 이긴 이유는 열역학의 언어로 설명됩니다.

같은 무게에서 석유는 석탄보다 에너지 밀도가 두 배 높습니다. 이 말은 같은 크기의 연료 저장 공간으로 두 배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속도도 올라갑니다. 퀸 엘리자베스급은 24기의 야로(Yarrow) 석유 전소 보일러와 파슨스(Parsons) 증기 터빈으로 5만 6,000마력을 뽑아냈고, 이전 아이언 듀크급의 21노트를 4노트나 앞질렀습니다.

보급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석탄 군함은 항구에 정박해서 며칠에 걸쳐 석탄을 실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화부(Stoker)가 삽으로 석탄을 퍼 날랐고, 선체 곳곳이 검은 분진으로 뒤덮였습니다. 석유는 달랐습니다. 파이프를 연결하면 끝이었습니다. 항해 중에도 유조선에서 재급유가 가능했습니다. 피셔 제독의 계산에 따르면, 석유 전환은 화부의 절반을 줄여주었고, 이 인력은 포탑과 탄약고로 재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던 문제가 숙련 수병 부족이었으니, 석유는 인력 위기의 해법이기도 했습니다.

은폐 능력도 차이가 났습니다. 석탄 군함은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 기둥을 뿜어냈습니다.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었습니다. 석유는 연소가 깔끔해서 매연이 거의 없었고, 이는 전술적 은폐에 결정적인 이점이었습니다.

이 모든 장점의 대가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세계 최고의 석탄 보유국이었지만, 석유는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제국의 심장부를 움직이는 연료가 타국의 땅 밑에 묻혀 있다는 사실. 이것이 처칠의 도박에 숨겨진 치명적 딜레마였습니다.

처칠은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1912년 7월 31일, 그는 왕립 연료 및 엔진 위원회(Royal Commission on Fuel and Engines)를 설립합니다. 의장은 피셔 제독. 위원은 석유, 지질학, 조선공학의 전문가들로 채워졌습니다. 위원회는 3년에 걸쳐 세 건의 기밀 보고서를 제출했고,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석유 공급은 충분하다. 다만 평시에 대규모 비축 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공급원을 분산시켜야 한다.

결정적 조치는 1914년에 나옵니다. 영국 정부는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의 지분 51%를 200만 파운드에 매입합니다. 이 회사는 1908년 페르시아(현재의 이란) 남서부 마스제드 솔레이만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한 뒤, 아바단(Abadan)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소를 건설한 기업이었습니다. 거래 조건은 20년간 4,000만 배럴의 석유를 해군에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정부가 사실상 석유 회사를 국유화한 것입니다. 이 회사가 훗날 이름을 바꿔 앵글로-이라니안 석유 회사가 되고, 다시 한번 이름을 바꿔 BP가 됩니다.

바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중동의 사막으로 진군해야 하는 모순적 구조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해군의 생명줄이 페르시아만의 유정에 매어진 순간, 중동은 강대국 지정학의 영구적 화약고가 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왜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의 목줄인지를 이해하려면, 1912년 처칠의 결단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석유가 전쟁의 연료가 되는 순간, 석유가 나는 땅은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석유 혁명은 바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육지에서는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에는 치명적인 물리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보일러와 대량의 물, 그리고 석탄이 필요했기에 기차나 대형 선박 외에는 장착이 불가능했습니다. 군대의 이동은 철로라는 정해진 선(線) 위에 묶여 있었습니다. 철도가 없는 곳에서 군대는 여전히 말과 인간의 다리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가솔린과 디젤을 폭발시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은 작고 가벼웠습니다. 이 엔진은 마차 위에 올라 트럭이 되었고, 철갑을 두르고 무한궤도를 달아 전차(Tank)가 되었으며,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 비행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공간이 철도와 참호라는 1차원에서, 평원과 하늘이라는 3차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내연기관의 위력을 처음으로 전장에서 증명했습니다. 1914년 9월, 독일군이 파리 외곽 50킬로미터까지 진격했을 때, 프랑스군은 파리의 르노 택시 수백 대를 긴급 징발해서 예비 병력 6,000명을 야간에 최전선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마른(Marne) 전투의 역전을 만든 것은 기병대가 아니라 내연기관이 장착된 민간 자동차였습니다. 전쟁 후반부에는 영국군의 전차가 참호와 철조망을 짓밟고 돌파했고, 하늘에서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정찰과 폭격을 수행했습니다.

영국의 외무장관 조지 커즌(George Curzon) 경은 종전 후 이렇게 말합니다. "연합군은 석유의 파도 위를 타고 승리로 항해했다."

석탄은 기차를 움직였습니다. 석유는 전차와 트럭과 비행기를 움직였습니다. 기병대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군대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움직일 수 있는가는 이제 석유의 양과 내연기관의 출력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전쟁의 속도가 바뀐 것입니다.

2.2 두 차례 세계대전의 진짜 승패

제2차 세계대전의 교과서적 서사는 이렇습니다.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 충돌, 위대한 장군들의 전술적 천재성, 노르망디 상륙과 스탈린그라드의 영웅적 전투. 그러나 전쟁의 내부 구조를 에너지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1939년, 세계의 석유 지도는 극단적으로 비대칭이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60% 이상을 뽑아내는 압도적인 석유 제국이었습니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의 유정에서는 하루에도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솟아올랐습니다. 소련은 바쿠 유전을 중심으로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었습니다. 이 두 나라가 연합국의 중추였습니다.

반대편에 서 있던 추축국의 형편은 참담했습니다. 독일은 석유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본도 석유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석유를 수입해야 했고, 석유 없이는 전차 한 대, 전투기 한 대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 비대칭에서 시작해서 이 비대칭에서 끝납니다.

일본의 이야기부터 봅니다.

1941년 7월 이전까지, 일본 제국은 필요한 석유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잠재적 적국으로부터 자국 군대를 움직이는 피를 사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내 합성 연료 생산은 연간 300만 배럴에 불과했고, 나머지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1937년부터 일본은 중국을 침공해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1940년에는 비시 프랑스 정부의 동의 아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현재의 베트남)를 점령합니다. 미국은 처음에는 고철과 항공유 수출을 제한하는 선에서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7월 일본이 남부 인도차이나까지 진주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최후의 카드를 꺼냅니다. 7월 26일, 미국 내 일본 자산 전면 동결. 뒤이어 석유 수출 전면 금지. 영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도 동참합니다.

일본은 하루아침에 석유 수입의 88%를 잃었습니다.

해군 본부는 히로히토 천황에게 보고합니다. 비축유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1년 반. 전쟁을 하면 그 절반. 일본은 항복하든지, 아니면 석유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석유는 남쪽에 있었습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은 1940년 기준 연간 6,50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려면 영국의 싱가포르 기지와 미국의 필리핀 기지를 먼저 무력화해야 했습니다. 미 태평양 함대가 하와이에서 출격하면 일본의 남방 작전은 측면에서 기습당할 터였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 해군 항공대가 진주만을 폭격합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전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의 석유 금수(Oil Embargo)였습니다. 일본이 석유를 찾아 남쪽으로 돌진하면서 벌인 거대한 자원 약탈전. 태평양 전쟁의 본질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초반에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유전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석유를 일본 본토와 전선으로 운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수천 킬로미터의 해상 수송로는 미국 잠수함의 사냥터가 됩니다. 미 해군은 태평양 전역에 잠수함을 풀어 일본의 유조선과 수송선을 체계적으로 격침시켰습니다. 남중국해와 필리핀 해역에서 유조선이 줄줄이 침몰하자, 유전에서는 석유가 넘쳐나는데 본토와 함대에는 연료가 없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전쟁 말기, 일본의 연료 고갈은 처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비행기를 띄울 항공유가 바닥나자 신참 조종사의 비행 훈련 시간이 극단적으로 삭감되었습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조종사를 전장에 보내는 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고, 결국 편도 연료만 채워 적함에 부딪히는 가미카제(神風) 특공이 제도화됩니다. 1945년 4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던 야마토(大和)호가 오키나와 방어전에 투입될 때, 일본 해군에 남아 있던 연료로는 편도 항해가 겨우 가능했습니다. 돌아올 기름이 없는 출격이었습니다. 야마토는 미 해군 항공대의 폭격을 받고 동중국해에서 침몰합니다.

석유가 없는 제국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독일의 궤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로가 달랐을 뿐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군사적 발명품인 전격전(Blitzkrieg)은 기갑사단이 적의 방어선을 뚫고 수백 킬로미터를 우회 기동하는 전술이었습니다. 이 전술은 막대한 양의 연료를 집어삼켰습니다. 독일은 석유가 나지 않았으므로, 두 가지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Ploiești) 유전. 독일 원유 공급의 약 60%를 담당하던 생명줄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석탄 액화 기술이었습니다. 피셔-트롭슈(Fischer-Tropsch) 공정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석탄에서 인조 석유(Synthetic Fuel)를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본토에는 로이나(Leuna)를 비롯한 대규모 합성 연료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연료 수요는 기하급수로 늘었고, 공급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히틀러가 1941년 6월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을 결행한 궁극적 목표는 모스크바가 아니었습니다. 캅카스 지역의 바쿠(Baku) 유전이었습니다. 바쿠는 당시 소련 석유 생산의 심장부였습니다. 히틀러는 참모들에게 말합니다. "바쿠의 석유를 얻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 져야 한다."

독일 제6군은 바쿠로 가는 길목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발이 묶입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이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으로 기록됩니다. 제6군은 궤멸당했고, 바쿠의 석유는 끝내 독일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전선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장군 역시 전술적으로는 영국군을 압도했지만, 보급선이 끊겨 전차에 넣을 기름이 바닥나면서 후퇴합니다. 사막의 전투를 결정한 것은 장군의 천재성이 아니라 연료통의 잔량이었습니다.

전쟁 말기의 상황은 비극을 넘어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1944년 12월, 히틀러는 서부 전선에서 최후의 도박을 감행합니다. 아르덴 대공세(벌지 전투). 독일군 기갑부대는 벨기에의 숲을 뚫고 연합군 보급 기지를 탈취하려 했습니다. 연합군의 연료 저장소를 빼앗는 것이 작전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자기 연료가 모자라서 적의 연료를 훔치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공세는 초기에 성공했지만, 연합군은 연료 저장소를 사전에 파괴하거나 후퇴시켰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타이거 전차와 판터 전차가 아르덴의 숲길에 버려졌습니다. 세계 최강의 중전차가 연료가 없어 고철이 된 것입니다.

연합군 측의 풍경은 정반대였습니다.

미국은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에서 전 세계 석유의 60% 이상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 석유 위에 올라선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은 추축국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양면 전쟁(유럽과 태평양)을 동시에 치르면서, 무기대여법(Lend-Lease)을 통해 영국과 소련에 막대한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그 물자의 상당 부분이 석유와 석유 제품이었습니다.

미국이 공급한 100옥탄가(Octane)의 고품질 항공유가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와 미국 육군항공대의 P-51 머스탱에 채워졌습니다. 이 항공유 없이는 영국 본토 항공전의 승리도, 독일 상공의 제공권 장악도 불가능했습니다. 대서양에서 독일 U-보트의 위협을 피해 본토 내에서 석유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미국은 텍사스에서 동부 해안까지 직경 24인치, 길이 2,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송유관 "빅 인치(Big Inch)"를 단기간에 건설해 냅니다. 전쟁이 석유를 요구했고, 미국은 석유로 응답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짜 승패를 가른 것은 장군의 전술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끝없는 유정이 독일의 인조 석유 공장과 일본의 바닥난 유류 저장고를 물량으로 압사시킨 것입니다. 기름이 없는 전차는 무거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고, 연료가 없는 전투기는 하늘의 과녁이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전장이 아니라 유정에서 결정되었습니다.

2.3 석유 시설 폭격의 결정적 효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사 전략가들은 전쟁의 산술에 관한 냉혹한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전선에서 적의 전차 100대를 파괴하면, 적은 공장에서 전차 100대를 더 만들어 보냅니다. 그러나 적의 정유 시설 1개를 파괴하면, 적의 전차 1,000대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무기를 겨냥하는 것보다 연료를 겨냥하는 것이 전쟁의 결판을 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 이 인식이 전략 폭격(Strategic Bombing)의 핵심 논리가 됩니다.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이 집중적으로 노린 표적은 두 곳이었습니다.

첫째,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 독일 원유 공급의 약 60%를 담당하고, 독일군 연료의 약 40%를 생산하던 심장부였습니다. 9개의 정유소가 도시 주변에 산호초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증류탑, 크래킹 시설, 보일러실, 저장 탱크를 정밀하게 파괴해야만 가동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1943년 8월 1일, 미 육군항공대는 리비아 벵가지에서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 178대를 출격시킵니다. 작전명 타이달 웨이브(Operation Tidal Wave). 1,900킬로미터를 비행한 뒤 고도 60~240미터의 초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당시로서는 전례 없이 대담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름과 항법 오류로 편대가 흩어졌고, 독일군 방공사령관 알프레트 게르스텐베르크(Alfred Gerstenberg) 대령은 미리 해독한 미군 암호를 바탕으로 88밀리미터 대공포와 차단 기구(Barrage Balloon), 전투기를 배치해 둔 상태였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54대의 폭격기가 격추되거나 미귀환했고, 532명의 승무원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유럽 전역의 미 육군항공대 작전 중 비례적으로 가장 높은 피해율이었습니다. 그 날은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라는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정유소의 크래킹 시설 42%, 정제 능력 40%가 파괴되었지만, 독일은 강제 노동자를 동원해 수주 만에 시설을 복구했고, 유휴 설비를 가동시켜 생산량을 원래 수준으로 되돌렸습니다.

타이달 웨이브는 전술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긴 교훈은 명확했습니다. 석유 시설은 정밀하게,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타격해야 한다. 1944년 봄, 연합군은 교훈을 실천에 옮깁니다.

둘째, 독일 본토의 합성 연료 공장. 이것이 진짜 결정타였습니다.

1944년 5월 12일, 미 제8항공군 폭격기들이 독일 중부 로이나(Leuna)의 합성 석유 공장을 폭격합니다. 로이나는 피셔-트롭슈 공정과 베르기우스 수소화(Bergius Hydrogenation) 공정으로 석탄에서 합성 연료를 만드는 독일 최대의 시설이었습니다.

독일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는 그 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1944년 5월 12일, 기술적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는 히틀러에게 보고합니다. "적이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이 이번에 물고 늘어진다면, 우리는 곧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연료 생산 능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연합군은 물고 늘어졌습니다.

숫자가 말합니다. 합성 연료 공장들의 월간 생산량은 공격 이전 31만 6,000톤이었습니다. 1944년 6월에 10만 7,000톤으로 줄었습니다. 9월에는 1만 7,000톤까지 추락합니다. 항공유 생산량은 4월의 17만 5,000톤에서 7월 3만 톤, 9월에는 5,000톤으로 곤두박질칩니다. 1944년 6월 30일, 슈페어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씁니다. "6월 22일까지 우리의 항공유 손실은 90%에 이르렀습니다."

이 숫자가 독일군 전체를 마비시켰습니다. 하늘에서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는 전투기를 띄울 수 없게 됩니다. 독일은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Me-262를 개발하고도 연료가 없어 격납고에 방치해야 했습니다. 신참 조종사들에게 비행 훈련을 시킬 항공유가 없어, 훈련 시간이 극단적으로 삭감됩니다. 항공기 엔진의 최종 시운전 시간이 2시간에서 30분으로 줄었습니다. 독일 공군은 1944년 5월 한 달에 489명의 훈련된 조종사를 잃었는데, 훈련소에서는 396명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소모가 보충을 앞질렀습니다. 루프트바페는 전투기가 아니라 연료의 부재에 의해 무장 해제되었습니다.

지상에서는 기갑부대가 멈췄습니다. 1944년 여름 이후 독일 기갑사단의 이동은 연료 부족으로 점점 심각하게 제한됩니다. 1944년 12월 아르덴 대공세 때, 독일군의 연료 비축량은 작전을 지탱하기에 이미 부족했습니다. 연합군의 연료 저장소를 노획하는 것이 작전 계획의 일부였지만, 그것은 실패합니다. 1945년 초, 비스와(Vistula) 강 바라노프 교두보에서 소련군을 막기 위해 독일은 전차 1,200대를 집결시켰습니다. 이 전차들은 연료가 없어 움직이지 못한 채 소련 공세에 밀려났습니다.

슈페어의 1945년 3월 보고서는 마지막 진단서였습니다. "독일 경제는 4주에서 8주 안에 불가피한 붕괴에 직면할 것입니다."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의 석유 수송로를 끊은 것도 같은 원리의 적용이었습니다.

미 해군 잠수함대는 일본의 유조선을 주된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본토로 향하는 해상 통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과 필리핀 해역에서 유조선이 줄줄이 격침됩니다. 일본은 남방의 유전에서 석유를 퍼 올리고 있었지만, 그 석유를 본토로 실어 올 수 없었습니다.

전쟁 후반부, 일본 본토의 항공유 비축량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조종사 훈련이 극단적으로 축소되었고, 이것이 가미카제 특공의 제도적 배경이 됩니다. 편도 연료만 넣고 적함에 부딪히는 작전은, 연료가 없어 귀환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태어난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21세기에도 정확히 반복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러시아의 전차와 포병을 직접 상대하는 대신, 수백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의 에너지 인프라를 타격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발트해 핵심 석유 수출항인 우스트루가(Ust-Luga)와 프리모르스크(Primorsk) 터미널, 러시아 5대 정유소 중 하나인 야로슬라블(Yaroslavl) 정유소, 모스크바 인근의 라잔(Ryazan), 남부의 투압세(Tuapse) 정유소가 차례로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한때 러시아 석유 수출 능력의 상당 부분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내수용 휘발유와 디젤이 부족해지는 상황에 몰립니다.

2026년 이란 전쟁에서도 표적의 핵심은 군사 시설이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였습니다. 이란은 쿠웨이트의 미나 알아흐마디(Mina Al-Ahmadi) 정유소,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Yanbu) 정유소, UAE의 푸자이라(Fujairah) 항구, 카타르의 라스라판(Ras Laffan) LNG 시설을 타격합니다. 미국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카르그 섬(Kharg Island)을 겨냥합니다. 군대를 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혈관을 끊는 전쟁. 1944년 로이나 폭격의 논리가 80년 뒤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1944년 5월 12일 알베르트 슈페어가 히틀러에게 한 경고와,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아시아 각국 정부가 직면한 현실 사이에는 80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적이 우리의 에너지를 끊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석유 시설 폭격의 결정적 효과라는 표현은 사실 겸손한 표현입니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연료를 끊는 것은 적의 모든 군사 시스템, 방어망, 물류망, 경제를 일거에 마비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전쟁 수행 방식이다. 무기가 아니라 연료를 겨냥하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되어,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쟁을 거쳐, 2026년 호르무즈 해협에서 완성됩니다.

이 책의 제2부부터 시작되는 2026년의 이야기는, 바로 이 오래된 문법 위에서 펼쳐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전 (서부전선)





제3장 냉전, 석유, 중동의 화약고

3.1 페트로달러 체제의 확립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미국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6년간 유지되어 온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각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한 국제통화 질서)가 이 한 번의 발표로 무너졌습니다. 금 1온스를 35달러에 바꿔주겠다는 약속이 사라졌습니다. 달러는 하룻밤 사이에 아무것도 뒷받침하지 않는 종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달러의 가치를 보증하던 금이라는 닻이 없어진 상황에서, 전 세계가 왜 달러를 계속 보유해야 하는지 설명할 근거가 사라진 것입니다. 1973년 2월, 주요국 통화들은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자유롭게 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러의 가치는 눈에 보이게 떨어졌습니다.

이 위기를 해결한 사람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국무장관이었습니다. 키신저는 금 대신 달러를 뒷받침할 새로운 상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석유였습니다.

1974년 6월 8일, 키신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파흐드 이븐 압둘아지즈(Fahd ibn Abdulaziz) 왕세자가 워싱턴 블레어 하우스에서 6쪽짜리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미국-사우디 경제협력 공동위원회(Joint Commission on Economic Cooperation)' 설립 합의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행정 체계를 현대화하고, 인프라를 건설하고,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내용이 문서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의 진정한 핵심은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양해에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석유를 미국 달러로만 가격을 매기고 결제합니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합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사우디 왕가의 안보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고, 최신 무기를 판매합니다.

이것이 세간에서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입니다. 이 합의가 공식적인 조약이었는지, 비공식적인 양해였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2016년 블룸버그 통신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74년 말에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원조와 장비를 약속하는 대가로 사우디가 석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겠다는 비밀 합의가 존재했습니다.

형태가 어떠했든,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1975년에 이르러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전체 회원국이 석유를 달러로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의 가격이 달러로 매겨지자,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달러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공장을 돌리려면 석유가 필요하고,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합니다. 이 간명한 구조가 미국 달러에 대한 영구적인 글로벌 수요를 만들었습니다.

키신저가 '페트로달러 리사이클링(Petrodollar Recycling)'이라고 이름 붙인 순환 구조도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달러를 벌고, 그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합니다. 미국 정부는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 자금 덕분에 다른 나라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규모의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석유를 사기 위해 전 세계가 달러를 보유하고, 달러를 벌어들인 산유국이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자기 강화 순환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체제는 미국에 전례 없는 금융 패권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중동에 영구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구조적 속박이 되었습니다. 달러로 석유를 결제하는 산유국 정권들을 지켜야 했고, 페르시아만에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석유 수송로의 안전을 미 해군이 항시 보장해야 했습니다.

1980년 1월 23일, 지미 카터 대통령이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이 구조적 속박을 공식 독트린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카터는 의회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외부 세력의 시도도 미합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러한 공격은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격퇴될 것입니다."

이 한 문장이 이른바 '카터 독트린(Carter Doctrine)'입니다.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트루먼 독트린의 문구를 본떠 작성한 이 선언은, 페르시아만을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작전 구역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카터는 이 독트린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속배치합동기동부대(Rapid Deployment Joint Task Force)를 창설했고, 이 부대는 나중에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United States Central Command)로 확대 개편됩니다. 오늘날 미국이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독트린의 직접적인 유산입니다.

금에서 석유로. 이 전환은 달러의 패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미국을 중동이라는 화약고의 영원한 경비원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3.2 1973년 아랍 석유 금수

1973년 10월 6일은 유대교에서 가장 엄숙한 날인 '욤 키푸르(Yom Kippur, 속죄일)'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 중단되고,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이 멈춥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바로 이날을 택했습니다.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를 향해 밀고 들어왔고,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을 공격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기습이었습니다.

초기 전황은 아랍 측에 유리했습니다.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의 바-레프(Bar Lev) 방어선을 돌파했고, 시리아 탱크 부대가 골란고원 깊숙이 진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의회에 22억 달러 규모의 이스라엘 긴급 군사 원조를 요청했고, 미국의 대규모 무기 공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은 닉슨에게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면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닉슨은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1973년 10월 17일,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가 카드를 꺼냈습니다. 유가를 배럴당 3.01달러에서 5.12달러로 인상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매월 5%씩 생산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디지아가 금수 대상이었습니다.

전쟁은 20일 만에 끝났습니다. 미국의 군사 원조를 받은 이스라엘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유엔 안보리의 정전 결의가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석유 금수는 5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사라진 석유는 전 세계 공급량의 7% 정도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수출하던 양은 하루 약 64만 배럴로, 미국 일일 소비량 1,700만 배럴의 4%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교적 작은 차질이 일으킨 파장은 산술적 비율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금수가 다른 힘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결과가 증폭된 것입니다. 공포가 사재기를 낳았고, 사재기가 부족을 키웠습니다. 12월에 이란 국영석유회사가 경매를 열었을 때, 배럴당 17달러에 입찰이 들어왔습니다. 1973년 말 OPEC은 빈 회의에서 유가를 배럴당 11.65달러로 결정했습니다. 금수 시작 전 3달러이던 유가가 넉 달 만에 네 배로 뛰었습니다. 1974년 3월 파이살 국왕이 금수를 해제했을 때, 가격은 그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300%의 영구적 가격 인상이 고착된 것입니다.

미국의 주유소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생겼습니다. 코네티컷의 한 주유소에 "기름 부족! 고객 1인당 10갤런 제한"이라는 팻말이 내걸렸습니다. 당시 미국 자동차들은 공회전 상태에서 시간당 2~3리터의 휘발유를 소모했는데, 기름을 넣기 위해 줄을 서면서 소모되는 양이 하루 약 15만 배럴에 달했다는 추정도 있었습니다. 기름을 넣으려고 기름을 태우는 상황이었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휘발유 배급과 번호판 홀짝제를 시행했고,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55마일(약 88km)로 낮추었습니다. 네온사인을 끄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경제적 충격은 미국 사회를 깊숙이 뒤흔들었습니다. 1973년 미국 경제는 5.7% 성장했는데, 이듬해에는 0.5%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실업률은 1973년 10월 4.6%에서 1975년 5월 9%까지 치솟았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72년 3.4%에서 1974년 12.3%로 뛰었습니다. 물가가 오르는데 경기는 가라앉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최악의 조합이라고 부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미국을 덮쳤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기준금리를 1972년 5.75%에서 1974년 12%까지 올렸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폴 볼커(Paul Volcker) 의장이 1980~1981년에 금리를 20%까지 올려서 또 한 번의 심각한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나서야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기를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의 끝으로 기억합니다. 1945년부터 1973년까지 이어진 전후 번영이 석유 금수를 기점으로 끝났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973년 말에 유명한 헤드라인을 뽑았습니다. "미래는 지연될 예정입니다(The Future will be subject to Delay)."

일본은 더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석유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의 실업률은 1960년부터 1978년까지 평균 1.0%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1980년에 13.5%까지 올랐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는 15%, 영국은 23%까지 실업률이 치솟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수치들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기준에 따라 논란이 있지만, 충격의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오일쇼크의 여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제조업 비용이 급등하면서 산업화 전략이 흔들렸고, 인종차별 정권에 대한 흑인 사회의 불만이 폭발하여 1976년 소웨토 봉기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독재 정권의 경제적 기반을 허물어,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서방 선진국들은 이 경험에서 교훈을 뽑았습니다. 1974년,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창설되었습니다. 석유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협의체였습니다. IEA 회원국들은 순수입량 90일분 이상의 석유를 비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은 1975년 에너지정책보존법(Energy Policy and Conservation Act)을 통과시켜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제도를 도입했고,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거대한 소금 동굴에 원유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산유국 카르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시작되었습니다. 알래스카 북부의 프루도만(Prudhoe Bay) 유전, 북해 유전, 멕시코만 심해 유전의 개발이 가속되었습니다. 금수 이후 15년 동안 OPEC 바깥 지역의 석유 생산량이 하루 1,400만 배럴이나 증가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대형 자동차 공장들은 기름 먹는 하마 같은 대형차 대신 소형차 생산으로 전환했고, 미국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은 1976년 9%에서 1980년 21%로 뛰었습니다.

1973년의 금수는 총알 한 발 쓰지 않고 세계 경제를 무릎 꿇린 사건이었습니다. 자원의 흐름을 끊는 것만으로 최강대국의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에너지 무기화의 첫 번째 실험이었습니다.

3.3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걸프전까지

1978년 가을, 이란의 유전 지대에서 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37,000명의 석유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580만 배럴에서 150만 배럴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당시 세계 석유 생산의 7%에 해당하는 하루 48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1979년 1월 16일, 이란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Mohammad Reza Pahlavi) 국왕이 이란을 떠났습니다. 2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가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미국의 중동 전략을 떠받치던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것입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쌍둥이 기둥(Twin Pillar)'으로 삼아 페르시아만의 안정을 유지해 왔는데, 그 한쪽이 하룻밤 사이에 적대 세력으로 돌변했습니다.

실제 공급 차질은 4~5% 수준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을 늘려 일부를 메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가는 1979년 중반 배럴당 13달러에서 1980년 중반 34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현물 시장에서는 배럴당 50달러에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공급 부족 자체보다 공포가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정유사들과 트레이더들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 원유를 사재기했고, 사재기가 부족을 키우고, 부족이 공포를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에 이은 2차 오일쇼크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 9월 2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전면 침공했습니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의 위치는 복잡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중립이었지만, 이란 혁명으로 중동의 세력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미국은 이라크 편을 들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외교적 지원, 군사 정보, 첨단 기술을 제공했습니다. 이란의 혁명이 중동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이란에도 비밀리에 무기 부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 싸우며 힘을 소진하게 만드는 것이 미국의 실질적 이해에 부합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 것은 1984년부터 본격화된 '유조선 전쟁(Tanker War)' 때문이었습니다. 전체 전쟁 기간 동안 이라크는 283회, 이란은 168회 상선을 공격했습니다.

전개 과정은 이랬습니다. 이라크는 이란의 돈줄을 끊기 위해 이란의 주요 석유 수출항인 카르그 섬(Kharg Island)과 그 주변의 유조선들을 프랑스제 전투기로 공격했습니다. 이란은 보복으로 이라크를 지원하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을 타격했습니다. 1985년에는 이라크 미사일이 6만 톤급 유조선 넵투니아(Neptunia)를 격침시켰습니다. 해상 보험료가 치솟고, 유조선 선주들이 페르시아만 운항을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12월, 쿠웨이트 정부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국 유조선을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소련도 비슷한 요청을 받았고, 쿠웨이트와 소련의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가 워싱턴에 전해졌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이 페르시아만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기발한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쿠웨이트의 유조선 11척에 미국 국기를 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깃발 교체(Reflagging)'라고 불리는 이 조치 덕분에, 쿠웨이트 유조선들은 법적으로 미국 선박이 되었고, 미 해군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87년 7월 24일,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 호위 작전이었습니다. 구축함, 프리깃함, 순양함, 해안경비대 함정으로 구성된 편대가 쿠웨이트 유조선을 호위하며 페르시아만을 오갔습니다. 이 작전에 동시에 투입된 미 해군 함정은 30척에 달했습니다.

첫 번째 호위 임무부터 사고가 터졌습니다. 1987년 7월 24일, 미국 깃발을 단 쿠웨이트 유조선 브리지턴(Bridgeton, 원래 이름 알 레카)이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전날 밤에 깔아놓은 기뢰에 걸렸습니다. 선체에 구멍이 뚫렸지만 침몰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은 기뢰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소해정(Minesweeper, 기뢰를 제거하는 함정)을 미리 배치하지 않은 것이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그보다 두 달 앞선 1987년 5월 17일에는 이라크 전투기가 페르시아만을 순찰하던 미 해군 프리깃함 USS 스타크(Stark)에 엑소세(Exocet) 대함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37명의 미국 수병이 사망했습니다. 이라크는 이란 유조선으로 오인했다며 사과했지만, 전쟁터의 안개 속에서 실수 한 번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1988년 4월 14일, 미 해군 프리깃함 USS 새뮤얼 B. 로버츠(Samuel B. Roberts)가 이란 기뢰에 의해 선체가 관통되고 용골(Keel, 선박의 척추에 해당하는 구조물)이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함정은 가까스로 침몰을 면했습니다. 회수된 기뢰의 일련번호가 이전에 이란 바지선에서 압수한 기뢰와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4일 후인 4월 18일, 미국은 '프레잉 맨티스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을 개시했습니다. 미 해병대와 해군이 이란의 해상 석유 플랫폼 두 곳을 파괴하고, 이란 프리깃함 한 척을 격침시키고, 고속정 세 척 이상을 침몰시켰습니다. 이란 해군은 이날 하루 만에 전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그해 7월 3일, USS 빈센스(Vincennes) 순양함이 이란 민항기 655편을 전투기로 오인하고 격추했습니다. 290명의 민간인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 비극은 역설적으로 전쟁 종식을 앞당겼습니다. 이미 육지에서 이라크에 밀리고 바다에서 미국에 패한 이란 지도부는 1988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 598호를 수용하고 정전에 합의했습니다.

유조선 전쟁이 남긴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극단적 취약성을 깨달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페르시아만을 거치지 않는 대체 수송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쪽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서쪽 홍해의 얀부(Yanbu) 항구까지 1,200킬로미터에 달하는 동서 파이프라인(Petroline)이 그것입니다. 해협이 막히면 석유를 빼낼 길이 없다는 두려움이 이 거대한 인프라를 낳았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이 2026년 호르무즈 봉쇄 사태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는 제14장에서 다루겠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2년 만인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입니다. 이라크군은 수 시간 만에 쿠웨이트를 점령했습니다.

침공의 배경에는 석유가 있었습니다. 8년간의 이란 전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140억 달러의 전쟁 채무를 탕감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루마일라(Rumaila) 유전에서 이라크 측 석유를 빼돌리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쿠웨이트가 OPEC 생산 쿼터를 초과해 하루 190만 배럴을 생산하면서 유가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불만도 있었습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장악하면 세계 석유 매장량의 상당 부분이 한 독재자의 손에 넘어가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카터 독트린이 작동할 순간이었습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침공과 함께 유가가 움직였습니다. 배럴당 17달러이던 유가가 10월까지 36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28개국의 다국적군을 결성했습니다. 미군 50만 명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되었습니다.

1991년 1월 16일,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공습 개시 당일 밤, 전략비축유의 긴급 방출을 승인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전쟁을 이유로 SPR을 방출한 첫 번째 사례였습니다. 3,375만 배럴 방출이 계획되었고, 세계 석유 공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신호가 시장에 전달되었습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전쟁 첫날 유가가 오히려 급락한 것입니다. 실제로 최종 방출 규모는 1,730만 배럴로 축소되었습니다. 시장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월 23일 시작된 지상전은 100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이라크군 8만 명이 항복했고, 3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후퇴하는 이라크군이 벌인 일은 전쟁의 결과보다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의 유정에 폭약을 설치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605개에서 732개 사이의 유정이 파괴되었습니다(추정치는 출처마다 다릅니다). 쿠웨이트 전체 유정의 약 85%에 해당하는 수입니다. 하루에 500만~600만 배럴의 원유와 7,000만~1억 세제곱미터의 천연가스가 불에 타서 사라졌습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주변 지역의 기온이 정상보다 약 5.5도(화씨 10도) 낮아졌습니다. 그을음과 산성비 구름은 쿠웨이트에서 80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퍼졌고, 터키, 불가리아, 파키스탄에서도 검출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 유정 주변에는 이라크군이 매설한 지뢰가 가득했습니다. 군의 지뢰 제거 작업이 끝나야 화재 진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유정의 불이 꺼진 것은 4월, 마지막 유정이 봉쇄된 것은 11월 6일이었습니다. 8개월 넘게 불이 탄 것입니다. 쿠웨이트 석유회사의 화학 엔지니어 사라 악바르(Sara Akbar)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해방 축제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산업 전체가 불타고 있었으니까요.

이라크군은 불만 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1991년 1월 23일, 시아일랜드 해상 석유터미널의 밸브를 열어 페르시아만에 300만 배럴의 원유를 쏟았습니다. 1989년 엑슨 발데즈 사고 유출량의 12배에 달하는 양이었습니다. 연합군 전투기가 급유 시설을 폭격해서 유출을 중단시키기까지 나흘이 걸렸습니다.

걸프전은 석유가 전쟁의 원인이자 무기이자 목표물이 되는 전체 순환을 한 전쟁 안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석유 수입에 대한 분쟁이 침공의 원인이 되었고, 석유 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군이 투입되었고, 패배한 군대는 후퇴하면서 석유 인프라를 파괴했습니다. 전략비축유가 처음으로 실전에서 방출되었고, 유가가 전쟁의 흐름에 따라 급등하고 급락했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1980년대의 유조선 전쟁, 1991년 걸프전. 이 연쇄적인 위기들은 하나의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안전하게 통제하고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글로벌 패권의 핵심 조건이라는 것. 미국은 달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산유국들의 안보를 보장해야 했고, 그 보장을 이행하기 위해 중동의 전쟁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그 길의 끝에서 또 한 번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혔습니다.



1956년 수에즈 전쟁 작전 지도





제2부 2026년,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제4장 손에 잡힐 듯한 평화

4.1 오만의 중재와 제네바 3차 협상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오만 외무장관 바드르 빈 하마드 알부사이디는 워싱턴 D.C.에서 CBS 뉴스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전날 제네바에서 끝난 미국-이란 3차 간접 핵협상의 성과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행자 마거릿 브레넌이 물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결과에 불만족스럽다고 했는데, 외교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냐고. 알부사이디는 대답했습니다. "평화 합의가 우리 손에 닿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기나긴 외교적 여정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은 2025년 4월 12일에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첫 번째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미국 측에서는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이란 측에서는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대표로 나섰습니다. 양측은 같은 방에 앉지 않았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복도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셔틀 외교 방식이었습니다. 첫 회담 뒤 양측 모두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2차 회담, 무스카트에서 열린 3차 기술급 회담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설정한 60일 시한이 지나도 합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25년 6월 12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미국도 이란 핵시설에 대한 타격에 가담했습니다. 12일간의 전쟁이었습니다.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이라 불린 이 공습으로 이란의 주요 핵시설이 파괴됐고, 협상 테이블은 쪼개졌습니다. 2025년 하반기 내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이란 내부에서 왔습니다. 2025년 12월 말, 경제난에 분노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2026년 1월, 이란 보안군은 수만 명의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란 국민에게 계속 시위하라고 독려하면서 군사 행동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였습니다.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타격단이 이란 해역 인근에 배치됐습니다.

이 압박 속에서 뜻밖의 외교적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튀르키예,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지역 국가들이 미국과 이란 양측에 대화 재개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원래 튀르키예가 협상 장소를 제공하고 지역 국가들이 옵서버로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란은 튀르키예에 중재 레버리지를 주거나 다른 지역 국가들의 추가 요구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대신 오만을 택했습니다.

2026년 2월 6일, 무스카트. 미국과 이란의 간접 대화가 재개됐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대표단의 구성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위트코프와 함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해군 대장이 정복 차림으로 협상장에 나타났습니다. 아라비아해에 항공모함이 대기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핵 협상과 핵심 현안의 해결은 위협과 압박 없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공개 석상에서 못을 박았습니다.

2월 17일, 제네바에서 2차 회담이 열렸습니다. 장소는 콜로니(Cologny)에 위치한 오만 대사 관저였습니다. 간접 형식으로 진행됐고, 약 두 시간 반 동안 메시지가 오갔습니다. 회담 뒤 양측은 공식 성명 없이 떠났습니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우라늄 농축 수준과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해외 반출 문제.

미국의 요구는 명확했습니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가 정리한 내용은 이랬습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완전 해체,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논의, 지역 대리 무장세력 지원 중단, 그리고 자국민에 대한 처우 개선. 루비오는 "이 사람들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만, 시도는 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의 입장은 다른 평면 위에 있었습니다. 이란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알리 라리자니는 테헤란이 핵 문제만 협상하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미사일 프로그램과 지역 영향력은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란은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따른 평화적 핵 프로그램의 권리를 주장했고, 미사일 전력은 국가 방위의 핵심이라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2월 26일, 제네바 3차 회담. 이것이 전쟁 전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오전 세션에서 양측은 세 시간 동안 오만 중재 하에 메시지를 교환했습니다.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은 중간에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아이디어들이 오가고 있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미국 측이 우라늄 농축 제로를 요구하자 협상이 잠시 중단됐습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가 우크라이나 대표단과 별도 회동을 갖는 동안 휴식 시간이 이어졌고, 오후에 다시 재개됐습니다.

이란은 이 자리에서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관리 네 명이 전한 제안의 골자는 이랬습니다. 3년에서 5년간 핵활동과 우라늄 농축을 중단한다. 이후 지역 핵 컨소시엄에 가입하고, 의료 연구 목적의 1.5% 수준 저농축만 유지한다. 기존의 고농축 우라늄(60% 순도 460킬로그램) 비축분은 단계적으로 희석한다. IAEA 사찰관의 모니터링 접근을 허용한다. 이전에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의 해외 반출을 '레드라인'이라고 선언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양보였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재적 합의의 주요 요소들을 식별하고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슈 해결 방법에 대해 최소한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습니다." 양측은 비엔나의 IAEA 본부에서 기술급 후속 협의를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날짜는 3월 2일 월요일로 잡혔습니다.

알부사이디는 회담 뒤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워싱턴에서 JD 밴스 부통령을 만난 뒤 CBS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가 전한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란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절대로 보유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바마 시절의 옛 합의에도 없던 내용입니다." 농축 여부보다 비축 제로가 핵심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농축을 하든 안 하든, 비축할 수 없으면 폭탄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

알부사이디는 90일 안에 기존 비축분 처리, 검증 체계 구축, 사찰 접근 확보를 모두 완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우리가 외교에 필요한 공간만 허락한다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 인터뷰가 방영된 시각, 페르시아만에는 항공모함 두 척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어 제럴드 포드 타격단이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4.2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밀 참석

2026년 3월 17일, 가디언(The Guardian)이 폭탄 같은 기사를 냈습니다.

제네바 3차 회담에 영국의 국가안보보좌관 조너선 파웰(Jonathan Powell)이 비밀리에 참석해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 곳의 독립적 소식통이 그의 참석을 확인해줬습니다. 파웰은 콜로니의 오만 대사 관저에서 자문 역할로 회담 건물 안에 있었고, 영국 내각부(Cabinet Office) 소속 기술 전문가를 동행했습니다.

파웰의 참석 배경에는 미국 협상단의 역량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회담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전직 관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는 미국 기술팀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를 자신들의 기술 전문가로 활용했는데, 그것은 그로시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너선 파웰이 자기 팀을 데려온 겁니다."

파웰의 평가는 낙관적이었습니다. 서방 외교관들과 전직 관리들은 가디언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조너선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이란이 아직 거기까지 다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엔의 핵시설 사찰 문제에서 간극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국 팀은 이란이 내놓은 제안에 놀랐습니다. 완성된 합의는 아니었지만, 진전이었고, 이란의 최종 제안일 가능성도 낮았습니다. 영국 측은 제네바에서 이뤄진 진전을 바탕으로 다음 라운드, 즉 3월 2일 비엔나 기술 협의가 당연히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영국 관리들이 인상 깊게 본 점이 있었습니다. 이란이 이번 합의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겁니다. 2015년 핵합의(JCPOA)와 달리 시한(sunset clause)이 없는,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이 기한 없이 유지되는 구조를 이란이 수용할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디언 기사에서 가장 파장이 컸던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한 소식통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위트코프와 쿠슈너를, 대통령을 전쟁으로 끌고 간 이스라엘의 자산(Israeli assets)으로 봤습니다." 위트코프의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공식 발언들이 기본적인 오류로 가득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습니다. 쿠슈너가 회담 도중 떠났는데, 이란 측에 트럼프가 합의된 내용을 환영할 것이라는 인상을 줬는지, 아니면 미국 협상단 스스로가 트럼프를 전쟁 대신 외교로 설득하려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증언은 엇갈렸습니다.

가디언 보도 직후, 다우닝가 10번지의 대변인은 부인에 나섰습니다. "이 협상은 미국과 이란 간의 양자 협상이었으며 오만이 중재했습니다. 조너선은 제네바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고 관저 내 회담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미묘한 언어의 기술이었습니다. 파웰이 "회담 자체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같은 건물 안에서 자문 역할을 했다는 보도를 직접 반박하지는 못했습니다.

파웰의 참석이 밝힌 것은 외교적 실패의 깊이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키어 스타머 총리 밑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지지를 거부한 배경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영국 관리들은 이란의 미사일이 유럽을 위협한다는 증거도,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했다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적 선택지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이 영국의 판단이었습니다. 파웰은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길이 폭격으로 막힌 것은 파웰이 그 건물을 떠난 지 48시간도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4.3 트럼프의 10일 최후통첩과 협상의 결렬

제네바의 외교관들이 합의문 초안을 다듬고 있을 때, 워싱턴에서는 다른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2026년 2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첫 회의에서 이란에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10일에서 15일 안에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다음 날인 2월 20일, 트럼프는 기자들 앞에서 다시 못을 박았습니다. "합의를 하든지, 아니면 그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겁니다. 시한은 확정입니다."

10일. 외교에서 10일은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핵 프로그램의 기술적 검증, 농축 수준의 조정, IAEA 사찰 체계의 설계, 제재 완화의 범위와 일정. 이 중 어느 하나도 10일 안에 결론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2015년 JCPOA 협상은 2년이 걸렸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최후통첩의 시한은 IAEA 이사회가 비엔나에서 소집되는 3월 2일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이사회는 이란에 대한 새로운 비난 결의안을 검토할 예정이었습니다. 2025년 6월에도 IAEA 이사회의 이란 비난 결의가 나온 지 24시간 안에 이스라엘이 공격을 개시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관리들은 IAEA 결의가 군사 개입의 법적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시사했습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최후통첩이 협상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려면, 이란 내부의 역학을 봐야 합니다. 2월 17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트럼프가 제시한 협상 조건을 거부하며 "트럼프가 이슬람공화국을 무너뜨릴 능력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미 해군을 격침시킬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혁명수비대(IRGC)는 2월 초 최신 탄도미사일 호람샤르-4의 시험 발사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였습니다. IRGC 정치 부사령관 야돌라 자바니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군사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미국 측의 요구 조건은 점점 가혹해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워싱턴은 이란의 3대 핵시설인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모든 잔여 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할 것. 합의에 시한을 두지 않을 것. 미국은 합의 초기에 제한적인 제재 완화만 제공하고, 이란이 장기간 이행할 경우 추가 완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란 국영 IRIB TV는 이란 대표단이 농축 우라늄의 해외 이전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메네이의 선임 고문 알리 샴카니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습니다. 핵심 문제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 방지라면, 이란은 그것을 보장하는 방안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그러나 트럼프가 이란 핵 프로그램 전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이 간극이 어떤 식으로 충돌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2월 26일 제네바 회담에서 이란이 자체 제안을 제출한 직후, 이란 언론은 미국이 "제로 농축"과 60% 농축 우라늄 전량의 미국 인도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일시 중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 외교관들은 로이터에 "미국이 핵 문제와 비핵 문제를 분리해 접근한다면 합의 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핵만 논의하자는 이란의 요구. 미사일과 대리세력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 이 평행선은 2025년 4월 첫 회담부터 단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차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오만 중재자와 이란은 낙관적이었습니다. 알부사이디는 "상당한 진전"을, 아라그치는 "잠재적 합의의 주요 요소를 식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측은 실망한 채 제네바를 떠났습니다. 보도들은 트럼프가 회담 경과에 불만을 품었으며, 이것이 2월 28일 공격의 무대를 깔았다고 전했습니다.

2월 25일, 트럼프는 미 의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 재개를 언급하며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미국과의 "역사적" 합의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한쪽은 전쟁을 예비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평화를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2월 26일 회담이 끝난 뒤, 비엔나에서의 기술급 후속 협의가 3월 2일로 잡혔습니다. 알부사이디는 "각국 수도와 협의한 뒤 곧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월 27일 밤, 알부사이디가 JD 밴스 부통령을 만나고 CBS 인터뷰를 녹화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대에, 이란 주재 외국 대사관들이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란을 "부당한 억류 지원국(State Sponsor of Wrongful Detention)"으로 지정했습니다. 방위 전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원래 일주일 전에 공격을 개시할 예정이었으나 연기한 상태였습니다.

오만의 외교관이 CBS 스튜디오에서 "평화가 손에 닿는 거리"라고 말하는 동안, 중부사령부에서는 마지막 작전 브리핑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방위 전문매체 디펜스 업데이트에 따르면, 2월 27일 밤 알부사이디가 밴스 부통령을 만난 바로 그 즈음에, 오만 외무장관은 이란이 농축 우라늄 비축 제로와 IAEA의 완전한 검증에 동의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트럼프는 중부사령부에 최종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동부시간 오후 3시 38분의 "노 어보트(No Aborts, 작전 중단 불가)" 명령이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테헤란 시각 오전 7시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이스라엘 측 작전명은 '포효하는 사자(Operation Roaring Lion)'였습니다. 트럼프는 동부시간 새벽 2시에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올린 8분짜리 영상으로 공격을 발표했습니다.

첫 12시간 동안 약 900회의 미국 공습이 집행됐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작전을 수행해 약 200대의 전투기가 이란 서부와 중부의 약 500개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습니다. 24시간 안에 총 타격 목표는 1,000개를 넘었고, 48시간 만에 1,250개를 초과했습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관저가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3월 1일 새벽, 이란 국영매체가 하메네이의 사망을 발표했습니다. IRGC 계열 파르스 통신은 하메네이의 딸, 사위, 손주, 며느리 자흐라 하다드아델도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 국방회의 사무총장 알리 샴카니를 포함한 군 수뇌부 다수가 사망했습니다. CBS 뉴스에 따르면, 첫 공습으로 이란 관리 40명이 사망했다는 정보 당국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경악합니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협상이 또다시 훼손됐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이익도, 세계 평화의 대의도 이것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또다시'라는 한 단어에 오만의 좌절이 응축돼 있었습니다. 2025년 6월에도 6차 회담이 잡혀 있었는데, 그 직전에 이스라엘이 공격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엔나 기술 협의가 3월 2일로 잡혀 있었는데, 그 이틀 전에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외교가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에 군사 행동이 끼어드는 패턴. 그것이 두 번 반복됐습니다.

위트코프는 공격 직후인 3월 2일, 이란이 제네바에서 우라늄 농축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며 미국의 제로 농축 제안을 거부했고, 심지어 60% 농축 우라늄 460킬로그램으로 핵폭탄 11개를 만들 수 있다고 자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 협상단이 이란의 제안을 오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란이 수년간 농축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한 것, 그리고 미국의 핵연료 공급 제안을 이란이 왜 신뢰하지 못하는지를 미국 측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커먼드림스에 실린 분석은 알부사이디의 CBS 출연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공개 석상에 나선 것은 미국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트럼프가 전쟁을 택한 그 순간, 평화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손에 닿는 거리. 그 거리를 재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알부사이디는 90일이면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파웰은 한 라운드만 더 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비엔나 기술 협의는 3월 2일로 잡혀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2월 28일 새벽, 페르시아만 상공에 B-2 스텔스 폭격기가 날아들었을 때, 비엔나 회의까지 남은 시간은 48시간이었습니다.



2015년 이란 핵협상(JCPOA) 협상 테이블, 빈





제5장 에픽 퓨리 작전의 12시간

5.1 작전 개시

2026년 2월 28일 오전 10시 15분, 이란 표준시. 호르무즈간 주의 항구 도시 민밥에서는 초등학교 1교시 수업이 한창이었습니다. 테헤란의 은행 직원들은 주말의 첫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시라즈의 시장 상인들은 석류와 피스타치오를 진열대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란의 토요일은 한 주의 시작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시간 25분 전, 지구 반대편의 시간으로는 2월 27일 목요일 오후 3시 38분(미 동부시간). 텍사스주 코퍼스크리스티로 향하던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였습니다. 5일 전 네타냐후가 트럼프에게 전한 정보, 하메네이가 테헤란 관저에서 고위 안보 관료들과 회의를 연다는 첩보가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트럼프는 작전 개시를 승인했습니다.

미 동부시간 2월 28일 새벽 2시(UTC 07시, 이란 현지시간 오전 10시 30분).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8분짜리 영상을 올렸습니다. 의회 연설도, 기자회견도, 국민 향한 TV 담화도 없었습니다. 8인방(Gang of Eight, 의회 정보위원회 고위 의원 8명)에 대한 사전 통보가 공습 개시 직전에 이루어진 것이 공식 절차의 전부였습니다. 영상 속에서 트럼프는 선언했습니다. "미합중국은 이란에서 대규모 전투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미사일을 파괴하고, 미사일 산업을 지상에서 완전히 쓸어버릴 것입니다."

영상의 마지막 30초는 이란 국민을 향한 직접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의 자유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끝내면, 정부를 접수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문장은 미국 대통령이 타국의 정권 교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냉전 이후 가장 노골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트럼프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한 시각,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미 해군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USS 토마스 허드너와 USS 스프루언스의 수직발사관에서는 이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불을 뿜고 있었습니다. UTC 06시 35분, 미 중부사령부(CENTCOM, United States Central Command)는 공식 발표를 냈습니다. "중부사령부와 파트너 군은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같은 시각, 자국의 작전명을 '로어링 라이언(Operation Roaring Lion, 포효하는 사자 작전)'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작전의 첫 파도는 이란의 눈과 귀를 먼저 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 방공망 제압 작전, 군사 용어로 SEAD(Suppression of Enemy Air Defenses)라 부르는 이 단계에서 200발 이상의 토마호크가 이란 전역의 조기경보 레이더 기지, 지대공 미사일 포대, 전자전 시설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이란은 수십 년에 걸쳐 러시아제 S-300PMU2와 자체 개발한 바바르-373 방공 시스템으로 촘촘한 대공 방어망을 구축해왔습니다. 그 방어망이 몇 분 만에 찢겨나갔습니다.

방공망이 뚫린 하늘로 미 공군과 이스라엘 공군의 4세대, 5세대 전투기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F-35 라이트닝 II와 F-22 랩터가 잔존 방공 자산을 소탕하며 후속 폭격기들의 진입 경로를 확보했습니다. CENTCOM은 이란 전역에 걸쳐 최소 9개 주요 도시, 26개 주를 동시에 타격했다고 밝혔습니다. 테헤란, 이스파한, 시라즈, 타브리즈, 반다르아바스, 아바즈, 마슈하드. 이란의 군사 시설뿐 아니라 정부 청사,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지휘부, 미사일 생산 시설, 드론 발사 기지가 표적 목록에 올라 있었습니다.

작전 개시 12시간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군은 900회 이상의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이 수치는 전쟁 첫날의 기록입니다. 작전 개시 100시간까지 누적 타격 표적 수는 5,000개를 넘겼습니다. 미국은 이 작전을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 장대한 분노 작전)'라 불렀고, 트럼프는 훗날 이 이름을 자신이 직접 골랐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 주요 금융 시장은 주말을 맞아 닫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24시간 돌아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이었습니다. 공습 소식이 전해진 몇 분 만에 암호화폐 시장에서 1,280억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습니다. 비트코인은 66,000달러대에서 63,000달러 아래로 급락했습니다. 월요일에 열릴 아시아 증시가 어떻게 반응할지, 유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호르무즈 해협이 어떻게 될지. 그 주말 동안 세계의 트레이더들과 에너지 분석가들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수행한 가장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작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의회의 전쟁 승인이 없었습니다. 전쟁권한법(War Powers Resolution)에 따른 통보가 사후에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미국 헌법 1조 8항은 전쟁 선포 권한을 의회에 부여합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근거로 이를 우회했습니다. 하원의 로 칸나 의원과 토머스 매시 의원은 공습 당일 즉각 반발하며 의회 표결을 요구했습니다. 칸나는 X에 올린 글에서 "이것은 '미국 우선'이 아닙니다"라고 썼습니다.

불과 이틀 전, 2월 26일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이란 간접 핵 협상에서 오만 외무장관 바드르 알부사이디는 "돌파구가 마련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비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 검증을 수용했으며, 보유 중인 농축 우라늄을 "가능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었습니다. 3월 2일에 협상이 재개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2월 25일 "역사적 합의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3월 2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폭탄이 먼저 떨어졌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트럼프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이란 공격을 촉구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도 반복적으로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상원의원 린지 그래엄이 트럼프에게 이란 공격의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펜타곤은 3월 1일 의회에 보낸 보고에서, 공격 개시 전 이란이 미국을 먼저 공격하려 했다는 징후는 없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협상 테이블과 폭격의 시간 간격은 48시간이었습니다.

5.2 B-2, B-52, 토마호크, HIMARS의 동시 투입

에픽 퓨리 작전에 투입된 화력의 규모를 이해하려면, 비교 대상을 먼저 놓아야 합니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의 첫날,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에서 미군은 약 500개의 표적을 타격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의 첫 24시간 동안 타격된 표적 수는 그 두 배에 육박했습니다. 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의 표현을 빌리면, "이라크 침공 첫날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화력"이었습니다.

투입된 자산의 목록을 살펴보면 미군이 보유한 거의 모든 종류의 타격 플랫폼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는 이 작전의 가장 결정적인 무기 체계였습니다. 대당 가격 약 20억 달러. 미 공군이 보유한 전체 21기 가운데 다수가 투입되었습니다.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출발한 B-2 편대는 동쪽으로 날아 대서양을 횡단하고, 지중해를 지나 중동에 도달했습니다. 편도 비행 시간 18시간. 그 사이 KC-135와 KC-46A 공중급유기로부터 수차례 급유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서쪽으로 태평양을 향해 날아간 B-2 편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끼였습니다. 아마추어 항공 추적자들과 일부 언론, 각국 정보기관의 시선을 태평양으로 돌리기 위한 기만 작전이었습니다. 합참의장 댄 케인 공군 대장은 브리핑에서 "전술적 기습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B-2의 임무는 이란의 지하 핵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기가 GBU-57 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 대형 관통 폭탄)입니다. 길이 6미터, 무게 약 14톤. 30미터 이상의 강화 콘크리트를 관통한 뒤 폭발하도록 설계된, 미군 재래식 무기고에서 가장 무거운 폭탄입니다. B-2 한 기가 MOP 2발을 탑재합니다. 에픽 퓨리 작전에서 B-2 편대는 포르도(Fordow)와 나탄즈(Natanz)의 지하 핵 시설에 14발의 MOP를 투하했습니다.

포르도 핵 시설은 이란 중부 콤 시 남서쪽 95킬로미터 지점, 산 속 지하 80~90미터에 매장된 우라늄 농축 시설입니다. 이란이 2006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미국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존재를 파악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DTRA의 분석가들은 "산 속의 시설을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했고, 그 해답이 GBU-57의 개발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2020년 12월 시험 폭파를 거쳐, 2025년 6월 '미드나잇 해머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에서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은 MOP의 두 번째 실전 사용이었습니다.

포르도에는 두 개의 주요 환기구가 있었습니다. B-2 편대는 각 환기구에 6발씩, 총 12발의 MOP를 투하했습니다. 첫 번째 폭탄이 환기구 덮개의 콘크리트를 깨뜨리고, 나머지가 뚫린 구멍을 통해 시설 내부로 침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나탄즈에는 2발이 추가로 투하되었습니다. 폭탄의 신관은 지하 깊숙이 관통한 뒤에야 기폭되도록 조정되어 있었습니다. 지하에서의 폭발이 만들어내는 과압(overpressure) 효과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를 파괴합니다. 원심분리기는 극도로 진동에 민감한 장비입니다.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투입된 폭발물의 규모와 원심분리기의 진동 민감성을 고려하면, 매우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스파한(Isfahan) 핵기술센터에는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30발 이상이 쏟아졌습니다.

B-2 편대의 임무 수행 시간은 약 36시간이었습니다. 9·11 이후 B-2의 아프가니스탄 임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B-2 작전 비행이었습니다. 합참의장 댄 케인은 "미군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B-2 작전 타격"이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총 125대 이상의 항공기가 이 임무에 참여했습니다.

B-2가 지하 시설을 파괴하는 동안, B-52H 스트래토포트리스와 B-1B 랜서 폭격기들은 이란의 지상 군사 시설들을 초토화했습니다. 탄도미사일 사일로, 미사일 생산 시설, 드론 발사 기지, 군사 비행장이 정밀 유도 폭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해상에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에 배치된 구축함, 순양함, 잠수함에서 500발 이상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발사되었습니다. 칼 빈슨 항모전단이 북아라비아해에서 작전을 지원했고, 니미츠 항모전단이 추가 전개되었습니다. 작전 개시 수 분 만에 이란 해군 함정 9척이 침몰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란 해군의 주요 수상 전투함 20척 이상이 격침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이란 해군의 최신예 솔레이마니급 전함과 잠수함도 포함되었습니다. IRGC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핵심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던 드론 항모 IRIS 샤히드 바게리호, 컨테이너선을 개조해 샤헤드 계열 드론을 운용하던 이 함정도 작전 첫 시간에 격침되었습니다.

CENTCOM은 성명에서 "아라비아만,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에 항해 중인 이란 함정은 단 한 척도 남아 있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격파했다. 이란에는 더 이상 해군도, 공군도, 방공망도, 레이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상에서. 걸프 인접국에 전진 배치된 HIMARS(High Mobility Artillery Rocket System,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가 이란 해안의 대함미사일 포대와 레이더 기지를 타격했습니다. 이 작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PrSM(Precision Strike Missile, 정밀타격미사일)이 대규모로 실전 투입되었습니다. PrSM은 HIMARS에서 발사되는 차세대 지대지 미사일로, 사거리가 기존 ATACMS의 약 두 배에 달합니다.

저고도에서.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는 의외의 무기가 등장했습니다. 냉전 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던 A-10 썬더볼트 II 공격기와 AH-64 아파치 헬기가 투입된 것입니다. IRGC 해군이 보유한 수백 척의 고속 공격정(fast attack craft)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비대칭 전쟁을 위해 설계된 무기입니다. 이 소형 쾌속정들을 상대하기 위해 발당 약 530만 달러에 달하는 SM-6 요격 미사일을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미군은 대신 A-10의 30mm GAU-8 기관포와 아파치의 헬파이어 미사일로 이란 고속정 수십 척을 격파했습니다. 비용 대비 효과의 논리가 전장에서 작동한 것입니다.

이 모든 화력이 동시에, 공중과 해상과 지상에서 쏟아졌습니다. 미군이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이라 부르는 전투 개념의 실전 적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압도적인 화력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작전 첫 4일 동안 소모된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의 수량은 미국의 18개월치 생산량에 해당했습니다. 토마호크 재고도 심각하게 감소했습니다. 방위산업체 레이시온과 록히드 마틴의 생산 라인이 3교대 24시간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전쟁의 속도는 생산의 속도보다 빨랐습니다.

작전 첫 10일 동안의 주요 투입 자산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B-2 스텔스 폭격기, B-1B 랜서, B-52 스트래토포트리스, LUCAS 드론(작전에서 처음 공개된 신형 드론), 패트리어트 요격 시스템, THAAD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 미 국방부가 3월 9일 공개한 팩트시트의 숫자는 이러했습니다. 타격 표적 5,000개 이상. 이란 함정 격침 또는 파괴 50척. 그리고 미군 전사자 7명.

7명. 이 숫자는 작전 개시 열흘 만의 수치입니다. 이란 측 사망자 수는 이 시점에서 집계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이란 적신월사는 3월 초 기준으로 787명의 사망자를 보고했지만, 이는 병원에 도착한 사망자만을 집계한 것이었습니다.

5.3 참수 작전

에픽 퓨리 작전의 첫 번째 포문은 군사 시설이 아니라 사람을 겨냥했습니다.

UTC 06시 45분, 이란 현지시간 오전 10시 15분. 미군과 이스라엘군이 이란 전역의 방공망을 타격하기 시작한 지 10분 후, 이스라엘 공군은 테헤란 중심부의 한 건물에 정밀 유도 무기를 쏟아부었습니다. 표적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관저이자 집무실인 '지도부 건물(Leadership House)' 복합체였습니다.

이 공격의 배경은 수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5년 6월 미드나잇 해머 작전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하메네이 제거를 계획했습니다. 트럼프가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하메네이는 극도로 은둔적인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관저 지하의 벙커는 너무 깊어서 엘리베이터로 5분 이상 내려가야 했습니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가 극히 드물어졌습니다.

CIA는 수개월 동안 하메네이의 동선과 일정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2월 23일, 네타냐후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메네이가 최고위 안보 관료들과 회의를 열 예정이며, 장소가 확인되었다는 보고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정보 장교들은 이란 지도부가 세 곳의 장소에서 동시에 모임을 가질 것이라는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세 곳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2월 28일 아침, 하메네이는 지하 벙커가 아니라 지상에 있었습니다. 백주대낮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건물을 강타했습니다. 관저 복합체의 위성 사진은 3월 2일 이란 인터내셔널이 공개한 영상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이란 정부의 첫 반응은 부인이었습니다.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는 하메네이가 "안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하메네이가 "테헤란 외곽의 안전한 장소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란 국영 통신 타스님과 메흐르는 하메네이가 "건재하며 전장을 지휘하고 있다"고 반복했습니다.

네타냐후는 하메네이 사망을 가리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도 "이란 국민을 위한 정의"라며 사망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그러나 확인은 쉽지 않았습니다.

확인이 나온 것은 이란 현지시간 2월 28일 자정 직전이었습니다. 익명의 이스라엘 관리가 "하메네이가 공습으로 사망했으며, 시신이 발견되어 정보 자산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다"고 밝혔습니다. 3월 1일 새벽, 이란 국영 언론이 마침내 사망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IRGC 산하 파르스 통신은 추가 사실을 전했습니다. 하메네이의 딸, 사위, 손자, 며느리 자흐라 하다드 아델이 같은 공습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하메네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참수 작전으로 이란의 최고위 안보·군사 지도부가 거의 통째로 제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군(IDF)은 7명의 이란 안보 지도자 사망을 확인했습니다.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팍푸르. 최고국가안보회의 전 사무총장이자 하메네이의 최고위 고문 알리 샴하니. 이란군 총참모장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정보부 고위 관리 4명. 이란 인터내셔널은 총 48명의 최고위급 인사가 개전 초기 공습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을 통치한 86세의 최고지도자가 죽었습니다. 그와 함께 이란 정권의 의사결정 구조를 구성하던 핵심 인물들이 사라졌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산은 이러했습니다. 머리를 잘라내면 몸이 무너진다. 지휘 체계가 마비되면 혁명수비대가 분열하고, 이란 국민이 봉기하여 정권이 교체된다. 트럼프가 "여러분의 정부를 접수하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이 계산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살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공습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생존했습니다. 3월 3일부터 전문가회의(Assembly of Experts, 최고지도자 선출 권한을 가진 88명의 성직자 의회)의 후계자 선출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전문가회의의 콤 사무소가 폭격을 받았습니다. 위원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자살 행위였습니다. 회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다섯 차례에서 여섯 차례의 대면 회의 시도는 안전 문제로 무산되었습니다.

IRGC가 움직였습니다. 이란 인터내셔널의 보도에 따르면, IRGC 지휘부는 전문가회의 위원들에게 "반복적인 접촉과 심리적, 정치적 압력"을 가하며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로 선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세습에 반대하는 위원들이 있었습니다. 여덟 명의 위원은 온라인 투표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의 핵심 이념 중 하나가 군주제의 타도였습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의 권력 세습은 그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되고, 이란이 걸프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을 쏘아대는 와중에 지도부 공백은 곧 패배를 의미했습니다. 3월 8일, 전문가회의는 과반수 투표로 56세의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제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했습니다.

전문가회의 위원 헤이다리 알레카시르는 선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故) 하메네이의 조언에 따라,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적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위대한 사탄(미국)조차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트럼프가 며칠 전 "하메네이의 아들은 나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사실이, 역설적으로 모즈타바의 자격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승인 없이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하메네이의 후계자가 누가 되든 표적으로 삼겠다고 경고한 상태였습니다. 네타냐후는 기자회견에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변화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공언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모즈타바의 선출에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중국은 새 최고지도자에 대한 어떠한 군사적 위협에도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참수 작전의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핵심 안보 지도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군사적으로는 경이적인 정밀도의 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목표, 정권 교체 또는 항복은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죽은 지도자의 자리를 채운 것은 더 온건한 인물이 아니라, 아버지와 가족을 잃은 분노를 품은, IRGC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아버지보다 더 강경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외교를 논할 수 있었던 실용주의자들이 제거된 자리를 극단적 군사주의자들이 채웠습니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롭 가이스트 핀폴드 강사는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첫 공개 성명을 분석하며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했을 수도 있는 것, 즉 새 지도자의 수사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기존 입장의 배가입니다."

모즈타바의 첫 성명은 프레스TV를 통해 앵커가 대독하는 형식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봉쇄할 것이며, 지역 내 모든 미군 기지를 즉각 폐쇄하거나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과의 협상이 아니라 항전을 택한 것입니다.

카운슬 온 포린 릴레이션스(CFR)의 린다 로빈슨 선임연구원은 작전 직후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하메네이를 제거한 것이 곧 정권 교체는 아닙니다.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정권입니다." 스팀슨 센터의 분석은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역사상 어떤 폭격 캠페인도, 아무리 정교하고 파괴적이었다 해도, 정권 교체를 달성한 적은 없습니다."

5.4 민밥 여학교 165명

2026년 2월 28일 오전 10시 45분, 이란 현지시간. 호르무즈간 주의 해안 도시 민밥(Minab).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이란 남부 전역을 강타하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민밥은 호르무즈 해협을 내려다보는 전략적 위치에 있습니다. IRGC 해군의 비대칭 전력, 고속 공격정과 해안 미사일 플랫폼을 운용하는 거점입니다. 도시 서쪽 80킬로미터 지점에는 반다르아바스 해군기지가 있고, 동남쪽 400킬로미터에는 코나락의 군사 시설이 있습니다. CENTCOM의 타격 지도에서 민밥은 미군의 주요 작전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했습니다.

민밥의 샤흐라크에 알마흐디(Shahrak-e Al-Mahdi) 주거 지구에 샤자레 타예바(Shajareh Tayyebeh, '좋은 나무'라는 뜻)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는 IRGC 해군의 세예드 알슈하다 아시프 미사일 여단(Seyyed al-Shohada Asif Brigade) 기지 복합체에 인접해 있었습니다. 인접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짚어야 합니다. 위성 사진 분석에 따르면, 이 학교 건물은 2013년까지 IRGC 복합체의 담장 안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2016년 9월 이전에 별도의 담장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분리된 뒤 학교의 입구는 세 곳이었고, 모두 군사 보안 검문소를 거치지 않고 일반 도로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로 전환된 지 10년이 넘은 민간 시설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이란의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7세에서 12세 사이의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층을 나누어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한창이던 10시 45분, 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분석에 따르면, 학교 인근의 IRGC 기지에 대한 공습 과정에서 학교가 피격된 것으로 보입니다. 앰네스티는 이란 국영 언론이 공개한 미사일 잔해의 시청각 자료를 분석하여, 미국이 독점 운용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잔해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합참의장 댄 케인은 3월 2일 브리핑에서 미 해군이 2월 28일 이란 남부에서 토마호크를 발사했음을 확인했습니다. 3월 4일의 추가 브리핑에서 공개된 타격 지도에는 민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 CBC, NPR, BBC 베리파이 등 복수의 독립 언론 조사는 미국이 이 공격의 책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알자지라의 조사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공격 패턴에 대한 분석이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면서, "의도적 표적 지정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CBC 조사는 학교에 대한 타격이 인접 군사 복합체에 대한 정밀 공습의 일부였으며, "무기 체계의 오작동이거나 CENTCOM의 심각한 정보 수집 오류"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호르무즈간 주지사 모하마드 아슈리에 따르면, 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한 것은 군사 작전 개시 1시간 후인 오전 10시 45분이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바가에이는 이 공격이 '더블 탭(double tap)' 방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표적에 두 차례 연속 타격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타격으로 건물을 파괴하고, 두 번째 타격으로 구조에 나선 사람들까지 살상하는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의 민밥 학교 공격 항목은 위성 분석을 근거로 "세 차례의 개별 타격(triple tap)"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층짜리 학교 건물의 지붕이 내려앉았습니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 위로 콘크리트가 쏟아졌습니다.

사망자 수의 집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갔습니다. 이란 교사노동조합 협의체 대표 시바 아멜리라드는 타임지에 현지 소식통을 인용하여 108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민밥 검찰은 국영 IRNA 통신을 통해 150명의 "무고한 여학생"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란 당국의 최종 집계는 165명이었습니다. 사망자 중 110명이 학생이었고, 66명이 남학생, 54명이 여학생이었습니다. 교사 26명, 학부모 4명이 포함되었습니다. 부상자는 95명 이상이었습니다.

일부 서방 언론과 인권 단체는 175~180명의 사망자를 보고했습니다. 이란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에서 독립적인 검증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란 당국은 2월 28일부터 의도적인 인터넷 차단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목격자와 유가족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첫 반응은 부인이었습니다. 미 국방부 대변인과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타임지와 AP통신에 "학교가 타격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여학교를 폭격했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답하겠습니다."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미군은 학교를 의도적으로 표적 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성명을 냈습니다. "민밥 초등학교에 대한 미국과 시온주의의 침략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기억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이란 국민에 대한 범죄는 무응답으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월 3일, 민밥 시내의 광장에서 165명의 사망자를 위한 합동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수천 명의 조문객이 모였습니다.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X에 새로 파낸 무덤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160명 이상의 무고한 어린 소녀들을 위해 파고 있는 무덤입니다. 그들의 몸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구출'의 실제 모습입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공격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14건의 영상과 사진을 검증하고, 25년간의 위성 사진 약 40장을 분석했다고 밝혔습니다. 공격 후 촬영된 위성 사진에서 학교 건물의 지붕이 아래로 내려앉은, 위에서 아래로의 공습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팬케이킹(pancaking)' 현상이 확인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약 3.5킬로미터 떨어진 민밥 헤르무드 묘지의 위성 사진에서는, 공격 다음 날인 3월 1일부터 중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매장 준비가 시작된 것이 보였습니다. 3월 4일의 위성 사진에는 새로 파낸 개인 무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공격을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이라고 규탄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가슴이 찢어지고 경악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공동 성명에서 "학교에 대한 공격은 어린이와 교육,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말했습니다. "교실에서 소녀들을 죽이는 것에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유로-메드 인권 모니터는 군사 시설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학교의 민간 성격이 바뀌지 않으며, "미국과 이스라엘군은 타격 전에 표적의 성격을 신중하게 확인해야 할 법적 의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학교의 역사를 한 가지 더 알아야 합니다. 2025년 1월, IRGC 총사령관 호세인 살라미 소장이 민밥을 방문하여 이 군사 복합체의 다른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마르티르 압살란 전문 클리닉'을 개원했습니다. 1,000억 이란 토만(약 200만 달러) 규모, 5,700평방미터 면적의 이 클리닉은 소아과, 산부인과, 치과를 갖추고 동부 호르무즈간 주민들에게 민간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에서 이 클리닉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별도의 민간 출입구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리닉은 무사했고, 학교는 파괴되었습니다.

민밥 여학교 사건은 에픽 퓨리 작전 전체에서, 그리고 2026년 이란 전쟁 전체에서, 3월 15일 기준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가장 많은 단일 공격이었습니다.

이 비극이 남긴 질문은 기술적인 것입니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GPS와 관성항법, 지형 대조 시스템(TERCOM)을 결합하여 목표물을 수 미터 이내의 정확도로 타격합니다. 미사일은 지시받은 좌표를 정확히 타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미사일의 정밀도가 아니라, 미사일에 입력된 정보의 정확도였습니다. 학교가 10년 이상 민간 시설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타격 데이터베이스에 반영되어 있었는지. 수년 전의 정보가 갱신되지 않은 채 표적 목록에 남아 있었는지. 12시간 동안 5,000개 이상의 표적을 동시에 타격하는 작전에서, 각 표적의 현재 용도를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작동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2026년 3월 말 현재,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군 내부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CSIS의 마이크 캔시안은 "오류가 특정 개인에게 추적될 수 있다면 징계 조치의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공식적인 인정이 나온다 해도 제한적인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165명의 이름은 이란 당국이 3월 7일 공개한 119명 어린이의 사진 콜라주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있거나 졸업사진처럼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7세, 8세, 9세. 첫 번째 학년의 아이가 있었고, 곱셈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민밥의 한 학부모가 민주주의나우(Democracy Now) 방송에서 보여준 것은 피 묻은 수학 공책이었습니다. "모한나 자리, 1학년. 이것이 그 아이의 수학책입니다. 이것이 숙제가 든 파일입니다."

에픽 퓨리 작전은 군사적으로 이란의 핵 시설, 미사일 전력, 해군, 방공망, 지도부를 파괴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작전 개시 12시간 만에 이란의 군사적 대응 능력은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그 12시간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이 투사한 화력은 21세기 어떤 공습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규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12시간이 끝났을 때, 이란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IRGC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슬람공화국 이란 무장 세력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격 작전이 곧 시작될 것입니다." 수 시간 뒤, 이란은 이스라엘과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의 미군 기지와 에너지 인프라를 향해 탄도미사일과 자폭 드론을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은 이 보복 작전을 '진실된 약속 IV(Operation True Promise IV)'라 불렀습니다. 이란 국영 언론은 또 다른 이름도 사용했습니다. 라마단 전쟁.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욤 키푸르 전쟁에 붙인 이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첫 36시간 동안 이란이 발사한 무기의 규모입니다. UAE 국방부의 집계에 따르면, UAE 한 나라를 향해서만 165발의 탄도미사일, 2발의 순항미사일, 541기의 드론이 날아왔습니다. 쿠웨이트는 97발의 탄도미사일과 283기의 드론을 요격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바레인은 45발의 미사일과 9기의 드론을 격추했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 아부다비 자예드 국제공항, 쿠웨이트 국제공항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에 피격되었습니다. 두바이의 랜드마크 팜 주메이라 인근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제벨 알리 항구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바레인의 국영 석유회사 밥코는 정유소가 이란 공격으로 화재를 입은 뒤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포했습니다.

걸프 전역의 항공 편이 취소되었습니다. 항공 지도에서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이스라엘, 바레인 상공의 항공기가 사라졌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은 이란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12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전쟁을 끝내는 데는 12시간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작전의 기획자들은 곧 확인하게 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닫혔고, 유조선의 AIS 신호는 하나씩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제6장 이란의 보복과 걸프의 불

6.1 500발의 탄도미사일과 2,000기의 드론

2026년 2월 28일 오전 8시 30분(UTC 기준),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통신망에 동시다발적 발사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테헤란이 아직 불타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작전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가 이란 전역에 900회 가까운 공습을 쏟아부은 직후였습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자신의 관저 벙커에서 사망했습니다.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와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팍푸르도 같은 날 숨졌습니다. 이란 정권의 수뇌부가 통째로 날아간 것입니다.

서방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지도부를 제거하면 이란의 군사 지휘 체계가 마비되고, 체제가 안에서 무너지거나, 최소한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계산은 틀렸습니다.

IRGC는 수십 년간 바로 이 시나리오를 대비해왔습니다. 분산형 지휘 구조, 지하 미사일 기지, 이동식 발사대. 참수 작전 이후에도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었습니다. 하메네이의 사망이 이란 국영 방송을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은 3월 1일 새벽이었지만, IRGC의 보복은 그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2월 28일 오전 9시(UTC)가 되기도 전에, 이란 전역의 지하 사일로와 차량 이동식 발사대에서 탄도미사일이 솟아올랐고, 카비르 사막의 위장된 활주로에서는 샤헤드(Shahed) 계열 자폭 드론이 줄지어 이륙했습니다.

개전 첫 주 동안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약 500발입니다. 자폭 드론은 2,000기가 넘었습니다. 서방 정보기관은 이 수치를 2,400발 이상으로 추정했습니다. 2025년 6월 12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이란 미사일 재고의 약 3분의 1을 파괴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란은 그 사이 8개월 동안 재고를 복구해왔습니다. 2026년 2월 기준 이스라엘 군 정보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보유량을 약 2,500발로 추정했습니다.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종류는 다양했습니다. 사거리 300킬로미터급 단거리 파테(Fateh)-110 계열부터, 2,000킬로미터를 날아가는 호람샤흐르(Khorramshahr)-4까지. 이란이 '극초음속'이라고 부르는 파타흐(Fattah)-1과 파타흐-2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파타흐-1은 기존 탄도미사일의 재진입체에 소형 고체연료 로켓 모터를 추가로 장착하여, 하강 과정에서 궤도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된 미사일입니다. 이란은 이 미사일이 마하 13 이상의 속도에 도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IIS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파비안 힌츠는 이 분류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리는" 표현이라고 지적했지만, 기동 재진입체(MaRV, Maneuverable Re-entry Vehicle)가 기존 요격 체계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3월 1일에는 파타흐-2의 실전 투입이 보도되었습니다. 파타흐-2는 기동 재진입체 대신 극초음속 활공체(HGV, Hypersonic Glide Vehicle)를 탑재합니다. 대기권에서 스킵-글라이드 비행이 가능하고, 접근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중동에서 이런 유형의 무기가 실전에 쓰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타격 대상은 이스라엘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바레인,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미군 기지를 호스팅하거나 작전을 묵인한 것으로 이란이 판단한 나라들이 모두 사정권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해 7개국이 동시에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신화통신의 타임라인에 따르면, 2월 28일 오전 9시 30분(UTC)경 바레인, 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에서 폭발이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 언론은 최소 14개의 미군 기지를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란의 전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포화(飽和)'입니다. 서로 다른 고도, 서로 다른 속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밀어붙이는 것. 저속 드론이 먼저 출발합니다. 방공 레이더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요격 미사일의 재고를 소진시키는 역할입니다. 샤헤드 계열 드론 한 기의 가격은 수만 달러 수준이지만, 이를 요격하는 패트리어트(Patriot) 미사일 한 발은 200만~400만 달러, SM-6은 400만 달러 이상입니다. 드론 떼가 방공망을 빨아들이는 사이, 뒤따라오는 탄도미사일이 본격적인 타격을 가합니다. 여기에 순항미사일까지 섞이면 방어 측의 레이더와 요격 관제 시스템은 동시에 저고도, 중고도, 고고도의 위협을 추적해야 합니다. 어떤 방공 체계도 이 세 가지를 100퍼센트 막아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 술탄(Prince Sultan) 공군기지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기지에는 미군의 E-3 센트리 조기경보통제기(AWACS)와 KC-135 공중급유기가 주기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관리들이 월스트리트저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5대의 미 공군 급유기가 파손되었고, E-3 센트리도 지상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소 10명의 미군이 부상했으며 그중 2명이 중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쿠웨이트에서는 캠프 뷰링(Camp Buehring)의 미군 주둔지가 타격을 받아 6명의 미군이 전사했습니다. 바레인의 미 제5함대 사령부 인근 해역에도 드론이 쏟아졌습니다. UAE의 알다프라(Al Dhafra) 공군기지, 카타르의 알우데이드(Al Udeid) 기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3월 21일에는 한층 도발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란이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 미영 합동 군사기지를 향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입니다. 이란 본토에서 약 3,800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CNN과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관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사일 1발은 비행 중 분해되었고 나머지 1발은 미 해군 함정의 SM-3 요격 미사일에 격추되었습니다. 이란은 이 공격 자체를 부인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란이 2단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무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이란이 스스로 설정해온 사거리 2,000킬로미터 제한을 깨뜨렸다는 신호였습니다. 유럽의 수도들이 이론적으로 사정권에 들어왔습니다.

이 7개국 동시 공격의 군사사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2024년 4월과 10월의 이란-이스라엘 교전, 2025년 6월 12일 전쟁과 비교해도 규모와 동시성 모두 차원이 달랐습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도발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란은 그 어떤 국가도 단독으로 100퍼센트 방어할 수 없는 수준의 포화 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미국 중부사령관(CENTCOM)은 전쟁 개시 수일 만에 이란의 미사일 발사 능력을 86퍼센트 감소시켰다고 발표했지만, 그 '나머지 14퍼센트'가 만들어낸 피해는 이미 중동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6.2 걸프 에너지 인프라의 연쇄 타격

이란의 보복이 군사 기지에만 머물렀다면, 이 전쟁의 성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걸프 국가들은 자국 영토 내 미군 기지가 타격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미국과 이란 사이의 문제로 분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란은 그 분류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카타르의 라스 라판(Ras Laffan) 산업단지. 세계 최대의 LNG(액화천연가스) 생산 시설이 밀집한 곳입니다. 전 세계 LNG 공급량의 약 20퍼센트가 여기서 나옵니다. 14개의 LNG 액화 트레인이 나란히 서 있고, 초대형 LNG 운반선이 접안하는 항구가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3월 2일, 이란의 드론이 라스 라판과 메사이에드(Mesaieed) 산업단지를 타격했습니다. 카타르 에너지(QatarEnergy)는 즉각 천연가스 생산 전면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에너지 장관 사드 셰리다 알카비의 지시였습니다. 곧이어 모든 LNG 공급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통제 불능의 사유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을 선언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가스 액화 시설의 재가동에만 수 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참사는 3월 18일에 찾아왔습니다.

이날 이스라엘이 이란의 사우스파르스(South Pars) 가스전을 폭격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사우스파르스는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전으로, 이란과 카타르가 해저에서 공유하는 자원입니다. 이란 측은 이 가스전에서 국내 천연가스 수요의 80퍼센트를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즉각 보복을 예고했습니다. IRGC는 타스님 통신을 통해 사우디의 SAMREF 정유소, 주바일 석유화학단지, UAE의 알호슨(Al Hosn) 가스전, 카타르의 라스 라판 정유소와 메사이에드 석유화학단지 등 5개 시설을 "수 시간 내에 타격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지켰습니다.

이란의 미사일이 라스 라판의 LNG 시설을 강타했습니다. 카타르 에너지는 "광범위한 손상(extensive damage)"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드매킨지(Wood Mackenzie)의 가스 및 LNG 부문 이사 톰 마르제크맨서는 알자지라에 "라스 라판의 손상이 심각하여, 분쟁이 끝나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카타르의 LNG 생산이 수 주 안에 완전히 복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상 용량으로 돌아오는 데 쉽게 수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노스필드 이스트와 사우스 신규 프로젝트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카타르 에너지의 알카비 장관은 피해 규모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LNG 수출 용량의 17퍼센트가 상실되었고, 연간 약 20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이 예상되며, 시설 복구에 3년에서 5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그는 "한 번의 타격으로 지역 경제가 10년에서 20년 후퇴했다"고 경고했습니다.

카타르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외교부는 이란 대사관의 군사 및 안보 담당 무관과 그 직원들을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하고 24시간 내 출국을 요구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홍해 연안의 얀부(Yanbu)에 위치한 SAMREF 정유소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정유소는 사우디 아람코와 엑슨모빌의 합작 시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상황에서, 얀부는 사우디 원유 수출의 유일한 대안 경로였습니다. 이란은 바로 그 대안을 겨냥한 것입니다. 사우디 국방부는 얀부를 향한 탄도미사일 1발을 요격했다고 발표했지만, SAMREF 정유소에는 드론이 떨어졌습니다. 리야드와 동부지역을 향한 수십 기의 드론도 사우디 방공망이 막아냈습니다. 그리스가 운용하는 패트리어트 포대가 사우디 정유소를 겨냥한 이란의 탄도미사일 2발을 요격한 사실도 보도되었습니다.

쿠웨이트의 상황은 한층 심각했습니다. 세계 최대급 정유 시설 중 하나인 미나 알아흐마디(Mina Al-Ahmadi) 정유소가 이란 드론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정유소는 하루 73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합니다. 3월 19일과 20일, 이틀 연속으로 드론이 날아들었습니다. 화재가 여러 설비에서 동시에 발생했고,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는 일부 설비의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쿠웨이트 국제공항의 레이더 시스템과 연료 탱크도 드론에 맞았습니다. 쿠웨이트의 전력 및 담수화 시설까지 피격되어 인도인 노동자 1명이 사망했습니다.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의 최고경영자가 한 말이 이 상황을 압축합니다. "이란은 사실상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습니다."

UAE에서는 알다프라(Al Dhafra) 공군기지의 미군 시설이 공격받았고, 푸자이라(Fujairah) 항구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 인근에서도 드론 관련 사건으로 연료 탱크에 불이 붙어, 항공편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바레인의 바프코(Bapco) 정유소도 "이란의 공격"에 의한 파편 낙하로 창고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란의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이 타격들이 이란의 역량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경고하면서, 자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면 "무제한 보복"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숫자를 정리해봅니다. 전 세계 LNG 수출의 20퍼센트를 담당하는 카타르의 핵심 시설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사우디의 유일한 홍해 수출 경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쿠웨이트 최대 정유소가 반복 타격을 입었습니다. UAE의 항만과 공항이 불안정합니다. 이 모든 일이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폐쇄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해협 봉쇄가 석유 수송을 막았다면, 에너지 인프라 타격은 석유의 생산과 정제 자체를 멈추게 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겹친 순간, 걸프 지역의 에너지 공급 능력은 구조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사우디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은 3월 19일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이슬람 외교장관 회의 후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현재 보이는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역량과 능력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그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일주일인지는 미리 말하지 않겠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외교와 방어에 계속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이란에 대한 공세적 대응으로 전환할 것인가. 리스크 컨설팅 기업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중동 수석 분석가 토르비에른 솔트베트는 CNBC에 이 딜레마를 요약했습니다.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 예를 들어 미군의 기지 접근을 제한하는 것 등은 걸프 국가들을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은 더 심각한 이란의 보복을 부를 수 있습니다."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요르단 6개국이 이란과 이란 산하 이라크 무장 세력의 공격을 공동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걸프 국가들이 더 이상 이 전쟁을 남의 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6.3 이스라엘 본토 피격

2026년 3월 1일 오후 2시 직전, 이스라엘 중부의 도시 벳셰메시(Beit Shemesh).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9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13만의 도시입니다. 라맛 레히(Ramat Lehi) 주거 지구의 티페렛 이스라엘(Tiferet Israel) 시나고그. 안식일이 끝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한 발이 이 시나고그를 직격했습니다. 건물이 무너졌고, 지하 방공호의 지붕이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9명이 사망했습니다. 야코브(16세), 아비가일(15세), 사라(13세) 비톤 남매 세 명이 사망자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8명이 부상했고, 그중 2명은 중상이었습니다. 수색 작업이 이어졌고, 잔해 아래 더 많은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마겐 다비드 아돔(MDA) 구급대원 예후다 슐로모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엄청난 구조적 파손과 공기 중의 연기, 그리고 엄청난 혼란. 파손된 건물들에서 겁에 질린 수십 명의 부상자가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공격에 대한 조사 결과를 3월 31일 발표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인증된 영상과 현장에서 수집한 사진 및 비디오를 분석한 결과, 대형 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이 사용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언론은 탄두 중량을 약 500킬로그램으로 추정했습니다. 앰네스티의 에리카 게바라로사스 연구·정책 선임이사는 "이란의 벳셰메시 공격에 사용된 무기는 정확도가 극히 떨어지고 대형 탄두를 탑재하고 있어, 민간인 밀집 지역에서의 사용은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 분석에 따르면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통상 목표물에서 최소 500미터 이상 빗나갑니다. 벳셰메시 공격은 전쟁 발발 이래 이스라엘 내 최대 인명 피해 사건이었습니다.

요격 시스템이 왜 이 미사일을 막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최소 2발의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나 명중하지 못했다고 확인했습니다. 벳셰메시 지역에서 사이렌이 제때 울리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은 애로우(Arrow)-3(외기권 방어), 애로우-2(상층 대기권 방어), 다윗의 돌팔매(David's Sling, 중층 방어), 아이언 돔(Iron Dome, 단거리 방어)의 다층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에피 데프린은 "방공 체계가 작동했으나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했다"며, "이것은 새롭거나 낯선 유형의 탄약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롭지 않은 탄약이 9명의 민간인을 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은 전체 요격률 92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쇼샤니가 인정한 것처럼, "탄도미사일 한 발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3월 21일에는 이란의 미사일이 이스라엘 남부의 디모나(Dimona)와 아라드(Arad)를 타격했습니다. 디모나에는 이스라엘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인 시몬 페레스 네게브 핵 연구센터(Shimon Peres Negev Nuclear Research Center)가 있습니다. 이란 국영 텔레비전은 이 타격이 같은 날 아침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나탄즈(Natanz) 핵 농축 시설을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핵 시설에 대한 공격이 핵 시설에 대한 보복을 낳는 구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보건부에 따르면, 아라드에서 116명이 부상했고 그중 7명이 중상이었습니다. 디모나에서는 64명이 부상했고 1명이 중상이었습니다. 소로카 의료센터는 두 도시의 부상자 175명을 치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 소방당국은 "디모나와 아라드 모두에서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나 위협에 명중하지 못했고, 수백 킬로그램의 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2발이 직격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네게브 핵 연구센터에 대한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으며 이상 방사선 수치도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핵 시설 인근에서의 최대한의 군사적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텔아비브에서도 인명 피해가 이어졌습니다. 2월 28일 텔아비브의 한 주거 건물에 미사일이 직격하여 민간인 여성 1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했습니다. 3월 9일에는 텔아비브 외곽 예후드(Yehud)에서 건설 현장의 노동자 2명이 이란의 집속탄(Cluster Munitions, 모탄이 공중에서 열려 수십 개의 자탄을 넓은 범위에 흩뿌리는 무기) 파편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3월 17일에는 라맛간(Ramat Gan)의 아파트 건물에 집속탄이 떨어져 70대 주민 2명이 안전실(마마드) 바로 밖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란의 미사일에 집속탄 탄두가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위협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3월 11일 보도에서 파편탄이 "불덩이처럼 낙하하는" 영상을 분석했고, 이스라엘 중부 지역의 민간인 부상 사례와 함께 국제인도법 위반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벤구리온 국제공항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미사일 파편이 주기 중이던 민간 항공기 3대를 손상시켰고, 이스라엘 당국은 출국 항공편의 최대 탑승 인원을 13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 모든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사망자 수는 이란의 사망자 수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습니다. 3월 말 기준 이스라엘 내 이란 미사일에 의한 사망자는 15명 수준이었고, 이란 적신월사의 집계(3월 6일 기준)에 따른 이란 내 사망자는 최소 1,230명이었습니다. 이 비대칭은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 체계와 민방위 시스템(마마드 안전실, 사이렌 경보, 홈프론트 커맨드 앱)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체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벳셰메시가 증명했습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쇼샤니는 미사일 발사 빈도의 급감을 IRGC의 발사대 파괴 작전의 성과로 설명했습니다. "전쟁 첫날에는 세 자릿수의 미사일이 날아왔습니다. 이후에는 한 자릿수로 줄어든 날도 있었습니다." 프랑스24는 전쟁 5일째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 빈도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보도했지만,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발사대 파괴 작전 때문인지, 이란이 잔여 재고를 아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단계의 전술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네타냐후 총리는 디모나와 아라드 피격 당일 밤 발표한 성명에서 "매우 힘든 밤"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모든 전선에서 결연히 적과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모든 전선'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2026년 3월이 끝나갈 무렵,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이란의 보복은 이 전쟁을 미국과 이란 사이의 양자 충돌에서 중동 전역의 다자 위기로 전환시켰다는 것입니다. 걸프의 에너지 인프라가 불타고, 이스라엘의 민간인이 죽고, 쿠웨이트의 에미르가 "우리가 친구로 여기는 이웃 이슬람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발 없이 공격받고 있다"고 성토하는 상황.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비용을 미국의 동맹국들이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중동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걸프 에너지 인프라의 파괴가 겹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7장 전쟁 전의 전쟁

7.1 2025년 6월 12일 전쟁

2025년 6월 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이사회는 이란이 핵비확산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안전조치 협정을 위반했다고 선언했습니다. 2005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틀 전인 6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협상에서 "훨씬 공격적"으로 돌아섰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국방부 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는 "분쟁이 우리에게 강요된다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타격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말이 오가고 있었지만, 다른 테이블에서는 작전 명령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6월 13일 새벽, 이스라엘 공군은 약 2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이란 본토 1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전명은 "암 칼라비(Am Kalavi)", 히브리어로 "일어서는 사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이름에는 이중의 상징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대 민족의 사자이면서, 동시에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 왕정의 문장이었던 사자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의 이란을 소환해서 현재의 이란을 공격한 셈입니다.

공습의 첫 번째 타격은 이란 핵 프로그램의 심장부를 향했습니다. 이스파한 남동쪽의 나탄즈(Natanz) 우라늄 농축 시설, 지상의 파일럿 연료농축플랜트(PFEP)가 파괴되었고, 전력 공급 인프라가 끊기면서 지하 연료농축플랜트(FEP)의 원심분리기들도 손상을 입었습니다. 위성사진에는 지하 시설 위 지표면에 두세 개의 폭발 구덩이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스파한 핵단지는 세 차례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두 번, 미국이 한 번. 우라늄 전환 시설(UCF), 우라늄 금속 생산 시설, 지르코늄 생산 공장, 그리고 핵물질을 저장하던 터널 단지까지. 6월 14일 촬영된 고해상도 위성사진은 이스파한 핵단지 전역에 걸친 광범위한 파괴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을 향한 공격은 더 정밀했습니다.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총사령관 호세인 살라미, 군 합참의장 모하메드 바게리, IRGC 항공우주군 사령관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가 사살되었습니다. 핵 과학자 14명 이상이 차량 폭탄과 정밀 타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테헤란 시내에 있는 국방부 본부도 피격되었습니다. 이란의 군사 지도부 상당수가 전쟁 첫날에 제거된 것입니다.

이란의 반격은 즉각적이었고 대규모였습니다.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드론이 먼저 날아갔고, 곧이어 미사일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란은 거의 매일 밤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쏘았습니다. 6월 15일, 이란과 예멘의 후티 반군이 동시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바트얌, 레호보트, 텔아비브 건물들을 강타했습니다. 9명이 사망하고 약 200명이 부상했습니다. 바트얌에서만 61개 건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오리건 주립대학의 레이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란 미사일은 텔노프 공군기지, 겔릴롯 정보기지, 지포릿 무기제조시설 등 주요 군사 표적에 "놀라운 정확도"로 명중했습니다. 12일간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스라엘에서는 28명이 사망하고, 2,305채의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두 개의 대학과 한 개의 병원이 손상되었습니다. 13,000명 이상의 이스라엘 시민이 집을 떠나야 했고, 6월 24일 기준 최소 15,000명이 노숙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란 쪽에서는 610명 이상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무장충돌 위치 및 사건 데이터(ACLED)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최소 508회의 공습을 가했고, 이란은 이스라엘에 최소 120회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전환점은 6월 22일에 왔습니다. 미국이 참전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라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열흘째에 접어들자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와 잠수함 발사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동원해 포르도(Fordow), 나탄즈, 이스파한의 세 핵시설을 타격했습니다. 포르도는 산 속 깊이 파묻혀 있는 시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의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GBU-57 A/B 대형관통탄(Massive Ordnance Penetrator)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였습니다.

미국은 한정적이고 일회적인 타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란은 다음 날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해 응수했지만, 사전에 카타르와 미국에 경고를 보냈습니다. 상징적 보복이었습니다. 사상자는 없었습니다.

6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휴전을 발표했습니다. 이란이 12시간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이어서 양측이 12시간을 더 중단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란의 최고국가안보위원회는 즉각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시간이 지나서야 휴전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12일간의 전쟁이 멈춘 것입니다. 테헤란에서는 미국의 핵시설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직접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이 전쟁이 남긴 가장 위험한 유산은 파괴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사라진 우라늄이었습니다. 2025년 5월 31일 자 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60% 농축 우라늄을 408킬로그램 이상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무기급인 90%로 추가 농축할 경우 약 10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이란은 군사 공격 시 "특별 조치"를 취해 핵물질을 이동시키겠다고 IAEA에 사전 통보해 둔 상태였습니다. 6월 16일, 이란은 실제로 그 조치를 시행했다고 알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타격과 미국의 포르도 공격 사이에는 8일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위성사진에는 포르도 시설에서 트럭들이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JD 밴스 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의 무기급 우라늄 재고를 파괴했는지 여부를 "모른다"고 시인했습니다.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CBS뉴스에 "그 물질이 어디에 있는지, 12일간의 공격 중에 일부가 파괴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공격으로 파괴되었을 수 있지만, 일부는 이동되었을 수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감시하던 IAEA의 눈이 닫힌 것입니다. 이란 의회는 6월 18일 IAEA와의 협력을 중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7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사찰관은 더 이상 이란 핵시설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분석은 이 전쟁의 전략적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장거리 미사일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이란 정권의 전복을 전쟁의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다." 군사 기반시설은 파괴했지만, 정권은 살아남았습니다. 408킬로그램의 60% 농축 우라늄이 어디에 있는지는 미국도 이스라엘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 9월, 이란 군 당국은 전쟁 중 이스라엘 F-35 전투기 두 대를 격추했다는 이전 발표가 허위였음을 인정했습니다. 같은 달, 갑안(GAMAAN)이 3만 명 이상의 이란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되었습니다. 44%가 이슬람 공화국이 전쟁을 시작한 책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탓한 비율은 33%였습니다. 58%가 이슬람 공화국이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응답했습니다. 58%가 전쟁 중 하메네이의 행보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정권의 군사력만 약화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권의 정당성을 안에서부터 허물었습니다.

12월, IAEA 사무총장 그로시는 이란이 현재 우라늄 농축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나탄즈 인근에 새로 건설된 시설에서 활동이 감지되었지만, 농축 활동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란이 협상 카드로 쥐고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IAEA와의 협력 재개, NPT 잔류 여부. 이 두 가지가 향후 협상에서 이란의 주요 지렛대가 될 터였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분석은 이 교착 상태를 정확하게 요약했습니다. "이란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IAEA와의 관계에서도,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10월, 전 국방부 장관 아비그도르 리베르만은 X에 글을 올려 경고했습니다. "이란과의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렸고,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이다." "이란은 이미 군사력 강화를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12일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더 큰 전쟁을 잉태했습니다.

7.2 2025~2026년 이란 시위와 유혈 진압

2025년 12월 28일,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의 상인들이 가게 셔터를 내렸습니다. 전자제품과 휴대전화를 파는 상점들이 먼저 문을 닫았습니다. 달러 가격과 금값이 급등하고, 이란 화폐 리알의 가치가 수직 낙하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날 공개시장에서 리알은 1달러당 144만 리알이라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1달러에 70리알이던 화폐입니다. 2015년 핵합의(JCPOA) 당시에도 3만 2,000리알이었습니다. 그것이 144만이 되었다는 것은, 이란인의 저축이 사실상 종이 위의 숫자로 전락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리알의 붕괴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2025년 6월 12일 전쟁의 직격탄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리알은 가치의 40% 이상을 추가로 잃었습니다. 2025년 1월에 1달러당 약 70만 리알이었던 환율이 7월에는 90만 리알로, 12월에는 144만 리알로 치솟았습니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공식 수치로도 52%를 넘어섰고, 식품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72% 올랐습니다. 9월에는 유엔 안보리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습니다. 12월에 이란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싼 축에 속하던 휘발유 보조금 체계에 새로운 단계를 도입해 사실상 연료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가계의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바자르 상인들의 가게 폐쇄는 이튿날 학생들의 합류로 이어졌습니다. 상인과 학생이 함께 테헤란 호메이니 광장을 향해 행진했습니다. 구호가 울렸습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가자도 레바논도 아니다, 내 목숨을 이란에 바치겠다." "이슬람 공화국 해체." 아미르카비르 대학, 베헤시티 대학, 샤리프 공대, 이스파한 공대, 야즈드 대학의 학생들이 집회에 나섰습니다. 시위는 테헤란에서 마슈하드, 이스파한, 시라즈로, 다시 31개 주 전역 200개 이상의 도시로 번졌습니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이후 촉발된 "여성, 생명, 자유" 시위를 넘어서는 규모였습니다.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처음에 시위대의 불만을 인정하고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국영 방송은 드물게 시위를 경제 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장 경질과 가계 보조금 발표는 군중을 진정시키지 못했습니다. 시위대의 요구는 이미 경제 개선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헤시티 대학 학생들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범죄적 체제가 47년간 우리의 미래를 인질로 잡아왔다. 개혁으로도, 거짓 약속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1월 3일,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시위대를 "폭도"라고 규정하고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IRGC 로레스탄 주 군단은 "관용의 시간이 끝났다"고 선포하면서 "폭도, 조직자, 반안보 운동의 지도자"를 "용서 없이" 처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1월 5일, 사법부 수장은 검찰에 시위 참가자들에게 "관용을 보이지 말고"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월 8일,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이란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인터넷 차단이었습니다. 2019년과 2022년에도 시위 때 인터넷을 끊은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 모두 차단 이후 광범위한 국가 폭력이 뒤따랐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순서였습니다. 그러나 규모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검증한 영상과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보안 병력은 거리와 건물 옥상에 배치되어 소총과 금속 펠릿이 장전된 산탄총을 시위대를 향해 반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머리와 몸통을 겨냥했습니다. 진압에 투입된 병력은 IRGC와 그 바시즈(Basij) 대대, 이란 경찰(FARAJA), 그리고 사복 요원들이었습니다. 학살은 1월 8일과 9일에 집중되었습니다. 이 이틀 동안 사망자 수는 수천 명 단위로 치솟았습니다.

BBC 검증팀이 분석한 영상 하나는 영안실 안을 보여주었습니다. 법의학적 검사에 따르면 거의 200구의 시신이 널려 있었고, 명백한 외상 흔적이 있었습니다. 최연소 희생자는 16세였습니다. 앰네스티에 전달된 테헤란 베헤시테자흐라 공동묘지 영상에는 유가족들이 검은 시신 가방 사이를 헤매며 가족을 찾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소 120개의 시신 가방이 확인되었습니다. 한 유가족은 9일에 시신을 인수하러 갔다가 "영안실이 시체로 넘쳐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파르디스의 한 의료 종사자는 앰네스티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솔레이마니 병원에 그날 밤에만 87구의 시신이 들어왔다. 파르시안 병원에는 423명의 부상자가 있었다." 마슈하드의 의료 종사자도 비슷한 증언을 남겼습니다. 한 목격자는 나르막 지역에서 "우리 앞에서 최소 5~6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고 말했습니다. 바킬라바드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보안 병력이 인도교 위 같은 높은 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사격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앰네스티는 유가족에 대한 당국의 대응도 기록했습니다. "사살된 시위 참가자들의 유가족에게 시신을 돌려받으려면 거액을 지불하거나, 사망자가 바시즈 대원이었다고 허위 진술하는 서약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테헤란 주에서 사살된 한 여성의 친척이 보낸 메시지가 공개되었습니다. "보안군이 사격했고, 치료를 받지 못해 출혈로 사망했다. 누군가 사망하면 시신을 쉽게 가족에게 넘기지 않는다. 가족이 시신을 돌려받으려면 그 사람이 바시즈 소속이었고 시위대에게 살해당했다고 적어야 한다."

사망자 수에 대한 추정은 극심한 편차를 보였습니다. 이 편차 자체가 이란 정권이 자행한 정보 차단의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소재 인권활동가뉴스통신(HRANA)은 2026년 2월 5일 기준으로 7,015명의 사망을 확인하고 문서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중 최소 6,508명이 시위 참가자였고, 추가로 11,744건이 조사 중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소재 이란인권단체(IHRNGO)는 1월 8일부터 12일까지만 최소 3,428명이 사살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체포자는 4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출처들은 훨씬 높은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가디언지는 1월 말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을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사망의 10% 미만만이 공식 등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타임지, 가디언지, 이란인터내셔널은 현지 보건 관계자를 인용해 1월 8일과 9일 이틀간 3만~3만 6,500명이 사살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인터내셔널 편집위원회는 새로 입수한 기밀 문서, 현장 보고서, 의료진과 목격자 및 유가족의 증언을 검토한 결과 3만 6,500명 이상이 사살되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역사상 이틀 동안 거리 시위 중 자행된 가장 대규모이고 가장 잔혹한 학살"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캐나다 소재 국제인권센터는 이란 공중보건 시스템 내부 소식통과의 인터뷰를 포함한 포괄적 검토를 통해 4만 3,000명의 사망을 추정했습니다.

이란 정부의 공식 발표는 3,117명이었습니다. 그 중 2,427명을 "민간인 및 보안 병력"으로, 나머지를 "테러리스트"로 분류했습니다. 유엔 이란 인권특별보고관 마이 사토는 1월 16일 최소 5,000명이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의료 소식통에 따르면 2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확인된 최저치 7,007명에서 최대 추정치 약 4만 3,000명까지. 이 거대한 편차는 인터넷 차단, 의도적인 증거 인멸, 시신의 강제 암매장, 유가족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빚어낸 암흑입니다. 이란인터내셔널이 입수한 IRGC 정보기구 보고서는 1월 11일 최고국가안보위원회와 대통령실에 최소 1만 2,000명의 사망을 보고했습니다. 학살 이틀 뒤의 수치였습니다. 그러나 "학살의 규모, 의도적인 은폐, 시신의 등록과 이송 과정에서의 의도적 혼란, 유가족에 대한 압박, 일부 희생자의 비밀 매장"으로 인해 "보안 기관 스스로도 정확한 최종 사망자 수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란인터내셔널은 기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3만 2,000명의 시위자가 살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는 IRG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습니다. 트럼프는 학살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고 처형될 것"이라고 말했고, 정권 교체가 일어날 것이나 "즉각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위는 1월 19일경 당국의 통제 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2월 21일 학생들이 여러 대학에서 2차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2월 24일 바시즈와 보안 병력이 4일째 시위 중인 학생들을 공격했습니다. 3월 13일, IRGC는 시위가 재개되면 1월보다 더 큰 진압을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라하 보흘룰리푸르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1월 8일 테헤란 파테미 광장 부근에서 보안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이름 "라하"는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합니다. 예술과 음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조직가도 아니었고, 공인도 아니었습니다. 구호를 들지도, 어느 파벌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녀는 권력을 행사했거나 요구를 내걸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국가가 두려워하는 하나의 존재 방식을 체현했기 때문에 죽었다."

7.3 트럼프의 군사력 집결

2026년 1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경고했습니다. 이란 정부가 "평화로운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살해한다면" 미국이 "그들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1월 13일에는 이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도움이 가고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같은 날, 미국의 "함대(Armada)"가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과 다수의 이지스 유도미사일 구축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USS 에이브러햄 링컨은 1월 15일경 필리핀 인근 남중국해를 출발해 중동으로 항로를 전환했습니다. 제9 항공단(CVW-9)에는 해병 전투공격비행대대 314(VMFA-314) 소속 F-35C 라이트닝 II 스텔스 전투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약 5,700명의 병력이 이 타격 전단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1월 25~26일경 오만 인근 아라비아해에 도착했습니다. 그 전까지, 1월 5일부터 25일까지 미 중부사령부(CENTCOM) 관할 해역에는 단 한 척의 항공모함도 없었습니다. 2023년 10월 이래 처음 있는 공백이었습니다.

항공 전력의 증강은 더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1월 18일부터 21일 사이, F-15E 스트라이크이글 약 35대가 영국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서 요르단의 무와파크알살티 공군기지로 이동했습니다. 1월 21일에 2차 파견분 12대가 추가로 출발했습니다. CENTCOM은 F-15E의 배치가 "전투 준비태세를 향상시킨다"고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드문 공개 인정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가 보내려는 신호의 일부였습니다. 항공 추적 데이터 분석가들은 수십 대의 미군 수송기가 중동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알우데이드 기지에는 KC-135 공중급유기가 최소 20대로 증가했습니다. 평상시 수준을 크게 웃도는 숫자였습니다.

2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대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와 호위 전함들에 중동 출항 명령을 내렸습니다. 130억 달러짜리 이 초대형 항모에는 F/A-18 호넷 전투기 4개 비행대대,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E-2D 조기경보기, 헬기가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승조원과 항공단을 합치면 5,000명 이상이었습니다. 포드호는 당시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 작전(서던스피어 작전)을 지원 중이었습니다. 2월 20일, 포드호가 지브롤터 해협 인근에서 목격되었습니다. 그리스 크레타섬의 수다만 해군기지에서 보급을 마치고 2월 27일 이스라엘 해안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포드, 두 척의 항모가 동시에 중동에 배치된 것입니다. 2003년 이라크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 당시 다섯 척의 항모 전투단이 집결한 이후 가장 대규모였습니다.

2월 24일, 위성사진이 이스라엘 남부 오브다 공군기지에 F-22 랩터 전투기 11대가 배치된 것을 포착했습니다. 중국 위성회사 미자르비전의 사진에 활주로와 유도로에 서 있는 전투기들이 선명하게 찍혔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본토에 공격용 무기를 배치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는 미 공군 공중급유기가 총 14대까지 늘어났습니다. 포드호 항공단의 전투기들이 이란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항속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동맹국들은 자국 기지와 영공을 이란 공격에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란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요르단의 무와파크알살티 기지가 펜타곤의 핵심 전개 거점이 된 배경입니다. 이스라엘이 대안으로 부상했습니다. 2월 26일, 바레인 미 해군사령부 인원이 임무 필수 인력 100명 미만으로 축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위성사진으로 바레인 항구에 정박해 있던 미군 함정들이 모두 출항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2025년 6월 핵시설 타격 직전에도 같은 방어적 조치가 취해진 바 있었습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걸프 에너지 인프라를 타격하면서, 미국은 병력을 계속 증원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한 달째에 접어들자 지상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사세보에 주둔하던 USS 트리폴리가 제31 해병원정대(31st MEU) 약 2,200명과 함께 3월 13일 출항 명령을 받았습니다. 대만 인근 훈련을 중단하고 말라카 해협을 거쳐 디에고 가르시아를 지나 중동으로 향했습니다. 3월 28일경 CENTCOM 관할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트리폴리는 전장 261미터, 4만 5,000톤급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으로, F-35B 전투기를 운용하면서 동시에 해병대를 해상과 공중으로 투사할 수 있는 함정입니다. 31st MEU는 미 해병대 유일의 전방 영구배치 원정대입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는 USS 복서(Boxer)가 제11 해병원정대(11th MEU) 약 2,500명을 태우고 3월 19~20일 출항했습니다. 복서 수륙양용전투단에는 USS 콤스톡, USS 포틀랜드가 함께했습니다. 약 2만 2,200킬로미터를 항해해야 했고, 4월 중순 이후에야 전투 해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1th MEU 역시 약 2,200명의 해병대원과 수병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함정 전체로는 약 2,000명의 수병이 추가로 탑승했습니다. 이 부대는 1990~91년 걸프전에서 쿠웨이트 해안의 양동 작전에 참가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3월 25일,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의 제82 공수사단에 중동 배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즉각대응전력(IRF) 소속 약 2,000~3,000명의 병력이었습니다. 사단장 브랜든 텍트마이어 소장과 사단 참모부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82 공수사단은 미 육군의 긴급 대응 병력으로, 전 세계 어디든 18시간 이내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적대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 낙하산으로 강하해 비행장을 확보하고 후속 작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이 부대의 임무입니다. 2020년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 사살 직후에도 82 공수사단이 중동에 투입된 적이 있습니다.

두 해병원정대가 합류하면 약 4,500명의 해병대원과 수병이 추가됩니다. 82 공수사단 병력까지 합치면, 전쟁 개시 이후 약 7,000명의 추가 병력이 투입되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에는 이미 약 5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란 내부의 핵물질을 물리적으로 확보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직접 가서 가져와야 한다." 누가 그 임무를 수행할지는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해병대와 82 공수사단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강제로 탈환하거나, 이란 석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하르그 섬(Kharg Island)을 점령하는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CNN은 이란이 하르그 섬에 추가 병력과 대공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고, 대인 및 대전차 지뢰를 섬 주변에 매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 애나 켈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모든 군사적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이란과의 합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진짜 합의 가능성의 한가운데에 있다. 내가 도박사였다면 합의 쪽에 걸겠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했습니다.

CSIS의 마크 칸시안은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은 어떤 종류의 공격이든 수행할 경우에 할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항공기를 해역으로 이동시켰고, 항공모함 두 척에 AWACS 같은 지원 자산까지 배치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은 미국이 이란 핵 프로그램의 잔존 시설만 타격하려 한다면 장거리 B-2 폭격기만으로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배치된 전력은 분명히 이란 내 표적을 공격하고 보복에 대비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는 이란이 2025년 6월 이후처럼 제한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지도부가 표적이 되고 있다고 느끼면, 이란은 훨씬 크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란은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긴장이나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전쟁을 먼저 시작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 "단호하고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결과에 대해 전적이고 직접적인 책임을 질 것이다."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지도자 아흐마드 알하미다위는 "적들에게 경고한다,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전쟁은 소풍이 아닐 것이다. 가장 쓴 형태의 죽음을 맛볼 것이며, 이 지역에 너희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나임 카셈 지도자는 "지난 두 달간 여러 당사자가 나에게 분명한 질문을 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에 전쟁을 걸면 헤즈볼라가 개입할 것인가, 아닌가?" 그는 헤즈볼라가 "가능한 침략에 대비하고 있으며 이를 방어할 것을 결의했다"고 답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약 25만 명의 지상군을 투입했습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는 35개국 연합군 70만 명 이상이 참전했습니다. 2026년 3월 말 기준 중동 내 미군 총 병력은 약 5만 7,000명 수준이었습니다. 이 숫자만 보면 전면적인 이란 침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력의 성격이 달랐습니다. 강습상륙함, 해병원정대, 공수사단. 이것은 영토를 점령하고 특정 거점을 탈취하기 위해 설계된 부대들이었습니다. 이란 당국이 오해할 여지가 없는 배치였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미국 정보 기관은 "이란이 미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 캘리포니아의 불특정 표적에 무인항공기로 기습 공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ABC뉴스가 보도했습니다. 이란 본토에서 미국 본토까지. 전쟁의 사정거리가 대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2025년 6월의 12일 전쟁이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시켰지만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2025년 12월~2026년 1월의 시위가 정권의 정당성을 바닥까지 끌어내렸지만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고, 2026년 2월의 에픽 퓨리 작전이 최고지도자를 제거했지만 해협은 닫혔고, 그래서 3월에 미국은 해병대와 공수부대를 보내야 했습니다. 각각의 단계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매번 그 판단은 틀렸습니다.




제8장 21마일의 목줄

8.1 지리와 규모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34킬로미터입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직선거리보다 짧습니다. 맑은 날이면 이란 쪽 해안에서 오만의 무산담 반도가 보입니다. 이 좁은 틈 사이로 하루에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지나갑니다. 전 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의 5분의 1, 바다를 통해 거래되는 석유의 4분의 1 이상입니다.

34킬로미터라는 숫자는 착시입니다.

해협 전체가 항해에 쓰이는 게 아닙니다. 바닥이 얕고 암초가 흩어져 있어서, 흘수가 깊은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이 지나갈 수 있는 수역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충돌을 막기 위해 이 해협 안에 분리통항제도(TSS, Traffic Separation Scheme)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차선과 나오는 차선이 각각 있는데, 한쪽 차선의 폭은 2마일, 약 3.2킬로미터입니다. 두 차선 사이에 충돌 방지용 완충 수역 2마일이 더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선박이 쓸 수 있는 바닷길의 폭은 양방향을 합쳐 6.4킬로미터 남짓입니다.

길이 330미터, 폭 60미터짜리 유조선에게 3.2킬로미터 폭의 수로가 얼마나 빡빡한 공간인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런 배는 엔진을 끄고 멈추는 데만 수 킬로미터가 필요합니다. 이 수로에서 두 척이 나란히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한 척씩 줄을 지어 통과해야 합니다. 24시간, 365일 내내 이 아슬아슬한 안무가 이어집니다.

이란의 해안선은 이 해협의 북쪽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자그로스 산맥의 끝자락이 바다까지 뻗어 있어서, 산비탈 곳곳에 대함 미사일 발사대와 해안포를 숨기기에 완벽한 지형입니다. 해협 안에는 이란이 군사기지로 쓰는 케슘(Qeshm) 섬, 호르무즈(Hormuz) 섬, 라라크(Larak) 섬이 있고, 아랍에미리트와 영유권 분쟁 중인 아부무사(Abu Musa) 섬과 대/소 툰브(Greater/Lesser Tunbs) 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섬들은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을 지근거리에서 감시하고 타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소속 고속정들은 이 섬들을 기지 삼아 수시로 출격합니다.

2024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 제품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이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의 수치입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이 규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물량의 84%가 아시아로 향했습니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69%를 받아갔습니다.

석유만이 아닙니다. 카타르는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 수출의 약 20%를 담당하는 나라인데, 카타르의 LNG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길은 오직 호르무즈 해협뿐입니다. 2025년 기준으로 카타르의 LNG 수출량은 연간 1,120억 입방미터를 넘었습니다. 이 가스는 한국과 일본의 겨울철 난방과 발전에 쓰이고, 러시아산 가스를 끊은 유럽의 에너지원으로도 쓰입니다. 해협이 닫히면 이 가스를 대체할 육상 수송 경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회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페르시아만 연안의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의 얀부(Yanbu) 항구까지 이어지는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이 있습니다. 사우디 아람코(Aramco)는 이 파이프라인의 수송 능력이 하루 최대 700만 배럴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이미 약 200만 배럴이 평상시에 쓰이고 있어서, 여유 용량은 300만에서 500만 배럴 사이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아부다비의 유전에서 오만만 연안의 푸자이라(Fujairah) 항구로 직행하는 송유관이 있지만, 이것도 평상시 사용량을 빼면 여유가 크지 않습니다.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파이프라인이 한 줄도 없습니다.

모든 우회 파이프라인을 최대로 가동해도 대체 가능한 물량은 하루 350만에서 550만 배럴 수준입니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매일 약 1,400만 배럴의 원유가 갈 곳을 잃습니다. 그리고 LNG는 파이프로 우회할 수 없으므로 피해가 고스란히 쌓입니다.

이것이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현실입니다. 폭 34킬로미터, 실제 항로 폭 3.2킬로미터의 바닷길에 하루 2,000만 배럴이라는 지구의 생존선이 끼어 있습니다. 우회로의 총용량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8.2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에 보복하기 위해 석유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이른바 제1차 오일쇼크입니다. 당시 시장에서 사라진 석유는 전 세계 공급량의 약 6%였습니다. 6%가 빠졌을 뿐인데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는 12달러로 네 배 뛰었고, 선진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졌습니다. 석유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처음으로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1979년이었습니다.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이란이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라 부르는 적대 국가로 변한 것입니다. 이란의 석유 생산이 급감하면서 제2차 오일쇼크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상업 수로가 아니라 서방을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수비대가 창설되고, 비대칭 해상 전력이 키워졌습니다. "우리의 이익이 침해당하면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독트린이 이때 태동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전장으로 변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때였습니다. 1984년부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마비시키기 위해 이란 유조선과 카르크(Kharg) 섬 석유 터미널을 프랑스제 엑조세(Exocet) 미사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도 보복에 나섰습니다. 이라크를 지원하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을 혁명수비대 고속정과 기뢰, 헬기로 공격했습니다. '탱커전(Tanker War)'이라 불리는 이 8년간의 해상 전투에서 이라크는 283건, 이란은 168건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로이즈(Lloyd's)는 이 기간에 손상된 상선이 546척, 민간 선원 사망자가 약 430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페르시아만은 미사일과 기뢰가 난무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1987년, 쿠웨이트 정부는 기발한 수를 썼습니다. 자국 유조선에 미국 국기를 달아줄 수 있느냐고 미국에 요청한 것입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고,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송하는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 호송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 해군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1987년 7월, 첫 번째 호송 임무에서 미국 국기를 단 유조선 브리지턴(Bridgeton)호가 이란이 깔아놓은 기뢰에 걸렸습니다. 1988년 4월에는 호위함 새뮤얼 B. 로버츠(USS Samuel B. Roberts)가 기뢰에 접촉해 용골이 부러지고 15피트짜리 구멍이 뚫렸습니다. 60여 명의 승조원이 부상했습니다. 미국은 보복으로 '사마귀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을 발동해 이란 해군 함정과 석유 플랫폼을 타격했고, 이 과정에서 이란 해군 프리깃 2척이 격침 또는 대파되었습니다. 1988년 7월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USS Vincennes)호가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탱커전이 끔찍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 번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의 압도적 화력이 이란의 봉쇄 시도를 찍어 눌렀고, 이란 자신도 해협이 막히면 자국 석유 수출길도 끊긴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보험료가 폭등하고 일부 선박이 공격당했지만, 석유의 흐름 자체는 유지되었습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그에 따른 걸프전(1991년) 때도 긴장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라크군이 페르시아만에 기뢰를 뿌려 놓았지만, 다국적군의 공군력과 해군력에 밀려 해협은 열린 채로 남았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란은 핵 개발을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이 첨예해질 때마다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2012년에는 이란 해군이 해협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이며 봉쇄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2019년에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수 척이 공격받는 사건이 잇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란은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해협을 막으면 자국도 죽는다는 계산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주식 시장과 유가 시장은 이 패턴에 익숙해졌습니다. "호르무즈 위기는 결국 수사로 끝난다." 그것이 반세기에 걸쳐 학습된 경험이었습니다.

8.3 왜 이번에는 다른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고 이란 전역의 군사 시설을 타격하는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개시했습니다.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암묵적 한계선이 무너졌습니다. 정권의 수장을 잃은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더 이상 자살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전면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잃을 것이 없어진 쪽의 선택지였습니다.

3월 2일, 혁명수비대 고위 관계자가 공식 발표했습니다. 해협은 폐쇄되었으며, 통과를 시도하는 모든 선박은 공격 대상이 된다고. 그리고 이란은 이 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2월 28일 밤,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최소 3척이 피격되었습니다. 오만 연안에서 한 척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3월 1일, 유조선 스카이라이트(Skylight)호가 오만의 카사브(Khasab) 북쪽에서 발사체에 맞아 인도인 선원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습니다. 같은 날, 무인 수상정이 MKD 비욤(MKD VYOM)호를 공격해 기관실에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인도인 선원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월 2일 자정 무렵, 해협 안에서 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신호를 송출하는 유조선은 한 척도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3월 6일에는 피격 선박을 구조하러 온 예인선이 미사일 2발에 맞아 침몰했고, 선원 최소 3명이 실종되었습니다. 3월 7일에는 혁명수비대가 유조선 프리마(Prima)호를 드론으로, 미국 유조선 루이스 P(Louis P)호를 해협 안에서 드론으로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쿠웨이트 항구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소낭골 나미베(Sonangol Namibe)호가 수상 드론 공격을 받아 기름이 유출되었습니다. 해협에서 8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항구였습니다. 이란의 타격 범위가 해협 자체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3월 12일 기준으로 이란이 상선에 가한 공격은 확인된 것만 21건이었습니다. 합동해양정보센터(JMIC)의 집계로는 아라비아만,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 일대에서 23건의 해상 공격이 보고되었습니다. 선원 사망자는 최소 5명이었습니다.

이번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물리적 봉쇄의 방식입니다. 이란은 해협에 군함을 일렬로 세우는 식의 재래식 봉쇄를 하지 않았습니다. 드론, 대함 미사일, 무인 수상정, 고속정 공격을 조합한 비대칭 전술을 썼습니다. 여기에 기뢰가 더해졌습니다. CNN은 3월 10일,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확인된 기뢰의 수는 수십 발 수준이었지만, 이란은 소형 기뢰부설정의 80%에서 90%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수백 발의 추가 부설이 가능했습니다. 기뢰의 종류는 마함-3(Maham-3)과 마함-7(Maham-7)로, 자기 감지 및 음향 감지 센서를 탑재한 현대식 무기였습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3월 10일, 이란의 기뢰부설정 16척을 포함한 다수의 이란 해군 함정을 파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해군 분석가 파르진 나디미(Farzin Nadimi)는 이란의 소형 쾌속정 함대가 대부분 온존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기뢰 수십 발은 군사적으로는 소해정으로 제거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군사적 제거가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효과였습니다. 기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1억 달러짜리 유조선의 발을 묶습니다. 선주도, 선장도, 선원도, 보험회사도 그 도박을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보험 시장의 반응입니다. 3월 1일과 2일, 국제 P&I(Protection & Indemnity) 보험클럽 12개 중 7개가 페르시아만, 오만만, 이란 영해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의 취소 통보를 발송했습니다. 가드(Gard), 스쿨드(Skuld),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 런던 P&I 클럽, 아메리칸 클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3월 5일부터 이 취소가 발효되었습니다.

전쟁 위험 보험은 이런 구조로 작동합니다. 선주는 연간 보험료를 내고 평시 전 세계 어디서든 보호를 받습니다. 다만 런던의 합동전쟁위원회(JWC, Joint War Committee)가 지정한 고위험 지역에 들어가려면, 그때마다 추가 보험료(AP, Additional Premium)를 내야 합니다. 전쟁 전에 이 추가 보험료는 선체 가치의 0.125%에서 0.2%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 비율은 하루 만에 1%로 뛰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1.5%에서 3%, 미국이나 영국이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은 5%를 물어야 했습니다. 150억 원짜리 LNG 운반선 기준으로 한 번 통과에 15억 원 이상의 보험료가 추가되는 셈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대한 총 보험 비용이 건당 100억에서 14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습니다.

보험은 존재했습니다. 로이즈 시장 협회(LMA, Lloyd's Market Association)는 3월 23일 성명을 통해, 해협 통과에 대한 전쟁 보험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88%의 로이즈 보험사가 인수 의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험이 "존재한다"는 뜻이었지, "배가 다닌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LMA는 같은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박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보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장과 선주가 승무원과 선박의 안전 위험을 너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선주 해리 바피아스(Harry Vafias)의 말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그의 가문은 유조선, 벌크선, LPG 운반선 약 100척을 소유하거나 관리합니다. 그는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보험도 없고, 아무도 그걸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격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보험 없이 그 짓을 한다면 미친 사람이죠."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전쟁 전에는 하루 약 138척의 화물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3월 7일, 해협을 통과한 상업 선박은 단 1척이었고, 유조선은 0척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추적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25일까지 25일간 해협을 통과한 선박 총수는 142척이었습니다. 2025년 같은 기간에는 2,652척이 통과했습니다. 94.6%가 감소한 것입니다. 전쟁 전의 하루 통행량을 25일에 걸쳐 간신히 채운 셈입니다.

셋째, 이번에는 이란이 해협을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다시 열었습니다.

이란은 전체 선박을 막되, 일부 선박에 한해서 통과를 허용하는 선별적 통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기존에 선박들이 쓰던 해협 중앙의 양방향 항로 대신, 이란 영해 안쪽,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습니다. 이 통로는 이란 본토에서 불과 20마일 거리, 이란 해군의 주력 기지가 있는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바로 앞입니다.

통과 절차는 이렇습니다. 선박 운항사는 혁명수비대와 연결된 중개인에게 선박의 국제해사기구(IMO) 번호, 화물 목록, 최종 목적지, 선원 명단, 소유주 정보를 제출합니다. 혁명수비대가 이를 검토합니다. 제재 대상 여부, 화물 내용, 지정학적 성격까지 따집니다. 승인이 떨어지면 인가 코드와 항로 지시가 나옵니다. 선박이 해협에 접근하면 혁명수비대가 초단파(VHF) 무선으로 인가 코드를 확인합니다. 확인이 되면 이란 호위정이 나와 라라크 섬 주변의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동안 배를 안내합니다. 인가 코드가 없으면 통과가 거부됩니다. 3월 중순,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는 컨테이너선 셀렌(Selen)호가 "법적 절차 미준수와 허가 부재"로 되돌려 보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추적에 따르면, 3월 13일부터 25일까지 이 혁명수비대 통제 항로를 통과한 선박은 26척이었습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이집트, 한국 선적의 선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소유 유조선 브라이트 골드(Bright Gold)호가 3월 23일 이 항로를 지나갔습니다. 인도의 가스 운반선 2척과 인도행 사우디 유조선 1척도 통과를 허가받았습니다. 파키스탄 유조선은 3월 16일에 이란의 허가를 받아 통과했습니다. 3월 26일에는 말레이시아가 자국 선박의 통과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통행료가 있었습니다.

이란 의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는 영국 기반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이란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에는 비용이 듭니다. 당연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합니다." 금액은 건당 200만 달러, 약 30억 원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에 따르면, 최소 2척의 선박이 이 통행료를 중국 위안화로 결제했습니다. 결제는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했고, 이란 당국에 위안화로 납부했습니다.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에 따르면, 중국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의 3월 거래량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란 의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원 모함마드레자 레자이 쿠치(Mohammadreza Rezaei Kouchi)는 혁명수비대 산하 통신사 파르스(Fars)와 타스님(Tasnim)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를 공식 법제화하고, 통행료 징수를 위한 법적 틀을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군사적 봉쇄는 전시 행위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사라집니다. 그런데 법률은 다릅니다. 이란 의회가 국내법으로 해협에 대한 주권과 통행료 징수를 규정하면, 휴전이나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도 그 법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란의 5개 종전 조건 중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인정"이었습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은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44조는 해협 연안국이 통과통항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이란은 1982년에 이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이 점을 근거로, 자국이 이 협약의 통과통항 규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유엔 해양법 협약에 대한 침략이자 위반"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캠벨 대학교의 해양사학자 살 메르코글리아노(Sal Mercoglian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제법 어디에도 톨게이트를 세우고 선박을 뜯어먹으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러나 법적 논쟁은 법적 논쟁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해협을 물리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란이었습니다. 미 해군이 아무리 강해도, 이란의 1,00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 산악 지형에 숨겨진 이동식 대함 미사일, 소형 쾌속정 함대, 기뢰 부설 능력을 모두 제압하고 상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퇴역 미 육군 대령 리처드 앨런 윌리엄스(Richard Allen Williams)는 라디오 자유유럽(RFE/RL)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를 군사적으로 재개방하고 유지하는 쉬운 방법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평가도 냉정했습니다. 가장 낙관적인 호송 시나리오에서도 해협 통행량은 정상의 10% 수준에 그칠 것이며, 600척 이상의 적체 선박을 해소하는 데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Fatih Birol)은 이번 사태를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루 약 1,500만 배럴의 원유와 500만 배럴의 석유 제품이 페르시아만 안에 갇혔습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저장 탱크가 차오르면서 생산을 줄여야 했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8일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이후 126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전쟁 전 73달러 수준에서 40% 이상 오른 것입니다.

1973년에는 공급의 6%가 빠졌을 뿐인데 유가가 네 배 뛰었습니다. 1980년대 탱커전에서는 해협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습니다. 2026년에는 세계 석유 공급의 20%가 차단되었고, 해협 통행량이 95% 감소했으며, 대체 경로의 총용량은 빠져나간 물량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과거의 위기들이 시스템 안에서의 발작이었다면, 2026년 3월의 호르무즈 해협은 시스템 자체의 숨통을 조이는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은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호르무즈 해협 고지도 (18세기)





제3부 해협이 닫히다




제9장 보험이 먼저 항복했다

9.1 IRGC의 봉쇄 선언

2026년 3월 2일 월요일, 이란 국영 텔레비전 IRINN의 황금 시간대 뉴스.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에브라힘 자바리(Ebrahim Jabari),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총사령관의 수석 고문이었습니다. 그는 군복 차림이었습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한 마디가 나왔습니다.

"해협은 폐쇄되었다. 통과를 시도하면 혁명수비대와 해군이 그 배를 불태울 것이다."

이 선언은 이란이 과거에 되풀이해 온 수사적 위협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과의 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국제 제재가 강화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끌어들였습니다. 소형 고속정으로 유조선의 항로를 방해하거나, 익명의 대리 세력을 내세워 선박에 흡착 기뢰(Limpet mine)를 붙이는 식이었습니다.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전술.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을 만큼의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피로감을 주는 방식입니다. 2019년 6월 오만만에서 일본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호와 노르웨이 유조선 프론트 알테어호가 피격됐을 때도 이란은 공식적으로 관여를 부인했습니다. 모호함이 곧 방패였습니다.

자바리의 선언은 그 방패를 내던진 것이었습니다. "통과를 시도하면 불태우겠다." 모호함은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명백한 전쟁 행위(Act of War)의 선포뿐이었습니다.

선언에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틀 전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개시했습니다. B-2 스텔스 폭격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해상 발사 정밀유도탄이 이란 전역의 핵 시설, IRGC 사령부, 방공망, 탄도미사일 기지를 동시에 타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이란 건국 이래 최악의 군사적 충격이었습니다. 체제의 상징이 사라진 혼란 속에서 IRGC가 꺼낸 보복 카드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였습니다.

자바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IRGC의 군사 및 비대칭 전력을 총괄하는 하탐 알 안비아(Khatam al-Anbiya) 본부의 대변인이 알자지라를 포함한 복수의 매체에 출연하여 한층 구체적인 경고를 내놓았습니다. "단 1리터의 석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및 그 동맹국과 연관된 모든 선박을 합법적인 군사 타격 목표로 간주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당신들은 인위적으로 유가를 낮출 수 없을 것이다. 배럴당 200달러의 석유를 기대하라."

선언과 경고만이 아니었습니다. IRGC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폭격 당일인 2월 28일 밤부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상선의 무전기에는 VHF(초단파) 경고 방송이 반복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선박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 영국 해군의 해상무역작전센터(UKMTO, UK Maritime Trade Operations)가 이 방송을 확인하고,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 북아라비아해 전역에 걸친 대규모 군사 활동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물리적 현실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미 해군 5함대의 정찰 자산과 상업 위성 사진은 이란 남부 연안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했습니다. 오만의 무산담 반도와 마주 보는 이란의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해군 기지와 자스크(Jask) 항구에서 수십 척의 무장 고속정이 해협의 주요 길목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고속정들은 크기가 작았습니다. 대신 다연장 로켓, 대함 미사일, 자폭용 폭약을 싣고 있었습니다.

해저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가디르(Ghadir)급과 파테(Fateh)급 소형 잠수함이 해협의 얕은 수역으로 진수되었습니다. 이 잠수함들이 살포한 것은 구시대적인 접촉식 기뢰가 아니었습니다. 특정 선박의 자기장과 음향 신호를 인식하여 목표물이 위를 지나갈 때 폭발하는 지능형 기뢰(Smart mine)였습니다. 3월 10일, 미국 군사 정보 당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란에 기뢰 제거를 요구했고, 미군은 이란의 기뢰 부설함 16척을 파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산악 지대에는 지상 화력이 배치되었습니다.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낙하하는 칼리지 파르스(Khalij Fars) 대함 탄도미사일(ASBM, Anti-Ship Ballistic Missile) 포대가 전투 위치에 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파괴력을 입증한 샤헤드(Shahed) 계열 자폭 드론 수백 대가 발사대에 장착되었습니다. 폭 34킬로미터, 실질 항로 폭 3.2킬로미터의 좁은 회랑은 다층적 살상 구역으로 바뀌었습니다.

IRGC는 선언 다음 날, 해협 입구로 접근하던 그리스 선적의 빈 유조선 근처 해상에 지대함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미사일은 선박에서 1해리도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꽂혔습니다. 거대한 물기둥이 솟았습니다. 오발이 아니었습니다. 레이더가 정확히 목표를 조준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선박을 격침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한 경고 사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피가 흘렀습니다.

3월 1일, 오만 무산담 반도의 하사브(Khasab) 항구 북쪽 약 5해리 해상에서 팔라우 선적의 유조선 스카일라이트(Skylight)호가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피격되었습니다. 선미 부근의 기관실과 거주 구역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거대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20명의 선원 가운데 인도인 선원 4명이 부상했습니다. 오만 해양안전센터는 승선원 전원을 대피시켰다고 확인했습니다. 위성 추적 데이터 분석 기업 윈드워드(Windward)에 따르면, 스카일라이트호 자체가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 대상 선박으로, 이란산 석유를 밀수출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의 일부였습니다. 이란이 자기편 선박마저 공격한 것입니다. 윈드워드는 이를 "정밀 타격이 아니라 구역 봉쇄(Area denial)를 위한 무차별적 위협"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누구의 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바다를 지나는 것 자체가 사격의 대상이었습니다.

같은 날, 무스카트 북쪽 약 52해리 해상에서 마셜아일랜드 선적의 유조선 MKD 비욤(MKD Vyom)호가 폭약을 실은 무인 드론 보트에 타격당했습니다. 기관실에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고, 인도인 선원 1명이 사망했습니다. 선박 관리사인 V.Ships Asia는 성명을 통해 사망 사실을 확인하면서 유족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뭄바이 주재 인도 대사관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1명의 승선원은 파나마 선적 MV SAND호로 대피했습니다.

3월 2일에는 미국 선적의 스테나 임페러티브(Stena Imperative)호가 바레인 항구에 정박한 상태에서 두 차례 피격당했습니다. 항만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습니다. 이란과 연계된 아테 노바(Athe Nova)호는 IRGC의 허가 없이 해협을 통과하려다 드론 2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IRGC 산하 타스님 통신은 이 배가 "불법 통과를 시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브롤터 선적의 상업 유조선 허큘리스 스타(Hercules Star)호도 UAE 연안에서 피격이 확인되었습니다.

IRGC의 공격 범위는 해협의 21마일 병목 구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3월 4일 밤 10시 40분(UTC), 해협에서 약 800킬로미터 떨어진 페르시아만 최북단, 쿠웨이트의 무바라크 알 카비르(Mubarak Al Kabeer) 항구 인근에 정박해 있던 바하마 선적의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소난골 나미베(Sonangol Namibe)호가 폭발에 휩싸였습니다. 158,425재화중량톤(DWT)에 길이 273미터인 이 배의 좌현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고, 선장은 소형 선박이 현장을 이탈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란제 자폭 무인정(USV, Unmanned Surface Vessel)이었습니다. 선체에 구멍이 뚫렸고, 밸러스트 탱크에 물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UKMTO는 화물 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되어 환경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배는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Sonangol) 소유로, 이라크 국영 석유 판매기관 SOMO와의 계약에 따라 이라크산 연료 8만 톤을 싣기 위해 대기 중이었습니다. 승선원은 무사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페르시아만 어디든 타격할 수 있다는 것.

3월 8일까지 UKMTO가 확인한 해상 공격은 10건이었습니다. 3월 12일까지 21건으로 늘었습니다. 5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격당한 선박의 국적과 소유 관계에는 일관된 패턴이 없었습니다. 이란 연계 제재 대상 유조선(스카일라이트), 서방 상업 유조선(허큘리스 스타), 중립국 선적의 독립 유조선(MKD 비욤), 러시아 무역과 연결된 혼합 소유 선박(시 라 도나)까지. 윈드워드의 분석은 명확했습니다. "소속에 따른 정밀 타격이 아니라, 상업 해운 자체를 억제하기 위한 구역 봉쇄 효과."

이란은 수백 척의 군함을 도열시키는 재래식 해상 봉쇄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선박을 잔혹하게 파괴하여 극도의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군함이 해협을 막은 것이 아닙니다. 공포가 해협을 막았습니다.

각국의 정상들은 심야에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해군 대장은 3월 3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아라비아만,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에서 항행 중인 이란 군함은 단 한 척도 없다. 최소 17척이 파괴되었다." 미군은 이란 해군을 무력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해협은 닫혀 있었습니다. 이란의 해군력이 해협을 봉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드론 보트 몇 척, 지능형 기뢰 몇 개, 해안 산악에 숨겨진 미사일 포대 몇 곳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바다 위의 불타는 유조선이 아니라, 런던 시티의 보험 시장이었습니다.

9.2 전쟁 위험 보험의 철회

현대 해상 무역의 기저에는 보이지 않는 기반 시설이 있습니다. 강철도, 연료도 아닙니다. 보험입니다.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 한 척을 건조하는 데는 1억 2천만 달러에서 1억 5천만 달러가 듭니다. 이 배에 가득 실린 원유의 가치는 국제 유가에 따라 1억 달러에서 2억 달러를 넘깁니다. 선박과 화물을 합치면 단 한 번의 항해에 움직이는 자산이 최소 3억 달러, 한화로 약 4천억 원에 이릅니다. 만약 이 배가 피격되어 수십만 톤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다면, 환경 정화 비용과 피해 보상금은 그 몇 배에 달합니다. 보험 없이 이 규모의 자산을 바다에 내보내는 해운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상 보험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체보험(Hull insurance)은 배 자체의 물리적 손상을 보장합니다. 화물보험(Cargo insurance)은 실려 있는 원유나 LNG의 손실을 보장합니다. 선주 상호 책임 보험(P&I, Protection and Indemnity)은 제3자 배상 책임, 환경 오염 피해, 선원 사상을 보장합니다. 이 세 겹의 보험이 온전해야 배가 움직입니다. 어느 한 겹이라도 무너지면 배는 멈춥니다.

이 보험 체계의 심장부는 런던에 있습니다.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라임 스트리트 1번지, 로이즈(Lloyd's of London). 1688년 에드워드 로이즈의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된 이 보험 시장은 336년 동안 세계 해상 무역의 위험을 인수해 왔습니다. 로이즈 산하에 합동전쟁위원회(JWC, Joint War Committee)라는 협의체가 있습니다. 로이즈 시장과 런던 국제보험협회(IUA)의 언더라이터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전 세계 바다를 모니터링하며 전쟁, 테러, 해적 등으로 선박이 파괴될 위험이 높은 해역을 '위험 고지 구역(Listed Areas)'으로 지정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중동 해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위험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험 구역에 들어가는 선박은 연간 기본 보험과 별도로 '추가 할증료(AP, Additional Premium)'를 내야 합니다. 이것을 전쟁 위험 할증료(WRP, War Risk Premium)라고 부릅니다. 평시에 이 할증료는 선박 가액의 0.01%에서 0.05% 수준이었습니다. 1억 5천만 달러짜리 VLCC 기준으로 1만 5천 달러에서 7만 5천 달러. 유조선 한 번 운항의 운임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비용이었습니다.

2월 28일 에픽 퓨리 작전이 개시되고, IRGC가 VHF 경고 방송을 시작한 그 날 밤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3월 1일 월요일 아침, 주말을 보내고 책상으로 돌아온 런던의 언더라이터들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할증료를 즉시 올렸습니다.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에 따르면, 3월 2일 기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의 전쟁 위험 할증료는 선박 가액의 1%까지 치솟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기존의 20배에서 100배로 뛴 것입니다. 1억 5천만 달러짜리 VLCC 기준으로 150만 달러.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에는 훨씬 높은 요율이 적용되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는 이들 선박에 대한 할증료가 2.5%에서 5%까지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1억 5천만 달러짜리 배가 해협을 한 번 통과하는 데 375만 달러에서 750만 달러를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3월 첫째 주가 지나면서 할증료는 더 올랐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요율은 선박 가액의 10%까지 치솟았습니다. 1억 3800만 달러 가치의 5년 된 VLCC가 해협을 한 번 통과하는 데 1천만 달러에서 1,400만 달러의 보험료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유조선이 원유를 운송해서 얻는 운임 수익을 아득히 초과하는 금액입니다. 배를 띄우는 순간 수백만 달러의 적자가 확정되는 구조.

할증료 폭등보다 치명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3월 2일이었습니다. 국제P&I클럽그룹(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s)의 주요 회원사들이 일제히 움직였습니다. 가드(Gard), 스쿨드(Skuld),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 런던 P&I 클럽, 아메리칸 클럽. 이들은 이란 해역, 페르시아만, 인접 수역,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전쟁 위험 보장을 취소한다는 통지를 발송했습니다. 통지서에 명시된 효력 발생일은 3월 5일 자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정확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로이즈 시장협회(LMA, Lloyd's Market Association)는 3월 23일자 공식 성명에서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쟁 위험 보험이 취소되었거나 가입이 불가능하여 선박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전쟁 위험 보험은 현재도 로이즈와 런던 시장에서 가입할 수 있습니다." LM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요 로이즈 해상전쟁보험 참여사의 88%가 미국 및 영국 연계 선박에 대한 선체 전쟁 위험 인수 의향을 유지하고 있었고, 90% 이상이 화물 전쟁 위험 인수 의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보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험료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었습니다. 불규칙전(Irregular warfare) 연구기관은 이 현상을 세 단계로 분석했습니다. 1단계: 할증료가 급등합니다. 비용이 올라가지만 운항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호르무즈 할증료는 선박 가액의 0.2%에서 1%로 뛰었고, VLCC 한 항차당 약 80만 달러가 추가되었습니다. 2단계: 기존 보장이 만료되고, 갱신 조건이 가혹해집니다. P&I 클럽들이 72시간 전 취소 통지를 발송하면, 선주는 극단적으로 인상된 요율로 재협상해야 합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확인에 따르면, 보장이 완전히 철회된 것이 아니라 연간 2만 5천 달러짜리 보장이 주당 3만 달러로 대체된 것이었습니다. 실질적 효과는 동일했습니다. 3단계: 이 비용이 해운사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 보험이 존재하더라도 아무도 가입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3월 5일 이후 나타났습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단말기를 통해 P&I 클럽의 전쟁 위험 보장 취소 소식이 전파되자, 전 세계 해운사 본사의 통제실에서는 일제히 다급한 무선 통신이 쏟아졌습니다. 덴마크의 머스크(Maersk), 독일의 하파그로이드(Hapag-Lloyd), 프랑스의 CMA CGM, 스위스-이탈리아의 MSC, 중국의 코스코(COSCO), 한국의 HMM. 세계 6대 컨테이너 선사가 모두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중단했습니다.

머스크는 3월 1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추가 통지가 있을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모든 선박 통과를 중단합니다. 아라비아만 항구에 기항하는 서비스에 지연, 경로 변경, 일정 조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파그로이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관련 당국에 의한 호르무즈 해협의 공식 폐쇄와 현 지역 안보 상황의 악화로 인해, 추가 통지가 있을 때까지 모든 선박의 해협 통과를 중단합니다. 이 조치는 재량적 결정이 아니라 현 조건과 규제 제한에 대한 필수적 대응입니다." CMA CGM은 페르시아만 내에 있거나 동 지역으로 향하는 모든 자사 선박에 "즉시 대피(Take shelter)" 명령을 내렸습니다. MSC는 모든 중동 행 화물에 대한 신규 예약 접수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하파그로이드는 3월 2일부터 상부 걸프, 아라비아만, 페르시아만 발착 화물에 대한 전쟁 위험 할증금(War Risk Surcharge)을 도입했습니다. 컨테이너 1개당 최대 3,500달러. 이 비용은 고스란히 화주에게 전가됩니다.

보험의 철회는 보험 시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해운 노동 시장으로 즉각 전이되었습니다. JWC가 해당 해역을 고위험 교전 구역으로 분류함에 따라, 선원들에게 위험 수당(Hazard pay)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BIMCO(발틱국제해사위원회)의 표준 전쟁 위험 약관(CONWARTIME)에 따르면, 선장은 승선원과 선박에 대한 위험이 '너무 높다(Too high)'고 판단할 경우 페르시아만 진입 명령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선원들의 합법적 승선 거부권(Right of refusal)이 발동된 것입니다. 해운사가 아무리 많은 돈을 제시해도, 민간인 선원을 교전 구역으로 강제 투입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리스의 선주 해리 바피아스(Harry Vafias)는 약 100척의 유조선, 벌크선, LPG 운반선을 운영하는 가문의 대표입니다. 로이즈 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현재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한 보험이 없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피격될 확률이 너무 높다. 보험 없이 그 짓을 하려면 미친 사람이어야 한다."

이란은 거대한 해군 함대를 동원한 전통적 해상 봉쇄를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상선을 타격하고, 기뢰를 뿌리고, TV에 나와 선언을 했습니다. 봉쇄를 최종적으로 완성해 준 것은 런던 시티의 보험 계리사(Actuary)들의 계산기였습니다. 미사일보다 스프레드시트가 먼저 해협의 숨통을 끊었습니다.

물리적 봉쇄가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도 전에, 숫자와 계약으로 이루어진 경제적 봉쇄가 호르무즈 해협을 질식시켰습니다. 불규칙전 연구기관의 분석은 이 사태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다음 번 초크포인트는 기뢰나 미사일이 아니라, 언더라이터의 요율 재산정 통지서에 의해 폐쇄될 수 있다. 보장이 기술적으로 존재하되, 그 어떤 선주도 지불하지 않을 가격으로."

9.3 3월 1일, AIS 화면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규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선박은 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를 켜두어야 합니다. 이 장치는 선박의 위치, 침로, 속력 등을 수초 간격으로 발신합니다.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이나 클플러(Kpler) 같은 선박 추적 서비스는 이 신호를 수집하여 세계 해운의 흐름을 실시간 지도 위에 표시합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을 비추는 이 디지털 지도 위에는 평소 원유를 싣기 위해 들어가는 배와 원유를 가득 싣고 나오는 배들이 빽빽하게 얽혀 거대한 띠를 형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루 수백 척. 이 항적은 매일 2천만 배럴의 석유가 세계 경제의 동맥을 타고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명 징후(Vital sign)였습니다.

2월 28일 금요일 밤, 에픽 퓨리 작전이 개시된 직후부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페르시아만 내부에 있던 유조선들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해협을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2월 28일 하루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16척이었습니다. 그 전날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3월 1일 토요일, 통과 선박 수가 72척으로 줄었습니다. 아직 전례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감소세가 뚜렷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의 데이터입니다.

그날 밤이 지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3월 2일 자정 직후, AIS 화면에서 유조선 신호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호르무즈 위기 항목은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3월 2일 자정 직후, 해협 내에서 AIS 신호를 송출하는 유조선이 없었다(No tankers in the strait broadcast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signals)." 다만 같은 항목은 "데이터가 불완전하고 위성 항법 장치에 기반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3월 2일 IRGC의 공식 봉쇄 선언이 TV를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된 뒤,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트래픽은 80% 이상 급감했습니다. 윈드워드의 해상 정보 일일 보고서에 따르면, 3월 1일에서 2일 사이 미국, 영국, EU 선적의 선박은 단 한 척도 해협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제한적 통행은 건화물선(Dry bulk carrier)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화면은 더 비어갔습니다.

3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5척이었습니다. 3월 8일에는 2척으로 줄었습니다. 둘 다 이란 선적이었고, 유입(Inbound) 통과는 없었습니다. 7일 평균 5.88척이던 통과량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곧 사라졌습니다.

3월 14일, 윈드워드의 일일 보고서는 그날의 AIS 확인 통과량을 기록했습니다. 양방향 모두 제로. 이전 날 대비 100% 감소. 7일 평균 2.57척 대비 완전한 공백. 보고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적대 행위가 시작된 이래 상업 해운의 최초의 가시적 정지(The first visible halt in commercial shipping through the chokepoint since hostilities began)."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의 집계에 따르면, 전쟁 발발부터 3월 중순까지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은 총 21척에 불과했습니다. 개전 전에는 하루에 100척 이상이 지나던 곳입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3월 초부터 3월 셋째 주까지의 기간에 1만 재화중량톤 이상 화물선의 해협 통과 횟수를 총 111회로 집계했습니다. 이 가운데 동향(Eastbound, 페르시아만에서 나오는 방향) 78척, 서향(Westbound, 들어가는 방향) 33척이었고, 서향 통과의 대부분은 제재 대상이거나 그림자 선단 소속이었습니다.

통과 선박의 국적별로 보면 이란 26%, 그리스 17%, 중국 9%였습니다. 전체 통과량의 60% 이상이 이란과 연계된 선박(이란 소유, 이란 선적, 제재 대상, 그림자 선단, 이란 기항선)이거나 이란의 허가를 받고 통과한 선박이었습니다. 나머지는 AIS를 끄고 어둠 속에서 통과를 시도한 이른바 '다크 트랜짓(Dark transit)' 선박들이었습니다.

윈드워드는 3월 중순 기준으로 해협 부근에서 AIS를 끈 채 활동하는 290미터 이상의 대형 '다크 십(Dark ship)' 8척을 위성으로 탐지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척은 미국 제재 대상 선박으로, 3월 16일 UAE 호르 팍칸(Khor Fakkan) 항구 부근에서 관측된 뒤 AIS를 끄고 사라졌습니다. 3월 4일경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아이마 터미널에서 약 10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유조선은 AIS를 끄고 해협을 통과한 뒤 5일 만인 3월 9일 오전 7시(UTC)에 신호를 다시 켰습니다. 극소수의 모험적 선주들이 극도로 높아진 운임료를 노리고 암흑 속의 도박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해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 선 배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CNBC의 보도에 따르면, 약 400척의 선박이 오만만(Gulf of Oman)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스플래시247(Splash247)은 해협 양쪽에 고립된 선원이 2만 명을 넘는다고 보도했습니다. UAE 동부 연안의 푸자이라(Fujairah) 항구 앞바다에는 진입을 포기한 채 닻을 내린 유조선, LNG 운반선, 컨테이너선이 바다를 뒤덮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페르시아만 내부에 갇힌 컨테이너선은 약 140척, 적재 컨테이너 46만에서 47만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컨테이너 환산 단위)에 달했습니다. MSC 소속 15척(합산 10만 9천 TEU), 머스크 소속 14척(7만 TEU), 코스코 소속 대형선 2척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이 막대한 연료비와 지연 손해금을 태우며 바다 위에 발이 묶인 선단. 수천억 달러어치의 자산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드론이나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서 떠 있었습니다. 카타르는 3월 5일 LNG 수출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습니다. 전 세계 LNG 공급의 20%가 한순간에 증발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LNG 현물 운임은 하루 3만 달러에서 30만 달러로, 열 배 뛰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멈춘 그 효과는 디지털 화면을 넘어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을 타고 즉각 전이되었습니다. 원유는 채굴되어 유조선에 실린 뒤 약 한 달의 항해를 거쳐 아시아의 정유 시설에 도착합니다. 파이프라인의 끝에서 석유가 계속 흘러나오려면, 해협이라는 입구에 새로운 유조선이 끊임없이 들어가야 합니다. 3월 초의 텅 빈 AIS 화면은 한 달 뒤 아시아 정유 공장의 저장 탱크가 바닥날 것이라는 예정표였습니다.

한국의 울산과 여수, 일본의 가와사키, 중국의 닝보에 위치한 정유 공장들의 원유 도입 부서 전화기에 불이 났습니다. 트레이더들은 미국산 셰일 오일, 북해산 브렌트유, 서아프리카산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을 뒤졌습니다. 세계 해상 원유 무역의 27%를 담당하던 공급망이 통째로 사라진 상황에서 대체 물량을 구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국제 유가가 반응했습니다. 개전 전 배럴당 약 65달러였던 브렌트유는 3월 8일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22년 이후 4년 만이었습니다. 개전 전 대비 약 40% 상승. 그리고 유가는 계속 올라 배럴당 126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이후, 그리고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차질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자국 석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면서 비축유 방출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카야 칼라스는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와 가스의 85%가 아시아 국가들로 향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2일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하여 해협을 통과시키겠다고 선언했고, 3월 15일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이 직접 군사적으로 항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독일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16개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영국, 호주, 한국, 일본이 트럼프의 해군 연합 참여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를 "대단히 어리석은 실수(A very foolish mistake)"라고 비난하며 "미국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응수했습니다. 나중에는 NATO를 "겁쟁이"라고 불렀고, "미국 없는 NATO는 종이 호랑이"라고 조롱했습니다.

3월 19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기 위한 항공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란 해안을 따라 배치된 지하 미사일 격납고에 GBU-72 5천 파운드 관통폭탄을 투하했습니다. 2,500명의 해병대 추가 병력이 중동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이 수륙양용 상륙 훈련을 받은 부대라는 사실은 이란 최대의 석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 섬(Kharg Island) 점령 가능성에 대한 추측을 낳았습니다. 3월 26일, 이스라엘은 호르무즈 봉쇄를 지휘하던 IRGC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를 공습으로 사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카츠는 탕시리가 "해협 봉쇄와 폭격의 테러 행위에 직접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탕시리가 사살된 다음 날인 3월 27일, IRGC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봉쇄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그 동맹국의 항구를 오가는 모든 선박의 해협 통과를 금지한다." 같은 날, 중국 선적의 선박 2척이 해협 진입을 시도하다 이란에 의해 저지당했습니다. 태국 선적의 벌크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호는 케심 섬(Qeshm Island)에 좌초했습니다.

이란의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는 3월 26일 성명을 통해, 중국, 러시아, 인도, 이라크, 파키스탄 5개국의 선박에 해협 통과를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선박에 대해서도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과의 협의를 거쳐 통과를 승인했습니다. 3월 27일에는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도주의적 목적의 화물과 비료 수송선의 통과를 허용했습니다. 봄 파종 시기에 비료 공급이 끊기면 전 세계 식량 생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조치였습니다.

한편 인도는 독자적으로 움직였습니다. 3월 14일부터 24일 사이, 인도 선적의 LPG 운반선 5척이 인도 해군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뒤 오만만에서 합류하여 인도로 향했습니다. 작전명 산칼프(Operation Sankalp). 3월 15일, 파키스탄 선적의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카라치(Karachi)호가 아부다비에서 적재한 원유를 싣고 AIS를 켠 상태로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마린트래픽이 확인한 바로는, 개전 이후 비이란 화물 선박이 AIS를 켜고 해협을 통과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리스의 다이나콤 탱커스 매니지먼트가 운영하는 라이베리아 선적의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셴롱(Shenlong)호도 약 100만 배럴의 사우디 원유를 싣고 3월 8일경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 뭄바이에 도착했습니다.

이 개별적인 통과 사례들은 해협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란의 허가를 받았거나, 이란과 우호 관계에 있는 국가의 선박이거나, 군함의 호위를 받았거나, AIS를 끄고 어둠 속에서 도박을 감행한 극소수의 예외적 통과였습니다. 대다수의 상업 선박, 서방 국가 연계 선박, 보험이 없는 선박에게 해협은 닫혀 있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의 집계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연계 선박의 해협 통과는 총 11척이었습니다. 대부분 잡화선이었고, 유조선은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은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원유와 카타르산 LNG 운반선의 안전 통과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3월 12일, 중동 걸프에서 제벨 알리(Jebel Ali)로 향하던 한 중국 소유 선박이 AIS에 "China Owner"를 방송하며 통과했다가 파편에 맞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후 중국 선박의 통과도 위축되었습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와 보험사 처브(Chubb)가 200억 달러 규모의 재보험 지원 프로그램을 출범시켜 해협 통과 선박의 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DFC가 "모든 국가의 선박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의 정치적 위험 보험과 보증을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무디스(Moody's) 신용평가사는 이 프로그램이 배상 책임 보장(Liability cover)을 포함하지 않아 해협의 해운 봉쇄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영국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는 로이즈 의장 찰스 록스버러와 만나 해상 보험 지원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모든 움직임에도 해협의 AIS 화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로뉴스가 3월 25일에서 26일 사이 마린트래픽 데이터로 제작한 타임랩스 영상은 해협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유조선(빨간색)과 화물선(초록색) 몇 척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출퇴근 시간대의 도심 도로처럼 빽빽하던 항적이, 텅 빈 새벽의 시골 국도처럼 한산했습니다.

컬럼비아대학교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의 보고서는 3월 11일 기준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이 핵심 항로는 유조선 통행에 사실상 폐쇄되었으며, 세계 원유, 석유제품, LNG 공급의 거의 5분의 1이 고립되어 있다(This vital passage is effectively closed to tanker traffic, stranding almost a fifth of world supplies of crude oil, oil products, and liquefied natural gas)."

텅 빈 AIS 화면. 매일 2천만 배럴의 석유가 흐르던 21마일의 수로가 멈추고, 수백 척의 배가 바다 위에 고립되고, 수만 명의 선원이 갇히고, 보험이 항복하고, 유가가 126달러를 찍고,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 끊어진 2026년 3월의 기록입니다.

해협은 물리적으로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것도,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 것도 아닙니다. 수심은 여전히 60미터이고, 폭은 여전히 34킬로미터입니다. 물은 여전히 흐릅니다. 배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드론 보트 몇 척, 지능형 기뢰 몇 개, TV 선언 한 번, 보험 요율 재산정 통지서 몇 장. 그것으로 세계 석유 공급의 5분의 1이 멈추었습니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현대 세계 경제의 에너지 공급망은 거대해 보이지만, 그 거대함을 떠받치는 기둥은 놀라울 만큼 가늘다는 것. 21마일의 수로, 보험 계약서의 약관 한 줄, 그리고 선주와 선원의 공포. 이 세 가지가 무너지면 나머지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3월 1일 자정 이후 AIS 화면에서 사라진 선박 아이콘들. 그 공백은 배가 없다는 사실만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현대 문명이 석유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 그 의존의 물리적 경로가 얼마나 좁은지, 그 좁은 경로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한 장의 화면에 압축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런던 로이즈 보험 빌딩 내부





제10장 이란의 검문소

10.1 라라크 섬 북쪽의 새 항로

2026년 3월 16일, 런던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에 본사를 둔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의 해상교통 분석팀은 한 가지 이상한 패턴을 포착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AIS(선박자동식별장치,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신호가 하나둘 다시 찍히기 시작했는데, 그 궤적이 기존 항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유조선과 LNG 운반선들이 밟아온 길, 국제해사기구(IMO)가 설정한 해상교통분리대(TSS, Traffic Separation Scheme)의 양방향 항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대신 선박들은 이란 본토 해안에 바짝 붙어서, 케슘 섬(Qeshm Island)과 라라크 섬(Larak Island) 사이의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설계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었습니다.

그 규칙을 이해하려면 호르무즈 해협의 지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34킬로미터. 국제적으로 공인된 항로는 이 34킬로미터의 한가운데, 오만 쪽 해역에 치우친 넓고 깊은 수역에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양방향 항로의 폭은 각각 3.2킬로미터이고, 두 항로 사이에 3.2킬로미터의 완충 구역이 놓여 있었습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에 따르면, 이 같은 국제 해협에서는 모든 국가의 선박이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지나갈 수 있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보장됩니다. 해협 양편의 연안국, 즉 이란과 오만은 이 통과를 방해하거나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협약 제44조가 그렇게 못 박고 있습니다.

IRGC는 이 항로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2월 28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기뢰를 부설하고, 대함 미사일 포대를 가동하고, 자폭 드론과 무장 고속정을 풀어놓았습니다. 3월 1일 유조선 스카이라이트(Skylight)호가 오만 카삽(Khasab) 북쪽에서 피격되어 인도인 승무원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습니다. 같은 날 MKD VYOM호는 드론보트(무인 자폭 선박) 공격으로 기관실에 불이 나고 폭발이 일어났으며, 인도인 선원 1명이 사망했습니다. 3월 6일에는 예인선 무사파 2(Mussafah 2)호가 해협 인근에서 피격되어 선원 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공격이었습니다. 3월 11일에는 태국 선적 컨테이너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호가 오만 북쪽 13해리 지점에서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맞아 화재가 발생했고, 오만 해군이 승무원 20명을 구조했습니다. 3월 중순까지 국제해사기구(IMO)가 집계한 피격 상선은 최소 18척이었습니다. 사망자는 7명 이상이었습니다.

보험사들이 전쟁 위험 보험을 철회한 뒤로 이 항로는 사실상 누구도 진입하지 않는 공백 지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해상 운송 톤수의 90퍼센트에 대해 해상 배상 보험을 제공하는 12개 P&I(보호배상, Protection & Indemnity) 클럽 국제 그룹이 3월 5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보험 보장을 전면 철회했습니다. 보험 없는 항해는 곧 선주에게 수억 달러의 자산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이었고, 어떤 합리적 경영자도 감수할 수 없는 도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항로를 버리고, 라라크 섬 북쪽을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USNI 뉴스(USNI News)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기존에 선박들이 오만 해역에 가까운 남쪽 항로를 이용하던 것을 바꿔, 라라크 섬을 돌아가는 새로운 항로를 설정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이 항로를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의 "IRGC 통제 회랑(IRGC-controlled corridor)"이라고 불렀습니다. AP통신은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정상적일 때 선박들은 해협 한가운데의 양방향 항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선박이 라라크 섬 북쪽을 돌아가는 다른 경로를 택하고 있으며, 이것은 선박들을 이란의 영해 안에, 이란 해안에 더 가까이 위치시킨다."

이 새로운 뱃길의 치명적인 특징은 지리 자체에 있었습니다. 라라크 섬 북쪽 수역은 이란 본토와 이란이 요새화한 섬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비좁은 회랑입니다. 기존의 TSS 항로가 오만 영해와 맞닿아 있어 미 해군이나 연합 해상 전력이 감시하고 개입할 여지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 항로는 이란이 명백하게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해 안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미시간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의 인류학 교수 자틴 두아(Jatin Dua)가 USNI 뉴스에 설명한 것처럼, 이 항로는 이란의 영해를 관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박이 이 수역에 들어서는 순간, 국제 해협에서 보장되는 통과통항권은 사라집니다. 이란의 영해에서는 이란이 곧 법이 됩니다.

해상 리스크 분석가 티머 라난(Timer Raanan)은 로이드 리스트 웨비나에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것은 전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전쟁 이전에 교통이 움직이던 방식이 아니며, 이란이 해협 교통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안한 전개입니다."

좌현에는 샤헤드(Shahed) 자폭 드론과 칼리지 파르스(Khalij Fars) 대함 탄도미사일이 도열한 이란 해안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우현에는 IRGC 해군의 쾌속정 전진기지가 벌집처럼 파여 있는 케슘 섬과 라라크 섬이 포진해 있습니다. 선박의 좌우 양쪽 모두가 이란의 화력 사정권 안입니다. 항로의 폭은 가장 넓은 곳도 2킬로미터를 넘기 어려웠고, 흘수(Draft, 선체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20미터에 달하는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이 다니도록 설계된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수심이 불규칙하고, 조류가 거세며,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천해(淺海)입니다. VLCC가 이 좁은 수로를 통과하려면 엔진 출력을 최소로 낮추고,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기어가듯 움직여야 했습니다. 자칫 조타 실수나 기계 결함으로 배가 항로를 수십 미터만 벗어나도 좌초하거나, 이란이 부설한 기뢰밭에 진입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CBS 뉴스는 라라크 섬을 이란의 "톨 부스(toll booth)"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란 해안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이 섬이 이란의 전체 해협 장악의 구체적 초크포인트가 되었다"고. 로이드 리스트는 3월 후반에 라라크 섬을 경유한 통과를 33건 추적했지만, 더 남쪽의 정상 항로를 통한 통과는 단 한 건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지리적 이동이 만들어낸 결과는 군사적이면서 동시에 법적이었습니다. 미 해군 제5함대가 항공모함 전단을 이 해역에 배치하고 있었지만, 이란 영해에 진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미 해군 구축함이 자국 상선을 보호하겠다며 라라크 섬 북쪽 항로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이란의 영해를 무단 침범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자위권 발동의 명분이 생기는 셈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의 확전을 감수해야 하는 도박입니다. 펜타곤의 호르무즈 강제 통과 긴급 계획인 에픽 에스코트 작전(Operation Epic Escort)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지만, IRGC의 고속공격정, 케슘 섬과 아부무사(Abu Musa) 섬에 배치된 해안 대함 미사일과의 직접 교전이라는 확전 위험을 수반했습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분석은 이 상황의 역설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미국의 전쟁 기획자들은 수십 년간 이란의 해협 봉쇄에 대비해 왔는데, 막상 해협은 효과적으로 닫혔다는 것입니다. 3월 한 달간의 총 통과 선박 수가 전쟁 전 하루 통과량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쟁 전에는 매일 약 110척의 선박이 해협을 통과했는데, 전쟁 이후에는 하루 10척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3월 1일부터 25일까지 기록된 총 통과 선박 수는 142척이었고, 같은 기간 2025년에는 2,652척이 통과했습니다. 94.6퍼센트의 감소. 해협의 역사적 평균은 24시간에 약 138척입니다. 2026년 3월의 25일간 총 통과량이 평시 하루치에 겨우 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142척 가운데 67퍼센트는 이란과 직접적인 무역 또는 소유 관계가 있는 선박이었고, 3월 후반으로 갈수록 이 비율은 90퍼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나머지는 주로 그리스 소유 또는 연계 선박(15퍼센트)과 중국 선박(10퍼센트)이었습니다. 이란산 원유의 선적은 하루 150만 배럴 이상을 유지했고, 이 가운데 약 100만 배럴이 3월 1일 이후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에너지 분석 업체 보르텍사(Vortexa)는 추정했습니다. 이란산 액화석유가스(LPG)를 실은 초대형 가스 운반선(VLGC) 최소 8척도 3월 이후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해협을 자국의 사유지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지나갈 수 있는지를 이란이 결정하는 구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자유의 바다가 이란의 사설 요금소로 바뀌었습니다.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 대표 이언 브레머(Ian Bremmer)가 소셜미디어에 쓴 것처럼, 해협은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란의 유조선은 여전히 통과하고 있었고, 중국으로 석유를 실어 나르며 이란에 수입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자유의 바다가 허가의 바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허가에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10.2 통과 절차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싶은 선박의 선주사와 운항사는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상대는 IRGC와 연결된 중개인이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가 세 명의 개별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절차는 이렇게 작동했습니다. 선박이 오만만(Gulf of Oman)에서 해협 입구에 접근하기 72시간에서 96시간 전, 운항사는 "IRGC가 공인한 중개인(approved intermediaries)"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이 중개인들은 이란 바깥에서 활동하는 이란 연계 인물들이었습니다. 연락이 닿으면, 운항사는 방대한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제출 서류의 목록은 국경 검문소의 그것을 닮았습니다. 선박의 IMO 번호(국제해사기구가 부여하는 고유 식별 번호), 소유 체계(ownership chain, 실소유주에 이르는 지분 구조), 적재된 화물의 종류와 용량, 화물의 최종 목적지, 그리고 탑승한 모든 승무원의 성명과 국적이 포함된 완전한 명부. 이 모든 데이터가 중개인을 경유하여 IRGC 해군 호르모즈간(Hormozgan) 지방 사령부로 전달됩니다.

IRGC는 이 데이터를 가지고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로이드 리스트는 이 과정을 "지정학적 심사(geopolitical vetting)"라고 불렀습니다. 제재 목록과의 대조, 화물 적합성 검토(석유가 다른 모든 화물보다 우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해당 선박이 미국, 이스라엘, 또는 그들의 서방 동맹국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선박의 소유주, 화물을 구매한 기업, 보험을 제공하는 회사, 선원의 국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이란이 적대국으로 규정한 국가와 관련이 있으면, 통과는 거부되었습니다.

이란 외무부가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에게 보낸 서한은 이 원칙을 외교적 언어로 포장했습니다. 해협은 "비적대적 선박(non-hostile vessels)"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단 "이란의 관할 당국과 조율하여 행동하는" 조건에서만 그렇다고.

실제 거부 사례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IRGC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는 3월 25일 소셜미디어 플랫폼 X(구 트위터)에 직접 글을 올려, 컨테이너선 셀렌(Selen)호가 "법적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허가 없이" 해협을 통과하려 했기 때문에 되돌려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이 수역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이란 해양 당국과 완전한 조율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선언이었습니다. 이틀 뒤인 3월 27일, 이스라엘은 반다르아바스 공습으로 탕시리를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시스템은 그의 죽음 뒤에도 작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3월 27일에는 더 극적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중국 최대 해운사 코스코(COSCO) 소속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두 척, CSCL 인디안 오션(CSCL Indian Ocean)과 CSCL 아크틱 오션(CSCL Arctic Ocean)이 라라크 섬을 돌아 통과하려다가 급격하게 유턴하여 페르시아만 안쪽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웹사이트의 위성 데이터가 이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했습니다. 홍콩 선적의 로터스 라이징(Lotus Rising)호도 전날 같은 섬 앞에서 되돌려졌습니다. 이들은 중국 선적임에도 불구하고 IRGC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IRGC는 이 사건 직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부패한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 있다고 거짓 주장한 뒤, 오늘 아침 세 척의 다국적 컨테이너선이 허가된 선박 교통을 위한 지정 회랑으로 이동했으나, IRGC 해군의 경고 후 되돌려 보내졌다." 그리고 추가 성명이 뒤따랐습니다. "시온주의-미국 적국의 동맹국이자 지지국의 항구를 오가는 모든 선박의 통행은, 어떤 목적지든 어떤 항로든, 금지된다."

심사를 통과한 선박에게는 IRGC가 발급하는 고유한 허가 코드(clearance code)와 항로 지시가 부여되었습니다. 이 코드는 선박의 AIS 단말기와 연동되는 일종의 디지털 통행증이었습니다. 코드를 받은 선박이 라라크 섬 인근 해역에 도달하면, VHF 무전 교신이 시작됩니다. 알자지라(Al Jazeera)의 보도는 이 장면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선박이 해협에 들어서면 IRGC 사령관들이 VHF 라디오를 통해 선박의 허가 코드를 요구하며 소리친다. 선박이 응답하고, 승인되면 이란 쪽에서 보트가 도착하여 라라크 섬 주변의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내내 호위한다." 코드가 일치하지 않거나, 코드 자체가 없는 선박은 통과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절차를 통과한 선박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에 따르면,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이 IRGC "톨 부스(toll booth)" 시스템에 따라 사전 승인된 경로로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총 26척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최소 9척은 라라크 섬을 돌아가는 우회 경로를 통해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었고, AIS 데이터 부재로 우회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선박도 21척 더 있었습니다. 같은 기간 기존의 정상 항로를 통해 AIS 신호를 켠 채 통과한 선박은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3월 15일 이후로 정상 항로의 AIS 통과 기록은 제로였습니다.

별도로, 3월 한 달간 로이드 리스트가 추적한 "암흑 통과(dark transits)", 즉 AIS를 끈 채 해협을 지나간 선박은 46척이었습니다. 국제 제재 대상 선박과 비제재 선박 모두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AIS를 껐습니다. 윈드워드(Windward)는 길이 290미터(950피트)를 넘는 대형 "암흑 선박" 8척이 해협에서 AIS를 끈 채 운항하는 것을 포착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제재 대상 선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루 110척이 자유롭게 오가던 바다가, IRGC의 무장 호위정이 이끄는 몇 척의 선박만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통제 구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과거 자유의 바다였던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통과하기 까다로운 검문소가 되었습니다.

안보 컨설팅 업체 컨트롤 리스크스(Control Risks)는 고객 브리핑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 체계가 개별 외교적 예외를 통해서가 아닌, 이란의 해협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관철하려는 시도인 한, 미국이 이를 오래 묵인할 가능성은 낮다고. "서방 연계 선주와 운항사들은 자발적으로 이란 영해에 선박을 보내지 않을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그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분석가들은 추가로 경고했습니다. 이란의 승인이 안전한 통과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선장과 승무원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은 서류 심사와 코드 확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IRGC의 회색 고속정이 유조선의 좌우현에 바짝 붙어 항해를 강제하는 몇 시간 동안, 선교(船橋, bridge)에서는 극도의 긴장이 흘렀습니다. 이란의 해상 통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물리적 강제력과 심리적 압박이 결합된 권력의 과시였습니다. NBC 뉴스의 한 분석가는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선박의 정보를 확인하고 사실상 톨 부스처럼 행동합니다."

전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절차, 전쟁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굴복. 3월 13일경 톨 부스 경로가 열린 이후 이란의 상선 공격 빈도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마지막 공격은 3월 19일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앞바다에서 해양 예인선 할룰 50(Halul 50)이 피격된 것이었습니다. 공격이 줄어든 이유는 자명했습니다. 이란은 무차별 공격 대신 체계적 통제라는 더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구를 손에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절차의 끝에는 청구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3 건당 200만 달러, 위안화 결제

이란 의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는 영국 소재 페르시아어 위성 방송 이란 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에 출연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로부터 통과료를 받아야 합니다."

의원 모함마드레자 레자에이 쿠치(Mohammadreza Rezaei Kouchi)도 반혁명수비대 계열 통신사 파르스(Fars)와 타스님(Tasnim)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해협의 안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선박과 유조선이 그런 수수료를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통과료의 규모는 선박 1회 통과당 최대 200만 달러(약 28억 원)였습니다.

블룸버그(Bloomberg)가 2026년 3월 24일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일부 상선에 대해 이란이 통과료를 징수하기 시작했으며, 건당 최대 200만 달러가 비공식적으로(ad hoc basis) 요구되고 있다고. 익명을 요청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선박이 실제로 이 금액을 지불했다고. 3월 26일 블룸버그는 후속 보도에서 이란 의회가 이 통과료를 법제화하는 법안 초안을 작업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반관영 파르스 통신이 익명의 의원을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이 법안은 다음 주 확정될 예정이었고, 호르무즈에 대한 이란의 "감독(oversight)"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CNN, NBC, 알자지라, CNBC, 포린 폴리시가 잇따라 후속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로이드 리스트는 확인했습니다. "모든 선박이 직접 통행료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두 척은 지불했으며 그 결제는 위안화로 이루어졌다."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이 해협 통과 대가로 요금을 징수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최초의 고위 관리가 되었습니다. 포린 폴리시는 이 징수 체계를 현대 해양 역사상 국가가 국제 해협에서 일방적으로 통과료를 부과한 첫 번째 사례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숫자가 만들어내는 산술을 따라가 봅니다.

CNN의 계산에 따르면, 평시 호르무즈 해협을 매일 통과하는 원유의 양은 약 2,000만 배럴이고, 이것은 대략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0척에 해당합니다. 유조선 한 척당 200만 달러를 받으면 하루 2,000만 달러. 한 달이면 약 6억 달러(8,500억 원). LNG 운반선까지 포함하면 월 8억 달러 이상이 가능합니다. CNN은 이 수치가 이란의 2024년 월별 석유 수출 수입의 15~20퍼센트에 해당한다고 계산했습니다. 또 다른 출처에 따르면 화물량 기준으로 배럴당 0.50달러에서 1.20달러 수준의 통과료가 협상되었습니다.

이 수치를 다른 것과 나란히 놓으면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서 벌어들이는 통행료 수입은 정상적인 해에 월 7억에서 8억 달러 사이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1869년 개통 이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공 수로이고, 이집트 정부가 정당한 주권을 행사하여 운영하는 시설입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뜯어내려는 금액은 수에즈 운하의 수입에 필적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수에즈는 인공 수로이고 호르무즈는 자연 해협이라는 것, 수에즈는 국제법적으로 통행료 징수가 인정되고 호르무즈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란 반관영 통신 타스님은 한술 더 떴습니다. 평시 하루 약 120척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전제에서, 선박당 200만 달러의 "특별 보안 서비스료"를 징수할 경우 연간 수입이 1,000억 달러(약 150조 원)를 넘길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시의 극도로 제한된 통과 상황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치이지만, 이란이 이 검문소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였습니다.

이란 의회(마즐리스, Majlis) 민사위원회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법안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고, 3월 말이나 4월 초 의회 표결이 예상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이란의 "주권, 지배, 감독(sovereignty, dominance and supervision)"을 해협에 대해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현대 해양 역사상 국제 해협에 대한 최초의 영구적 주권 통행료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포린 폴리시의 분석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수에즈 운하 같은 영구적 현금 창출 장치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미국과의 예비 협상에서 직접 꺼내놓기까지 했습니다. 이란이 종전 조건으로 내건 5개 항목 가운데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인정"이었습니다.

미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의 국제 해양법 교수 제임스 크라스카(James Kraska)는 CNN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과료 부과는 통과통항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국제법상 연안국이 호르무즈 같은 국제 해협에서 요금을 징수할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 제26조와 제44조는 분명합니다.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서는 모든 선박에 통과통항권이 보장되며, 영해 내에서조차 통과 자체에 대한 요금 부과는 금지됩니다. 외국 선박에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에 한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복잡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비준(ratify)은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도 당사국이 아닙니다. 이란은 바로 이 미비준 상태를 자국의 법적 논거의 핵심에 놓았습니다. 비준하지 않은 조약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미국 법률 전문 사이트 로페어(Lawfare)의 2026년 3월 분석은 이 구별이 테헤란의 법적 주장의 중심에 있다고 짚었습니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3월 28일 파리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의 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불법이고, 용납할 수 없으며, 세계에 위험합니다. 세계가 이에 맞설 계획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G7 외무장관들은 "안전하고 통행료 없는 항행의 자유(safe and toll-free freedom of navigation)"를 회복할 "절대적 필요성"을 공동으로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약속은 적대 행위가 종료된 뒤에야 실행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이란의 톨 부스는 도전받지 않는 채 작동을 이어갔습니다. 사우디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Prince Faisal bin Farhan) 왕자는 G7 정상회의에서 유럽과 인도를 상대로 5차례 양자 회담을 가지며 전시 대응 조치의 실행을 압박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0만 달러라는 금액보다 세계 금융 질서를 더 크게 뒤흔든 것은 이 통행료의 결제 통화였습니다.

위안화(Chinese Yuan, RMB). 달러가 아닙니다.

로이드 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모든 선박이 직접 통행료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두 척은 지불했으며 그 결제는 위안화로 이루어졌다." 결제는 중국 측 중개인을 통해 처리되었습니다. 서방이 통제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을 완전히 우회하여, 중국 인민은행 산하의 국경간은행간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을 통해 위안화로 송금되었습니다. 서울경제신문 영문판의 보도도 이를 확인했습니다. "이란은 중국과 인도 같은 우호국 선박만 해협 통과를 허용하고 있으며, 일부 선박으로부터 약 200만 달러의 통과료를 중국 위안화로 징수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결제는 쿤룬은행(Kunlun Bank)을 통해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쿤룬은행은 역사적으로 SWIFT 체계 바깥에서 이란-중국 간 거래를 중개해 온 중국계 은행입니다. 또 다른 보도는 중국이 이란을 위해 구축한 비밀 결제 네트워크 "추신(Chuxin)"을 언급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미국의 제재 감시망을 완전히 벗어나 위안화 결제를 처리할 수 있는 우회 통로였습니다. 2021년 이란과 중국이 체결한 4,000억 달러 규모의 25년 협력 협정은 이 결제 인프라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경제 파트너가 되는 대가로 할인된 가격에 이란산 원유를 공급받기로 했고, 모든 거래는 달러 체계 바깥에서 이루어지기로 했습니다.

이 결제 구조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과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이에서 성립된 합의,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입니다. 사우디는 모든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결제받기로 했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이 합의 이후 52년 동안,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석유는 달러로 거래되었습니다.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했고,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는 미국의 금융 패권을 떠받치는 구조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료를 위안화로만 받겠다고 한 것은, 이 52년 된 구조의 심장부를 겨냥한 행위였습니다.

CIPS의 규모가 이 흐름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CIPS를 통해 처리된 위안화 거래 규모는 245조 달러 상당이었고, 이것은 전년 대비 43퍼센트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전쟁 이전부터 인프라는 이미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은 40개 이상의 중앙은행과 위안화 스왑 라인을 체결해 두고 있었고, 디지털 위안화(e-CNY) 플랫폼 엠브리지(mBridge)를 일부 중동 중앙은행들이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2월 28일부터 3월 15일까지, 1,170만 배럴에서 1,650만 배럴 사이의 이란산 원유가 이란 항구에서 중국 정유소로 이동했습니다. 정상적인 국제 해운 시스템이나 서방 보험, 달러 결제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제재를 피해 운항하는 선박들)을 통해, 그리고 모든 결제는 미국 달러 바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월 한 달간 그림자 선단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2월에는 15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 서방 해운사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200만 달러 상당의 위안화를 환전하여 이란 측 계좌로 송금하는 행위는 미국의 이란 제재법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에 적발되면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달러 금융망에서의 퇴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통과료를 내지 않으면 배는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아시아 타임스(Asia Times)의 분석은 이 상황을 넓은 시야에서 조명했습니다. 달러가 하루아침에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니고, 위안화가 글로벌 기축 통화의 모든 부담을 떠안을 준비가 된 것도 아닙니다. 중국은 여전히 자본 통제를 유지하고 있고, 금융 시장의 개방성과 신뢰도는 미국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국 달러에 대한 불만을 가진 나라들조차 하나의 통화 종속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세는 중요합니다. 러시아는 이미 에너지를 중국에 위안화로 팔고 있고, 인도는 2026년 3월 한 달에 6,0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위안화와 디르함으로 결제했습니다.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비달러 결제 메커니즘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위안화 호르무즈 정책은 글로벌 금융에서 새로운 방향을 창조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흐름을 가속시킨 것입니다.

유럽비즈니스매거진(European Business Magazine)은 이 상황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위안화로 결제하는 유조선은 호르무즈를 통과하고, 달러로 결제하는 유조선은 보험과 기뢰와 IRGC의 표적 지정에 의해 차단되는, 이분화된 석유 시장이 탄생했다고. 같은 상품에 두 개의 가격, 같은 수역에 두 개의 통화, 같은 배럴의 석유에 두 개의 시스템. 달러가 방지하려 했던 그 분열이, 달러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전쟁에 의해 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10.4 선별적 개방

3월 12일, 이란 국영 방송 프레스TV(Press TV)에서 앵커가 한 장의 사진을 배경에 띄운 채 성명서를 낭독했습니다. 성명의 주인공은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첫 공습으로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뒤, 3월 9일 전문가회의(Assembly of Experts, 88인의 성직자로 구성된 최고지도자 선출 기구)에 의해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인물입니다. 56세. 그가 직접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공습에서 아내 자흐라(Zahra), 여동생, 조카, 형부를 잃었고, 10대 아들 모하마드 바게르(Mohammad Bagher)도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본인도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보안 관리는 그가 다리를 다쳤다고 평가했지만 부상의 심각성은 불분명했습니다. 이란계 반체제 인사 아미르 살라리안(Amir Salarian)은 가디언(The Guardian)에 "그가 연설을 할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새 지도자의 영상이나 음성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성명은 대리 낭독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한 문장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강타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지렛대는 반드시 계속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한 문장은 이란의 해협 통제가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소우판 센터(The Soufan Center)의 분석은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를 세계 경제의 동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란의 국가 안보의 연장이자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대결에서 전략적 지렛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첫 공식 성명은 확전(escalation)과 지역적 압박의 신호였습니다. 킹스칼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국제안보학 강사 롭 가이스트 핀폴드(Rob Geist Pinfold)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바랐던 것, 그러니까 새 최고지도자로부터 수사법의 변화 같은 것, 그런 것은 실제로 전혀 들려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기존 입장의 반복입니다."

성명에는 다른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적이 경험이 부족하고 극도로 취약한 다른 전선을 개방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전쟁 상태가 계속되고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이를 가동할 것"이라고. 중동 지역의 미군 기지를 "즉시 폐쇄"할 것을 주변국에 권고했고, "그 기지들은 공격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예멘의 무장세력도 "그 일을 할 것"이고, 이라크의 무장세력도 "도우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가는 이 성명 직후 상승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발언 후 유가 상승세가 가속되었습니다.

2주 뒤인 3월 26일,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가 구체적인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이라크.

이 5개국 국적의 선박에 한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란 외무부는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 보낸 서한에서 이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비적대적(non-hostile) 국가의 선박은 이란 관할 당국과 조율을 거쳐 통과할 수 있다."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서방 동맹국 선박에게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통과가 불허되었습니다.

이 다섯 나라의 면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란의 계산이 보입니다.

중국은 이란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서방의 대이란 제재 결의를 비토(veto)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입니다. CIPS를 통한 위안화 결제 인프라를 제공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쟁 이전부터 이란산 원유의 대부분은 중국행이었고, 전쟁 이후에도 이란의 원유 수출은 하루 150만 배럴 이상을 유지하며 계속 중국으로 흘러갔습니다. 중국 국영 해운사 코스코(COSCO), 중국상선에너지해운(China Merchants Energy Shipping)의 유조선들은 가장 낮은 마찰과 가장 유리한 요율로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중국은 호르무즈 지역을 통해 자국 원유 수입의 45퍼센트를 들여옵니다. 90일에서 130일치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란산 원유를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9~12달러 할인된 가격에 처리하는 중국 지방 정유소(이른바 티팟 정유소, teapot refineries)들이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를 함께 받으면서 이란과 반(反)서방 연대를 형성한 군사 동맹국입니다. 무기 거래, 정보 공유, 유엔에서의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란산 원유와 러시아산 원유의 대중국 거래는 대부분 위안화 또는 물물교환으로 CIPS를 통해 결제되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전통적인 비동맹 노선을 걷는 나라입니다. 아시아 최대 에너지 소비국 가운데 하나로서, 이란과 미국의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란은 인도에 당근을 제시했습니다. 3월 13일 인도 국적 가스 운반선 시발릭(Shivalik, IMO: 9356892)과 난다 데비(Nanda Devi, IMO: 9232503)가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왔습니다. AIS 데이터는 드문드문했지만, 시발릭이 라라크 섬을 돌아가는 비정상적 항로를 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3월 14일부터 24일 사이에 인도 국적 LPG 운반선 5척이 세 차례에 걸쳐 해협을 빠져나왔고, 이들은 오만만에서 인도 해군 전함의 호위를 받아 작전명 상칼프(Operation Sankalp) 아래 안전하게 귀환했습니다. 이란과의 외교적 협상이 이 통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테헤란 주재 이란 대사가 인도에 안전 통과를 직접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배치는 미국 주도의 반이란 해상 연합에 인도가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는 이간책이기도 했습니다. 인도가 이란의 통과 허용 목록에 올라 있는 한, 인도가 미 해군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강제 개방 작전에 참여할 동기는 줄어듭니다. 인도 정유사들은 이미 러시아산 원유를 위안화와 UAE 디르함으로 결제하고 있었고, 이란의 당근은 인도를 달러 중심 에너지 체계에서 더 멀리 떨어뜨리는 효과를 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란의 접경국이자 가스 파이프라인 수입국입니다. 파키스탄 정부 소유의 아프라막스급(Aframax) 유조선 카라치(Karachi, IMO: 9903413)호는 3월 16일 이란의 허가를 받아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탱커트래커스닷컴(TankerTrackers.com)에 따르면 이 선박은 톨 부스 경로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라크는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란산 가스와 전력의 주요 수입국입니다.

공식적인 5개국 목록 바깥에서도 개별 협상을 통한 통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3월 26일 이란으로부터 선박 통과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터키의 교통장관 압둘카디르 우랄로글루(Abdulkadir Uraloğlu)도 3월 13일 이란이 터키 선박의 통과를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100만 배럴의 인도행 원유를 실은 사우디 유조선도 통과가 허용되었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라크, 말레이시아, 중국이 모두 테헤란과 직접 선박 통과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 목록에서 배제된 나라들의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퍼센트를 넘는 이 나라들은 에너지 공급의 동맥이 잘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조선들이 텅 빈 채 푸자이라(Fujairah)와 카삽 앞바다에 묶여 있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아르세니오 도밍게스(Arsenio Dominguez)는 알자지라에 해협 양쪽에 약 2,000척의 선박이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상 정보 분석 업체 윈드워드(Windward)는 "많은 운항사들이 장거리 우회 항로를 택하기보다는 호르무즈 바깥에서 위치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오만의 무스카트(Muscat) 술탄 카부스 항에는 유조선 칼리스토(Callisto)를 비롯한 대형 선박들이 닻을 내린 채 대기하고 있었고, 현지 주민들이 항구에 나와 이 이례적인 풍경을 촬영했습니다.

유럽의 대형 해운사들도 진입을 포기했습니다. 머스크(Maersk) 같은 서방 선적 선박이나 서방 보험에 가입된 선박, 미국이나 유럽 또는 일본 항구를 목적지로 하는 원유를 실은 유조선은 어떤 경로로든 통과가 차단되었습니다. 크루즈 선박 6척이 페르시아만에 갇혀 최소 15,000명의 승객이 발이 묶였습니다. 사우디 크루즈사 아로야(Aroya), 셀레스탈 크루즈(Celestyal Cruises)의 디스커버리와 저니, MSC 크루즈의 유리비아(Euribia), TUI 크루즈의 마인 쉬프 4호와 5호가 해협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란의 선별적 개방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미친 타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전쟁 전 수출 능력의 약 60퍼센트를 페르시아만 경유 해협 통과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란이 해협을 닫은 뒤 이 경로가 사실상 마비되었습니다. 사우디는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동서 원유 파이프라인(East-West Crude Oil Pipeline)의 가동률을 급히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은 홍해 연안의 얀부(Yanbu) 항으로 연결되는데, 하루 500만 배럴의 수송 능력이 있었지만 실제로 처리하는 양은 그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회장 술탄 알자베르(Sultan Ahmed Al Jaber)는 워싱턴에서 미 부통령 JD 밴스(JD Vance)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인질로 잡으면, 모든 나라가 몸값을 지불합니다. 주유소에서, 식료품점에서, 약국에서, 모든 가정이." 그는 이란의 행위를 "경제적 테러(economic terrorism)"라고 규정했습니다. UAE는 수십 개 국가에 "호르무즈 보안군(Hormuz Security Force)" 결성을 제안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5개국 허용 목록의 가장 깊은 의미는, 이란이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고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중국에게 열려 있는 바다가 일본에게는 닫혀 있고, 인도에게 열려 있는 바다가 한국에게는 닫혀 있습니다.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구분이 미국의 동맹인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3월 26일, 이스라엘은 IRGC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를 반다르아바스(Bandar Abbas) 공습으로 사살했습니다. 현지 시각 새벽 3시경의 공습이었습니다. 정보국장 베흐남 레자에이(Behnam Rezaei)를 비롯한 IRGC 해군 고위 지휘부도 함께 제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카츠(Israel Katz)는 탕시리를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부설과 봉쇄라는 테러 작전의 직접적 책임자"라고 규정했습니다. 미 해군 제독은 IRGC 해군 병사들에게 "자리를 떠나거나 죽거나(abandon your posts or die)"라고 경고했습니다. 탕시리는 2018년 8월부터 IRGC 해군 사령관을 맡아왔고,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부설과 봉쇄를 직접 지휘한 인물이었습니다.

해양전문매체 마리타임 이그제큐티브(The Maritime Executive)는 레자에이의 정보 네트워크 없이 "IRGC 해군은 대부분 무력화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분석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톨 부스 시스템 자체는 이미 관료화되었기 때문에 그 창조자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작동할 수 있다고.

그리고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습 유예를 10일 연장하여 데드라인을 4월 6일로 미뤘습니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는 이 상황의 본질을 직설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전쟁이 멈추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데는 이란과의 협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컬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의 수석 연구원 캐런 영(Karen Young)은 CNBC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톨 부스를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매우 명백하다"고. "그것은 걸프협력회의 국가들, 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백함"이 현실이 되기까지, 페르시아만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2,000척의 선박들, 라라크 섬 북쪽의 비좁은 수로를 IRGC 고속정의 호위 아래 기어가듯 지나가는 유조선들, 위안화로 결제되는 200만 달러의 통과료, 중국과 인도에게만 열리고 한국과 일본에게는 닫힌 바다가 2026년 3월 말 호르무즈 해협의 현실이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이 전 세계 바다를 호위하며 보장해 온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미국이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인정했습니다. 2002년 밀레니엄 챌린지(Millennium Challenge 2002) 워게임에서 이란을 모델로 한 적군이 물질적으로 우세한 미군을 이겼던 결과가 24년 뒤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미국이 지켜온 해양 질서를 허무는 역설. 그 역설의 한가운데에 이란의 검문소가 서 있었습니다. 위안화는 달러가 비워둔 자리로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만을 순찰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





제11장 통행료 국가의 탄생

11.1 이란 의회의 통행료 법제화 추진

2026년 3월 26일 오전, 테헤란. 이란 이슬람의회(마즐리스)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의 회의실에 의원 열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안건은 하나였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상업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 반관영 파르스(Fars) 통신과 타스님(Tasnim) 통신이 동시에 이 소식을 타전했을 때, 런던과 뉴욕의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화면을 두 번 확인해야 했습니다. 자연 해협에 통행료를 매기겠다는 국가가 역사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호르무즈 해협 신규 관리 계획안'이었습니다. 시민위원회 위원장 모하마드레자 레자이 코치(Mohammadreza Rezai Kouchi) 의원이 주도했고, 위원회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법안의 골격은 여덟 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해협 내 안보 조치의 법적 근거 마련, 선박 항행 안전 확보, 해양 환경 오염 방지, 이란 리알(Rial)화 기준 통행료 부과 제도 신설, 미국 및 이스라엘 국적 선박과 관련 화물의 통행 전면 금지, 이란 국가 및 군의 주권적 역할 명문화, 오만과의 공동 관리 협력 체계 구축, 대이란 일방적 경제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의 선박 통행 제한.

이 법안이 하루 만에 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법안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뒤늦게 법전에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월 초부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는 케슘 섬(Qeshm)과 라라크 섬(Larak) 사이에 사실상의 검문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은 IMO 식별번호, 화물 목록, 승무원 명단, 선박의 실질적 소유 구조, 최종 목적지를 혁명수비대 연계 중개인에게 제출해야 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선박에는 항로 코드와 혁명수비대 고속정의 호위가 부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호위의 대가가 선박 한 척당 200만 달러였습니다.

법안이 공식화하려는 것은 바로 이 시스템이었습니다.

레자이 코치 위원장은 국영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 감독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통행료 징수를 통한 수입원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마디를 보탰습니다. "호르무즈 해협도 하나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고 있고, 선박과 유조선이 우리에게 통행료를 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의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 위원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이란 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의 동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서 통행료를 받아야 합니다."

전쟁 비용의 청구서. 이것이 법안의 진짜 이름이었습니다.

2월 28일 개전 이후 26일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은 이란의 군사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했습니다. 핵 시설, 미사일 기지,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0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글을 올려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유정, 하르그 섬, 담수화 시설을 폭파해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하르그 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 이상을 처리하는 심장부입니다.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은 이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기반 시설입니다.

이란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석유 수출 인프라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이란은 석유를 수출하는 대신 석유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 자기 석유를 팔 수 없다면, 남의 석유가 지나가는 문 앞에 톨게이트를 세우겠다는 것. 전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익 모델이었습니다.

법안이 위원회를 통과한 날, 해상 정보 분석업체 윈드워드(Windward)의 데이터는 하나의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개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상업 통행량은 95% 감소했습니다. 3월 15일부터 일주일간 AIS(선박자동식별장치)를 켠 채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6척.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아르세니오 도밍게스(Arsenio Dominguez)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해협 양쪽에 약 2,000척의 선박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는 그보다 많은 숫자를 보도했습니다. 페르시아만 안팎에 발이 묶인 선박의 수가 3,200척에 달한다고.

이 선박들은 이란의 통행료 청구서가 확정되기만을 기다리며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는 3월 셋째 주까지 26척의 선박이 혁명수비대의 '톨부스' 시스템 아래 사전 승인된 항로를 따라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중 최소 2척은 위안화(Yuan)로 통행료를 지불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인 역할을 맡아 결제를 처리했다는 것이 로이즈 리스트의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법안은 이제 의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의 검토, 그리고 대통령의 서명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표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혁명수비대의 즉흥적인 갈취 행위는 이란 국내법에 기반한 영구적인 제도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 법안에는 한 가지 교묘한 장치가 숨어 있었습니다. 통행료의 납부 통화를 달러가 아닌 이란 리알화로 지정한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 제재로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네트워크에서 퇴출된 이란으로서는, 달러 결제 시스템 바깥에서 자체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통행료를 리알로 받으면, 해운사들은 제3국의 우회 채널을 통해 리알을 매입해야 하고, 이는 폭락을 거듭하던 이란 화폐의 가치를 떠받치는 효과를 냅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내수 경제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셈입니다.

실제 현장에서의 결제는 리알이 아닌 위안화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법안의 문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이란의 이중 전략을 보여줍니다. 법적으로는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금융 인프라에 기대는 것. 달러 패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도전의 도구로 위안화를 쓰는 것.

과거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에 반발하여 이란 의회 일각에서 호르무즈 통행료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토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폐기되었습니다. 전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봉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수비대가 해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6년은 달랐습니다. 해협은 닫혀 있었고, 기뢰가 깔려 있었고, 유조선이 불타고 있었고, 2,000척의 선박이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법안은 현실을 따라잡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11.2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첫 공개 성명

2026년 3월 12일, 전쟁 13일째. 이란 국영방송(IRIB)의 뉴스 앵커가 원고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검은 터번을 쓴 남자의 정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음성도, 영상도 없었습니다. 사진과 앵커의 낭독뿐이었습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 56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첫 공습에서 아버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어머니, 부인, 여동생, 조카, 매형을 잃은 사람. 3월 9일 전문가회의(Assembly of Experts)에 의해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사람. 선출 소식을 자신도 국영 TV를 통해 알았다고 말한 사람.

그가 살아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3월 11일, 모즈타바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일한 공습에서 다리를 다쳤으며, 부상의 정도는 아직 파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다리를 절단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돌았습니다. 성명이 정말 그의 것인지, 아니면 측근들이 작성한 것인지를 놓고 서방 정보기관들의 분석이 갈렸습니다.

성명의 진위와 관계없이, 그 내용은 세계 경제의 궤적을 바꿔놓았습니다.

앵커가 읽어 내려간 문장들 가운데 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지렛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계속 사용되어야 합니다(The lever of blocking the Strait of Hormuz must undoubtedly continue to be used)."

이 한 문장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분이었습니다. 유가가 즉각 반응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성명 직후 유가는 추가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모즈타바의 성명은 아버지에 대한 짧은 추모로 시작했습니다. "순교 후 그분의 시신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힘의 산이었고, 그분의 건강한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이란 국민의 인내와 용기를 칭송하고, 군의 "강력한 타격으로 적의 길을 막은" 전사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핵심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약속합니다. 우리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의도하는 복수는 최고지도자의 순교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적에 의해 순교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복수의 대상입니다."

그는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적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것입니다. 적이 거부한다면, 우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만큼의 재산을 가져갈 것이고,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같은 규모의 재산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리고 호르무즈가 나왔습니다. 해협의 봉쇄는 일시적인 전술이 아니라 영구적인 지렛대라는 선언. 미군 기지의 즉각 폐쇄 요구. "그 기지들을 하루빨리 폐쇄할 것을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안보와 평화를 제공한다는 주장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지가 폐쇄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경고.

성명은 확전의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적이 경험이 적고 극도로 취약한 다른 전선을 여는 것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그것들을 가동할 것입니다."

수판 센터(The Soufan Center)의 분석은 이 성명의 성격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모즈타바가 호르무즈를 세계 경제의 동맥이 아니라 이란의 국가 안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 동시에 정치적 해결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는 것. "이것은 전쟁이고, 이란은 계속 싸울 것이지만, 전쟁을 멈출 책임은 상대편에 있다"는 메시지였다고 수판 센터는 평가했습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안보학 강사 롭 가이스트 핀폴드(Rob Geist Pinfold)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했을 법한 것, 그러니까 새 최고지도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수사학의 변화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듣는 것은 기존 입장의 배가(倍加)입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란 정치에서 오랫동안 '은둔의 인자'였습니다. 공식적인 정부 직책도, 종교적 고위직도 맡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이력은 막후에 있었습니다. 혁명수비대 및 강경파 민병대 바시즈(Basij)와의 긴밀한 관계. 2009년 녹색 운동(Green Movement), 그러니까 부정선거 규탄 시위 당시 유혈 진압의 막후 지휘자라는 평판. 서방 정보기관들이 제기한 유럽 내 수천억 원대 차명 부동산 의혹. 그는 권력의 실체를 가리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통행료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외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내적인 권력 역학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즉위한 새 최고지도자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혁명수비대의 충성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석유 수출 대금이 말라붙고,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군부의 월급과 작전 비용을 댈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직접 거두는 주체는 혁명수비대입니다. 징수된 현금은 정부의 공식 예산을 거치지 않고 혁명수비대의 작전 기금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모즈타바는 "이 지렛대"를 혁명수비대에 위임함으로써, 충성의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서방에 대한 경제적 인질극의 선포. 대내적으로는 군부를 향한 약속. 나를 따르면, 마르지 않는 수입원을 쥐여주겠다.

알자지라의 중동 분석가 자이돈 알키나니(Zeidon Alkinani)는 이 구조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성명이 무장 저항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 개혁, 국가 건설, 그리고 일반 이란인들에게 중요한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성명이 발표된 같은 날,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습니다. 최고지도자의 성명과 대통령의 발언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습니다. 모즈타바는 결사항전. 페제시키안은 조건부 협상. 이란 내부의 권력 투쟁이 전쟁의 방향을 놓고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란의 헌법 구조에서 최종 결정권은 최고지도자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은 집행자입니다. 모즈타바의 성명이 공식적인 국가 방침이었고, 페제시키안의 발언은 그 방침의 테두리 안에서의 유연성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키스탄을 중재자로 내세워 이란에 전달한 15개 항목의 종전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자유 통행 보장"이었습니다. 이란의 응답은 모즈타바의 성명에 담겨 있었습니다. 해협은 닫힌 채로 둔다. 지렛대는 계속 쓴다. 강경파 일간지 카이한(Kayhan)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이란의 종전 전제조건으로 '중동 내 모든 미군 철수'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의 국제적 공식화'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전 협상에서 이란이 요구한 것은 제재 완화와 평화적 핵 기술의 권리 인정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은 요구 목록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새로운 요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봉쇄가 예상보다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CNN의 분석대로, "영향의 규모가 테헤란의 야망을 키웠습니다."

11.3 월 6억에서 8억 달러의 잠재 수입

숫자부터 보겠습니다.

평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대형 상선은 하루 약 120척에서 140척이었습니다. 이 선박들이 실어 나르는 원유와 석유 제품은 하루 2,000만 배럴. 여기에 카타르에서 출발하는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이 더해집니다.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5분의 1, 전 세계 LNG 교역의 4분의 1이 이 수로를 지나갑니다.

이란이 선박 한 척당 부과하는 통행료는 200만 달러(약 30억 원)입니다.

CNN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동한다면, 이를 운반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은 약 10척입니다. 척당 200만 달러이면 하루 2,000만 달러. 한 달이면 약 6억 달러. LNG 운반선까지 포함하면 한 달 8억 달러를 넘길 수 있습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한층 과감한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하루 120척의 선박이 척당 200만 달러를 내면 연간 1,000억 달러(약 150조 원). 이란 GDP의 20~25%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3,200척이 밀린 통행료를 한꺼번에 내고 해협을 빠져나간다면, 일시불로 64억 달러(약 9조 6,000억 원)가 이란의 손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선전용입니다. 전쟁 중에 하루 120척이 통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3월 말 기준으로 해협의 통행량은 평시의 5%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척당 200만 달러라는 금액 자체가 전쟁 직후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최고조에 달한 가격이고, 장기적으로 제도가 안착되면 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2023 회계연도에 사상 최고치인 94억 달러의 통행료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하루 약 50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며, 세계 무역의 12%가 이 운하를 거칩니다. 선박당 평균 통행료는 약 40만 달러. 이 수입은 이집트 국가 재정의 핵심 기둥이자 외환보유고의 원천이었습니다. (2024년에는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으로 수입이 40억 달러로 급감했지만, 이는 예외적 상황입니다.)

이란의 의원들이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끊임없이 인용한 사례가 바로 수에즈였습니다. "수에즈 운하에서 선박들이 통행료를 내듯,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는 대가로 비용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입니다. 1859년에 착공해 10년간 건설했고, 이후 160년 이상 유지 보수와 준설을 계속해왔습니다. 2015년에는 새로운 수로를 추가로 개통했습니다. 운하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통행료 징수에는 경제적 명분이 있습니다. 건설 비용의 회수, 유지 보수 비용의 충당.

호르무즈 해협은 자연이 만든 바다입니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34킬로미터. 이란이 한 일은 해협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해협을 막은 것입니다. 기뢰를 깔고, 유조선을 공격하고, 고속정과 대함 미사일로 위협한 뒤,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화범이 불을 지른 뒤 소방 서비스 비용을 청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CNN은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전쟁 이후 해협의 통행량이 평시의 절반인 하루 50~60척으로 회복되고, 척당 통행료가 수에즈 수준인 40만 달러로 조정된다면, 이란은 매달 6억에서 8억 달러의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있습니다. 연간 72억에서 96억 달러. 수에즈 운하의 정상 연수입(94억 달러)과 거의 같은 규모입니다.

이 비교가 보여주는 것은 이란의 야망의 크기입니다. 이집트가 160년간 운하를 건설하고 유지하며 쌓아올린 수익 구조를, 이란은 전쟁과 무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선례가 있습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반대로 물러났고, 이집트는 운하의 통제권을 영구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이후 70년간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가장 안정적인 외화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이란이 원하는 것은 호르무즈의 수에즈화입니다. 전쟁을 통해 해협의 통제권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종전 협상에서 그 통제권의 국제적 인정을 받아내고, 법제화를 통해 통행료 징수를 영구적인 제도로 고착시키는 것. 이란의 5대 종전 조건 가운데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권의 국제적 인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컬럼비아대학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의 선임연구원 카렌 영(Karen Young)은 CNBC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톨게이트를 세우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이런 조치를 수용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선박들은 이미 통행료를 내고 해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이집트의 선박들도 이란이 '우호국'으로 분류한 목록에 포함되어 통과를 허용받고 있었습니다. 제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그 효과는 동일합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은 호르무즈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통행료 부과로 인한 해상 운임 폭등과 보험료 급등은 원유 도입 단가에 고스란히 전가되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공급 부족 규모가 8억 배럴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65달러를 넘겼습니다.

11.4 국제법과 현실의 간극

1429년, 덴마크 왕 에리크 7세는 외레순드 해협(Øresund)을 지나는 모든 외국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헬싱외르(Helsingør)의 크론보르 성(Kronborg Castle),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무대로 삼은 바로 그 성에서 선박들은 닻을 내리고 순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양안의 대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이 해협 통행료, 일명 '외레순드 관세(Sound Dues)'는 16~17세기 덴마크 국가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했습니다. 428년간 지속된 이 통행료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 프로이센 등 유럽 열강의 분노를 샀고, 여러 차례의 전쟁 원인이 되었으며, 마침내 1857년 코펜하겐 협약(Copenhagen Convention)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대가로 덴마크는 12개국으로부터 3,350만 릭스달러(rigsdaler), 당시 덴마크 국가 지출의 약 1년치에 해당하는 일시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별도의 양자 협정으로 39만 3,000달러를 지불했습니다.

169년이 지난 2026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하려는 것은 덴마크가 외레순드에서 했던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좁은 해협을 물리적으로 지배하고, 지나가는 선박에 돈을 받는 것. 차이점은 하나입니다. 1857년에 국제 사회는 해협 통행료가 자유 무역을 방해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합의에 도달했고, 이후 169년간 자연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이란이 최초입니다.

CNN은 이 역사적 선례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19세기에 덴마크는 덴마크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했지만, 여러 국가의 항의 끝에 1857년 코펜하겐 협약에 동의하여 이른바 '외레순드 관세'를 폐지했습니다." 이란의 통행료가 현대 해양사에서 전례가 없다는 뜻입니다.

국제법의 관점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는 명확합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37조는 호르무즈와 같이 "공해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연결하는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제38조는 이러한 해협에서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가 방해받지 않는 '통과 통행권(Right of Transit Passage)'을 누린다고 규정합니다. 제44조는 해협 연안국이 통과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shall not hamper)"고 명시하며, 이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정지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미국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의 국제해양법 교수 제임스 크라스카(James Kraska)는 CNN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이며, 이란과 오만의 영해가 겹칩니다. 이 수역에서는 이란법과 오만법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국제 해협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 대해 통과 통행권이 적용되며, 이는 방해받지 않는 수상, 상공, 잠수함 통과를 허용합니다." 통행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는 국제법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프랑스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국제 사회에 돈을 지불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고 결정한다면, 이것은 불법일 뿐만 아니라 용납할 수 없고, 세계에 위험한 일입니다. 세계가 이에 대처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G7 외무장관들은 "안전하고 통행료 없는 항행의 자유를 회복할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걸프협력회의(GCC)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가 "유엔 해양법 협약에 대한 침략"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11일 결의안 2817호를 채택했습니다. 이란의 역내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자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상선과 상업 선박의 항행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재확인한 결의안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 항행을 폐쇄하거나 방해하거나 간섭하는 이란의 모든 행동과 위협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국제법은 이란의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합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존재합니다. G7이 성명을 냈습니다. GCC가 규탄했습니다.

그런데 이란은 법적 방어 논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168개국이 비준한 이 협약에 이란은 서명만 한 채 40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미국도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므로 통과 통행권 조항에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 영해에서는 통과 통행이 아닌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만 적용된다. 무해 통항은 연안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전면전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적대국 선박의 통항을 제한할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분석은 이 논리의 약점을 짚었습니다. 통과 통행권은 유엔 해양법 협약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관습 국제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으로도 확립되어 있습니다. 세계 압도적 다수의 국가가 이 법리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협약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이란도 구속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법학적 견해입니다.

저스트 시큐리티(Just Security)에 기고한 전 미 해군 장교 출신의 법학자는 이 상황의 핵심적 모순을 정리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해양법의 근본적 취약점을 드러냅니다. 통과 통행권은 교리(Doctrine)에서는 강력하게 보호되지만, 연안국이 규칙을 위반할 의지가 있을 때 실제로 집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법이 이란의 행위를 위법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그 위법 행위를 실제로 멈추게 하는 것 사이의 간극.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21해리(39킬로미터)입니다. 런던 시티대학의 해상법 교수 제이슨 추아(Jason Chuah)가 알자지라에 설명한 것처럼, 해협의 전체 폭이 이란과 오만의 영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해(高海, High Seas)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란은 자국 해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로 주장하고, 오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협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이란에 유리합니다.

이란은 이 지리적 이점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국제 항로로 지정된 해협의 중앙 수로는 기뢰와 공격의 위험 구역이 되었습니다. 선박들은 이 위험 구역을 피해 이란 연안에 붙은 케슘 섬과 라라크 섬 북쪽, 이란의 영해 안쪽으로 우회해야 했습니다. 선박이 국제 수역에서 이란의 영해로 들어오는 순간, 통행의 법적 성격이 바뀝니다. 이란은 영해 내에서의 '보안 서비스'를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합니다.

이란 외무부는 국제해사기구 176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비적대적 선박은,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지 않고 선언된 안전 및 보안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는 한, 이란 관계 당국과의 조율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불법적인 무력 통제를 합법적인 행정 절차로 포장하는 서한이었습니다.

인도 법률 사무소 ANB리걸의 파트너 아푸르바 메타(Apurva Mehta)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선박이 통행료를 내야 하고 어떤 통화로 결제해야 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상업적 고려가 이런 '통행료'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을 압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은 통행료를 내더라도 화물을 통관시키는 데 열중할 것입니다."

이것이 2026년 3월의 현실이었습니다.

미국 해군 제5함대는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은 혁명수비대의 통행료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미 에너지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시인했습니다. 통행료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려면 이란의 초계정을 요격하고, 경우에 따라 위안화 결제를 중개하는 중국 상선까지 저지해야 합니다. 워싱턴도 베이징도 그 수준의 확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의 소해(掃海, Mine Countermeasures) 전력도 문제였습니다. 미 해군이 보유한 어벤저급(Avenger-class) 소해함은 14척 가운데 4척만 남아 있었고, 모두 일본 사세보에 전진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연안전투함(LCS) 4척에 소해 모듈을 장착하고 시드래건(Sea Dragon) 소해 헬기 25대를 운용할 수 있었지만, 중동에 배치된 LCS는 3척에 불과했습니다. 1987~88년 탱커 전쟁 당시의 호위 작전, 선박 재등록(Reflagging), 대규모 호위함대 편성 같은 방식은 2026년에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글로벌 해운사들과 화주들은 자본주의적이고 실용적인 계산을 했습니다. 1억 달러짜리 유조선과 그 안에 실린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이란의 미사일에 격침되거나 나포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내고 무사히 지나갈 것인가. 답은 분명했습니다.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은 걸프 해역을 최고 등급의 전쟁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여 선박 가치의 수 퍼센트에 달하는 전쟁 보험료를 매기고 있었습니다. 200만 달러의 통행료는 전쟁 보험료보다 저렴할 수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해양 보험 중개사 캄비아소 리소 아시아(Cambiaso Risso Asia)의 클레임 부문 대표 아만다 비에른(Amanda Bjorn)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이란을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우리가 누려온 항행의 자유를 가로막는 글로벌 무역의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이집트, 한국, 파키스탄의 선박들이 이란의 승인을 받아 해협을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별적 개방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박은 차단. 서방 동맹국의 선박은 제한. 이란이 '우호국'으로 분류한 나라의 선박은 통과 허용. 통행료는 위안화로.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

이 구조는 유엔 해양법 협약의 핵심 원칙인 비차별(Non-discrimination)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크치(Abbas Araqchi)가 확인한 대로, 이란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별적으로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반을 선언하는 것과 위반을 중단시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2026년 3월 27일, 유엔의 요청에 응해 이란은 인도주의적 지원 물자와 농산물 화물의 해협 통과를 촉진하고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네바 주재 이란 대사 알리 바흐레이니(Ali Bahreini)가 이 합의를 확인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양보의 제스처. 동시에 이란이 해협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기도 했습니다. 통과를 '촉진'할 수 있는 자만이 통과를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중국의 COSCO(중국원양해운)는 고객들에게 UAE,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등 걸프 항만으로의 일반 화물 컨테이너 예약을 재개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3월 27일 두 척의 중국 컨테이너선이 해협을 통해 빠져나가려다 되돌아갔다는 선박 추적 데이터가 확인되었습니다. 혁명수비대의 시스템이 일관되게 작동하지 않았거나, 통과 조건에 대한 합의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외레순드 해협에서 덴마크가 428년간 통행료를 걷을 수 있었던 것은 법이 허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크론보르 성의 대포가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이 반복적으로 항의하고 전쟁까지 치렀지만, 대포가 해협을 지배하는 한 통행료는 계속되었습니다. 통행료가 폐지된 것은 법적 논쟁에서 덴마크가 졌기 때문이 아니라,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해양 열강들의 군사력과 경제적 압력이 덴마크의 대포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도 덴마크는 공짜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3,350만 릭스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란이 이 역사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란이 하고 있는 것은 덴마크가 했던 것의 21세기 판입니다. 크론보르 성의 대포 대신 혁명수비대의 고속정과 대함 미사일과 자폭 드론. 헬싱외르의 세관 대신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의 검문소. 릭스달러 대신 위안화.

차이점은 하나 있습니다. 1857년에 국제 사회는 해협 통행료를 폐지시킬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26년에 국제 사회가 그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3월 26일,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 소장과 정보 참모 베남 레자이(Behnam Rezaei) 준장을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에 대한 공습으로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탕시리를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부설과 봉쇄를 직접 담당한 테러 작전의 책임자"라고 규정했습니다. 해양 분석가들은 레자이의 정보 네트워크 상실이 혁명수비대 해군의 작전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관료화된 통행료 시스템은 지속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사령관이 죽었지만, 시스템은 살아남았습니다.

통행료 국가의 탄생은 국제법이 가진 근본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제네바의 회의실에서 작성된 법전의 조항들은, 호르무즈 해협 위에 떠 있는 기뢰와 고속정 앞에서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817호가 이란의 행위를 규탄했지만, 결의안이 기뢰를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G7 외무장관들이 "통행료 없는 항행의 자유"를 강조했지만, 그 선언이 200만 달러의 청구서를 찢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법은 말합니다. 통행료는 위법입니다. 현실은 답합니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 간극 속에서, 세계 해양 질서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빈 OPEC 본부





제4부 에너지 쇼크




제12장 배럴당 126달러

12.1 유가 급등의 타임라인

2026년 2월 27일 오후 4시(런던 시간),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 종가는 배럴당 71달러였습니다.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그날 오후를 평범하게 마감했습니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하루 1,358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고, OPEC+ 감산 합의 이후에도 글로벌 원유 시장은 구조적 공급 과잉 상태였습니다.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팀은 2026년 연간 브렌트유 평균가를 65달러로 전망하고 있었습니다. "저유가 시대의 지속"이라는 컨센서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이란의 밤하늘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궤적이 그려졌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 발발 직후 48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숫자로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3월 1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봉쇄를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해협 부근에서 유조선 3척이 피격되었고, 그중 1척은 오만 앞바다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선박 추적 데이터 업체 보르텍사(Vortexa)의 기록에 따르면, 3월 1일 해협을 통과한 원유 유조선은 이란 국적선 3척을 포함해 총 4척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24척이 통과하던 곳이었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3일 장중 84.57달러를 찍었습니다. 개전 전 대비 19%. 머스크(Maersk), CMA CGM,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동시에 해협 통과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는 페르시아만 안쪽에 발이 묶인 국제 원유 및 석유제품 유조선이 약 200척에 달한다고 추산했습니다.

3월 8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이날 해협을 통과한 상업 선박은 딱 1척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138척이 오가던 수로에서 1척. CNBC의 에너지 전문 기자는 이 숫자를 보도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같은 날 이란군의 드론과 미사일이 바레인의 밥코(Bapco) 정유소를 타격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Ras Tanura) 석유 터미널 인근에서도 폭발이 보고되었습니다. 걸프 에너지 인프라 전체가 사정권에 들어온 것입니다.

3월 10일 월요일, 시장이 열리자마자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119.5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WTI(서부텍사스산원유, West Texas Intermediate)도 119.48달러를 찍었습니다. 전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 담당 국장이었던 닐 앳킨슨(Neil Atkinson)은 CNBC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폐쇄는 에너지 시장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입니다. 뭔가 곧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유례 없는 에너지 위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26달러를 찍었습니다.

71달러에서 126달러. 상승률 약 55%. 소요 시간은 20거래일 남짓이었습니다. CNBC는 이것이 1988년 브렌트유 선물 계약 출범 이래 월간 기준 최대 상승 기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전 기록은 1990년 걸프전 당시 9월의 46% 상승이었습니다.

서방의 벤치마크가 126달러를 기록하는 동안, 아시아 시장이 체감한 충격은 이보다 훨씬 가혹했습니다. 3월 19일, 두바이유(Dubai crude)가 배럴당 166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S&P 글로벌의 플래츠(Platts) 가격 평가 기준입니다. 두바이유는 중동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의 가격 지표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물리적으로 배달이 불가능해진 원유의 가격이, 배달 가능한 브렌트유보다 60달러 이상 높게 거래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JP모건의 원자재 리서치 총괄 나타샤 카네바(Natasha Kaneva)는 이 괴리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해협이 열리지 않으면 이 가격 차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브렌트유와 WTI가 결국 위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서양 쪽 재고가 빠지면서 글로벌 시장 전체가 훨씬 빠듯한 공급 수준에서 가격을 다시 매겨야 합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라이스타드(Rystad)의 수전 벨(Susan Bell) 수석부사장은 싱가포르 시장의 두바이유 가격을 놓고 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거의 허구적인 가격(fictitious price)에 가깝습니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 사이의 이 간극은 숫자가 아니라 지리의 산물이었습니다. 같은 기름이되 호르무즈를 통과해야 하느냐, 통과하지 않아도 되느냐에 따라 배럴당 60달러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21마일 폭의 수로가 글로벌 원유 시장을 둘로 쪼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숫자가 있습니다. 이 기간 중 유가의 일간 변동 폭입니다.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란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브렌트유는 114달러에서 102달러로 하루 만에 12달러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란 측이 이를 부인하자 다시 올랐습니다. 엑슨모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타일러 굿스피드(Tyler Goodspeed)는 CERAWeek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협이 정상 교통량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보다, 해협이 더 오래, 더 확실하게 닫혀 있는 시나리오의 수가 훨씬 많고 확률도 높습니다."

71달러에서 126달러까지, 이 한 달의 타임라인이 증명한 것은 명확합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이 가격을 점진적으로 조정한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공급망이 끊어지는 순간,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가격 발견 메커니즘 자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12.2 IEA의 선언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파리 9구 라펠 드 라 뮤에트 거리에 자리한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본부. 32개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의 긴급 화상회의가 끝난 직후, 파티 비롤(Fatih Birol)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비롤은 외교적 수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석유 시장의 도전은 규모에서 전례가 없습니다(unprecedented in scale). IEA 회원국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 석유 비축유 공동 방출에 만장일치로 합의했습니다." 4억 배럴. IEA 창설 52년 역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 숫자를 과거와 비교하면 규모가 선명해집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IEA가 방출한 양은 1억 8,270만 배럴이었습니다. 4억 배럴은 그 두 배를 넘깁니다. IEA가 창설 이래 비상 공동 방출을 실행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였습니다.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1년 리비아 내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두 차례. 그리고 2026년.

비롤이 이 사태를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의 공급 차질"이라고 부른 데는 정확한 산술이 있었습니다. IEA의 3월 석유시장보고서(Oil Market Report)에 따르면, 전쟁과 해협 봉쇄로 인해 중동 지역의 총 원유 생산량은 3월 12일 기준 최소 1,000만 배럴/일(b/d)이 감소했습니다. 해협이 막혀 수출을 할 수 없게 되자,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저장 용량 한계에 부딪혀 생산 자체를 70%까지 줄인 결과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도 일부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1973년 아랍 석유 금수 당시 시장에서 사라진 양은 하루 약 400~500만 배럴, 당시 세계 소비량의 약 6~7%였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때는 약 200~400만 배럴. 2026년 호르무즈 봉쇄는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던 수로를 한 줄기로 줄였고, 이로 인해 중동 전체의 생산 감소까지 합치면 글로벌 석유 공급이 한 달 사이에 800만 배럴/일 이상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IEA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급 차질(the largest supply disruption in the history of the global oil market)"이었습니다.

4억 배럴 방출의 구체적 배분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1억 7,200만 배럴. 전체의 43%입니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성명을 통해 "방출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며, 계획된 방출 속도에 따라 약 120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20일에 걸쳐 1억 7,200만 배럴을 방출하면 하루 약 140만 배럴입니다. 일본은 80만 배럴을 3월 16일부터 방출하기로 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 수입의 약 70%를 조달하는 일본의 사나에 다카이치(高市早苗) 총리는 "극도로 높은 수준의 중동 의존도"를 언급하며 조기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영국은 1,350만 배럴을 약속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방출에 동참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비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방출 발표 직후 브렌트유는 120달러 근처에서 약 9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약 30달러의 하락. 그러나 이 효과는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3월 14일 금요일, 브렌트유는 다시 100달러를 넘겼습니다. 방출 발표 이후 이틀 사이에 17% 이상 다시 올랐습니다.

왜 400만 배럴이라는 전례 없는 물량이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을까요. 맥쿼리(Macquarie)의 분석가들이 계산을 내놓았습니다. 4억 배럴은 전 세계 하루 생산량의 약 4일치이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약 16일치에 해당합니다. 맥쿼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많게 들리지 않는다면, 실제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If that doesn't sound like much, it isn't)."

CNBC는 더 직접적인 산술을 제시했습니다. 미국의 방출 속도 하루 140만 배럴은 호르무즈 봉쇄로 사라진 공급량의 1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5%의 공백은 어디서도 메워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비축량은 이미 2022년 방출 이후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지하 소금 동굴에 저장된 원유는 약 4억 1,500만 배럴. 최대 용량 7억 1,500만 배럴의 58%였습니다. 여기서 1억 7,200만 배럴을 더 빼면, SPR은 2억 4,300만 배럴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NPR의 보도에 따르면, 지하 소금 동굴의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비축유를 다시 채워 넣는 작업도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비롤은 기자회견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안정적인 석유와 가스 흐름의 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운항의 재개입니다." 비축유 방출은 다리(bridge)입니다. 끊어진 동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동맥이 다시 열릴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KPMG의 글로벌 석유·가스 리더 앤지 길디(Angie Gildea)의 말이 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접근을 복구하는 것을 대체할 수단은 없습니다. 전략비축유, 수출 우회, 해상 재고 등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들은 일부 완화 효과를 줄 수 있지만, 구조적 해법은 아닙니다."

IEA는 공급 측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수요 측면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IEA 3월 보고서는 2026년 글로벌 석유 수요 성장 전망을 전월 대비 하루 21만 배럴 하향 조정해 64만 배럴/일로 낮췄습니다. 3월과 4월의 수요 전망은 평균 100만 배럴/일 이상 깎였습니다. 중동 주요 공항의 운항 중단으로 항공유 수요가 급감했고, 나프타(Naphtha)와 LPG 공급 차질로 석유화학 공장들이 가동을 줄이기 시작한 결과였습니다.

인위적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 공급이 끊어진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감수하더라도 소비를 강제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일요일 자동차 운행 금지, 고속도로 속도 제한 55마일이 등장했던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2026년 3월, IEA의 4억 배럴 방출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를 꺼내 들었다"는 신호인 동시에, "그 무기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고백이었습니다.

12.3 200달러 시나리오

IEA의 4억 배럴 방출 발표가 나온 3월 11일,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은 성명을 냈습니다. "배럴당 200달러의 석유를 기대하라(Expect oil at $200 per barrel)."

허풍인지 경고인지.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이 숫자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였습니다. 원자재 리서치 공동 총괄이자 석유 리서치 총괄인 단 스트라위번(Daan Struyven)이 이끄는 팀은 전쟁 발발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전망을 수정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3월 2일(개전 직후): 골드만삭스는 현재 유가에 배럴당 약 14달러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되어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 4주간 완전 폐쇄되고, 우회 파이프라인이 부분적으로 가동되는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가격이었습니다. 해협이 25%만 차단되고 파이프라인이 가동되면 추가 상승분은 배럴당 1달러. 완전 폐쇄에 아무런 상쇄 수단이 없으면 15달러.

3월 11일: 골드만삭스는 전망을 크게 수정했습니다. 해협 통과량이 정상의 10%에 불과한 상태가 21일간 지속된 뒤 30일에 걸쳐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시나리오를 기본 가정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전 전망은 10일 차단이었습니다. 브렌트유 3~4월 평균 전망은 98달러. 상방 리스크 시나리오에서는 120달러.

3월 22일: 세 번째 수정. 기본 가정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해협 통과량이 정상의 5%에 머무는 기간을 6주로 늘렸고, 이후 1개월에 걸친 점진적 회복을 가정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누적 원유 손실은 8억 배럴을 넘깁니다. 2026년 연간 브렌트유 평균 전망은 85달러(종전 77달러에서 상향). 3~4월 단기 전망은 배럴당 110달러.

골드만삭스의 극단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습니다. "가혹한 시나리오(adverse scenario)"에서는 차질이 10주 지속되고 브렌트유가 140달러에서 정점을 찍은 뒤 4분기에 100달러로 내려옵니다. "극도로 가혹한 시나리오(severely adverse scenario)"에서는 10주 차질에 에너지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가 더해져 브렌트유가 160달러까지 치솟고, 4분기에도 115달러에 머뭅니다. 골드만삭스는 극단적 상황에서 가격이 이론적으로 2008년 7월 WTI 최고치인 147.25달러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바클레이스(Barclays)의 전망은 골드만삭스보다 더 과격했습니다. 바클레이스는 전쟁이 2주 더 지속되면 브렌트유가 120달러를 시험할 수 있으며, 상방 시나리오에서는 월말 전에 15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에너지 전문 컨설팅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닐 시어링(Neil Shearing) 팀은 더 긴 시간축을 놓고 봤습니다. 전쟁이 3개월 지속되는 시나리오에서 브렌트유는 향후 6개월 평균 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BCA 리서치의 지정학 전략가 마르코 파피치(Marko Papic)는 산술을 좀 더 잔인하게 제시했습니다. 3월 28일자 보고서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현재(4월 19일 전후까지)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잃고 있는 원유는 하루 450~500만 배럴, 글로벌 공급의 약 5%입니다. 그러나 4월 중순이 되면 이 숫자가 두 배로 뜁니다. 전략비축유 방출분이 소진되고, 제재 면제로 풀린 러시아산 원유도 바닥나기 때문입니다. "원유 공급의 역사상 최대 손실이 됩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사드 알카비(Saad al-Kaabi)는 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 천연가스 가격은 100만 BTU당 40달러까지 갈 수 있으며, 이는 "세계 경제의 붕괴(collapse of world economies)"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0달러라는 숫자 자체가 현실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3월 31일 현재 브렌트유 선물 기준으로는 아닙니다. 브렌트유는 3월 말 기준 112달러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시장(physical market)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유가 166달러를 찍었고, 한때 170달러를 터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매켄지(Wood Mackenzie)의 리처드 하본(Richard Harbourne)은 이 간극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은 호르무즈 폐쇄의 지속 기간의 함수입니다. 시장 전체가 실시간으로 가정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paper market)과 현물 시장(physical market)의 괴리. 이것이 2026년 3월 에너지 시장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이었습니다. 선물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하나에 12달러씩 움직였습니다. "트럼프의 입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jawboning)"는 표현이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통용되었습니다. S&P 글로벌 CERAWeek 컨퍼런스에 참석한 텍사스대학 에너지·환경시스템분석센터의 벤 카힐(Ben Cahill)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의 더 큰 반응을 막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물리적 시장 차질의 현실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BCA 리서치. 이들의 전망이 수렴하는 지점은 하나였습니다. 200달러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얼마나 오래 닫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셰브론(Chevron) CEO 마이크 워스(Mike Wirth)는 CERAWeek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의 매우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결과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셸(Shell) CEO 와엘 사완(Wael Sawan)은 같은 자리에서 덧붙였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차질이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그리고 4월에 접어들면서 유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200달러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함수입니다.

12.4 스태그플레이션의 유령

배럴당 126달러가 의미하는 것은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1970년대에 서방 경제를 무너뜨린 악몽, 즉 물가는 치솟고 성장은 멈추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유령이 21세기에 돌아왔다는 신호입니다.

경제학에서 유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추산하는 데 흔히 쓰이는 경험칙(rule of thumb)이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2026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headline PCE) 인플레이션은 약 0.2%포인트 상승하고, GDP 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도 비슷한 범위입니다. 에너지 가격의 지속적인 10%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40bp(0.4%포인트) 밀어 올리고, 경제 성장률을 0.1~0.2%포인트 깎아 냅니다.

이 경험칙을 2026년 3월의 현실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개전 전 브렌트유 71달러에서 126달러로의 상승은 약 77%입니다. 경험칙대로라면 미국 인플레이션만 1.5%포인트 이상 추가 상승 압력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골드만삭스는 실제로 2026년 12월 기준 미국 PCE 인플레이션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에서 3.1%로, 가혹한 시나리오에서 3.6%로, 극도로 가혹한 시나리오에서 4.0%로 제시했습니다. 봄철 정점은 각각 2.9%, 4.6%, 4.9%입니다. OECD는 미국의 2026년 인플레이션이 전쟁 전 전망보다 1.2%포인트 높은 4.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유럽은 더 나빴습니다. EU는 전쟁의 심각도에 따라 인플레이션 전망을 2.6%에서 4.4% 사이로 제시했습니다. S&P 글로벌 마킷의 크리스 윌리엄슨(Chris Williamson)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월 유로존 PMI(구매관리자지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로존 PMI가 스태그플레이션의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중동 전쟁이 물가를 급격히 올리는 동시에 성장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3월 유로존 종합 PMI는 50.5로, 전월의 51.9에서 급락해 10개월 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확장과 수축의 경계선인 50에 거의 닿은 수준입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2026년 중 5%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물가 상승의 경로는 휘발유나 경유 가격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나프타(Naphtha) 가격이 오르고,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 포장재, 화학섬유, 의약품 원료 가격이 오릅니다. 그러나 2026년 호르무즈 위기에서 가장 위험한 전달 경로는 비료였습니다.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은 전 세계 요소(Urea) 수출의 3분의 1, 암모니아 수출의 4분의 1을 담당합니다. 중동의 비료 생산업체들은 저렴한 천연가스를 원료로 쓸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했습니다. 전 세계 질소 비료 수출의 최대 4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해협이 닫히면서 요소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50% 급등했고, 암모니아는 20% 올랐습니다.

브라질이 이 타격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브라질은 수입 비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 절반 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옵니다. 브라질은 전 세계 대두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옥수수와 설탕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합니다. 비료 부족이나 가격 급등이 장기화되면 농가들이 비료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수확량 감소로 직결됩니다. 2026년 하반기 글로벌 식량 위기의 그림자가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서 성장이 동시에 멈추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유가 급등은 가계에 보이지 않는 세금처럼 작용합니다. 주유비, 난방비, 전기요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나머지 소비가 줄어듭니다. 외식, 여행, 가전 구매가 미뤄집니다. 소비가 줄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듭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3월 둘째 주에 갤런당 5달러를 넘겼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갤런당 5달러를 먼저 돌파했습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카르멘 라인하르트(Carmen Reinhart) 교수,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올라가고 성장은 낮아질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기타 고피나스(Gita Gopinath)는 2026년 유가가 평균 85달러에 머물 경우에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전쟁 전 전망(3.3%)보다 0.3~0.4%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85달러가 아니라 126달러라면, 혹은 150달러라면 그 수치는 훨씬 더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종합 경제 분석 기관 솔어빌리티(SolAbility)는 시나리오별 GDP 손실을 모델링했습니다. 전쟁이 즉시 끝나는 경우 글로벌 GDP 손실은 5,900억 달러(세계 GDP의 0.54%). 전쟁이 수개월 지속되는 경우 손실은 3조 5,000억 달러(세계 GDP의 3.15%)까지 커집니다. 이 추산에는 석유와 LNG 충격뿐 아니라 비료 공급망 차질의 파급 효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Y파르테논(EY-Parthenon)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레고리 다코(Gregory Daco)는 미국의 향후 1년 내 경기침체 확률을 40%로 올렸습니다. 평시의 경기침체 확률은 15%입니다. 골드만삭스도 미국 경기침체 확률을 30%로 높였고, 실업률이 2월의 4.4%에서 연말 4.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모든 숫자 앞에서 중앙은행들은 꼼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딜레마를 보겠습니다. 인플레이션이 3~5% 범위로 치솟고 있으니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동시에 둔화되고 있으니 금리를 올리면 침체를 앞당깁니다.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3월 19일 예정되어 있던 금리 인하를 연기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전망을 올리고 GDP 성장률 전망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의 그 자체입니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멈추고, 중앙은행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 메리 데일리(Mary Daly)는 3월 중순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유소에서의 가격 상승과,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넘고 있다는 현실이 합쳐지면, 소비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Mark Zandi)는 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 머물면 휘발유 가격은 다음 주까지 갤런당 4달러에 근접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가속화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깎아먹고, 소비와 GDP와 일자리를 타격할 것입니다."

MIT의 에너지 경제학자 크리스토퍼 니텔(Christopher Knittel)은 시간의 변수를 짚었습니다. "1주일 전, 혹은 2주일 전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전쟁이 오늘 끝나면 장기적 파급은 꽤 작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입니다. 이것은 이 전쟁의 후유증이 오래 갈 것임을 의미합니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의 에너지 경제학자 루츠 킬리안(Lutz Kilian)은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카타르 LNG 시설의 일부 피해는 수리에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웨이트의 정유소와 걸프만 내 유조선들도 재정비와 연료 보급이 필요합니다. 최선의 상황에서도 회복 과정은 느릴 것입니다."

배럴당 126달러. 그 숫자 뒤에는 이런 연쇄가 놓여 있습니다. 유가 급등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올립니다. 비료 가격이 뜁니다. 식품 가격이 오릅니다. 물류비가 오릅니다. 모든 소비재 가격이 오릅니다. 가계가 지갑을 닫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줄입니다. 고용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오릅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집니다. 내리면 물가가 더 오릅니다.

1970년대와 2026년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Paul Volcker)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인플레이션을 때려잡았습니다. 대가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대량 실업이었지만, 미국의 국가 부채 규모가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의 미국 국가 부채는 약 36조 달러, GDP의 120%를 넘습니다. 금리를 1%포인트 올릴 때마다 연간 이자 비용이 수천억 달러 늘어납니다. 볼커식 해법은 더 이상 선택지에 없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유령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6달러, 166달러, 4.2%, 0.4%포인트, 3조 5,000억 달러, 40%. 그 숫자들 각각은 따로 떼어 놓으면 경제 모델의 변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합은 모델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현실을 바꿉니다.

3월 31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사실상 닫혀 있습니다. 브렌트유는 112달러 내외입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피치가 말한 "석유 절벽(oil cliff)"의 날짜, 4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략비축유 방출분이 소진되고, 제재 면제 러시아산 원유가 바닥나는 시점. 그때가 되면 지금의 126달러가 바닥이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숫자는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제13장 4억 배럴의 한계

13.1 IEA 역대 최대 전략비축유 방출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파리.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본부에서 파티 비롤(Fatih Birol) 사무총장이 긴급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전날 밤 32개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이 화상으로 모여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비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석유 시장의 도전은 규모에서 전례가 없습니다. 그래서 IEA 회원국들도 전례 없는 규모의 긴급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4억 배럴. 이 숫자가 기자회견장의 스크린에 떴습니다.

IEA가 1974년에 창설된 이래 52년 역사에서 여섯 번째 긴급 방출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선 다섯 번을 전부 합쳐도 이번 한 번에 미치지 못합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이 방출한 물량은 3,375만 배럴이었습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실제로 인도된 양은 1,100만 배럴.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IEA 전체가 풀어놓은 비축유는 6,000만 배럴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직후에는 두 차례에 걸쳐 약 1억 8,270만 배럴을 방출했고, 미국은 별도로 180일에 걸쳐 1억 8,000만 배럴을 추가로 시장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때가 IEA 역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2026년 3월의 4억 배럴은 그 기록을 두 배 넘게 갈아치웠습니다.

미국이 가장 큰 몫을 졌습니다.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이 전략비축유에서 1억 7,200만 배럴을 방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의 43%입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G7 국가들만으로 전체 방출량의 70%를 감당한다고 밝히면서, 프랑스의 분담분이 1,450만 배럴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일본과 한국, 독일과 영국이 나머지를 나누어 맡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합의 소식을 하루 먼저 보도한 화요일 밤, 브렌트유는 배럴당 87달러 선으로 급락했습니다. 전쟁 개시 직후 120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가격이 하룻밤 사이에 32달러 이상 빠진 겁니다. 그런데 수요일 비롤이 공식 발표를 마치자, 유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브렌트유는 발표 당일 4% 오른 91달러 부근에서 마감했습니다. 그 주 금요일에는 100달러를 다시 돌파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IEA의 역사적 방출 발표 이후 유가는 오히려 17% 넘게 상승했습니다.

시장이 이 거대한 숫자에 감동하지 않은 이유는 산수 때문이었습니다.

IEA 스스로가 밝힌 수치를 보겠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원유와 석유 제품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뒤 이 해협의 수출 물량은 전쟁 전 수준의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비롤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하루 약 1,500만 배럴의 원유와 500만 배럴의 석유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단된 상태"라고 인정했습니다.

4억 배럴을 하루 2,000만 배럴의 손실분으로 나누면 20일입니다. CNN은 이 계산을 보도하면서 "26일 안에 모두 흡수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네덜란드 은행 ING의 프란체스코 페솔레(Francesco Pesole) 전략가는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시장은 이 방출을 바주카포가 아니라 물총으로 보고 있다."

KPMG의 글로벌 석유가스 부문 리더 앤지 길디어(Angie Gildea)도 NPR에 보낸 성명에서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전략비축유, 수출 경로 우회, 해상 부유 재고를 포함한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은 위기의 가장자리에서 약간의 완화를 줄 수 있을 뿐, 구조적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재개를 대체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롤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의 마지막 발언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흐름이 회복되려면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재개되어야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수소 이니셔티브의 에너지 전문가 막심 소닌(Maksim Sonin)은 PBS 뉴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방출은 단기적 안정 효과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정지 상태로 남는다면, 그 효과는 줄어들 것입니다." ING의 페솔레는 한 문장을 더 남겼습니다. "실질적인 군사 작전의 전환이 없으면, 이란의 해협 장악력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기뢰 부설 능력을 감안하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석유 시장은 IEA의 4억 배럴 방출을 바주카포가 아니라 물총으로 보는 것입니다."

IEA의 가스 시장 경고도 있었습니다. 비롤은 아시아가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카타르와 에미리트에서 누락된 LNG 화물을 대체할 선택지는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이 약 20% 감소한 상태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습니다. 원유만이 아니었습니다. 걸프 산유국들은 2025년에 하루 330만 배럴의 정유 제품과 150만 배럴의 LPG를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이 거의 전부 멈췄습니다.

4억 배럴은 위기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해결이 올 때까지 세계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3주에서 4주 사이였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마저 장부 위의 숫자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에 더 짧아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13.2 미국 전략비축유의 물리적 제약

텍사스주 프리포트에서 남쪽으로 차를 몰면 걸프만 해안을 따라 500에이커의 평지가 나옵니다. 브라이언 마운드(Bryan Mound). 미국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4개 저장소 가운데 가장 큰 곳입니다. 지상에는 녹슨 파이프와 펌프 모터, 염분 섞인 바닷바람에 부식된 터미널이 늘어서 있을 뿐입니다. 정작 석유는 지하에 있습니다. 지표면 아래 600미터에서 1,200미터 사이, 소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굴들 속에 담겨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가 이 소금 동굴(Salt Cavern)을 선택한 이유는 비용이었습니다. 지상 탱크에 원유를 저장하면 배럴당 15달러에서 18달러가 듭니다. 소금 동굴은 배럴당 3.5달러입니다. 동굴 하나의 크기가 시카고 윌리스 타워를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큽니다. 폭 60미터, 깊이 600미터. 이런 동굴 60개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걸프만 해안을 따라 네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총 용량은 7억 1,350만 배럴입니다.

대통령이 긴급 방출 명령에 서명하면, 에너지부는 이 동굴에서 석유를 꺼내야 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동굴 꼭대기에서 물을 주입합니다. 물은 소금 동굴 속에서 원유보다 무거우니까 바닥으로 내려가고, 원유가 위로 밀려 올라옵니다. 올라온 원유는 파이프라인을 타고 지상 터미널로 이동하고, 거기서 유조선이나 배관을 통해 정유소로 갑니다.

이 과정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SPR에서 하루에 뽑아낼 수 있는 원유의 최대량은 440만 배럴입니다. 이 속도는 90일까지 유지됩니다. 그 뒤로는 동굴이 비어가면서 방출 속도가 줄어듭니다. 에너지부 장관이 방출을 공고하고, 입찰을 받고, 계약을 체결하고, 인도를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3일입니다.

13일.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풀어보겠습니다. 대통령이 월요일에 서명해도, 그 석유가 실제로 정유소에 도착해서 휘발유나 디젤로 정제되기 시작하는 건 2주 뒤입니다. 그 2주 동안 아시아와 유럽의 정유소들은 기존 상업 재고로 버텨야 합니다. 재고가 바닥나면 공장이 서고, 트럭이 멈추고, 주유소에 줄이 섭니다. 비축유 방출 뉴스가 화면에 떠도 주유소 앞의 줄은 그대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이 약속한 1억 7,200만 배럴을 120일에 걸쳐 방출한다면, 하루 평균 약 143만 배럴입니다. IEA 전체의 4억 배럴을 같은 기간으로 나누면 하루 약 330만 배럴입니다. 하루 2,000만 배럴이 사라진 구멍을 하루 330만 배럴로 메우는 셈입니다.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Natasha Kaneva) 원자재 전략 총괄은 더 비관적이었습니다. G7의 실제 방출 속도가 하루 최대 120만 배럴에 그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속도라면 4억 배럴을 전부 시장에 푸는 데 거의 1년이 걸립니다.

빠르게 쏟아부을 수도 없고, 느리게 흘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SPR의 탄창은 이미 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해 역대 최대 규모의 방출을 단행한 뒤, SPR 재고는 40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크리스 라이트 장관은 SPR 재충전을 위해 200억 달러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그 전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미국 SPR 보유량은 약 3억 9,530만 배럴이었습니다. 총 용량 7억 1,350만 배럴의 55% 수준입니다.

라이트 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밝혔습니다. 2022년의 급속한 방출이 저장 시설 자체에 구조적 손상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소금 동굴에 물을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주입하면 동굴 벽이 예상보다 빠르게 침식됩니다. 샌디아 국립연구소(Sandia National Laboratories)의 보고서에 따르면, 60개 동굴 가운데 이미 20개가 한 차례의 완전 방출을 소진한 상태였고, 동굴 하나는 가용 방출 횟수를 전부 써버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동굴의 저장 공간은 자연적인 지질 압력과 유지보수를 위한 감압으로 인해 매년 약 240만 배럴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수리에 필요한 비용은 1억 달러 이상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상 석유 저장소가 비상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상을 맞은 겁니다.

미국이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는 약 2,000만 배럴입니다. 3억 9,500만 배럴의 비축유는 미국 혼자 쓰면 20일 치에 불과합니다. 수입량 기준으로 계산해도 47일 치입니다. 여기서 1억 7,200만 배럴을 빼면 남는 양은 2억 2,300만 배럴. 이란 전쟁이 6개월 이상 길어지면, 미국은 다음 위기에 대비할 카드를 잃습니다. 허리케인 시즌은 6월에 시작됩니다.

13.3 러시아, 베네수엘라 제재 완화

3월 12일 목요일 밤, 미국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완화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3월 12일 기준으로 이미 유조선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의 구매와 인도를 30일간 허용하는 일반허가(General License)를 발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효기간은 4월 11일까지.

베센트는 이 조치를 "좁게 맞춤화된(narrowly tailored) 단기 조치"라고 불렀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안정을 촉진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 조치는 이미 운송 중인 석유에만 적용되며, 러시아 정부에 의미 있는 재정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장은 다르게 읽었습니다.

에너지 청정 대기 연구 센터(CREA, 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의 데이터가 그 이유를 보여줍니다. 3월 1일부터 15일까지, 러시아는 화석 연료 수출에서 하루 평균 5억 1,300만 달러(약 4억 7,200만 유로)를 벌어들였습니다. 15일간 총액은 77억 달러(약 71억 유로)였습니다. 2월 평균 대비 14%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급증에는 두 가지 원인이 겹쳤습니다.

첫째는 유가 자체의 상승입니다.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러시아산 우랄스(Urals) 원유의 가격도 함께 올랐습니다. CREA의 유럽-러시아 에너지 분석가 루크 위켄든(Luke Wickenden)은 CBS 뉴스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제재 완화 전에는 러시아산 원유가 국제 시세 대비 10%에서 20%의 할인율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할인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브렌트유와 사실상 같은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수요처의 변화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중동산 원유를 구할 수 없게 된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로 급하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CREA에 따르면, 3월 첫 3주 동안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일평균 수입량은 2월 대비 82% 급증했습니다.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 중 약 3분의 1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던 물량이었으니, 베이징 역시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늘려야 했습니다. 태국과 베트남 같은 새로운 구매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블룸버그의 선박 추적 데이터는 이 변화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수에즈 운하 동쪽 해상에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 18척이 매물로 떠 있었습니다. 총 1,350만 배럴. 2주 전에는 25척, 1,900만 배럴이었습니다. 팔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결과적으로 미국이 수년간 공들여 조여온 러시아 제재를 미국 스스로의 손으로 풀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3월 12일 자 기사 제목에서 이 사태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재무부의 러시아 제재 완화를 보도하면서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를 수습하려는 시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란을 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의 경제적 부작용을 수습하려고, 러시아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상황. 유로마이단프레스의 보도 제목은 더 직설적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석유 수입을 고치지 못했다. 미국 공군이 해줬다."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화석 연료 수입을 8개월 연속 감소시켜 2026년 1월에는 일평균 5억 100만 달러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최저치까지 끌어내렸습니다. 그런데 2월 28일에 미국이 이란을 폭격했고, 2주 만에 러시아의 일평균 수입은 5억 5,400만 달러로 뛰어올랐습니다. 8개월의 성과가 2주 만에 되돌려진 겁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월 15일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재를 풀면 러시아만 돕게 될 것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분석을 인용하며 "미국과 EU의 제재, 그리고 러시아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우리의 심층 타격으로 인해 러시아는 2026년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의 적자에 직면했다"고 밝혔습니다.

베네수엘라 쪽에서는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3월 18일,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Petróleos de Venezuela S.A.)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광범위한 허가를 발급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PDVSA로부터 직접 원유를 구매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조치입니다. 워싱턴이 수년간 베네수엘라 정부 및 석유 부문과의 거래를 사실상 봉쇄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180도의 정책 전환이었습니다.

배경을 잠깐 되짚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1월에 군사 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고 체포한 뒤,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미국이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가 2월 중순에, 내무부 장관 더그 버검이 3월 초에 각각 카라카스를 방문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의회는 미국의 압력 아래 석유 관련 세제를 대폭 낮추는 개혁안을 통과시켰고, 셸(Shell)과 셰브론(Chevron)이 대규모 생산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에도 베네수엘라의 원유가 당장 시장에 쏟아지지는 않습니다. 아틀란틱 카운슬의 라틴아메리카 전문가 제프 램지(Geoff Ramsey)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생산량의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려면 12개월에서 18개월이 걸립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1999년 우고 차베스 집권 당시 하루 350만 배럴에서 2020년에는 40만 배럴 이하로 추락한 상태였습니다. 인프라가 황폐해진 유전을 되살리려면 1,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와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산입니다.

백악관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은 존스법(Jones Act,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에 미국 국적선을 사용하도록 한 1920년대 법률) 면제까지 60일간 발동하면서, 이 조치가 이란 전쟁 기간 동안 "석유, 천연가스, 비료, 석탄 같은 필수 자원이 미국 항구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3월 한 달 동안 미국은 이란을 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이 만든 유가 폭등을 잡기 위해 러시아 제재를 풀었고,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글로벌 시장에 끌어올렸고, 자국 항만 보호법까지 일시 중단했습니다. 이란 하나를 누르려다 나머지 전선을 전부 양보한 셈입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반발이 일었습니다. 아틀란틱 카운슬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기고문을 게재했습니다. "미국이 나사를 풀기 시작하면, 일부 유럽 국가들도 브뤼셀에서 같은 조치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 압력은 이미 눈에 보입니다."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EU에 러시아 에너지 제재를 중단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유럽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러시아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이 "전략적 실수"라고 경고했지만, 독일의 주유소들은 하루에 한 번만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긴급 규제를 도입해야 했고, 오스트리아는 주 3회로 가격 인상을 제한했습니다.

에너지 위기는 동맹의 결속까지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겹의 아이러니가 더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제재 완화로 풀어준 러시아산 원유 중 상당수는 해상에 떠다니던 물량이었습니다. 유조선에 실린 채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원유입니다. 2월 말 기준으로 약 690만 톤, 금액으로 23억 유로(약 25억 달러) 상당이었습니다. 이 유조선들이 팔려나가면, 빈 배가 다시 러시아 항구로 돌아가 새 화물을 실을 수 있습니다. CREA는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좌초된 석유를 처분하면 유조선 용량이 해방되고, 이는 러시아의 수출 능력을 제약하던 병목을 풀어줍니다."

제재 완화는 30일짜리 한시적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그 30일 동안 러시아에 흘러들어간 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의 비용을 충당하는 데 쓰입니다. 미사일 한 발, 드론 한 기의 값으로 환산됩니다. 유로마이단프레스는 3월 25일 자 기사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재 유예가 4월 초에 만료되면, 워싱턴은 누구의 전쟁에 자금을 대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13.4 "숨 쉴 공간"의 소멸

3월 마지막 주, BCA 리서치(BCA Research)의 수석 지정학 전략가 마르코 파피치(Marko Papic)가 고객들에게 리서치 노트를 보냈습니다. 제목은 없었지만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4월 중순이 절벽이다.

파피치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잃은 석유 공급량은 하루 450만에서 500만 배럴입니다. 글로벌 공급의 약 5%에 해당합니다. 이 수치 자체는 과거의 위기들, 예컨대 2011년 리비아 내전이나 2019년 사우디 아람코 시설 피격 때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숫자가 고정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파피치는 세 가지 임시 완충장치를 나열했습니다. 첫째, IEA의 4억 배럴 전략비축유 방출. 둘째, 미국이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에 대해 발급한 한시적 제재 유예. 셋째,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암시함으로써 선물 시장 트레이더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도록 한 심리적 효과. 이 세 가지가 지금까지 유가를 200달러가 아니라 100달러 안팎에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 파피치의 분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모두 만료일이 있습니다.

4억 배럴의 비축유가 시장에 흡수되는 데는 약 3주에서 4주가 걸립니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유예는 4월 11일에 종료됩니다.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최후통첩 기한은 4월 6일입니다. 파피치는 이 세 가지 시한이 수렴하는 지점을 4월 19일경으로 잡았습니다.

"그 숫자는 4월 중순에 두 배가 됩니다. 역사상 가장 큰 원유 공급 손실이 됩니다."

CNBC는 파피치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세계는 4월 중순에 석유 절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전략비축유와 제재 면제 물량, 러시아와 이란의 석유 공급이 모두 바닥나기 때문입니다."

파피치만 이런 경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골드만삭스의 상품 리서치 공동 총괄 단 스트루이벤(Daan Struyven)은 3월 22일 고객 노트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골드만삭스 모델링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충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이 정상 수준의 5%에 머무는 상황이 6주간 지속된 뒤 한 달에 걸쳐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시나리오를 기본 가정으로 잡았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누적 석유 손실은 8억 배럴을 넘깁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더 심각한 시나리오도 공개했습니다. 해협 통과가 3월 내내 억제된 상태로 유지될 경우, 유가는 2008년의 최고치인 배럴당 147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3월 중순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영향이 2022년 4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최대 생산 손실보다 17배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는 한 발 더 나갔습니다. "2026년에 배럴당 200달러가 가능성의 범위 밖에 있지 않다."

실물 시장은 이미 선물 시장보다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걸프에서 실제 원유 인도 가격을 반영하는 두바이 벤치마크는 전쟁 개시 이후 76% 급등해 배럴당 약 126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브렌트유 선물의 상승폭은 같은 기간 36%였습니다. 종이 위의 가격과 실물 가격 사이의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정유소와 석유화학 공장에 실제로 도착하는 원유가 부족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3월 10일자 단기 에너지 전망에서 브렌트유가 향후 두 달간 배럴당 95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호르무즈 해협이 한 분기 동안 폐쇄될 경우 글로벌 GDP 성장률이 2.9%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모델링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기 침체 확률을 25%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미 각국 정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3월 24일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 기관의 근무일을 주 4일로 축소했습니다. 독일은 주유소가 하루에 한 번만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긴급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주 3회로 제한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경제장관 볼프강 하트만스도르퍼(Wolfgang Hattmannsdorf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기 시에 통근자와 기업의 희생 위에 위기 수혜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은 갤런당 3.98달러까지 올랐습니다. 한 달 전보다 1달러 높은 가격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평균 5.84달러, 일부 주유소에서는 7달러를 넘겼습니다.

이 숫자들을 하나로 모아 놓으면, 파피치가 말한 "절벽"의 윤곽이 보입니다.

3월의 마지막 주, 세계 경제가 서 있는 위치는 이렇습니다. 전략비축유라는 소화기는 물을 쏟아붓고 있지만, 불길은 소화기보다 큽니다. 러시아 제재 완화라는 응급 수혈은 4월 11일에 바늘이 빠집니다. 트럼프의 "곧 끝난다"는 말은 매주 반복되지만,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1리터의 석유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배경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가 수출을 늘려 그 공백을 채우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서, 아직 숨 쉴 공간은 있습니다."

CNBC는 이 발언 바로 뒤에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그 숨 쉴 공간은 실재하지만,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숨 쉴 공간이 사라진 뒤에 무엇이 오는지는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루 2,000만 배럴의 공급이 차단된 상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된 사례는 석유 산업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1973년 아랍 석유 금수는 수출 차단이었지 물리적 봉쇄가 아니었고,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호르무즈 해협 자체가 완전히 닫힌 적은 없습니다. 2026년 3월의 세계는 인류가 석유에 의존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파피치가 짚은 또 하나의 위험이 있습니다. 생산 자체의 중단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걸프 산유국들은 생산한 석유를 실어 보낼 곳이 없습니다. 저장 탱크가 가득 차면 더 이상 뽑아 올릴 수 없습니다. 우물을 닫아야 합니다. IEA의 3월 석유 시장 보고서는 이미 중동 지역에서 300만 배럴 이상의 정유 능력이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공격을 받았거나, 수출 경로가 끊겨서입니다. 파피치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을 중단한 유정은 다시 여는 데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립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내일 열린다 해도, 석유가 정상 속도로 흐르기까지는 추가 시간이 필요합니다. 셰브론의 CEO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해협이 다시 열려도, 적절한 유종의 원유를 적절한 장소로 보내려면 몇 주가 걸릴 것입니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한꺼번에가 아니라 서서히 줄어들 것입니다."

4억 배럴은 다리가 무너지는 속도를 3주 늦춰준 임시 교각이었습니다. 3주 뒤에도 다리가 복구되지 않으면, 임시 교각이 견딜 수 있는 무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4월의 달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그 한계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미국 전략비축유(SPR) 저장 시설





제14장 파이프라인으로는 바다를 대신할 수 없다

2026년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항구. 홍해 수평선 위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의 검은 선체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한 척, 두 척이 아니었습니다. 해운 분석업체 보르텍사(Vortexa)의 위성 데이터에는 얀부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인 VLCC가 스무 척이 넘게 찍혔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얀부에서 하루 평균 76만 배럴의 원유가 선적되었습니다. 3월 셋째 주, 그 숫자가 하루 410만 배럴을 넘어섰습니다. 다섯 배가 넘는 물량이었습니다. 세계 석유 시장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이후 사활을 걸고 매달린 곳, 아라비아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이 항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호르무즈가 닫히자 세계는 플랜 B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시선은 중동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철 파이프라인들로 모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이 세 나라가 보유한 우회 파이프라인이 바다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데스크를 돌았습니다. 파이프라인의 명목 용량을 합산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산술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숨구멍이 될 수 있었지만, 바다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14.1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페르시아만의 유조선들을 불태우고 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목줄을 잡힌 수출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부 해안의 아브카이크(Abqaiq) 석유 처리 시설에서 출발해 아라비아반도를 1,200킬로미터 가로지른 뒤 홍해 연안의 얀부(Yanbu) 항구에 도달하는 파이프라인. 이름은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 별칭은 페트로라인(Petroline)이었습니다. 56인치 직경의 본관과 48인치 직경의 보조관, 두 줄기의 강철 혈관이 사막 아래를 관통했습니다.

45년을 기다린 플랜 B가 마침내 작동할 때가 왔습니다.

2026년 3월 10일, 사우디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Amin Nasser) 최고경영자는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말했습니다. "동서 파이프라인의 완전 가동(full capacity)이 며칠 안에 이루어집니다." 다음 날인 3월 11일, 보조관으로 천연가스액(NGL)을 보내던 48인치 라인이 원유 수송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파이프라인 전체 용량이 하루 700만 배럴에 도달했습니다. 평시에 이 관을 통해 흐르던 원유는 하루 약 200만 배럴이었습니다. 3배 이상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나세르 CEO는 같은 통화에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700만 배럴 가운데 약 200만 배럴은 사우디 서부 해안의 정유소 두 곳으로 가야 합니다. 얀부에는 사우디 아람코와 엑손모빌의 합작 정유소인 삼레프(SAMREF)가 하루 40만 배럴을, 아람코와 중국 시노펙의 합작 정유소인 야스레프(YASREF)가 하루 43만 배럴을 처리합니다. 국내 정유 물량을 빼면 수출에 쓸 수 있는 분량은 하루 약 500만 배럴이었습니다.

그런데 500만 배럴이 파이프라인 끝에 도착한다고 해서 500만 배럴이 바다로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두 번째 병목이 나타났습니다. 얀부 항구의 선적 능력이었습니다.

얀부 항은 홍해 최대 항구이고, 34개 선석(berth)과 10개 터미널을 갖추고 있습니다. 명목상 연간 2억 1천만 톤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그러나 원유 선적에 쓸 수 있는 터미널은 얀부 북부(Yanbu North)와 얀부 남부(Yanbu South) 두 곳뿐이었습니다. 이 두 터미널의 합산 적재 능력은 하루 약 450만 배럴. 에너지 컨설팅 업체 보르텍사는 전시 상황에서의 실효 적재 능력을 하루 약 300만에서 400만 배럴로 추산했습니다. 유럽 비즈니스 매거진(European Business Magazine)은 이 격차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배달할 수 있다. 항구가 발송하지 못한다. 그 사이의 간극은 공학적 결함이 아니라 선석과 저장 탱크와 유조선 스케줄의 물리학이다."

실제 숫자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3월 셋째 주, 얀부에서 적재된 원유는 하루 410만 배럴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비슷한 수준에서 정체했습니다. 460만 배럴까지 올라간 날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최대치였습니다. 파이프라인이 700만 배럴을 밀어내고 있어도 항구를 통과하는 실제 물량은 400만에서 460만 배럴 사이에 갇혔습니다. 파이프라인의 용량과 항구의 처리 능력 사이에 하루 200만 배럴 이상의 간극이 존재했고, 그 간극은 공학으로 메울 수 없었습니다. 선석을 늘리려면 수년이 걸립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제가 있었습니다. 얀부에서 기름을 실은 유조선이 아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해 남단의 바브 엘 만데브 해협(Bab el-Mandeb Strait)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랍어로 "눈물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 해협은 예멘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사이에 위치합니다. 폭 26킬로미터. 그리고 이곳의 예멘 쪽 해안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Houthis) 무장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항의하며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대함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습니다.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약 90%가 홍해를 피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 불과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 후티 반군이 이란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3월 27일, 로이터 통신은 후티 고위 지도자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택지에 대해 군사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어 있다.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지도부가 결정할 것이다." 같은 날, 영국 해상무역운영센터(UKMTO)는 홍해와 바브 엘 만데브 해역의 위협 수준을 "상당함(substantial)"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의 앞문을 피해 파이프라인으로 원유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해협, 또 다른 위협이었습니다. 앞문을 잠근 이란은 대리인을 통해 뒷문 앞에도 서 있었습니다.

에너지 애스펙츠(Energy Aspects)의 공동 창업자 리처드 브론즈(Richard Bronze)는 CNN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티가 선박을 위협하기 시작하면, 최소한 아시아까지의 항해 시간이 수 주 추가됩니다. 그것은 아시아의 원유 공급 부족을 더 깊게 만들 것입니다."

3월의 마지막 주말인 28일,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2월 28일 이후 후티의 첫 대규모 공격이었습니다. 그 전날, 후티 정부의 무함마드 만수르(Mohammed Mansour) 부(副)정보장관은 CNN에 말했습니다. "바브 엘 만데브 해협을 폐쇄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선택지이며, 그 결과는 미국과 이스라엘 침략자들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45년을 기다린 플랜 B는 작동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700만 배럴을 밀어냈고, 얀부 항은 사상 최대의 선적량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항구의 물리적 병목이 파이프라인의 용량을 삼켰고, 홍해 남단의 군사적 위협이 우회로의 안전을 잠식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의 위험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의 주소를 바꿔놓은 것뿐이었습니다.

14.2 UAE 아부다비 파이프라인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30년 늦게, 그러나 같은 계산으로 움직였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수출이 전면 중단된다. 대안이 필요하다.

2006년 설계를 시작하고, 2008년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시공은 중국석유공정건설공사(CPECC)가 맡았습니다. 비용은 당초 예상인 33억 달러를 10억 달러 이상 초과한 42억 달러(약 5조 7천억 원)로 불어났습니다. 2012년 6월, 아부다비 내륙의 합샨(Habshan) 유전에서 오만만(Gulf of Oman) 연안의 푸자이라(Fujairah) 항구까지 380킬로미터를 잇는 48인치 파이프라인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아부다비 원유 파이프라인(ADCOP, Abu Dhabi Crude Oil Pipeline).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건너뛰는 경로였습니다.

명목 용량은 하루 150만 배럴. 최적화 조건에서 최대 180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평시에는 하루 약 110만 배럴의 아부다비산 원유가 이 관을 통해 푸자이라로 흘러갔습니다. UAE 원유 수출의 약 60%에 해당하는 양이었습니다. 나머지 40%는 여전히 호르무즈를 통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파이프라인은 위기 시의 부분 우회용으로 설계된 것이지, 해협의 완전한 대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기가 닥치자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가동률을 높였습니다. 무역 정보 업체 클플러(Kpler)의 나빈 다스(Naveen Das) 선임 석유 분석가는 CNBC에 말했습니다. "ADCOP 파이프라인은 현재 가동률 71% 수준으로 운영 중이며, 하루 약 44만 배럴의 여유 용량이 남아 있습니다. ADNOC은 필요하면 일시적으로 하루 180만 배럴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3월 한 달간 푸자이라를 통한 원유 수출은 하루 평균 162만 배럴을 기록했습니다. 2월의 117만 배럴에서 38%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번에도 위협이었습니다. 사우디의 경우처럼 바다 위의 위협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위협이었습니다.

3월 3일, 푸자이라 석유 산업단지(Fujairah Oil Industry Zone)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UAE 방공 시스템이 요격한 드론의 잔해가 저장 탱크 위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JSW 인프라스트럭처가 운영하는 약 300만 배럴 용량의 저장 탱크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보팍(Vopak), VTTI, MENA, GPS 등 주요 저장 시설 운영사들은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벙커링(선박 급유) 작업은 바지선에 남아 있는 재고분으로만 제한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3월 6일,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푸자이라 항구에서의 모든 작업을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3월 14일, 토요일. 또 다시 드론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푸자이라 석유 산업단지에 직접 명중했습니다. AFP 통신 기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시설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가 선명했습니다. 푸자이라 미디어 사무소는 "민방위 팀이 즉각 대응하여 화재 진화에 나서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원유 및 연료 적재 작업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블룸버그는 이날 저녁 얀부와 마찬가지로 푸자이라의 원유 선적 포인트에 유조선이 한 척도 없다는 추적 데이터를 보도했습니다.

3월 16일 월요일, 세 번째 드론 타격이 보고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석유화학 시설 인근이었습니다. 같은 날, 푸자이라 남동쪽 23해리(약 43킬로미터) 해상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에도 투사체가 떨어졌습니다. 선체에 경미한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란은 왜 호르무즈 바깥에 있는 푸자이라를 쳤을까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란의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가 3월 15일 국영 이르나(IRNA) 통신에 밝힌 내용이 실마리를 줍니다. "미국이 하르그 섬(Kharg Island)을 공격하는 데 사용한 무기는 UAE에서 발사되었다. 두바이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3월 13일, 미국은 이란 최대의 원유 수출항인 하르그 섬의 군사 시설 90곳 이상을 타격했습니다. 그 공격의 발진 기지가 UAE였다는 것이 이란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UAE의 푸자이라, 제벨 알리(Jebel Ali), 칼리파(Khalifa) 항구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이 시설들의 주변 주민과 노동자들은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경고를 이란 국영 미디어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항구가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바다의 병목을 우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일과 드론의 사정거리를 우회할 수는 없습니다. 푸자이라는 이란 본토에서 불과 250킬로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란의 장거리 자폭 드론과 탄도미사일은 그 거리를 쉽게 넘습니다. 엔지니어링 뉴스 레코드(Engineering News-Record)가 정리한 한 문장이 상황을 압축합니다. "호르무즈 우회 인프라는 짧은 교란에 대비해 설계되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ADNOC의 루와이스(Ruwais) 정유소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월 10일,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소 가운데 하나인 이 시설이 드론 피격으로 발생한 화재 때문에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루와이스는 페르시아만 해안에 위치해 있어 ADCOP 파이프라인의 우회 경로와는 별개이지만, UAE 전체의 정유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원유를 수출할 수 있어도 정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글로벌 리스크 매니지먼트(Global Risk Management)의 수석 분석가 아르네 로만 라스무센(Arne Lohmann Rasmussen)은 미들 이스트 아이(Middle East Eye)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원유 위기가 아닙니다. 디젤과 항공유의 위기입니다. 정제 제품(distillate)의 위기입니다."

ADCOP 파이프라인은 설계 목적에 충실하게 작동했습니다. 원유를 호르무즈 바깥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파이프라인의 설계 전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던 2008년, 이란의 드론 기술은 초보적 수준이었습니다. 2026년의 이란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자폭 드론과 정밀 탄도미사일을 대량 보유한 나라였습니다. 40년 전의 위험 평가 위에 세워진 인프라가, 40년 뒤의 전쟁 기술 앞에 서 있었습니다.

14.3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

이라크의 상황은 사우디아라비아나 UAE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사우디와 UAE에게 파이프라인은 우회로였습니다. 기존 수출의 일부를 다른 경로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라크에게 파이프라인은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전쟁 이전, 이라크는 하루 약 420만에서 4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습니다. 이 가운데 330만 배럴 이상이 남부 바스라(Basra) 지역의 항구를 통해 페르시아만으로 나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이 경로가 전면 차단되었습니다. 3월 초,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이라크 남부의 유조선과 항만 시설을 타격하면서 바스라 터미널의 작업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수출이 멈추면 생산도 멈춰야 합니다. 저장 탱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유를 뽑아 올려도 실어 보낼 곳이 없으면, 탱크가 가득 차는 순간 유정(油井)의 밸브를 잠가야 합니다. 석유부 장관 하이얀 압둘 가니(Hayan Abdul Ghani)는 이라크의 원유 생산이 하루 140만에서 15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쟁 전 생산량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수출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이라크 정부 예산의 약 90%가 석유 수출 수입에 의존합니다. 수출이 제로라는 것은 국가 재정이 제로에 근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이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ITP, Iraq-Turkey Pipeline)이었습니다.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Kirkuk) 유전에서 출발해 970킬로미터를 달려 튀르키예 지중해 연안의 제이한(Ceyhan) 항구에 도달하는 이 송유관은, 이라크가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육상 경로였습니다.

파이프라인은 46인치와 40인치 두 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설계 용량은 합산 하루 160만 배럴이었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이 정상 가동되었다면 이라크 남부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지중해로 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럽 시장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이 파이프라인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유를 이해하려면 2023년 3월로 돌아가야 합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법원이 튀르키예 정부에 약 15억 달러의 배상금을 물리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바그다드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쿠르드 자치정부(KRG)가 독자적으로 원유를 수출한 것을 튀르키예가 허용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었습니다. 튀르키예는 판결에 반발하며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갔습니다. 쿠르드 지역의 원유 생산은 약 72% 급감했습니다.

그 뒤 2년 반 동안 바그다드와 에르빌(Erbil, KRG 수도)은 수출 재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습니다. 2025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임시 합의가 이루어져 하루 18만에서 19만 배럴 수준의 수출이 재개되었습니다. 파이프라인 본래 용량의 12%에 불과한 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왔습니다.

바그다드는 에르빌에 요청했습니다. 키르쿠크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쿠르드 지역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제이한으로 보내겠다. 하루 최소 10만 배럴, 가능하면 25만 배럴. KRG 지역 유전의 생산분까지 합치면 하루 45만 배럴이 가능하다. 세계 경제가 원유를 갈구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제안처럼 들렸습니다.

에르빌은 거절했습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그다드가 2026년 1월부터 쿠르드 지역에 부과한 달러 거래 제한을 풀어야 합니다. 이 조치로 쿠르드 상인들은 수입품 결제에 필요한 외화를 확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에르빌은 이를 "질식시키는 경제 봉쇄"라고 불렀습니다. 관세 제도 개편, 쿠르드 은행의 공식 환율 접근권 보장, 시아파 민병대의 쿠르드 석유 시설 공격 중단도 요구 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바그다드는 이 연계를 거부했습니다. 원유 수출과 관세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 바그다드의 입장이었습니다. 석유부는 공식 성명에서 KRG의 태도를 "이라크가 직면한 중대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헌법 제110조, 111조, 112조를 인용하며 석유와 가스가 모든 이라크인의 공동 자산이라는 점을 환기시켰습니다.

에르빌의 쿠르드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Masoud Barzani)는 양측에 만남을 촉구했습니다. "분열을 깊게 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을 막아야 합니다."

3월 16일, 석유부 장관 압둘 가니는 대안을 공개했습니다. KRG 영역을 우회하는 경로, 즉 모술(Mosul)을 경유하는 옛 파이프라인 구간을 복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약 100킬로미터의 수압 시험만 남아 있으며, 일주일 안에 완료될 수 있다." 이 구간이 열리면 하루 20만에서 25만 배럴의 키르쿠크 원유를 바그다드가 독자적으로 제이한까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간은 2014년 이후 이슬라믹 스테이트(ISIS)와 쿠르드노동자당(PKK) 등 무장 단체들의 반복된 폭탄 테러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수리에는 수개월, 어쩌면 수년이 걸릴 수 있었습니다. 미들 이스트 인스티튜트(Middle East Institute)의 예레반 사이드(Yerevan Saeed) 연구원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바그다드가 내일 당장 복구 작업에 착수한다 해도, 그 일정만으로 국가 비상 상황의 한가운데에서는 비현실적입니다."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튀르키예와의 파이프라인 협정 자체가 2026년 7월 27일에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튀르키예의 알파르슬란 바이락타르(Alparslan Bayraktar) 에너지장관은 아나돌루 통신에 "위기 이후 새로운 에너지 구조(architecture)가 열릴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유리한 조건의 새 협정을 끌어내려는 앙카라의 계산이 엿보였습니다.

3월 18일, 마침내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KRG의 마스루르 바르자니(Masrour Barzani) 총리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나라가 직면한 비상 상황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책임을 고려하여, 쿠르드 지역 파이프라인을 통한 원유 흐름을 최대한 빨리 허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라크 국영 북부석유회사(North Oil Company)는 하루 25만 배럴의 키르쿠크 원유가 제이한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01.99달러로 1.38% 하락했고,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94.39달러로 1.89% 떨어졌습니다.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숨은 짧았습니다. 25만 배럴. 전쟁 전 바스라에서 나가던 하루 330만 배럴의 7.6%에 불과한 양이었습니다. 미들 이스트 이코노믹 서베이(MEES)의 걸프 지역 분석가 예사르 알 말레키(Yesar Al Maleki)는 더 내셔널(The National)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조치들이 제한적인 수출 역량을 회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바스라 수출의 손실을 보상할 수는 없습니다. 남부의 대량 원유를 다른 경로로 돌릴 수 있는 현실적 인프라는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라크의 파이프라인 이야기에는 비극적인 구조가 숨어 있었습니다. 관(管)이 없어서 기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관은 있었습니다. 160만 배럴 용량의 파이프라인이 키르쿠크에서 제이한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관을 막고 있는 것은 물리적 손상만이 아니었습니다. 바그다드와 에르빌 사이의 수십 년 묵은 분쟁, 수입 배분의 앙금, 달러 거래 제한, 헌법 해석의 충돌, 국제 중재 판정의 여파, 그리고 튀르키예의 전략적 계산. 이 모든 것이 파이프라인 안에 보이지 않는 밸브를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석유 국가가 석유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미들 이스트 인스티튜트의 예레반 사이드는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이것은 주권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비입니다. 그리고 그 마비는 이라크의 경쟁국들만이 감당할 여유가 있는 선물입니다."

14.4 합산 900만 vs 2,000만

숫자를 모아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 설계 용량 하루 700만 배럴. 국내 정유소 공급분 200만 배럴을 빼면 수출 가능 분량 500만 배럴. 그러나 얀부 항구의 실효 적재 능력은 400만에서 460만 배럴 사이. 파이프라인이 밀어내는 양과 바다로 나가는 양 사이에 간극이 있습니다.

UAE의 ADCOP 파이프라인. 명목 용량 하루 150만 배럴, 최대 180만 배럴. 3월 한 달 평균 실제 수출량 162만 배럴. 그러나 푸자이라 항구가 반복적인 드론 타격으로 간헐적으로 작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 설계 용량 하루 160만 배럴. 3월 18일 재개 이후 실제 유량 25만 배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월에 발표한 호르무즈 해협 팩트시트에서 이 파이프라인들의 현실을 정리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만이 호르무즈를 우회하여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가동 중인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로 사용 가능한 용량은 추정 350만에서 550만 배럴/일(b/d)입니다."

평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입니다. 유엔 자료 기준, 2024년 이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컨덴세이트(응축수)는 하루 1,400만 배럴, 정제 석유 제품이 600만 배럴이었습니다.

IEA의 추정대로 실효 우회 용량이 하루 350만에서 550만 배럴이라면, 시장에 남는 공급 부족은 하루 1,450만에서 1,650만 배럴입니다.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체 일일 생산량(약 1,000만에서 1,200만 배럴)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 격차를 메울 산유국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산술에는 숨겨진 차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보낼 수 있는 것은 원유(crude oil)입니다. 끈적한 검은 기름. 정유 공장에서 가공해야 비로소 디젤, 항공유(제트유), 나프타, LPG가 됩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던 하루 2,000만 배럴 가운데 약 600만 배럴은 이미 정제를 마친 석유 제품이었습니다. 유럽이 수입하는 디젤의 약 30%, 항공유의 약 절반이 중동에서 왔습니다. 파이프라인으로는 이 정제 제품을 대량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원유용 파이프라인은 원유만 보냅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액화천연가스(LNG)였습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의 LNG 수출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 세계 LNG 교역의 약 4분의 1이 호르무즈를 통과합니다. LNG는 영하 162도로 냉각해야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질입니다. 이것을 파이프라인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Q-맥스(Q-Max)라 불리는 특수 운반선에 실어야만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 선박들은 오직 페르시아만의 바닷길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카타르에게 우회 파이프라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쿠웨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나라는 호르무즈가 닫히면 수출이 전면 중단됩니다. 골드만삭스는 카타르와 쿠웨이트의 석유 생산이 25%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트랜스버설 컨설팅(Transversal Consulting)의 설립자이자 《사우디 주식회사(Saudi Inc.)》의 저자 엘렌 왈드(Ellen Wald)는 미들 이스트 아이에 이런 구조적 딜레마를 지적했습니다. "동서 파이프라인으로 사우디의 원유 수출을 최대화하려면, 그 파이프라인이 천연가스액과 석유 제품을 운반하던 기능을 포기해야 합니다." 원유를 살리면 가스가 죽고, 가스를 살리면 원유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나의 파이프라인에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엔지니어링 뉴스 레코드는 이 상황의 본질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파이프라인 시스템은 원유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탄화수소의 전체 스펙트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제 제품, 즉 디젤, 항공유, 나프타, 액화석유가스(LPG)는 별도의 인프라나 해상 운송을 필요로 하며, 우회 파이프라인은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은 산술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산술은 잔인했습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던 물량: 하루 2,000만 배럴. 파이프라인 우회로의 실효 공급 능력: 하루 350만에서 550만 배럴. 시장에 남는 절대적 공급 부족: 최소 하루 1,450만 배럴.

이 숫자를 달러로 환산하면 그 무게가 체감됩니다. 배럴당 100달러 기준으로, 하루 1,45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은 하루 14억 5천만 달러(약 2조 원)어치의 에너지가 세계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한 달이면 435억 달러(약 59조 원)입니다.

사우디와 UAE의 파이프라인은 위대한 공학적 성취였습니다. 40년 전에 만든 보험이 40년 뒤에 작동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람코 CEO 나세르의 말처럼, 사우디는 "고객들의 요구 사항 대부분을 아시아, 지중해, 북서유럽의 저장 시설을 활용하여 충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같은 통화에서 한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분쟁이 장기화되지 않는다면(provided this does not persist in the long term)."

그 조건부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은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이지, 바다를 대체하는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단기간의 숨구멍이지, 장기적인 해법이 아니었습니다.

강철 관은 사막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산을 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와 600만 배럴의 정제 제품과 세계 LNG 교역의 4분의 1을 동시에 싣고 나르는 바다의 수송 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21마일 폭의 수로가 막히면 1,200킬로미터의 파이프라인으로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없다는 것. 이것이 2026년 3월, 세계가 배운 산술이었습니다.



트랜스아라비아 파이프라인(Tapline) 표지판





제15장 석유 너머

15.1 비료 위기

2026년 3월 5일, 미국 일리노이주 디케이터의 비료 도매업체 사무실. 직원이 뉴올리언스 항구발 요소 가격을 확인하고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2월 27일 금요일에 메트릭톤당 516달러였던 요소가 일주일 만에 683달러로 뛰어 있었습니다. 32% 상승. 3월 9일까지의 누적 상승폭은 77%에 달했습니다.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한 분석가는 12월에 요소 1톤을 사려면 옥수수 75부셸이면 됐는데, 3월 첫째 주에는 126부셸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습니다. 농부의 언어로 말하면, 비료를 사기 위해 곡물을 68% 더 팔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휘발유 가격이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동안, 비료 시장은 석유보다 빠르게, 석유보다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규모에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석유만의 동맥이 아닙니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비료 무역량의 3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2025년 무역 지도가 그 실체를 보여줍니다. 2025년 기준 글로벌 요소 무역량은 연간 약 5,080만 톤. 이 가운데 1,060만 톤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UAE, 이란, 바레인 등 해협 안쪽의 국가들에서 나옵니다. 글로벌 요소 수출의 35%, 암모니아 수출의 약 30%가 이 좁은 수로에 묶여 있었습니다.

요소를 만드는 과정은 천연가스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버-보슈(Haber-Bosch) 공정이라 불리는 이 과정에서, 공기 중의 질소와 천연가스에서 뽑아낸 수소를 고온 고압으로 결합시켜 암모니아를 합성합니다. 암모니아를 다시 한 번 가공하면 요소가 됩니다. 걸프 국가들이 비료 강국이 된 이유는 농업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천연가스가 싸고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가스전 위에 비료 공장을 세운 셈입니다. 그래서 가스 생산이 멈추면, 비료 생산도 함께 멈춥니다.

3월 2일, 이란의 드론이 카타르 라스 라판 LNG 시설을 타격한 뒤,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LNG 생산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LNG가 멈추자, 같은 공장에서 요소를 만들던 하류 생산라인도 정지했습니다. 수십만 톤의 비료가 시장에서 증발했습니다. 여기에 중국이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비료 수출 제한을 발동했다는 로이터 보도가 겹쳤습니다. 공급의 벽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올라간 것입니다.

봉쇄가 공포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농업의 시간표에 있습니다. 북반구의 봄 파종은 3월에서 5월 사이에 집중됩니다. 옥수수의 경우, 발아 직후 줄기가 형성되는 시기에 질소가 토양에 투입되지 않으면 세포 구조가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수확량의 손실은 영구적입니다. 페르시아만에서 미국 걸프만(뉴올리언스)까지 요소를 실은 배가 도착하는 데 통상 30일이 걸립니다. 2월 28일 해협이 닫힌 시점에서 역산하면, 3월 말과 4월의 핵심 시비 기간에 도착해야 할 물량이 바다 위에 발이 묶인 것입니다.

미국 농업국 연맹(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의 지피 두발 회장이 백악관에 보낸 서한은 절박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비료 수송선의 안전 통항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고, 수입 비료에 부과된 상계관세의 일시 유예와, 항만 및 철도 용량의 긴급 확보를 촉구했습니다. 요소, 암모니아, 질소, 인산 비료의 전략적 공급이 보장되지 않으면 미국의 작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이는 식량 안보와 국가 안보를 직접 위협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은 국내 암모니아 생산 능력이 있어 완전한 공백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소와 인산 비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노스다코타주립대학(NDSU)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에 걸프 지역에서 직접 200만 톤의 비료를 수입했습니다. 모로코산 인산 비료에는 2021년부터 최대 47%의 상계관세가 부과되어 사실상 차단된 상태였고, 중국은 2026년 8월까지 인산 비료 수출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산 DAP(인산이암모늄)에 대한 의존이 집중된 구조에서, 호르무즈가 닫히면 미국 인산 비료 시장은 대체처를 찾기 어렵습니다.

미국보다 사정이 나쁜 나라들이 줄을 섰습니다. 인도는 2024년 기준 걸프 지역에서 980만 톤의 비료를 수입했습니다. 전체 비료 수입의 약 54%입니다. 인도의 비료 제조업체 IFFCO(Indian Farmers Fertiliser Cooperative)는 LNG 가격 급등으로 이미 요소 생산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인도의 몬순 시즌은 6월에 시작되고, 비료 수요는 그 직전 몇 달에 정점을 찍습니다. 호르무즈의 봉쇄가 몬순 전까지 풀리지 않으면, 인도의 쌀과 밀 수확량은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브라질은 2025년에 4,911만 톤의 비료를 수입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료 수입국입니다. 요소 수입의 약 45%를 걸프 지역에서 조달하고 있었습니다. 호주는 그 비율이 72%에 달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질소 비료의 거의 전량을 걸프 경유 공급선에 의존하고 있었고, 에티오피아의 파종 시기에 맞닥뜨린 이 부족은 즉각적인 식량 위기를 의미했습니다.

NDSU의 비교 분석이 두 번의 위기를 나란히 놓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요소 가격은 40% 이상 올랐고 DAP는 30% 이상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러시아산 비료는 우회로를 찾았습니다. 제재가 무역 흐름의 방향을 바꿨지만, 물건 자체는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26년은 다릅니다. 걸프산 비료는 해협 뒤에 물리적으로 갇혀 있습니다. 출구가 없습니다. 메커니즘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비료의 위기는 시차를 두고 식탁을 덮칩니다. 비료 가격이 오르면 농부는 사용량을 줄이거나, 질소를 덜 먹는 대두로 작물을 전환합니다. 어느 쪽이든 옥수수 수확량은 줄어듭니다. 옥수수는 가축 사료의 기본 재료이므로, 옥수수 가격이 오르면 육류와 유제품 가격이 따라 오릅니다. 옥수수는 바이오에탄올의 원료이기도 하고, 고과당 콘시럽의 형태로 가공식품 전반에 쓰입니다.

IFPRI(국제식량정책연구소)의 분석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호르무즈 봉쇄의 즉각적인 식량 안보 충격은 지역적입니다. 걸프 국가들 자체가 곡물과 유지류의 대부분을 해협을 통해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봉쇄가 장기화되면, 비료 부족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에너지 비용 상승이 겹쳐 글로벌 식품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에너지 비용은 농작물과 가축의 생산 원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수확 후 가공, 운송, 냉장, 포장 비용에도 직접 반영됩니다.

나인티원(Ninety One) 자산운용의 헤일(Heyl) 분석가는 CNBC 인터뷰에서, 2026년 초 시장에는 비교적 높은 기초 식량 재고가 있어 다소간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올해 농업 수확량이 가설적으로 5%만 줄어도 기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식품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발생할 것이며, 신흥국이 그 충격을 가장 먼저 흡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CRU의 크리스 롤슨 부사장은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글로벌 요소 무역의 30%가 이란과 호르무즈 영향권 국가들에서 나오는데, 그 물량이 지금 시장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료는 긴 공급사슬을 거치므로, 농부들이 필요한 요소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작물 수확량은 불가피하게 줄어든다고 덧붙였습니다.

21마일의 수로가 닫히면 지구 반대편의 옥수수밭이 마릅니다. 이것이 2026년 3월, 비료 위기의 실체입니다.

15.2 나프타 부족

싱가포르 석유화학 시장에서 나프타 현물 가격이 톤당 1,000달러를 돌파한 날은 3월 25일이었습니다. 한 달 전 가격의 60% 위. 동북아시아(C&F 일본 기준)에서는 1,010달러에서 1,050달러 사이에서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의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여천NCC 관계자는 분쟁 이전 톤당 600달러 수준이던 나프타 가격이 1,100달러 이상으로 대략 두 배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유탑에서 끓일 때 나오는 여러 성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휘발유보다 끓는점이 낮은 가벼운 석유 분획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프타를 열분해(크래킹, Cracking)하면 에틸렌과 프로필렌이 나오고, 이 두 물질이 지구상의 모든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의 출발점이 됩니다. 업계에서 나프타를 "모든 원료의 어머니(Mother of all feedstocks)"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중동은 전 세계 석유화학 생산 능력의 약 22%를 차지합니다. 193개의 석유화학 콤플렉스가 가동 중이고, 이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모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갑니다. 중동산 폴리에틸렌 수출의 84%가 이 해협을 거칩니다. 드루리(Drewry)의 분석에 따르면, 봉쇄가 장기화되면 글로벌 해상 나프타 물량의 24%가 사라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 타누라 정유소, UAE 아부다비의 루와이스 콤플렉스, 카타르의 펄 GTL 공장이 드론과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거나 직접 피격을 당하면서, 수백만 배럴의 정유 생산이 멈추었습니다. 아시아의 나프타 크래커(NCC, Naphtha Cracking Center, 나프타를 열분해하여 에틸렌 등을 뽑아내는 대형 석유화학 설비)들은 원료를 구하지 못해 허우적거렸습니다.

반응은 순서대로 왔습니다. 3월 5일, 셸(Shell)과 중국해양석유(CNOOC)의 합작 공장인 중국 후이저우의 에틸렌 크래커가 가동을 멈추고, 폴리에틸렌 출하를 무기한 중단한다고 고객에게 통보했습니다. 3월 6일, 중국 완화화학(Wanhua Chemical)이 폴리우레탄의 핵심 중간재인 TDI와 MDI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일본 미쓰비시 케미컬 그룹이 가시마와 미즈시마 에틸렌 크래커의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나프타 수입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그 가운데 70%가 중동에서 옵니다. 3월 10일, 대만의 포르모사 석유화학이 불가항력을 선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천NCC가 불가항력을 선언했고, 롯데케미칼과 LG화학도 고객에게 같은 조치를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국제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나프타 공급의 50% 이상이 중동에서 왔습니다. 여천NCC 관계자는 물량의 약 70%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데 봉쇄로 조달이 어려워져 가동률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다우(Dow) 회장 겸 CEO 짐 피터링은 휴스턴에서 열린 CERAWeek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폐쇄로 글로벌 석유화학 생산 능력의 거의 20%가 막혀 있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코로나 때 봤던 공급망 해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상화에는 250일에서 275일이 걸릴 수 있다. 순식간에 되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피터링은 해협이 결국 열릴 때의 순서도 예측했습니다. 약 430척의 억류 선박 가운데 300척 이상이 유조선이므로, 먼저 석유와 가스가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다음이 농업과 식량 공급을 위한 비료. 석유화학 원료는 그 목록의 아래쪽 어딘가에 놓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석유화학 화물선이 아시아까지 가는 데 4주가 걸리므로, 해협이 열린 뒤에도 아라비안 걸프의 물류를 비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S&P 글로벌의 커트 배로 부사장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 공장들의 불가항력 선언은 보이기 시작했지만, 홈디포(Home Depot, 미국 대형 건자재 소매점) 매장에서의 부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있다. 화학물질은 모든 곳에 들어간다.

"모든 곳"이라는 말이 수사가 아닌 이유를 나열하면 끝이 없습니다. 에틸렌에서 나온 폴리에틸렌은 식품 포장 필름, 우유팩 코팅, 쓰레기봉투가 됩니다. 프로필렌에서 나온 폴리프로필렌은 자동차 범퍼, 세탁기 내부, 마스크의 필터층이 됩니다. 스티렌은 일회용 컵과 건축 단열재가 됩니다. PVC(폴리염화비닐)는 수도관, 창틀, 전선 피복이 됩니다. 인도에서는 3월 한 달 동안 PVC 가격이 78% 올랐다는 보고가 나왔고, 포르모사 플라스틱스는 4월 1일자로 복수의 에틸렌 하류 제품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습니다.

병원을 생각해봅니다. 수액 백, 주사기, 혈액 채취관, 카테터, 수술용 장갑, 무균 포장재. 전부 플라스틱입니다. 현대 의료 시스템은 멸균된 일회용 플라스틱 기구 없이는 감염 통제도, 수술도 할 수 없습니다. 나프타가 끊기면 이 물건들의 원료가 마릅니다.

위기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집니다. 미국의 석유화학 공장들은 나프타가 아니라 셰일가스에서 나오는 에탄(Ethane)을 원료로 씁니다. 에탄 크래커는 중동 사태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미국 공장들은 풀가동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마진은 급팽창했습니다. 미국 에탄 기반 폴리머 생산과 아시아 나프타 기반 생산 사이의 원가 격차는 톤당 1,200달러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서반구는 횡재를 거두고, 동반구는 존재적 위협에 직면하는 "두 속도의 경제"가 탄생한 것입니다.

LG화학 관계자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원유와 LNG처럼 나프타에 대해서도 비축 체계를 마련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에틸렌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핵심 원료인데, 비축 시스템이 없다.

산업의 쌀이 바닥날 때, 공장은 멈추고, 포장재는 사라지고, 병원의 의료 기기는 부족해집니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거의 모든 것이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현대 제조업의 연결 구조를 한 문장에 압축한 것일 뿐입니다.

15.3 헬륨과 알루미늄

풍선을 띄우는 가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헬륨에 대해 아는 전부입니다. 2026년 3월, 이란 미사일이 카타르 라스 라판 산업단지의 LNG 시설을 타격했을 때, 세계는 전 세계 LNG 공급의 약 20%가 날아갔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그 경악의 그늘에서, 반도체 산업과 병원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원인은 헬륨입니다.

카타르는 2025년에 약 6,300만 세제곱미터의 헬륨을 생산했습니다. 전 세계 생산량 약 1억 9,000만 세제곱미터의 3분의 1입니다. 미국이 8,100만 세제곱미터로 세계 1위이고, 카타르가 2위. 그 다음은 알제리와 러시아인데, 러시아산은 미국과 EU의 제재로 사실상 서방 시장에서 차단되어 있습니다.

헬륨은 천연가스를 채굴할 때 부산물로 나옵니다. LNG를 만드는 극저온 분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됩니다. 헬륨만 따로 생산하는 공장은 없습니다. LNG 생산이 멈추면 헬륨 생산도 자동으로 멈춥니다. 카타르에너지의 CEO 사드 알카아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산을 재개하려면, 먼저 적대 행위가 중단되어야 합니다.

헬륨이 반도체 제조에서 하는 일은 정확합니다.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칩의 기판)에 회로 패턴을 식각(Etching, 원하는 부분을 깎아내는 공정)할 때, 웨이퍼 표면의 온도를 극도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헬륨은 열을 빠르게 전달하는 기체이므로, 웨이퍼 뒷면에 헬륨을 불어넣어 열을 빼내고 온도를 균일하게 잡습니다. 조지타운대학 보안 및 신기술 센터의 제이콥 펠드고이즈 분석가는 이 과정에서 헬륨의 대체재는 없다고 말합니다. 세척 후 남은 독성 잔류물을 제거하는 퍼지(Purge) 과정에서도 헬륨이 쓰입니다.

한국의 노출도가 가장 높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전체 헬륨 수입의 64.7%를 카타르에서 조달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약 3분의 2를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대만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 대한 헬륨 의존도가 69%에 달했습니다. TSMC, 삼성, SK하이닉스. 이 세 회사의 생산 라인에 헬륨이 들어가지 않으면, 아이폰의 칩도, 엔비디아의 AI 서버용 칩도 만들 수 없습니다.

헬륨 컨설턴트 필 콘블루스(Phil Kornbluth)는 3월 4일 개스월드(Gasworld) 웨비나에서 이 위기의 물리적 제약을 설명했습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헬륨 특수 운송 컨테이너는 약 2,000개. 이 컨테이너들 가운데 상당수가 카타르에 발이 묶여 있거나 화물선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는 액체 헬륨을 35일에서 48일 동안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헬륨은 증발합니다. 해협이 내일 열린다 해도, 공급 정상화에는 최소 두 달이 더 걸릴 것이라고 콘블루스는 예측했습니다. 컨테이너를 재배치하고 공급 관계를 재검증하는 과정이 수개월 걸리기 때문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위기가 도래한 시점에 헬륨 시장은 사실 잉여 상태였습니다. 이전의 네 차례 부족 사태를 거치면서 반도체 업체들은 재고를 늘려두었고, 재활용 시스템도 개선해 놓았습니다. SK하이닉스는 공급을 다변화하고 충분한 재고를 확보했다고 밝혔고, TSMC도 현 시점에서 유의미한 영향은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간입니다. 짧게 끝나면 시장은 재고로 버팁니다. 길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콘블루스의 말대로라면, 두 주를 넘기면 산업용 가스 유통사들은 극저온 장비를 이동시키고 공급 관계를 새로 검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카타르 생산이 재개된 뒤에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매주 한국과 대만의 팹(Fab, 반도체 제조 공장)에서 소비되는 헬륨 양은 되돌릴 수 없이 줄어들고, 웨이퍼 수율은 그만큼 떨어집니다.

병원도 같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MRI 기기 내부의 초전도 자석은 영하 269도, 절대영도 바로 위에서 작동합니다. 이 온도를 유지하려면 수천 리터의 액체 헬륨이 필요합니다. MRI 안전 컨설턴트 토비아스 길크는 충분한 헬륨 없이는 스캐너가 작동하지 않고, 매우 비싼 문진(文鎭)이 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에 약 4만~5만 대의 MRI가 가동 중입니다. 한 대가 멈추면 하루에 20~30건의 검사가 사라집니다.

우선순위가 작동합니다. 부족할 때 공급사는 중요한 곳부터 배분합니다. MRI는 의료 용도이므로 배분 우선순위가 높고, 반도체 역시 높은 편입니다. 콘블루스의 말을 빌리면, 파티용 풍선은 아무것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헬륨의 옆에 알루미늄이 있습니다.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 광석에서 알루미나를 추출한 뒤, 전기분해로 녹여서 얻습니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전기의 양이 엄청나서, 알루미늄을 '고체 형태의 전기(Solidified electricity)'라고 부릅니다. 중동 걸프 국가들은 값싼 천연가스로 전기를 만들어 알루미늄을 제련합니다. 2024년 걸프 지역의 알루미늄 생산량은 약 630만 톤. 글로벌 생산의 8~9%입니다.

전쟁이 이 구조를 타격했습니다. 바레인의 알루미늄 바레인(Alba, 세계 최대급 알루미늄 제련소 중 하나)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중단으로 일부 고객에 대한 출하를 중단했습니다. 노르스크 히드로(Norsk Hydro)는 카타르 알루미늄(Qatalum) 제련소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하고,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한 통제된 폐쇄(Controlled shutdown)에 들어갔습니다. 완전 재가동에는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중동 밖의 제련소들도 고통받습니다. LNG와 원유가 오지 않아 유럽과 아시아의 전력 가격이 폭등하면, 전기 비용이 원가의 40% 이상인 알루미늄 제련소들은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지경에 몰립니다. 자동차의 엔진 블록, 항공기 동체, 태양광 패널 프레임, 음료 캔, 전선. 알루미늄이 들어가지 않는 산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카타르의 LNG 배관이 터진 사건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수율 문제와,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MRI실의 예약 취소와, 바레인 알루미늄 제련소의 출하 중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연결의 고리는 하나. 천연가스입니다. 가스가 멈추면 LNG가 멈추고, LNG가 멈추면 헬륨이 사라지고, 전력이 끊기면 알루미늄 용광로가 식습니다. 하나의 타격이 세 방향으로 갈라지는, 무자비한 나비효과입니다.

15.4 황과 미 국방산업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현대전쟁연구소(Modern War Institute)는 2026년 3월, "우리가 놓친 초크포인트: 황, 호르무즈, 그리고 군사 대비태세에 대한 위협"이라는 제목의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제목이 말해줍니다. 군사 전략가들이 수십 년간 호르무즈 해협 폐쇄 시나리오를 워게임으로 돌려왔지만, 황이라는 물질이 무기 생산의 목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황(Sulfur)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정제할 때 불순물로 빠져나오는 부산물입니다. 정유소의 탈황(Desulfurization) 과정에서 걸러낸 황은 노란색 고체 덩어리로 쌓여, 선박에 실려 전 세계로 나갑니다. 중동은 글로벌 황 생산의 약 24%를 차지하고, 전 세계 해상 황 무역의 약 5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에픽 퓨리 작전 이후, 이 물량이 통째로 갇혔습니다. 황 가격은 개전 이후 거의 두 배로 뛰었습니다.

황이 중요한 이유는 황산(Sulfuric Acid)에 있습니다. 황을 태우면 이산화황이 되고, 이를 산화시키면 삼산화황, 다시 물과 결합시키면 황산이 됩니다. 황산은 산업의 기초 작업 화학물질(Basic working chemical)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은 황의 약 90%를 황산 형태로 소비합니다.

황산은 두 곳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첫째, 비료입니다. 모든 인산 비료(DAP, MAP, TSP)를 만들려면 황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 세계 황산 수요의 60%가 비료 산업에서 나옵니다. 호르무즈가 닫혀 황 공급이 끊기면, 비료를 만들기 위한 황산도 부족해지고, 15.1절에서 본 비료 위기가 두 번째 경로로 한층 더 깊어집니다. NDSU는 이것을 "황 폭포(Sulfur Cascade)"라고 불렀습니다. 호르무즈 폐쇄가 황 수출을 멈추고, 황 부족이 중국, 모로코, 인도네시아 등 분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나라의 인산 비료 생산을 줄이는, 연쇄적 낙하입니다.

둘째, 핵심 광물의 추출입니다. 구리, 니켈, 코발트, 우라늄 등 이른바 핵심 광물을 광석에서 분리하는 방법 가운데 침출(Leaching)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광석을 황산에 담가 금속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세계 코발트 채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의 구리벨트, 세계 배터리용 니켈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는 인도네시아의 고압산침출(HPAL, High Pressure Acid Leach) 프로젝트가 모두 막대한 양의 황산을 소비합니다. 인도네시아는 필요한 황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황이 오지 않으면, 니켈과 코발트를 광석에서 꺼낼 수 없습니다.

소판센터(Soufan Center)의 분석이 이 고리를 국방 산업까지 연결합니다. 코발트와 구리는 현대 군사 장비의 뼈대입니다. 포탄에서 대전차 무기, 제트엔진, 레이더, 유도 장치, 스텔스 기술에 이르기까지. 황산 부족으로 코발트와 구리의 정련이 차질을 빚으면, 이 금속들로 만든 무기의 생산이 줄어듭니다. 에픽 퓨리 작전이 시작된 이후 미군은 수백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요격 미사일을 소모했습니다. 보충 발주는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등 방산업체에 내려갔지만, 핵심 광물과 특수 화학물질의 공급 차질 때문에 납기를 보장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포린폴리시의 한 추정에 따르면, 카타르에서 이란 미사일로 파괴된 레이시온 레이더 한 기를 교체 생산하는 데 최대 8년, 비용 11억 달러가 들 수 있습니다. 그 레이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갈륨(Gallium)은 중국이 수출 통제를 걸어놓은 물질입니다. 황 부족, 갈륨 통제, 코발트 정련 차질이 겹치면, 무기를 설계하는 능력은 있어도 물리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웨스트포인트의 분석은 이것을 "사전물류(Prelogistic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군사 전략가들은 전통적으로 병참(Logistics)을 고민합니다. 무기와 탄약을 전장에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 그러나 사전물류는 한 단계 더 앞의 문제입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한 기초 소재와 화학물질의 공급이 가능한가. 이 질문입니다. 평시에는 눈에 띄지 않는 의존 관계입니다. 황이라는 물질이 군사 대비태세의 목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펜타곤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위키피디아가 인용한 표현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미 국방산업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핵심 광물 공급의 "거의 완전한(Near-total)"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모순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의 군사 시설을 폭격하기 위해 항공모함과 폭격기를 보냈습니다. 그 폭탄을 다시 채워 넣으려면 코발트와 구리와 황산이 필요합니다. 코발트와 구리를 정련하려면 황이 필요합니다. 그 황은 중동의 정유소에서 나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됩니다. 미국이 공격한 바로 그 지역입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물질적 기반이, 전쟁 자체에 의해 파괴되는 구조. 소판센터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미국의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는 역설입니다.

작전 개시 하루 전인 2월 27일, 미 국방부는 방위산업 기반 컨소시엄(DIBC)의 광산 기업들에게 중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13개 핵심 광물의 국내 공급을 늘릴 수 있는 프로젝트 제안서를 요청했습니다. 미국 내에 희토류와 핵심 광물의 매장량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와이오밍, 알래스카에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 정련, 합금, 자석 제조의 인프라는 없습니다. 광석을 갖고 있어도 가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호르무즈 폐쇄가 이 구조적 취약성을 가격 충격과 함께 노출시킨 것입니다.

오리건 그룹의 분석이 핵심을 찌릅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금속의 생산에 걸쳐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찾는다면, 그것은 황산이다. 황산이 흔들리면, 니켈도 구리도 코발트도 우라늄도 희토류도 함께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황산의 원료인 황의 절반이 호르무즈 한 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는 유조선만 가로막은 것이 아닙니다. 비료를 만드는 황산의 원료를 멈추었고, 배터리를 만드는 니켈과 코발트의 정련을 멈추었고, 미사일에 들어가는 구리와 갈륨의 공급을 멈추었습니다. 21마일의 수로가 원소 단위에서 현대 문명의 결속을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LNG 운반선





제5부 마닐라에서 서울까지




제16장 텅 빈 마닐라

16.1 석유 수입 98%를 중동에 의존하는 나라

2026년 3월 20일, 마닐라 케손시티의 칼라야안 대로 주유소. 직원 한 명이 검은 테이프를 찢어 가격판의 숫자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리터당 89페소였던 디젤이 오늘은 105페소. 내일은 얼마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유소 앞에는 오토바이와 지프니 열댓 대가 줄을 서 있었고, 뒤쪽으로는 "1인당 주유 20리터 제한"이라는 손글씨 팻말이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국가입니다. 섬과 섬 사이를 잇는 페리와 로로(Ro-Ro) 화물선, 도서 산간 지역에 전기를 보내는 디젤 발전기, 메트로 마닐라의 거대한 인구를 실어 나르는 지프니(Jeepney)와 트라이시클(Tricycle)은 전부 화석 연료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필리핀은 자국 내에서 상업적으로 쓸 만한 원유를 거의 생산하지 못합니다. 국내 수요를 부분적으로 감당하던 말람파야(Malampaya) 해상 가스전도 고갈 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소비하는 석유의 98%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수입의 경로였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DOE)의 2024년 에너지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이 수입하는 원유의 95% 이상이 페르시아만에서 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절반 넘게 차지했고, 아랍에미리트와 이라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필리핀이 원유를 직접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은 바탄(Bataan) 반도에 있는 페트론(Petron) 정유소 하나뿐인데, 이 정유소가 국내 수요의 40%만 감당합니다. 나머지 60%는 싱가포르,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정유 허브에서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같은 정제유를 사옵니다. 그런데 이 아시아 국가들이 정제하는 원유의 대부분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들이었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필리핀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100% 노출된 나라였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수개월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를 지하 암반이나 거대 저장 탱크에 쌓아둘 재정적, 인프라적 여력이 필리핀에는 없었습니다. 1998년에 제정된 석유산업 규제완화법(Oil Deregulation Law)이 비축 책임을 민간 정유사에 넘겼고, 정부 차원의 전략 비축유는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는 전적으로 민간 업체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15일에서 30일치 상업 재고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습니다. 유조선 보험이 사라지고 AIS 신호가 꺼진 뒤, 필리핀이 직면한 위기는 "가격 상승"이 아니라 "물리적 고갈"이었습니다. 돈을 더 준다고 기름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 일제히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면서 정제유 수출을 틀어막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게는 석유 말고도 하나의 동맥이 더 끊어지고 있었습니다. 중동은 필리핀 경제의 또 다른 핵심 축인 해외노동자(OFW, Overseas Filipino Workers) 240만 명의 거주지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81만 3,000명, 아랍에미리트에 97만 5,000명, 카타르에 25만 명. 이들이 매달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필리핀 GDP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전쟁이 터지자 중동의 공항들이 줄줄이 폐쇄되었고, 필리핀 정부는 석유 공급 차질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폭격의 공포에 떠는 자국민들을 구출해야 했습니다. 이주노동부(DMW) 장관 한스 카크닥(Hans Cacdac)은 전쟁 발발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송환은 아직 아닙니다, 경계태세 4단계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두바이에서만 80명이 귀국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월 14일까지 정부가 중동에서 본국으로 데려온 필리핀인은 1,315명. 전세기를 띄워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로로 수 시간을 달려 안전한 출국 지점까지 이동한 뒤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석유가 끊기고, 송금이 줄고, 가족이 전쟁터에 갇혀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움직이는 물리적 에너지와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적 에너지를 동시에 끊어버렸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비명을 지른 나라가 필리핀이었던 이유입니다.

16.2 "위기가 아니다"에서 "국가 비상사태"로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말라카냥궁(Malacañang). 대통령 공보관 클레어 카스트로(Claire Castro)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필리핀은 지금 "위기 상황이 아니라 가격 혼란(price disruption) 상태"라고.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Sharon Garin)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재고는 45일치가 남아 있고,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으니 패닉 바잉(사재기)을 할 필요가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했습니다.

24시간 뒤인 3월 24일 화요일 저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대통령이 말라카냥궁에서 행정명령 110호(EO 110)에 서명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State of National Energy Emergency) 선포. 유효 기간 1년. 전 세계에서 이란 전쟁에 대응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어제까지 "위기가 아니다"고 했던 정부가 하루 만에 백기를 든 셈입니다.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합동위원회 UPLIFT(Unified Package for Livelihoods, Industry, Food, and Transport)가 가동되었습니다. 에너지부, 교통부, 사회복지부, 농업부, 재정부, 예산관리부, 경제기획부의 장관들이 전원 참여하는 범정부 대응 체계입니다. 비상사태 선포는 정부에 연료와 석유 제품의 긴급 조달 권한, 사재기와 폭리 단속 권한, 에너지 배급 계획 시행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국영 석유회사 PNOC(Philippine National Oil Company)와 탐사 자회사 PNOC-EC에는 입찰 절차를 건너뛰고 긴급 구매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 극적인 뒤집기의 배경에는 상원 청문회에서 드러난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너지부가 밝힌 재고 현황은 이랬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 55일에서 57일치였던 석유 재고가 3월 20일 기준으로 45일치까지 떨어졌습니다. 항공유(Jet Fuel)는 38일치. 서민들의 취사와 식당 영업에 필수인 LPG는 23일치.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이상, 이 숫자들은 줄어들기만 할 뿐 다시 채워질 전망이 없었습니다.

상원의원 로렌 레가르다(Loren Legarda)가 청문회에서 에너지부를 향해 분노를 쏟았습니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이웃 나라들은 평소에 전략비축유를 비축해 두었는데, 필리핀 정부는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정상 가격의 두 배를 주고 긴급 물량을 사려 허둥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산관리부(DBM)가 승인한 긴급 구매 예산은 200억 페소(약 4억 600만 달러). 말람파야 가스전 기금에서 끌어온 돈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200만 배럴의 디젤을 사올 계획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돈이 있어도 당장 기름을 실어올 배가 없었습니다.

페트론은 러시아에서 ESPO 블렌드 원유 75만 배럴(10만 톤)을 실은 유조선 사라 스카이(Sara Sky)호를 바탄 정유소로 불렀습니다. 미국이 4월 11일까지 유효한 제재 면제를 내준 덕분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5년 만에 러시아산 원유가 필리핀에 들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과 협의 중입니다, 이란산이든 베네수엘라산이든,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맹국의 전쟁이 필리핀의 에너지를 끊었고, 필리핀은 그 동맹국의 적대국에서 기름을 사오고 있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누나인 이미 마르코스(Imee Marcos) 상원의원은 정부의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쪼잔한 구호금을 뿌리는 것은 반창고 처방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필리핀인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이고 광범위한 전략적 계획입니다." 상원의원 밤 아키노(Bam Aquino)는 에너지 비상사태가 아니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정부에 가격 통제와 위기 대응의 실질적 권한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진보 시민단체 바얀(Bayan)의 레나토 레예스 주니어(Renato Reyes Jr.)는 더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문에는 세금 철폐도, 가격 통제도, 석유산업 규제완화법 폐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선언입니다."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는 이 사태를 분석하면서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의 자체 통계 보고서가 호르무즈 봉쇄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거의 수학적인 정밀도로 기술해 놓았었다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자료는 있었습니다. 숫자도 있었습니다. 없었던 것은 그 숫자에 따라 행동하는 긴박함이었습니다.

16.3 사라진 교통체증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 국장 니콜라스 토레 3세(Nicolas Torre III)가 3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수치가 있습니다. 에드사(EDSA, Epifanio de los Santos Avenue) 대로의 통행량이 5%에서 8% 감소했다고. 2023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40만 7,342대가 지나가는 도로에서 2만 대에서 3만 대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토레 국장은 "유가 상승 이후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일부는 카풀로 전환했으며, 일부는 대중교통으로 옮겨갔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5%에서 8%입니다. 그런데 마닐라의 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압니다. 에드사 대로는 23.8킬로미터 길이의 10차선 도로로, 평소라면 출퇴근 시간마다 거대한 주차장이 됩니다. 매연, 경적, 서로 먼저 가려 엉켜 붙은 차량들.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 도시 순위에서 마닐라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도로가 눈에 띄게 비어 있었습니다.

알자지라(Al Jazeera)의 사진 기자가 3월 26일 에드사 대로의 러시아워를 촬영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마닐라의 거리가 텅 비다(Manila's streets empty)"였습니다. 전광판에는 "중동을 위해 기도합시다(Pray for the Middle East)"라는 문구가 떠 있었고, 그 아래를 지나는 차는 몇 대 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엄격한 봉쇄(Lockdown)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침묵과 지금의 침묵은 본질이 달랐습니다. 코로나 때는 바이러스를 피하려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잠근 격리의 침묵이었습니다. 지금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도 이동할 수단이 사라진 마비의 침묵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멈춘 것은 지프니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 지프를 필리핀 사람들이 개조해서 미니버스로 쓰기 시작한 것이 지프니의 기원입니다. 마닐라의 가장 저렴한 대중교통 수단이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 경제의 핏줄입니다. 기본 요금 13페소. 경유 가격이 리터당 100페소를 넘어 120페소, 130페소까지 치솟자 산술이 무너졌습니다. 지프니 한 대가 하루에 소비하는 경유는 평균 30리터. 30리터에 130페소를 곱하면 하루 연료비가 3,900페소입니다. 그런데 운전사들이 하루 종일 운행해서 버는 돈은 300페소에서 400페소. 운전대를 잡을수록 빚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3월 19일, 전국운수노조 피스톤(PISTON, Pagkakaisa ng mga Samahan ng Tsuper at Opereytor Nationwide)이 전국적인 교통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피스톤 위원장 모디 플로란다(Mody Floranda)는 요구 사항을 내걸었습니다.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를 즉각 철폐할 것, 연료 가격을 리터당 55페소로 되돌릴 것, 1998년의 석유산업 규제완화법을 폐지할 것. 피스톤은 전국에서 7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메트로 마닐라에만 15개에서 20개의 파업 거점이 생겼고, 세부, 일로일로, 파식(Pasig), 불라칸(Bulacan)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차량 운행이 멈췄습니다.

52세의 지프니 운전사 아르투로 모델로(Arturo Modelo)가 알자지라에 말했습니다. "평소에는 하루 600페소(약 10달러)를 벌었는데, 지금은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아이 점심값도 못 줍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귀먹은 정부가 듣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요즘은 도로에 나가도 생계가 안 됩니다."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2차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지프니뿐 아니라 버스, UV 익스프레스, 오토바이 택시, 차량공유서비스(TNVS) 운전사들까지 합류한 20개 이상의 운수단체가 연합했습니다. "유가 인상 반대 연합(No to Oil Price Hike Coalition)"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3월 27일 금요일, 수천 명이 말라카냥궁까지 행진했습니다. 시위대 가운데 이란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국노동자단체 킬루상 마요 우노(Kilusang Mayo Uno, 5월 1일 운동)의 제롬 아도니스(Jerome Adonis) 의장이 말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고, 이 전쟁에 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 우리에게도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이 멈추자 여파가 도시 전체로 번졌습니다. 마닐라의 여러 대학이 대면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Ateneo de Manila University)는 교통 사정으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수에게 통보하라고 안내했습니다.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PUP)는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습니다. 성주간 이동 준비 기간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에 올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려 보조금을 뿌렸습니다. 오토바이 택시와 운수 노동자들에게 1인당 5,000페소(약 83달러)의 긴급 현금 지원. 교통부의 10억 페소 예산으로 무료 버스 운행. 전철 MRT3와 LRT2의 요금 할인.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그러나 5,000페소는 이틀치 연료비에 불과했습니다. 피스톤은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조치들 가운데 석유 산업의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텅 빈 에드사 대로는 마닐라의 경제가 멈추고 있다는 가장 시각적인 증거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의 교통체증이 사라졌다는 것은, 교통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서민들은 21마일의 좁은 수로가 막히면 자기 동네 골목길의 지프니마저 멈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16.4 바클라란 성당의 수요일

2026년의 성주간(Semana Santa, Holy Week)은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였습니다. 필리핀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이 나라에서 성주간은 한 해의 가장 크고 거룩한 명절입니다. 평소라면 메트로 마닐라 인구의 절반이 고향(프로빈시아, Provincia)으로 향하는 버스와 배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몰려드는 거대한 민족 이동의 주간입니다.

그런데 MMDA가 성주간 직전에 관측한 결과는 이랬습니다. 터미널과 주요 간선도로의 승객 수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MMDA 교통기동대장 에디슨 네브리하(Edison Nebrija)가 방송에 출연해서 말했습니다. "원래 이맘때 금요일이면 터미널마다 승객이 넘쳐나고 에드사 대로에서 이미 전환(성주간 이동의 시작)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년만큼 많지 않습니다."

가톨릭 주교회의(CBCP,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the Philippines)의 공보위원회 사무국장 제롬 세실라노(Jerome Secillano) 신부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정했습니다. 유가 위기가 비시타 이글레시아(Visita Iglesia, 성주간에 일곱 개의 성당을 순례하는 필리핀 가톨릭 전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교회가 참배객이 줄어드는 것만 걱정한다면 이기적일 겁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유가 상승이 필리핀 국민의 삶 전체에 눈덩이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절약하려고 이동을 줄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라냐케(Parañaque)에 있는 바클라란 성당(National Shrine of Our Mother of Perpetual Help). 매주 수요일이면 수만 명의 신도가 몰려드는 곳입니다. 재스민 꽃 파는 사람들, 바비큐 노점상, 지프니 호객꾼들이 성당 안팎에서 뒤섞이고, 그 사이로 묵주를 쥔 신도들이 끊임없이 드나듭니다. 수요일의 바클라란은 신앙과 생활이 한데 엉킨 마닐라의 축제이자 의식입니다.

3월 25일 수요일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알자지라의 현지 기자 테드 레헨시아(Ted Regencia)가 그날의 바클라란 성당을 촬영했습니다. 평소의 혼잡한 활기가 거의 사라져 있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바깥에서 울려 퍼지던 지프니 경적 소리가 잦아들었고, 노점상들의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멈추어 있었습니다.

성당 앞 주차 안내원 루벤(Ruben), 27세. 새벽 3시부터 12시간 넘게 서 있었지만 팁 수입은 약 6달러.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에밀리 루아도(Emily Ruado), 59세, 네 아이의 어머니. 성당 주변에서 화장지와 잡화를 팔아 하루 10달러를 벌었는데, 전쟁 이후 수입이 하루 5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대중교통이 줄면서 성당에 오는 사람들의 이동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버스와 지프니 대신 몇 시간씩 걸어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통수단이 사라졌으니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주간의 전통적인 고행(Penance)으로서 길을 걷는 것과, 기름이 없어서 강제로 걷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졌습니다. 종교적 침묵과 경제적 마비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겹쳤습니다.

버스와 지프니가 줄었으니 남은 선택은 전철이었습니다. 마닐라의 MRT와 LRT에 승객이 몰렸습니다. 평소에도 부족한 전철 시스템이 러시아워마다 병목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연료 위기가 마닐라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입니다.

성주간의 침묵 아래에는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에너지는 운송비이고, 운송비의 폭등은 쌀과 생필품 가격의 연쇄 상승을 뜻합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농부와 어부들에게 연료와 비료 보조금을 지급해서, 경유 가격 상승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막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통령궁은 4월 16일까지 기본 생필품의 가격 인상을 금지하는 행정 조치를 내렸고, 산업통상부(DTI)가 매주 모니터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Urea)의 주요 생산지가 중동이고, 그 수출 경로가 호르무즈 해협인 이상, 보조금 살포만으로 식량 가격의 근본적인 상승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한 문장으로 요약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가면, 필리핀 사람들은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바클라란 성당의 신도들은 이미 바꾸고 있었습니다. 버스 대신 걸었고, 촛불을 켜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일 아이들을 먹일 쌀을 살 수 있기를. 남편이 타고 다닐 지프니가 다시 움직이기를. 중동의 전쟁이 제발 끝나기를.

마닐라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의 거리는 약 7,000킬로미터입니다. 페르시아만의 폭격 소리는 이곳까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유소 가격판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지프니가 한 대씩 골목에서 사라질 때마다, 성당에 걸어서 오는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전쟁의 충격파는 소리 없이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사 대로의 전광판에 띄워진 문구가 있었습니다. "중동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닐라의 서민들에게 그 기도는 중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닐라 도심 전경





제17장 아시아의 긴축

17.1 태국 —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라, 에어컨은 27도, 반팔 셔츠를 입어라

2026년 3월 6일, 태국 관보(Royal Thai Government Gazette)에 총리령 제2/2026호가 실렸습니다. 아누틴 찬위라쿤(Anutin Charnvirakul) 총리가 서명한 이 문서는 휘발유, 가소홀(Gasohol, 에탄올 혼합 휘발유), 경유, 항공유, 그리고 액화석유가스(LPG)의 수출을 즉시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라오스와 미얀마 방면의 소량 반출만 예외로 허용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엿새 만이었습니다.

이 총리령의 법적 근거는 1973년에 제정된 연료 비상대책 칙령(Fuel Emergency Decree)이었습니다. 53년 전 제1차 오일쇼크 때 만들어진 법입니다. 이 칙령 아래서 총리는 모든 종류의 연료에 대해 생산, 판매, 수송, 비축, 수출입을 직접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전기와 에너지 소비 활동 전반도 규제 범위 안에 들어갑니다. 공장 가동 시간을 제한하고, 극장과 유흥시설의 영업 시간을 줄이고,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건물의 전력 사용과 광고 조명까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반세기 넘게 잠자던 법이 다시 먼지를 털고 나온 것입니다.

태국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에너지 구조는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축에 속합니다. 원유의 90%를 수입하고, 그 가운데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전체 전력 생산의 55% 이상이 천연가스 발전인데, 자국 에라완(Erawan) 가스전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부족분을 수입 LNG(액화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S&P 글로벌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태국은 중동에서 하루 약 49만 1,500배럴의 원유와 콘덴세이트(Condensate, 초경질 원유)를 수입했습니다. 2026년 3월 2일 기준으로 중동이 태국 원유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를 넘었습니다.

태국 에너지부가 파악한 3월 1일 기준 국내 석유 비축량은 48억 7,700만 리터, 약 38일 치였습니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운송 중인 물량 16억 6,600만 리터와 다른 경로의 물량 11억 1,700만 리터를 합치면 22일 치를 더 보탤 수 있었습니다. 합산 60일 치. 일본의 254일, 한국의 208일에 비하면 숨이 막히는 숫자였습니다.

정부는 수출 금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너지 절감 조치가 곧바로 뒤따랐습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하고, 공무 출장을 금지했습니다. 에너지부는 관공서와 대형 상업시설의 에어컨 온도를 26~27도 이상으로 올리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연중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열대 국가에서, 에어컨 온도를 4도 올리는 것은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방콕의 마천루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하루 여덟 시간을 땀에 젖은 채 보내라는 뜻이었습니다.

복장 규제 완화도 이어졌습니다. 공무원은 물론 민간 기업 직원들에게도 넥타이와 정장 재킷 착용을 자제하고 반팔 셔츠와 가벼운 차림을 권고했습니다. 3층 이하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라는 지침도 하달되었습니다.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권고였지, 법적 강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부 장관 앗타폰 렉키프라쿤(Auttapol Rerkpiboon)이 직접 에너지 비상상황 모니터링 센터의 가동을 명령하고, 모든 유관 기관에 시장 영향과 비축 수준과 가격 동향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라고 지시한 상황에서, 권고와 명령의 경계는 희미했습니다.

그 사이 태국 석유기금(Oil Fuel Fund)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기금은 역대 태국 정부가 국제 유가가 오를 때마다 국내 소매가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데 써온 완충 장치입니다. 3월 22일 기준 기금 적자는 281억 900만 바트(약 1조 원)에 달했습니다. 3월 24일 기준 고속 경유에 대한 보조금은 리터당 26.99바트. 전날보다 2.9바트가 오른 수치였습니다. 하루에 25억 9,000만 바트, 우리 돈으로 약 920억 원이 기금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3월 15일과 16일, 에너지부가 전국 약 1,500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10%가 연료 부족으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고, 70% 가까이가 특정 유종이 바닥나거나 재고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동북부의 교통 중심지 코랏(Korat, 나콘라차시마)에서는 주유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서부 딱(Tak) 주의 매솟(Mae Sot) 지역에서는 3킬로미터 대기 행렬이 보고되었습니다. 수판부리(Suphan Buri), 나콘사완(Nakhon Sawan) 같은 지방 도시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3월 26일, 특별 각의가 열렸습니다. 태국 정부는 7개 긴급 조치를 승인했습니다. 소비세 인하 검토, 취약 계층 복지카드 한도 상향(월 300바트에서 400바트로), 운수업 지원, 농민 비료 보조 확대가 포함되었습니다. 같은 날 정부는 리터당 6바트의 연료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주유소에 "600바트 이하"라고 쓴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 에크닛 니티탄프라파(Ekniti Nitithanprapas)는 "연료 가격이 실제 원가를 반영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가격을 왜곡하면 경제 전체에 비효율을 만들고 공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논리였습니다.

태국의 상징적인 쇼핑몰들, 아이콘시암(ICONSIAM)과 센트럴월드 같은 곳에서 조명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에스컬레이터 가동이 최소화되었습니다. 관광업이 GDP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어둡고 더운 쇼핑몰은 그 자체로 경제적 타격이었습니다. 치앙마이에서는 주유소들이 하루 경유 입고량 1만 리터도 확보하지 못해 몇 시간 만에 재고가 바닥났습니다. 남부 송클라(Songkhla) 주의 한 주유소에는 "경유 소진"과 "일시 급유 중단"이라는 안내문이 나란히 걸렸습니다.

태국 석유화학 기업 라용올레핀(Rayong Olefins)은 시암시멘트그룹(SCG)의 자회사입니다. 3월 중순 이 회사는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나프타와 프로판 같은 핵심 원료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가항력(Force Majeure) 선언이었습니다.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공식 통보. 이 한 장의 문서가 태국 석유화학 산업의 연쇄 마비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카세사트대학교(Kasetsart University)가 주최한 온라인 포럼 "중동 분쟁 속 태국의 생존 전략"에서 재무부 재정정책실 소속 거시경제 전문가 위파랏 판피엠랏(Wiparat Panpiemras)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중동 위기가 에너지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금속, 농산물, 축산물, 비료, 플라스틱 같은 석유 정제 부산물의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율, 주식, 채권에 변동을 일으키고, 생산 요소 부족으로 글로벌 공급망 자체에 교란을 만들고 있다고.

태국이라는 나라의 구조가 한눈에 드러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부총리 겸 에너지장관 피팟 랏차킷프라칸(Phiphat Ratchakitprakarn)이 텔레비전 생방송 인터뷰에서 시인한 사실입니다. 태국의 석유 운송 트럭에는 GPS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공급망 관리의 증거로 내세워 왔습니다. 그런데 그 GPS가 측정한 것은 트럭의 주행 속도뿐이었습니다. 트럭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경로를 타는지, 최종 하역 지점이 어디인지는 추적한 적이 없었습니다. 목적지 모니터링을 시작한 것은 부총리 인터뷰 하루 전, 위기가 시작된 지 몇 주가 지난 뒤였습니다. 석유 거래상들에 대한 재고와 이동 경로의 일일 보고 의무도 같은 시점에야 도입되었습니다.

정부가 공급망의 마지막 구간을 추적하지 못한다면, 수요 급증이 실제 소비 때문인지, 최종 사용자의 사재기 때문인지, 중간 유통업자의 조직적 전용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태국의 6개 정유소는 위기 내내 완전 가동 중이었습니다. 석유 공급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압력이 가장 높은 지점에서 정확히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는 제도적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각지대를 장관 본인이 생방송에서 확인해준 것입니다.

태국은 이미 "아시아의 환자(Sick Man of Asia)"라는 별명을 떨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2026년 경제 성장률 전망은 겨우 2%. 중국발 수요 둔화, 글로벌 무역 긴장, 극단적 수준의 가계 부채, 불평등, 정치적 불안정 위에 에너지 위기가 덮쳤습니다. 수출이 GDP의 70%에 달하고, 무역 총액(수출+수입)이 GDP의 120%를 넘는 나라. 관광업이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 연료 가격 상승과 글로벌 불안정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3월 말, 이란이 태국 선적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와 함께 통과 허용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그러나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과 유가가 내려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3월 24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98.28달러로 5% 이상 하락한 날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란에 종전안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습니다. 분석가들은 낙관을 경계했습니다. 중동의 갈등이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공급 위험은 시장 위에 계속 드리워질 것이라고.

17.2 한국 — 샤워를 짧게, 낮에 충전하라, 나프타 수출 금지

2026년 3월 3일 월요일, 한국 증시가 열렸습니다. 코스피(KOSPI)가 하루 만에 12% 폭락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낙폭이었습니다.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주가 급변 시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장치)가 발동되었습니다. 같은 주 목요일에 10% 반등한 뒤, 금요일과 월요일에 다시 하락했습니다. 4거래일 동안 선물 시장에서 여러 차례 거래 제한 장치가 작동했고,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 발동되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3월 3일 장중 1,506.37원을 찍었습니다. 2009년 이후 가장 약한 수준이었습니다.

숫자들이 한국의 취약성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약 94%. 원유 수입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LNG 수입의 25%가 같은 경로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KEI)의 분석에 따르면, 석유는 한국의 총 에너지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용도는 대부분 "비에너지용(Non-energy Use)"입니다. 반도체 같은 첨단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료로서의 석유. 교통 연료는 그다음입니다. 에너지 비용 상승과 첨단 기술 제품의 산업 투입물 변동이 결합되면, 갈등이 지속되는 한 한국과 세계 경제에 파급 효과를 만들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 경제 점검 회의를 열었습니다. 3월 9일 대국민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중동 위기가 무역과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 및 외환 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연료 가격 상한제를 "신속히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3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석유공사(KNOC) 데이터와 S&P 글로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정부 관리 비축유 1억 100만 배럴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쿠웨이트 원유 400만 배럴,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원유 400만 배럴 등 합동 비축분 약 1,000만 배럴이 더해집니다. 3월 11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4억 배럴 방출 결정에 동참하여 한국은 2,246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방출 후에도 정부 비축유 7,764만 배럴이 남는 계산이었습니다.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러나 비축유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프타(Naphtha)입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경질 유분(輕質油分)으로,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입니다. 울산, 여수, 대산의 나프타 분해시설(NCC, Naphtha Cracking Center)이 이것을 열분해해서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은 기초 화학물질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비닐, 합성수지가 됩니다. 쓰레기봉투부터 라면 포장지, 세탁기 부품, 반도체 세정제까지. 한국은 나프타 수요의 약 4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수입분의 77%가 중동에서 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자 물류가 끊겼습니다. 통상 한국의 NCC들은 1월 이후 재고를 보충하기 시작하는데, 지정학적 긴장이 확대되면서 선적 자체가 중단되었습니다. 대부분의 NCC가 기존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한 달 반이었습니다. 한 대형 한국 석유화학 업체 관계자의 말이 업계 매체에 실렸습니다. "조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석유 위기가 한국의 쓰레기봉투와 라면 공급을 위협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한국 1위 석유화학 기업 LG화학이 3개 NCC 중 하나의 가동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한 직후였습니다. 여천NCC(Yeochun NCC)는 불가항력을 선언했습니다. 중동 긴장 고조로 원료 확보가 어려워져 모든 시설을 최소 가동률로 운전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을 향한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동시에 시작되었습니다. CNN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샤워를 짧게 하라"고 권고하고, "낮 시간에 휴대전화를 충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전력 피크 시간을 피해 태양광 발전량이 최대치에 달하는 시간대에 전기 기기를 충전하면, 가스와 석탄 발전소의 부하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공공 부문 차량 5부제(번호판 끝자리에 따라 5일 중 하루 운행 제한)도 시행되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환경 규제 한도가 완화되어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3월 27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정부는 경제 전시 상황에 준하는 엄중한 인식 아래,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하며 비상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가 발표한 조치는 이랬습니다. 나프타 수출 통제를 금요일부터 시행합니다. 요소(Urea)와 요소수(Urea Solution,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에 필수적인 액체)의 사재기를 같은 날부터 금지합니다. 불법 부당행위 단속을 강화하고 수입을 확대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 박동일은 기업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프타 수출은 정부 차원에서 금지되었으며, 석유화학 제품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게 검토 중입니다." 정유사들이 생산한 나프타를 수출 대신 국내 시장으로 돌리도록 강제하고, 나프타의 생산과 배분에 대해 정부가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한 것입니다. 에너지부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 생산 나프타의 약 11%를 수출하고 있었고, 이 물량이 국내 사용자에게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금지 기간은 5개월. 의료, 핵심 산업, 필수 소비재에 우선 공급이 보장되었습니다.

구 부총리는 2단계 대응도 예고했습니다. 4월에 약 25조 원 규모의 "전쟁 추가경정예산(War Supplementary Budget)"을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신속히 편성하겠다고. 3단계에서는 상황이 5월 넘어 장기화될 경우 추가 경제 안정화 대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여 즉시 시행하겠다고. 재정, 세제, 금융 규제 조치를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가장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구사하겠다고.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충남 서산의 한국석유공사 비축기지를 방문하여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현대케미칼 대표들과 현장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LG화학 CEO는 러시아산 나프타 구매와 결제를 지원해준 정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한국은 2022년 이후 러시아산 석유 거래를 중단했었습니다. 위기 앞에서 그 원칙이 수정되고 있었습니다.

KEI의 분석은 이 위기의 파급 범위를 냉정하게 정리했습니다.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부족의 회복에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에너지 너머의 영향은 다방면에 걸칩니다.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부족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 원화와 코스피에 대한 단기 압력, 중동에 투입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한국 건설 투자 지연 위험, 그리고 한미 동맹에 대한 불필요한 압박. 2026년 성장률은 기존 2%에서 1.9%로 소폭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숫자로는 0.1%포인트에 불과했지만, 그 뒤에 숨은 산업 현장의 마비는 숫자가 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17.3 일본 — 역대 최대 비축유 방출, 화장지 사재기 자제 당부

3월 11일, 다카이치 사나에(Sanae Takaichi) 일본 총리가 발표했습니다. 전략비축유 8,000만 배럴을 방출하겠다고. 1978년 비축유 제도가 만들어진 이래 최대 규모였습니다. IEA의 공조 결정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독자적으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3월 16일, 실제 방출이 시작되었습니다. 민간 의무 비축분에서 15일 치, 국가 비축분에서 30일 치. 합산 45일 치의 국내 석유 수요에 해당하는 물량이었습니다.

일본이 이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하나의 숫자가 있었습니다. 95.1%. 2026년 1월 기준 일본 원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경제산업성(METI)의 공식 데이터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비율은 약 73.7%.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줄이면서 중동 의존도는 오히려 96%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경로가 차단되면 일본의 에너지 생명선이 끊기는 것입니다.

일본의 비축유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약 4억 7,000만 배럴. 국가 비축 146일 치, 민간 의무 비축 101일 치, 중동 산유국과의 합동 비축 7일 치. 합산 254일 치. LNG 재고도 약 400만 톤, 총 소비량의 약 3주 치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든든한 방패였습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3월 14~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이 갈등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소" 또는 "크게" 불안하다고 답했습니다. 방패가 있어도 공포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공포가 만들어낸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화장지 진열대였습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때 일본에서는 석유 부족으로 화장지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인 사재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마트 앞에 줄을 서서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사진은 일본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2026년 3월, 그 기억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SNS에서 화장지와 생필품 부족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조업 단체들이 즉각 진화에 나섰습니다. 일본의 화장지는 거의 전량 국내에서 생산되며 중동 공급망 교란에 취약하지 않다고. 정부도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구매하시고, 공포에 따라 구매하지 마십시오." 팬데믹 때 진열대를 텅 비게 만들었던 그 종류의 패닉 구매를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기가 일본에 던진 구조적 질문은 LNG에서 갈라졌습니다. 원유와 달리 일본의 LNG 수입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약 6.3%에 불과했습니다. 최대 수입원은 호주(39.7%), 말레이시아(14.8%), 러시아(8.9%)로, 이들 국가의 LNG는 호르무즈를 통과하지 않습니다. 비대칭 구조였습니다. 전력은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원유가 치명적 취약점. 석유 제품이 일본 1차 에너지 공급의 약 35%를 차지하므로, 원유 경로가 차단되면 휘발유, 등유, 플라스틱, 운송비에 직격탄이 옵니다. 가계와 산업에 대한 영향은 전기료보다 훨씬 빠르고 가혹하게 나타납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NRI)의 추정에 따르면, 원유가 배럴당 120~130달러를 유지하면 일본의 2026년 GDP가 0.6% 하락합니다. 봉쇄가 1년 지속되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328엔을 넘어서고, 가계 부담은 연간 약 3만 6,000엔(약 33만 원) 증가합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휘발유 소매가를 리터당 161~165엔 수준으로 억누르고 있었지만, 보조금 없이는 185~200엔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추산이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역 해군 파견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헌법상 제약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신 중동 주변국과의 외교적 관여를 약속했습니다. 지역의 평화가 일본과 국제사회 모두에 필수적이라고 했습니다. 군사적 기여 없이 경제적 위기를 감당해야 하는 일본의 위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CSIS는 이 위기가 촉발할 구조적 변화를 짚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이후 논란이 되어온 원자력 발전의 확대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2025년에 발표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일본 정부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전기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이용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재가동 준비 중인 3기. 이번 에너지 위기가 원자로 재가동과 신규 건설을 위한 에너지 안보 논거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호르무즈 해협 자체는 막히지 않았습니다. 석유를 물리적으로 실어 나올 수는 있었습니다. 비축유 방출과 비중동 산유국에서의 대체 조달로 넘겼습니다. 2026년은 구조적으로 다른 상황입니다. 석유는 있고, 산유국은 수출하고 싶어하지만, 물리적으로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 방출된 비축유의 보충은 봉쇄가 지속되는 한 불가능합니다. 재고는 줄어갈 뿐입니다. 8,000만 배럴은 45일을 벌어주었습니다. 봉쇄가 3개월을 넘기면, 비축유의 대규모 소진과 장기 가격 급등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17.4 베트남과 미얀마 — 재택근무 권고와 격일 운전제

미얀마의 국방안보위원회(NDSC)가 전국적 연료 배급제를 발표한 날은 3월 3일이었습니다. 시행일은 3월 7일. 민간 차량의 도로 이용을 번호판 첫 자리 숫자로 제한하는 홀짝제(Odd-Even Driving Rule)였습니다. 홀수 날에는 번호판이 홀수(1, 3, 5, 7, 9)로 시작하는 차만 달릴 수 있고, 짝수 날에는 짝수(2, 4, 6, 8, 0)만 허용됩니다. 전기차는 예외. 공공 버스, 택시, 유조차, 화물차, 건설 차량, 구급차와 쓰레기 수거차 같은 긴급 서비스 차량은 매일 운행이 가능했습니다.

3월 22일, 군사정부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모든 정부 기관의 공무원과 직원에게 매주 수요일 재택근무를 지시했습니다. 3월 25일부터 시행. "이 조치는 연료 절약을 목적으로 합니다. 공무원과 정부 기관 직원은 해당 일에 공무 외의 이동이나 차량 사용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관영 일간지 미러(The Mirror)에 실린 성명의 문구입니다. 민간 기업에도 같은 조치를 가능한 한 도입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수도 네피도(Naypyidaw)의 한 공무원이 미지마(Mizzima) 통신에 솔직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재택근무 시스템에 의구심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 업무는 대부분 여전히 종이 기반이고 디지털화가 안 되어 있어요. 수요일을 재택근무일로 정했지만, 아마 여전히 출근해야 할 겁니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다음 단계는 더 촘촘했습니다. 바코드와 QR코드 기반의 연료 배급 시스템입니다. 차량 엔진 크기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만 주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부는 50일 치의 연료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으며 기존 경로에 더해 대체 경로를 통한 추가 수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양곤(Yangon)과 만달레이(Mandalay)의 주유소에서는 3월 4일부터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등록 민간 차량 60만 대 이상의 나라에서, 연료가 없다는 공포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미얀마의 상황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질적으로 달랐던 것은, 이 나라가 이미 군사 쿠데타 이후 만성적인 외환 위기와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서 외화 확보가 어려운 군사정부에게,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석유 수입은 이중의 부담이었습니다. 병원과 통신 기지국을 돌리는 디젤 발전기의 연료가 바닥나면, 국가의 기본적 기능이 멈추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일부 국내 항공사는 운항을 중단했고, 연료 가격 상승은 항공 요금의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베트남은 구조적으로 다른 종류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며 삼성, 애플 협력업체,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의 생산 기지를 빨아들이고 있던 이 나라는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되자 성장 엔진이 강제로 멈춰야 했습니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비중동 국가에서 약 40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샘 레이놀즈(Sam Reynolds) 연구원은 이 물량이 베트남 소비의 약 6일 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영 매체 보도에 따른 비축량 20일 치를 감안하면, 추가 원유 유입 없이는 "연료 부족 위험이 매우 높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기업에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시민에게 대중교통과 자전거, 카풀(Carpool, 승용차 함께 타기) 이용을 독려했습니다. 연료가격안정기금(Fuel Price Stabilisation Fund)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석탄 운송에 "우선 통행권(Priority Pass)"을 부여하여 LNG 소비를 줄이고 석탄 발전으로 대체하려 했습니다. 베트남 민간항공청(CAAV)은 중국과 태국의 수출 제한으로 4월 이후 항공유 부족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베트남은 항공유의 3분의 2 이상을 수입하는데, 그 가운데 약 60%가 중국과 태국에서 옵니다.

라오스의 상황은 메콩 유역 전체에서 가장 급박했습니다. 전국 2,538개 주유소 가운데 40% 이상이 지난 한 주 동안 영업을 중단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나머지 주유소에서도 긴 줄과 제한된 공급이 이어졌습니다. 대학에는 대면 수업을 주 3일로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공무원에게도 재택근무를 권고했습니다. 참파삭(Champasak) 지방 당국은 팍송(Paksong) 지역 주유소 3곳에 정부 규제가를 초과해 판매한 혐의로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지난주 휘발유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주요 석유 및 LPG 수입업체인 소키멕스(Sokimex)는 운송 차질로 인해 4월부터 LPG 공급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캄보디아는 자체 정유 시설이 없습니다. 2024년 기준 석유 수입의 60% 이상을 태국과 베트남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두 나라 모두 수출을 제한하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공급선을 급히 돌려야 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깨오 롯따낙(Keo Rottanak)은 이들 나라로부터의 수입이 늘고 있으며, 토탈(Total)과 셰브런(Chevron) 같은 글로벌 공급업체와의 파트너십이 즉각적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에너지 위기는 불편함이 아니었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박탈되고, 공장이 멈추고, 학교가 문을 줄이고, 병원 발전기의 연료가 떨어지는 것. 그것은 국가의 기본 기능이 하나씩 꺼지는 과정이었습니다.

17.5 중국, 태국의 석유 수출 금지 — 자국 우선의 연쇄 반응

가장 먼저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은 태국이었습니다. 3월 6일. 그다음은 중국이었습니다.

블룸버그는 3월 5일 자로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최대 정유사들에게 경유와 휘발유 수출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쟁이 시작된 지 6일 만이었습니다. 3월 11일에는 모든 정제 연료의 수출 금지로 확대되었습니다. 대상은 휘발유, 경유, 항공유. 세관을 통과하지 않은 모든 화물에 즉시 적용되었습니다. 홍콩, 마카오 방면 공급과 국제선 항공기 급유용 보세 연료는 예외였지만, 그 외의 모든 문이 닫혔습니다.

중국은 한국,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 3위의 연료 수출국입니다. 2025년 약 4,100만 톤의 정제 석유 제품을 수출했습니다. 220억 달러 규모. 주요 수출 대상은 싱가포르, 한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습니다. 이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중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의 분석이 이것을 정리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은 전략 비축유와 상업 재고를 합쳐 약 12억~13억 배럴의 석유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25년 소비 기준 약 100일 치. 2026년 1~2월에도 원유 비축을 추가로 늘렸습니다. 하루 수입 1,199만 배럴에 국내 생산 442만 배럴을 더하면, 합산 1,641만 배럴이 정유 시설에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 향 원유 통과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서방 정부가 이에 주목했을 만큼, 이것은 중국만이 가진 특권이었습니다. 중동 외에도 호주, 중앙아시아, 러시아, 남미, 아프리카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다원화된 수입 구조. 일본과 한국의 천연가스 수입이 거의 전량 해상 LNG인 반면, 중국은 가스 수입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서 오는 시베리아의 힘(Power of Siberia) 1호 같은 육상 파이프라인으로 충당합니다. 하나의 해협이 막혀도 다른 경로가 살아 있는 구조.

그러나 중국의 자국 우선 결정이 아시아의 나머지 국가들에 미친 영향은 가혹했습니다. 모던 디플로머시(Modern Diplomacy)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 금지로 아시아 디젤 파생상품 가격은 3월 17일 기준 배럴당 150달러, 항공유는 163달러, 휘발유는 139.8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전쟁 전 79~92달러 수준에서 폭등한 것입니다. 호주, 방글라데시, 필리핀이 중국산 연료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이들 나라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중국만이 아니었습니다. 태국은 대부분의 정제 연료 수출을 금지했고(라오스와 미얀마 예외), 한국은 수출량을 전년도 수준으로 제한한 뒤 추가 제한을 검토 중이었습니다. 인도와 일본의 정유사들도 해외 판매를 꺼리고 국내 수요 충족이나 높아진 지역 가격의 혜택을 누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한국의 정유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유소는 석유 제품이 부족할 때 국내 시장에 먼저 공급해야 합니다." 분석가들은 이런 조치들이 합산되면 아시아 전역에서 하루 최대 600만 배럴의 정제 가동 축소를 강제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연쇄 반응은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끊어냈습니다. 캄보디아. 정유 시설도, 의미 있는 비축유도 없는 이 나라는 평소 태국과 베트남, 중국에서 정제유를 들여다 썼습니다. 세 나라 모두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하자, 캄보디아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배를 보내 웃돈을 주고 연료를 사와야 했습니다. 라오스에서는 주유소의 40%가 문을 닫았고, 운전자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섰습니다. ASEAN 경제장관들은 공급 차질이 "운임, 보험, 물류 비용을 높이고 에너지, 식품 및 기타 필수재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갈등이 장기화되면 "역내 수백만 명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고 ASEAN의 경제적 진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3월 31일,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정제유 수출 금지를 4월까지 연장할 태세라고. 다만 역내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소량의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고. 4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디젤, 항공유, 휘발유의 제한적 수출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허용 물량은 15만~30만 톤 수준. 현물 수출은 계속 불허. 이 숫자가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규모인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비료 제조업체들은 공급망 교란과 원료 가격 폭등으로 신규 주문을 중단했습니다. 이것은 팜유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글로벌 식품 공급망을 타고 파급될 수 있는 연쇄였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업체들은 헬륨 공급 차질을 우려했습니다. 아직 실제 조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위기가 길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아스터 케미칼스 앤드 에너지(Aster Chemicals and Energy), 인도네시아의 PT 찬드라 아스리 퍼시픽(PT Chandra Asri Pacific) 같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불가항력을 선언했습니다. 계약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통보.

이것이 아시아의 에너지 긴축이 만들어낸 풍경이었습니다. 평화로운 시절,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에 입각해 촘촘하게 짜여 있던 아시아의 통합된 에너지 공급망이 몇 주 만에 해체되었습니다. 각국은 이웃 나라의 공장이 멈추고 주유소 줄이 끝없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 기름통을 먼저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공급망은 이음새부터 찢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음새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나라, 가장 작은 경제, 비축유가 없고 정유 시설이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봉쇄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방콕의 주유소, 프놈펜의 LPG 공급업체, 비엔티안의 대학 강의실, 양곤의 디젤 발전기까지 도달했습니다. 중동의 전쟁이 아시아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상의 파괴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영향권 국가 지도





제18장 항공이 먼저 멈추다

18.1 세부퍼시픽과 필리핀항공의 노선 축소

2026년 3월 24일 오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제3터미널. 전광판이 붉은 글씨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CANCELED. CANCELED. CANCELED. 세부퍼시픽의 마닐라-세부 오후 2시 40분편. 취소. 마닐라-다바오 3시 15분편. 취소. 마닐라-팔라완 4시편. 취소. 터미널 바닥에는 배낭을 안고 앉은 가족들, 휴대전화를 들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업가들, 아이를 업은 채 카운터 앞에 줄을 선 어머니들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날 세부퍼시픽과 필리핀항공은 국내선과 국제선의 상당수를 전격 취소했습니다.

같은 시각, 말라카냥궁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행정명령 제110호에 서명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 필리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란 전쟁에 대한 대응으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나라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마르코스가 블룸버그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짧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우리 항공사에 연료를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그래서 항공기들이 출발지에서 왕복 연료를 모두 싣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비행기가 지상에 묶이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인 가능성입니다."

항공유(Jet A-1, 항공기에 사용되는 등유 계열 연료)는 원유에서 뽑아내는 중간 유분 가운데서도 극히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연료입니다. 영하 50도의 성층권에서 얼지 않아야 하고, 불순물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되어야 합니다. 아시아 항공사들은 이 연료의 대부분을 중동산 원유를 정제해서 얻거나, 중동 정유소에서 완제품 형태로 수입해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이 공급망 전체가 끊어졌습니다.

정유소들은 냉정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원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유탑의 밸브를 조절해 디젤과 난방유 생산을 우선하고, 항공유 생산을 줄였습니다. 수율 조정(Yield Shift, 같은 양의 원유에서 어떤 제품을 더 많이 뽑아낼지를 바꾸는 결정)이라 불리는 이 과정에서, 항공유는 제일 먼저 희생되는 제품이었습니다. 트럭을 멈추면 사람이 굶지만, 비행기를 멈춰도 당장 누가 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이 타격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어느 나라보다 깊이 맞았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 필리핀의 석유 자급률은 바닥에 가깝습니다. 국내에 가동 중인 정유소는 바탄 반도에 있는 페트론(Petron) 시설 하나뿐이고, 이것으로 국내 연료 수요의 40%밖에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머지 60%는 한국,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의 정유소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정유소가 사용하는 원유의 70~8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걸프산입니다. 해협이 막히니 필리핀에 연료를 팔아줄 나라 자체가 사라진 셈이었습니다.

둘, 필리핀은 전략비축유(SPR)가 없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비축량은 정부 소유 비축유가 아니라, 민간 정유사와 유통사의 상업용 재고였습니다. 1990년대에 제정된 석유산업규제완화법(Oil Deregulation Law)에 따라, 민간 기업의 법적 의무 비축량은 고작 15일분이었습니다.

셋, 필리핀은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입니다. 섬과 섬을 잇는 교통수단 가운데 항공은 사치가 아니라 생명선입니다. 세부, 다바오, 팔라완, 보라카이, 민다나오의 도시들은 마닐라와 항공편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이 끊기면 의료품 수송, 긴급 구호, 산업 물류가 동시에 마비됩니다.

세부퍼시픽은 4월부터 10월까지의 노선 축소와 운항 빈도 감축을 발표했습니다. 항공유 가격이 2025년 평균의 두 배 이상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저비용 항공사의 마진으로는 비행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필리핀항공도 중동 노선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리야드, 두바이, 도하행 항공편이 모두 끊겼습니다. 3월 25일, 필리핀항공은 6월 말까지의 항공유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 공급 상황은 역동적입니다"라는 항공사의 성명서에 담긴 '역동적'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우리도 모릅니다"를 뜻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항공유 부족은 필리핀 경제의 또 다른 기둥을 흔들었습니다. 해외노동자(OFW, Overseas Filipino Workers). 중동,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본국에 달러를 송금하는 수백만 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은 이 나라 경제의 숨은 엔진입니다. 2025년 해외 송금액은 37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멈추니 노동자들이 출국할 수 없었습니다. 계약 기한이 다가오는데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마닐라 공항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일부는 출국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송금이 끊기면 가족들의 생활비가 끊기고, 생활비가 끊기면 내수 소비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면 소상공인이 쓰러집니다.

보라카이와 세부의 리조트들은 텅 비었습니다. 관광업 종사자들이 무급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세부퍼시픽의 노란 꼬리날개가 찍힌 항공기들이 활주로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사진이 SNS에 퍼졌습니다. 누군가 그 사진에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새가 날개를 잃으면 그냥 닭이 됩니다." 필리핀에서 항공기는 새였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이 새들의 날개가 꺾였습니다.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3월 25일, 블룸버그는 아시아 전역에서 항공유 비축(Hoarding)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항공사들은 일부 해외 공항에서 급유 거부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수출용 항공유를 국내 시장으로 전환할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필리핀항공 사장은 인터뷰에서 연료 배급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베트남 민간항공청은 4월 초부터 항공유 부족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베트남의 상황은 필리핀 못지않게 심각했습니다. 베트남은 항공유의 3분의 2 이상을 수입하고, 그 수입의 60%를 중국과 태국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3월 들어 정제유 수출을 중단했고, 태국 역시 정제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베트남의 두 주요 항공유 수입업체인 페트로리멕스(Petrolimex)와 스카이펙(Skypec)은 3월분 공급만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4월 이후의 물량은 약속할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 민간항공청은 3월 9일, 교통부에 긴급 문서를 보냈습니다. "4월 초부터 베트남 항공사들의 항공유 부족 위험이 있습니다." 이 문서는 항공사들에게 운항 계획을 재검토하고, 공항 운영자에게는 지상에 묶일 항공기를 위한 추가 주기 공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3월 23일, 베트남항공은 4월 1일부터 주당 23편의 국내선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이퐁-부온마투옷, 하이퐁-캄란, 하이퐁-푸꾸옥, 하이퐁-칸토, 호찌민-반돈, 호찌민-락자, 호찌민-디엔비엔. 이 노선들은 대부분 관광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푸꾸옥의 해변 리조트, 칸토의 메콩 델타 관광, 디엔비엔의 역사 투어가 항공유 부족으로 멈추게 된 것입니다. 비엣젯 항공도 일부 노선을 축소했습니다. 민간항공청 문서에 따르면,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60~2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베트남항공은 월 비행편의 10~20%를 추가 삭감할 계획이었습니다. 국제선 최대 18%, 국내선 최대 26%까지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3월 15일, 베트남 외무장관 레 호아이 쭝이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게 에너지 안보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팜 민 찐 총리는 태국 대사를 만나 항공유 공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한국, 일본, 브루나이, 인도에서 대체 공급원을 찾고 있다고 민간항공청은 밝혔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는 극히 어렵다고 인정했습니다.

3월 21일, 베트남은 러시아와 석유가스 생산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 휘발유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50%, 디젤은 70% 올랐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SAS 항공은 3월 18일, 4월에 최소 1,000편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CEO 안코 반 데르 베르프의 말은 간결했습니다. "제트연료 가격이 열흘 만에 두 배가 되었습니다." SAS는 하루에 약 800편을 운항하는 항공사입니다. 평시 기준 1,000편은 하루 반나절 분량입니다. 하지만 SAS의 결정이 주목을 받은 건 규모가 아니라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주요 항공사 가운데 순수하게 연료비 때문에 노선을 삭감한 첫 번째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에어 뉴질랜드도 3월 12일부터 5월 초까지 전체 운항편의 5%, 약 1,100편을 삭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항공 CEO 스콧 커비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제트연료 가격이 3주 만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항공유 위기의 수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연료가격 모니터에 따르면, 글로벌 평균 항공유 가격은 한 달 사이에 82.8% 올라 배럴당 175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6년 항공유 평균 가격 전망을 갤런당 2.67달러로 상향했습니다. 이전 전망치보다 37% 높은 수치입니다. 항공유가 항공사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시 25~30%인데, 이 비율이 40%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의 CEO 로널드 램은 3월 항공유 비용이 이전 두 달 평균의 두 배라고 밝혔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은 원유 부분의 30%만 헤징(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리 계약하는 기법)해놓은 상태였고, 정제 비용 부분은 헤징이 아예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항공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한항공은 4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편도 기준 최대 30만 3,000원으로 올렸습니다. 3월의 최대 9만 9,000원에서 세 배가 넘는 인상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최대 25만 1,900원으로 올렸습니다. 제주항공은 노선별로 3배 이상 인상했습니다. 인천-후쿠오카 노선의 유류할증료가 9달러에서 29달러로, 인천-싱가포르는 68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은 "인천-뉴욕 왕복 기준 유류할증료만 50만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진에어는 4월 괌, 나트랑 등 노선에서 45편을 삭감했습니다. 에어프레미아는 4~5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방콕, 뉴욕 노선에서 약 50편을 줄였습니다.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에어로케이도 동남아와 일본 노선을 축소하거나 중단했습니다. 대한항공은 3월 31일,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티웨이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세 번째였습니다. 대한항공의 원래 사업 계획은 항공유 가격을 갤런당 220센트로 가정하고 세운 것이었습니다. 실제 가격은 450센트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코리아헤럴드는 5월 유류할증료가 33단계 중 최고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22단계였습니다.

서울의 한 가장(家長)이 서울경제신문에 한 말이 이 상황을 압축합니다.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려고 다음 달 도쿄 여행을 계획했던 A씨는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일 기준 30만 원대였던 항공료가 50만 원으로 뛰어 있었습니다. "4인 가족이면 계산만 해도 80만 원이 늘어납니다. 그냥 여행을 취소하는 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18.2 중동 노선의 전면 중단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밤, 이란, 이스라엘, 이라크, 요르단,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가 동시에 영공을 폐쇄했습니다. 시리아도 이스라엘 국경 인근의 남부 영공을 12시간 동안 닫았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중동행 항공편의 24%가 취소되었습니다. 카타르행과 이스라엘행은 절반이 취소되었고, 쿠웨이트행은 28%가 사라졌습니다.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시리움(Cirium)의 집계입니다.

3월 3일까지, 두바이 국제공항, 하마드 국제공항(도하), 자이드 국제공항(아부다비), 샤르자 국제공항, 쿠웨이트 국제공항, 바레인 국제공항, 두바이 월드센트럴-알 막툼 국제공항 등 중동 7개 주요 공항에서 취소된 항공편은 1만 2,300편을 넘었습니다. 플라이트레이더24의 집계입니다. 3월 중순까지 누적 취소 편수는 2만 편을 돌파했습니다.

이 숫자들이 뜻하는 것이 있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은 2025년 연간 9,52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 세계에서 제일 바쁜 국제공항이었습니다.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은 5,430만 명,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제공항은 3,300만 명이었습니다. 세 공항을 합치면 연간 1억 8,250만 명입니다. 하루 평균 50만 명이 이 공항들을 거쳐갔다는 뜻입니다. 이 공항들이 멈추거나 운영을 극도로 축소했을 때, 전 세계 항공 네트워크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CNN은 이것을 "하늘의 구멍(the hole in the sky)"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30년간, 에미레이트 항공(두바이), 카타르 항공(도하), 에티하드 항공(아부다비)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글로벌 환승 허브를 만들어왔습니다. 항공 컨설턴트 마이크 아르놋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중동에 기반을 둔 항공사들은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맞춤형 항공사와 허브를 건설했습니다."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파리에서 시드니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울로 가는 승객들의 상당수가 두바이나 도하를 경유했습니다. 이 모델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과 아부다비 공항은 이란의 보복 공격 때 실제로 피격되었습니다. 유로뉴스는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공항 모두 이란의 공격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 상공에서 드론 경보가 울릴 때마다 항공기들이 인근 국가로 회항했습니다. 영공이 폐쇄된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운항 재개를 시도한 에미레이트 항공은 3월 7일까지 정규 운항을 중단했고, 에티하드도 비슷한 일정으로 운항을 멈췄습니다. 카타르 항공은 카타르 영공이 폐쇄된 채로 유지되면서 정규 운항 재개 시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영국항공은 암만, 바레인, 두바이, 텔아비브행 항공편을 5월 31일까지, 도하행은 4월 30일까지 취소했습니다. 아부다비행은 연말까지 중단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 그룹의 오스트리아 항공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비엔나로 승무원 대피 비행을 운항했습니다. 터키항공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도하, 두바이, 아부다비, 쿠웨이트, 바레인, 담맘행 항공편을 3월 19일까지, 이란행은 3월 20일까지 취소했습니다. 페가수스 항공은 이란, 이라크, 암만, 베이루트, 쿠웨이트, 바레인, 도하, 담맘, 두바이, 아부다비, 샤르자행을 4월 12일까지 취소했습니다.

수만 명의 승객이 중동 공항에 발이 묶였습니다. CNN은 이것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본국 송환 작전"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고 묘사했습니다. 영국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런던 스탠스테드로 정부 전세기를 띄웠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이스라엘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위해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 이집트 타바 국경까지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캐나다는 UAE 영공 개방에 맞춰 전세기를 준비했습니다. 뉴질랜드는 국방부 수송기 두 대를 중동에 파견했습니다. 오만 무스카트 공항은 대피와 재배치 항공기들이 몰려들면서 혼잡해졌고, 일부 비즈니스 항공편 제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승무원 사라 굿윈은 도하에 발이 묶인 채 틱톡에 영상을 올렸습니다. "미사일 소리를 직접 듣게 될 줄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이 닫히자 남은 길은 돌아가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악순환의 시작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영공은 이미 대부분의 국제 항공사에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가자 분쟁으로 동지중해 일부 영공도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시리아, 카타르, 바레인, UAE, 이스라엘 영공이 추가로 폐쇄되거나 심하게 제한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안전한 항로가 극히 좁아졌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공기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북쪽 우회 항로: 코카서스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돌아가는 길. 남쪽 우회 항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오만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길. 두 경로 모두 직항에 비해 2~4시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추가 비행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항공유 소비의 기하급수적 증가입니다. 홍콩-런던 노선의 항공권 평균 가격은 한 달 만에 560% 올라 3,318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방콕-프랑크푸르트는 505% 올라 2,870달러가 되었습니다. 시드니-런던의 이른바 '캥거루 루트'는 429% 상승했습니다. 알톤 에이비에이션 컨설턴시의 분석입니다.

알톤 에이비에이션의 브라이언 테리 디렉터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란 전쟁이 일찍 끝나더라도, 낮아진 가격이 항공유 공급망에 반영되기까지 최대 3개월이 걸립니다. 우회 경로에 따른 비행시간 증가, 좌석 공급 감소, 지속적인 고유가가 결합되어 상당 기간 가격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입니다." 아시아-유럽 항공료는 10월까지 전년 대비 3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보험 시장이 최후의 타격을 가했습니다.

해운 보험이 해상 봉쇄를 완성했듯이, 항공 보험이 하늘의 봉쇄를 완성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의 기억은 보험업계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런던 로이즈를 비롯한 글로벌 항공보험사들은 중동 영공을 통과하는 모든 상업 비행에 대해 전쟁 위험 보험(War Risk Insurance)의 인수를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올렸습니다. 인도 항공사들은 광폭동체 항공기(보잉 777이나 에어버스 A380 같은 대형기) 한 대의 왕복 비행당 전쟁 위험 보험료가 1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1미터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보험은 물리적 위험이 아니라 금융적 판단으로 하늘길을 차단한 것입니다. 미사일과 드론은 바다를 막았지만, 보험사의 계산기가 하늘을 막았습니다.

18.3 45일 비축분의 의미

2026년 3월 24일, 필리핀 상원 청문회.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증언석에 앉았습니다. 의원 로렌 레가르다가 질문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뭡니까?" 가린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라가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이 한 문장이 필리핀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가린이 제시한 숫자는 이랬습니다. 가솔린 53.14일, 디젤 45.82일, 등유 97.93일, 항공유 38.62일, 중유 61.49일, LPG 23.51일. 평균 약 45일. 여유가 있는 쪽은 등유(약 98일)였고, 제일 급한 것은 LPG(약 24일)와 항공유(약 39일)였습니다.

45일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시 배급 체제로 쥐어짜며 연명하는 45일이 아니라, 평시 소비량을 기준으로 계산한 45일이었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평소처럼 쓰면 45일 만에 바닥난다는 뜻입니다. 배급제를 시행하고 수요를 억제하면 기간을 늘릴 수 있지만, 그래 봐야 두세 달이 한계입니다.

게다가 이 비축분은 정부가 소유한 전략비축유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민간 정유사와 유통업체의 상업용 재고였습니다. 석유산업규제완화법에 따른 민간 기업의 법적 의무 비축량은 고작 15일분이었습니다. 나머지 30일분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업 재고인데, 정부가 이것을 강제로 징발할 법적 근거가 취약했습니다.

레가르다 의원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이것도 위기가 아니란 말입니까?" 불과 하루 전인 3월 23일, 청와대(말라카냥궁)는 "에너지 위기는 없다"고 공식 발표했었습니다. 24시간 만에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로 바뀐 것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나라에서, "누구에게 먼저 남은 기름을 줄 것인가"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입니다. 마르코스 정부는 이 문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1순위는 서민 경제와 식량망이었습니다. 필리핀의 대중교통은 지프니(Jeepney,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지프를 개조해 만든 미니버스)가 떠받치고 있습니다. 마닐라의 서민들은 지프니 없이 출퇴근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지프니 운전사들에게 5,000페소(약 83달러)의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고, MRT와 LRT 등 도시철도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요금을 할인했습니다. 농부와 어부에게는 디젤 보조금이 우선 배정되었습니다. 섬 지역의 전력을 담당하는 국가전력공사(Napocor)의 디젤 발전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지정되었습니다.

2순위는 산업 시설과 병원이었습니다. 메트로 마닐라의 전기를 공급하는 메랄코(Meralco) 전력회사는 3월 초에 이미 킬로와트시당 64센타보의 요금 인상을 단행했고, 4월에는 추가로 16%의 인상이 예고되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3월 6.3~7.5%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항공은 이 우선순위에서 맨 아래에 놓였습니다. 쌀을 실어 나를 트럭의 디젤이 바닥나는 판에, 해외여행을 위한 비행기에 기름을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비행기 운항 중단은 현실적 가능성"이라고 인정한 것은, 항공의 멈춤을 용인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민들의 분노는 보조금으로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3월 19일, 지프니 운전사 연합체 피스톤(PISTON, Pagkakaisa ng mga Samahan ng Tsuper at Operator Nationwide, 전국 운전사 및 운영자 통합연맹)이 하루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피스톤 의장 모디 플로란다의 요구는 세 가지였습니다. 석유제품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폐지, 리터당 55페소 가격 상한제, 5페소 요금 인상 허용.

파업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었습니다. 1월에 리터당 57.60페소였던 디젤이 3월 말 126~130페소로 올랐습니다. 두 배가 넘었습니다. 휘발유는 54.90페소에서 94~99페소로 뛰었습니다. 지프니 운전사 아르투로 모델로, 52세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600페소를 벌었는데, 지금은 그 3분의 1밖에 못 법니다. 아이 점심값도 못 줍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귀먹은 정부가 들으라고요."

3월 23일, '유가 인상 반대 연합(No to Oil Price Hike Coalition)'이 출범했습니다. 피스톤, 마니벨라(Manibela), 라반 TNVS(Laban TNVS), 카라이더스(Kariders), 카굴롱(Kagulong) 등 전국 운수 노동자 단체들의 연합이었습니다. 3월 26~27일 이틀간의 전국적 운수 파업이 예고되었습니다.

파업 당일, 마닐라는 마비되었습니다. 퀘존시의 리텍스와 필코아, 파라냐케의 수캇 로드에서 통근자들이 발이 묶였습니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는 교통 문제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출석을 면제했습니다.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는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세부에서도 지프니 대부분이 운행을 중단했고, 거리에는 오토바이 택시(하발하발)와 현대식 지프니만 과적 상태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3월 27일 금요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말라카냥궁(대통령 관저)까지 행진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유가 통제, 유류세 폐지, 정유 산업 규제 강화였습니다. 시위대 가운데 누군가가 이란 국기를 흔들었습니다. '유가 인상 반대 연합'은 필리핀이 겪는 경제적 고통의 원인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침략"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3월 26일 재외국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3월 26~27일 전국적 교통 파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중교통 전면 마비, 추가적 교통 혼잡, 대사관 인근을 포함한 시위가 예상됩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3월 25일, 원유 가격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유류 개별소비세를 일시 정지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4일제 근무와 재택근무 확대도 검토되었습니다. 하지만 파업을 주도한 노동 단체들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에너지부의 가린 장관조차 인정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디젤 가격이 리터당 약 2.7달러인데, 필리핀은 2.3달러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의 주유소 가격은 그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차이의 원인은 정부 보조금의 유무입니다. 필리핀은 이웃 나라들과 달리 석유제품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없습니다. 규제 완화법이 가격 결정을 전적으로 민간 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필리핀 신용평가투자서비스(CRISP)의 수석경제학자인 에마뉘엘 레이코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범은 1998년의 석유산업규제완화법입니다. 작은 가격 조정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인구의 절반이 가난하니까요."

45일의 카운트다운은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비슷한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비축량의 크기와 정부의 대응 여력이었습니다.

일본은 석유 비축량이 약 230일분으로, 아시아에서 넉넉한 편에 속합니다. 국가 비축과 민간 비축을 합친 수치입니다. 한국은 약 90일분의 전략비축유와 민간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추정치가 다양하지만, 120일분 이상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으로 일부 대체가 가능합니다.

반면 필리핀의 45일, 베트남의 항공유 3월분 보장,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취약한 비축 구조는 에너지 위기가 먼저 도달하고 오래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위키피디아의 '2026년 이란 전쟁의 경제적 영향' 항목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취약한 곳은 아시아에 있다."

필리핀은 3월 23일, 5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코즈미노항에서 출발한 유조선 사라 스카이호가 ESPO 블렌드(러시아 극동산 원유) 10만 톤, 약 75만 배럴을 싣고 바탄 반도의 페트론 정유소로 향했습니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경제적 고통을 미국의 동맹국이 러시아의 석유를 수입해서 완화하는 상황. 이 아이러니를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도 같은 주에 러시아와 석유가스 생산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카타르, 쿠웨이트, 알제리, 일본에도 연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는 한국, 일본, 중국 정부와 긴급 G2G(정부 간) 대화를 타진했습니다.

항공유가 먼저 바닥났다는 사실은 에너지 위기의 해부학을 보여줍니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 제일 먼저 죽는 것은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 제일 정교한 것, 제일 대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항공유는 그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영하 50도에서 작동하는 고품질 연료,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유일한 운송 수단, 한 번 끊기면 복구에 수개월이 걸리는 공급망.

그리고 항공이 멈추면 세계화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세계화란 사람과 화물이 24시간 안에 지구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구조입니다. 반도체 부품이 태국에서 일본으로 하루 만에 도착하고, 긴급 의약품이 인천에서 마닐라로 같은 날 배송되고, 사업가가 서울에서 두바이를 거쳐 런던으로 하루 만에 건너가는 것이 세계화의 일상이었습니다. 2026년 3월, 그 일상이 멈췄습니다.

텅 빈 공항의 탑승구, 활주로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항공기들, 전광판의 붉은 글씨. 이것은 단지 여행 불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1마일의 수로가 막히면 하늘길도 막힌다는 것, 에너지의 흐름이 끊기면 세계의 연결도 끊긴다는 것.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2026년 3월의 항공 위기였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 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말한 "나라가 말라버리는 것"이라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45일이 지나면 정말로 말라버립니다. 그리고 그 45일은, 누구를 먼저 살릴지를 결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19장 연기로 사라진 횡재

19.1 러시아의 기회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 작전이 이란을 강타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기 시작한 그 순간, 지구 반대편 모스크바의 에너지 관료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의 책상 위 모니터에 찍힌 브렌트유 가격이 하루 만에 80달러대에서 100달러를 뚫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3월 첫째 주가 끝나기 전에 브렌트유는 배럴당 108달러를 기록했고, 러시아의 주력 수출 유종인 우랄(Urals)유는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우랄유의 처지는 비참했습니다. 서방의 제재와 유가 상한제 아래서 우랄유는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28달러나 싸게 팔리고 있었습니다. 2026년 1월과 2월 사이, 우랄유의 거래 가격은 배럴당 53달러에서 59달러 사이를 맴돌았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2026년 예산을 짤 때 상정한 유가는 배럴당 59달러. 현실은 그 숫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6년 첫 두 달 동안 러시아의 재정 적자는 350억 달러에 달했고,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에너지 분석가 세르게이 바쿨렌코는 러시아의 2026년 전체 재정 적자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이 닫혔습니다. 하루 2,000만 배럴이 지나가던 수로가 막혔습니다.

중동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된 아시아의 거대 수입국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중국, 인도, 태국, 베트남.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러시아였습니다.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3월 들어 전월 대비 22% 증가했습니다. 인도는 82% 급증했습니다. 브라질은 32%, 싱가포르는 거의 세 배로 뛰었습니다. 에너지 청정대기연구센터(CREA, 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의 루크 위켄든 분석가는 CBS 뉴스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산 원유에 붙어 있던 10~20%의 할인율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브렌트유와 거의 같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숫자로 확인해 봅니다. CREA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후 첫 24일간 러시아의 원유 수출 평균 일일 수입은 3억 8,800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2월 평균보다 20% 높은 수치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를 이란 전쟁의 "최대 수혜자"라고 불렀고, 일일 수입이 1억 5,000만 달러나 늘어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블룸버그의 선박 추적 데이터는 더 적나라했습니다. 3월 15일까지의 일주일 동안 러시아의 해상 원유 수출 수입은 약 20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주보다 8억 9,000만 달러가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래 최대 주간 증가폭이었습니다.

크렘린궁은 이 횡재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현재의 가격 환경에서 우리 석유 기업들이 추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푸틴 대통령은 석유 생산업자들에게 "이 상승장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독려했습니다. 다만 그는 이 급등이 "일시적"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 단서가 얼마나 정확한 예언이었는지는 며칠 뒤에 증명됩니다.

에너지 시장의 산수는 잔인할 정도로 명쾌했습니다. 러시아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총 한 발 쏘지 않았습니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은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이 러시아에게 역사적인 고유가를 선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비용으로 텅 비어가던 금고가 남의 전쟁 덕에 다시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정보에 따르면, 제재와 우리의 심층 타격으로 러시아는 2026년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4~15일 동안 약 100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 그 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CNBC에 출연한 전 NATO 유럽연합군 부사령관 리처드 시레프 장군은 비유를 하나 들었습니다. "러시아 경제는 해발 8,000미터 이상의 죽음의 영역(Death Zone)에 있는 등반가와 같습니다. 몸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치명적 손상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경제적으로 득을 보고 있습니다." 죽음의 영역에서 벌어먹는 횡재. 이것이 2026년 3월 초, 러시아가 처한 역설의 정확한 좌표였습니다.

19.2 미국의 러시아 제재 완화

2026년 3월 12일 밤,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에 한 장의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공식 명칭은 일반허가서(General License). 내용은 이랬습니다. 3월 12일 기준으로 이미 선박에 적재되어 해상에 있는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의 구매 및 인도를 4월 11일까지 30일간 허용한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이 조치를 "좁게 설계된 단기 조치"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항해 중인 석유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러시아 정부에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그의 말과 정반대였습니다. 인도의 정유사들은 허가서가 뜨자마자 움직였습니다. 미국이 인도에 별도의 30일 면제를 부여한 것은 이보다 일주일 앞선 3월 5일이었는데, 그때부터 이미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량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CREA 자료에 따르면 3월 첫 3주간 인도의 러시아 원유 일평균 수입은 2월 평균 대비 82% 증가했습니다. 전에는 제재 리스크를 감수하느라 할인가에 사가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구매자들이, 이제는 미국 정부의 허가증을 들고 당당하게 러시아 원유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블룸버그의 데이터가 보여준 숫자는 베센트 장관의 언어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제재가 러시아산 원유 한 배럴마다 부과하고 있던 28달러의 벌금(사실상의 디스카운트)이 허가서 발표 이후 급속히 쪼그라들어 3월 13일에는 4.80달러로 떨어졌습니다. 4개월 만의 최저치였습니다. 우랄유는 100달러를 돌파했고, 러시아 정부가 예산에 반영한 59달러의 거의 두 배 가격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해상 수출 수입이 8억 9,000만 달러 늘어났다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입니다.

이 사태의 구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이 이란을 폭격해서 호르무즈 해협이 닫혔고, 해협이 닫혀서 유가가 폭등했고, 유가를 낮추려고 러시아 제재를 풀었고, 제재가 풀려서 러시아의 금고가 찼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나란히 선 기자회견에서 이 조치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번 완화만으로도 러시아에 전쟁을 위한 약 100억 달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러시아는 에너지 판매 수입을 무기에 씁니다. 그 무기는 전부 우리를 향합니다. 제재를 풀어서 나중에 더 많은 드론이 날아오게 만드는 것은, 제 생각에는 옳은 결정이 아닙니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노르웨이 방문 중에 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G7의 6개 회원국이 이것은 잘못된 신호라는 매우 분명한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달리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가격 문제이지 공급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이 결정을 내리게 된 추가적인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카리 히어만 선임연구원은 이 상황을 세 가지 우선순위의 충돌로 분석했습니다. 낮은 휘발유 가격, 이란과의 전쟁,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통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미국은 낮은 휘발유 가격과 이란 전쟁을 택했습니다. 경제적 국정 운영(economic statecraft)을 많이 하는 세상에서 내려야 하는 종류의 결정입니다."

석유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카타르산 비료 원료의 수급이 끊어졌습니다. 미국 중서부의 봄 파종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비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적국인 러시아로부터 비료를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습니다. 러시아산 헬륨, 알루미늄, 질소 비료의 수출도 국가 수입에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규모는 석유보다 작지만, 방향은 같았습니다. 미국의 폭탄이 이란에 떨어지는 동안, 러시아의 은행 계좌는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아틀란틱 카운슬의 리나스 코얄라와 비타우타스 레셰비추스는 3월 20일자 분석에서 이 역설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단기적인 시장 관리를 위한 긴급 조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그래야만 합니다. 일시적이고, 좁고, 이미 항해 중인 화물에 한정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더 넓은 제재 완화로 전환시키면 러시아에 보상을 주는 것이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금융 압박이 비로소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은 악순환의 구조를 지적했습니다. 한번 완화가 시작되면, 그것은 모스크바와의 더 넓은 정치적 대화 쪽으로 논의를 끌어가고, 그 대화는 자연스럽게 추가적인 제재 해제 논의로 이어지며, 두 개의 궤도가 서로를 먹여살리면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순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민주당 소속 진 샤힌 상원의원은 공식 성명을 냈습니다. "푸틴이 이란을 도와 중동의 미군을 겨냥하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은 크렘린의 전쟁 금고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흔들리는 경제를 조이는 대신, 대통령이 무모하게 시작한 전쟁이 푸틴에게 횡재를 안겨주고 있으며, 미국 가정은 더 높은 물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앞서 제4부에서 살펴본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경제적 충격이 여기서 의도하지 않은 두 번째 파급을 낳은 것입니다. 첫 번째 파급은 유가 급등과 아시아의 에너지 위기였습니다. 두 번째 파급은 미국 스스로가 쌓아올린 대러시아 제재 체계의 내부 붕괴였습니다. 세계 최강국도 하루 2,000만 배럴의 물리적 결핍 앞에서는 적국에 대한 경제 전쟁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Axios의 분석이 이 상황의 핵심을 짚었습니다. "제재를 풀면 낙인(stigma)도 사라집니다. 한번 사라진 낙인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4월 11일에 30일 유예가 만료되었을 때, 미국 정부가 과연 제재를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 이것이 3월 중순 시점에서 워싱턴과 브뤼셀의 정책 결정자들이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19.3 그러나 수출할 수 없는 석유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밤에서 23일 월요일 새벽 사이, 러시아 레닌그라드주의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249기의 우크라이나 드론이 밤새 러시아 영토를 향해 날아갔고, 그중 상당수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프리모르스크 항구(Primorsk Port)를 정확히 타격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는 러시아 발트해 연안 최대의 원유 수출항입니다. 하루 수출 용량이 원유 100만 배럴, 디젤 30만 배럴. 트란스네프트(Transneft)가 운영하는 발트 파이프라인 시스템(BPS)의 종착점이자, 제재를 피해 러시아 원유를 실어 나르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의 주요 출항지이기도 합니다.

드론은 연료 저장 탱크와 원유 선적 인프라를 동시에 타격했습니다. 위성 사진에서 확인된 것만 18개 탱크 중 최소 5개가 손상되었습니다. 레닌그라드주 주지사 알렉산드르 드로즈덴코는 텔레그램에 "연료 탱크가 손상되어 화재가 발생했다"고 적었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진화 작업을 벌이는 동안 항구 인력은 전원 대피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트란스네프트-프리모르스크 석유 터미널이 타격을 받았고, 탱크파크와 원유 선적 인프라 모두에 피해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블룸버그가 확인한 선박 데이터에 따르면 프리모르스크에서의 유조선 선적은 즉시 중단되었습니다. NASA 화재정보시스템(FIRMS)의 위성 영상에는 원유 선적 터미널과 석유 제품 터미널 양쪽 모두에서 화재가 감지되었습니다. 불은 하루가 넘도록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인 3월 24일에서 25일 사이의 밤, 두 번째 타격이 왔습니다. 이번 표적은 프리모르스크에서 남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우스트루가(Ust-Luga) 항구였습니다. 우스트루가는 러시아의 또 다른 발트해 핵심 수출항으로, 하루 약 70만 배럴의 원유 수출을 처리하며, 노바텍(Novatek) 사의 가스 콘덴세이트와 석유 제품 처리시설도 들어서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스트루가에서 수출된 석유 제품은 3,290만 톤, 프리모르스크에서는 1,680만 톤이었습니다. 두 항구를 합치면 하루 2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가 이곳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과 총참모부는 알파 특수작전센터 소속 장거리 드론이 900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하여 우스트루가의 노바텍 석유 제품 시설을 타격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저장 탱크와 선적 장비가 불에 타올랐습니다. 화염과 연기 기둥은 인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관측되었고,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시민들에게 "대기오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풀코보(Pulkovo) 국제공항은 드론 위협으로 수시간 동안 이착륙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세 번째 타격이 이어졌습니다. 3월 25일에서 26일 사이의 밤, 드론들은 같은 레닌그라드주에 있는 키리시(Kirishi) 정유소를 겨냥했습니다. 키리시네프테오르그신테즈(KINEF, Kirishinefteorgsintez)라는 정식 명칭의 이 정유소는 수르구트네프테가스(Surgutneftegas)가 소유한 러시아 제2위의 정유 시설입니다. 연간 처리 능력 약 2,000만 톤, 하루 기준 약 35만 배럴. 러시아 전체 원유 정제량의 6.6%를 처리하며, 2024년에는 휘발유 200만 톤, 경유 710만 톤, 중유 610만 톤, 비투멘 60만 톤을 생산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드론이 1차 정제시설(primary processing unit) 두 기와 복수의 2차 시설에 화재를 일으켰고, 정유소는 가동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이후 상세 피해를 발표했습니다. 주요 원유 증류 장치인 ELOU-AVT-2와 ELOU-AVT-6이 손상되었고, 비투멘 생산 시설, 수소처리 장치, 가스 분류 시스템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수리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섯 일 동안 세 번의 타격. 프리모르스크, 우스트루가, 키리시. 세 곳 모두 레닌그라드주에 있고, 세 곳 모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800~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자폭 드론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공격의 타이밍에는 분명한 전략적 의도가 있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로이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재를 풀었고, 유가 급등으로 러시아의 금고가 차고 있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제적 관심은 이란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젤렌스키는 CNN 인터뷰에서 공격의 논리를 더 직접적으로 밝혔습니다. "우리는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그들의 공격에 응답했습니다. 우스트루가의 역량을 줄이는 강력한 타격으로 응답했습니다. 우리의 타격 이후 그 시설 역량의 40%만 남았습니다."

라이스대학교 베이커연구소는 2026년 2월 보고서에서 이 전략을 "물리적 제재(Kinetic Sanctions)"라는 용어로 개념화했습니다. 법적 제재는 가격 할인을 만들어내고, 그 할인은 그림자 선단과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는 중개인들에게 차익 거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새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유조선의 국적을 바꾸는 것은 빠르고 저렴합니다. 그러나 폭발물에 의해 파괴된 에너지 자산을 교체하는 것은 느리고 비쌉니다. "대규모의 물리적 타격을 통한 물리적 제재는 러시아를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으며, 거기에 핵심적인 전략적 영향이 있습니다."

제재가 종이 위의 전쟁이라면, 드론은 철과 화약의 전쟁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법정과 규정 준수 부서를 통해 느리게 집행하는 제재를, 우크라이나는 드론 조종팀을 통해 몇 시간 만에 집행했습니다. 원유가 시장에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다면, 그림자 선단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차익 거래의 창이 닫히는 것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3월 25일 기사에서 결과를 집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유조선 나포, 드루즈바 파이프라인 폐쇄를 합산하면, 러시아 전체 석유 수출 용량의 약 40%, 하루 약 200만 배럴이 가동을 멈추었습니다. "현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석유 공급 중단"이라고 로이터는 평가했습니다.

40%라는 숫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쪼개서 봅니다. 발트해의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가 드론에 타격을 받아 선적을 반복적으로 중단했습니다. 흑해의 노보로시스크 항구는 3월 초의 드론 공격 이후 선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의 우크라이나 구간은 1월 27일 러시아의 공습으로 손상되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로의 송유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유럽 해군이 러시아 그림자 선단 유조선을 억류하면서 해상 수출에 추가적인 병목이 생겼습니다. 러시아에 남은 주요 수출 경로는 중국으로 가는 파이프라인과 극동의 코즈미노(Kozmino) 항구뿐이었고, 이 두 경로의 합산 수출량은 하루 약 190만 배럴이었습니다.

프리모르스크는 3월 26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미네르바 조지아 호가 접안하면서 선적을 일부 재개했지만, 트란스네프트는 원유를 다른 경로로 우회시키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재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3월 26일에서 27일 사이의 밤, 우크라이나 드론은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를 동시에 다시 타격했습니다. 닷새 만에 세 번째 공격이었습니다. NASA 위성 데이터는 두 항구 모두에서 새로운 화재를 확인했습니다. 풀코보 공항은 또다시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유로마이단프레스는 이 공격 패턴을 분석하면서 "이 속도는 키이우가 러시아의 발트해 석유 수출 항구를 복구 불가능한 수준까지 파괴하려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드론이 날아간 것은 러시아 영토만이 아니었습니다. 3월 25일 새벽 3시 43분, 에스토니아 동부 이다비루 카운티에 있는 아우베레(Auvere) 화력발전소의 굴뚝에 드론 한 기가 충돌했습니다. 러시아 영공에서 날아온 것이었습니다. 에스토니아 총리 크리스텐 미할은 드론이 에스토니아의 우스트루가 타격 중 경로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날 라트비아에서도 드론 한 기가 러시아 영공에서 넘어와 국경 근처에 추락 폭발했습니다.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이틀 전인 3월 23일 밤에는 리투아니아 남동부 바레나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 드론이 벨라루스 영공을 거쳐 날아와 추락한 바 있습니다.

세 개의 발트 3국이 48시간 안에 모두 드론 침입을 경험한 것입니다. NATO 회원국의 영토에 우크라이나 드론이 떨어졌습니다. 러시아의 GPS 재밍과 스푸핑이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전자전 장비가 위성 항법 신호를 교란하거나 위조하면, 드론이 자기 위치를 잃어버리거나 잘못된 좌표로 비행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표적까지의 거리가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상황에서, 작은 항법 오차가 수십 킬로미터의 경로 이탈로 증폭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 국영 TV는 "발트 3국이 우크라이나 드론의 비행을 위해 영공을 개방했다"는 주장을 내보냈습니다. 발트 3국은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유럽연합에 방공 체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에스토니아 국방군 사령관은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드론을 요격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술적으로 제약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확전의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드론을 교전할 수 없습니다." 발트해 상공의 드론 잔해는 이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국경을 넘어 NATO의 동부 전선으로 물리적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국방부는 하룻밤 사이에 389기의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항구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바크는 석유 기업들과 협의를 거쳐 4월 1일부터 휘발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국영통신 타스(TASS)가 보도한 이 금지 조치는 2025년 9월에도 한차례 시행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우크라이나의 정유소 타격으로 국내 휘발유 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메르산트지는 이번 금지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출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업자들이 국내 시장 대신 해외 시장으로 휘발유를 돌리고 있어 내수가 부족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설의 완전한 회로가 드러납니다.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올랐습니다. 러시아는 비싼 값에 석유를 팔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국은 유가를 낮추려고 러시아 제재까지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수출 항구를 불태워서 석유를 실어 보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비싼 가격에 팔 석유는 있는데, 그 석유를 배에 실을 항구가 타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은 1월부터 끊겨 있었고, 유럽 해군은 그림자 선단 유조선을 잡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젤렌스키는 이 전략의 논리를 3월 중순 기자회견에서 명확히 밝혔습니다. "제재가 없으면 러시아의 돈벌이에 맞서 싸우는 것은 오직 우크라이나 무기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략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반격하지 않으면, 아무도 러시아 경제와 싸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자지라는 3월 27일 보도에서 우크라이나의 타격을 "러시아의 전쟁 금고가 다시 채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26일 기준 배럴당 108.01달러였습니다. 2월 27일, 이란 전쟁 발발 전날에는 70.71달러였습니다. 한 달 만에 53% 올랐습니다. 이 가격에 석유를 팔 수만 있다면 러시아의 재정 적자는 사라집니다. 젤렌스키가 말한 1,000억 달러의 적자가 메워집니다. 푸틴은 전쟁을 계속할 자금을 확보합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그것만은 막아야 했습니다.

러시아에게는 나머지 수출 경로가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파이프라인과 코즈미노 항구를 통한 극동 수출입니다. 하루 약 190만 배럴. 이 물량은 드론의 사정거리 밖에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서쪽 경로가 막혔다는 것은, 유럽과 인도와 아프리카를 향한 해상 수출의 대부분이 차단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코즈미노에서 실을 수 있는 양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3월 29일, 우스트루가는 또다시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항구, 같은 시설, 같은 패턴. 이번에도 화재가 발생했고, 이번에도 선적이 중단되었습니다. 3월 31일에는 또 한 번의 공격이 보고되었습니다. 블룸버그는 우스트루가가 "추가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장의 제목이 "연기로 사라진 횡재"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란 전쟁이 러시아에 안겨준 것은 역사적인 고유가의 기회였습니다. 미국의 제재 완화가 덧붙인 것은 합법적으로 석유를 팔 수 있는 허가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이 빼앗은 것은 그 석유를 세계 시장으로 보낼 수 있는 물리적 통로 자체였습니다. 가격은 올랐습니다. 허가는 나왔습니다. 그런데 항구가 타고 있었습니다. 발트해 상공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기둥이 러시아의 횡재가 사라지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카네기 센터의 바쿨렌코는 CNBC에 이란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단기적 이익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palpable)"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러시아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5.9%에 달하고,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15%로 고정된 채 내려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시 군수 경제로의 전환, 식품 가격 상승, 노동력 부족, 제재의 누적 효과. 고유가로 번 돈이 이 모든 것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NATO의 시레프 장군이 말한 비유가 다시 떠오릅니다. 해발 8,000미터의 죽음의 영역. 몸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고유가는 산소통 한 개를 손에 쥐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산소통마저 구멍이 뚫렸습니다. 구멍을 뚫은 것은 몇 만 달러짜리 드론이었습니다. 이란 전쟁이 선물한 횡재는 발트해의 항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제20장 40%의 마비

20.1 러시아 서부 3대 수출항 동시 타격

2026년 3월 22일 밤, 핀란드 만(Gulf of Finland) 건너편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핀란드 의회 국방위원장 헤이키 아우토(Heikki Autto)는 핀란드 해안에서 프리모르스크 방향으로 치솟는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을 육안으로 목격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습니다. 핀란드 만 해안경비대장 유카-페카 루밀라흐티(Jukka-Pekka Lumilahti)는 "거대한 화재이고, 거대한 양의 연기"라고 묘사했습니다. 그 연기의 진원지는 러시아 최대의 발트해 원유 적재항, 프리모르스크(Primorsk)였습니다.

프리모르스크는 발트해 파이프라인 시스템(Baltic Pipeline System)의 종착점입니다.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할 수 있는 9개의 부두, 각 5만 톤 용량의 저장 탱크 18기, 연간 최대 7,500만 톤의 처리 능력. 러시아 우랄스(Urals) 원유와 저유황 디젤의 핵심 수출 거점이자, 서방 제재를 피해 인도와 중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의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이 항구의 연료 탱크팜(Tank Farm)과 적재 인프라를 정확히 타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참모본부는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트랜스네프트-프리모르스크(Transneft-Port Primorsk) 석유 터미널의 탱크팜과 적재 인프라 모두에 피해가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불길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화재는 계속됐고, 적재 작업은 완전히 멈췄습니다.

프리모르스크의 화재가 채 진압되기도 전에 두 번째 타격이 이어졌습니다. 3월 25일 새벽, 같은 레닌그라드주(Leningrad Oblast) 해안에 위치한 우스트루가(Ust-Luga) 항구가 드론 공습을 받았습니다. 우스트루가는 트랜스네프트가 운영하는 러시아의 또 다른 거대 석유 수출 허브입니다. 하루 약 7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며, 2025년 한 해 동안 3,290만 메트릭톤의 석유 제품을 수출했습니다. 노바텍(Novatek PJSC)의 가스 콘덴세이트 처리 시설도 이곳에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참모본부는 드론이 노바텍의 석유 제품 시설을 타격했으며, 저장 탱크와 적재 장비에 불이 붙었다고 확인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우크라이나가 1년여 만에 가장 집중적인 공습을 감행하며 우스트루가 항구 시설 일부에 화재를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레닌그라드주 주지사 알렉산드르 드로즈덴코(Alexander Drozdenko)는 "항구에 피해가 있었다"고 텔레그램에 적었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숫자가 말해주었습니다. 우스트루가의 33개 연료 저장 탱크에서 올라온 연기는 핀란드 해안에서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관측되었다고 헬싱키 산노마트(Helsingin Sanomat)지가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소방대가 화재를 진압하고 적재를 재개하려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2차, 3차 공격을 반복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는 주 초반에 잠시 적재를 재개했지만, 수요일 밤 다시 드론이 쇄도하면서 또다시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로이터 통신의 표현대로, 이것은 "4년간의 전쟁에서 러시아 석유 수출 시설에 대한 최대 규모의 공습 중 하나"였습니다.

발트해에서 불이 타오르는 동안, 흑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3월 초, 러시아 흑해 최대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노보로시스크는 하루 약 7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할 수 있는 항구로, 크림반도의 해군 기지가 우크라이나 드론에 의해 무력화된 이후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둔지이기도 합니다. SBU의 알파 특수작전센터가 운용하는 드론은 항구의 석유 터미널, 군함, 방공 시스템을 동시에 타격했습니다. 노보로시스크 시장 안드레이 크라브첸코(Andrey Kravchenko)는 수시간 동안 폭발이 이어졌다고 확인했으며, 현지 주민이 촬영한 영상에는 항구 터미널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도시 전역에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노보로시스크의 셰스카리스(Sheskharis) 석유 터미널은 러시아 남부 최대의 석유 환적 단지입니다. 이곳에는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 터미널도 있습니다. CPC는 카자흐스탄 원유 수출의 대부분을 처리하며, 미국 석유 메이저 셰브론(Chevron)과 엑슨모빌(ExxonMobil)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1%가 이 터미널을 통과합니다. 2025년 11월 우크라이나가 이 터미널을 타격했을 때,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주미대사에게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라"는 외교 서한(demarche)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026년 3월,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타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노보로시스크 공습 이후 항만 당국은 야간 선박 통행을 제한하고 주간에만 제한적 입출항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항구의 수출 효율성은 절반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이 세 개의 항구가 동시에 타격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는 발트해 파이프라인 시스템으로 연결된 쌍둥이 허브입니다. 블룸버그가 선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격 직전까지 이 두 항구가 러시아 해상 원유 수출의 약 45%, 하루 172만 배럴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노보로시스크의 70만 배럴을 더하면, 이 세 항구의 합산 처리 능력만으로 러시아 전체 해상 석유 수출의 절반을 훌쩍 넘깁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세 곳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방어망이 복구되기 전에 연속적으로 타격했습니다.

2025년부터 꾸준히 진화해 온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기술이 이 작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과거 사전 입력된 좌표로 직선 비행만 하던 드론은 이제 운용자의 실시간 통제 아래 지그재그 비행과 회피 기동을 수행했습니다. 러시아가 핵심 저장 시설 주변에 설치한 철제 그물망과 방어 시설은 군집 드론(Swarm) 전술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앞선 드론이 방어망에 걸리면 후속 드론이 그 틈을 파고들어 탱크와 펌프 시설의 취약점을 정확히 타격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하룻밤 사이에 389기의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격추 숫자와 별개로,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는 불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몇 기를 격추했느냐가 아니라, 몇 기가 목표물에 도달했느냐였습니다.

3월 25일 밤,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드론 중 두 기가 항로를 이탈하여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떨어졌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발전소에 착탄했지만 피해는 없었습니다. 라트비아 당국은 "우크라이나 드론이 항로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핀란드 해안에서 연기가 보이고, 이웃 나라 영토에 드론이 떨어지는 상황. 이 전쟁의 물리적 반경이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주, 우크라이나는 발트해 연안의 항구만 겨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라토프(Saratov) 정유소, 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의 바쉬네프트-우파네프테힘(Bashneft-Ufaneftekhim) 정유소, 키리시(Kirishi) 정유소가 잇달아 공습을 받았습니다. 키리시 정유소는 러시아 전체 정유 처리량의 6.6%를 담당하며, 연간 약 1,770만 메트릭톤, 하루 약 35만 배럴의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쉬네프트-우파네프테힘은 러시아군에 연료와 윤활유를 공급하는 핵심 시설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40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은 이 거리를 문제없이 날아갔습니다.

항구가 불타고, 정유소가 멈추고, 수출 부두가 파괴되었습니다. 러시아 서부 해안의 석유 수출 인프라는 며칠 만에 잿더미로 변했고, 화재의 위험 때문에 유조선들은 항구 접근 자체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선박 추적 데이터가 그 결과를 숫자로 보여주었습니다. 핀란드 만에서 프리모르스크 또는 우스트루가를 목적지로 표시한 채 대기 중인 유조선이 50척 이상이었습니다. 원유를 실으러 왔지만, 실을 항구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20.2 하루 200만 배럴 오프라인

로이터 통신은 3월 25일자 보도에서 이렇게 계산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의 적재 중단, 노보로시스크의 적재 지연,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을 통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로의 수출 사실상 중단. 이 모든 것을 합산하면, 러시아 전체 석유 수출 능력의 약 40%, 하루 약 200만 배럴이 현재 오프라인 상태라고. 로이터는 이를 "러시아 근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석유 공급 차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숫자를 이해하려면 타이밍을 봐야 합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브렌트유는 2월 27일 배럴당 70.71달러에서 3월 26일 108.01달러로 뛰었습니다.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좁은 수로가 닫히자, 남아 있는 공급원의 가치가 급등한 것입니다. 러시아산 우랄스(Urals) 원유는 그동안 브렌트유 대비 상당한 할인가에 거래되어 왔는데, 이란 전쟁 이후 그 할인 폭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거의 동등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것은 서방 제재 속에서 자금난에 시달리던 러시아에게 천문학적인 횡재를 안겨줄 기회였습니다. 포춘(Fortune)지는 위치타 주립대학의 국제비즈니스 교수 우샤 헤일리(Usha Haley)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이란 분쟁의 단기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라고 보도했습니다. 헤일리 교수는 "이것은 사실상 오랜 기간 하락하던 러시아의 석유 수입을 구해준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정확히 이 시점에 러시아의 수출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파괴했습니다.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원유를 실어 나를 항구가 불타고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러시아 석유 기업들은 발트해 항구에서의 공급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통제 불능의 사유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계약상 석유를 인도할 수 없는 완전한 비상사태를 공식 인정한 것입니다.

이란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경제에는 경보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크렘린 관리들이 푸틴에게 "여름까지 금융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석유 수입의 약화와 계속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지적한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한 기업 경영인은 "3~4개월 안에 위기가 올 수 있다"면서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고, 수천 명의 근로자가 해고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수입 비중은 2022년 예산의 50% 이상에서 2026년에는 23%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루 200만 배럴의 수출이 강제로 멈춘 것입니다.

수출길이 막힌 원유는 내륙에 적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장 탱크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유정의 가동을 중단(Shut-in)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시베리아의 혹한 환경에서 한 번 가동을 멈춘 유정을 재가동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드론 한 기의 가격은 수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인프라 정지와 생산 능력 상실의 비용은 수억 달러 단위입니다.

충격은 전선에도 미쳤습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기계화 부대를 운용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정제 연료가 필요합니다. 정유 시설의 연쇄 화재는 군사 물류에 병목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모스크바 외곽에서는 우크라이나 드론에 의한 전력망 피해로 45만 명 이상의 주민이 정전을 겪었습니다. 전선의 전쟁과 후방의 경제가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3월 27일, 러시아 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박(Alexander Novak)이 에너지부에 지시를 내렸습니다. 4월 1일부터 가솔린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라고. 블룸버그는 "러시아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연료 가격 급등 속에서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가솔린 수출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금수 조치는 최소 4개월, 7월 31일까지 유지될 예정이었습니다.

'세계 2위의 석유 수출국'이라 불리던 나라가 자국민에게 공급할 가솔린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을 막아야 하는 상황. 러시아에게 이것은 단순한 수출 차질이 아니라, 전쟁을 지탱하는 재정적 기초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사실 러시아의 가솔린 수출 금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3월 이후 간헐적으로 시행되어 왔고, 2025년 10월에는 2026년 2월 말까지 연장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2025년 하반기부터 러시아 정유 시설을 집중 타격하면서, 8월과 10월 사이에는 러시아 정유 능력의 20%가 한꺼번에 오프라인 상태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그때 크림반도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가솔린 부족이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항구까지 타격받으면서 위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소(CREA)의 2026년 2월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의 일일 화석연료 수출 수입은 4억 9,200만 유로였습니다. 그중 원유 수출 수입이 2억 3,200만 유로. 40%의 수출 능력이 마비된다는 것은 이 수입의 상당 부분이 증발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의 석유 수입이 2022년 전쟁 개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 공습을 감행한 시점을 다시 돌아봅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세계 석유 공급의 20%가 차단된 바로 그 순간, 러시아의 석유 수출 능력 40%가 추가로 마비되었습니다. 세계 석유 시장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았습니다. 중동에서 올라온 위기와 발트해에서 올라온 위기가 겹친 것입니다.

알자지라(Al Jazeera)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브렌트유가 2월 27일 70.71달러에서 3월 26일 108.01달러로 올랐다고.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타격은 "크렘린이 전쟁 자금을 다시 채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한 문장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러시아가 돈을 법니다. 우크라이나는 유가가 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러시아가 돈을 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20.3 드루즈바 파이프라인 손상

발트해 항구들이 화염에 휩싸이기 두 달 전, 내륙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동맥이 끊어졌습니다.

2026년 1월 27일, 러시아 드론이 우크라이나 서부의 브로디(Brody) 석유 허브 인근 파이프라인 인프라를 타격했습니다. 브로디 허브는 드루즈바 파이프라인(Druzhba Pipeline, '우정 파이프라인')의 남부 지선이 통과하는 핵심 지점입니다.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은 1964년부터 가동되어 온 세계 최장 송유관 네트워크 중 하나로, 러시아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거쳐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독일까지 4,000킬로미터 이상 뻗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안드리 시비하(Andrii Sybiha)는 이틀 뒤인 1월 29일, 소셜미디어에 브로디 허브의 파괴 현장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불타는 인프라, 파괴된 고압 펌프와 제어 시스템. 시비하 장관은 이 피해를 러시아의 공격으로 공식 귀속시키면서, 국제 파트너들에게 원유 수송의 물리적 불가능을 뜻하는 불가항력 상태를 통보했습니다. 시비하 장관은 "헝가리 측이 다시 러시아 석유 수송 문제에 대해 항의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이 사진을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드루즈바 남부 지선을 통한 원유 흐름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던 두 나라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 모두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석유 제재에서 예외를 인정받아,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EU 전체의 러시아 원유 수입 비중이 2021년 26%에서 약 3%로 떨어진 동안, 헝가리는 오히려 61%에서 86%로 의존도를 높였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사실상 100% 러시아 원유에 의존하고 있었고, 국내 유일한 정유소인 슬로브나프트(Slovnaft)는 러시아산 원유에 맞춰 설계된 시설이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이 멈추자, 외교적 파열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슬로바키아 총리 로베르트 피코(Robert Fico)는 2월 27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습니다. 피코는 EU 면제 규정에 따라 2027년까지 러시아 석유를 수입할 "합법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급 중단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 피코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로의 비상 전력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 총리는 더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헝가리 외무장관 페테르 시야르토(Peter Szijjarto)는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이유로" 파이프라인 복구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크로아티아에 아드리아(Adria)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석유 대체 공급을 요청했습니다. 2월 20일, 헝가리는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을 통한 석유 공급이 재개될 때까지 EU의 우크라이나 대출 지원안 900억 유로(약 130조 원)에 거부권(Veto)을 행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EU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유럽위원회와 유럽이사회 의장은 3월 17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기술 지원과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오미샬리(Omisalj) 터미널을 통한 비러시아산 원유의 대체 공급이 시작되었고, EU 석유조정그룹(Oil Coordination Group)은 2월 25일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에너지 안보에 즉각적인 위험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나라가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아드리아 파이프라인을 통한 대체 공급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에너지 문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슬로바키아 전 외무장관 미로슬라프 블라호프스키(Miroslav Wlachovsky)는 CGTN 인터뷰에서 "이것은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문제이고, 연대와 유럽연합의 결속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월 22~23일 밤, 우크라이나가 움직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장거리 자폭 드론이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 알메티예프스크(Almetyevsk) 지역의 칼레이키노(Kaleykino) 원유 펌핑 스테이션(Pumping Station, 송유관의 원유에 압력을 가해 먼 거리로 보내는 가압 시설)을 타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200킬로미터 떨어진 이 시설은 서시베리아와 볼가 지역에서 채굴된 원유를 블렌딩하고 유럽으로 보내는 드루즈바 파이프라인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였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6~7회의 강력한 폭발 후 각 5만 입방미터 용량의 저장 탱크 두 기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2026년 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 석유 분쟁' 문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이 작전을 러시아의 석유 수입을 줄이기 위한 체계적 노력의 일부로 규정했으며, 이 타격은 이미 파이프라인 공급 차질에 직면한 헝가리, 슬로바키아와의 외교적 긴장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 복잡한 상황의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월 27일에는 러시아 드론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드루즈바 파이프라인 인프라를 파괴했습니다. 이로 인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로의 원유 공급이 중단되었고,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며 EU 내에서 외교적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 깊숙이 위치한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의 러시아 측 펌핑 스테이션을 파괴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먼저 파괴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비난할 대상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게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끊을 권리가 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논리는 달랐습니다. 파이프라인 복구가 지연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의도적 태만이다. EU가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해 석유 흐름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의 파이프라인 시설까지 파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를 볼모로 삼는 행위다.

EU 집행위원회는 파이프라인 피해를 조사하기 위한 검사단 파견을 제안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 검사단의 접근을 허용했지만, 3월 말까지 실질적인 현장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EU 외교관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가 무슨 게임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고 유랙티브(Euractiv)가 보도했습니다.

드론 한 발이 파괴한 러시아의 펌핑 스테이션, 그리고 러시아 드론이 파괴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파이프라인 인프라. 이 두 건의 물리적 파괴가 유럽 내부의 정치적 동맹을 시험하고 분열시켰습니다. 에너지 무기화는 더 이상 러시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그리고 헝가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지정학적 레버리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20.4 유럽 해군의 유조선 억류

항구가 불타고 파이프라인이 끊어지는 동안, 바다 위에서는 또 다른 전선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서방의 제재와 G7이 설정한 배럴당 60달러의 가격 상한제를 우회하기 위해, 러시아가 동원한 노후 유조선 함대입니다. 선박 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를 끄고, 위장 국기를 달고, 선박명을 바꾸고, 등록국을 수시로 변경하면서 러시아산 원유를 인도와 중국으로 실어 나릅니다. 2022년 전쟁 개시 당시 600척이던 이 함대는 2025년에는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관리하는 그림자 선단 목록에는 2026년 2월 기준 1,337척이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해상 석유 수출의 약 60%를 이 불법 제재 회피 네트워크를 통해 운반하고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서방의 대응은 서류상의 제재에 머물렀습니다. 보험 거부, 제재 명단 등재, 항만 서비스 금지. 그러나 유조선은 계속 항해했습니다. 가격 상한제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높게 설정된 석유 제품 상한선 탓에 실질적인 가격 제한 효과가 거의 없었고, 특수목적법인(SPV, Special Purpose Vehicle)을 통한 우회 거래가 만연했습니다.

2026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서류에서 물리적 행동으로, 법적 메커니즘에서 군사적 억류로. 유럽 해군이 직접 바다 위에 나선 것입니다.

시작은 프랑스였습니다. 2026년 1월 22일, 프랑스 해군이 지중해에서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그린치(Grinch)호를 나포했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110조에 근거한 조치였습니다. 이 선박은 모잠비크 국기를 달고 있었지만, 러시아 무르만스크 항에서 출발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나포를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 연결시키며, "그림자 선단의 활동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 자금 조달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월 28일, 벨기에 군이 북해에서 '블루 인트루더(Blue Intruder)'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에테라(Ethera)호를 나포한 것입니다. 벨기에 국방장관 테오 프랑켄(Theo Francken)이 공식 확인한 이 작전에서, 벨기에 특수부대는 NH-90 해군 헬리콥터에서 수직 강하하여 선박을 제압했습니다. 프랑스 군이 지원했습니다. 에테라호는 기니 국기를 달고 있었지만 위장 국기로 판명되었고, 45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되었습니다. 벨기에 당국은 1,000만 유로의 보석금을 부과했습니다.

같은 달, 스웨덴 해안경비대가 발트해에서 코모로 국기를 달고 항해하던 유조선 시 아울 1(Sea Owl I)호를 제압했습니다. 228미터 길이의 이 선박은 위장 국기 사용이 의심되었고, 일주일 만에 두 번째 이런 나포 사건이었습니다.

3월 25일, 영국이 결정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실은 영국 군대와 법 집행 기관에 그림자 선단 소속 제재 대상 선박이 영국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통과할 경우 승선하고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영국 해협(English Channel)을 통과하는 모든 제재 대상 유조선이 억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사실상의 해상 봉쇄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2026년 1월,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카리브해에서 러시아 그림자 선단 유조선 마리네라(Marinera)호를 나포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추적 중이던 유조선의 선원들이 갑자기 러시아 국기를 선체에 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러시아 해운등록소에 급히 등록을 마치고, 러시아 정부가 미국에 추적 중단을 요청하며 군함까지 파견했습니다. 미국은 영국 군의 지원을 받아 나포를 강행했습니다. 국제해사법 전문가들은 이를 "그림자 선단이 그림자에서 나와 러시아의 보호를 구한" 전례 없는 사건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나포 작전들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AFP 통신이 2026년 2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이 그림자 선단 유조선 보라카이(Boracay)호에 승선했을 때, 러시아 측 보안 요원 두 명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전 바그너 그룹(Wagner Group) 소속이었습니다. 2025년 스웨덴 수륙양용군단(Amf)도 유사한 보고를 했습니다. 그림자 선단 선박에 무장한 제복 차림의 '추가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고, 이들이 다리 같은 인프라 시설을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간 상선에 러시아의 준군사조직이 탑승해 있다는 사실은, 유럽 국가들에게 이 선박들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할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발트해와 북해를 중심으로, 14개 유럽 연안국이 공동 경고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벨기에,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영국, 그리고 아이슬란드. 이 서한은 국제 해운 업계에 항해 안전 기준과 해양법의 엄격한 준수를 요구했습니다. 핵심 조항은 다수 국기 또는 불분명한 국기를 사용하는 선박을 유엔해양법협약 제92조에 따라 "무국적 선박"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국적 선박에 대해서는 강제 검색, 억류, 나포가 가능합니다.

바다 위에서 벌어진 이 법적, 군사적 압박은 우크라이나의 물리적 항만 타격과 완벽하게 맞물렸습니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 항구의 원유 적재를 차단합니다. 가까스로 항구를 빠져나온 유조선은 유럽 해군의 검문과 억류라는 두 번째 장벽에 부딪힙니다. 발트해에서 프랑스 해군이, 북해에서 벨기에 군이, 지중해에서 프랑스와 스웨덴이, 카리브해에서 미국이 그물을 쳤습니다.

2025년 11월부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바다 위의 그림자 선단 자체를 드론으로 직접 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튀르키예 흑해 연안에서 그림자 선단 유조선 비라트(Virat)호와 카이로스(Kairos)호가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12월에는 SBU가 지중해에서 인도로 석유를 운반한 유조선을 타격하는 장거리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그림자 선단 타격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 정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서 지원을 승인했습니다. 2025년 12월 아틀란틱지가 미국과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입니다.

러시아의 대응도 있었습니다. 3월 25일, 러시아 해양정책 담당 고위관료 니콜라이 파트루셰프(Nikolai Patrushev)는 러시아 국기를 단 선박에 무장 보안팀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인터팍스(Interfax)를 통해 전해진 이 발표에서, 파트루셰프는 "러시아 해상 무역에 대한 간섭이 증가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해군 함정이 유조선을 호위한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석유 수출 체인은 세 겹의 압박에 갇혔습니다.

첫 번째 층. 항만 폭격. 우크라이나 드론이 프리모르스크, 우스트루가, 노보로시스크의 적재 능력을 마비시켰습니다.

두 번째 층. 파이프라인 파괴. 드루즈바 파이프라인의 양쪽(우크라이나 영토와 러시아 영토)이 모두 손상되어 육상 수출이 차단되었습니다.

세 번째 층. 해상 봉쇄. 유럽 해군과 미국 해안경비대의 나포 작전, 그리고 우크라이나 드론의 유조선 직접 타격이 해상 운송을 압박했습니다.

이 세 겹의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러시아의 석유 수출 기계는 40%의 마비라는 전례 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서방이 2022년부터 3년 넘게 서류상의 제재, 가격 상한제, 보험 제한으로 달성하지 못한 것을, 우크라이나의 드론과 유럽 해군의 물리적 행동이 몇 주 만에 달성했습니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소(CREA)가 오래전부터 제안해 온 것, 즉 "수출의 물리적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는 전면적 해상 서비스 금지"가 서류가 아니라 드론과 군함에 의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러시아 석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과 인도는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CREA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쟁 개시 이후 중국이 러시아 원유 수출의 48%, 인도가 38%를 구매했습니다. 발트해 항구가 멈추면 이 물량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로 가지 못합니다. 더 멀고 더 비싼 우회 경로가 필요해지고, 그마저도 유럽 해군의 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발트해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3월 29일 일요일, 우스트루가가 다시 한번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주지사 드로즈덴코는 36기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항구에서는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석유 수출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는 3월 27일 '제한적 용량'으로 적재를 재개했습니다. 유조선 안란(Anlan)호에 원유를 싣기 시작했고, 미네르바 조지아(Minerva Georgia)호가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로이터가 인용한 세 명의 업계 소식통은 "인프라 피해로 인해 정상 운영이 언제 가능할지 불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3월 마지막 주,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세계 석유 공급의 20%가 차단되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석유 수출 능력 40%가 추가로 마비되었습니다. 두 위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세계 석유 시장은 이중의 공급 압박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발트해의 연기와 페르시아만의 기뢰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글로벌 원유 시장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핀란드 만에 정박한 50척 이상의 유조선은 원유를 싣지 못한 채 바다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배들의 AIS 신호가 마린트래픽 화면에 촘촘하게 찍혀 있는 모습은, 러시아의 석유 수출 기계가 멈춘 광경을 디지털로 보여주는 지도였습니다.




제21장 키리시 정유소의 밤

21.1 러시아 2위 정유소에 20기 이상의 드론

2026년 3월 25일 밤, 레닌그라드주 키리시(Kirishi)시의 하늘은 고요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볼호프강 유역의 평탄한 늪지대 위에 소련 시절부터 자리 잡은 거대한 산업 시설이 있었습니다. 키리시네프테오르그신테즈(Kirishinefteorgsintez), 약칭 KINEF. 수르구트네프테가스(Surgutneftegaz)가 운영하는 러시아 제2의 정유소입니다.

이 정유소의 규모를 가늠하려면 숫자가 필요합니다. 연간 처리 능력 약 2,000만 톤. 하루로 환산하면 35만 배럴. 러시아 전체 정유 물량의 6.6%가 이 한 곳에서 나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KINEF는 200만 톤의 휘발유, 710만 톤의 디젤, 610만 톤의 중유, 60만 톤의 아스팔트를 생산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레닌그라드주, 노브고로드주, 프스코프주에 공급되는 석유 제품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러시아 북서부의 에너지 심장이라 해도 과장이 아닌 시설입니다.

그날 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자폭 드론(UAV) 편대가 이 심장을 향해 날았습니다.

레닌그라드주 주지사 알렉산드르 드로즈젠코(Alexander Drozdenko)가 텔레그램에 올린 첫 메시지는 간결했습니다. "키리시 지구 상공에서 공격이 저지되고 있다. 산업 구역에 피해가 있다." 그는 정유소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20기 이상의 드론이 레닌그라드주 상공에서 격추되었다고 했습니다. 격추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수가 날아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격추되지 않은 드론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다음 날 아침 밝혀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참모본부가 텔레그램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KINEF의 1차 원유 증류 장치 ELOU-AVT-2와 ELOU-AVT-6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아스팔트 생산 시설, 수소첨가처리(Hydrotreating, 석유 제품에서 황분을 제거하는 공정) 장치, 가스 분별(Gas Fractionation, 혼합 가스를 성분별로 분리하는 공정) 시스템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ELOU-AVT는 정유소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원유가 정유소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거치는 설비가 원유 증류 장치입니다. 이것이 멈추면 뒤에 연결된 모든 공정이 멈춥니다. 배관이 막힌 것이 아닙니다. 배관의 시작점이 부서진 것입니다.

로이터통신이 접촉한 두 명의 업계 관계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상황을 전했습니다. 두 개의 1차 처리 장치와 일부 2차 장치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복구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수르구트네프테가스 측은 로이터의 코멘트 요청에 즉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키리시 정유소에 대한 다섯 번째 드론 공격이었습니다. 2024년 3월에 처음 타격을 받은 뒤, 2025년 3월, 9월, 10월에 연이어 공습을 당했습니다. 2025년 10월 4일 새벽의 공격 때는 NASA의 화재 정보 관리 시스템(FIRMS)이 ELOU-AVT-6 구역에서 열 이상(Thermal Anomaly)을 감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SSO)은 당시 러시아 내부 저항 조직 '초르나 이스크라(Chornaya Iskra, 검은 불꽃)'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습니다.

2025년 10월의 타격으로 KINEF는 가장 강력한 처리 장치의 가동을 일시 중단해야 했습니다. 수리에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수리가 끝나자마자, 2026년 3월 8일에 다시 드론이 날아왔습니다. 드로즈젠코 주지사는 저장 탱크 외부 구조물에 피해가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17일 뒤인 3월 25일, 20기 이상의 드론이 또다시 키리시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다섯 번째 공격은 이전과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키리시만 맞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3월 22일, 프리모르스크(Primorsk) 석유 수출 터미널에 드론이 떨어졌습니다. 연료 저장 탱크에 불이 붙었습니다. 프리모르스크는 발트해 파이프라인 시스템(BPS)의 종점이자 러시아 최대의 발트해 원유 선적항입니다.

3월 24~25일, 우스트루가(Ust-Luga) 항구의 노바텍(NOVATEK) 가스 응축액 분별 및 환적 단지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연간 700만 톤에 가까운 가스 응축액을 처리해 석유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시설입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알파 특수작전센터가 900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한 장거리 드론으로 공격을 수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공격으로 우스트루가 항구 일대가 봉쇄되었고, 여러 석유 저장 탱크에 불이 붙었습니다.

3월 25~26일, KINEF 키리시 정유소 타격.

3월 26~27일, 우스트루가와 프리모르스크가 동시에 다시 타격을 받았습니다. NASA 위성 데이터가 두 항구 모두에서 새로운 화재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3월 29일, 우스트루가에 세 번째 타격. SBU는 알파 부대의 장거리 드론이 석유 터미널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했습니다.

5일 동안 세 차례. 한 주 동안 러시아의 발트해 에너지 수출 회랑 전체가 체계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입니다.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가 처리하는 물량을 합치면 하루 약 200만 배럴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스트루가는 3,290만 톤의 석유 제품을, 프리모르스크는 1,680만 톤을 수출했습니다. 이 두 항구와 KINEF 정유소, 그리고 이미 수개월째 가동이 중단된 드루즈바(Druzhba) 파이프라인의 피해를 합산하면, 로이터통신의 보도 기준으로 러시아 원유 수출 능력의 약 40%가 오프라인 상태에 빠진 셈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3월 28일, 중동 순방 중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스트루가 시설 능력의 약 60%를 무력화했습니다." 그는 일부 "파트너" 국가들이 이 공습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멈추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시설 타격을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키리시 정유소의 밤은 그래서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프리모르스크, 우스트루가, 키리시.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동시에 찍는 작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발트해 석유 수출 능력을 수리 불가능한 수준까지 파괴하려는, 의도된 캠페인의 일부였습니다.

그 밤 키리시에서 일어난 일의 기술적 의미를 정리하겠습니다.

드론의 비행 거리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800킬로미터 이상입니다. 키리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동쪽에 위치하므로,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서 직선으로도 800킬로미터를 넘습니다. 우스트루가까지는 약 900~1,000킬로미터입니다. 이 드론들은 전선의 참호에서 러시아 보병을 사냥하는 소형 FPV(First-Person View, 1인칭 시점 조종) 드론이 아닙니다. 정밀 항법 시스템을 탑재한 장거리 자폭 플랫폼입니다.

800킬로미터 이상을 날아 러시아의 방공 레이더망을 통과해야 합니다. 러시아군은 레닌그라드주 일대에 TOR-M1 등 단거리 방공 체계를 배치하고 있었지만, 다방향에서 동시에 쇄도하는 드론 편대를 전부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드로즈젠코 주지사가 "20기 이상을 격추했다"고 말한 것은 실제 날아온 숫자가 20기보다 훨씬 많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기의 가격은 수만 달러 수준입니다. 5만 달러로 추산하는 분석가들이 많습니다. 이 5만 달러짜리 장치가 하루 35만 배럴을 처리하는 정유소를 멈춰 세웠습니다. 배럴당 80달러로 계산하면 하루 2,800만 달러어치의 정제유 생산이 중단된 셈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의 비대칭성. 이것이 현대 비대칭 전쟁의 산술입니다.

복구에는 수개월이 걸립니다. 2025년 10월 타격 후 가장 강력한 처리 장치의 수리에만 수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리가 끝나면 다시 드론이 날아옵니다. 2024년 3월 이후 다섯 번째. 수리와 파괴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유소의 가동률은 회복과 하락을 되풀이합니다. 이 순환 자체가 전략입니다. 완전한 파괴가 아니더라도, 불확실성과 반복 타격이 생산 능력을 장기적으로 잠식합니다.

21.2 상트페테르부르크 대기오염 경보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에서 동시에 타오른 불길은 며칠 동안 꺼지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국경수비대 핀란드만 해안 담당관 유카페카 루밀라흐티(Jukka-Pekka Lumilahti)는 로이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리모르스크의 불은 아직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거의 같은 규모로 계속 타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화재이고, 엄청난 양의 연기입니다." 핀란드 의회 국방위원장 헤이키 아우토(Heikki Autto)는 프리모르스크 방향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로이터에 전했습니다.

위성 사진에 찍힌 연기의 규모는 이례적이었습니다. 우스트루가와 프리모르스크에서 동시에 피어오른 검은 연기 기둥은 발트해를 가로질러 핀란드만 건너편에서도 육안으로 보였습니다. 핀란드 당국은 자국 영토에서 대기오염을 감지했습니다. 수만 톤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타면서 뿜어낸 독성 매연이 바람을 타고 주변 수백 킬로미터를 뒤덮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이 매연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방향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인구 약 540만의 러시아 제2 도시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CNN은 러시아 비상사태부가 우스트루가 공격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 "대기 오염"을 경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풀코보(Pulkovo) 공항은 드론 위협으로 인해 수차례 운항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3월 26~27일 밤에는 지연되거나 취소된 항공편이 60편을 넘었습니다. 러시아 연방항공운수청(Rosaviatsiya)이 이착륙 제한을 해제한 것은 새벽 5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겪은 것은 전쟁의 간접적 체감이었습니다. 폭탄이 도시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했고, 비행기가 뜨지 못했고, 밤하늘에 방공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크렘린궁은 4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경 너머의 '특별 군사 작전'으로 포장해왔습니다. 전선은 먼 곳이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 사회 계약이었습니다.

그 계약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연기가 아닌 것으로 설명해야 하는 검은 연기. 드론이 아닌 것으로 설명해야 하는 항공편 취소. 전쟁이 아닌 것으로 설명해야 하는 대기오염 경보. 레닌그라드주 환경 당국은 대기 질 악화의 원인을 "불리한 기상 조건"과 "교통 및 공장 배기가스"로 돌렸습니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위성에 찍히는 불길 앞에서 기상 조건을 탓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로즈젠코 주지사는 3월 22일 이후 레닌그라드주가 "전례 없는 적 드론 공격" 하에 놓여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행정 당국과 긴급 서비스는 24시간 비상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연속 공격이 시작된 3월 22일부터 29일까지 한 주 동안 레닌그라드주 상공에서 격추된 드론의 수는 러시아 국방부 집계 기준 235기에 달했습니다. 신화통신은 이 한 주간의 공격을 "2022년 전면 전쟁 이후 레닌그라드주에 대한 최대 규모의 드론 공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하늘에 비친 것은 화염이 아니었습니다. 방공 체계의 한계였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매일 아침 수십, 수백 기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격추 뒤에도 타오르는 불길은 그 발표의 신뢰성을 스스로 반박했습니다. 시민들은 공식 발표와 눈앞의 연기 사이에서 어느 쪽을 믿을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21.3 러시아의 휘발유 수출 금지 재도입

항만과 정유소가 연이어 타격을 받으면서 러시아 국내 연료 시장에 직접적인 파장이 밀려왔습니다.

맥락을 먼저 짚겠습니다. 2025년 여름부터 우크라이나의 정유소 공습은 러시아 국내 휘발유 공급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독립 주유소 체인 여러 곳에서 배급제가 시행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주유소가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도매 휘발유 가격은 급등했습니다. 2025년 9월, 러시아 AI-92(일반 무연 휘발유) 도매가격은 톤당 73,848루블(약 888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2025년 8~9월에 휘발유 수출 금지 조치를 도입해 국내 공급을 보호했습니다. 노바크(Alexander Novak) 부총리는 그해 9월, 수출 금지를 연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부족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비축 물량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그는 인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9월과 10월의 수급 균형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2026년 1월, 정부는 석유 생산업체에 대한 휘발유 수출 제한을 해제했습니다. 비생산업체(트레이더)에 대한 수출 금지는 7월 말까지 유지하되, 직접 정제하는 기업들에게는 수출을 허용한 것입니다.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수출을 통한 외화 수입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월이 왔습니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러시아의 우랄스(Urals) 원유는 브렌트유와 비슷한 수준, 또는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노바크 부총리 자신이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해외 수요가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 상황이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이 구조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란 상황이 푸틴에게 더 많은 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분석가들은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러시아가 기존 제재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CNN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이 지난 한 달 동안 두 배로 늘어났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이 14~15일 동안 그들은 대략 100억 달러를 벌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엄청난 횡재(Windfall, 예상 밖의 행운으로 얻은 이익)의 기회였습니다. 유가가 치솟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요가 강력한데, 서방의 제재까지 느슨해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란 전쟁에 집중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압박이 약화되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러시아의 수출 능력 자체를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2026년 3월 26일, 노바크 부총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는 필요하다면 휘발유 수출 금지를 재도입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음 날인 3월 27일 석유 기업들과 긴급회의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3월 27일 회의가 열렸습니다. 러시아 정부 성명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설정한 국내 연료 가격이 전망치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과제"에 특별한 주의가 기울여졌습니다. 에너지부는 현재 정유 가동률이 2025년 3월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석유 제품의 안정적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업계 기업들은 충분한 휘발유 및 디젤 비축량과 높은 정유 설비 가동률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안심시키는 말들의 뒤에 결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바크 부총리는 에너지부에 2026년 4월 1일부터 휘발유 수출을 금지하는 정부 법령 초안을 작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TASS통신에 따르면 금지 기간은 7월 31일까지입니다. 블룸버그는 이 조치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연료 가격 급등 속에서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구조의 모순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러시아는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외화가 필요합니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수단은 석유 수출입니다. 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상황은 러시아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줄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정유소와 수출 항만을 파괴하면서, 러시아는 그 기회를 활용할 물리적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출 능력의 40%가 마비된 상태에서, 남은 물량마저 국내 시장에 우선 돌려야 했습니다. 수출 금지는 그 결과입니다.

노바크 부총리의 말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중동 위기로 인한 글로벌 석유 및 석유 제품 시장의 난기류가 상당한 가격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 "해외 시장에서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긍정적 요소로 남아 있다."

강력한 해외 수요. 치솟는 가격. 그런데 수출을 금지합니다. 이 세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러시아의 딜레마가 보입니다.

젤렌스키는 이 상황을 "우크라이나만의 제재(Ukraine's own sanctions)"라고 불렀습니다. 3월 말 로이터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의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인 제재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장거리 타격 능력이 그것입니다."

서방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의 수출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물리적 제재는 수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가격 상한은 우회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을 동원하면 됩니다. 그러나 항만이 불타고 정유소가 멈추면 우회할 것 자체가 없습니다.

러시아의 휘발유 수출 금지 재도입은 이 차이를 수치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러시아는 약 500만 톤의 휘발유를 수출했습니다. 하루 약 11만 7,000배럴입니다. 이 물량이 4월 1일부터 국내 시장으로 돌아갑니다. 러시아의 전쟁 금고에 들어갈 수 있었던 돈이, 국내 주유소의 줄을 줄이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에너지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나라가, 자국 에너지를 수출할 수도 국내 수요를 온전히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 이것은 전쟁 경제가 안고 있는 내부 모순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었습니다.

21.4 라트비아에 떨어진 드론

2026년 3월 25일 새벽, 키리시 정유소와 우스트루가 항구를 향한 대규모 드론 공세가 한창이던 시각에, 발트해 건너편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에스토니아 내무보안국(KAPO)은 러시아 영공에서 날아온 드론 한 기가 에스토니아 북동부 나르바(Narva) 인근 아우베레(Auvere) 발전소의 굴뚝에 충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나르바는 러시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도시로, 주민의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민감한 지역입니다. 에스토니아 내무보안국장 마르고 팔로손(Margo Palloson)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대규모 침략 전쟁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라트비아 영공에도 드론이 진입했습니다. 라트비아 국방부에 따르면, 이 드론은 러시아 국경 인근 크라슬라바(Krāslava) 지역의 도브로치나(Dobročina) 마을 부근에 추락하면서 폭발했습니다. 벨라루스 국경에서 약 12~1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라트비아군은 이 드론이 1킬로미터 미만의 고도로 비행했기 때문에 1차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드론에는 폭발 탄두가 장착되어 있었고, 충돌과 동시에 폭발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라트비아 대통령 에드가르스 린케비치스(Edgars Rinkēvičs)는 이 드론이 우크라이나 발(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틀 전인 3월 23일, 리투아니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리투아니아-벨라루스 국경 인근 라비사스 호수(Lake Lavisas)의 얼음 위에서 드론 잔해가 발견되었습니다.

3월 29일에는 핀란드까지 번졌습니다. 남동부 쿠볼라(Kouvola) 인근에 두 기의 드론이 추락했습니다. 쿠볼라는 러시아 국경에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입니다. 핀란드 공군은 F/A-18 호넷(Hornet)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저공 비행 물체를 추적했습니다. 한 기는 우크라이나제 AN-196 '류티(Lyuty)' 드론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핀란드 공군은 사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수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총리 페테리 오르포(Petteri Orpo)의 반응은 간결했습니다. "영토 주권 침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드론의 항로 이탈 원인으로 러시아의 "극도로 강력한" 전자전(EW, Electronic Warfare) 재밍(Jamming, 전자파 방해) 능력을 지목했습니다. 핀란드 대통령 알렉산더 스투브(Alexander Stubb)는 이렇게 확인했습니다. "핀란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없습니다.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 헤오르히 티히(Heorhii Tykhyi)는 드론이 핀란드를 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러시아의 전자전 방해가 항법을 교란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 측에 이 사건에 대해 이미 사과했습니다. 사실 규명을 위해 모든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발트 3국과 핀란드 정부의 대응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근본 원인을 러시아의 전쟁에 돌린 것입니다. 라트비아 총리 에비카 실리냐(Evika Siliņ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보기에, 라트비아에 떨어진 드론은 리투아니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발인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토니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빈도를 감안하면, 우크라이나의 대응 조치가 상당한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경에 있고, 그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군 합참 부참모장 에길스 레시친스키스(Ēģils Leščinskis) 준장은 드론들이 항로를 이탈했거나 러시아의 전자전에 의해 궤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라트비아 국방장관 안드리스 스프루즈(Andris Spruds)는 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을 중단하고 리가로 급히 귀국했습니다.

메두자(Meduza)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들에 대한 발트해 연안국들의 반응은 비교적 이해심 있는 것이었습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당국 모두 드론이 러시아 발이든 우크라이나 발이든 간에, 이러한 영공 침입은 모스크바의 전면 전쟁이 가져온 결과라고 진단했습니다.

한편, 러시아 측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러시아 선전 매체와 이른바 'Z-블로거'들은 이 사건을 나토(NATO)의 전쟁 개입 증거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 SHOT은 우스트루가를 공격한 43기의 드론 전부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영공을 통과해 날아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행 경로가 나토 군 참모부와 조율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군사 블로거들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영토에서 직접 발사되었다는 주장까지 내놓았습니다.

이 주장들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발트해 연안국들의 조사 결과와 우크라이나의 설명은 전자전 재밍에 의한 항로 이탈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국 방공망이 뚫려 정유소와 항만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보다, 나토가 공격에 가담했다는 서사가 국내 여론 관리에 훨씬 유용했습니다.

핀란드 정부의 후속 대응은 주목할 만합니다. 핀란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석유 시설 공격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영토 주권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그 근본 원인이 러시아의 전쟁에 있다는 판단을 유지한 것입니다.

라트비아 들판에 떨어진 드론 잔해. 에스토니아 발전소 굴뚝에 박힌 파편. 핀란드 쿠볼라 근처 숲에 추락한 AN-196. 이것들은 의도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이 위험을 줄이지는 않았습니다.

현대의 장거리 드론 전쟁에서, 전선(Front Line)이라는 개념은 흐릿해집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드론이 러시아의 방공과 전자전 방해를 뚫고, 또는 그 방해에 의해 궤도를 이탈하여, 나토 회원국의 영토에 떨어집니다. 탄두가 장착된 채로. 이번에는 들판과 호수와 발전소 굴뚝이었습니다. 다음에는 학교나 병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를 둘러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타격전이 발트해 연안의 지정학적 균형 위에 새로운 변수를 얹었습니다. 나토 조약 제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합니다. 드론 추락은 무력 공격이 아닙니다. 그러나 폭발 탄두를 장착한 드론이 나토 회원국 영토에 떨어지는 것을 무력 공격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회색 지대에서, 발트해 연안국들은 매번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은 사고인가, 공격인가. 러시아의 책임인가, 우크라이나의 실수인가. 나토의 대응이 필요한가, 외교적 항의로 충분한가.

한 주 동안 네 개의 나토 회원국 영토에 우크라이나 드론이 떨어졌습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네 번 모두 인명 피해가 없었습니다. 네 번 모두 전자전 재밍에 의한 항로 이탈로 설명되었습니다. 네 번 모두 관련국 정부는 이해와 절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다섯 번째가 언제 올지,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의 파편은 전선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바람과 전파와 항법 오류가 결정합니다. 에너지 인프라를 둘러싼 비대칭 전쟁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방식은 포탄이 아니라 잔해입니다. 의도 없는 확전. 이것이 21세기 드론 전쟁이 내포한 가장 불안한 속성입니다.




제22장 비대칭 전쟁의 새 문법

22.1 소국의 드론이 대국의 경제 동맥을 끊다

우크라이나산 장거리 자폭 드론 한 기의 가격은 대략 2만에서 5만 달러입니다. 이 드론이 2026년 3월 26일 밤에 불태운 키리시 정유소(Kirishi Petroleum Organic Synthesis, 약칭 KINEF)의 하루 처리 능력은 약 35만 배럴. 배럴당 100달러로 잡으면 하루 3,500만 달러어치의 원유 가공이 멈춘 셈입니다. 5만 달러짜리 무기가 3,50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만들었습니다.

이 산술이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문법입니다.

전통적인 군사력 평가 기준으로 보면, 우크라이나가 국경에서 8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의 전략 자산을 반복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장거리 폭격에는 스텔스 폭격기가 필요하고, 스텔스 폭격기를 띄우려면 제공권이 필요하며, 제공권을 확보하려면 전투기 편대와 공중급유기와 전자전 항공기가 필요합니다. 미국이 B-2 스피릿 한 기를 띄우는 데 드는 비용은 시간당 약 13만 달러. 한 번의 출격에 수백만 달러가 사라집니다.

우크라이나에는 B-2도 없고, F-35도 없고, 공중급유기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상용 부품과 3D 프린터와 네 해 넘게 축적된 실전 경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비용 교환비(Cost-exchange ratio)라는 군사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공격 측이 쓰는 비용과 방어 측이 쓰는 비용의 비율입니다. 전통적인 전쟁에서 이 비율은 방어 측에 유리했습니다. 공격하는 쪽이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합니다. 드론 전쟁은 이 공식을 뒤집었습니다.

러시아는 우스트-루가 항구와 키리시 정유소, 프리모르스크 터미널을 지키기 위해 S-400 방공 체계와 판치르-S1(Pantsir-S1) 근접방공 시스템을 배치했습니다. S-400의 요격 미사일 한 발 가격은 약 200만에서 700만 달러 사이입니다. 판치르의 미사일도 발당 수십만 달러입니다. 러시아가 요격에 성공하더라도, 수만 달러짜리 드론을 잡기 위해 수백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쏘는 구조입니다. 요격에 실패하면 수억 달러짜리 시설이 불탑니다.

이 모순은 수학적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공격하는 쪽의 무기가 방어하는 쪽의 요격 수단보다 100배 이상 싸면, 방어 측은 아무리 많은 미사일을 쏟아부어도 경제적으로 파산합니다. 30기를 보내서 29기가 격추되더라도 1기만 정유 시설의 증류탑에 명중하면, 공격 측은 약 150만 달러(드론 30기 비용)를 썼고 방어 측은 수천만 달러의 시설 피해에 수억 달러의 수출 차질을 입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잔혹한 산수를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제일 아파할 곳, 석유 수출 인프라에 정확하게 적용했습니다.

2025년 초부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 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드론 타격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볼고그라드, 오렌부르크, 야로슬라블, 사라토프, 사마라 지역의 정유소들이 차례로 불탔습니다.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2025년 2월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은 러시아 전체 정유 능력의 약 10%를 마비시켰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026년 2월 말 이란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한 우회 시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유가 환경에서 러시아의 석유 수출 수익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추산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후 단 2주 만에 러시아의 화석 연료 수출 수익은 77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돈이 전장으로 흘러들어 자국 병사들을 죽이는 탄약과 미사일과 드론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서방의 금융 제재나 유가 상한제는 허점투성이였습니다. 그림자 선단이 보험 없이 원유를 실어 날랐고, 인도의 정유소에서 러시아산 원유가 '인도산 석유 제품'으로 세탁되어 유럽으로 되팔렸습니다. 종이 위의 제재는 종이 위에서만 작동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물리적 제재(Kinetic Sanctions). 수출할 석유를 태워버리는 것, 석유를 실어 나를 항구를 부수는 것, 정유 시설의 증류탑과 저장 탱크를 불태우는 것. 금융 제재가 막지 못한 돈의 흐름을, 드론이 막았습니다.

키리시 정유소 하나를 보겠습니다. 이 정유소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정유 시설입니다. 연간 처리 능력은 약 1,770만 톤, 하루로 환산하면 약 35만 배럴입니다. 러시아 전체 정유량의 6.6%를 차지합니다. 수르구트네프테가스(Surgutneftegas)가 운영하며, 생산하는 석유 제품에는 러시아군에 공급되는 군수용 연료도 포함됩니다. 키리시에서 정제된 석유 제품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우스트-루가 항구와 프리모르스크 항구로 보내져 선적됩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3월부터 이 정유소를 반복적으로 타격했습니다. 2025년 3월, 9월, 10월. 그리고 2026년 3월 25일 밤과 26일 밤, 이틀 연속으로 대규모 드론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참모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3월 26일 공격으로 주요 원유 정제 장치인 ELOU-AVT-2와 ELOU-AVT-6이 손상되었고, 석유 비튜멘(역청) 생산 시설, 수소처리 장치, 가스 분류 장치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두 개의 저장 탱크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프라우다(Ukrainska Pravda)는 키리시 정유소가 드론 공격 이후 전체 가동을 중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경에서 800킬로미터. 드론의 비행 시간으로 따지면 몇 시간. 그 몇 시간 동안 러시아의 레이더와 방공 체계를 뚫고 날아온 드론들이, 러시아 정유 능력의 6.6%를 멈췄습니다. 수리 일정은 "현 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말했습니다. 정유소의 증류탑은 자동차 엔진이 아닙니다. 부품을 갈아 끼우는 데 수개월이 걸릴 수 있습니다. 서방 제재로 해외 부품 조달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그 기간이 더 길어집니다.

비대칭 전쟁의 산수는 여기서 극적으로 완성됩니다. 공격에 투입된 드론 수십 기의 총비용은 많아야 수백만 달러입니다. 이 공격으로 마비된 정유소의 복구 비용은 수억 달러, 가동 중단으로 인한 수출 손실은 하루에 수천만 달러씩 쌓입니다. 소국의 저렴한 혁신이 대국의 경제 동맥을 끊었습니다.

22.2 젤렌스키의 CNN 인터뷰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CNN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스트-루가에 대한 타격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시설 능력의 40%가 남아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60%가 파괴되었다는 뜻입니다. 러시아 석유 수출의 약 5분의 1을 처리하는 발트해 최대 항구의 능력이 절반 이상 날아갔습니다.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려면 그 주에 벌어진 일의 순서를 따라가야 합니다.

3월 25일 밤, 우크라이나는 2026년 들어 최대 규모의 야간 드론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우스트-루가 에너지 터미널과 비보르크 항구의 러시아 군용 쇄빙선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3월 26일 밤에는 키리시 정유소가 이틀 연속으로 공격받았습니다. 프리모르스크 항구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3월 29일, 우스트-루가는 같은 주에 세 번째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소속 알파 특수부대가 운용한 장거리 드론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SBU가 발표했습니다.

위성 사진 분석 결과, 우스트-루가에서 최소 8개의 저장 탱크가 파괴되거나 손상되었고, 프리모르스크에서도 8개 탱크가 피해를 입었으며, 키리시 정유소에서는 최소 2개의 저장 탱크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연쇄 타격의 전략적 의미는 젤렌스키의 발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같은 통화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러시아가 우리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쪽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보복을 중단하겠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겹쳐 있었습니다.

하나는 러시아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석유 수출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파괴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 능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습니다. 2025/26년 겨울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을 집중 타격하여 수백만 명의 시민에게서 전기와 난방과 수도를 빼앗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대응은 러시아 도시가 아니라 러시아 국고를 겨냥했습니다. 발전소가 아니라 수출항을 불태웠습니다. 시민이 아니라 돈줄을 끊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서방 동맹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자, 미국은 3월 12일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임시 허가를 발급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제재 대상 유조선의 원유를 국제 시장에 풀어 유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은 이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 석유를 시장에 더 풀려는 순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석유가 배에 실리는 항구 자체를 부수고 있었습니다.

젤렌스키는 기자들에게 일부 동맹국으로부터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을 자제해달라는 "신호"를 받았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거부했습니다. "러시아가 공격을 멈추면 우리도 멈추겠다"는 조건은, 사실상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력망 공격을 멈출 가능성은 없었으니까요.

로이터 통신은 3월 25일 자 보도에서 시장 데이터를 근거로, 우크라이나의 반복적인 드론 공격과 파이프라인 손상, 유조선 억류가 합쳐져 러시아 석유 수출 능력의 최소 40%가 가동을 멈췄다고 분석했습니다. 하루 약 200만 배럴. 현대 러시아 역사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반응이 이 피해의 심각성을 말해줍니다. 국영통신 타스(TASS)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노바크(Alexander Novak) 부총리가 석유 기업들과 휘발유 수출 금지 조치의 재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4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러시아는 2025년 9월에도 같은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고, 2026년 1월에 해제한 바 있습니다. 경제지 코메르산트(Kommersant)는 국내 시장에 공급할 휘발유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수출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국내 공급을 줄이고 있었고, 드론 공격으로 정유 능력 자체가 줄어든 것이 겹쳤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우스트-루가와 키리시 화재로 인한 대기오염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풀코보 공항은 이틀 연속 운항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레닌그라드주 지사 알렉산드르 드로즈덴코(Alexander Drozdenko)는 우스트-루가 항구와 인근 마을의 주택에 피해가 발생했으며 3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상자 중 2명은 어린이였습니다.

젤렌스키의 CNN 인터뷰는 전과 발표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지정학적 지렛대를 우크라이나가 쥐고 있다는 선포였습니다. GDP 규모로 세계 50위권에 불과한 나라가,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의 수출 능력 40%를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수천억 달러의 금융 제재 패키지가 달성하지 못한 것을, 수만 달러짜리 드론 수백 기가 해냈습니다.

22.3 에너지 인프라의 지리적 집중

키리시 정유소는 러시아 국경에서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이 거리를 드론이 날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현대 에너지 안보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정유소는 숨길 수 없습니다. 전차는 위장할 수 있고, 전투기는 격납고에 넣을 수 있고, 잠수함은 바다 밑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35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는 증류탑(CDU, Crude Distillation Unit)은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고, 수백 도의 고온으로 작동하며,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유 저장 탱크는 지름 수십 미터의 원통형 구조물로, 위성 사진에서 한눈에 식별됩니다. 바다로 뻗어 나가는 적하 시설(loading jetty)은 육지와 해수면의 경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시설의 GPS 좌표는 구글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이 취약성은 지리적 집중 때문에 더 심각해집니다. 유럽과 아시아로 향하는 러시아 석유 수출의 핵심 통로는 세 곳입니다. 발트해의 프리모르스크와 우스트-루가, 흑해의 노보로시스크. 이 세 항구를 통해 러시아 해상 석유 수출의 절대 다수가 빠져나갑니다. 프리모르스크는 러시아 발트해 석유 적하의 주축이고, 우스트-루가는 러시아 전체 석유 수출의 약 5분의 1을 처리합니다. 키리시 정유소에서 정제된 제품은 파이프라인을 타고 이 두 항구로 흘러갑니다. 세 시설은 사실상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시스템의 세 지점을 한 주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했습니다. 3월 25일 우스트-루가. 3월 26일 키리시. 같은 주에 프리모르스크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입구(정유소)와 출구(수출항)를 동시에 막은 것입니다. 원유를 정제할 시설도, 정제한 제품을 실어 보낼 항구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지리적 집중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Ras Tanura) 수출 터미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적하 시설입니다. 이 터미널 하나를 통해 사우디 수출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갑니다. 2019년 9월 14일, 예멘 후티 반군이 드론과 순항미사일로 사우디 아브카이크(Abqaiq) 석유 처리 시설과 쿠라이스(Khurais) 유전을 타격했을 때,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은 하루 570만 배럴이 감소했습니다. 세계 일일 석유 공급의 약 5%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유가는 하루 만에 15% 급등했습니다.

카타르의 라스라판(Ras Laffan) LNG 터미널은 세계 LNG 수출의 상당 부분을 처리합니다. 이 터미널이 멈추면 한국과 일본의 겨울 난방에 비상이 걸립니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정유소, 담수화 플랜트, LNG 터미널은 수백만 배럴의 인화성 물질과 가스로 가득한 거대한 구조물들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형태입니다.

이 시설들은 과거에는 안전했습니다. 적의 공군이 접근하려면 방공망을 뚫어야 했고, 순항미사일은 발사 플랫폼이 필요했고, 특수부대의 침투는 거리와 경비의 벽에 막혔습니다. 비용이 방벽 역할을 했습니다. 정유소를 타격하려면 정유소보다 비싼 무기 체계가 필요했습니다.

드론이 이 비용 방벽을 허물었습니다. 2만 달러짜리 드론은 수십억 달러짜리 시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GPS 좌표를 입력하거나 AI 기반의 광학 인식 시스템으로 표적을 식별하면,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발사된 드론이 저고도로 비행하여 레이더 탐지를 피한 뒤 시설에 돌진합니다. 1기가 아니라 20기, 50기를 동시에 보내면 방공망이 포화됩니다. 29기를 격추해도 1기가 뚫으면 저장 탱크가 불탑니다. 인화성 물질로 가득한 정유 시설에서 불은 연쇄적으로 번집니다.

러시아는 급조 방어에 나섰습니다. 석유 저장 탱크 위에 대형 그물(Anti-drone netting)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2월, 프스코프(Pskov) 지역 벨리키예 루키(Velikiye Luki) 석유 저장소의 위성 사진에서 탱크 위를 덮은 그물이 포착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절 정글 위장을 연상시키는, 절박하고 원시적인 방어책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이 그물이 드론 공격을 막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물을 뚫고 폭발이 일어났고, 저장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수십 년간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시설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규모를 키웠습니다. 파이프라인은 한 방향으로 모이고, 정유소는 항구 근처에 묶이고, 터미널은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섰습니다. 그 효율성이, 드론 시대에는 치명적인 취약성으로 뒤바뀌었습니다.

22.4 하루 2,000기 생산 체제

2026년 3월 27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분한 예산만 확보되면, 우크라이나는 하루에 2,000기의 요격 드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가 허풍이 아니라는 근거는 있습니다.

2025년 7월,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하루 드론 공격 규모를 1,000기까지 늘릴 계획이라는 정보를 확인하고, 최소 같은 수의 요격 드론을 생산하라는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2026년 1월, 그는 국방장관으로부터 하루 1,500기 생산 체제에 도달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3월 시점에 우크라이나에는 20개 이상의 요격 드론 제조 기업이 가동 중이었습니다.

이 기업들의 이름과 제품을 보면, 우크라이나 방위 산업이 어떻게 변모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와일드 호넷(Wild Hornets)의 스팅(STING). 가격은 기당 약 2,500달러. 시속 약 314킬로미터(195마일)로 비행하며 열화상 카메라와 AI 보조 유도 장치를 탑재합니다. 2025년 5월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3,900기 이상의 적 드론을 격추했습니다. 러시아의 제트 엔진 탑재형 게란-3(Geran-3)을 처음 격추한 기록도 이 드론의 것입니다. 더플백 하나에 들어갈 크기입니다.

스카이폴(SkyFall)의 P1-SUN. 가격은 기당 약 1,000달러. 3D 프린터로 만든 모듈형 기체에 광섬유 케이블 유도 방식을 쓰는 드론입니다. 시속 약 450킬로미터(280마일)까지 속도를 냅니다. 4개월 만에 샤헤드 드론 1,500기 이상, 기타 드론 1,000기 이상을 격추했습니다.

WIY 드론(WIY DRONES)의 스트릴라(STRILA). 로켓형 방공 요격 드론으로 시속 350킬로미터에 도달하고, 시험 비행에서는 400킬로미터를 기록했습니다. 2026년 1월 기준 단가를 약 2,300달러로 낮추었고, 하루 약 100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GPS 의존을 완전히 배제한 최신 버전은 러시아의 전자전 교란에도 대응합니다.

우크르스펙시스템즈(Ukrspecsystems)의 옥토푸스(Octopus). 야간 비행이 가능하고, 전자전 재밍 환경에서도 고도 4,500미터까지 올라가 자율적으로 표적을 추적하는 요격 드론입니다. 2025년 11월부터 영국에서 라이선스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방 정부가 우크라이나 설계 요격 드론의 국내 생산을 허가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영국은 월 2,000기를 생산하여 우크라이나에 인도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드론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싸고, 빠르게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실전에서 검증되었습니다. 패트리어트(Patriot) PAC-3 요격 미사일 1발의 가격은 약 400만 달러입니다. 같은 돈으로 P1-SUN을 4,000기 만들 수 있습니다. 비용 교환비가 200만 달러 대 2만 달러였던 미사일 시대의 문제는, 2,500달러짜리 요격 드론이 2만 달러짜리 공격 드론을 잡는 구조로 바뀌면 해결됩니다.

러시아는 하루 350에서 500기의 샤헤드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2026년에는 600에서 800기로 늘리고, 최종 목표는 하루 1,000기였습니다. 한 기의 샤헤드를 요격하는 데 2에서 3기의 요격 드론이 필요하므로, 우크라이나 자체 방공을 위해서만 하루 2,000에서 3,000기의 요격 드론이 필요합니다. 젤렌스키가 말한 하루 2,000기 생산 능력은 천장이 아니라, 사실상 최소한의 바닥이었습니다.

이 생산 능력이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지위를 바꿨습니다.

2026년 2월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되자, 이란의 샤헤드 드론이 걸프 국가들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이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UAE가 제일 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3월 26일까지 UAE에만 약 1,825기의 드론이 날아들었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패트리어트와 사드(THAAD) 미사일로 대응했지만, 수백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수만 달러짜리 드론을 잡는 비용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이란 전쟁 첫 주에 미사일 방어 요격에만 약 40억 달러를 썼다는 추산도 나왔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찾았습니다. 젤렌스키는 즉시 움직였습니다.

3월 18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루스템 우메로프(Rustem Umerov)가 201명의 방공 및 드론 전문가를 중동에 파견했다고 확인했습니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에 전문가들이 배치되었고, 요르단과 쿠웨이트에도 추가 인원이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걸프 국가들의 방공망 취약점을 분석하고, 우크라이나 요격 드론의 운용 방법을 전수했습니다.

3월 27일, 젤렌스키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방문하여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를 만났습니다. 양국은 방위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썼습니다. "5년째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란 정권이 지금 중동과 걸프 지역에서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3월 28일,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Mohamed bin Zayed) 대통령과 회담한 뒤, 젤렌스키는 카타르로 이동하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Tamim bin Hamad Al Thani) 국왕을 만났습니다. 카타르 국방부는 양국이 "미사일과 무인 항공 체계에 대한 위협 대응을 위한 기술 협력, 공동 투자 개발, 전문 지식 교환"을 포함하는 방위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와 각각 10년짜리 안보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UAE와도 곧 유사한 협정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협정에는 공동 생산 시설 설립, 기술 파트너십, 방위 산업 투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젤렌스키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팔고 끝내는 거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장기적인 전략적 관계, 공동 생산, 투자, 에너지 협력, 전장 경험의 공유였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응할 고급 방공 미사일. 걸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는 턱없이 부족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이 교환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거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전쟁이 만들어낸 기형적이면서도 논리적인 교환 경제가 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4년 넘게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막으면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교한 다층 방공 체계를 실전에서 구축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 우크라이나의 요격 드론은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 샤헤드 드론의 70% 이상을 격추하고 있었습니다. 이 실전 경험은 매뉴얼로 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드론의 비행 패턴을 읽는 눈, 전자전 환경에서 통신 채널을 전환하는 감각, 야간에 열화상으로 표적을 추적하며 충돌 직전에 수동 조종으로 전환하는 기술. 이런 것들은 전장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세계 어디보다 비싼 무기를 사들여온 부유한 나라들이지만, 이 전장의 감각은 돈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파견한 201명의 전문가는 드론을 가져간 것이 아닙니다. 드론을 잡는 방법을 가져갔습니다.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얻은 것은 무기만이 아닙니다. 10년짜리 안보 협정은,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크라이나가 글로벌 방위 산업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이었습니다.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세계가 필요로 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숫자가 이 변화의 규모를 압축합니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될 때, 우크라이나의 방위 산업은 초보 수준이었습니다. 4년 뒤인 2026년 3월, 우크라이나에는 20개 이상의 요격 드론 제조 기업이 가동 중이고, 드론 관련 제품만 1,343개 모델이 시장에 나와 있으며, 연간 400만 기 이상의 드론을 생산하고 있고, 미국 국방부(Pentagon)가 우크라이나산 요격 드론의 구매를 검토하고 있으며, 나토(NATO) 5개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영국)이 우크라이나 설계를 기반으로 저비용 요격 드론의 공동 개발에 합의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 지원에 의존하는 수혜국이었습니다. 2026년 봄, 우크라이나는 세계가 구매하고 싶어하는 무기를 만드는 수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격은 기당 1,000달러에서 2,500달러. 세계에서 제일 비싼 전쟁터에서 태어난, 세계에서 제일 싼 무기입니다.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4년간 패트리어트 포대를 구걸하며 핵보유 강대국에 맞서던 포위된 나라가, 조용히 새로운 방공 계층을 만들어냈고, 이제 이란 전쟁 첫 주에 미사일 방어에만 40억 달러를 쏟아부은 워싱턴이 키이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루 2,000기. 이 숫자는 러시아와의 소모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도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걸프 국가들의 지갑을 열었고, 나토 동맹국들의 생산 라인을 바꿨고, 미 국방부의 조달 목록에 올랐습니다. 20세기 전쟁의 문법에서 방위 산업은 강대국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BAE 시스템즈, 탈레스. 수십 년의 개발 기간, 수백억 달러의 연구비, 수만 명의 엔지니어.

우크라이나의 드론 기업들은 지하 공장에서, 상용 부품으로, 3D 프린터로, 전쟁 한가운데서, 4년 만에 이 산업의 한 축을 차지했습니다. 스팅을 만든 와일드 호넷, P1-SUN을 만든 스카이폴, 옥토푸스를 만든 우크르스펙시스템즈. 이들의 공장은 러시아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습니다. 생산 시설이 분산되어 있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한 곳에 모으면 미사일 한 발에 전부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만든 절박함이, 전통적인 방위 산업의 속도와 비용 구조를 깨부쉈습니다. 나토 국가들의 무기 조달 주기가 10년에서 15년인 시대에, 우크라이나는 몇 달 안에 새로운 드론 모델을 설계하고 시험하고 실전에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군사 전문 매체 밀리터 악투엘(Militär Aktuell)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서방 군대의 조달 방식은 전쟁의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상황은 더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주요 드론 공급처였던 이란이 미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휘말리면서, 샤헤드 드론의 공급이 사실상 끊겼습니다. 러시아는 이란산 드론의 국내 라이선스 생산(게란-2 등)으로 대체하고 있었지만, 서방 제재로 첨단 전자 부품의 수급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방공 미사일의 생산과 보충 속도는 하루 2,000기씩 쏟아지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떼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 장면이 이 비대칭의 본질을 압축합니다.

2026년 3월 25일 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들이 폴란드 영공을 거쳐 발트해 연안의 우스트-루가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러시아의 전자전 교란으로 일부 드론이 궤도를 이탈했고, 그중 몇 기가 핀란드 영토에 떨어졌습니다. 핀란드 총리 페테리 오르포(Petteri Orpo)는 3월 29일 최소 1기의 드론이 우크라이나산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코우볼라(Kouvola) 북쪽과 도시 동쪽에 각각 1기가 추락했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1,000킬로미터 이상을 날아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을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 러시아의 전자전이 드론의 궤적을 교란할 수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 드론 전쟁의 파편이 나토 회원국의 영토에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전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비대칭 전쟁의 새 문법은 이렇게 써집니다.

무기의 크기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 비용 구조가 승패를 결정합니다. 수만 달러짜리 드론은 수십억 달러짜리 시설을 파괴할 수 있고, 수천 달러짜리 요격 드론은 수백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강대국의 방위 산업이 10년짜리 개발 주기와 수백억 달러의 예산에 갇혀 있는 동안, 전쟁터의 작은 나라가 상용 부품과 3D 프린터로 더 빠르고 더 싸게 같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에너지 인프라의 지리적 집중은 이 비대칭 무기 앞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숨길 수 없고, 옮길 수 없고, 불이 붙으면 꺼지지 않는 거대한 시설들은, 좌표만 알면 타격할 수 있는 완벽한 표적입니다.

그리고 이 문법을 제일 잘 쓰는 나라는, 그 문법을 전쟁터에서 매일 실험하고 수정하고 개량하는 나라입니다. 2026년 봄, 그 나라는 우크라이나였습니다.

발트해 연안의 화염은 러시아의 석유 수출만 태운 것이 아닙니다. 20세기식 전쟁의 공식, 비싼 무기가 이긴다는 공식을 함께 태웠습니다. 그 잿더미 위에 새로운 공식이 써지고 있었습니다. 1,000달러짜리 플라스틱과 회로 기판이, 강철과 화약의 제국을 서서히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제 군사 드론 제원도





제7부 달러, 위안화, 그리고 패권의 균열




제23장 위안화 통행료

23.1 IRGC가 위안화로 결제를 받는 이유

2026년 3월 13일, 호르무즈 해협에 새 항로가 열렸습니다. 기존의 국제 항로가 아닙니다. 해협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르는 공인된 양방향 수로도 아닙니다. 이란 영해 안쪽,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를 꿰뚫는 좁은 물길이었습니다. 이 항로를 이용하려면 먼저 IRGC(이슬람 혁명수비대,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지정한 "승인된 중개인(Approved intermediary)"에게 연락해야 했습니다. 선박의 국제해사기구(IMO) 등록번호, 선주 정보, 화물 목록, 승조원 명단, 최종 목적지. 이 다섯 가지 서류를 제출하면, 중개인이 서류 묶음을 IRGC 해군의 호르모즈간 주 사령부(Hormozgan Provincial Command)로 넘겼습니다.

호르모즈간 사령부에서 벌어지는 심사는 세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재 스크리닝(Sanctions screening), 화물 적합성 검토, 그리고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가 "지정학적 심사(Geopolitical vetting)"라고 이름 붙인 세 번째 단계. 이 세 번째 관문이 핵심이었습니다. 선박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조금이라도 연결돼 있으면 통과가 거부됐습니다. 선주가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의 자회사인 경우, 화물 보험이 런던이나 뉴욕의 보험사에 가입돼 있는 경우, 승조원 가운데 미국이나 이스라엘 국적자가 한 명이라도 포함된 경우.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되면, 해협을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선박에는 "허가 코드(Clearance code)"가 발급됐습니다. 선박이 해협에 진입하면 IRGC 초계정이 VHF 무선으로 허가 코드를 요청했고, 코드가 확인되면 호위정이 도착해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동안 함께 항해했습니다.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3월 25일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42척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1년 전인 2025년 3월 1일부터 24일까지 통과한 선박은 2,652척이었습니다. 전쟁 전 하루 평균 100척 이상이 지나가던 수로에서, 한 달 동안 겨우 142척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142척 가운데 최소 두 척은 통과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에 따르면, 결제액은 1척당 최대 200만 달러. 이란 의회 외교위원회 위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는 영국 소재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이란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금액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전쟁에는 비용이 듭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서 통행료를 받는 건 당연합니다." 이란 의원 모하마드레자 레자에이 쿠치(Mohammadreza Rezaei Kouchi) 역시 혁명수비대 계열 통신사인 파르스(Fars)와 타스님(Tasnim)을 통해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통제, 감독을 공식 법률로 규정하는 동시에 통행료 징수를 수입원으로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이 통행료의 결제 통화가 미국 달러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로이드 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통행료를 직접 납부한 두 척의 선박이 있으며, 대금은 위안화(Yuan)로 결제됐습니다." 그리고 이 결제를 중개한 것은 한 중국 해운 서비스 회사였습니다. 로이드 리스트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한 척의 통과는 중국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인 역할을 맡아 주선했으며, 이란 당국에 대한 대금 지불도 이 회사가 처리했습니다."

왜 위안화였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미국의 금융 제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달러 거래는 최종적으로 뉴욕에 있는 미국 은행의 청산 시스템을 거칩니다. 달러로 돈을 보내든, 달러로 돈을 받든, 그 거래 기록은 뉴욕을 통과하게 돼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에게 막강한 무기를 쥐여줍니다. OFAC는 제재 대상과 연결된 달러 거래를 추적하고, 해당 자금을 동결하고, 거래에 참여한 금융기관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란은 2012년 이후 이 시스템에 의해 글로벌 금융망에서 사실상 차단돼 있었습니다.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이란 주요 은행이 퇴출됐고, 달러로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도 미국의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에 노출됐습니다.

위안화를 쓰면 이 모든 감시망을 통째로 건너뛸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2015년부터 국경간 은행간 결제 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이라는 독자적인 국제 결제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People's Bank of China)이 직접 관할하는 이 시스템은 위안화 표시 국제 거래의 청산과 결제를 처리합니다. 2024년 기준 CIPS의 연간 처리 금액은 175조 4,900억 위안,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약 24조 5,0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전년 대비 43%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2025년에는 참여 기관이 121개국 1,683개로 늘었고, 아시아 73%, 유럽 17%, 아프리카 4%의 비율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2025년 6월에는 아부다비 제1은행(First Abu Dhabi Bank), 남아프리카 스탠다드은행(Standard Bank), 아프리카수출입은행(African Export-Import Bank) 등 중동과 아프리카의 은행 6곳이 CIPS의 첫 해외 직접 참여 은행(Direct participant)으로 합류했습니다. 중국이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깔아놓은 배관이 이미 전 세계 189개국의 4,900개 이상의 금융기관까지 뻗어 있었던 것입니다.

CIPS를 통한 위안화 거래는 뉴욕을 거치지 않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동결할 수 없습니다. 차단할 수 없습니다. 이란에게 위안화는 통화(Currency)가 아니라 방패(Shield)였습니다.

이란이 위안화를 고집한 두 번째 이유는 더 실용적이었습니다. 위안화로 받은 돈을 다시 위안화로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습니다. 전쟁 전에도 이란산 원유의 90%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이란은 원유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받고, 그 위안화로 중국산 공산품, 전자제품, 건설 자재, 그리고 군사적 용도에 전용 가능한 이중용도(Dual-use) 부품을 수입했습니다. 달러가 단 한 푼도 끼지 않는 완결형 순환 경제(Closed-loop economy)가 이란과 중국 사이에서 이미 수년째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통행료는 이 기존의 순환 회로에 새로운 수입원을 꽂아 넣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실이 워싱턴에 던진 메시지는 간명했습니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비군사적 무기라고 자부해온 금융 제재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병목 지점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 미국이 시작한 전쟁에서, 미국의 적이 미국의 무기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한 도구가 미국의 경쟁국이 만든 결제 시스템이었다는 것. 이것은 기술적 우회가 아니었습니다. 구조적 무력화였습니다.

23.2 달러 결제 바깥에서 형성되는 해상 경제권

1974년 6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사우디 파흐드 이븐 압델 아지즈(Fahd Ibn Abdel Aziz) 왕자가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공식 문서에 "석유"라는 단어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산업화, 교육, 기술, 경제위원회. 네 개의 실무 그룹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협정의 진짜 의미는 문서 밖에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를 오직 미국 달러로만 판매합니다. 대신 미국은 사우디의 유전과 왕실에 군사적 보호를 제공합니다. 잉여 달러는 미국 국채와 채권 시장에 재투자합니다.

이 비공식 약속이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의 기원입니다. 1975년까지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모든 회원국이 석유를 달러로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를 사려면 먼저 달러를 사야 했고, 달러를 사려면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접속해야 했습니다. 이 구조가 반세기 동안 미국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에 붙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습니다.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일은 이 기둥에 처음으로 물리적인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그 균열의 구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선박, 보험, 그리고 결제 수단. 전쟁이 터지자 영국 런던의 로이즈 보험시장(Lloyd's of London)과 미국 계열 보험사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 인수를 거부했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배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선주가 아무리 통과하고 싶어도, 보험 없이 수십억 원짜리 유조선을 전쟁 지역으로 보내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이것이 9장에서 다룬 "보험의 항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험의 항복에는 예외가 있었습니다. 서방의 보험 시장이 닫혔다고 해서 지구 위의 모든 보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서방 제재의 바깥에서 운영되는 보험사들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국영 보험사인 인고스트라흐(Ingosstrakh), 중국의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China Export & Credit Insurance Corporation, 시노슈어 Sinosure). 이 보험사들이 이란의 통행 허가를 받은 선박에 전쟁 위험 보험을 제공했습니다. 서방의 보험이 사라진 자리를, 중국과 러시아의 보험이 채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개의 해상 경제권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달러 기반 해상 경제권이었습니다. 런던의 로이즈에서 보험을 들고, 뉴욕의 은행에서 결제하고, 미국 해군의 호위를 받는 전통적인 항로. 이 경제권의 선박들은 호르무즈 해협 앞에서 멈춰 서 있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으로 약 2,000척의 선박이 해협 양쪽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걸프만(Persian Gulf)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선박, 걸프만 밖에서 들어가지 못하는 선박이 오만만(Gulf of Oman) 일대에 400척 이상 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새로 생겨난 위안화 기반 해상 경제권이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계열 보험사에서 보험을 들고, CIPS를 통해 위안화로 결제하고, IRGC의 호위를 받아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항로. 이 경제권의 선박들은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3월 1일부터 25일까지 해협을 통과한 142척 가운데, 로이드 리스트에 따르면 약 90%가 어떤 형태로든 이란과 연결돼 있는 선박이었습니다. 이란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 중국 소유 화물선, 인도로 향하는 LPG(액화석유가스) 운반선, 파키스탄 국적 탱커. 이 선박들은 AIS(선박자동식별장치,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트랜스폰더로 자신의 국적과 소유주를 알리며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3월 5일에는 중국 선사 세투스 마리타임 상하이(Cetus Maritime Shanghai)가 운영하는 벌크선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호가 AIS에 "CHINA OWNER"를 송출하며 해협을 빠져나갔습니다. 같은 날, LPG 탱커 보아지치(Bogazici)호는 "무슬림 소유, 튀르키예 운영(Muslim-owned and Turkish-operated)"이라는 메시지를 AIS에 실었습니다.

전쟁 전의 해협에서는 아무도 이런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배는 그냥 지나갔습니다. 어떤 나라 배인지, 누구 돈으로 보험을 들었는지, 어떤 통화로 거래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해양의 자유(Freedom of the seas)였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38조가 보장하는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서의 통과 통항권(Right of transit passage)". 이란은 이 협약에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았고,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제법의 회색 지대가, 그대로 바다의 회색 지대가 됐습니다.

이 이중 구조의 경제적 함의를 숫자로 보겠습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키스 존슨(Keith Johnson) 기자가 추적한 데이터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의 물량을 모두 합쳐도, 전쟁 전 하루치에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란의 하르그 섬(Kharg Island) 석유 터미널은 3월에 160만 배럴을 선적했습니다. 전쟁 전 월간 선적량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란의 석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춘 것은 이란 이외의 석유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카타르의 석유와 가스가 해협 안쪽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직면한 딜레마가 드러납니다. 이 나라들의 석유가 해협을 빠져나가려면, 이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란의 허가를 받으려면 IRGC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심사를 통과해도, 통행료를 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통행료는 위안화로 결제해야 합니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Aramco)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호르무즈를 통과하기 위해 중국 위안화를 구해야 하는 상황. 이것은 1974년 키신저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였습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Abu Dhabi National Oil Company) 대표이자 COP28 의장이었던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Jaber)는 워싱턴의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화하는 것은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이 아닙니다. 저렴한 에너지와 식량에 의존하는 모든 소비자, 모든 가정에 대한 경제적 테러입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인질로 잡으면, 모든 나라가 주유소에서, 식료품점에서, 약국에서 몸값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알 자베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이 "몸값"이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위안화 결제가 축적될수록, 석유와 달러 사이의 반세기 된 연결 고리가 한 올씩 끊어지고 있다는 사실.

CIPS의 3월 거래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마이크 립스키(Mike Lipsky)와 그의 분석팀은 "이란의 통행료와 원유 결제가 위안화로 몰리면서 CIPS의 거래가 지난 1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한 건, 한 건의 위안화 결제가 쌓일 때마다, 그것은 달러 시스템을 우회하는 병렬적 금융 인프라에 벽돌 한 장씩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캠벨대학교의 해양사학자 살 메르코글리아노(Sal Mercogliano)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국제법 어디에도 톨게이트를 세우고 해운업을 갈취하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이것은 이란이 지금 자기가 가진 유일한 카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이란이 쓰고 있는 카드는 호르무즈만이 아니었습니다. 위안화라는 두 번째 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카드를 만들어준 것은 이란이 아니라 중국이었습니다.

23.3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 미국 동맹국이 배제된 통과 허용 리스트

2026년 3월 26일,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가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인도, 이라크, 파키스탄 국적의 선박은 이란 당국과 사전 조율을 거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슈키안(Masoud Pezeshkian)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말레이시아 선박도 통과를 허가받았고, 태국 역시 주이란 대사를 통한 교섭으로 자국 선박의 통행을 확보했습니다.

이 허용 리스트를 펼쳐 놓으면, 2026년 세계의 지정학적 균열선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중국의 경우부터 보겠습니다. 중국은 이란 원유의 최대 구매자였습니다. 전쟁 전에도 이란산 원유의 대부분이 중국의 독립 정유소(Teapot refineries)로 향했습니다. 중국은 CIPS를 제공하는 결제 인프라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란에게 중국은 고객이자 은행이자 동맹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국 선박은 호르무즈를 가장 안전하게 통과했습니다. 3월 1일부터 15일까지 해협을 건넌 중국 연결 선박은 11척이었고, 대부분 일반 화물선이었습니다. 중국 국영 해운사 코스코(COSCO)는 전쟁 발발 직후 중동 노선의 신규 예약을 전면 중단했지만, 이란의 허가를 받은 개별 선박들은 계속 해협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통과도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3월 12일, "CHINA OWNER"를 AIS에 송출하며 해협을 통과하던 한 중국 소유 선박이 파편에 맞았습니다. 제벨 알리(Jebel Ali) 항구를 향해 중동만(Middle East Gulf)에서 항해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주류 중국 해운사들의 해협 통과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3월 27일에는 코스코 소속 대형 컨테이너선 두 척, CSCL 인디안 오션(CSCL Indian Ocean)호와 CSCL 아틱 오션(CSCL Arctic Ocean)호가 해협 통과를 시도했다가 "안전한 통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되돌아갔습니다. 중국 국기를 달았다고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IRGC의 심사는 선박별, 건별로 이루어졌습니다.

인도의 사례는 더 복잡합니다.

인도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지만, 미국의 군사 작전에 반대 성명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인도 외교의 오랜 원칙인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이 여기서도 작동했습니다. 인도에게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것은 안보 문제 이전에 생존 문제였습니다. 인도의 LPG 수입량 가운데 상당 부분이 걸프만에서 호르무즈를 거쳐 들어오고 있었고, 전쟁이 시작되자 인도 전역에서 조리용 가스 부족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인도 정부는 긴급 권한을 발동해 정유사에 LPG 생산을 극대화하라고 지시했고, 도시가스(PNG, Piped Natural Gas) 연결이 돼 있는 가구는 LPG 충전을 아예 금지시켰습니다.

인도 외무장관 수브라마니암 자이샨카르(Subrahmanyam Jaishankar)가 직접 이란과 교섭에 나섰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지금 이란과 대화하고 있고, 그 대화가 일부 성과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인도 국적 선박에 대한 포괄적인(Blanket) 합의는 없습니다. 모든 선박의 이동은 건별 사안입니다."

건별 교섭의 구체적인 모습은 이랬습니다. 인도 정부는 이란에 억류돼 있던 이란 군함의 승조원 약 180명을 본국으로 송환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 인도양에서 인도 주최 합동 훈련에 참가하고 있던 이란 해군 함정 3척 가운데, 1척은 미국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고, 2척은 인도와 스리랑카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인도는 이 함정의 승조원을 보호하고 귀국시키는 "선의의 조치"를 취했고, 이것이 이란과의 교섭에서 지렛대가 됐습니다. 칼링가 인도-태평양연구소(Kalinga Institute of Indo Pacific Studies) 소장 친타마니 마하파트라(Chintamani Mahapatra)는 "이란이 인도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한 것은 인도의 중립 정책에 대한 보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 3월 14일에 인도 국적 LPG 운반선 두 척이 호르무즈를 통과했습니다. 인도 해운공사(Shipping Corporation of India) 소속 선박이었습니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가운데 한 척의 선상 고위 승조원은 "이란 해군이 사전에 승인된 항로를 따라 우리 배를 직접 호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3월 14일부터 24일 사이에 인도 국적 LPG 운반선 5척이 추가로 해협을 빠져나왔고, 인도 해군 군함이 오만만(Gulf of Oman)에서 이 선박들을 인수받아 인도까지 호위하는 '산칼프 작전(Operation Sankalp)'이 실행됐습니다. 3월 23일에는 재그 바산트(Jag Vasant)호와 파인 가스(Pine Gas)호가 케슘 섬과 라라크 섬 근처 이란 연안 항로를 따라 해협을 건넜습니다. 두 척의 합산 적재량은 92,600톤의 LPG였습니다.

파키스탄의 경우는 가장 직접적이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란의 이웃 국가이고, 양국은 909킬로미터의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전쟁 초기부터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고, 미국의 15개 항목 종전 제안을 이란에 전달한 것도 파키스탄이었습니다. 3월 16일, 파키스탄 국적 아프라막스급(Aframax-class) 탱커 한 척이 AIS를 켠 상태로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UAE 아부다비에서 원유를 실은 이 배는, 이란의 허가 아래 비(非)이란 화물을 적재한 채 해협을 공개적으로 건넌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이 허용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의 목록을 보면, 세계의 또 다른 단면이 보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호주. 네덜란드. 이 나라들의 선박은 호르무즈를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해군사령부(Combined Maritime Forces)에 함정을 파견하고 있거나, 미국의 대이란 외교 노선에 동조하는 나라들이었습니다. IRGC는 이 국가들의 선박을 "적성국(Hostile nations) 연결 선박"으로 분류했습니다. 3월 26일 이란이 국제해사기구(IMO) 176개 회원국에 보낸 서한의 문구는 이랬습니다.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에 참여하지도 않고 지원하지도 않으며, 이란이 선포한 안전 및 보안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는 비적대국(Non-hostile states)의 선박은 이란 당국과의 조율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비적대국"이라는 단어가 핵심이었습니다. 누가 적대국이고 누가 비적대국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란이었습니다. 유엔이 아니고, 국제해사기구가 아니고, 해양법 재판소가 아니었습니다. 21마일짜리 수로의 통과 여부를, 그 수로의 북쪽 해안선을 소유한 나라가 판정하고 있었습니다. 국제법의 언어로 보면 명백한 위반이었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38조는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에 국제 해협에서의 통과 통항권을 보장합니다. 걸프만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 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유엔해양법협약에 대한 침략이자 위반"이라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나 국제법의 언어와 호르무즈 해협의 현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법이 명령하는 것과 바다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달랐습니다. IRGC의 미사일과 드론, 소형 고속정, 기뢰가 해협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법 조문을 읊는 것만으로는 유조선 한 척도 통과시킬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2026년 3월, 세계를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누는 필터가 됐습니다.

한쪽에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과 군사 동맹 아래에 있는 나라들이 서 있었습니다. 이 나라들에게 호르무즈는 닫혀 있었습니다. 석유 수입이 끊겼고, 유가가 배럴당 126달러까지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이 번지고, 항공 노선이 축소됐습니다. 9장에서 11장까지 다룬 해협 봉쇄의 경제적 충격은 고스란히 이 나라들의 몫이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미국의 제재 바깥에서 움직이는 나라들이 서 있었습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위안화로 사들이며 자국의 에너지 수입을 이어갔습니다. 인도는 건별 외교로 LPG 운반선을 빼냈습니다. 파키스탄은 중재자의 지위를 활용해 자국 탱커의 통행을 확보했습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을 해협에 투입해 이 혼란을 서방 압박의 지렛대로 쓰고 있었습니다.

이 분할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짚은 분석은 미국 의회조사국(C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보고서도, 브루킹스 연구소의 정책 논문도 아니었습니다. 이란 전쟁에 관한 글을 써온 한 에너지 분석가의 문장이었습니다. "달러로 결제하면 불확실성이 남고, 위안화로 결제하면 통과가 보장됩니다. 이것이 전쟁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장 정교한 경제적 함정입니다."

이 함정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CIPS가 2015년에 가동을 시작한 이래, 중국은 10년 동안 조용히 배관을 깔았습니다. 위안화 스와프(Swap) 협정, 중동과 아프리카의 직접 참여 은행 확대, BRICS 국가들의 위안화 결제 네트워크 구축. 어느 것 하나 큰 뉴스가 된 적 없었습니다. 서방 언론은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나 부동산 위기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CIPS의 연간 처리량은 2020년 이후 3배 이상으로 불어났고, 참여 기관은 121개국까지 퍼졌습니다. 예비 시스템(Backup system)이었던 것이 2026년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실전 시스템으로 전환됐습니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것은 유가 126달러보다 더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문제였습니다. 유가는 전쟁이 끝나면 내려갑니다. 그러나 한 번 작동하기 시작한 비(非)달러 결제 관행은 전쟁이 끝나도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달러 없이도 석유를 사고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선례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선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2026년 3월의 호르무즈 해협은, 그 선례가 실시간으로 써지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란의 톨게이트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3월 19일부터 해협 개방을 위한 군사 작전을 시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7개국에 호르무즈 호위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톨게이트가 내일 사라진다 해도, 3월 한 달 동안 CIPS를 통해 결제된 위안화 거래의 기록은 남습니다. 중국 해운 서비스 회사가 IRGC와 선주 사이에서 중개인 역할을 한 경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도가 건별 교섭으로 이란의 허가를 받아 LPG 운반선을 빼낸 외교적 경로는, 다음 위기가 왔을 때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선례가 됩니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석유 거래의 약 80%가 여전히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SWIFT를 통한 글로벌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6월 기준 3%에 불과했습니다. 달러 48%, 유로 24%에 비하면 아직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페트로달러 체제의 강점은 대안이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석유를 달러 말고 다른 통화로 살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달러를 보유해야 했습니다.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그 "대안이 없다"는 전제가 깨졌습니다. 위안화로 통행료를 내고, 위안화로 석유를 사고, CIPS를 통해 결제를 마무리하는 완결형 경로가 실제로 작동한 것입니다. 작동한 규모는 작았습니다. 두 척이 통행료를 냈고, 수십 척이 해협을 건넜을 뿐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다"와 "불가능하다"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 것은, 규모와 상관없는 구조적 변화입니다.

국방부 산하 포린 디펜스(Foreign Defense) 분석가 한 사람의 말이 이 장의 끝을 대신합니다. "이란은 40년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지렛대로 쓰겠다고 위협해 왔고, 미국의 전쟁 계획자들은 40년 동안 그 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해협은 사실상 닫혔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그 해협에서 수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제24장 제재의 자기 파괴

24.1 러시아 제재를 풀면서 러시아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

2026년 3월 5일 밤, 미국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센트는 성명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인도에 대해 30일간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허용하는 면제 조치(General License)를 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적용 대상은 3월 5일 이전에 이미 유조선에 실려 바다 위에 떠 있는 물량으로 한정했습니다. 베센트는 이 조치가 "좁은 범위의 단기적 조치"이며 "러시아 정부에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일주일 뒤인 3월 12일, 재무부는 이 면제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인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3월 12일 이전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를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유효 기간은 4월 11일까지. 이번에도 "이미 바다 위에 있는 물량"이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밤 기사 제목을 이렇게 뽑았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를 막기 위해 러시아 석유 제재를 한시적으로 해제."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따라가면, 미국이 빠져든 모순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2026년 초까지 러시아 경제는 서방 제재의 압박 아래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1월과 2월 두 달간 러시아의 석유가스 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6% 감소했고, 연방 예산 적자는 3조 5,000억 루블(약 43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러시아 우랄(Urals)유는 서방의 유가 상한제(Price Cap, G7이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운송 가격을 배럴당 60달러로 제한한 조치)에 묶여 아시아 시장에서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10~13달러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크렘린 내부에서는 여름이 오기 전에 재정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돌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측근들이 "3~4개월 안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습니다. 비(非)안보 부문 예산의 10% 삭감 계획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2월 28일, 에픽 퓨리 작전이 시작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이 모든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유가 폭등이 먼저 왔습니다. 전쟁 전날인 2월 27일 배럴당 57달러였던 러시아 우랄유 가격은 3월 중순 98.93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70% 상승. 블룸버그는 아르거스(Argus) 데이터를 인용해 이것이 2022년 러시아가 인도 시장에 대량 수출을 시작한 이래 최고가라고 보도했습니다. 브렌트유와의 할인 폭은 4.80달러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10~13달러였던 것이 거의 소멸한 셈입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세르게이 바쿨렌코 선임연구원은 CNBC에 출연해 "우랄유가 현재 배럴당 115달러"라고 말했습니다. 전쟁 직전의 두 배.

제재 면제가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면제 조치가 발표되자 바다 위에 떠 있던 약 1억 3,0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가 갑자기 합법적인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제재 위반 부담 때문에 러시아 원유 구매를 꺼리던 인도 정유사들이 일제히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Kpler의 분석가 무유 쉬(Muyu Xu)는 "인도 정유사들이 지난 주말부터 러시아산 즉각 인도 물량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으로 향하던 유조선들이 항로를 바꿔 인도 항구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Kpler와 Vortexa의 선박 추적 데이터는 약 14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 두 척이 동아시아에서 인도로 목적지를 변경한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돈의 흐름을 봅니다. 헬싱키에 본부를 둔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3월 1일부터 15일까지 15일간 화석 연료 수출로 77억 유로(약 83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하루 평균 약 5억 1,300만 유로. 2월 일평균(4억 7,200만 유로)보다 14% 증가한 수치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가 급등으로 러시아가 하루에 약 1억 5,000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계산했습니다. 블룸버그는 3월 넷째 주 러시아의 원유 수출 수입이 주간 기준 24억 8,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22년 4월 이후 최고치. 2월 하순 대비 120% 증가.

키예프경제대학(KSE) 산하 연구소의 추산은 이 횡재의 규모를 시나리오별로 보여줍니다. 전쟁이 6주 안에 끝나고 공급이 빠르게 회복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러시아는 추가 수출 수입 840억 달러, 추가 세수 450억 달러를 거둡니다. 전쟁이 가을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를 유지하고, 러시아의 총 석유가스 수입은 3,866억 달러, 추가 세수는 2,125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 숫자들 앞에 하나의 사실을 놓으면 모순의 윤곽이 선명해집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 넘게 정교하게 짜올린 제재망으로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그 압박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미국이 스스로 시작한 이란 전쟁이 유가를 끌어올리고, 유가를 잡기 위해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월 13일 파리에서 마크롱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제재 완화만으로도 러시아에게 약 100억 달러의 전쟁 자금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덧붙였습니다. "제재를 풀어서 더 많은 드론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게 만드는 것은 올바른 결정이 아닙니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같은 날 노르웨이에서 말했습니다. "G7 중 6개국이 이것은 잘못된 신호라고 아주 분명하게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현재는 가격 문제이지 공급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정부가 이 결정을 내리게 된 추가적인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마크롱은 호르무즈 위기가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 제재 완화를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부의 논리는 달랐습니다. 유가가 매일 올랐습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향해 치달았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13일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고 그 주에만 약 9% 올랐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가격 폭등이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이메일 성명에서 이 조치를 "이란의 위협이 무력화될 때까지 전 세계 공급을 보강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액시오스의 에밀리 펙 기자는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란과의 '열전(Hot war)'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냉전(Cold war)'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러시아·유럽 제재를 담당했던 에디 피시먼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 우리가 구축한 제재 체제에 대한 첫 번째 주요 완화입니다. 이 체제를 해체할 위험이 있습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카리 히어먼도 같은 구조적 딜레마를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위기를 관리해야 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지금 동시에 놓인 우선순위가 세 가지입니다. 낮은 유가, 이란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러시아 압박."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가를 잡으려면 공급을 늘려야 했고, 공급을 늘리려면 러시아 제재를 풀어야 했고, 러시아 제재를 풀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돈을 쥐여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란을 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러시아를 조이기 위해 쌓아올린 제재를 미국 자신의 손으로 허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카네기 센터의 바쿨렌코는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푸틴이 전쟁에 쓸 돈 때문에 나라를 저당 잡히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블룸버그는 3월 27일 러시아 경제부가 2026년 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계획대로 1.3%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0.7%로 하향 조정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10% 예산 삭감 계획도 철회되었습니다. 유가 횡재가 국부 펀드를 다시 채우고, 국방비 12조 9,000억 루블(약 1,574억 달러)을 감당할 여력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지정학 모니터(Geopolitical Monitor)의 앨리스 존슨은 이 상황의 구조적 의미를 이렇게 짚었습니다. "다른 전쟁이 석유 시장을 교란할 때마다 느슨해질 수 있는 제재 시스템은, 원칙이 아니라 응급처치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국 상원의원 팀 케인과 루벤 갈레고가 트럼프 행정부에 보낸 서한은 이 모순을 공식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공개 출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분쟁 첫날부터 이란 군부에 미군 위치와 이동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의 이란에 대한 직접적 군사 지원만으로도 귀하의 제재 완화 결정은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미 치솟는 유가로 최대 49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며, 귀하의 제재 면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액수를 키울 것입니다."

제재라는 도구의 구조적 한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제재는 대상국이 고립되어 있을 때, 그리고 제재를 부과하는 쪽이 다른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지 않을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두 조건이 동시에 무너진 2026년 3월, 미국이 2014년부터 12년간 쌓아올린 대러 제재 체제는 미국 자신이 연 전쟁의 불길 속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4.2 인도와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의존 심화

인도 석유부 관계자는 3월 초 CNN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약 1억 배럴의 원유에 접근 가능하며 이는 약 45일분의 수요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 뒤에 숨겨진 숫자를 풀어보면, 인도가 처한 상황이 보입니다. 세계 3위 석유 수입국인 인도는 전체 원유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옵니다. Kpler 데이터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매일 250만~270만 배럴의 인도향 원유가 지나갑니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에서 오는 물량입니다. 이 수로가 막히면 인도의 일일 원유 수입 절반 이상이 차단됩니다.

2025년 하반기부터 인도는 미국의 압박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미국은 러시아 석유 구매에 대한 보복으로 인도 수출품에 25%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인도는 이에 굴복해 러시아산 구매를 줄이고 중동산으로 대체했습니다. 2026년 1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전체의 21.2%까지 떨어졌습니다. 하루 약 110만 배럴. 2022년 말 이래 최저치.

그러나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되고 호르무즈가 막히자, 인도가 미국 요구에 맞춰 대체해 놓은 중동산 원유가 정확히 그 해협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인도 석유부는 즉각 외교부에 미국으로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 면제를 얻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인도의 현재 상업·전략 비축유가 2주분 소비량에 불과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3월 5일 미국의 면제 조치가 나오자마자 인도 정유사들이 움직였습니다.

속도가 놀라웠습니다. 전쟁 전인 2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하루 약 104만 배럴이었습니다. 3월 첫 주에 150만 배럴로 뛰었습니다. 50% 증가. CREA 데이터에 따르면 3월 첫 3주간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일평균 수입량은 2월 대비 82% 급증했습니다. Kpler의 수밋 리톨리아 분석가는 3월 수입량이 하루 200만~220만 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3월 25일 블룸버그가 보도한 숫자는 이 흐름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인도 정유사들이 4월 인도분 러시아산 원유를 6,000만 배럴 계약했다는 것입니다. 2월 물량의 두 배를 넘습니다. 가격은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5~15달러의 프리미엄. 할인이 아니라 웃돈입니다.

이 숫자의 의미를 잠시 멈춰서 봐야 합니다. 2023년에서 2025년까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산 이유는 싼 가격이었습니다. 브렌트 대비 10~13달러 할인. 그것이 인도 정유사들의 마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3월, 인도는 웃돈을 주고 러시아산 원유를 삽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가 매입한 600만 배럴은 브렌트유 거의 같은 가격이었습니다. "인도의 세계"라는 분석 사이트는 이 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과거에는 가격 최적화였다면, 지금은 지정학적 스트레스 아래에서의 공급 안보입니다."

Kpler의 한 분석가가 핵심을 짚었습니다. "지금은 분자(Molecules, 원유 자체)의 확보가 문제이지, 가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의 움직임은 인도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인도가 미국의 면제를 받아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했다면, 중국은 그런 절차 자체를 밟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중국은 이미 자체적인 결제 시스템과 운송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첫 15일 동안 이란 항구에서 중국 정유소로 향한 원유가 1,170만 배럴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 물량은 일반 국제 해운 시스템이 아니라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보험과 서방 해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항하는 유조선 집단)을 통해 운반되었고, 결제는 모두 달러 바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와 함께 러시아산 원유도 쓸어 담았습니다.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어오는 러시아산 원유는 호르무즈 해협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공급됩니다. 바다를 건너지 않습니다. 미 해군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이 육상 경로를 더 넓히기 위해 파워 오브 시베리아 2(Power of Siberia 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조기 착공을 2026년 3월 채택된 제15차 5개년 계획에 명시했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경유해 중국 북부로 연간 50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가 흐르게 됩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카타르산 LNG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영구적인 대안입니다.

인도와 중국을 합치면 세계 인구의 약 36%, 글로벌 석유 수입의 약 3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이 두 나라가 동시에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끌어올린 것은 단기적 위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입니다.

그 구조를 한 가지 사실이 설명합니다. 인도 정유사들은 한때 러시아산 원유를 사면 미국의 징벌적 관세를 맞았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직접 면제를 내려서 사라고 합니다. 미국의 전쟁이 미국의 제재를 무효화했고, 그 무효화가 러시아와 아시아 거대 경제국들 사이의 에너지 연결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깊게 만들었습니다.

인도 정부 공보처(PIB)는 성명에서 말했습니다. "미국의 면제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인도는 2026년 2월에도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허락이 있든 없든 인도는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한번 깔린 인프라, 한번 맺어진 장기 계약, 한번 전환된 공급망은 위기가 끝난 뒤에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러시아산 원유를 실어 나르기 위해 인도와 중국의 항구 시설이 확장되고, 결제 경로가 다져지고, 정유소의 처리 설비가 러시아산 유종에 맞춰 재조정되면, 그것은 영구적인 공급망이 됩니다. 미국이 전쟁을 끝내고 제재를 다시 강화하더라도, 이미 자리 잡은 유라시아 에너지 회랑을 떼어내기는 훨씬 어려워집니다.

24.3 이란이 위안화로 돈을 벌고, 러시아가 제재 해제로 숨을 쉬는 전쟁

CNN은 3월 14일 이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해 제한적 통행을 허용하되, 화물이 중국 위안화로 거래되는 경우에 한한다는 조건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1974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971년 닉슨이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한 뒤, 미국은 새로운 닻이 필요했습니다. 1974년 닉슨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과 합의를 맺었습니다. 사우디는 모든 석유를 달러로만 판매하고, 석유 수출 대금으로 번 달러(오일머니)를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한다. 이 합의는 곧 OPEC 전체로 확산되었고,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체제의 작동 원리는 자기강화적 순환입니다. 석유가 달러로만 거래되므로, 석유를 수입하는 모든 나라는 달러를 보유해야 합니다. 달러에 대한 구조적 수요가 생깁니다. 이 수요 덕분에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내면서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전 재무장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1960년대에 명명한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입니다.

이란의 위안화 조건은 이 52년 된 순환 고리에 쐐기를 박는 시도였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운영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새 질서는 이렇게 작동했습니다. 해협을 통과하려는 유조선은 이란 영해 내 지정된 항로를 따라야 합니다. 통과 허가를 받으려면 척당 최대 200만 달러에 달하는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결제 수단은 위안화. 결제 경로는 SWIFT가 아닌 중국의 국경간은행간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

CIPS는 중국 인민은행이 2015년부터 운영해 온 독자적인 국제 결제 시스템입니다. SWIFT가 미국의 감시와 통제 아래 있는 것과 달리, CIPS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미국 뉴욕의 환거래은행을 거치지 않습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 거래를 추적할 수도, 동결할 수도 없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CIPS를 통해 처리된 위안화 표시 거래 규모는 245조 달러 상당. 전년 대비 43% 증가.

이 인프라 위에서 이란-중국-러시아 사이의 금융 루프가 돌아갔습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합니다.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쿤룬은행(Bank of Kunlun)이 주요 결제 허브 역할을 합니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도 에너지를 수입하고 위안화로 결제합니다. 위안화를 확보한 이란과 러시아는 그 돈으로 중국산 무기 부품, 산업 기계, 소비재를 구매합니다. 위안화가 중국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순환 안에서 달러가 개입할 지점이 없습니다.

인도마저 이 흐름에 합류하는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블룸버그는 3월 하순 인도 정유사들이 러시아산 원유 대금 일부를 위안화와 UAE 디르함으로 결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달러를 완전히 배제한 것입니다.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치는 동안, 이란은 미국이 건드릴 수 없는 금융 시스템 안에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전쟁 개시 후 3주 동안 그림자 선단을 통한 원유 수출과 위안화 통행료로 상당한 규모의 수입을 챙겼습니다. 하루에 유조선 30척이 통과하고 척당 200만 달러를 받으면, 연간 200억 달러가 넘는 수입입니다. 미 공군이 이란의 미사일 공장을 폭격하는 동안,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리적 자산으로 전쟁 비용을 자체 조달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고도 이익을 챙겼습니다. 유가 급등으로 수출 수입이 늘었고, 미국의 제재 면제로 아시아 시장 접근이 쉬워졌고, 서방의 군사적 관심이 중동으로 분산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의 압박도 줄었습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이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사 저술가 리처드 셔리프는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전쟁 첫 4일 동안 4년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것보다 4배 많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란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 한 발은 우크라이나로 가지 못한 미사일 한 발이었습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제목. 보고서는 러시아가 이란 군부에 위성 영상과 미군 이동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이란의 드론 공격 패턴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사용한 전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의 핵심 결론은 이것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핵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재 체제가 국내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마다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 버렸습니다."

24.4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미국의 금융 패권을 약화시키는 역설

2026년 3월 19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119달러를 찍은 날. 같은 날 미국 국채 시장에서는 다른 종류의 경보가 울렸습니다. 포춘(Fortune)은 "미국 부채가 이란 전쟁 속에서 약해진 수요에 직면하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미국 국채가 10조 달러에 달하는데, 매수세가 약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페트로달러 체제의 균열이 보입니다.

체제의 첫 번째 기둥, "모든 석유는 달러로만 거래된다"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통행료와 원유 대금을 위안화로 받고 있었습니다. 인도 정유사들은 러시아산 원유 대금 일부를 위안화와 디르함으로 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는 1974년의 합의를 갱신하지 않았고, 위안화, 유로, 디지털 화폐로도 석유를 팔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2023년에는 전 세계 석유 거래의 약 5분의 1이 달러가 아닌 통화로 결제되었습니다. 2026년 그 비율은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기둥, "미국이 중동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약속의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3월 5일 세계 해상 물동량의 90%에 대한 책임보험을 제공하는 국제P&I클럽(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s) 소속 12개 보험사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보험 인수를 철회했습니다. 미 해군의 제5함대가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보험사들을 안심시킬 수 없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 데이터에 따르면 3월 상반월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77척에 불과했습니다. 평시 같은 기간이면 수백 척이 오갔을 수로입니다.

세 번째 기둥, "산유국의 오일머니가 미국 국채로 환류한다"는 순환도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달러 표시 거래가 줄면 산유국이 보유하는 달러도 줄고, 미국 국채에 투자할 돈도 줍니다.

이 세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은 39조 달러의 국가 부채를 안고 있는 미국에게 실존적 문제입니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롬 파월은 미국의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궤적이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외국 중앙은행과 산유국이 미국 국채를 예전처럼 사주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연간 이자 비용은 1조 달러를 넘어갑니다.

이 모든 과정의 기저에 '제재의 역설(Sanctions Paradox)'이라 불리는 구조가 있습니다.

미국은 불량 국가를 굴복시키기 위해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SWIFT 차단)과 해외 자산 동결이라는 수단을 반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아프가니스탄. 미국 재무부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나라가 지구 전체 국가의 3분의 1, 저소득 국가의 60%에 달합니다.

제재를 당한 나라들은 살아남기 위해 달러 바깥의 대안을 찾았습니다. CIPS가 커졌습니다. mBridge(다자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플랫폼)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40개 이상의 중앙은행과 위안화 스왑 라인을 맺었습니다. 2018년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가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계약을 출시했습니다. 이 모든 인프라는 2026년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깔려 있었습니다.

전쟁은 이 인프라가 실전에서 작동하는지를 시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동했습니다. 이란은 CIPS를 통해 위안화로 통행료를 받았습니다. 그림자 선단은 서방 보험과 서방 해운 서비스 없이 이란산 원유를 중국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달러 아닌 통화로 결제했습니다. 아시아 타임스의 카시프 하산 칸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위안화 정책은 글로벌 금융의 새 방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방향을 가속시키는 것입니다."

달러가 하루아침에 기축통화 지위를 잃지는 않습니다. 아시아 타임스가 지적하듯 "위안화는 아직 글로벌 준비통화의 짐을 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자본 통제를 유지하고 있고, 금융 시장의 개방성과 신뢰도가 미국에 미치지 못합니다." IMF 데이터에 따르면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외환 보유고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파운드가 세계 기축통화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약 3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추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이란 전쟁은 그 추세를 가속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럽비즈니스매거진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전의 탈달러화 논의는 이론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초크포인트가 있고, 그림자 선단이 있고, 작동하는 위안화 결제 시스템이 있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위기가 있습니다."

미국이 직면한 역설의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은 달러의 힘을 지키기 위해 제재를 사용했습니다. 제재를 남용하자 적대국들이 달러를 우회하는 인프라를 만들었습니다.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에서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만든 에너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제재를 풀어야 했습니다. 제재를 풀자 적대국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갔습니다. 적대국들은 그 돈을 달러가 아닌 통화로 벌고, 달러가 아닌 통화로 썼습니다.

케인 상원의원과 갈레고 상원의원은 행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적국들에 대한 제재를 풀면서 동시에 활발한 분쟁을 치르는 것은 일관성 없고 무질서한 정책의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미국인들에 대한 경제적 구제는 선택한 전쟁의 지속이 아니라 중단에서 시작됩니다."

폭탄으로 적의 결제 시스템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B-2 폭격기가 CIPS 서버를 타격할 수는 없습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위안화 스왑 라인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이 드러낸 것은, 21세기 패권 경쟁에서 군사력의 한계입니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군대를 이란에 투사했지만, 그 투사가 만들어낸 경제적 충격파는 되돌아와서 미국 자신의 금융 패권을 깎아먹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물리적으로 열 수 있는 군사력은 미국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해협을 통과하는 배가 어떤 통화로 결제하는지는 군사력으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 상인에게 특정 장부를 쓰라고 강요할 수 있는 힘은 항공모함에 없습니다.




제25장 에너지 무기화의 계보

25.1 1973년 아랍 석유 금수

1973년 10월 6일, 유대인의 속죄일인 욤 키푸르. 이집트군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시리아군이 골란고원을 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밀렸습니다. 닷새 뒤인 10월 12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무기 공수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C-5A 갤럭시와 C-141 스타리프터 수송기 수백 대가 미국 전역의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텔아비브를 향했습니다. 작전명은 니켈 그래스(Operation Nickel Grass). 탱크, 포탄, 미사일이 공중 다리를 타고 사막으로 쏟아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은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닉슨이 의회에 이스라엘 긴급 원조 22억 달러를 요청한 날은 10월 19일이었습니다. 같은 날,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장관 회의가 쿠웨이트에서 열렸습니다. 결정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합니다. 생산량은 매달 5%씩 줄입니다.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때까지.

에너지가 외교 정책을 강제하는 무기로 쓰인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금수 조치가 시작되기 전, 세계 석유 시장의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1960년대까지 국제 유가는 서방의 거대 석유 기업 일곱 곳,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가 좌우했습니다. 엑슨, 모빌, 셰브런, 텍사코, 걸프오일, BP, 로열 더치 셸. 산유국들은 자국 영토에서 뽑아 올리는 석유의 가격을 스스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창설됐지만, 10여 년 동안은 서방 기업들의 독점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미국의 석유 소비는 급증했습니다. 1950년 미국의 석유 수입은 하루 50만 배럴 미만으로 국내 소비의 8%에 불과했습니다. 1973년에는 수입이 국내 소비의 19%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석유의 3분의 1을 소비하면서도, 자국 생산은 1970년에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싸고 풍부한 석유를 전제로 설계된 미국의 교외 주택, 대배기량 자동차,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 이 모든 것이 중동의 밸브 하나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OAPEC가 밸브를 잠갔을 때, 물리적으로 사라진 석유의 양은 전 세계 공급량의 약 7%였습니다. 미국 석유 공급의 7%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 절대적 수치로 보면 파국적이라 할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금수 자체보다 시장의 공포가 더 빨리 움직였습니다.

배럴당 2.90달러이던 유가가 1974년 1월 11.65달러로 치솟았습니다. 4배. 미국 전역의 주유소 앞에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No Gas' 팻말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의회는 긴급석유배분법(EPAA)을 통과시켜 의무 배급제를 도입했고, 홀짝제(차량 번호판 끝자리에 따라 주유일을 나누는 방식)가 시행됐습니다. 물가는 치솟는데 경제는 멈추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이 서방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972년 3.3%에서 1974년 11%로 뛰었습니다.

충격은 미국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1월까지 아랍 산유국들의 생산은 9월 대비 25%가 감소했고, 중동에서 서방으로 향하는 석유 수출은 60~70% 줄었습니다. 일본과 서유럽 국가들은 아랍 측의 요구에 굴복해 친아랍 외교 성명을 서둘러 발표해야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석유 수입 비용은 각각 15억 달러씩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미국과 유럽 동맹 사이에 균열이 벌어졌습니다. 유럽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이 금수를 촉발했다며 분노했고, 미국은 유럽이 아랍의 압력에 너무 쉽게 무릎 꿇었다고 비난했습니다.

1974년 3월, OAPEC 내부의 의견 차이 끝에 금수는 해제됐습니다. 5개월의 금수가 끝났지만, 치솟은 유가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5개월이 남긴 것은 유가 상승보다 더 깊은 구조적 변화였습니다.

첫 번째 변화. 미국은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74년 서방 선진국들과 함께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창설했습니다. 회원국들은 위기 시 비축유를 공동으로 방출하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의 거대한 지하 소금 동굴에 수억 배럴의 원유를 비축하는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에너지 안보라는 개념이 태어난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변화가 더 중대했습니다. 1974년,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사우디 왕가 사이에 일련의 고위급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미국 재무장관 윌리엄 사이먼과 그의 부관 제리 파스키가 사우디 관리들과 비밀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이 합의의 존재는 2016년 블룸버그의 정보자유법(FOIA) 청구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핵심 내용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사우디 왕가의 안보를 보장하고 무기를 공급합니다. 사우디는 석유 판매 대금을 미국 달러로 결제하고, 잉여 오일머니를 미국 국채에 투자합니다. 1975년까지 모든 OPEC 회원국이 사우디의 선례를 따랐습니다. 이것이 페트로달러(Petrodollar) 체제의 탄생입니다.

어떤 나라든 석유를 사려면 먼저 달러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달러 보유고를 쌓아야 했습니다.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받은 막대한 달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했습니다. 키신저는 이 순환을 '페트로달러 환류(Petrodollar Recycling)'라 불렀습니다. 미국은 막대한 재정 적자를 운영하면서도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달러는 금 태환이 끝난 뒤에도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지켰습니다.

1973년의 석유 금수는 아랍 산유국들의 단기적 승리였습니다. 서방의 외교 정책을 일시적으로 흔들었고, 유가를 4배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석유와 달러를 연동시켜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금융 체제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랍의 밸브가 열어젖힌 위기의 공간을, 미국이 자국의 패권 구조로 채워 넣은 셈입니다.

에너지를 무기로 쓴 1세대 모델. 생산국이 밸브를 잠그는 방식. 이 방식은 반세기 동안 에너지 무기화의 원형으로 남았습니다.

25.2 2022년 러시아 가스

2022년 6월의 어느 날, 독일 경제부 장관 로베르트 하벡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르트스트림 1(Nord Stream 1) 파이프라인은 "완전히 정상 가동 중"이며, 러시아가 주장하는 기술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시점에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즈프롬(Gazprom)은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이미 정상의 40%로 줄여놓은 뒤였습니다. 한 달 뒤에는 20%로 떨어졌습니다. 핑계는 터빈 수리였습니다. 서방 제재 때문에 캐나다에서 수리 중인 지멘스 터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멘스 에너지 측은 자사가 가즈프롬으로부터 정비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는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와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아랍은 밸브를 한 번에 잠갔습니다. 선언하고, 실행하고, 끝. 러시아는 밸브를 서서히 조였습니다. 40%로, 20%로, 그리고 0%로. 기술적 이유를 대면서. 서방이 제재를 풀면 가스가 다시 흐를 수 있다는 암시를 남기면서. 이것은 전면전이 아니라 신경전이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유럽의 저장 탱크를 채우지 못하게 만드는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무기가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이 스스로 만든 구조적 취약성에 있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 독일과 유럽은 '교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라는 독트린을 믿었습니다.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깊이 엮이면, 러시아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은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석탄 발전도 줄여나갔습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바람이 불지 않거나 해가 뜨지 않을 때 생기는 공백)을 메울 브릿지 연료로 천연가스를 택했습니다. 그 가스의 공급처는 러시아였습니다.

전쟁 직전, 독일은 천연가스 소비의 절반 이상, 석유 수입의 3분의 1, 석탄 수입의 약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발트해 해저를 관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은 우크라이나나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를 우회하는 설계였습니다. 동유럽 국가들은 이 가스관이 지정학적 무기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독일은 순수한 경제 프로젝트라며 밀어붙였습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습니다. 서방은 유례없는 금융 제재로 응답했습니다. 푸틴은 가스관의 밸브를 틀었습니다.

무기화는 여러 단계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3~4월, 루블화 결제를 거부한 폴란드와 핀란드에 대한 가스 공급이 끊겼습니다. 5월에는 야말 파이프라인의 가스가 멈췄습니다. 6월에는 노르트스트림 1의 유량이 40%로 줄었습니다. 7월에는 20%로 떨어졌습니다. 8월 말, 가즈프롬은 3일간의 정비를 위해 노르트스트림 1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가스는 다시 흐르지 않았습니다. 9월 2일, G7이 러시아산 석유에 가격 상한제를 부과하기로 합의한 바로 그날, 가즈프롬은 노르트스트림 1의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류 누출이 핑계였습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노골적이었습니다. 가스 공급 재개는 "전적으로 제재 해제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하는 한, 겨울에 가스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9월 26일, 발트해 해저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노르트스트림 1과 노르트스트림 2의 가스관 네 줄 중 세 줄이 파괴됐습니다. 유럽과 러시아를 잇던 물리적, 상징적 탯줄이 영구히 잘린 순간이었습니다.

가격이 폭발했습니다. 유럽의 천연가스 도매 가격(TTF 기준)은 메가와트시(MWh)당 300유로를 넘어섰습니다. 전쟁 전 대비 10배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기 요금도 연동해서 치솟았습니다. 유럽전력벤치마크는 2022년 3분기 평균 MWh당 339유로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2% 높은 수치였습니다.

공장들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최대 에너지 기업 유니퍼(Uniper)는 400억 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독일 기업 역사상 최대 적자였습니다. 독일 정부는 2,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 패키지를 마련해 유니퍼를 국유화해야 했습니다. BASF를 비롯한 화학 기업들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옮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리 제조, 비료 생산, 철강 제련 등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파이프라인 가스를 잃은 유럽은 바다 위의 LNG(액화천연가스)를 쫓았습니다. 독일은 입법 절차를 단축해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FSRU)를 긴급 도입했습니다. 네덜란드 에임스하번에 새 부유식 LNG 터미널이 들어섰습니다. 2022년 3분기 유럽의 LNG 수입은 전년 대비 89% 급증한 320억 입방미터(bcm)에 달했습니다.

이 LNG 쟁탈전의 대가는 유럽 바깥의 가난한 나라들이 치렀습니다. 유럽이 웃돈을 주고 LNG 화물선을 싹쓸이하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입찰에서 밀려났습니다. 스리랑카는 전력망이 붕괴했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에 쏜 가스관이라는 무기가, 바람을 타고 남아시아의 정전으로 번진 셈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파이프라인 가스 수입은 2022년 1월부터 11월 사이 전년 대비 690억 입방미터 감소했습니다. LNG 수입 증가분을 감안해도 러시아발 가스 총수입은 640억 입방미터가 줄었습니다. 노르트스트림 1을 통한 공급은 전년 대비 85% 감소했고, 벨라루스 경유 공급은 96%가 사라졌습니다.

유럽은 버텼습니다. 예상보다 따뜻한 겨울, LNG 다변화, EU 차원의 가스 소비 15% 감축 목표(실제 달성은 20.1%) 등이 겹쳤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도 대가를 치렀습니다. 파이프라인 가스는 석유처럼 배에 실어 다른 곳에 팔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가장 크고 안정적인 시장을 영원히 잃었습니다.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전쟁 전 40%대에서 2023년 말 약 15%로 떨어졌습니다.

2022년의 에너지 무기화는 1973년의 밸브 통제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형태였습니다. 생산국이 인프라(파이프라인)를 직접 통제하고, 기술적 핑계와 정치적 조건을 번갈아 내밀며 소비국을 서서히 질식시키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이프라인이라는 경직된 인프라에 국가의 에너지를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를, 유럽은 수천억 유로의 수업료를 내고 배웠습니다.

25.3 2026년 호르무즈

2026년 3월 2일,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고위 관계자가 국영 매체를 통해 한 문장을 발표했습니다. "해협은 닫혔습니다. 누구든 통과를 시도하면, 혁명수비대와 정규 해군의 영웅들이 그 배를 불태울 것입니다."

이 문장의 수신자는 유조선 선장이 아니었습니다. 런던과 취리히의 보험 인수자(Underwriter)들이었습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이 이란을 강타한 지 72시간 안에, 전 세계 해상 보험 시장의 90%를 인수하는 12개 보험 클럽(P&I Club) 중 7곳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War Risk Insurance)을 취소했습니다. 전쟁 전 선박 보험가액의 0.125~0.25%이던 전쟁 위험 보험료는 5~10%까지 치솟았습니다. 1억 달러짜리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 척이 해협을 한 번 통과하는 데 드는 추가 보험료가 수백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노르웨이의 가드(Gard)와 스컬드(Skuld), 영국의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와 런던 P&I 클럽, 뉴욕의 아메리칸 클럽이 잇따라 전쟁 위험 보험 인수를 거부했습니다.

보험이 사라지면 배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선주가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도, 보험 없이는 항만에 입항할 수 없고, 화물을 인수받을 수도 없습니다. 전쟁 전 하루 평균 138척이 통과하던 해협의 교통량은 3월 5일까지 4척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95% 이상의 붕괴. 약 200척의 선박이 걸프 연안 해상에 발이 묶였고, 4만 명의 선원이 바다 위에 갇혔습니다.

이란은 거대한 해군 함대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기뢰를 대규모로 살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드론 몇 기와 VHF 무선 경고가 전부였습니다. 3주 동안 확인된 선박 공격은 약 20건이었고, 사망자는 6명이었습니다. 1980~88년 이란-이라크 탱커전쟁에서 양측이 합계 400척 이상의 선박을 타격한 것과 비교하면, 2026년의 캠페인은 훨씬 적은 무력 투입으로 훨씬 큰 전략적 효과를 거뒀습니다.

비결은 보험 시스템의 구조에 있었습니다. 해상 보험은 이진법으로 작동합니다. 있거나, 없거나. 보험이 있으면 배가 다니고, 없으면 멈춥니다. 이란은 이 이진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침몰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보험회사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들기만 하면 됐습니다. 유조선 스카이라이트(Skylight)호가 오만 카사브 인근에서 피격돼 인도 선원 2명이 사망하고, MKD VYOM호가 드론보트 공격으로 기관실에 화재가 발생한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물리적 봉쇄보다 경제적 봉쇄가 먼저 완성됐습니다.

여기서 2026년의 무기화는 1973년과 2022년 양쪽 모두와 결정적으로 갈라집니다.

1973년 사우디는 자기 땅에서 나오는 석유를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는 자기 가스관을 통해 흐르는 가스를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무기화의 대상은 '자국이 생산한 자원'이었습니다.

2026년 이란은 자국 석유를 무기로 쓰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오히려 전쟁 직전 2주간 자국 석유 수출을 평소의 3배로 늘려 현금을 미리 확보해뒀습니다. 이란이 무기로 삼은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이라크, 카타르가 생산한 석유와 가스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인 21마일의 수로 자체였습니다. IEA에 따르면, 2025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이었습니다. 전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약 3분의 1, 글로벌 LNG 교역의 상당 부분이 이 좁은 수로를 지나갔습니다.

이란은 이 수로를 막은 것이 아닙니다. 사유화했습니다. 해협을 완전히 봉쇄한 것이 아니라 '선별적 개방'을 선언했습니다. 미국 및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가 아닌 국가의 선박에 한해, 이란 영해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통해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가는 선박당 수백만 달러 단위의 통행료였습니다. 결제 통화는 미국 달러가 아니라 중국 위안화(Yuan)였습니다. 중국의 국제은행간 결제시스템(CIPS)을 통해 처리됐습니다.

IEA는 역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미국은 이 중 1억 7,200만 배럴을 자국 전략비축유에서 방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랑스 1,450만 배럴, 한국 2,246만 배럴, 독일 약 1,970만 배럴, 영국 1,350만 배럴. 2022년 러시아 침공 당시의 1억 8,270만 배럴을 두 배 이상 넘어서는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습니다. 4억 배럴은 글로벌 일일 생산량의 약 4일치, 걸프 지역 통과 물량의 약 16일치에 불과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하루에 통과시키던 2,000만 배럴의 공백을 4억 배럴로 메우려면 20일이면 바닥이 납니다. 비축유 방출 발표 당일, 브렌트유는 4% 상승한 배럴당 91달러대에서 거래됐습니다. ING의 전략가 프란체스코 페솔레는 비축유 방출을 "물총이지 바주카가 아니다"라고 평했습니다.

1973년 금수 때 시장에서 사라진 원유는 전 세계 공급의 약 7%였습니다. 2026년 호르무즈 봉쇄로 사라진 양은 약 20%였습니다. 규모만으로도 세 배. 사우디, 쿠웨이트, UAE가 보유한 약 400만 배럴/일의 여유 생산 능력은 존재했지만, 해협이 막힌 상태에서 그 석유를 바다로 내보낼 길이 없었습니다. 파이프라인 우회로(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 UAE 아부다비-푸자이라 파이프라인 등)의 합산 용량은 350~550만 배럴/일에 불과했습니다. 순 부족분은 하루 1,450~1,650만 배럴. 전략비축유로 메울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격차였습니다.

이것이 에너지 무기화의 3세대 모델입니다. 자원을 주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것도 아닙니다. 지리 자체를 무기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리를 통과하는 대가로 달러가 아닌 위안화를 요구함으로써, 반세기 동안 유지된 페트로달러 체제에 직접적인 균열을 내는 것입니다.

25.4 무기화된 에너지의 공통 패턴과 결정적 차이

세 번의 에너지 무기화를 나란히 놓으면, 반복되는 패턴이 보입니다. 동시에, 시대를 거듭하며 진화하는 궤적도 보입니다.

공통 패턴 하나. 구조적 취약성을 찌른다는 점입니다.

1973년의 아랍은 전후 자본주의의 '싼 석유 중독'을 찔렀습니다. 미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가 19%에 불과했지만, 7%의 공급 감소가 4배의 가격 폭등을 불렀습니다. 물리적 부족보다 심리적 공포가 더 빨리 움직였습니다. 2022년의 러시아는 독일의 '파이프라인 의존'을 찔렀습니다. 독일은 가스 소비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맡겨놓고, 원자력과 석탄이라는 대체 옵션을 스스로 닫아버린 상태였습니다. 2026년의 이란은 세계 경제가 21마일 폭의 수로 하나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수로의 안전이 런던 보험 시장의 판단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찔렀습니다.

세 경우 모두, 무기화의 대상은 적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단일 장애점(SPOF, Single Point of Failure)이었습니다. 군사적 열세를 에너지라는 비대칭 무기로 상쇄하는 구조입니다.

공통 패턴 둘. 피해가 의도한 표적을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1973년 금수의 표적은 미국과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러나 유가 4배 상승은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습니다. 2022년 가스 차단의 표적은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이 LNG를 싹쓸이하면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정전에 빠졌습니다. 2026년 호르무즈 봉쇄의 표적은 미국의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석유 수입의 98%를 중동에 의존하는 필리핀, 80% 이상을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에너지 무기는 정밀 유도가 불가능합니다. 한 곳을 겨냥하면, 세계 경제 전체가 흔들립니다.

공통 패턴 셋. 무기화는 방어 체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1973년의 충격은 IEA와 전략비축유 제도를 탄생시켰습니다. 비OPEC 지역(알래스카, 북해)의 석유 탐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붐을 이뤘습니다. 2022년의 충격은 유럽의 에너지 공급 다변화를 가속시켰습니다. 부유식 LNG 터미널이 긴급 건설됐고,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증했으며,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2년 만에 40%대에서 15%로 급락했습니다. 2026년의 충격이 어떤 방어 체계를 만들어낼지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제, 결정적 차이를 봅니다.

첫째, 무기화의 메커니즘이 진화했습니다.

1973년은 생산량 통제였습니다. 밸브를 잠가서 공급을 줄이는 1차원적 방식입니다. OAPEC 장관들이 회의실에 모여 "매달 5%씩 줄인다"고 결정하면, 그것이 곧 실행이었습니다. 2022년은 인프라 통제였습니다. 가스관이라는 물리적 구조물의 유량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기술적 핑계를 대면서 서서히 조이고, 정치적 조건을 내걸어 상대의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2026년은 시스템 조작이었습니다. 이란은 해협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봉쇄하는 데 필요한 해군력이 없었습니다. 미 해군이 이란의 군함 17척을 격파한 뒤, 페르시아만에 떠 있는 이란 함선은 한 척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해협은 닫혔습니다. 이란은 군사력이 아닌 '보험 시스템'이라는 글로벌 메커니즘을 조작해서 봉쇄를 달성했습니다. 드론 몇 기로 보험료를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시장이 알아서 해협을 닫아주는 구조입니다. 생산 통제에서, 인프라 통제를 거쳐, 시스템 조작으로. 무기화의 정교함이 한 단계씩 올라갔습니다.

둘째, 표적의 규모가 달라졌습니다.

1973년에 시장에서 사라진 석유는 전 세계 공급의 약 7%였습니다. 2022년에 유럽에서 사라진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는 전쟁 전 유럽 가스 공급의 약 40% 중 대부분이었지만, 글로벌 에너지 공급 전체로 보면 제한적인 비중이었습니다. 2026년에 호르무즈 봉쇄로 차단된 것은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였습니다. 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이 약 20%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1973년의 거의 3배. 석유뿐 아니라 카타르의 LNG(세계 최대 LNG 수출국 중 하나), 중동산 비료 원료, 나프타, 헬륨까지 한꺼번에 묶인 복합 에너지 차단이었습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대한 차이. 달러 패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1973년의 석유 금수는 역설적으로 페트로달러 체제를 탄생시켰습니다. 위기가 만든 기회를 미국이 잡았습니다. 사우디가 석유를 달러로만 팔고, 잉여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2022년의 가스 무기화는 달러 체제에 직접적인 도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가 루블화 결제를 요구했지만, 이는 국제 에너지 결제 체계를 흔들기보다 러시아의 화폐 방어 수단에 가까웠습니다.

2026년은 다릅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장악한 뒤, 그 통과료를 위안화로 받았습니다. 중국의 유조선은 위안화를 지불하고 해협을 통과해 이란산 원유를 실어갔습니다. 전쟁 전에도 이란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은 미국 제재를 피해 위안화 결제로 원유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이 흐름을 격류로 바꿔놓았습니다. 달러가 미치지 않는 해상 경제권이 호르무즈 해협 위에 물리적으로 출현한 것입니다.

1973년의 위기가 페트로달러를 만들었다면, 2026년의 위기는 페트로달러의 균열을 가시화시켰습니다.

에너지 무기화의 계보를 통째로 놓고 보면, 이런 궤적이 그려집니다. 자원 민족주의(1973년)에서 인프라 인질극(2022년)을 거쳐, 지리와 보험 시스템과 대안 결제망이 결합된 복합 무기 체계(2026년)로. 무기화의 수단은 정교해졌고, 피해의 범위는 넓어졌으며, 대응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그 사이 변하지 않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멈추면, 군사력의 크기와 관계없이 세계 질서의 규칙이 다시 쓰인다는 사실입니다. 2026년 3월,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이 페르시아만에 떠 있었습니다. 이란의 해군은 궤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호르무즈 해협은 닫혀 있었고, 동맹국의 유조선은 한 척도 통과시키지 못했으며, 미국 국내에서는 갤런당 7달러에 육박하는 기름값에 항의하는 'No Kings' 시위가 50개 주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21마일의 수로 앞에서 멈춰 선 풍경. 에너지 무기화의 반세기 진화가 도달한 장면입니다.



노르드스트림 가스관 경로도





제8부 트럼프의 전쟁, 미국의 분열




제26장 최후통첩의 연장

26.1 4월 6일 데드라인

2026년 3월 22일 토요일 밤 11시 44분(그리니치 표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마라라고의 자택에서 트루스 소셜에 대문자로 된 글을 올렸습니다.

"이란이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위협 없이 개방하지 않으면, 미국은 이란의 발전소를 타격하여 형체도 없이 날려버릴 것이다. 가장 큰 발전소부터 시작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22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이 2월 28일에 개시된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9,000개 이상의 이란 군사 표적을 타격했고, 9,000회 이상의 전투 비행을 수행했습니다. 이란의 방공망은 대부분 궤멸되었고, 해군 함정 140척 이상이 파괴되었습니다. 미 중부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은 호르무즈 해협이 "물리적으로는 열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물리적으로 열린 바다를 지나가려는 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는 해저에 기뢰를 깔았고, 경고를 무시하고 통과하려는 선박에 드론을 발사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태국 국적 화물선 마유리 나탈리호가 해협을 통과하다 드론에 피격되어 선미에 화재가 발생했고, 선원 세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오만 해군이 나머지 20명을 구조했습니다.

브렌트유는 전쟁 전 배럴당 73달러에서 3월 셋째 주에 119달러 50센트까지 치솟았습니다. 3월 한 달간 55% 이상 급등하여, 1988년 브렌트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래 최대의 월간 상승폭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내 휘발유 소매가는 갤런당 3달러 45센트를 넘어섰고, 아시아 전역에서는 에너지 배급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48시간의 카운트다운이 돌아갔습니다. 세계 주식 시장과 원유 선물 시장이 요동쳤습니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란의 발전소는 타격받지 않았습니다.

3월 23일 월요일, 데드라인 만료 몇 시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입장을 바꿨습니다. 트루스 소셜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매우 좋고 생산적인 대화"가 있었으며, 발전소 타격을 5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브렌트유는 그날 오전 배럴당 113달러에서 오후에 100달러 바로 위까지 떨어졌습니다. 10% 이상의 하락이었습니다. 다우존스 지수는 1.38% 반등했습니다.

이란 외무부는 즉각 부인했습니다. "테헤란과 워싱턴 사이에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이란 국영 언론은 트럼프가 "이란의 대응이 두려워서 데드라인에서 후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CBS 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이란 고위 외교관의 발언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중재자를 통해 미국 측의 제안을 전달받았고, 검토 중이다." 대화가 아니라 중재자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었던 것입니다.

5일의 유예 기간도 아무 결과 없이 흘러갔습니다. 3월 26일 목요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트루스 소셜에 올렸습니다.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에너지 시설 파괴 기한을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동부시간 오후 8시까지 10일간 연장합니다."

이것으로 최후통첩은 두 번 연장되었습니다. 48시간이 5일로, 5일이 10일로 늘어났습니다. 이란 정부는 이번에도 연장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중재자를 통한 메시지 교환 사실은 인정하되, 이것은 "협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4월 6일이라는 날짜가 설정되었지만, 그 날짜가 갖는 의미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군사적 최후통첩의 생명은 신뢰성(Credibility)입니다.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다음 마감 시간은 단순한 숫자로 전락합니다. 이란은 두 번의 연장을 자국의 비대칭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로 읽었습니다. 미국이 발전소를 폭격할 군사적 능력은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가 개전 첫날부터 이란 상공을 날았습니다. 하지만 폭격의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이샤크 다르 외무장관이 미국과 이란 사이의 백채널(Back-channel)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튀르키예 외무장관들도 중재에 참여했습니다. 미국의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이란 측에 15개 항목의 종전 제안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란은 이 제안을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자체적인 5개 항목의 역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4월 6일 데드라인은 군사적 결단의 날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전쟁의 확대와 국내 정치적 압박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는 달력 위의 표식이었습니다.

26.2 발전소, 유전, 하르그 섬, 담수화 시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발전소만이 아니었습니다. 3월 30일 월요일, 그는 트루스 소셜에 다시 올렸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즉각 영업을 재개하지 않고, 평화 협상이 조만간 타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란의 발전소, 유전, 하르그 섬, 그리고 아마도 모든 담수화 시설까지 완전히 파괴하겠다."

하르그 섬(Kharg Island). 이란 본토 해안에서 약 25킬로미터, 페르시아만 북쪽에 떠 있는 길이 8킬로미터의 산호섬입니다. 이란 원유 수출의 90%가 이 섬의 터미널을 통해 빠져나갑니다. 하루 적재 용량은 약 700만 배럴입니다. 이란 해안선의 대부분은 수심이 얕아서 대형 유조선(VLCC)이 접안할 수 없지만, 하르그 섬 주변은 자연적으로 수심이 깊습니다. 저장 탱크의 용량은 약 3,000만 배럴이고, 클플러(Kpler)사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쟁 직전에 약 1,800만 배럴의 원유가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3월 13일에 하르그 섬을 폭격한 바 있습니다. 미 중부사령부는 90개 이상의 군사 표적을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방공 시설, 해군 기지, 기뢰 저장 시설, 공항 관제탑, 헬기 격납고가 파괴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폭격을 "중동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격 작전 중 하나"라고 자평했습니다. 그러나 석유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품위를 위한 이유로" 유전 시설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다고 밝혔습니다.

품위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르그 섬의 석유 인프라를 파괴하면 이란의 하루 약 150만 배럴의 원유 수출이 즉각 중단됩니다.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는 데는 수년이 걸립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란에서 수출되는 원유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갑니다. 클플러 데이터에 의하면,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은 2026년 2월에 하루 157만 배럴, 3월에 147만 배럴이었습니다. 하르그 섬의 석유 인프라를 타격하는 것은 곧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펜타곤 내부에서는 하르그 섬을 폭격하는 시나리오와 점령하는 시나리오가 병행 검토되었습니다. 5,000명의 미 해병대원과 수병이 페르시아만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두 개의 해병 원정대(MEU)가 배치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의 석유를 가져가는 것이 선호하는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1988년에 그가 가디언에 한 발언이 38년 만에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겠다. 미군 한 명에게 총알 한 발이라도 쏘면 하르그 섬을 점령하겠다."

이란의 대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이란군 당국은 발전소나 에너지 시설이 공격받으면, 페르시아만 전역에서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 인프라를 합법적 표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미국이 "비밀리에 지상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란군은 미군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담수화 시설(Desalination plants).

이란은 이 단어를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걸프 아랍 국가들은 식수의 대부분을 해수담수화 시설에 의존합니다.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위에 세워진 이 국가들에서 담수화 시설이 멈추면 며칠 안에 수백만 명의 식수가 끊깁니다. 이란은 이미 전쟁 초기에 쿠웨이트 국제공항 인근,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미군 기지, 아랍에미리트의 알다프라 기지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한 바 있었습니다.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란 보건부는 미국의 발전소 타격 위협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전력과 담수 공급을 끊는 것은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죽이는 행위와 같다고. 국제 인권 전문가들과 유엔 관계자들도 민간 발전소에 대한 공격 위협이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재래식 버전이 완성되었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하르그 섬과 발전소를 파괴하면 이란 경제가 붕괴합니다. 이란이 걸프 국가들의 담수화 시설과 에너지 인프라를 파괴하면 중동 전체가 인도주의적 재앙에 빠집니다.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를 향해 치솟을 것이고,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됩니다. 맥쿼리그룹의 분석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6월 말까지 닫혀 있으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200달러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 휘발유 가격으로 갤런당 7달러에 해당한다고 추산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파괴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동맹국을 볼모로 잡을 능력이 있었습니다. 능력이 서로를 상쇄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실행되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26.3 백악관의 퇴로

4월 6일이 다가오면서, 백악관의 언어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3월 30일 월요일,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기자단 앞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봉쇄하더라도 전쟁 종료를 선언할 의향이 있습니까?" 레빗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을 시작한 것은 이란의 해군을 파괴하고, 미사일과 드론 인프라를 해체하고, 지역 내 대리 세력을 약화시키고,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은 대통령이 설정한 "핵심 목표(Core Objective)"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어떻게든(one way or another)" 군사 작전이 끝난 뒤에 열릴 것이라고. 이란이 국제법을 준수하여 자발적으로 열거나, 아니면 미국을 포함한 지역 국가들의 연합이 열게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더 노골적인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이 대부분 닫혀 있는 상태에서도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종료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협을 다시 여는 복잡한 작전은 나중으로 미루고, 동맹국들, 걸프 국가들과 나토(NATO)가 주도하게 하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 보도의 의미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미국은 이란의 군사력을 박살냈다고 선언하고, 핵 시설을 파괴했다고 선언하고, 그러고 나서 정작 전쟁의 방아쇠가 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은 이란 혁명수비대에게 남겨둔 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같은 날 미국 보수 매체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별도의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횡단하여 홍해와 지중해로 우회시키면 이란의 지리적 병목을 근본적으로 우회할 수 있다는 장기 구상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수년이 걸립니다. 당장 다음 달에 떨어지는 유가 폭탄에 대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백악관의 퇴로가 만들어지고 있는 동안, 현장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3월 30일, 쿠웨이트 국적의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두바이 해역에서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부상자는 없었고 원유 유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쿠웨이트석유공사가 발표했지만, 이란이 해협 바깥의 선박까지 공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미국이 핵심 목표에서 해협 개방을 빼기 시작한 이유는 복합적이었습니다.

해협을 물리적으로 여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미 해군은 이란의 기뢰 부설함 16척을 침몰시켰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바다에 뿌려진 기뢰를 제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었습니다. 미 해군 정보 평가에 따르면 해협 내에 최소 12개의 이란 기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란은 기뢰를 추가로 부설하겠다고 위협했고, 미국의 발전소 타격 시 해협뿐 아니라 "페르시아만 전체"에 기뢰를 깔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동맹국들은 호위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나토는 우리를 도울 수 있지만 지금까지 용기가 없었다." 프랑스, 독일, 영국은 군함 파견을 주저했습니다. 일본과 한국도 명확한 군사적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인도, 튀르키예는 오히려 이란과 개별적으로 통행 협상을 진행하여 자국 선박의 통과를 확보했습니다. 중국인 선원이 탄 파나마 국적 화물선이 3월 23일에 해협을 통과했다는 NPR의 보도가 이를 보여줍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이 유가를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유가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범위에 들어오자, 백악관은 무리하게 해협을 열기 위해 확전할 동기를 잃어갔습니다.

"해협 개방은 핵심 목표가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전쟁의 명분이 수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신호였습니다. 2월 28일에 전쟁을 시작할 때, 미국은 글로벌 항행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 뒤, 항행의 자유를 이란에게 넘겨둔 채 떠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26.4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고 끝내기는 어려운 법칙

시카고 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버트 페이프(Robert A. Pape) 교수는 1996년에 출간한 저서 <공습으로 이기기: 공중전력과 강압전(Bombing to Win: Air Power and Coercion in War)>에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100년에 걸친 40건 이상의 공중 작전을 분석한 결과, 공습만으로 적국의 정권 교체를 이끌어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2026년 3월, 그 패턴이 페르시아만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페이프 교수는 전쟁 발발 보름 뒤인 3월 15일, 자신의 서브스택 '에스컬레이션 트랩(Escalation Trap)'에 이렇게 썼습니다. "더 강한 국가가 전쟁을 시작하고, 더 강한 힘이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확전의 사다리를 계속 오를 때, 그 국가는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것을 '확전의 함정(Escalation Trap)'이라고 불렀습니다.

함정은 세 단계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국가는 제한된 무력을 사용하여 갈등을 통제하려 합니다. 정밀 타격으로 적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결의를 보여주고, 행동의 변화를 강제합니다. 확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대신 적응합니다. 전장을 확대하고, 동맹국을 표적으로 삼고, 새로운 영역에서 비용을 올립니다. 지역적 갈등이 지리적, 경제적으로 번져나갑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전쟁을 시작한 쪽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실패를 인정하거나, 더 확전하거나. 대개 지상군 투입이나 영토 점령으로 이어집니다. 전쟁의 비용과 기간이 급격히 늘어나고, 끝내기가 급격히 어려워지는 지점입니다.

페이프 교수는 3월 26일 PBS 아만포어 앤 컴퍼니에 출연하여 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공중 작전이 시민 봉기를 촉발하여 정권을 무너뜨린 사례가 역사상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단 한 건도 없습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약 40건의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0 대 40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개전 연설에서 이란 국민에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되찾으십시오. 그것은 당신들의 것입니다." 폭격이 이란 국민의 봉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한 달이 지났지만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페이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폭격은 적국 내부에 민족주의를 주입하고, 그 민족주의가 정치에 스며들면서 체제와 사회를 오히려 결속시킵니다. 외부의 공격에 맞서 더 과감한 위험을 감수하게 만듭니다.

이란의 전략은 페이프 교수가 말한 '수평적 확전(Horizontal Escalation)'의 교과서적 사례였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정면으로 맞붙지 않았습니다. 대신 갈등의 지리적, 경제적 범위를 넓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걸프 국가 에너지 인프라 타격. 이스라엘 본토 미사일 공격. 3월 마지막 주에는 예멘의 후티 반군까지 전쟁에 가담하여 이스라엘을 향해 순항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습니다. 밥엘만데브 해협(Bab al-Mandeb)까지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페이프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란의 공격을 죽어가는 정권의 발악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그것은 약한 교전국이 강한 교전국의 비용 계산을 바꾸기 위해, 갈등의 범위를 넓히고 기간을 늘리는 전략이라고. 그리고 이 전략은 과거에도 작동한 바 있다고. 베트남에서, 세르비아에서.

미국 국내에서 그 비용은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3월 28일 토요일,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No Kings(노 킹스)'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주최 측 추산으로 800만 명이 참여했고, 미국 역사상 단일 하루 시위로는 최대 규모라고 불렸습니다.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는 최소 5만 명이 모였습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무대에 서서 "미니애폴리스의 거리들(Streets of Minneapolis)"을 불렀습니다. 제인 폰다, 조안 바에즈,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연단에 올랐습니다.

샌더스 의원의 연설은 전쟁의 역사와 현재를 직선으로 연결했습니다. "미국 국민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들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란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숫자를 읊었습니다. 전쟁 시작 이후 미군 13명이 전사했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고. 이란에서는 민간인 약 2,000명이 사망했고 498개의 학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피격되었다고. 레바논에서는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1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고. 이 전쟁의 비용은 이미 1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군중은 "이 전쟁을 끝내라! 이 전쟁을 끝내라!"를 연호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워싱턴 D.C.의 메모리얼 브리지에서, 달라스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달라스에서는 시위대와 반대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시위대가 연방 구금시설 앞에서 연방 요원에게 돌과 병을 던져 9명이 체포되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 애비게일 잭슨은 시위가 열리기 전인 목요일에 이 행사를 "트럼프 분노 해소 세션(Trump Derangement Therapy Sessions)"이라고 불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당일과 다음 날까지 시위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3월 30일자 분석이 상황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페이프 교수와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가 공동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전쟁이 그 설계자들의 손을 벗어났다(The Iran War Has Escaped Its Authors)." 글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선택에 의한 전쟁 앞에는 특유의 자신감이 있다고. 폭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 타격은 날카롭고 목표는 제한적이며 확전은 통제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그리고 가장 위험한 순간은 첫 타격이 아니라, 겉보기에 성공한 뒤에 찾아온다고. 지도자들이 다음 확전도 이전과 같은 이유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미국은 버튼 하나로 B-2 폭격기를 출격시키고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란의 방공망과 공군력과 해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 21마일의 좁은 수로 하나를 열지 못한 채, 데드라인을 연장하고, 핵심 목표를 수정하고, 국내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데는 트루스 소셜의 글 한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전쟁을 끝내는 데는 아무도 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백악관





제27장 이란의 역제안

27.1 미국의 15개 항목 종전 제안

2026년 3월 25일 화요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외무부 청사에서 한 통의 문서가 테헤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 이샤크 다르(Ishaq Dar)의 손을 거친 이 문서는 미국이 작성한 15개 항목의 종전 제안서였습니다. A4 용지 몇 장에 불과한 이 문서가 도착하기까지, 전쟁은 이미 26일째 계속되고 있었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8달러를 오르내렸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은 전쟁 이전 하루 평균 138척에서 하루 1척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 제안서의 존재는 뉴욕타임스와 이스라엘 채널 12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파키스탄의 두 고위 관료가 AP 통신에 그 윤곽을 전했습니다. 제재 완화, 이란 핵 프로그램의 후퇴, 미사일 능력 제한,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이것이 15개 항목의 큰 뼈대였습니다.

항목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무게가 드러납니다. 이란은 핵무기를 영구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나탄즈(Natanz), 이스파한(Isfahan), 포르도(Fordow)의 핵 시설을 해체해야 합니다. 60% 이상 농축된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넘겨야 합니다. 탄도 미사일의 생산을 중단하고 그 능력을 방어용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 가자지구의 하마스(Hamas), 예멘의 후티 반군(Houthi)에 대한 자금과 무기 지원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즉각 개방하여 모든 상선의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해야 합니다. 미국은 이 조건들이 충족되면 핵 관련 경제 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부셰르(Bushehr) 원전을 포함한 민간 원자력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OAN(One America News)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제재 완화는 '단계적(Tiered)' 또는 '조건부(Phased)'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초기에는 인도적 채널과 동결 자산에 한정된 완화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경제 정상화는 핵과 미사일 관련 합의의 검증된 이행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집트 측 중재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란의 무장 세력 지원에 대한 제한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워싱턴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으로 이란의 공군력과 해군력, 방공망의 상당 부분을 파괴한 지금, 이란이 충분한 타격을 받아 전쟁 이전에는 거부했던 조건을 수용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Steve Witkoff)는 백악관 각료 회의에서 이 제안의 골격을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이란과 "15개 항목에서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지만, 이 주장은 곧바로 이란 측의 전면 부인에 부딪혔습니다.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G7 외무장관 회의를 위해 프랑스로 출발하면서, 나토(NATO)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전쟁이 아니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미국이 이 전쟁의 외교적 고립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15개 항목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미국이 이란에 요구했던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의 조건들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NPR의 다니엘 에스트린(Daniel Estrin) 기자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국이 이란에 제시했던 조건들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폐기, 미사일 프로그램 제한, 대리 세력 지원 중단. 이 세 가지는 이란이 2018년 이후 단 한 번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한 적 없는 항목들입니다. 이란은 탄도 미사일을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비대칭 방어의 축으로, 우라늄 농축을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 보장하는 주권적 권리로 규정해 왔습니다. PBS는 이란이 자국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과 역내 민병대 지원을 안보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어, 이 항목들은 "전쟁 이전 협상에서도 이란이 절대 수용 불가로 분류한 것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의 반응은 빠르고 단호했습니다. 국영 프레스 TV(Press TV)는 익명의 고위 정치안보 관료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관료는 미국의 요구를 "현 전장 상황에 비추어 과도하다(excessive)"고 규정했습니다. 프레스 TV는 강경파가 통제하는 매체입니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는 국영 TV 인터뷰에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참여한 적이 없으며, 어떤 형태의 협상에도 참여할 계획이 없다." 그는 미국이 여러 중재자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협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반관영 통신사 타스님(Tasnim)은 아라그치가 이란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분쟁의 영구적 종식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수주간의 미국-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파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거부의 뿌리는 깊었습니다. 이란이 미국의 외교를 불신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 서명하며 이란은 농축 우라늄의 97%를 해외로 반출하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 사찰을 수용했습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6월과 2026년 2월, 오만을 통한 물밑 핵 협상이 진전을 보이던 바로 그 시점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2월 28일의 공습은 이란과의 핵 프로그램 관련 간접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감행된 것이었습니다. 오만의 외교 당국은 전쟁 발발 직후 "합의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within reach)"고 밝혔습니다. 알자지라는 "이란은 미국에 대해 극도로 의심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두 차례에 걸쳐 고위급 외교 대화 중에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 군사 대변인 이브라힘 줄파가리(Ebrahim Zolfaghari)가 미국을 향해 던진 조롱은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스스로와 협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negotiating with yourselves)." 이 발언은 허세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전장 상황을 보지 못한 채 작성한 제안서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란의 거부에는 국내 정치의 무게도 실려 있었습니다. 2월 2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가 암살되었습니다. 그의 딸, 사위, 손자, 며느리도 함께 사망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Aziz Nasirzadeh), 혁명수비대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Mohammad Pakpour), 국방위원회 서기 알리 샴하니(Ali Shamkhani)를 포함한 고위 지도자들이 잇따라 살해되었습니다. 3월 8일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로 선출되었고, 혁명수비대와 정치 지도부가 그에게 충성을 서약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3월 하순 이란의 지도부가 "마비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통신 인프라 파괴가 편집증과 내부 권력 투쟁을 촉발했습니다. PBS는 이란 정부 내에서 "누가 협상의 권한을 갖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지도자를 계속 표적 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지도자 중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겠다고 자원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의 거부 발표에도 "대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생산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만약 이란과의 대화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대통령은 이란이 이전에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수준으로 타격할 것이다." 외교와 위협이 같은 문장 안에 공존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응은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더했습니다. NPR의 에스트린 기자는 텔아비브에서 보도하며, 이스라엘 군부가 종전 제안의 존재 자체에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이 전쟁의 종식을 협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스라엘 군은 기습을 당한 셈이었습니다. 에스트린은 취재원을 인용해 이스라엘 군이 "휴전이 선언될 경우에 대비해 향후 48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이란의 무기 공장을 타격하기 위해 작전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트럼프에게 전쟁을 계속하라고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15개 항목을 전달한 3월 25일, 같은 날 이란은 이스라엘과 걸프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쿠웨이트 국제공항에서는 이란의 공격으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테헤란에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미국은 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의 병력 2,000명에서 3,000명에게 중동행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종전 제안이 전달되는 동안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세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외교의 시계, 전쟁의 시계, 그리고 유가의 시계.

27.2 이란의 새 요구

이란은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인 3월 25일, 프레스 TV를 통해 자신들의 5개 항목 역제안(Counter-proposal)을 발표했습니다. 이란 주 남아프리카 대사관은 소셜 미디어에 이 5개 조건의 전문을 공개했고, 전 세계 주요 통신사가 이를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란 측은 이 역제안이 지난달 제네바에서 진행된 2차 협상 때 제시한 조건과는 별개라고 명시했습니다.

다섯 가지 조건은 이렇습니다.

첫째, 적의 침략 행위와 암살의 즉각적 종결(End to aggression and assassinations by the enemy). '암살'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포함된 것은 의도적입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와 국방장관, 혁명수비대 사령관, 핵 과학자들이 표적 살해된 사실을 이 조건의 첫머리에 놓았습니다. PBS는 "이란 정부 내에서 누가 협상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자국 지도자를 계속 죽이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누가 기꺼이 협상에 나서겠는지가 불분명하다"고 보도했습니다. 협상 자체가 목숨을 건 행위인 상황에서, '암살 중단'이 첫 번째 조건으로 나온 것은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둘째,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메커니즘의 수립(Concrete guarantees preventing the recurrence of war, with clear determination). 미국이 2015년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협상 진행 중에 두 차례나 이란을 공격한 전례를 감안하면, 이란이 미국 대통령의 서명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논리적입니다. OAN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이 항목에서 "이란 영토에 대한 어떠한 미래의 침략 행위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속력 있는 메커니즘"을 요구했습니다.

셋째,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 보장(Guaranteed payment of war damages and reparations). 유엔 인권최고대표 볼커 튀르크(Volker Turk)는 이 전쟁이 아랍 지역에만 약 63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 분쟁에서의 많은 공습이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는 국제법 하에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기반 인권단체 HRANA는 전쟁 개시 이후 이란에서만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1,500명 이상이 민간인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란 본토의 역사 유적지 120곳 이상이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넷째, 모든 저항 그룹을 포함한 전 전선에서의 포괄적 전쟁 종식(Comprehensive end to the war across all fronts, including against all resistance groups). 이 조건이 미국에 가장 큰 부담을 지운 항목입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공격하는 것까지 중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통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이란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레바논 남부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레바논에서만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고, 이 가운데 121명은 어린이였습니다. 레바논 인구의 5분의 1이 이미 집을 떠났습니다. 에스트린 기자는 취재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전쟁이 끝나는 즉시 레바논 남부에 더 많은 지상군을 투입하여 영토를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행사(Iran's exercise of sovereignty over the Strait of Hormuz). 이것이 전 세계를 경악시킨 조건입니다. PBS는 "배상금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지속적인 장악력을 유지하겠다는 요구는 백악관이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를 이해해야 이 요구의 의미가 보입니다. 이 해협은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38조에 따라 모든 국가의 선박이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통과 통행권(Right of Transit Passage)'이 보장된 국제 수역입니다. 2026년 3월 11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817호는 이란의 해협 봉쇄를 국제법 위반이자 국제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상선의 항행 자유를 재확인했습니다. 이란과 오만이 해협 양쪽에 영토를 갖고 있지만, 좁은 항로 자체는 국제 해양법에 의해 보호됩니다. 이란은 이 협약에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의 요구는 이 국제법적 질서를 정면으로 뒤집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란은 이미 이 요구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혁명수비대는 라라크 섬(Larak Island) 북쪽에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 '통행료 검문소(Tollbooth)'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USNI 뉴스(US Naval Institute News)에 따르면, 이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선박의 소유권, 화물, 목적지에 관한 상세 정보를 혁명수비대에 사전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Lloyd's List)는 3월 13일 이후 이 경로를 이용한 선박이 26척이라고 집계했습니다. 해양 리스크 분석가 타이머 라아난(Timer Raanan)은 "이것은 매우 전례 없는 일이다. 이란이 해협 통행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전개"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란의 선별적 개방 전략은 체계적이었습니다. 3월 26일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중국, 러시아, 인도, 이라크, 파키스탄 5개국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선박에도 통과가 허용되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아라그치가 교도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해협은 우리의 적에게 속하는 선박에 대해서만 닫혀 있다. 다른 나라 선박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이 두 나라의 동맹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선박은 통과가 금지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는 이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란은 해협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으로 인식되는 국가의 선박에 대해서는 이란 당국과의 조율과 대가 지불을 조건으로 제한적이고 감독된 통과를 허용하면서, 다른 교통은 억제하거나 지연시키거나 피해를 입히는 선별적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것이 이란의 5개 조건 중 마지막 항목인 '호르무즈 해협 주권 행사'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서류 위의 요구가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실행 중인 현실의 법제화 시도였습니다. 이란 의회는 이 통행료 징수를 국내법으로 공식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1956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것처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구적 통제권을 기정사실로 만들려 했습니다. 이란 의회의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한 첫 공개 충성 서약과 통행료 법안은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란의 5개 조건을 미국의 15개 항목과 나란히 놓으면, 두 문서 사이의 거리가 보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무장 해제를 요구했고, 이란은 미국의 패권 구조 자체를 흔들겠다고 응수했습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 개방을 원했고, 이란은 해협에 대한 주권 인정을 요구했습니다. 어느 한쪽이 한 발이라도 물러서야 교집합이 생기는 구조인데, 양쪽 모두 물러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란 뭄바이 총영사관은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란은 스스로가 정한 시점에, 스스로가 설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전쟁을 끝낼 것이다. 트럼프가 전쟁 종식의 시점을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스 TV가 인용한 익명의 관료는 같은 맥락에서 선언했습니다. 이란은 역내에서 "강한 타격(heavy blows)"을 계속할 것이라고.

27.3 파키스탄의 중재

2026년 3월 29일 일요일, 이슬라마바드에 네 나라의 외무장관이 모였습니다. 파키스탄의 이샤크 다르, 튀르키예의 하칸 피단(Hakan Fidan),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빈 파르한(Faisal bin Farhan), 이집트의 바드르 압델아티(Badr Abdelatty). 원래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 회담은,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심 역할을 맡게 되면서 이슬라마바드로 옮겨졌습니다.

이 4자 회담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테이블에 앉지 않은 두 사람을 먼저 봐야 합니다. 미국과 이란입니다. 전쟁의 당사자인 두 나라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회담이 네 나라 외무장관만으로 진행되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알자지라(Al Jazeera) 방송은 이 회담의 목적이 "휴전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내 입장을 조율하고 미국과 이란 간 직접 대화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외교관들은 이 회담이 "양측이 양보한다는 인상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 엄호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48시간에서 72시간 내에 이 외교적 시도가 실질적 회담으로 이어질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파키스탄이 이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된 경위에는 여러 겹의 맥락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900킬로미터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이란 다음으로 큰 시아파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작년 군사 협력 협정을 체결한 수니파 다수 국가이며, 이슬람권 유일의 핵보유국이기도 합니다. 알자지라의 오사마 빈 자바이드(Osama Bin Javaid) 기자는 파키스탄의 독특한 위치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파키스탄에는 미국 군사 기지가 없으므로 이란이 파키스탄을 미국에 의해 이용당하는 나라로 비난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행위자들 사이에서 관계를 복원하려 노력해 온 국가다."

미국과의 관계도 독특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 아심 무니르(Asim Munir) 원수를 두 차례 백악관에 초대했고, 공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원수(my favourite field marshal)"라고 불렀습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의 '평화 위원회(Board of Peace)'에도 참여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정치 분석가 자히드 후세인(Zahid Hussain)은 이슬라마바드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파키스탄은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해결책을 강제할 레버리지가 없다." 파키스탄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 상황을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말이 물을 마실지는 전적으로 말에게 달려 있다(We can take the horse to the water; whether the horse drinks or not is entirely up to them)." 후세인은 덧붙였습니다. "만약 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전쟁이 끝난다면 이슬라마바드의 외교적 위상은 크게 올라가겠지만, 전쟁이 계속된다면 파키스탄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파키스탄이 이 역할을 자청한 이유는 이타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슬라마바드 소재 안보 분석가 사이에드 모하마드 알리(Syed Mohammad Ali)는 이 전쟁이 "파키스탄 역사상 가장 큰 경제 및 에너지 안보 도전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500만 명의 파키스탄 노동자가 걸프 아랍 국가들에서 일하며, 이들이 보내는 송금액은 파키스탄 전체 수출액과 맞먹습니다. 중동의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 구조 때문에, 전쟁 발발 이후 파키스탄 국내 유가는 이미 약 20% 올랐습니다.

회담에 앞서 파키스탄의 샤바즈 샤리프(Shehbaz Sharif) 총리는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대통령과 90분간의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5일 만에 두 번째 통화였습니다. 샤리프 총리는 미국, 걸프 국가들, 이슬람권 국가들을 상대로 한 외교적 접촉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페제시키안은 이스라엘이 분쟁을 역내 다른 국가로 확대하려 한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파키스탄의 중재 노력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외교적 성과도 하나 있었습니다. 이슬라마바드 회담을 전후하여, 파키스탄은 이란으로부터 자국 국적 선박 20척에 대해 하루 2척씩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가받았습니다. 블룸버그는 파키스탄 국적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카라치(Karachi)'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여 걸프 밖으로 빠져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알자지라의 빈 자바이드 기자는 이 조치가 "미국에게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테이블에 앉은 이유는 파키스탄과 달랐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매일 수백만 배럴의 석유 수출이 막힌 상태였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 튀르크는 이란의 공격이 걸프 아랍 국가들의 에너지와 수자원 인프라를 타격하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UAE에서만 8명이 사망했고, 쿠웨이트와 바레인에서도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집트의 절박함은 또 다른 경로를 따랐습니다. 이란과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위협으로 수에즈 운하 통행량이 감소하면서, 이집트 경제의 생명줄인 운하 통행료 수입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외무장관 압델아티는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 대화(Direct dialogue)"를 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이란 관련 회의가 사태 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카이로에서도 개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튀르키예의 하칸 피단 외무장관은 나토(NATO) 회원국 대표이면서 동시에 이란의 이웃 국가 대표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회담에 참여했습니다.

중국은 테이블에 앉지 않았지만, 무대 뒤에서 움직였습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Wang Yi)는 파키스탄의 이샤크 다르에게 전화를 걸어 이슬라마바드의 중재 노력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다르가 3월 31일 왕이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란에게 파키스탄의 중재를 수용하라고 뒤에서 밀어준 것은 베이징이었습니다. 파키스탄 고위 외교관은 알자지라에 "중국은 매우 지지적(very supportive)"이라고 전했습니다.

이틀간의 회담이 끝난 뒤 다르는 핵심 발표를 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미국 양측이 파키스탄에 대해 신뢰를 표명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파키스탄은 앞으로 며칠 내에 양측 간의 의미 있는 대화를 이슬라마바드에서 주최하고 촉진할 영광스러운 준비가 되어 있다." 로이터는 회담의 초기 논의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찾는 데 집중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의 접촉이 유지된다면 미 국무장관 루비오와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 간의 회담이 며칠 내에 파키스탄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란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이란 국회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Qalibaf)는 텔레그램에 글을 올려 파키스탄에서의 회담을 미국의 지상 침공을 위한 연막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적은 겉으로는 협상을 신호하면서 은밀히 지상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우리 병력은 미국 지상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의 응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결코 굴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같은 날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휘관 및 정치 관료들의 거주지"를 역내에서 공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전 정보부 장관이자 외교 분석가인 무샤히드 후세인 사예드(Mushahid Hussain Sayed) 상원의원은 이슬라마바드 회담의 의의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것은 무슬림 세계 최초의 제도적 대화 이니셔티브이며,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이란의 이웃국이자 각각 핵보유국과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이고, 미국과 이란 양쪽이 파키스탄을 소통의 다리로 신뢰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도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알자지라의 카말 하이더(Kamal Hyder) 기자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슬라마바드의 모임은 유일하게 가능한 옵션인 외교와 대화를 포함하는 중대한 프로세스의 시작이다. 그러나 확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려운 과정이며, 모든 시선이 이슬라마바드에 쏠려 있다. 여기서 어떤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국이 이 전쟁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것인지가 관건이다."

4자 회담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가장 조직화된 역내 외교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당사자가 테이블에 앉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국들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뛰어다녀도 양측의 신뢰 부재를 메울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파키스탄은 말을 물가에 데려갔지만, 말은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27.4 협상인가, 시간벌기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시작된 일련의 발표는, 이 전쟁의 외교사에서 가장 기이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습니다.

3월 22일 토요일,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이란의 전력망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48시간 내에 열리지 않으면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겠다며, "가장 큰 것부터 시작하겠다(STARTING WITH THE BIGGEST ONE FIRST)"고 대문자로 썼습니다.

48시간이 지났습니다. 3월 24일 월요일, 트럼프는 돌연 태도를 바꿨습니다. "이란과 매우 좋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에너지 시설 타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5일의 유예 기간이 3월 28일 금요일에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3월 26일 목요일, 트럼프는 각료 회의를 마친 뒤 다시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에너지 시설 파괴 유예 기간을 2026년 4월 6일 월요일 오후 8시(동부 시간)까지 10일 연장한다. 대화는 진행 중이며, 가짜 뉴스 매체와 그 외의 잘못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글은 그날 주식 시장이 마감된 뒤 약 10분 만에 게시되었습니다. S&P 500 지수가 2026년 들어 최대 일일 낙폭인 1.74%를 기록하고, 브렌트유가 5.6% 이상 올라 배럴당 108.01달러에 마감한 직후였습니다.

트럼프는 폭스 뉴스에 이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아주 정중하게 요청했다. 7일을 요청했는데, 내가 10일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에게 선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열린 각료 회의에서 트럼프는 이란의 석유를 빼앗는 것이 "하나의 옵션"이라고 말한 뒤 "그건 얘기하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거래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란이 자신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보기 좋지 않을 것(won't be pretty)"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란의 반응은 트럼프의 서술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아라그치는 미국과 어떤 직접 또는 간접 협상도 이루어진 바 없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이란의 고위 관료는 드롭 사이트(Drop Site) 뉴스의 제러미 스카힐(Jeremy Scahill) 기자에게 "어떠한 협상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직접 확인해 주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재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유예를 연장했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란은 미국이 에너지 시설을 타격할 경우 걸프 지역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자체 공격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혁명수비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적국의 동맹국 및 지지자들의 항구를 오가는 모든 선박"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양쪽 모두 시간이 필요했고, 양쪽 모두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쪽의 시간 필요를 먼저 보겠습니다.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에서 "대화가 순조롭다"고 쓰는 동안, 미 국방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82공수사단 즉응여단(Immediate Response Force)의 병력이 중동행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부대는 18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투입할 수 있는 미 육군 최정예 공수 부대입니다. 사단장 브랜든 테그마이어(Brandon Tegtmeier) 소장과 사단 참모진이 전진 지휘소 설치를 위해 함께 이동했습니다. 아미 타임스(Army Times)는 3월 30일 82공수사단 병력이 중동에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사세보(Sasebo)를 출발한 강습상륙함 USS 트리폴리(USS Tripoli)는 약 2,500명의 해병대원과 수병을 태우고 3월 27일 중동에 도착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를 출발한 USS 복서(USS Boxer) 강습단은 2,200명의 해병대원과 함께 4월 중순까지 전투 지역에 도달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미 중동에 배치된 미군 5만 명에 이 병력이 더해지면 7,000명의 지상전 가능 병력이 이란 인근에 집결하는 것입니다.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의 알렉스 플리차스(Alex Plitsas) 분석관은 "이 규모의 병력은 대규모 침공이나 도시 점령에는 충분하지 않다. 제한적이고 표적화된 작전만 가능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스위크는 트럼프가 "언제든지 빼앗을 수 있다(can take out at any time)"고 언급한 하르그 섬(Kharg Island)이 핵심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처리하는 이 작은 섬은 본토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미 공군은 이미 전쟁 초기에 하르그 섬의 석유 인프라는 온전히 남겨둔 채 군사 목표만을 타격한 바 있습니다.

국무장관 루비오는 의회 브리핑에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이란 내부의 핵물질을 물리적으로 확보해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이 가서 가져와야 한다(People are going to have to go and get it)." 이 발언은 에너지 시설 확보를 넘어, 이란의 핵 물질 제거라는 새로운 지상전 목표를 시사한 것이었습니다.

이란 쪽의 시간 필요는 더 구조적이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상태로 매일 세계 석유 시장에서 전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약 20%를 사라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은 올라가고, 가솔린 가격은 뛰고, 트럼프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악화됩니다. 3월 28일까지 50개 주에서 3,300건의 반전 시위가 벌어졌고, 트럼프의 지지율은 36%까지 떨어졌습니다. NPR/PBS/Marist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6%가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이란 의회는 이 지연되는 시간을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국내법으로 공식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로이드 리스트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선박에 대한 심사 및 등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통행료 체계가 법제화되면, 설사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란은 "국내법에 따라 통행료를 징수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됩니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카야 칼라스(Kaja Kallas)는 G7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 전쟁들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국방 수장은 이란의 전쟁 수행 뒤에서 "푸틴의 보이지 않는 손(hidden hand of Putin)"을 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가 전쟁 이전에 이란에 정보와 훈련을 제공했다는 것이 영국 정보기관의 판단이었습니다.

이란 지상군 사령관 알리 자한샤히(Ali Jahanshahi) 준장은 국경 지역의 부대를 시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 영토의 모든 지점이 우리 병력의 경계와 준비 태세 아래 보호되고 있다. 국경을 따라 모든 적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며, 어떤 시나리오에도 대비되어 있다." 국회의장 갈리바프의 경고는 더 직설적이었습니다. "우리 병력은 미국 지상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들을 불태울 것이다."

프레스 TV가 인용한 이란 고위 관료의 발언이 이 전쟁의 비대칭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이란은 스스로가 결정할 때, 스스로의 조건이 충족될 때 전쟁을 끝낼 것이다(Iran will end the war when it decides to do so and when its own conditions are met)."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물리적 급소를 장악한 방어자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공격자를 상대로 전쟁의 시간표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 전쟁의 역학에서 가장 뚜렷한 비대칭은, 시간의 비용이 양쪽에 다르게 부과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게 시간의 비용은 경제적입니다.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주식 시장 하락, 지지율 하락. 선거 주기에 민감한 민주주의 국가에 치명적인 비용입니다. 이란에게 시간의 비용은 물리적입니다. 폭격, 인프라 파괴, 인명 손실. 잔혹하지만, 이란의 정치 체제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비용만큼 즉각적인 정권 위기를 초래하지 않습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트럼프의 발전소 폭격 위협을 "전쟁 범죄 실행 위협"이라고 규탄했고, 민간 인프라 파괴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 범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란은 미국이 이 법적 부담 때문에 실제로는 발전소를 때리지 못할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4월 6일이라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설정한 세 번째 데드라인입니다. 악시오스(Axios)는 펜타곤이 "최종 일격(Final blow)"을 위한 군사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상군 투입과 대규모 폭격 작전이 포함된 계획이었습니다. 이란 지상군 사령관은 "변치 않는 저항"을 예고했습니다. 미국의 전쟁 지출은 한 달 만에 18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미군 사망자는 15명, 부상자는 303명이었습니다. 이란에서는 공식 집계로 1,937명, 인권단체 추산으로는 6,5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4월 6일은 평화를 향한 날짜가 아니었습니다. 양쪽 모두가 다음의 확전을 준비하며 숨을 고르는 폭풍 전야의 타이머였습니다. 트럼프는 전쟁을 시작하는 버튼을 눌렀지만, 전쟁을 끝내는 열쇠는 글로벌 경제의 목줄을 쥔 테헤란의 손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대칭 전쟁의 가장 잔혹한 역설입니다. 폭탄 9,000발을 쏟아부은 쪽이 시간표를 통제하지 못하고, 폭탄을 맞은 쪽이 시간표를 결정한다는 것.



테헤란 거리의 이란 국기





제28장 No Kings

28.1 3월 28일, 50개 주 3,300건의 시위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오전 10시, 워싱턴 D.C. 알링턴의 메모리얼 브리지 위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링컨 기념관을 향해 걸어가는 행렬이었습니다. 손에는 피켓이 들려 있었습니다. "왕관을 벗어라, 광대야(Put Down the Crown, Clown)." 누군가는 종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북을 쳤습니다. 기저귀를 찬 트럼프 모양의 거대한 풍선이 군중 위에서 흔들거렸습니다.

같은 시각, 6,000킬로미터 떨어진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도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조지아주 클라크스빌의 작은 광장에서도, 텍사스주 댈러스의 도심에서도, 알래스카의 코츠뷰 마을에서도. 미국의 모든 50개 주, 3,300곳이 넘는 장소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주최 측인 인디비저블(Indivisible)과 무브온(MoveOn)의 집계에 따르면 참가 인원은 800만에서 900만 명. 미국 역사상 하루 동안 벌어진 시위로는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노 킹스(No Kings)." 시위의 이름이었습니다. 왕은 필요 없다.

이 구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25년 6월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주의적 행보에 반발한 첫 번째 노 킹스 시위에 약 500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10월 두 번째 시위에는 700만 명. 세 번째인 3월 28일은 그 모든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시위가 세 차례 반복될 때마다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 자체가, 분노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3월 28일의 시위를 이전 두 차례와 근본적으로 구분짓는 지표가 있었습니다. 지리입니다. 전체 시위 예약(RSVP)의 3분의 2, 66%가 대도시 바깥에서 접수되었습니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전통적인 진보 도시가 아니라, 아이다호, 와이오밍, 몬태나, 유타 같은 공화당의 텃밭에서 두 자릿수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플로리다주 레이클랜드에서 2,000명이 모였습니다. 레이클랜드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21%포인트 차이로 이긴 카운티 안에 있습니다. 사우스다코타와 루이지애나에서도 시위가 열렸습니다. 존 튠 상원의원의 지역구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지역구입니다. 플로리다주 더빌리지스에서는 은퇴자 커뮤니티 주민 6,750명이 두 곳에 나뉘어 모였습니다. 트럼프의 저택 마러라고가 있는 팜비치 카운티에서는 민주당 후보 에밀리 그레고리가 며칠 전 주 의회 특별선거에서 공화당 의석을 뒤집은 직후였습니다.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오로 밸리까지는 약 13킬로미터입니다. 이 거리를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인간 띠를 만들었습니다. 주최 측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보이는 회랑(Visible corridor of democracy)"이라 불렀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벅스 카운티, 조지아의 이스트 콥 같은 중간선거 핵심 경합 지역에서 참가 예약이 폭주했습니다.

800만 명이 하나의 이슈로 모인 것은 아닙니다.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ICE(이민세관집행국) 요원들이 미네소타에서 미국 시민 두 명을 사살한 사건에 분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전쟁 전 갤런당 2.97달러에서 한 달 만에 4달러를 돌파한 데 대한 분노도 있었습니다. 억만장자 감세, 트랜스젠더 권리 후퇴, 에프스타인 파일 은폐. 시위 현장의 피켓에는 이 모든 불만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ICE를 몰아내라." "석유를 위해 피를 흘리지 말라." "억만장자 대신 노동자를 보호하라." "우리 동네에서 ICE를 빼라." 하나의 슬로건 아래 서로 다른 분노들이 합류한 것입니다. "왕은 없다. 왕좌도, 왕관도."

미국 바깥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습니다. 런던,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 로마, 베를린, 코스타리카, 호주, 일본.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시위가 있었습니다. 해외 거주 미국인 단체인 민주당 해외지부(Democrats Abroad)가 조직한 곳도 있었고, 현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한 곳도 있었습니다.

백악관의 반응은 간결했습니다. 대변인 애비게일 잭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정신착란 치료 세션(Trump Derangement Therapy Sessions)." 이 시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취재비를 받고 나온 기자들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뉴욕시에서는 35만 명 이상이 센트럴파크 웨스트에서 타임스스퀘어까지 행진했습니다. NYPD는 시위 관련 체포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수만 명이 도심을 행진한 뒤, 밤에 일부가 연방 구금시설 앞에서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최루가스가 발사되었고 9명이 체포되었습니다. 댈러스에서는 노 킹스 행진대와 반대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반대 시위대 중에는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사면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포틀랜드에서는 수천 명이 북소리에 맞춰 행진했습니다. 경찰은 ICE 시설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미리 발표했습니다. 볼티모어에서는 시청에서 ICE 현장 사무소가 있는 팰론 연방 빌딩까지 행진이 이어졌습니다. 메릴랜드주 헤이거스타운에서는 2,500명에서 3,000명이 모였습니다. 이 도시에서 수 마일 떨어진 윌리엄스포트에는 ICE 수용소로 사용되는 7만 1,000제곱미터 규모의 창고가 있었습니다. 저먼타운에서 온 재키 페어브러더는 원래 워싱턴 D.C. 시위에 갈 계획이었지만, SNS에서 헤이거스타운 ICE 반대 집회를 보고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시위 이름이 달랐습니다. "노 딕테이터스(No Dictators)." 하와이 왕국의 역사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습니다. 호놀룰루 주 의사당 앞에 약 1만 명이 모였습니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는 미키 셰릴 주지사가 프린스턴 전투 기념비 옆에서 연설했습니다. 1777년 조지 워싱턴이 영국 왕 조지 3세의 군대를 물리친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포트마이어스에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에 나오는 붉은 망토와 흰색 보닛 차림의 시위자들이 행렬의 선두에 섰습니다. 내슈빌에서도 같은 복장의 시위자들이 존 시겐탈러 보행자 다리를 건너 퍼블릭 스퀘어 파크까지 행진했습니다. 오스틴에서는 왕관 모양의 얼음 조각상이 시위 현장에 놓였습니다. 하루 종일 녹아내리도록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LA의 79세 주디 버샥은 암 투병 중이었고, 보행기 없이는 걸을 수 없었습니다. 도심 행진에 참가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기 아파트 앞 모퉁이에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혼자 서 있었습니다. "거기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없으니까, 혼자서라도 하는 거예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규모 시위에 참가한 것은 2017년 여성 행진이었습니다. 그때를 "종교적 체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위가 벌어진 3,300개 지점. 미국 전체 카운티 수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이 숫자가 뜻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분노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진보적 거품 속에 가두어져 있지 않다는 것. 트럼프를 지지했거나 묵인했던 교외 지역의 중산층, 은퇴자 커뮤니티의 노인들, 농촌 지역의 트럭 운전사들까지 등을 돌렸다는 것. 전쟁과 유가와 생활비가 이념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것.

28.2 트럼프 지지율 36%

800만 명이 거리에서 만든 소리보다 백악관을 더 강하게 흔든 것은 숫자였습니다.

2026년 3월 말, 여러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가 쏟아졌습니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UMass Amherst)가 3월 20일부터 25일까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3%였습니다. 2025년 7월의 38%에서 5%포인트, 2025년 4월의 44%에서 11%포인트 떨어진 수치. 재임 이후 최저였습니다. 퀴니피악대학교(Quinnipiac University)의 3월 초 조사에서는 37% 지지에 57% 반대, 순지지율(Net Approval) 마이너스 20. 스트렝스인넘버스/베라사이트(Strength In Numbers/Verasight) 조사에서도 37% 지지에 60% 반대. NBC 뉴스 조사에서는 44%로 나타났지만, 이것 역시 1년 전보다 3%포인트 하락한 수치였습니다. 어떤 조사를 보든 방향은 같았습니다. 아래로.

UMass 조사의 디렉터 타티시 은테타(Tatishe Nteta)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치솟는 물가, 주식 시장의 급락, 중동에서의 인기 없는 전쟁, 정부 셧다운으로 인한 공항의 긴 줄, 그리고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까지. 지지율이 타격을 받은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그가 "백악관에 심각한 우려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가져다 준 핵심 집단들, 남성, 노동자 계층,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도층, 무당파에서 지지율이 2025년 4월 대비 13~20%포인트씩 빠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하락의 동력은 이란 전쟁과 유가였습니다. 실버불렛인(Silver Bulletin)의 네이트 실버는 3월 26일 분석에서, 트럼프의 인기 하락이 "거의 확실하게" 휘발유 가격 상승과 연관되어 있다고 썼습니다. 경제 운영에 대한 순지지율은 마이너스 21.3, 인플레이션 대응에 대한 순지지율은 마이너스 32.7. 둘 다 2기 재임 이후 최저치 근처였습니다. 야후/유거브(Yahoo/YouGov)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가 트럼프의 휘발유 가격 대응에 반대했습니다. 이 매체는 "코로나19 팬데믹 1기 때를 포함해, 트럼프에 대한 경제 지지율이 이보다 낮았던 적이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지지율은 더 참담했습니다. AP-NORC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9%가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이 과도하다고 답했습니다. 로이터/입소스(Reuters/Ipsos) 조사에서는 이란 공습을 지지하는 비율이 29%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의 3분의 2, 공화당 지지자의 44%를 포함하여, 휘발유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지상군 투입을 지지하는 비율은 7%였습니다.

미국 정치사에는 '결집 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하면 초기에는 지지율이 급등하는 현상입니다. 2001년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전을 개시한 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이 90%를 넘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2026년 이란 전쟁에서는 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쟁 개시 직후부터 반대가 지지를 앞질렀습니다. 실버불렛인이 3월 25일 개시한 이란 전쟁 전용 지지율 추적에 따르면, 전쟁 순지지율은 마이너스 14.3.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결집이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명분의 부재입니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서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하며 평화 후보로 표를 모았습니다. 그가 의회의 승인 없이 이란 폭격을 개시하자, 지지층 내부에서 배신감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트렝스인넘버스/베라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트럼프 투표자의 13%가 투표를 후회한다고 답했습니다. 해리스 투표자의 후회 비율의 두 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유소의 전광판이었습니다. 전쟁 전 갤런당 2.97달러이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3월 28일 시위 당일 4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한 달 만에 1달러 넘게 오른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5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디젤 가격의 주간 상승폭은 텍사스에서 갤런당 1.12달러, 노스캐롤라이나 1.11달러, 조지아 1.08달러. 모두 중간선거 핵심 경합 주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론조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론조사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이 말이 나온 시점에 그의 물가 대응 순지지율은 마이너스 39였습니다. 그가 임기 내내 가장 자주 자랑하던 국경 안보 지지율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였습니다.

33%에서 37% 사이. 조사 기관에 따라 숫자는 달랐지만, 모든 여론조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를 지탱하던 바닥이 빠지고 있다는 것.

28.3 미네소타의 밤

3,300개의 시위 중에서 주최 측이 "전국의 본무대(flagship event)"로 지정한 곳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2025년 12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지역에 국토안보부(DHS) 산하 연방 요원 3,000명을 투입하는 '메트로 서지 작전(Operation Metro Surge)'을 개시했습니다. 불법 이민자 단속이 명분이었습니다. 무장한 연방 요원들이 주택가에 들이닥쳤고, 학교 앞에서 부모를 체포했으며, 네일 살롱 주인을 끌고 갔습니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요원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1월, 두 명의 미국 시민이 연방 요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르네 구드(Renee Good). 세 아이의 어머니.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 재향군인 병원 간호사. ICE 요원에게 등을 맞고, 길 위에서 쓰러져, 아무도 조사하지 않은 채 죽었습니다. 미네소타 주민들은 혹한 속에서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맞으며 거리를 지켰습니다. 수만 명이 참여한 저항은 결국 작전의 축소를 이끌어냈습니다. 2월에 메트로 서지 작전은 사실상 종료되었습니다.

3월 28일, 그 미네소타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주 의사당 앞. 주최 측은 10만 명을 예상했습니다. 주 경찰은 5만 명 이상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최 측 추산은 20만 명이었습니다. 숫자가 어느 쪽이든, 미네소타 역사상 가장 큰 정치 집회였습니다.

팀 월즈(Tim Walz) 미네소타 주지사가 플란넬 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백악관이 시위대를 "급진주의자들"이라 불렀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다, 우리는 급진화되었다(You're damn right we've been radicalized)."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갔습니다. "연민에 의해 급진화되었다. 예의에 의해 급진화되었다. 적법 절차에 의해 급진화되었다. 민주주의에 의해 급진화되었다."

월즈 주지사가 다음 연사를 소개했습니다. "평생을 노동자 계급에 목소리를 내온 사람. 우리의 희망과 꿈, 두려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것을 노래로 표현해 온 사람." 잠시 뒤 그가 덧붙였습니다. "왕은 필요 없지만, 보스(Boss)는 필요하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겨울, 연방 군대가 미니애폴리스 거리에 죽음과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스프링스틴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도시를 골랐습니다(They picked the wrong city)." 군중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미니애폴리스와 미네소타 사람들의 힘과 연대는 전국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강인함과 헌신이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곳이 여전히 미국이라는 것을. 이 반동적 악몽과 미국 도시들에 대한 침공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두 이름을 불렀습니다. "르네 구드. 세 아이의 어머니.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알렉스 프레티. 재향군인 병원 간호사. ICE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등을 맞고 길 위에서 죽어갔으며, 우리의 무법한 정부는 그 죽음을 조사하는 품위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용기, 그들의 희생, 그들의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군중이 "ICE 아웃 나우(ICE out now)"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스프링스틴은 기타를 잡고 "스트리츠 오브 미니애폴리스(Streets of Minneapolis)"를 연주했습니다. 1월에 ICE의 사살 사건 직후 하루 만에 쓰고 이틀 만에 녹음해서 발표한 노래였습니다. 연방 요원의 군화, 고무탄과 연기, 눈 덮인 거리에서 쓰러진 이들. 세 번째 라이브 공연이었습니다.

스프링스틴은 이 곡에 대해 미네소타 스타트리뷴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때로 정확한 장소에 정확한 때에 있게 되고, 밴드보다 더 큰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시간은 내가 해온 의미 있는 공연들 중 가장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스프링스틴에 이어 존 바에즈(Joan Baez)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1960년대 반전 운동의 상징. 매기 로저스(Maggie Rogers)와 함께 밥 딜런의 "시대가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Changin')"를 불렀습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가 깜짝 등장했습니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미국 역사부터 시작했습니다. "1789년, 그들은 세계에 크고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이 새로운 나라 미국에서, 우리는 왕을 원하지 않는다고."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을 읽은 뒤 이어갔습니다. "2026년 오늘, 우리의 메시지는 정확히 같습니다. 왕은 필요 없다. 우리는 이 나라가 권위주의나 과두제로 미끄러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국민이 통치합니다."

샌더스의 연설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의 불평등이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이토록 소수가 이토록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상위 1%가 하위 93%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란 전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합시다. 미국 국민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들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란 전쟁에 대해 거짓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즉각 끝나야 합니다."

그는 숫자를 읊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군 사망자 13명. 수백 명의 부상자. 전날 하루에만 12명이 추가 부상. 트럼프가 의회의 승인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한 뒤, 2024년 대선의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평화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더 이상의 끝없는 전쟁은 없다고 약속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일한 오마르(Ilhan Omar) 하원의원은 전쟁 첫날 폭격당한 이란 미납의 샤자레 타예베 여학교를 언급했습니다. 최소 175명이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말하는 이란 여성 해방은 학교를 폭격하고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제인 폰다(Jane Fonda)는 연설 대신 르네 구드의 아내 베카 구드(Becca Good)의 성명서를 낭독했습니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는 사전 녹화 영상으로 참여했습니다. "트럼프 때문에 매일 아침 우울하게 일어나지만, 오늘은 수백만 명이 시위하고 있어서 좀 더 행복합니다." 그리고 미네소타 사람들에게 축하를 보냈습니다. ICE를 도시에서 몰아낸 것에 대해.

의사당 계단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우리에게는 호각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총이 있었다. 혁명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다(We had whistles, they had guns. The revolution starts in Minneapolis)."

집회는 오후 5시쯤 끝났습니다. 스프링스틴은 3일 뒤 미니애폴리스 타겟 센터에서 "희망과 꿈의 땅(Land of Hope and Dreams)" 투어를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노 킹스" 테마의 투어.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해 워싱턴에서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투어는 정치적이고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라크전 참전 용사 니이조드 드나샤는 세인트폴 집회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0년 전에 입대했습니다. 헌법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권리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아이오와에서 이사 온 68세 은퇴 변호사 밥 마이스는 해병대에 복무 중인 손자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란에 투입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8.4 중간선거와 에너지 위기

미국 정치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빌 클린턴의 선거 참모 제임스 카빌이 만든 말입니다. 2026년에 이 문장은 한 단어만 바뀌면 됩니다. 경제 대신 휘발유.

"문제는 기름값이야."

미국 유권자에게 휘발유 가격은 다른 어떤 경제 지표와도 다릅니다. 빵값이나 우유값은 마트에 가야 확인할 수 있지만, 기름값은 매일 출퇴근길에 주유소 전광판에 적혀 있습니다. 통근 시간 평균 27분인 나라에서, 대중교통이 사실상 없는 교외 지역에서, 자동차 없이는 식료품도 살 수 없는 구조에서, 갤런당 1달러의 가격 변동은 월급의 일정 부분이 증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학자들은 휘발유 가격을 '역진세(Regressive tax)'에 비유합니다. 부자보다 서민에게 더 가혹한 세금이라는 뜻입니다.

전쟁 전인 2월 말,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2.97달러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 낮은 기름값을 자랑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텍사스 코퍼스크리스티의 주유소에서 직접 기름을 넣는 퍼포먼스까지 했습니다. 행정부가 서민의 연료비를 낮추고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2월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전국 평균이 16센트 올라 3.11달러. 다시 일주일 뒤 3.38달러. 3월 말에는 4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와 가스버디(GasBuddy) 모두 같은 수치를 확인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4달러대에 진입한 것이었습니다.

유가가 오른 직접적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이었습니다.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이 수로가 봉쇄 위험에 처하면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전쟁 전날 배럴당 67달러였던 미국산 원유(WTI)도 90달러대로 뛰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3월 단기 전망에서 브렌트유가 두 달간 95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가스버디의 수석 석유 분석가 패트릭 드 한(Patrick De Haan)은 3월 30일 이렇게 썼습니다. "상황은 극도로 변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이란 및 석유 수석 분석가 그레고리 브루(Gregory Brew)는 전쟁 초기에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갤런당 3.5달러에서 4달러 휘발유, 5달러 디젤이 곧 올 것입니다." 3주 뒤 그 전망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숫자들이 정치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것은 액시오스(Axios)의 보도였습니다. 디젤 가격 주간 상승폭 상위 4개 주 중 3개가 중간선거 상원 핵심 경합 주라는 분석이었습니다.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키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주들에서, 유권자들이 매일 보는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1달러 이상 뛰어올라 있었습니다.

AP-NORC 조사에 따르면, 향후 몇 달 동안 휘발유를 살 여유가 있을지 "극도로" 또는 "매우" 걱정된다고 답한 비율은 45%였습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직후인 2024년 말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은 30%였습니다. 15%포인트의 상승. 그 차이를 만든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역사적 패턴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지미 카터의 재선이 좌절되었습니다. 2008년 유가 140달러 시절 공화당이 참패했습니다.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석을 잃는 것은 거의 법칙에 가깝습니다. 네이트 실버의 분석에 따르면, 중간선거까지의 기간 동안 야당이 의원선호도 조사(Generic Ballot)에서 평균 약 5%포인트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역사적 추세입니다. 3월 시점에서 민주당은 이미 6%포인트 앞서 있었습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11월에는 민주당의 압승, 이른바 '웨이브(Wave)'가 가능한 구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공화당 내부의 불안은 가시화되고 있었습니다. 한 공화당 선거 전략가는 익명을 조건으로 CNBC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면 괜찮겠지만, 지속되면 정말 나쁩니다(If it sustains at all, it's really bad). 식료품 가격도 높고, 주거비도 높은 상태인데, 여기에 기름값까지 오르면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공화당 의원들은 차기 선거에서의 동반 낙선을 우려해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전쟁 정책에 대한 침묵이 길어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가를 잡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전략비축유(SPR) 방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완화 검토. 해군 호위를 통한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통과 지원.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통한 유조선 보험 제공. 백악관 관리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11월 중간선거 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CNN이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이 조치들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을 확보하고, 이란을 굴복시켰다는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단기적 고통이 중간선거에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반대로, 이것이 8주, 3개월 이상 계속되고 기름값이 계속 오르면, 민주당은 '트럼프가 끝없는 전쟁을 피하겠다고 했는데, 보라, 우리를 무슨 상황에 빠뜨렸는지'라고 공격할 것입니다."

3월 28일 시위가 벌어진 바로 그 주에, 플로리다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저택이 있는 팜비치를 포함하는 주 의회 선거구에서 특별선거가 열렸습니다. 민주당 후보 에밀리 그레고리가 이 견고한 공화당 지역구를 뒤집었습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 켄 마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뒷마당에서 이길 수 있다면, 어디서든 이길 수 있다."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는 한, 유가가 빨리 내려가지 않는 한, 11월까지 남은 7개월은 공화당에게 긴 시간이 될 것이었습니다. 타임(Time)지의 보도가 이 상황을 요약했습니다. "전쟁이 경제적 영향을 가져오고, 경제적 영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연쇄가 이미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식료품 가격, 운송비, 서비스 비용이 모두 유가에 연동되어 오르고 있었고, 장기 금리까지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대출 비용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에너지 위기가 미국 중서부의 주유소를 거쳐, 11월의 투표소까지 도달하는 경로는 이미 눈에 보였습니다. 그 경로 위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서 있었습니다.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제9부 전기화 시대의 새로운 전선




제29장 전력망은 새로운 전장이다

29.1 발전소와 변전소의 표적화

2026년 3월 1일 새벽 2시 47분(테헤란 현지 시간), 이스라엘 공군의 F-35I 아디르 편대가 테헤란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목표물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사령부가 밀집한 테헤란 서부 군사 구역이었습니다. 정밀 유도 폭탄이 건물을 관통해 폭발하는 순간, 인근 고전압 송전탑 세 기가 파편에 맞아 무너졌습니다. 카라지(Karaj) 방면으로 전력을 보내던 230킬로볼트 송전선이 끊어졌습니다. 테헤란 동부와 서부 일대의 변전소 보호 계전기가 연쇄적으로 차단 신호를 보냈습니다. 4분 뒤, 테헤란 광역권 인구 1,200만 명 가운데 약 400만 명이 암흑 속에 놓였습니다.

이란 에너지부는 이틀 뒤 공식 성명을 냈습니다. "파편이 고전압 송전탑과 변전소를 타격한 결과"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폭탄이 직접 전력 시설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부수적 피해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습니다. 테헤란의 밤은 꺼졌고, 병원의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지하철은 멈췄습니다.

전력망은 발전, 송전, 배전이라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 거대한 흐름입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변전소에서 전압이 낮아진 뒤 가정과 공장에 도착합니다. 이 흐름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물리적 제약이 붙어 있습니다. 전기는 저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가 1초 단위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이 균형이 깨지면 주파수가 흔들리고, 보호 장치가 작동하면서 회로를 끊습니다. 하나의 변전소가 멈추면 그 부하가 이웃 변전소로 몰리고, 이웃 변전소마저 과부하로 꺼집니다. 연쇄 차단(Cascading Failure)입니다. 테헤란 서부의 송전탑 세 기가 무너졌을 때 벌어진 일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전력망을 전쟁의 표적으로 삼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43년 영국 공군은 독일 루르 공업지대의 뫼네 댐과 에데르 댐을 폭격했습니다. 댐이 무너지자 수력 발전이 멈추고, 루르의 군수 공장들이 전력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이 발상은 체계적인 교리로 완성되었습니다. 미 공군의 존 워든(John Warden) 대령은 적국을 다섯 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된 유기체로 봤습니다. 가장 안쪽 원이 지도부, 두 번째 원이 핵심 생산 시설, 세 번째 원이 인프라입니다. 워든은 인프라 가운데 전력망을 먼저 끊으면 나머지 네 개의 원이 동시에 마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군은 이 이론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개전 첫 주에 이라크의 발전소와 변전소를 정밀 유도 무기로 집중 타격했고, 이라크군의 방공 레이더, 통신망, 지휘 체계가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교리가 35년이 지난 뒤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러시아는 2022년 10월부터 우크라이나의 화력 발전소, 수력 발전소, 변전소를 순항 미사일과 샤헤드(Shahed) 자폭 드론으로 집요하게 타격했습니다. 영하 10도의 겨울에 난방이 끊겼습니다. 상수도 펌프가 멈춰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통신 기지국이 꺼져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 중 전기가 나가 수동 환기 장치로 환자의 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전력망 타격이 이토록 파괴적인 이유는 그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 대형 전력 변압기(LPT, Large Power Transformer)의 물리적 특성에 있습니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345킬로볼트 이상의 초고압 전기를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전압으로 낮추거나, 송전을 위해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무게는 수백 톤에 달합니다. 내부는 절연유로 채워진 구리 코일의 정밀 구조물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힙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변압기 가격은 75퍼센트 올랐고, 지금 주문하면 납품까지 4년이 걸립니다. 미사일 한 발에 변압기가 불타면, 그 변전소가 담당하던 지역은 4년 동안 정상적인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26년 이란 전쟁에서 전력망 타격의 의미는 걸프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1일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란이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소를 가장 큰 것부터 폭격해 완전히 파괴하겠다(obliterate)"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같은 날 X에 응답을 올렸습니다. 이란의 발전소와 인프라가 타격당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의 발전소와 해수 담수화 시설(Desalination Plant)을 제한 없이 보복 타격하겠다"는 경고였습니다.

이 위협이 왜 걸프 지역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는지를 이해하려면, 걸프 국가들의 물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아라비아반도는 연간 강수량이 100밀리미터도 안 되는 극건조 지대입니다. 자연 담수 자원이 거의 없습니다. 쿠웨이트는 식수의 90퍼센트를, 바레인은 95퍼센트를, UAE는 42퍼센트를 해수 담수화 시설에서 얻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의 담수화 생산국입니다.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이 전 세계 담수화 용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 담수화 시설들은 바닷물을 끓이거나 역삼투막으로 걸러내는데, 두 방식 모두 막대한 전기를 소비합니다. 전력이 끊기면 담수 생산도 멈춥니다. 전기가 곧 물이고, 물이 곧 생존입니다.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3월 7일,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미국이 이란 남부 케슘(Qeshm) 섬의 담수화 시설을 타격해 30개 마을의 식수 공급이 중단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바레인 당국은 이란 드론이 바레인의 담수화 시설에 물리적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했습니다. 쿠웨이트에서는 담수화 겸용 발전소의 부속 건물이 이란 공격에 피해를 입었고, 인도인 노동자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UAE의 푸자이라(Fujairah) 전력-담수 복합 시설 인근에도 이란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두바이의 제벨 알리(Jebel Ali) 항구에 대한 이란의 3월 2일 공격은 연간 1,600억 갤런의 물을 생산하는 대형 담수화 단지에서 불과 20킬로미터 거리에 착탄했습니다.

마이클 크리스토퍼 로(Michael Christopher Low) 유타대 역사학 교수는 이 상황을 "소금물 왕국(Saltwater Kingdoms)"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했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석유로 돈을 벌지만, 그 석유로 만든 전기로 바닷물을 식수로 바꿔서 살아남는 나라들이라는 뜻입니다. 석유 시대의 기적이 석유 시대의 치명적 약점이 된 것입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데이비드 미셸(David Michel)은 이런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40년 전 CIA가 이미 걸프 국가들의 담수화 의존이 만드는 안보 취약성을 비밀 보고서로 경고한 바 있다는 것입니다. 2026년의 전쟁은 그 취약성이 40년 동안 해소되기는커녕 더 깊어졌음을 드러냈습니다.

전력망 타격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직접적 군사 차원에서, 전력이 끊기면 방공 레이더와 통신망과 지휘 체계가 먹통이 됩니다. 현대 군사 작전은 고도로 네트워크화되어 있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미사일 하나 발사할 수 없습니다. 간접적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전력이 끊기면 물이 끊기고, 물이 끊기면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걸프 지역처럼 여름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곳에서 에어컨과 식수가 동시에 사라지면, 며칠 안에 인도주의적 재앙이 시작됩니다.

테헤란이 암흑에 잠겼을 때,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와 휴대전화 플래시라이트를 켜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IRGC 사령부를 파괴하려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란 정권에게 "왜 수백만 시민이 칠흑 속에 방치되느냐"를 해명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겼습니다. 전력을 끊는 것은 적의 군대를 마비시키는 동시에 적의 정부에게 통치 능력의 위기를 안기는 이중 타격입니다.

2026년 3월 말, 트럼프는 이란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력망 공격의 유예 기한을 4월 6일까지 10일 연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결정 자체가 전력망의 전략적 위상을 보여줍니다. 핵 시설이나 미사일 기지가 아니라 발전소가 협상의 지렛대가 된 것입니다. 발전소와 변전소의 냉각탑과 철탑은 이제 최전방의 참호만큼이나 치열한 공방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29.2 코드 한 줄이 송전망을 멈출 때

2026년 2월 28일 오전 9시 45분 테헤란 시간, 첫 번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이란 영공에 진입하기 전에 전장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미국 합참의장 댄 케인(Dan Caine) 대장은 3월 2일 기자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 사이버사령부(USCYBERCOM)와 우주사령부가 "최초 투입 전력(First Movers)"이었다고. 이들이 "비운동적 효과를 겹겹이 쌓아(Layering Non-kinetic Effects)" 이란의 "보고, 소통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교란하고 약화시키고 눈멀게 만들었다"고.

케인 대장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의 유닛42(Unit 42) 분석팀에 따르면, 2월 28일 오전부터 이란의 인터넷 접속률이 1~4퍼센트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3월 25일 기준으로 이란은 27일 연속 사실상의 인터넷 암흑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리적 폭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란의 통합 방공망(IADS)은 이미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사이버 공격이 에너지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입증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벨라루스의 보안 업체가 이란 나탄즈(Natanz) 우라늄 농축 시설의 컴퓨터에서 이상한 악성 코드를 발견했습니다.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코드는 500킬로바이트짜리 컴퓨터 웜이었습니다. 세 단계로 작동했습니다. 먼저 윈도우 시스템에 침투했습니다. 다음으로 지멘스(Siemens)의 스텝7(Step7) 소프트웨어를 찾아 감염시켰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산업용 제어 장치를 운영하는 데 쓰이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를 장악해 우라늄 가스를 분리하는 원심분리기의 회전 속도를 조작했습니다.

나탄즈 시설은 인터넷과 완전히 단절된, 이른바 '에어 갭(Air Gap)' 환경이었습니다. 스턱스넷은 USB 메모리를 통해 이 장벽을 넘었습니다. 시설 내부의 엔지니어가 외부에서 감염된 USB를 들고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코드는 안으로 들어간 뒤 인내심 있게 기다렸습니다. 지멘스 스텝7 컨트롤러가 연결된 정확한 하드웨어 구성을 감지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찾으면 원심분리기의 회전 속도를 한계치 이상으로 올렸습니다. 동시에 관제실의 모니터에는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표시되게 조작했습니다. 이란 기술자들은 원심분리기가 하나둘 고장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원심분리기 교체율을 눈치채기 시작했을 때, 이미 약 1,000기가 파괴된 뒤였습니다. 당시 가동 중이던 5,000기의 5분의 1이었습니다.

스턱스넷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추정됩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이것이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올림픽 게임즈(Olympic Games)'라는 작전명이 붙어 있었고,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되어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속되었습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최소 2년 지연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스턱스넷은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코드가 물리적 장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선례. 그 선례 위에 이후의 공격들이 쌓였습니다.

2015년 12월 23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지역의 전력 배전 회사에 러시아 해커 그룹(샌드웜으로 추정)이 침투했습니다. 피싱 메일이 시작이었습니다. 직원 한 명이 첨부 파일을 열었고, 해커들은 내부망에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시스템 권한을 탈취한 뒤, 공격 당일 발전소 운영자들은 자기 화면의 마우스 커서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커서가 송전망 차단기를 하나씩 '오프' 위치로 클릭했습니다. 해커들은 정전을 일으킨 뒤 복구까지 방해했습니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의 전원을 원격으로 꺼버렸고, 콜센터에 전화 폭탄을 날려 시민들의 신고를 차단했으며, 서버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와이퍼(Wiper) 악성코드를 실행해 제어 시스템 자체를 먹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사이버 공격에 의한 대규모 정전이 확인된 사건이었습니다.

2021년 5월, 미국 동부 해안의 석유 공급 45퍼센트를 담당하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Colonial Pipeline)이 랜섬웨어에 감염되었습니다. 다크사이드(DarkSide)라는 해커 집단이 IT 시스템을 암호화하자, 회사는 안전을 우려해 송유관 밸브를 물리적으로 닫았습니다. 며칠 만에 수천 개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졌고,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며, 시민들은 플라스틱 봉지에 휘발유를 담아가는 패닉 바잉에 나섰습니다. 악성코드가 직접 밸브를 건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IT 시스템이 감염되었을 뿐인데, 운영자가 스스로 밸브를 잠근 것입니다. 사이버 공격의 실제 파괴력은 기술적 침투 능력뿐 아니라, 운영자의 불안과 시스템의 상호 의존성이 증폭시키는 연쇄 반응에 있습니다.

2026년의 전쟁은 이 모든 선례를 하나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물리적 공격과 사이버 공격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미 사이버사령부는 개전과 동시에 이란의 통신망과 방공 센서를 무력화했습니다. 이란 쪽에서는 60개 이상의 해커 그룹이 개전 수 시간 만에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사이버 이슬람 저항(Cyber Islamic Resistance)'이라는 이름 아래 텔레그램 채널 100개 이상에서 조직되었고, 개전 2주 만에 600건 이상의 공격을 주장했습니다.

이란 연계 해커 그룹 한달라(Handala)는 3월 11일 미국 의료기기 회사 스트라이커(Stryker)를 공격했습니다. 79개국에 걸친 직원들의 로그인 화면에 한달라의 로고가 떴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 인튠(Intune)을 악용해 20만 대 이상의 기기를 원격으로 초기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트라이커는 3월 27일까지 17일째 시스템 복구 중이었고, 전·현직 직원들이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4건의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슬람혁명수비대 산하 사이버Av3nger(CyberAv3ngers) 그룹은 미국의 수처리 시설과 산업 제어 시스템을 노렸습니다. 이들은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에 기본 비밀번호로 로그인해 악성코드를 설치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APT33은 미국 에너지 기업의 계정에 흔히 쓰이는 비밀번호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APT55는 미국 에너지·국방 분야 관계자들에 대한 사이버 첩보 활동을 벌였습니다.

한달라는 3월 23일 이스라엘 전력망과 발전소의 설계도 아홉 장을 자체 웹사이트에 공개했습니다. 이란의 준관영 타스님 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오라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중동에 보유한 수십 개 데이터센터를 "적의 기술 인프라(Enemy Technology Infrastructure)"로 지정한 목록을 텔레그램에 올렸습니다.

브레이킹 디펜스(Breaking Defense)의 보도에 따르면, 전직 사이버 작전 요원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이버 공격과 물리적 타격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발전소를 미사일로 부수면 복구에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지만, 사이버 공격은 켜고 끌 수 있다고. 통신망을 사이버로 마비시키면 긴급 서비스에 영향을 주지만, 공격을 중단하면 곧 복원된다고. 이 차이가 사이버 무기에 독특한 전략적 유연성을 부여합니다. 적의 방공 레이더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대신 사이버로 일시적으로 눈멀게 만들고, 그 틈에 스텔스 전투기가 진입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문법이 2026년 이란 전쟁에서 실전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교훈도 있었습니다. 같은 전직 요원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미국 위성통신 회사 비아셋(Viasat)을 사이버 공격한 것은 단기적 혼란은 만들었지만, 그 대가로 귀중한 정보 수집 거점을 태워버린 셈이라고. 사이버 접근권은 한 번 드러나면 적이 차단하므로, 쓰는 순간 사라집니다. 언제 쓸지, 무엇을 위해 쓸지의 판단이 미사일 발사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선만이 전장이 아닙니다. 전력 회사의 관제실, 엔지니어의 키보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의 라우터 하나하나가 2026년의 새로운 전장이 되었습니다. 이란의 인터넷 접속률이 1퍼센트로 추락한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코드가 만든 결과였습니다.

29.3 에너지 시설의 사이버전 취약성

2023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리퀴파(Aliquippa)의 수도 공사에서 이상한 화면이 떴습니다. 수처리 시설의 부스터 펌프를 제어하는 이스라엘제 유니트로닉스(Unitronics) PLC 화면에 "모든 이스라엘제 장비는 사이버Av3ngers의 합법적 표적"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었습니다. IRGC 산하 해커 그룹이 인터넷에 노출된 산업 제어 장치에 기본 비밀번호로 로그인한 것이었습니다. 기본 비밀번호.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출고 시 기본값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에너지 시설과 인프라가 왜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취약성의 뿌리는 세 곳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산업 제어 시스템(ICS)과 스카다(SCADA, 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변전소의 차단기를 여닫고, 송유관의 밸브를 조절하는 장비들의 설계 철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엔지니어들의 유일한 목표는 가동률이었습니다.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는 것. 외부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데이터 암호화나 다중 인증 같은 보안 개념은 설계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부망에 접근한 사람은 누구든 신뢰받는 사용자로 간주되었습니다. 비밀번호 없이 평문으로 제어 명령이 오갔습니다. 앨리퀴파 수도 공사의 유니트로닉스 PLC에 기본 비밀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유산이 30년이 지난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수십 년 수명을 가진 고가의 산업 장비를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교체할 수는 없습니다. 전력 회사 입장에서 변전소의 PLC를 교체하려면 해당 구역의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해야 합니다. 이는 수만 가구와 공장에 영향을 줍니다. 교체 비용도 막대합니다. 결과적으로 전력 회사들은 이 낡은 시스템을 덧대고 이어붙여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러큐스대 전기공학과 알렉스 존스(Alex K. Jones) 교수의 설명이 정확합니다. 수처리, 전력망, 산업 제어 시스템은 안전성과 실시간 작동을 위해 설계된 것이지, 빈번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빠른 보안 패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비자용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은 매주 보안 업데이트를 받지만, 산업 환경에서는 작은 변경 하나가 물리적 공정을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에 패치 주기가 훨씬 느립니다. 장비 수명은 길고, 연결성은 늘어나고, 업데이트 주기는 느린 이 조합이 산업 인프라를 일반 IT 시스템보다 방어하기 훨씬 어렵게 만듭니다.

두 번째 취약성의 원천은 '에어 갭의 붕괴'입니다. 과거 에너지 기업들은 물리적 장비를 제어하는 운영 기술(OT) 망이 이메일과 웹서핑을 하는 정보 기술(IT) 망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스턱스넷이 이 신화에 금을 갔지만, 그것은 국가 차원의 초정밀 작전이었으므로 일반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진짜 붕괴는 효율성의 이름으로 찾아왔습니다.

재생에너지의 확산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풍력과 태양광은 바람이 불고 해가 뜰 때만 전기를 만듭니다. 이 불규칙한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전력망에 연동시키려면 현장 변전소의 장비가 중앙 관제 센터의 IT 시스템과 끊임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IEA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650기가와트에 달하는 태양광 및 풍력 설비가 연결할 전력망이 부족해서 가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력망을 확장하고 스마트하게 만들라는 압력은 거셉니다.

유지보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 협력업체 직원들이 원격으로 현장 장비에 접속할 수 있는 통로(VPN 등)도 뚫렸습니다. IT 망과 OT 망 사이의 에어 갭은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에 밀려 구멍이 뚫렸습니다. 해커들은 이 구멍을 정확히 노립니다. 굳이 보안이 두터운 OT 망을 직접 공격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한 협력업체의 이메일이나 직원의 개인 노트북을 먼저 해킹합니다. 그 뒤 합법적인 원격 접속 통로를 타고 IT 망을 거쳐 OT 망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른바 '망 이동(Lateral Movement)' 전략입니다. 시스템을 연결하면 편리해지지만, 가장 취약한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대한 공격 표면(Attack Surface)이 만들어집니다. 연결성의 역설입니다.

세 번째 취약성은 공급망(Supply Chain)의 구조에서 옵니다. 에너지 인프라는 전 세계 수백 개 기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품으로 조립된 구조물입니다. 해커들은 보안이 두터운 전력 회사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그 전력 회사에 제어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중소 벤더사의 업데이트 서버를 해킹합니다. 전력 회사가 정상적인 보안 패치라고 믿고 다운로드하는 순간, 악성코드가 들어갑니다.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특정 부품이나 펌웨어에 백도어(Backdoor)가 심어져 있는지를 완벽하게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취약성 위에, 2026년의 전쟁이 새롭게 노출시킨 네 번째 층이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입니다.

3월 1일 늦은 밤, 이란 혁명수비대의 샤헤드(Shahed) 드론이 UAE에 있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 데이터센터 두 곳과 바레인의 AWS 시설 한 곳을 타격했습니다. 군사 역사상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데이터센터가 의도적으로 공격받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아마존은 구조적 피해, 전력 공급 중단, 화재, 소화 과정에서의 수해를 확인했습니다. UAE 리전(ME-CENTRAL-1)의 가용 영역 세 곳 가운데 두 곳이 손상되었고, 바레인 리전(ME-SOUTH-1)에서도 서비스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란 국영 파르스 통신은 텔레그램을 통해 바레인 시설을 의도적으로 타격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센터들이 적의 군사 및 정보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군은 AWS를 통해 일부 작전 워크로드를 운용하고 있었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정보 분석과 전투 시뮬레이션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상업용 클라우드와 군사 작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펜타곤의 합동전투클라우드역량(JWCC)과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네트워크는 은행과 배달 앱이 쓰는 것과 같은 상업용 인프라 위에서 돌아갑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아부다비 커머셜 뱅크, 에미리츠 NBD, 퍼스트 아부다비 뱅크 등 주요 은행의 온라인 서비스가 중단되었습니다. 결제 플랫폼 알란(Alaan)과 허브페이(Hubpay), 데이터 클라우드 기업 스노우플레이크, 대형 차량호출 플랫폼 카림(Careem)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AWS는 수일간 UAE 서비스를 "장애 중(Disrupted)"으로 표시했고, 바레인 리전 고객에게는 다른 AWS 리전으로 핵심 데이터를 복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샘 윈터레비(Sam Winter-Levy) 연구원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AI가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물리적 공격은 "앞으로 더 흔해질 수밖에 없다"고. "이제 데이터센터를 보호하는 것은 최고 보안 등급의 정부 청사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고.

킹스칼리지 런던의 재커리 캘런본(Zachary Kallenborn) 연구자는 포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이 드론과 로봇 시스템으로 치러지는 시대에는 지역 분쟁이 훨씬 넓은 범위로 확산될 수 있다고. 적이 무인 시스템을 통제하는 원격 지휘소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타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호르무즈 해협 폐쇄와 데이터센터 공격이 동시에 벌어진 2026년 3월의 상황은, 석유의 초크포인트와 데이터의 초크포인트가 같은 지리적 공간에 겹쳐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17개의 해저 케이블이 홍해를 통과하고, 중동의 데이터센터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디지털 트래픽의 중계점입니다. 네트워크 분석 기업 켄틱(Kentik)의 더그 매데이리(Doug Mador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가 동시에 막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파괴적인 사건"이 될 것이며,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고.

걸프 국가들이 수조 달러를 쏟아부은 AI 데이터센터 투자 전략은 한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 지역이 안전하다는 전제. 3월 1일의 드론 공격은 그 전제를 박살냈습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UAE의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6년 32억 9천만 달러에서 2031년 77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공격 이후 그 전망은 재검토 대상이 되었습니다.

에너지 시설이 사이버전에 취약한 이유는 바이러스 백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1980년대에 설계된 장비를 인터넷에 연결한 구조적 모순, 파괴되면 4년을 기다려야 교체할 수 있는 변압기의 공급망 병목, AI 혁명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가 전력망의 물리적 여유를 완전히 소진시킨 상황, 그리고 상업용 클라우드와 군사 작전이 같은 서버를 쓰는 현실. 이것들이 겹쳐서 전력망과 디지털 인프라를 동시에 노출시켰습니다.

방어자와 공격자 사이에는 극단적인 비대칭이 존재합니다. 에너지 기업은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수만 개의 송전탑, 수천 개의 변전소, 수백만 줄의 코드를 365일 방어해야 합니다. 공격자는 단 한 번만 성공하면 됩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해킹 그룹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을 찾을 때까지 무한정 시도할 시간과 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6년 3월의 이란, 그 암흑의 테헤란과 서비스가 멈춘 두바이의 은행 앱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전기화 시대에 전력망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코드 한 줄이 터빈을 세우고 서버를 날리는 시대에, 방화벽은 미사일 요격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국방 자산이 되었습니다.



고압 송전탑과 송전선





제30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소비의 군사화

30.1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는 군수기지다

2026년 3월 1일 새벽, UAE 아부다비. 아마존웹서비스(AWS, Amazon Web Services)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두 곳에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샤헤드 자폭 드론이 동시에 돌진했습니다. 같은 시각 바레인에서도 AWS 시설 한 곳이 인근 폭발로 파편 피해를 입었습니다. 콘크리트 벽이 갈라지고, 비상 소화 장치가 가동되면서 물이 서버 랙 위로 쏟아졌습니다. 수분 뒤 아부다비 상업은행, 에미리트NBD, 퍼스트아부다비은행의 모바일 뱅킹 앱이 꺼졌습니다. 결제 플랫폼이 멈추고, 차량 호출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결제할 수 없고, 공항에서 택시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UAE 전역으로 번졌습니다. 아마존은 수일이 지나도 해당 지역의 서비스 상태를 "장애 중(disrupted)"으로 표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국가 군대가 민간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의도적으로 타격한 것입니다. 이란 국영 매체 타스님 통신은 공격 직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팔란티어, 오라클의 이름을 나열하며 "적의 기술 인프라: 이란의 새로운 목표"라는 문구를 게시했습니다. IRGC는 이 공격의 근거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AWS가 미국 국방부의 AI 시스템을 호스팅하고 있으며, 앤스로픽의 클로드(Claude) 모델이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의 정보 분석과 표적 식별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장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이 에픽 퓨리 작전 개시 첫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하기 위해 AI 도구를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에 앤스로픽의 클로드가 내장되어 있었고, 이 시스템은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표적의 우선순위를 반자동으로 매기고, 각 타격에 대한 법적 정당화 초안까지 작성했습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 시스템으로 위성 이미지, 신호 정보, 통신 감청 자료를 실시간 처리하여 표적 좌표를 뽑아냈습니다. 펜타곤 수석정보관(CIO) 커스틴 데이비스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이 시스템은 현재 작전 중에 활용되고 있다"고 공식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클라우드(Cloud)'라고 부르는 것은 구름이 아닙니다. 수만 톤의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건물이고, 수십만 개의 서버가 배열된 금속 구조물이며, 화력발전소급 전력을 쉬지 않고 삼키는 물리적 시설입니다. 이 시설 안에서 미국의 킬 체인(Kill Chain, 표적 탐지에서 타격까지의 연쇄 과정)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이 건물을 공격하는 것은 적의 탄약고를 폭격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았습니다.

국제법 학자들의 해석도 이란의 논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버드 법대 방문교수 이오아니스 칼푸조스는 "데이터센터가 펜타곤의 JWCC(합동전투클라우드사업) 계약을 수행하는 한, 그 시설은 군사 목표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제52조 제2항은 군사 행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시설을 합법적 군사 목표물로 분류합니다. 기준은 군사 업무의 비율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서버 10만 대 가운데 단 하나의 클러스터가 군사 AI를 돌리고 있더라도, 건물 전체가 타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논리적 분리(가상 머신이나 가용 영역의 구분)는 물리적 타격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미사일이 건물에 떨어지면 군사 서버와 민간 뱅킹 서버가 함께 파괴됩니다.

이 사건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군사기지처럼 방어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누가, 어떤 비용으로?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방공은 이미 현실 문제가 되었습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의 제임스 셔즈는 "아이언 돔 같은 지대공 방어 시스템을 석유 시설이나 정부 인프라 옆에 배치하는 것은 이미 관행"이라며 "문제는 데이터센터를 핵심 인프라 목록에서 얼마나 높은 순위로 올릴 것이냐"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16대 핵심 인프라 부문에 포함시키고 있고, 영국은 2024년에 데이터센터를 핵심 국가 인프라로 지정했습니다.

문제는 규모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약 415테라와트시(TWh)였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입니다. IEA는 이 수치가 2030년까지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미국에서만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4년 183TWh에서 2030년 426TWh로 13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폭발적 성장의 원인은 인공지능(AI)입니다. IEA는 AI를 "이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AI에 최적화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늘어납니다. 미국에서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화학 제품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데이터 처리에 더 많은 전기가 들어가는 시대가 옵니다.

버지니아주의 '데이터센터 앨리'는 이미 주 전체 전력의 26%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수도 더블린 전력의 79%가 데이터센터로 들어갑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기존 CPU보다 2~4배 많은 전력을 소비합니다. 서버가 전기를 먹으면 열을 냅니다. 그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이 또 전기를 먹습니다. 효율적인 하이퍼스케일 시설에서도 냉각이 전체 전력의 7%를 차지하고, 비효율적인 시설에서는 30%를 넘깁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냉각이 멈추고, 냉각이 멈추면 서버가 과열되어 수분 안에 셧다운됩니다. 비상용 무정전 전원장치(UPS)와 디젤 발전기가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디젤 공급마저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비상 발전기의 작동 시간은 수일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3월 1일의 AWS 타격은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데이터센터 다이내믹스(DCD)의 분석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데이터센터 업계는 사이버 사고, 운영 장애, 자연재해에 대한 리스크 모델을 갖추고 있다. 군사 목표물로서의 법적 재분류에 대한 리스크 모델은 없다."

전기를 먹는 이 건물들이 미사일의 표적이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존의 주가는 공격 직후 오히려 약 3% 올랐습니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단일 리전(Region) 배치를 포기하고 다중 리전으로 이전하는 수요가 클라우드 매출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사업 기회가 되는 아이러니. 데이터센터는 전쟁의 도구이자 전쟁의 표적이며, 동시에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30.2 칩 생산과 무기체계

2026년 3월 2일, 카타르 라스 라판 산업도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이 시설을 타격한 뒤, 국영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천연가스 처리 및 수출 시설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라스 라판은 세계 최대 규모의 LNG 수출 거점입니다. 그런데 이 시설에서 천연가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물질이 있었습니다. 헬륨(Helium)입니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의 약 3분의 1을 생산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약 6,300만 세제곱미터. 라스 라판이 멈추자 그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헬륨이 왜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풍선을 채우는 가스 정도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헬륨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반도체를 만들 때, 실리콘 웨이퍼 위에 극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식각(Etching) 공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웨이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조지타운대학 안보신기술센터(CSET)의 제이콥 펠드고이즈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식각 공정 중에 웨이퍼에서 열을 끌어내야 합니다. 헬륨은 열 전도성이 뛰어난 기체이기 때문에, 웨이퍼 뒷면에 헬륨을 불어넣어 열을 빠르고 균일하게 제거합니다."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빛을 이용해 칩의 정밀한 회로 패턴을 인쇄하는 기술) 공정에서도 헬륨은 필수 소재입니다. 5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칩 제조에서 누설 감지(Leak detection)에도 쓰입니다. 헬륨을 대체할 물질은 없습니다. 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23년에 이미 이렇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헬륨 공급이 중단되면 글로벌 반도체 제조 산업에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약 3분의 2를 생산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세계 최대의 메모리 칩 제조사 두 곳이 모두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국제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헬륨 수입의 64.7%를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이 취약성을 직접 지적했습니다.

헬륨만이 아니었습니다. 브롬(Bromine)이라는 원소가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 형성에 쓰이는 화학물질입니다. 한국은 브롬 수입의 약 90%를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브롬 생산의 약 3분의 2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사해(Dead Sea) 연안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 당사자였습니다.

한국 국회에서 여당 의원 김영배는 이란 전쟁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공급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반도체 소재 및 장비 품목에 대한 수급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헬륨의 물리적 특성이 문제를 더 키웠습니다. 헬륨 원자는 원소 가운데 가장 작습니다. 기체 상태로는 아무리 정밀한 용기에서도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카타르에서는 헬륨을 극저온으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뒤, 단열 처리된 특수 저온 컨테이너에 담아 배로 수송합니다. 이 컨테이너의 보관 기한은 35일에서 48일입니다. 그 이후에는 액체 헬륨이 서서히 증발하여 기체로 돌아가고, 대기 중으로 날아갑니다. 비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물질입니다. 헬륨 전문 컨설턴트 필 콘블루스는 "세계 극저온 헬륨 ISO 컨테이너의 약 3분의 1이 카타르 안팎에 고립되어 있다"며, "분쟁이 끝나더라도 이 장비를 재배치하는 데만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전 세계가 헬륨 공급의 3분의 1을 잃으면, 보상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공급망 병목은 무기체계 생산으로 직결됩니다. 대만의 TSMC는 전 세계 최첨단 로직 반도체의 약 90%를 위탁 생산합니다. 엔비디아, 애플, AMD, 퀄컴의 칩이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AI 가속기의 단독 공급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만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합니다. 천연가스 비축분은 11일치에 불과합니다. 카타르가 대만 LNG 수입의 약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호르무즈가 닫히고 카타르의 생산이 멈추면, 대만의 전력 공급이 흔들리고, 전력이 흔들리면 칩 생산이 흔들립니다.

반도체는 현대 무기체계의 두뇌입니다. F-35 스텔스 전투기의 항전 장비,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의 유도 장치, 이지스함의 방공 레이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날아다니는 상용 드론까지 반도체 없이 작동하는 무기는 없습니다. 미국이 에픽 퓨리 작전에서 첫 24시간에 1,000개 표적을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은 AI가 정보를 처리하고 표적을 분류했기 때문이고, 그 AI는 GPU 위에서 돌아갔으며, 그 GPU는 TSMC의 공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헬륨이 없으면 그 공장이 멈춥니다.

칩의 공급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가장 편중되어 있으며, 가장 취약한 산업 체인입니다. 칩을 설계하는 기업은 미국에 있습니다. 설계를 위탁 생산하는 곳은 대만과 한국에 몰려 있습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만 만듭니다. 희토류 정제는 중국이 쥐고 있습니다. 이 체인의 어느 한 고리라도 끊기면, 전 세계의 무기 생산 라인이 멈춥니다.

미국이 이 취약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칩스법(CHIPS Act)으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고 있습니다. 동시에 AI 칩 수출 통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고성능 AI 칩의 중국 수출 허가 정책을 수정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했습니다. 하원 외교위원장 브라이언 매스트는 'AI 오버워치 법안(AI OVERWATCH Act)'을 밀어붙이며, AI 칩 수출 허가에 대한 의회의 거부권을 요구했습니다. 이 법안은 AI 칩 수출을 무기 판매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투기에 대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칩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는 것이 매스트 위원장의 말이었습니다.

AI 칩을 둘러싼 수출 통제는 과거 해군이 적국의 항구를 봉쇄하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입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는 중국의 AI 군사력 성장을 원천에서 질식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조지타운대학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동맹은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거의 모든 핵심 노드를 통제하고 있다." 이 구조적 우위를 보존하는 것이 미국 기술 전략의 핵심축입니다.

그런데 이란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그 구조적 우위를 흔드는 역설이 생겼습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카타르의 헬륨을 끊었고, 카타르의 헬륨 차단이 한국과 대만의 칩 공장을 위협했습니다. 미국의 전쟁이 미국의 무기를 만드는 공급망을 스스로 공격한 셈입니다.

대만은 이 취약성을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역설적 안보 자산으로 삼아왔습니다. TSMC가 파괴되면 전 세계 경제가 멈추니까 미국이 대만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2026년의 교훈은 달랐습니다. 적이 대만을 직접 침공하지 않아도, 해협 하나를 닫는 것만으로 대만의 칩 공장을 서서히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분석은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란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만들지 않았다. 그 취약성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30.3 에너지와 기술이 하나의 전장이 되는 시대

한국의 주식시장은 2026년 3월 첫째 주, 나흘 동안 18% 하락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낙폭이었습니다. 시가총액 5,000억 달러 이상이 증발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 폭락의 원인을 "에너지 안보 교란이 한국의 반도체 중심 주식시장에 연쇄적으로 전이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LNG 가격이 뜁니다. LNG 가격이 뛰면 전기 요금이 오릅니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칩 생산 원가가 올라갑니다. 칩 생산 원가가 오르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올라갑니다. 데이터센터 비용이 오르면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 비용이 올라갑니다. AI 비용이 오르면 그 AI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의 국방비가 올라갑니다. 하나의 해협이 만든 에너지 쇼크가 기술과 안보의 연쇄를 타고 전 세계 국가의 경쟁력을 재배열하는 것입니다.

이 연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기 가격입니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누가 가장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를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수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IEA의 2025년 보고서가 "전기는 새로운 석유가 되고 있다(Electricity is becoming the new oil)"고 선언한 것은 비유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전력 수요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이 수요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칩스법이 동시에 추진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자국에 반도체 공장과 배터리 공장을 유치하려면, 그 공장이 소비할 막대한 전력을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장 없는 칩스법은 종이고, 전기 없는 공장은 고철입니다.

문제는 전력의 질입니다. 데이터센터는 1초의 전압 강하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고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적(Intermittent)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전력망이 흔들리면, 적의 물리적 공격이 없어도 데이터센터가 멈출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빅테크 기업과 국방부가 동시에 주목하는 기술이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데이터센터 옆에 SMR을 건설하여 외부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에너지 요새(Micro-grid)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안보 정책입니다. 적의 사이버 공격이나 전력망 타격으로부터 핵심 연산 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체계입니다.

대만의 TSMC는 204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기후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전략입니다.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 호르무즈 같은 초크포인트 하나에 의해 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2026년의 위기가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한국에도 같은 교훈을 적용했습니다. "반도체 리더십을 지키려면 그 반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먼저 지켜야 한다."

이란 전쟁이 만들어낸 에너지 쇼크는 흥미로운 비대칭을 드러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교란에 허덕이는 동안, 중국은 다른 경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완화되면서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가 중국으로 더 많이 흘러들었습니다. 중국은 자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가동하며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유지했습니다. 헬륨 시장에서도 러시아산 헬륨이 중국 시장에 진입할 여지가 생겼습니다. CNBC의 분석에 따르면, "카타르의 차질이 지속되면 러시아는 중국의 헬륨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에너지 위기를 겪고, 그 에너지 위기가 반도체 공급망을 흔들고, 그 공급망의 혼란 속에서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 전쟁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멀어진 적은 드물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전력망 과부하와 수자원 고갈을 우려하는 풀뿌리 저항이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지연과 취소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중동에서는 AWS의 사우디 투자가 불확실해졌습니다. 브룩필드 자산운용은 카타르와의 200억 달러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을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습니다. 유로뉴스는 "중동의 클라우드 및 AI 전략이 우려스러운 방식으로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세기에는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Petro-state)가 지정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21세기에는 값싼 전기를 무한하게 공급하여 AI와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수 있는 국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석유 수송로를 지키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했던 시대는, 자국의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우라늄, 천연가스, 그리고 전력망 사이버 보안을 지키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의 실패가 기술의 실패로 이어지고, 기술의 실패가 군사적 열세로 직결되는 시대. 배럴(Barrel)의 가격표가 와트(Watt)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 호르무즈 해협의 21마일이 닫혔을 때 세계가 목격한 것은 석유 위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에너지와 기술과 안보가 하나의 전장 위에서 뒤엉켜 분리할 수 없게 된 21세기의 지형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 서버실





31.1 핵분열 기술의 무기와 전력

2026년 2월 6일, 파리 국제에너지기구(IEA) 본부에서 발표된 보고서 하나가 조용히 세계 에너지 지형의 전환을 알렸습니다. 제목은 「전기 2026(Electricity 2026)」. 그 안에 담긴 숫자는 냉담했습니다. 전 세계 전력 수요는 2025년 3.3%, 2026년 3.7% 성장. 지난 10년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속도입니다. 수요를 끌어올리는 힘은 세 갈래였습니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기차, 에어컨. 그리고 이 수요를 감당할 에너지원 중에서 가장 극적인 반등을 보인 것은 태양광도 풍력도 아니었습니다. 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우리가 수년 전 예측했던 원자력의 강력한 컴백이 이미 진행 중이며, 2025년 원자력 발전량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신규 원전 용량은 70기가와트 이상으로, 지난 3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22일 뒤인 2026년 2월 28일, 7기의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가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를 이륙했습니다. 18시간 무착륙 비행, 공중 급유 세 차례. 목적지는 이란의 나탄즈와 포르도. 탑재물은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재래식 무기인 GBU-57A/B, 30,000파운드짜리 대형관통폭탄(MOP, Massive Ordnance Penetrator) 14발이었습니다. 같은 날, 핵분열 기술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로 세계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전기를 만드는 얼굴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쓰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재가동을 위한 20년 전력구매 계약을 연장했고, 구글과 아마존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사들과 협약을 맺으며 AI 인프라 전력을 원자력으로 채우겠다는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미국 데이터센터들의 전력 소비는 이미 41기가와트로 5년 전의 2.5배에 달했고, 2030년까지 전체 미국 전력 소비의 9~17%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전기가 부족하면 AI가 멈추고, AI가 멈추면 경제가 흔들린다는 공식이 세계 기술 기업들을 원자력으로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폭탄을 만드는 얼굴이었습니다. 이 두 얼굴은 동전의 앞뒤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하나입니다. 우라늄-235 원자핵 하나가 중성자를 흡수해 두 개의 파편으로 쪼개질 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동일 질량의 석탄이 연소할 때의 수백만 배입니다. 이 과정을 천천히, 통제된 방식으로 진행시키면 원자로가 됩니다. 이 과정을 순식간에, 임계질량 이상으로 압축하면 핵폭탄이 됩니다. 메커니즘은 동일합니다. 속도와 밀도만 다릅니다. 문제는 연료에 있습니다. 원자로를 돌리려면 우라늄-235의 농도를 자연 상태의 0.7%에서 3~5%로 높여야 합니다. 이 농축 작업을 하는 원심분리기를 계속 돌려 농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그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원료인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HEU)이 됩니다. 원심분리기는 기계를 교체하지 않습니다. 돌리는 시간만 늘리면 됩니다. 이것이 '이중 용도(Dual-use)'라는 핵 딜레마의 본질입니다. 민간 원전 프로그램은 잠재적 핵무기 공장의 첫 단계입니다.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선언했습니다. 핵기술을 독점하는 대신 민간 전력 생산을 위해 퍼뜨리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기술 이전과 지원을 받아 원전 프로그램을 시작한 나라들 중에는 당시 미국의 친밀한 동맹이었던 이란이 있었습니다. 팔레비 왕정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그 프로그램을 물려받았습니다. 이란은 이후 사십여 년에 걸쳐 이 두 갈래 길의 경계를 오갔습니다. 민간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나탄즈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 수만 개의 원심분리기를 돌렸습니다. 2025년 5월, IAEA는 이란이 우라늄을 60% 농도까지 농축하고 있으며, "비핵무장 국가 중 60%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축적하는 나라는 이란이 유일하다"고 명시했습니다. 무기급은 90%입니다. 이란은 그 문턱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이 간격을 외교로 메웠습니다. 이란 핵합의(JCPOA)를 통해 이란은 농축 우라늄 재고의 97%를 해외로 반출하고 농축 농도를 3.67%로 제한하며 IAEA의 사상 최고 수준의 사찰을 수용했습니다. 핵기술을 무기의 길에서 전력의 길로 되돌려 놓은 협상이었습니다. 2018년 트럼프가 그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이후 이란은 단계적으로 농축 한도를 높였습니다. 20%, 60%. 사찰 카메라를 껐습니다. '핵 문턱 국가(Nuclear Threshold State)'라는 표현이 국제 비확산 커뮤니티에서 공식화됐습니다. 이란의 핵무기 제조 가능 시간, 즉 '브레이크아웃 타임'은 사실상 제로에 수렴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2월 28일, B-2 폭격기들이 나탄즈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인류가 1945년 이래 핵분열 기술을 통제하려는 70년간의 실험은, 이란이라는 나라의 역사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압축됩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약속이 협약의 파기와 함께 붕괴할 때, 기술은 한쪽 얼굴에서 다른 쪽 얼굴로 미끄러집니다. 전기를 만들던 기술이 폭탄을 불러들이고, 폭탄을 막으려는 폭격이 다시 핵확산의 불씨를 키웁니다. IEA 보고서는 "현재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99% 이상이 네 개 공급국에 집중되어 있으며, 러시아가 40%의 점유율로 단일 최대 공급자"라고 경고했습니다. 세계가 AI를 돌리기 위해 원자력으로 달려가는 속도와, 핵확산의 위험이 번지는 속도가 동일한 연료를 두고 경주하고 있었습니다.

31.2 전시 원전 공격의 파장

2026년 3월 21일 새벽,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이 이란 나탄즈 핵시설을 다시 강타했습니다. 이것은 2025년 6월 '미드나잇 해머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 이후 두 번째 타격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이스라엘 남부 하늘을 뚫었습니다. 미사일은 디모나(Dimona) 시내 주거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번졌습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디모나와 인근 아라드(Arad)에서 최소 18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디모나는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네게브 원자력 연구 센터'가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이 공식 인정하지 않는 핵무기 프로그램의 심장부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곳. 이란 국영 방송은 이 공격을 "나탄즈 핵시설에 대한 타격의 보복"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란 미사일이 이스라엘 핵시설 인근의 방어선을 뚫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IAEA는 핵연구센터 자체에 피해는 없었고 비정상적인 방사선 수치도 감지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미사일은 연구 센터로부터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조기 경보 시스템과 미사일 방어망이 이 지역에서는 허점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불과 하루 전 이란의 미사일 능력이 "파괴되었다"고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정확한 보도이지만, 전쟁의 논리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탄즈가 폭격받는다. 디모나가 미사일로 응답받는다. 이 교환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습니다. 핵시설이 전쟁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국제법은 이 상황을 명시적으로 금지합니다. 핵군축 단체 ICAN의 멜리사 파크는 "핵시설 타격은 국제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되며 방사성 오염으로 인해 인간 건강과 환경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법률이 전장에서 작동하지 않을 때, 억지력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심리적 공포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전기를 만드는 기계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양의 방사성 물질을 내장한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정상 가동 중인 원자로 하나의 노심에는 히로시마 원폭 수천 발 분량의 방사성 물질이 존재합니다. 외부 전력이 끊어지면 냉각 시스템이 멈추고, 냉각 시스템이 멈추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반복됩니다. 직접적인 타격 없이도 송전선 하나, 냉각수 공급원 하나만 파괴해도 노심 용융(Meltdown)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는 이 원리를 처음으로 전략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Zaporizhzhia) 원자력 발전소를 점령한 뒤 군사 장비를 배치하고 포격전의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원전을 직접 파괴한다고 위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럽 전체가 방사능 공포에 마비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그 공포 앞에서 주저했습니다. 이란은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해 같은 언어로 말했습니다. 이란 군 당국은 타격 발생 수일 전 이미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정권 교체를 시도한다면 디모나 핵시설을 표적으로 삼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군사적 선언이기도 했지만, 심리적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핵시설을 파괴하면, 당신들의 핵시설도 안전하지 않다.' 로버트 페이프(Robert Pape) 시카고 대학 정치학 교수는 이 역학을 '확전 함정(Escalation Trap)'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페이프는 TIME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확전 함정은 전술적 성공에 대한 극단적인 자신감이 적이 더 민족주의적으로, 더 공격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정밀 스마트 폭탄은 전술적으로 거의 100% 성공합니다. 그러나 목표는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격자가 100% 전술적 성공을 거두더라도, 정치는 거의 항상 공격자가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입니다." 나탄즈를 폭격하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후퇴합니다. 그러나 그 폭격은 동시에 이란 내부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강경파에게 "핵 억지력만이 생존 수단"이라는 논리를 선사합니다. 전술적 성공이 전략적 실패를 낳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덧붙습니다. 페이프는 서브스택 '확전 함정'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폭격은 시설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동한 물질의 파괴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전문 지식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정밀도는 시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핵분열성 물질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조용히 앉아 있지 않습니다." 2025년 6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이 단행된 직후, 미국 관리들 자신이 이란의 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인정했습니다. 포르도 타격 전 이란이 핵물질을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시인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위치가 파악되어 있던 핵물질이,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폭격은 핵시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설을 감시하던 IAEA 사찰단의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나탄즈 지상 시설의 파일럿 연료 농축 플랜트가 파괴되었으며 전기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지하 원심분리기들이 전력 손실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시설 내부에는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에서 나온 알파 입자와 불화물 화합물이 국소적으로 산포되었습니다. 방사선은 주로 알파 입자로, 흡입하거나 섭취할 경우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IAEA는 설명했습니다. 방사선이 시설 밖으로 유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의 이야기입니다. 국제핵안보커뮤니티 분석가들의 질문은 다음 번을 향했습니다. 이란은 2026년 3월 전쟁이 다시 시작되자 의회를 통해 IAEA와의 협력을 공식 중단시켰습니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알브라이트는 5개월에 걸친 현장 분석 결과, 나탄즈와 포르도, 이스파한의 주요 핵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약 440킬로그램의 60% 농축 우라늄 비축량의 상태와 위치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란은 이 물질에 대한 IAEA 검증을 거부했습니다. 440킬로그램의 60% 농축 우라늄은 90% 무기급으로 추가 농축하는 데 불과 몇 주면 충분합니다. 2025년 9월 그로시가 직접 말했습니다. 이란이 기존 비축 우라늄을 90%로 농축하기로 결정한다면 완료하는 데 수 주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쟁은 이란의 핵시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핵 역량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역량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3월 21일 디모나 인근에 떨어진 이란의 미사일은 그 불확실성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위협. 우리는 당신의 핵심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 그것이 방사능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와 결합할 때, 전쟁의 심리적 비용은 군사적 피해를 압도합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아 자하로바는 이란의 디모나 인근 타격이 "중동 전역에 걸친 파국적 재앙의 실질적 위험"을 제기했다고 발언했습니다. 러시아가 이란을 지지하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그 우려 자체는 지리를 초월합니다. 핵시설 주변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은 방어자와 공격자, 지지자와 반대자, 전선 안과 전선 밖의 구분을 모두 무효화하는 위험을 내재합니다. 원자력의 두 번째 얼굴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격납 건물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아닙니다. 방어망을 뚫고 들어온 탄도미사일이 핵시설 14킬로미터 앞에 떨어지는 순간, 세계가 가까스로 피한 그 재앙의 윤곽입니다.

31.3 핵확산과 우라늄 확보

2026년 3월, 미국 국방부 내부에서 전례 없는 작전 계획이 검토되고 있었습니다. 폭격기를 다시 보내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상군을 이란에 투입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목표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물리적 탈취였습니다. 공중 폭격만으로는 이 핵물질을 증발시킬 수 없습니다. 포르도를 타격하기 전 이란이 핵물질 일부를 이미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나탄즈에서 생산된 60% 농축 우라늄의 위치와 상태는 공격 이후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했던 이란과의 종전 협상 15개 항목 중 핵심은 이 물질의 즉각 이전이었습니다. 이란이 거부했습니다. 그 거부는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페이프 교수는 이 구조를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폭격은 이란 사회와 정권 내부에 민족주의를 주입합니다. 그 민족주의는 정치 공간을 좁힙니다. 강경파가 권위를 얻습니다. 비상 권한이 확장됩니다. 온건파는 반역죄 혐의에 직면합니다. 폭격은 정권의 역량을 빼앗는 게 아니라 국내 정치의 균형을 국가 쪽으로 재편합니다. 미국이 시작한 폭격이 이란의 핵 야망을 꺾기는커녕 그 의지를 더 굳게 만드는 역설. 그 역설 앞에서 워싱턴은 외교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손에 들게 됩니다. 지상군 투입 계획이 공개된 것은 워싱턴 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규모는 2,000명에서 3,000명. 제82공수사단 낙하산 부대원, 네이비씰, 델타 포스. 임무는 핵물질이 보관된 지하 터널을 직접 굴착해 우라늄 용기를 수습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의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탈취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그 물질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미래의 노력, 즉 IAEA의 검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탈취한 핵물질의 행방이 다시 불투명해집니다. 폭격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을 지상전이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증폭시킵니다. 군사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작전상의 문제는 더 직접적입니다. 수백 킬로그램의 우라늄은 특수 강철 방사능 차폐 용기에 담겨 있고 무게는 수 톤에 달합니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암반을 파헤치려면 중장비가 필요하고, 중장비가 작업하는 동안 특수부대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반격을 막아내야 합니다. 탈출 경로를 확보하려면 수송기가 강행 착륙할 임시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이란이 미리 부비트랩을 설치했거나, 진짜 용기와 구별할 수 없는 가짜 용기 수백 개를 섞어놓았다면 작전 시간은 치명적으로 늘어납니다. 이것은 '신속한 진입과 탈출'이 가능한 임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위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물리적 폭격으로도, 지상 작전으로도 없앨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란이 지금까지 축적한 핵 기술과 과학 지식입니다. 페이프는 이렇게 썼습니다. "공중 전력은 시설을 파괴합니다. 이미 이동한 물질의 파괴는 보장하지 않습니다. 과학 전문 지식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이란은 포르도 규모의 복합 시설이 없어도 60% 농축 우라늄 408킬로그램이 있다면, 훨씬 작은 미신고 시설만으로도 무기급 농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사찰단이 사라지고 물질의 행방이 불투명해지면, 추가 농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문제는 이란 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군비통제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 비확산정책 국장 켈시 데번포트는 2026년을 다룬 분석에서 이란 전쟁이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미치는 파급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비핵무장 국가들이 NPT가 자국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할 것이며, 이 불만이 전반적인 조약 이탈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핵확산의 위협은 이란 밖으로 번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 억지력의 안보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술적 핵확산 장벽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핵을 폭격으로 막으려 했는데, 그 폭격이 주변국들에게 '핵을 보유해야 폭격을 피할 수 있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조입니다. 이 역설은 더 넓은 지정학적 판의 움직임과 맞물립니다. IEA 비롤 사무총장은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40%를 러시아가 단독으로 장악하고 있음을 공식 경고했습니다. 러시아의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석유·가스 제재를 받는 동안에도 핵연료 공급망에서는 제재를 피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원자력 발전소들이 러시아산 저농축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너지 무기화의 가장 은밀한 형태가 핵연료 공급망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우라늄 생산지에서도 같은 그림자 전쟁이 벌어집니다. 프랑스 전력망의 70%를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고, 그 원전의 핵연료 공급을 상당 부분 책임져온 니제르에서 2023년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 정권은 프랑스군 철수를 요구하고 러시아의 군사 조직과 밀착했습니다. 서방의 전통적인 우라늄 공급망을 끊으려는 시도였습니다.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이란 전쟁이 핵 비확산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에서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이 갈등은 핵 문제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강화하고 협상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며, 더 넓게는 비확산 체제 자체의 신뢰성을 훼손할 것입니다. 전쟁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멈추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낸 결과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방이 불확실한 440킬로그램의 60% 농축 우라늄. IAEA 사찰 접근 차단. 이란 내 핵 개발 의지의 강화. NPT 체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회의. 그리고 핵 억지력의 필요성을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한 지역 강국들. 2015년의 합의가 외교로 이룩한 것을 2026년의 전쟁이 군사력으로 되돌리려 했습니다. 그 시도의 결산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숫자만 보면, 폭격은 시설을 무너뜨렸고 비확산 체제는 그보다 더 많이 무너졌습니다. 핵분열 기술의 두 얼굴은 이렇게 갈립니다. 하나는 AI 시대의 전력 수요를 채우는 원자로 안에서 조용히 타오릅니다. 다른 하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딘가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원심분리기가 다시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습니다. 어느 쪽 불꽃이 더 세게 타오를지는, 외교가 아니라 폭격으로 답을 구하려 했던 선택의 대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냉각탑과 풍차





제10부 에너지 전환의 지정학




제32장 탈탄소의 역설

32.1 재생에너지 시대가 석유 한 방에 흔들리는 이유

2026년 3월, 브렌트유가 배럴당 126달러를 넘어서던 날 베를린에서 기이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독일 연방의회 앞 광장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는 기후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경제부 청사에서는 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폐쇄된 석탄 화력 발전소의 재가동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같은 도시, 서로 얼굴을 마주칠 수도 있는 거리에서 벌어진 두 장면이 2026년 탈탄소 정책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이었습니다. 독일은 지난 20년간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에서 가장 과감한 탈탄소 실험을 해온 나라입니다. 총 5,700억 유로 이상을 태양광과 풍력에 쏟아부으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정치인들은 이 숫자를 들어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해방된 에너지 독립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2026년 봄, 그 선언의 껍데기가 벗겨졌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생각보다 단순한 수치 하나에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데이터를 보면,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Final Energy Consumption)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20%입니다. 나머지 80%는 전기가 아닙니다. 산업용 보일러에 직접 연소되는 천연가스, 트럭과 선박을 움직이는 디젤, 비행기를 띄우는 항공유, 비료 공장을 돌리는 메탄. 아무리 태양광 패널을 많이 깔고 풍력 터빈을 많이 세워도, 전기가 닿지 않는 이 80%의 세계는 여전히 화석연료의 물리적 연소 없이는 단 하루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후 운동가들이 환호하며 인용하는 재생에너지의 약진은, 엄밀히 말하면 에너지 소비 전체의 5분의 1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입니다. 이 20대 80의 비율이 왜 쉽게 바뀌지 않는지를 이해하려면 전기라는 에너지 형태의 물리적 특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기는 저장하기 어렵습니다. 액체 화석연료처럼 탱크에 담아 전 세계 어디로든 실어 나를 수 없습니다. 배터리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휘발유의 40분의 1에서 5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물리학의 벽 앞에서 대형 컨테이너선과 대형 항공기의 전기화는, 2026년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 가능한 선택지가 아닙니다. 세계 무역량의 80%를 실어 나르는 해운업은 여전히 벙커C유를 태워 움직이고, 하루 수백만 명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민간 항공은 항공유 없이 한 발짝도 떠오르지 못합니다. 더 근본적인 취약성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Intermittency)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의존에 있습니다. 바람이 멎고 구름이 낀 날, 재생에너지는 전력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현대 전력망은 언제든 즉각적으로 켜고 끌 수 있는 예비 전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탄소 배출이 많다는 이유로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고 이념적 반감에서 원자력 발전소마저 문을 닫으면서, 이 공백을 천연가스로 메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겉모양은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친환경 전력망이지만, 그 전력망의 마지막 안전망은 카타르나 미국에서 배에 실려 오는 액화천연가스(LNG)였습니다. 카타르는 세계 LNG 수출량의 약 4분의 1을 책임지는 나라입니다. 라스 라판(Ras Laffan) 단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단일 LNG 생산 기지로, 그 화물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유럽과 아시아로 향합니다. 2026년 이란 전쟁으로 해협이 막히고 라스 라판의 가동 리스크가 현실이 되자, 유럽의 천연가스 현물가격은 며칠 사이에 30%를 웃돌며 폭등했습니다. 에너지전환의 기수를 자처하던 독일과 프랑스의 공장들이 가동 중단을 고민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태양광과 풍력이 지붕과 해안을 뒤덮고 있었지만, 바람이 멎은 밤, 그 전력망을 지탱하던 것은 페르시아만의 천연가스였습니다. 이 역설의 뿌리를 캐보면 에너지 정책이 물리학이 아닌 정치의 언어로 설계되었다는 사실과 만납니다. 2050년 넷제로(Net-Zero),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45%. 이 숫자들은 기후과학이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거 공약과 국제 협약의 무대에서 탄생한 정치적 수치이기도 합니다. 어떤 총리도 자국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전환에는 수십 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오르고 산업 경쟁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대신 정치인들은 재생에너지의 극적인 성장 곡선만을 조명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20%라는 현실의 숫자는 조용히 묻어두었습니다.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 교수는 이 현실에 대해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역사를 보면,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지배적인 에너지원이 교체되는 데는 언제나 50년에서 10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새로운 에너지가 기존 에너지를 밀어내는 방식도 아니었습니다. 인류는 석유를 쓰는 지금도 산업혁명 절정기보다 훨씬 많은 석탄을 태우고 있습니다. 에너지는 대체가 아니라 추가로 쌓입니다. 그런데 2050년까지 화석연료를 전체 에너지 공급의 수십 퍼센트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선언은, 역사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속도로 에너지 인프라 전체를 갈아치우겠다는 의미입니다. 2026년 IEA의 분석을 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0년까지 화석연료의 세계 에너지 공급 비중은 80%에서 73%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7퍼센트포인트. 20여 년의 노력과 수십 조 달러의 투자가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그 7퍼센트포인트 사이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세계 경제는 여전히 심각한 충격을 받습니다.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의 37%를 공급하는 세계에서도, 화석연료 공급망 하나가 흔들리면 나머지 시스템 전체가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재생에너지의 성장이 화석연료의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성급하게 화석연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억제한 결과, 공급망 내 완충 여력(Spare Capacity)이 줄어들어 작은 충격에도 가격 변동이 더욱 급격해지는 역설이 만들어졌습니다. 2026년 봄, 브렌트유가 배럴당 126달러를 돌파한 이후에도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기는 멈추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덴마크 북해의 풍력 터빈은 그날도 바람을 맞아 돌아갔고, 캘리포니아의 태양광 단지는 오후 햇볕을 전기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도쿄의 화학 공장은 나프타(Naphtha,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탄화수소로 플라스틱과 합성섬유의 원료)를 구하지 못해 라인을 멈췄습니다. 방콕의 비료 공장은 암모니아 원료가 떨어져 출하를 중단했습니다. 뭄바이의 항공사는 항공유 값이 두 배로 뛰자 노선을 축소했습니다. 이것이 재생에너지 시대가 석유 한 방에 흔들리는 이유의 실체입니다. 전기 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과, 현대 문명이 기대는 물질적 토대 전체를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입니다.

32.2 그래도 석유가 필요한 곳들

2026년 3월 5일 아침,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리서치 팀은 긴급 보고서를 돌렸습니다. 제목은 "호르무즈 봉쇄와 석유화학 산업의 연쇄 위기"였습니다. 보고서의 첫 문장은 이랬습니다. "현대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 한 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황산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그날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의 주가가 동반 급락한 이유입니다. 이 문장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전기차 한 대를 만드는 물질의 세계를 한번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전기차의 배터리 핵심 소재인 코발트와 니켈은 대부분 콩고민주공화국과 인도네시아의 광산에서 캐냅니다. 이 광석을 배터리용 순수 금속으로 정제하는 공정에 황산(Sulfuric Acid)이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황산은 황(Sulfur)을 태워 만드는데, 그 황의 절반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와 가스 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아시아로 실려 옵니다. 해협이 막히면 황 공급이 끊기고, 황 공급이 끊기면 황산 가격이 뛰고, 황산 가격이 뛰면 배터리 광물 정제 비용이 올라가고, 결국 전기차 가격이 오릅니다. 탈탄소의 상징인 전기차가 탈탄소의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화석연료 공급망과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 교수가 지목한 현대 문명의 네 기둥, 즉 암모니아, 플라스틱, 강철, 시멘트는 각각의 방식으로 이 역설을 증명합니다. 먼저 암모니아입니다. 지구상 80억 인구가 먹는 식량의 절반 이상은 질소 비료 덕분에 생산됩니다. 질소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는 공기 중 질소와 수소를 고온 고압에서 결합시키는 하버-보슈(Haber-Bosch) 공법으로 만들며, 이 수소의 거의 전부를 천연가스에서 추출합니다. 세계 암모니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오만에서 나옵니다. 이들 나라의 천연가스가 막히면 비료 가격이 오르고, 비료 가격이 오르면 농부들은 사용량을 줄이고, 사용량이 줄면 수확량이 떨어집니다. 2026년 봄 호르무즈 봉쇄 이후 글로벌 비료 가격이 40%를 넘게 뛴 것은 이 연쇄 때문이었습니다. 플라스틱은 더 직접적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기반은 나프타(Naphtha)와 에틸렌(Ethylene)입니다. 이 물질들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옵니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산업 전체의 출발점으로, 비닐봉투, 페트병, 포장재, 의약용품, 자동차 부품, 전자기기 외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토대입니다. 그리고 그 에틸렌은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하는 '크래킹(Cracking)'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 공정 역시 막대한 에너지, 즉 또 다른 화석연료를 소모합니다. 석유가 사라진 세계에서 현재 형태의 플라스틱을 대체할 물질을 지금 기술로는 같은 규모로 생산할 수 없습니다. 강철과 시멘트의 현실은 더 냉혹합니다. 철광석에서 순수한 쇳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코크스(Coke, 제철용 유연탄을 가공한 탄소 덩어리)를 용광로에서 태워야 합니다. 이 공정에서 나오는 열은 섭씨 1,500도를 넘습니다. 전기로 이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지금 기술과 비용 수준에서 전 세계 연간 19억 톤에 달하는 철강 생산량 전부를 전기로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 선택지가 아닙니다. 시멘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석회석을 분해해 산화칼슘을 만드는 시멘트 소성로(Kiln)는 섭씨 1,450도까지 올라가야 하며, 이 열을 내는 주요 연료는 석탄과 석유 코크스입니다. 시멘트 제조는 원료 자체가 열분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기 때문에, 연료를 전기로 바꾼다 해도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네 가지 이외에도 석유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풍력 발전기 블레이드는 에폭시 수지와 폴리에스터 수지, 즉 나프타에서 뽑아낸 에틸렌을 기반으로 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만들어집니다. 태양광 패널의 핵심 봉지재(封止材)로 쓰이는 EVA 필름, 즉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는 역시 석유화학 공정의 산물입니다. 전기차 타이어의 합성고무는 석유에서 나오고, 그 타이어가 달리는 도로를 포장하는 아스팔트는 원유 정제의 찌꺼기인 역청(Bitumen)을 주원료로 합니다. 병원의 일회용 주사기, 링거 튜브, 수술 장갑이 플라스틱이고, 그 플라스틱의 분자는 원유에서 왔습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칩을 만드는 클린룸 안에서도, 세정제와 특수 화학물질 다수가 석유화학 공정의 생산물입니다. IEEE 스펙트럼에 기고한 글에서 스밀 교수는 5메가와트짜리 풍력 터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계산한 적이 있습니다. 기초 콘크리트에 쓰이는 강철 150톤, 나셀과 허브에 쓰이는 강철 250톤, 타워에 쓰이는 강철 500톤. 이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코크스를 사용하는 용광로가 필요합니다. 60미터가 넘는 블레이드 3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복합재료에는 원유 환산 약 170기가줄(GJ/톤)의 에너지가 녹아 있습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충분한 풍력 발전 설비를 구축하려면 원유 9,000만 톤 상당의 에너지가 그 설비 제작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스밀이 풍력 터빈을 두고 "화석연료의 구현체(Pure Embodiment of Fossil Fuels)"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2026년 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몇 주째 이어지면서 나프타 부족 현상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석유화학 단지에서는 에틸렌 크래커(Cracker,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하는 장치)의 원료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대한민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게 되자 정부는 비축 나프타 방출을 긴급 검토해야 했습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헬륨(Helium)도 공급 차질을 빚었습니다. 헬륨은 천연가스 채굴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카타르는 세계 3위의 헬륨 수출국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헬륨 공급처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미국산 헬륨 물량은 이미 전 세계 반도체 공장의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석유는 우리가 태워 없애는 연료(Fuel)이기 이전에,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물질(Material)입니다. 연료로서의 석유는 전기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암모니아, 플라스틱, 강철, 시멘트, 아스팔트, 합성고무, 윤활유의 원료로서의 석유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동일한 규모로 대체할 물질이 없습니다. 탈탄소를 향한 에너지 전환이 아무리 빨리 진행된다 해도, 이 물질적 의존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석유 공급망의 교란은 언제든 문명의 동맥을 직격합니다. 재생에너지의 시대라고 선언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선언이 현실이 되기까지 우리는 여전히 21마일의 수로 하나에 삶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습니다.

32.3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현실의 간극

2026년 3월, 브뤼셀의 유럽의회 복도에서 두 종류의 문서가 동시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후정책 담당 집행위원이 준비한 '그린딜(Green Deal) 이행 점검 보고서'였고, 다른 하나는 에너지장관들이 긴급 소집한 비공개 회의의 내부 메모였습니다. 전자는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향한 순조로운 진전을 보고했습니다. 후자에는 한 줄이 굵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상황이 4주 이상 지속될 경우, 독일과 이탈리아 일부 산업 지역의 천연가스 공급은 6월 이전에 위기 단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현실의 간극은 이처럼 문서 한 장 차이에 존재합니다. 선언의 속도와 물리적 현실의 속도 사이에 끼인 공간, 그 공간이 위기 때마다 나타납니다. 이 간극이 왜 생기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력망(Grid) 인프라의 현실입니다. IEA의 분석에 따르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가 넘는 송배전 인프라가 깔려야 합니다. 전선을 깔고 변전소를 짓고 계통을 안정화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실제 속도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 설치 속도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완공되고도 송전망 부재로 가동을 못 하고 대기 중인 재생에너지 설비가 1,650기가와트(GW)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독일의 전체 발전 설비 용량의 5배를 넘는 규모입니다. 발전기는 있는데 선이 없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새 고압 송전선로 하나를 건설하는 데 평균 10년에서 15년이 걸립니다. 환경 영향 평가, 주민 동의, 행정 허가, 법적 이의 제기, 착공, 완공. 이 사슬은 자금을 충분히 투입한다고 빨라지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고압 송전탑이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고, 이 현상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강하게 나타납니다. 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나라에서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는 거셉니다. 가장 강한 재생에너지 지지자도 고압 송전탑이 자기 집 뒤뜰을 지나는 것은 반대합니다. 전력망 확충보다 더 근본적인 간극은 에너지 저장 기술에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을 극복하려면 대규모 에너지 저장이 필수입니다. 배터리 저장 시스템(Battery Storage System)의 비용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전체의 전력 수요를 며칠치 저장하는 규모의 배터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2026년 현재 기술과 비용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50% 이상으로 올렸지만 여전히 바람이 잦아드는 겨울철 '둔켈플라우테(Dunkelflaute, 독일어로 어두운 무풍 상태)'가 찾아오면 석탄과 가스 발전소를 가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에너지 전환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간극은 지정학적 종속의 대상 교체입니다. 화석연료 시대의 에너지 안보 위협은 중동의 산유국과 러시아였습니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에너지 안보 위협은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의 공급망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Lithium), 코발트(Cobalt), 흑연(Graphite)의 정제 공정, 풍력 발전기와 전기차 모터에 반드시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원료인 희토류(Rare Earth Elements)의 채굴과 가공은 현재 중국이 전 세계 공급의 60%에서 9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탈탄소 가속이 곧 중국 의존도 심화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페르시아만의 석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한 에너지 전환이, 또 다른 단일 공급처에 대한 지정학적 의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2026년의 위기는 이 간극의 현실적 의미를 증명하는 검증 무대가 되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아프리카·남아시아·동남아시아·중남미 개발도상국들)의 반응을 보면 더욱 선명합니다. 이들 나라에서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탄소 감축이 아니라 에너지 빈곤 탈출입니다. 아직 전기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가 수억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선진국이 설정한 탄소중립 일정표를 자국에도 그대로 적용하라는 요구는 현실을 무시한 요구입니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입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자본 조달 비용이 선진국의 두 배에 달하고, 인허가와 기술 인력 확보도 훨씬 어렵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과 인도는 2026년에도 신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을 계속했습니다. 기후 목표의 언어와 에너지 현실의 물리학 사이에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2022년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그리고 2026년 호르무즈 위기는 모두 같은 교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외부 충격 앞에서 경제 전반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이 요구하는 처방은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현대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 공정의 탈탄소화, 에너지 저장 기술의 도약, 전력망의 대규모 확충, 핵심 광물 공급망의 다변화, 그리고 넷제로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필요한 기저 부하(Base Load) 전력의 확보. 이 모든 과제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기후과학은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옳게 지적합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의 속도는 과학자의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변압기의 납품 기간과 송전탑 건설 인허가 기간, 그리고 용광로와 비료 공장을 전기화하는 데 필요한 녹색 수소의 생산 비용이 결정합니다. 정치인들이 선언한 날짜와, 물리적 인프라가 갖춰지는 날짜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간극은 구호로 메울 수 없습니다. 2026년의 위기가 남긴 가장 쓴 교훈은 이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서두르면서 동시에 화석연료 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적대시한 결과, 세계는 구체제도 아니고 신체제도 아닌 가장 위태로운 전환기의 한가운데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석탄과 원자력이라는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스스로 걷어낸 채, 태양광과 풍력과 가스라는 불안정한 삼각형 위에 경제를 올려놓고, 그 가스의 마지막 보루가 막힌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옳습니다. 속도와 경로는 현실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정해야 합니다. 그 범위를 외면한 채 이상만을 앞세운 대가를, 2026년의 세계는 배럴당 126달러와 텅 빈 마닐라 거리와 멈춰선 독일 공장의 모습으로 치렀습니다. 석유 시대의 마지막 경고는 석유를 없애라는 신호가 아니라, 석유를 없애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라는 신호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로스코 풍력 발전 단지





제33장 초크포인트 경제학

33.1 호르무즈, 수에즈, 말라카, 밥엘만데브

2026년 3월 7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하루 동안 통과한 상업용 선박은 단 한 척이었습니다. 평소에는 138척이 지나가는 수로입니다. 그 하루의 침묵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텅 빈 AIS(선박자동식별시스템) 화면은 세계 경제가 얼마나 좁은 통로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클라우드로 국경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디지털 문명을 물리적으로 떠받치는 에너지와 원자재는, 수백 년 전과 똑같이 거대한 쇳덩어리 배에 실려 지구상에 몇 개 없는 좁은 병목을 통과합니다. 그 병목이 네 곳입니다. 호르무즈, 수에즈, 말라카, 밥엘만데브. 이 네 개의 수로는 세계 경제의 혈관 중에서도 가장 좁아지는 지점들입니다. 의학에서 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이 좁아지면 온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듯, 이 네 곳 중 하나라도 막히면 지구 전체가 발작을 일으킵니다. 2026년 이란 전쟁은 그것이 비유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IEA의 2025년 연간 데이터에 따르면,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하고, 전 세계 해상 석유 교역의 약 25%를 차지합니다. IEA의 2026년 2월 팩트시트는 2025년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량이 약 1,500만 배럴에 달했으며, 이는 전 세계 원유 교역의 34%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LNG도 예외가 없습니다. 카타르와 UAE의 LNG 수출 중 각각 93%와 96%가 이 해협을 통과하며, 이는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에 해당합니다. 호르무즈의 물리적 조건은 이 숫자들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이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이 21마일(34킬로미터)에 불과하며, 양방향 항로는 각각 2마일 폭의 통로로 구성됩니다. 이 4마일의 가항 수로(加航水路) 위로 매일 138척의 선박이 통과합니다. 그 가운데 60~70%가 유조선과 LNG 운반선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통과하는 수로이자, 가장 좁고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수로가 동시에 호르무즈입니다. 호르무즈를 빠져나가는 원유와 가스의 최종 목적지는 압도적으로 아시아입니다.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중국이 전체 물량의 37.7%를 받았고, 인도 14.7%, 한국 12.0%, 일본 10.9% 순이었습니다. 아시아 국가 전체를 합치면 호르무즈 통과 원유의 89.2%가 아시아로 향했습니다. 미국은 2.5%에 불과합니다. 셰일 혁명 덕분에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진 미국은 호르무즈가 닫혀도 당장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인도, 중국은 다릅니다. 이 나라들의 공장이 돌아가고, 전등이 켜지고,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호르무즈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목줄은 밥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눈물의 문')입니다.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과 아프리카 지부티 사이에 위치한 이 해협은 폭이 약 30킬로미터입니다. 전 세계 교역량의 약 12%가 이 해협을 통과하며, 하루 약 480만 배럴의 원유가 지나갑니다. 이 수로는 아라비아해에서 홍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가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해협을 거쳐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서 파이프라인으로 원유를 얀부 항구까지 옮기더라도, 그 원유를 싣고 유럽이나 아시아로 향하는 유조선은 밥엘만데브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목적지에 닿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목줄은 수에즈 운하(Suez Canal)입니다. 밥엘만데브를 통과해 홍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가 관리하는 이 운하가 나타납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항해 거리를 수천 킬로미터나 단축해 줍니다. 전 세계 컨테이너 해운의 약 12%가 이곳을 통과합니다. 수에즈가 막히면 유럽의 부품 공장이 멈추고, 아시아의 완제품이 유럽 소비자에게 닿지 못합니다. 2026년 3월, 후티 반군의 공격이 홍해를 위험지대로 만들면서 수에즈 운하의 일일 통행량은 평시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네 번째 목줄이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입니다.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에 뻗은 이 해협은 아시아의 에너지 핏줄입니다. 이 해협은 연간 6만 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며, 전 세계 해상 교역량의 약 25%를 처리합니다. 동북아시아로 수입되는 석유의 약 80%가 이곳을 지납니다. 중국에게 말라카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닙니다. 2003년 후진타오 주석은 이를 '말라카 딜레마'라 불렀습니다.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80%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데, 그 해협을 중국은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말라카의 가장 좁은 지점인 싱가포르 해협의 폭은 2.8킬로미터입니다. 이 좁디좁은 수로를 통해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의 산업이 숨을 쉽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해상 항행의 자유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중국이 일대일로(BRI)를 통해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와 미얀마 경유 파이프라인에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붓는 것도 모두 이 말라카 딜레마에서 비롯됩니다. CSIS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 해상 교역량의 60%, 중국 전체 에너지 공급의 60%가 이 해협에 의존합니다. 중국이 대만 문제로 미국과 전면 충돌한다면, 미 해군이 말라카를 봉쇄하는 순간 중국 경제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이 네 개의 목줄이 공유하는 공통된 본질이 있습니다. 인류는 우주 로켓을 쏘고 인공지능을 만들지만, 지구의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석유와 가스와 상품은 여전히 배에 실려 이 좁은 수로들을 지납니다. 21세기 글로벌 경제가 실은 몇 개의 협소한 지리적 병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19세기적 물류 구조 위에 서 있다는 사실, 그것이 2026년 전쟁이 세계에 들이민 청구서의 첫 번째 항목이었습니다.

33.2 하나가 막히면 다른 곳도 막힌다

2026년 3월 초,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호르무즈가 닫히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40년에 걸쳐 건설한 우회로,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이었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은 페르시아만 연안의 유전 지대에서 아라비아반도를 횡단하여 홍해 연안의 얀부(Yanbu) 항구까지 원유를 보내는 시설입니다. 사우디 아람코가 발표한 2025년 3월 기준 용량은 하루 최대 700만 배럴이며, 2026년 초 현재 실제 활용 가능 잔여 용량은 약 300~500만 배럴로 추산됩니다. 사우디는 이 파이프라인을 풀가동해 원유를 얀부로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각 아랍에미리트(UAE)도 하브샨-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을 통해 호르무즈 바깥의 푸자이라 항구로 원유를 우회시켰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의 함정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얀부 항구에서 원유를 싣고 아시아나 유럽으로 향하는 유조선이 통과해야 하는 곳이 바로 밥엘만데브 해협이었습니다. 호르무즈 봉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밥엘만데브로 돌리기 시작하자, 이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이 즉각적으로 부상했습니다. 문제는 이 해협의 바로 옆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Houthi) 반군이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후티 반군의 무기는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이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으로 후티의 대함(對艦) 탄도미사일 사거리는 200킬로미터에 달했고, 이는 홍해 남부와 밥엘만데브 해협 접근 수역의 모든 선박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 후티는 이란의 전쟁 개시와 동시에 홍해를 항행하는 상선들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리스 국적 화물선이 공격을 받아 불타는 영상이 유출되자, 얀부에서 짐을 싣고 출항하려던 유조선들과 해상 보험사들은 일제히 얼어붙었습니다. 사우디는 45년과 수십억 달러를 들여 호르무즈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비상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상구의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전쟁터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우회로를 따라 흘러온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뿐이었습니다. 호르무즈와 밥엘만데브가 동시에 차단될 경우, 전 세계 컨테이너 해운의 약 30%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2%가 정상 항로를 잃게 됩니다. 하루 약 100억 달러어치의 교역이 위험에 처하는 셈입니다. 밥엘만데브가 막히자 수에즈 운하는 자동으로 무력화되었습니다. 홍해로 진입하지 못하는 선박이 수에즈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은 산술입니다. 2024년 초 후티 공격이 본격화되었을 때 수에즈 운하의 컨테이너선 통행량은 90% 급감했습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통행료가 국가 재정의 핵심 수입원인 나라입니다. 통행량이 사라지자 이집트 경제는 외환 위기로 직행했습니다. 남은 선택지는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었습니다. 세 곳이 동시에 막힌 2026년 3월, 전 세계 해운 회사들은 19세기 이전 항법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희망봉 우회의 경제적 무게는 단순한 '돌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수에즈 경로 대비 약 3,500해리가 늘어나고, 아시아에서 유럽까지의 항해 기간이 10~14일 연장됩니다. 왕복 기준으로 한 항차(航次)당 연료비가 약 100만 달러씩 추가됩니다. 전 세계 컨테이너 선대 전체로 환산하면 연간 70~90억 달러의 초과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비용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복량(船腹量)의 사실상 소멸입니다. 배가 바다에 떠 있는 시간이 2주 늘어난다는 것은, 그 배가 출발지로 돌아와 다음 화물을 싣는 데 2주가 지연된다는 뜻입니다. 선박 한 척도 침몰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해운 물류 수송 능력이 20~30% 증발해 버린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상하이에서 로테르담까지의 컨테이너 운임은 2023년 대비 8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희망봉 우회 비용은 결국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왔습니다. 신발과 전자제품, 의약품과 플라스틱 제품, 식료품의 가격표에 물류비 상승분이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유조선의 연료비를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Hapag-Lloyd, MSC, CMA CGM, Maersk 같은 세계 최대 선사들은 2026년 2월 말 이후 홍해 운항을 전면 중단하고 희망봉 우회로 전환했습니다. Xeneta의 수석 애널리스트 피터 샌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군사 작전이 2026년 수에즈 복귀에 대한 모든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고 말했습니다. 사우디의 파이프라인 우회로가 결국 또 다른 전쟁터(홍해)로 원유를 들이밀었고, 그 홍해의 출구(밥엘만데브)는 예멘의 드론이 지키고 있었으며, 그 이후의 유일한 대안(수에즈)은 자동으로 마비되었고, 마지막 선택지(희망봉)는 전 세계 물류 비용을 수십억 달러씩 끌어올리는 동시에 공급망 자체를 20~30% 줄여버렸습니다. 호르무즈 기뢰 한 발이 만들어낸 도미노의 끝이 희망봉이었습니다. 알자지라의 분석처럼, 이것은 공급 차질이 아니었습니다. 상업의 심정 정지였습니다. 호르무즈 봉쇄 이후 유럽 은행들은 호르무즈 의존 화물에 대한 신용장 발행을 거부했고, 원자재 트레이더들은 강제 청산을 막기 위해 70억 달러의 긴급 신용을 급조해야 했습니다. 물리적 수로가 막히기 이전에 금융 시스템이 먼저 마비되었습니다.

33.3 해상 초크포인트의 군사적 취약성이 세계 경제의 구조적 리스크인 시대

2026년 3월 26일, 이란 의회에서는 낯선 법안이 논의되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료 법제화였습니다. 이란 의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는 영국 위성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에는 비용이 든다. 당연히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선박에서 통과료를 받아야 한다." 그는 이미 일부 선박들이 통과당 20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습니다.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는 지금까지 해협을 통과한 선박 중 적어도 두 척이 위안화로 통행료를 지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결제는 중국의 해상 서비스 회사가 중개했고, 이란 당국에 대한 대금 지급도 그 회사가 처리했습니다.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이 경악한 것은 통행료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지불 수단이었습니다. 달러가 아니라 위안화(人民幣). 미국 제재망 바깥의 결제 시스템인 CIPS를 통한 거래. CIPS는 2025년 한 해 동안 245조 달러 상당의 위안화 결제를 처리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43%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란이 40년 동안 준비해온 그 순간을 위해 중국은 차분하게 대안적 금융 배관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르무즈의 군사적 취약성이 왜 이 시대에 더 치명적인지는 비용의 산술로 설명됩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48시간 안에,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는 선택적 드론 공격, VHF 무선 경고 방송, 그리고 해상 전쟁 위험 보험의 연쇄 철수라는 세 가지 도구를 조합하여 해협을 사실상 닫았습니다. 탄도미사일도, 대규모 기뢰 부설도 필요 없었습니다. 나흘 만에 유조선 통행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습니다. 전쟁 위험 보험료는 사흘 만에 다섯 배로 뛰었고, 주요 해상 보험사들은 기존 보험을 해지하며 대략 60배 수준의 요율로 갱신 상품을 제시했습니다. 런던의 로이즈 합동전쟁위원회(Lloyd's Joint War Committee)는 즉각 아라비아만 전역을 분쟁 지역으로 재지정했습니다. 현대식 VLCC(초대형 원유 운반선) 한 척이 해협을 한 번 통과하는 데 보험료만 600만 달러가 청구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은 보험 인수 자체가 거부되었습니다. 이란은 배를 침몰시키지 않아도 됐습니다. 보험 시장이 먼저 해협을 닫았습니다. 이 사례는 민간 상업 인프라가 비정규전의 배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매개 자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다음 초크포인트는 기뢰나 미사일이 아니라 보험사 한 곳의 요율 재조정 통보로 닫힐 수 있습니다. 비대칭성의 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란과 후티가 사용한 자폭 드론 한 기의 가격은 약 2만~5만 달러입니다. 그 드론이 위협하는 VLCC의 가격은 1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 VLCC를 지키기 위해 미 해군이 발사하는 SM-6 요격 미사일 한 발의 가격은 400만 달러 이상입니다. 2만 달러짜리 드론을 막기 위해 400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소모하는 방어의 수학은, 아무리 강한 해군력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이란은 해협 통제를 위협하기 위해 수십 년을 준비했습니다. 기뢰, 미사일, 소형 고속정, 드론을 조합한 비대칭 전력을 갖춘 이란은, 특히 현재 이 지역에 기뢰 소해함(掃海艦)이 없는 미국을 상대로 비대칭 우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리적 조건이 이 비대칭성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암초와 섬들이 산재한 34킬로미터 폭의 좁은 수로에서는 이지스 구축함의 레이더가 해안 지형지물에 의한 반사파에 가려 소형 드론이나 해안 미사일 포대를 조기에 탐지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 좁은 수역에서 유조선 서너 척을 안전하게 호위하려면 최소 일곱 척에서 여덟 척의 구축함이 360도 전방위 방공망을 형성해야 합니다. 하루 138척이 드나드는 호르무즈의 물동량을 미 해군이 모두 호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2026년 호르무즈 위기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위협이 최소한의 실제 군사 행동만으로 보험 시장의 합리적 위험 회피 행동을 통해 상업적 봉쇄를 달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 모델은 해상 강압의 미래에 심대한 함의를 갖습니다. 재래식 해군력에서 열등한 국가조차도 중요한 초크포인트에 인접한 영토를 통제하고 드론이나 미사일 위협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치명적 비용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말라카 해협에서의 가능성도 전략가들은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충돌하는 시나리오에서, 미국이 말라카를 봉쇄한다면 중국 경제는 수개월 안에 마비됩니다. 반대로 중국이 남중국해 서측 수역을 위협하면 일본, 한국, 대만의 에너지 공급이 끊깁니다.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의 분석에 따르면, 말라카 해협 주변의 연안 국가들은 중립을 선언하더라도 군사적 억지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대국 간 충돌에서 해협 통제권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란은 초크포인트를 닫기 위해 전체적인 봉쇄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통과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불확실성은 에너지 시장에서 실제 봉쇄만큼이나 파괴적입니다. 2026년 호르무즈 위기가 세계에 남긴 가장 냉혹한 교훈은, 해상 초크포인트의 취약성이 이제 특정 지역의 안보 문제를 넘어 세계 경제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리스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세운 이후 80년간 이어져온 암묵적 합의가 있었습니다. 미 해군이 전 세계 해상 교통로를 공짜로 지켜준다는 합의, 그 보호 아래 세계 경제는 효율성을 극대화해왔습니다. 하지만 2만 달러짜리 드론과 보험 시장의 공포가 이 합의를 실질적으로 종료시켰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이 해협에 지혜와 질서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름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곳에 무역로를 세운 것이 아니라 봉헌했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딴 해협이 세계 질서가 직면한 가장 큰 취약점이 되었습니다. 해협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지리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밥엘만데브든, 말라카든, 수에즈든, 다음 위기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이름을 모릅니다.




제34장 핵심 광물과 배터리를 둘러싼 신냉전

34.1 리튬, 코발트, 니켈 — 하얀 석유의 시대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 열흘이 지났을 때 콩고민주공화국(DRC,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남부 카탕가 주의 코발트 제련소는 조용히 가동을 멈췄습니다. 폭격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파업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창고에 쌓인 황산(Sulfuric Acid)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 제련소의 공장장은 "우리는 전쟁 뉴스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페르시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황산이 오지 않으면 코발트도 없습니다"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코발트 공급의 70%가 이 DRC에서 나오고, DRC의 코발트 제련은 페르시아만 산유국의 탈황(脫黃)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즉 황을 원료로 만든 황산에 의존합니다. 글로벌 해상 황 거래량의 절반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의 정유 시설에서 나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해협이 닫히자, 이 연쇄는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 침묵으로 끊어졌습니다. 이것이 하얀 석유(White Oil) 시대의 진면목입니다. 20세기의 패권 경쟁이 검고 끈적한 액체, 즉 페르시아만의 원유를 향해 달렸다면, 21세기의 쟁탈은 리튬(Lithium), 코발트(Cobalt), 니켈(Nickel)이라 불리는 금속들을 향합니다. 세계가 화석 연료의 종말을 선언하고 전기차(EV, Electric Vehicle)와 에너지 저장 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로 나아가기 위해 꺼내 든 길, 그 길의 기저에는 이 세 가지 광물이 놓여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류를 이루는 삼원계(NMC, Nickel-Manganese-Cobalt) 배터리를 열어보면 이 광물들이 각자의 역할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리튬은 가장 가벼운 금속으로 배터리 안에서 전기를 머금고 이동하는 에너지 운반체 역할을 합니다. 니켈은 에너지 밀도를 결정합니다.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갑니다. 코발트는 이 불안정한 구조를 잡아주는 안정제입니다. 코발트가 없으면 배터리는 폭발 위험을 안습니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끊기면, 친환경 혁명의 심장은 멈춥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리튬 수요는 거의 30% 증가했고, 니켈, 코발트, 흑연, 희토류의 수요는 6~8% 늘었습니다. 이 성장의 대부분은 전기차와 배터리 저장 장치가 이끌었으며, 배터리 금속의 전체 수요 증가분의 85%는 에너지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수요가 급증한다고 해서 공급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광물의 지리는 잔혹하게 불균등합니다. 리튬의 절반 이상은 안데스 산맥 고산 지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댄 이 지역을 '리튬 삼각지대(Lithium Triangle)'라고 부르는데, 세계 리튬 매장량의 65%가 이 삼각형 안에 있습니다. 호주도 경암(Spodumene) 형태의 리튬을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그러나 채굴이 전부가 아닙니다. 리튬을 배터리에 쓸 수 있는 수산화리튬이나 탄산리튬으로 정제하는 과정의 6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자원은 남미와 호주에 있고, 그것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기술과 공장은 중국에 있는 기이한 구조입니다. 코발트의 지형은 더 극단적입니다. DRC는 전 세계 코발트 채굴량의 70% 이상을 공급하며, 글로벌 코발트 정제의 약 75%는 중국에서 이루어집니다. 2026년부터 DRC의 코발트 수출 할당량인 9만 6,600톤은 공급을 조이고 가격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전망되어, 중국의 정제 장악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니켈의 패권은 인도네시아가 쥐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배터리급 니켈의 50% 이상을 공급하는 핵심 국가입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단순히 광석을 수출하는 과거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2020년부터 원광 형태의 니켈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인도네시아 땅에 제련소를 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관철시켰습니다. 이 강경책은 통했습니다. 중국의 칭산그룹(Tsingshan Holding Group)을 필두로 한 중국 자본이 인도네시아로 몰려들어 니켈 제련소를 지었고, 인도네시아의 니켈 수출 수익은 2014년 29억 달러에서 2023년 344억 달러로 열 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여기까지가 평시의 이야기입니다. 2026년 2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이 배터리 공급망의 숨겨진 약점이 드러났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고순도 정제는 고압산침출(HPAL, High-Pressure Acid Leaching)이라는 공법을 씁니다. 광석에 어마어마한 양의 고온·고압 황산을 부어 니켈을 녹여내는 방식입니다. 황산 공급이 끊기자 인도네시아의 니켈 중간재 생산업체들은 장기 계약 이행을 중단했습니다. DRC의 코발트 제련소도 같은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탈탄소를 위해 달리던 세계가 정작 탈탄소의 핵심 광물을 얻기 위해 가장 더럽고 오래된 화석 연료 화학물질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전쟁이라는 도구로 폭로된 것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 비용의 70% 이상은 소재에서 나오며,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핵심 금속의 가격이 결정적입니다. 2025년 6월 저점을 찍은 탄산리튬 가격은 2025년 말 두 배로 뛰었고, DRC의 코발트 수출 할당량 통제로 코발트 가격은 2025년 300% 이상 급등했습니다. 이란 전쟁으로 황산 공급까지 흔들리자,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원가가 계획 대비 어느 수준까지 오를지 계산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것이 하얀 석유의 시대가 도달한 지점입니다. 자원은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지만,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은 중국이 독점하고, 가공에 필요한 화학 물질은 중동에 의존하며, 최종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다시 중국에 몰려 있습니다. 21마일의 수로 하나가 막히자, 이 연쇄는 아프리카의 제련소부터 아시아의 배터리 공장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배터리는 더 이상 주변부 부품이 아닙니다. 반도체와 동급의 전략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얀 석유의 시대는 화석 연료의 종말이 아니라, 화석 연료 공급망의 가장 깊고 보이지 않는 곳에 기생하며 성장하는 새로운 화학적 의존의 시작일 뿐입니다.

34.2 중국의 희토류 통제와 서방의 탈동조화

2025년 4월 4일, 중국 상무부는 짧은 공고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사마륨, 가돌리늄, 테르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이 일곱 가지 중중 희토류(Medium and Heavy Rare Earth Elements)와 이들을 포함한 영구자석 소재의 수출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의 '해방의 날' 관세 발표 직후였습니다. 공고문은 세 쪽짜리 행정 문서처럼 보였지만, 방위산업계는 즉시 그 의미를 읽었습니다. 테르븀과 디스프로슘은 F-35 전투기의 모터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레이더 시스템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핵심 원소입니다. 2025년 5월 기준, 중국은 최소 16개의 핵심 광물과 합금의 수출을 제한했으며, 이는 소비자 전자제품부터 F-35 전투기까지 미국과 동맹국의 공급망을 깊숙이 타격했습니다. 1992년 덩샤오핑이 남순강화에서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선언했을 때, 서방은 이 말을 수사(修辭)로 들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지정학의 설계도였습니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란타넘족 원소 15개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더한 17종의 원소를 가리킵니다. 이름처럼 절대적으로 희귀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경제성 있는 농도로 집중된 광맥을 찾기 어렵고,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막대한 방사성 폐수와 산성 폐기물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 지독하게 더러운 과정을 수십 년간 감수하며 세계 공급망을 장악한 나라가 중국입니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마운틴 패스(Mountain Pass) 광산을 통해 세계 1위의 희토류 생산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환경 문제와 가격 경쟁력 상실로 스스로 생산을 포기했고, 그 결과 중국은 희토류 채굴의 60% 이상, 제련 및 가공 단계의 85% 이상, 영구자석 생산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완전한 독점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 독점의 무기화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2010년에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도요타, 파나소닉 등 일본의 첨단 제조업체들은 수일 만에 공장 가동 중단 위기에 처했고, 일본 정부는 결국 선장을 석방했습니다. 자원이 군사력을 압도한 순간이었습니다. 중국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갈륨, 저마늄, 안티모니, 흑연, 텅스텐에 이르는 전략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며 서방의 방어산업을 조여왔습니다. 갈륨(Gallium)이 가장 치명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1차 갈륨 공급의 98%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갈륨은 질화갈륨(GaN, Gallium Nitride) 반도체의 원료로, 최신 전투기 레이더 시스템과 미사일 유도 장치, 5세대 통신 기지국에 들어갑니다. F-35의 AESA 레이더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교체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갈륨이 필요한데, 중국이 그 갈륨의 수도꼭지를 쥐고 있었습니다. 2024년 12월, 중국은 갈륨, 저마늄, 안티모니, 초경질 소재의 대미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도 차단하는 이른바 '역외 관할권(Long-arm jurisdiction)'을 최초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금지령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2025년 10월 30일 부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경제 합의에 도달했고, 그 직후인 11월 7일 중국 상무부는 희토류와 리튬 배터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를 1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틀 뒤인 9일에는 갈륨, 저마늄, 안티모니에 대한 미국 특정 규제도 같이 유예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이 1년짜리 유예는 통제의 포기가 아니라 전략적 리셋입니다. 갈륨, 저마늄, 텅스텐, 핵심 희토류가 다시 흐르는 동안 세계의 청정기술과 방위산업 제조업체들은 중국 이외의 대안을 1년 안에 구축해야 합니다. 중국은 수도꼭지를 열어두었지만, 수도꼭지를 언제든 잠글 수 있는 레버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서방 군수업체들에 대한 영구자석 소재 허가 통제는 일시 중단 대상에서 제외된 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서방의 탈동조화(Decoupling) 시도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유럽연합은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꺼내들었습니다. 자국 또는 우방국에서 채굴하고 가공한 광물을 쓴 전기차와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논리입니다. 미국, EU, 캐나다 등 G7이 조율된 방식으로 리튬, 흑연, 망간, 니켈, 코발트와 배터리 부품에 대한 공급망 지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만 해도 26개 프로젝트에 60억 캐나다달러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수치는 냉혹합니다. 미국 국방부는 2027년까지 중국 의존 없는 완전한 '채굴부터 자석까지(Mine-to-Magnet)' REE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20년 이후 4억 3,900만 달러 이상을 국내 공급망 구축에 쏟아부었지만, 마운틴 패스에서 생산한 네오디뮴-철-붕소(NdFeB) 자석은 2025년 말 기준 연 1,000톤 수준에 그칩니다. 중국의 NdFeB 자석 생산량은 연 13만 8,000톤입니다. 1,000 대 138,000. 이 숫자 차이가 탈동조화가 구호에서 현실로 오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광산은 완공까지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정제소, 양극재 공장, 음극재 시설, 분리막 생산 라인도 수년의 자본 투자와 기술 숙련이 필요합니다. 중국은 이 역량을 일찍부터, 국가 지원을 받아 구축했으며, 그 규모는 다른 나라의 경쟁 시설을 경제적으로 매력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서방이 아무리 보조금을 뿌려도 중국은 덤핑(Dumping) 물량으로 경쟁자의 싹을 밟아버릴 수 있습니다. 진입 장벽은 규제가 아니라 규모의 경제와 수십 년의 기술 숙련도 안에 있습니다. 2026년 이란 전쟁은 이 패권 경쟁에 또 다른 변수를 던졌습니다. 호르무즈 봉쇄로 에너지와 화학 원료 공급이 흔들리면서, 배터리 광물 공급망의 취약성이 군사 작전의 파급 효과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전쟁이 에너지 공급을 끊었고, 에너지 공급 차질이 탈탄소의 물리적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서방은 중국의 희토류 수도꼭지 하나를 잠시 열어두는 협상을 가까스로 타결하는 와중에, 배터리 광물 공급망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중동발 화학 원료의 단절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동시에 맞았습니다. 두 전선에서 두 개의 수도꼭지가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하나는 외교 협상으로 열었지만, 다른 하나는 아직 닫혀 있습니다.

34.3 글로벌 사우스의 딜레마

2025년 2월, 콩고민주공화국이 코발트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가격이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콩고 정부는 수도꼭지를 잠그는 방식으로 맞섰습니다. DRC는 전 세계 코발트 생산을 지배하고 있으며, S&P 글로벌에 따르면 입증된 매장량의 71%가 이 나라에 있습니다. 콩고는 수출 금지를 8개월간 유지했고, 10월 16일 금지를 해제하는 대신 할당량 제도로 전환했습니다. 2025년 나머지 기간에 1만 8,125톤, 2026년과 2027년에는 각각 연 9만 6,600톤으로 제한됩니다. 이는 2024년 DRC 생산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콩고의 도박은 치밀해 보였습니다. 세계 공급의 70%를 쥔 나라가 수도꼭지를 잠그면 서방과 중국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와 시진핑이 부산에서 손을 잡고 희토류 공급을 서로에게 재개하는 합의를 타결하자, 콩고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아프리카 다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양자 협의를 통해 광물 접근을 확보한 것입니다. 글로벌 사우스 광물 보유국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거대 강국들은 압박이 심해지면 서로 간에 거래를 우선합니다. 이것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처한 딜레마의 핵심입니다. 땅 밑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원을 팔아 진정한 부를 쌓는 것이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경제학은 이 현상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혹은 '풍요의 역설(Paradox of Plenty)'이라고 부릅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이 오히려 자원이 없는 나라보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부패와 내전이 심화되는 패턴입니다. 20세기 석유 시대에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가 겪었던 이 비극이 21세기 배터리 광물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원인의 첫 번째 층은 가공 역량의 부재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리튬과 코발트 정제의 60%를, 희토류 가공의 거의 90%를 담당합니다. 중국 광산 기업과 국영기업들은 DRC 광물 생산의 80%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방 광산 기업들이 부패, 노동 기준, 열악한 인프라, 낮은 수익률을 이유로 지난 10~15년간 남부 DRC에서 철수하는 동안 중국이 그 자리를 채운 결과입니다. 두 번째 층은 금융의 불균등입니다. 인공지능과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수조 달러가 투입되고 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떨어지는 청정에너지 투자 비중은 전 세계 총액의 2%에 불과합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에너지 프로젝트 자본 조달 비용은 선진국 대비 두 배 이상 높게 책정됩니다. 나라 리스크(Country Risk)라는 이름으로 붙는 이 프리미엄은 가난한 나라가 더 비싼 이자를 내야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고착화합니다. 세 번째 층은 수출 제한이 낳는 예상치 못한 역설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원광 수출 금지로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새로 지어진 제련소들의 환경 피해는 고스란히 인도네시아 땅이 짊어집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모로왈리 산업단지와 웨다베이 산업단지는 처리 용량을 늘리기 위해 에너지 집약적인 고압산침출 제련소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제련소들을 돌리는 전력은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나옵니다. 전기차라는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이 파헤쳐지고 석탄 발전소가 추가로 가동됩니다. 외부에서 볼 때 '그린 전환'이지만, 현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오염과 파괴입니다. 자원 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의 물결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2022년 리튬 국유화를 단행했고, 칠레는 2023년 국가가 참여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통해서만 리튬 채굴 계약을 체결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칠레 정부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와 함께 지역 리튬 동맹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는 2022년 미가공 리튬 수출을 금지했고 2027년부터 리튬 농축물 수출도 금지할 계획입니다. 나미비아는 2023년 리튬, 코발트, 망간, 흑연, 희토류 원광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원 민족주의가 실질적 번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원을 가공할 기술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미중 신냉전의 격랑에 다시 휘말립니다. 중국은 자원 민족주의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개발 목표에 맞춰 자본을 조정하고, DRC에서는 조용히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며 채굴권을 지켜냅니다. 중국은 환경 규제나 인권 문제에 덜 엄격하고 결정이 빠르기 때문에 개도국 정부와 쉽게 협의합니다. 반면 서방은 투명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 노동 인권을 투자 조건으로 내세웁니다. 도덕적으로 옳지만, 당장 자본과 일자리가 급한 글로벌 사우스 입장에서는 서방의 요구가 내정 간섭이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읽힙니다. 2026년 유럽연합이 본격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이 구조를 더욱 조입니다. 유럽으로 수입되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등의 제품에 탄소 배출량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이 제도는, 선진국 기준에서는 기후 정책이지만 개도국 입장에서는 녹색 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입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할 자본이 없어 석탄 화력을 쓸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국가들이 금속을 제련하면, 유럽은 그 금속에 높은 관세를 물립니다. 청정 에너지로 전환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탄소 비용부터 청구하는 셈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간의 거래로 광물 접근을 확보하는 동안, 서방의 아프리카 대안 투자에 대한 긴박감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수출 제한을 통해 가공 역량과 기술 이전,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DRC의 꿈은 현실로 전환될 수 없게 됩니다. DRC는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지만,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만으로는 처리 공장을 짓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자본이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가장 비참한 역설은 이것입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기후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가장 적습니다. 동시에 기후 위기를 해결할 배터리 광물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광물을 가공할 화학 물질과 자본은 서방과 중동에 의존해야 합니다. 청정 에너지 기술은 화석 연료 기반 기술보다 훨씬 더 광물 집약적입니다. IEA에 따르면 전기차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여섯 배 많은 광물이 필요하고, 풍력 발전은 가스 발전보다 아홉 배 많은 광물을 씁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광물이 많아질수록, 그 광물을 가진 가난한 나라들이 짊어야 할 채굴의 짐도 커집니다. 2026년 이란 전쟁이 터진 뒤, 코발트와 니켈 공급망이 황산 부족으로 흔들리는 동안, 유럽 전기차 업체들이 모인 로비 단체는 브뤼셀에서 긴급 성명을 냈습니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추가 보조금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카탕가의 코발트 제련소는 여전히 가동을 멈춘 채 있었습니다. 황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변화를 요청하는 성명과 가동이 멈춘 제련소. 이 두 장면 사이의 거리가 21세기 배터리 신냉전이 글로벌 사우스에게 만들어낸 현실의 폭입니다.



리튬 채굴 증발지(미국 네바다주)





제35장 에너지 안보의 재정의

35.1 98% 수입 의존의 필리핀에서 배우는 것

2026년 3월 25일, 마닐라 바클라란 성당 앞 광장은 조용했습니다. 수요일마다 수만 명이 몰려들어 형형색색의 꽃 노점상과 바비큐 냄새, 지프니의 경적 소리로 가득 찼던 그 광장이, 성주간(Holy Week)이 시작되는 수요일 오후에 묘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지프니 운전사 루벤 산토스는 이날 새벽 다섯 시에 차고에서 엔진을 걸었다가 그냥 시동을 껐습니다. 리터당 150페소를 넘어선 디젤 가격으로 하루 종일 달려봤자 기름값을 건질 수 없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하루 600~700페소를 손에 쥐었습니다. 지금은 연료비를 빼고 나면 200페소도 남지 않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필리핀 대통령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State of National Energy Emergency)를 선포한 것은 이날, 3월 25일이었습니다. 마닐라에서 공항까지의 26킬로미터 구간이 평소 두 시간이 걸렸지만, 선포 당일 이 길은 4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텅 빈 도로는 코로나 봉쇄 당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110호(Executive Order No. 110)는 "중동의 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 에너지 공급의 가용성과 안정성에 임박한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는 문구를 담고 있었습니다. 비상 기간은 일단 1년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가, 자국 영토에서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은 채, 순전히 기름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필리핀 역사에도, 세계 어느 나라의 기록에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필리핀은 석유의 98%를 중동에서 수입합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만에 국내 석유 비축량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인플레이션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습니다. 3월 20일 기준으로 필리핀 에너지부(DOE)는 국내 평균 연료 재고가 45일분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의 55~57일분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였습니다. 45일분이라는 숫자를 들으면 적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호르무즈가 다시 열린다는 전제 아래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해협이 계속 막혀 있는 상태에서 45일은 그냥 카운트다운입니다. 필리핀 에너지부 2024년 에너지 통계 소책자는 이미 1년 전에 호르무즈 봉쇄 시나리오가 필리핀에 미칠 충격을 수치로 정리해 두고 있었습니다. 원유 수입의 95% 이상이 페르시아만에서 온다는 사실,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 운송 부문이 필리핀 경제의 4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사실이 모두 거기에 있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문서는 있었습니다. 숫자도 있었습니다. 없었던 것은 그 숫자를 당장 행동으로 옮기는 긴박감이었습니다. 경고는 공문서 창고 안에서 잠자고 있었고, 위기는 예고도 없이 달려왔습니다. 3월 24일 기준으로 디젤 가격은 리터당 130페소(약 2.64달러)를 넘어섰고, 휘발유는 100페소(2.03달러)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비전통적 공급처를 상대로 긴급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페트론(Petron)은 미국의 30일 제재 유예 조치를 활용해 러시아산 원유 70만 배럴을 주문했습니다. 페소화는 달러당 60.30페소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달러가 비싸지자 원유를 살 때 지불해야 하는 페소 금액이 두 배로 뛰었습니다. 기름값이 올랐을 때 환율마저 무너지면, 그 충격은 단순 합산이 아니라 곱셈으로 작동합니다. 정부는 수도권 경전철(LRT, MRT)의 요금을 50% 할인했고, 대중교통 종사자 140만 명에게 1인당 5,000페소(약 83달러)의 긴급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에너지부는 200만 배럴의 긴급 비축물량 확보를 목표로 세웠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했습니다. 예산관리부는 말람파야(Malampaya) 가스전 기금에서 200억 페소(약 4,060억 원)를 긴급 방출하여 연료 확보에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소르소곤(Sorsogon) 주는 치솟는 기름값으로 인한 지역 경제 마비를 이유로 주 차원의 재난 상태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운송업 단체들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전국 파업에 나섰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가격 인상 통제에 실패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지프니 운전사 에밀리 루아도(Emily Ruado, 59세, 4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는 알 자지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에 10달러를 벌었는데, 지금은 기름값을 빼면 5달러도 안 남아요.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에요." 루아도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필리핀 서민들에게, 에너지 위기는 통계 속의 숫자가 아닙니다. 매일 저녁 식탁에 오르는 반찬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필리핀의 운송 부문은 단순히 가장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섹터가 아닙니다. 하루 4,000만 명이 이용하고 200만 명 가까이 종사하는 이 부문은 필리핀 경제의 순환계 자체입니다. 지프니가 서면 물건이 돌지 않고, 물건이 돌지 않으면 시장이 죽습니다. 라오스는 주 3일 수업제를 도입했습니다. 베트남은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일부 연료세를 4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했습니다. 태국 총리는 연료를 아끼고 사재기하지 말라고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아세안 전체가 비상시 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태양광 자원이 가장 균일하게 분포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2026년 기준으로 태양광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합니다. 운송 부문은 거의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필리핀이 가진 역설입니다. 매일 태양이 쏟아지는 군도에서, 사람들이 기름값에 짓눌려 아침밥을 굶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술과 자원은 있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긴박감이 없었습니다. 필리핀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정보 부족이 아닙니다. 정치적·제도적 도전의 문제입니다. 취약성을 공식 데이터에서 인식하는 것과 그 취약성을 충분한 긴박감으로 다루는 것 사이의 거리가, 위기 발생의 메커니즘이 잘 이해되고 지정학적 신호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도 좁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에너지를 외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는 강대국들의 싸움에서 가장 먼저 피를 흘립니다. 전쟁의 직접 당사국이 아님에도, 호르무즈 해협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나라 서민의 밥상이 먼저 흔들립니다. 이것이 에너지 종속의 본질이고, 필리핀이 세계를 향해 보낸 가장 선명한 경고입니다.

35.2 비축유 정책의 한계

2026년 3월 11일 파리.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본부에서 파티 비롤(Fatih Birol)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석유 시장의 도전은 전례가 없는 규모입니다. 그래서 IEA 32개 회원국이 전례 없는 규모의 긴급 공동 행동으로 대응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IEA 32개 회원국은 만장일치로 비상 비축유 4억 배럴(400 million barrels)을 시장에 방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것은 IEA가 창설된 1974년 이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동 방출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방출한 1억 8,200만 배럴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이었습니다. 발표 직후 브렌트유 가격은 119달러에서 잠시 90달러 초반대로 미끄러졌습니다.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각국 정부는 서방의 결속력이 시장을 안정시켰다고 자축했습니다. 그 안도감은 며칠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세계 석유 소비량은 하루 평균 1억 500만 배럴(105.17 mb/d)입니다. 4억 배럴은 글로벌 수요로 환산하면 고작 4일 치에 불과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하루 2,000만 배럴과 비교하면 20일 분량입니다. 에너지 전략가 나이프 알단데니(Naif Aldandeni)는 이 조치를 "큰 상처에 붙인 작은 반창고"라고 불렀습니다. 미국은 전체 방출량의 43%인 1억 7,200만 배럴을 120일에 걸쳐 방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일 단위로 환산하면 하루 140만 배럴입니다.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손실분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출 승인 이후 실제로 기름이 시장에 도달하기까지는 13일이 걸립니다. 파이프라인과 해운망, 정유 시설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는 2026년 2월 18일 기준으로 4억 1,540만 배럴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방출하기로 한 1억 7,200만 배럴은 현재 보유량의 41%에 해당합니다. IEA 전체 회원국의 비축유 1억 2,000만 배럴 중 4억 배럴을 방출하면 전체의 33%가 소진됩니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전 세계가 50년간 비상용으로 쌓아온 비축유의 3분의 1을 한꺼번에 쏟아붓고도,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있는 한 시장은 3주 후 다시 공황에 빠집니다. IEA의 공식 보고서는 솔직했습니다. "비축유의 공동 방출은 의미 있고 환영할 만한 완충재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분쟁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 한, 이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석유와 가스 시장에 대한 최종적인 충격은 군사 공격의 강도와 호르무즈 해협 운항 중단의 지속 기간에 달려 있습니다." 시장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억 배럴 방출 발표 직후에도 브렌트유는 100달러를 다시 돌파했습니다. 트레이더들은 4억 배럴이라는 숫자에 안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숫자가 20일짜리라는 것을 계산기 없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분야 컨설팅 회사 라이스타드(Rystad Energy)의 톰 라일스(Tom Liles) 연구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가 전쟁 이전에는 하루 1,400만 배럴을 수출했습니다. 사우디와 UAE의 우회 파이프라인을 통해 홍해와 오만만으로 하루 500만~600만 배럴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나머지 900만 배럴, 전 세계 공급량의 약 10%는 호르무즈가 열리지 않는 한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오일 전문가 나빌 알마르수미(Nabil al-Marsoumi)는 가격 급등의 성격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호르무즈 봉쇄는 시장의 기초 여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배럴당 40달러의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Geopolitical Risk Premium)을 추가했습니다. 전략비축유 방출은 그 프리미엄을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도구이지, 근본적인 시장 재균형을 가져오는 수단이 아닙니다." 물리적 한계는 또 있습니다. 비축유 방출은 LNG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전 세계 LNG 수출량의 20%가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IEA의 방출은 원유 시장을 겨냥한 조치입니다. 전기 생산과 난방에 쓰이는 가스 부족은 별도의 위기로 진행 중입니다. 비축유는 구조적으로 단기 충격 흡수기입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서방이 비축유 제도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랍 국가들이 수출 금지를 풀 때까지 버티기 위한 완충재였습니다. 몇 주, 길어야 몇 달의 공백을 메우는 다리였습니다. 그런데 2026년의 호르무즈 봉쇄는 다릅니다. 이란은 협상이 시작되어 군사적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해협을 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협상이 언제 끝날지, 조건이 무엇인지는 불투명합니다. 다리는 놓였습니다. 다리 건너편의 땅이 언제 나타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전략비축유 분석 보고서는 이 딜레마를 냉정하게 정리했습니다. "4억 배럴의 방출은 분쟁 해결 속도에 대한 계산된 도박입니다. 전쟁이 60일을 넘기면 비축유는 빠르게 고갈되고, 대안적 공급 개발은 인프라 제약으로 인해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32개국이 계속 방출에 합의를 유지하는 동안 국내 정치 압력과 전략 비축 적절성에 대한 개별 우려가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라피단 에너지 그룹(Rapidan Energy Group)의 밥 맥낼리(Bob McNally)는 시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트레이더들은 이제 계산을 마쳤습니다. IEA 방출은 기껏해야 호르무즈 운항 중단으로 인한 하루 1,500만 배럴의 원유와 정제유 공급 손실의 일부만 상쇄할 수 있습니다." 앤디 리포(Andy Lipow) 리포 오일 어소시에이츠(Lipow Oil Associates) 대표는 IEA 조치의 또 다른 의미를 지적했습니다. "IEA가 이 정도로 행동했다는 것은, 일부 시장 참여자들에게 분쟁이 수주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응급 처방이 시장에 공포를 주입하는 역설이 벌어졌습니다. 비축유 정책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그 50년 동안 세계는 비축유가 막아줄 것이라는 안도감 속에서 에너지 수입 의존 구조를 방치했습니다. 한국은 IEA 기준에 맞춰 비축유를 쌓았고, 일본도 그렇게 했고, 필리핀은 45일 치를 확보했다고 자위했습니다. 그 비축량은 이제 타이머처럼 소진되어 가고 있습니다. 4일 치의 전 세계 비축유로 한 달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어떤 경제학 교과서에도 굳이 적혀 있지 않은 상식입니다.

35.3 에너지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안보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이란 전쟁 이전까지 세 가지 우선순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경제 회복, 포용적 성장 의제 추진, 그리고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재정 확보입니다. 호르무즈 봉쇄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서로 충돌하는 경쟁 관계로 뒤바꿔놓았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무너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 보조금을 투입하면 사회 프로그램 재원이 고갈됩니다. 에너지 전환 투자를 늘리려면 당장의 위기 대응 예산이 줄어듭니다. 위기가 가져온 것은 선택지 자체의 소멸입니다. 한국은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원유의 70%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으로 들어옵니다. LNG는 전체 에너지의 19%, 전력 생산의 25%를 담당합니다. 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즉각 가스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습니다. 30년 만에 처음입니다. 전략비축유 방출에 참여하고, 석탄 발전 한도를 풀고, 원전 가동률을 80%까지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조치는 단기 응급처치입니다. 진단은 이미 나와 있었고, 처방도 알고 있었습니다. 실행하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한국의 나프타(Naphtha, 플라스틱·합성섬유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 수입 중 70% 이상이 중동에서 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러시아산이 26%를 차지했지만, 제재 동참 이후 빠르게 중동 의존도를 높였습니다. 이제 전쟁이 중동을 강타하자, 한국 기업들은 다시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재개를 정부에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프타 가격은 한 달 사이 50% 급등하여 톤당 875달러 선에 달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나프타 소비량의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하며, 한국은 그 60%를 페르시아만에서 들여옵니다. 나프타 공급 충격은 IV 주사액 포장재부터 쓰레기봉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약 포장 재고는 2~3개월 분량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항공유 주간 평균 가격은 배럴당 197달러로 한 달 만에 105% 뛰었습니다. 반도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피치(Fitch)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헬륨 부족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은 헬륨의 64.7%를 카타르(Qatar)에서 수입합니다. 대만도 카타르 의존도가 높습니다. 일본은 미국에서 절반, 카타르에서 28~33%를 들여오며 재고도 두 곳에 분산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충격이 작습니다. 헬륨 외에도, 한국의 브롬(Bromine) 수입 97.5%는 이스라엘에서 옵니다. 브롬은 반도체 식각 공정에 필수적인 소재입니다. 황산(Sulfuric acid)과 알루미늄은 중동 외 지역에서 들여오지만, 정밀 계측 장비의 상당 부분은 이스라엘 생산에 의존합니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분석은 핵심을 짚었습니다. "이란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AI 붐이 칩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대형 테크 기업들은 이미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첨단 메모리 칩에 대한 다년간 계약을 체결해 두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공급망을 흔들기 전부터 시장은 이미 빡빡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메모리 칩 생산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항로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일본과의 비교는 교훈적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일본은 이후 에너지원을 공격적으로 다변화했습니다. 핵 발전 용량을 늘리고, 전략 비축유를 쌓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일본은 한국에 비해 호르무즈 충격을 견디는 능력이 훨씬 높습니다. 같은 조건의 충격이 달리 작용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 에너지 안보를 어떻게 다르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국인들은 샤워 시간을 줄이고 낮에 스마트폰을 충전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일본은 화장지를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고 국민을 안심시켰습니다. 에너지 위기가 소비 심리와 생활 방식에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는 전쟁이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올해 평균 가격이 125달러를 기록한다면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카네기 보고서는 두 가지 긴급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수입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에너지 자원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기 반도체 클러스터에 3기가와트의 추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경기도와 한국전력공사가 새 송전선 건설에 합의한 것처럼, 인프라와 전력망 확충을 제도적으로 연계하는 것입니다. 미국산 에너지를 중동 대신 태평양 항로로 들여오는 공급망 전환, 원전 가동률 확대, 대안 에너지 인프라 구축 같은 장기 조치들이 이제 비로소 국가 안보의 언어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가 강제한 전환입니다. 에너지 다변화는 오랫동안 환경 운동의 언어로 이야기됐습니다. 탄소를 줄이고, 기후를 지키자는 목표 아래에서. 그 언어가 지금 바뀌고 있습니다. 에너지 다변화는 안보입니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 한 번에 반도체 공장이 멈추고, 지프니 운전사의 수입이 반 토막 나고, 주부들이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에너지는 한 줄기 항로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낙관론을 매일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수개월, 어쩌면 수년간의 경제적 고통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세계는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98% 의존이라는 구조, 4일 치에 불과한 비축유, 단 하나의 가스전에서 헬륨의 3분의 2를 사 오는 공급망은, 다음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이것을 반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클라란 성당 앞 광장은 언젠가 다시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루벤 산토스의 지프니도 다시 달릴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 위기가 왔을 때 그가 또다시 차고에서 시동을 끄는 아침을 맞이하느냐입니다.




제36장 한국의 선택

36.1 해상로 의존 구조와 전력 수요

2026년 3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 한 문장을 말했습니다. "호르무즈를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을 신속히 발굴하라." 담화는 30분이었지만, 이 문장은 30초 만에 전파를 탔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대체 공급선'을 말해야 하는 나라. 그것이 2026년 3월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9일째 되던 그날, 대한민국의 에너지 수급 상황을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입 원유의 70.7%가 중동에서 왔습니다. 그 중동 원유의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의 중동 수입 비중은 20.4%였습니다. 하루 석유 소비량은 290만 8,000배럴로 세계 8위 수준이었습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 이 숫자들은 30년 전의 수치와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을 만들었습니다. 그 기적의 엔진은 '가공 무역'이었습니다. 원자재를 사다가 정밀하게 가공해서 높은 값을 받고 파는 구조입니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실리콘을 사 왔습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철광석을 녹였습니다.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프타(Naphtha,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는 탄화수소 혼합물)를 들여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원료가 끊임없이, 싸게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향해 VHF 무선으로 통항 금지를 경고했습니다. 그 전제가 깨졌습니다. 해협이 막히기 전에도 징후는 있었습니다. 봉쇄 직후 로이터 통신은 최소 150척의 유조선이 해협 양쪽에서 대기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선박 추적 플랫폼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데이터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행량이 70% 급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평소 하루 50척 안팎이던 유조선이 0에서 1척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분석한 호르무즈 해협 통과 원유의 목적지는 이랬습니다. 중국 38%, 인도 15%, 한국 12%, 일본 11%, 기타 아시아 14%. 봉쇄가 현실화된 순간, 아시아 전체가 숨을 멈췄습니다. 한국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정부 비축유 약 1억 배럴, 민간 비축까지 합산하면 약 208일분이었습니다. UAE로부터 긴급 확보한 2,400만 배럴도 추가로 있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반년이 넘는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의 제임스 김 국장은 냉정하게 짚었습니다. 비축유가 있어도, 해협 접근이 장기 차단될 경우 전력 공급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생산·수출 역량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숫자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반도체(Semiconductor)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수출 효자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집약된 이 산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중동에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헬륨(Helium)이 그것입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Wafer,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얇은 실리콘 판)가 열에 의해 변형되는 것을 막으려면 초저온 냉각이 필수입니다. 이 냉각재의 핵심이 헬륨이고, 한국은 전체 헬륨 수입의 상당 부분을 카타르(Qatar)의 라스 라판(Ras Laffan) 산업단지에서 LNG를 생산할 때 부산물로 얻는 헬륨에 의존해 왔습니다. 브롬(Bromine)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도체 식각(Etching, 회로 패턴을 새기기 위해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공정) 공정에 쓰이는 이 원소는 이스라엘의 사해(Dead Sea)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2026년 전쟁이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산업 인프라를 타격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 라인은 직접 폭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원료 고갈이라는 조용한 위기와 마주했습니다. 비료도 있었습니다. 암모니아와 요소, 염화칼륨. 한국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이 농업 원자재들이 끊기면, 이듬해 봄 들판에 뿌릴 비료가 사라집니다. 에너지 위기가 식량 위기로 번지는 경로입니다. 황(Sulfur)도 있었습니다. 황산(Sulfuric Acid) 생산의 원료인 황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데, 호르무즈 해협 통과 원유의 감소는 곧 황 공급 감소로 이어지고, 황산이 줄면 배터리 제조도, 비료 생산도 흔들립니다. 산업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중동 지역 수입 의존도가 70%를 넘는 산업 핵심 품목만 40개 이상이었습니다. OECD는 이 사태로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하락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이 부르는 전력 수요의 폭발이 겹쳤습니다. 챗GPT 한 번의 질문은 구글 검색보다 10배가량 많은 전력을 씁니다. AI 연산을 담당하는 데이터센터(Data Center)들은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초대형 전력 소비 시설입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위탁 생산)를 돌리는 공장 라인 하나의 전력 소비량은 중소 도시 하나와 맞먹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 구조는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처럼 전기를 엄청나게 먹는 업종들로 짜여 있었습니다. 그 전기를 만들 LNG가 호르무즈에 갇혔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떠안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한국전력의 영업 적자가 5배 이상 폭증했던 기억이 다시 불려나왔습니다. 발전소를 돌릴 LNG가 부족해지면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치솟았고, 값싼 전기 위에 올려진 한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은 그 기반부터 흔들렸습니다. 2026년 3월의 한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는 표현을 수십 년 동안 들어왔습니다. 그 표현이 얼마나 뼈아픈 현실인지를,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한반도는 전력망 측면에서 섬과 다름없습니다. 러시아, 중국, 일본 어느 쪽과도 전력 계통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구와 산업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발전소는 동해안과 남해안에 몰려 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초고압 송전탑이 이어주는 구조입니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들여올 수도, 부족할 때 이웃 나라에서 빌려올 수도 없는 나라. 그것이 한국의 지리적 조건이 부과한 숙명이었습니다. 그 숙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외부에서 가져오는 '분자(Molecule)' 형태의 화석 연료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 만드는 '전자(Electron)'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2026년의 위기가 한국에 내놓은 청구서였습니다. 청구서의 금액을 따지기 전에, 먼저 현재 한국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봐야 했습니다. 30년 동안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같은 말이 나왔고, 또 다른 분쟁이 터지면 똑같은 말이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국회 안팎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36.2 유사시 에너지 공급 문제

2026년 3월 2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특별 리포트를 발표했습니다. "에너지 및 컨테이너 공급망의 물리적 단절 위기." 공문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직접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 리포트가 나온 날, 국내에서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오던 한국 국적 LNG선과 유조선들의 위치 정보가 지도 위에서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한국에 들이미는 위협은 두 겹입니다. 하나는 원유와 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국내에 있는 에너지 인프라가 유사시에 얼마나 취약한지의 문제입니다. 2026년의 위기는 두 번째 문제를 세상 앞에 꺼내 놓았습니다. 울산 앞바다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탱크 군락이 보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공장, 에쓰오일의 아로마틱 단지, 현대오일뱅크의 정제 시설이 울산만을 따라 이어집니다. 비슷한 풍경이 전남 여수와 충남 대산에도 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 및 석유화학 콤플렉스들이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평상시 이 밀집 구조는 효율의 극치입니다. 유조선이 항구에 닿으면 파이프라인으로 바로 원료를 받아 가공하고, 완성된 제품을 또 배에 실어 내보낼 수 있습니다. 물류비가 줄고, 공정 간 연결이 쉽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문법으로 보면 이것은 완벽한 표적입니다. 2019년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카이크(Abqaiq) 정유 시설에 드론 공격이 한 차례 가해졌습니다. 결과는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5%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의 정유 시설과 발전소를 저비용 드론으로 반복해서 타격했습니다. 2026년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이후 이스라엘의 드론이 테헤란 인근 고압 송전탑을 파괴했을 때 이란 수도 일대는 대규모 정전에 빠졌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저비용 드론이 러시아의 키리시 정유소를 20기 이상이 동시에 타격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기오염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이 모든 사례가 말하는 바는 하나입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격 목표는 전방의 병사가 아니라 후방의 에너지 인프라입니다. 한국의 에너지 인프라가 드론 위협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는 2026년의 위기가 들이닥치기 전까지 공개적으로 깊이 논의된 적이 없었습니다. 사태가 터진 뒤에야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원전방호강화법안이 그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한 에너지 핵심 시설에 대한 드론 방어 시스템과 방호 공백을 채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요한 법안이었지만, 타이밍은 이미 후행이었습니다. 정유 시설과 LNG 인수기지의 취약성은 그나마 눈에 보이는 문제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은 위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력망(Grid)이었습니다. 한국의 전력 계통은 중앙집중형 방사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소, 서해안의 대형 화력 발전소, 남해안의 복합 발전 단지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초고압 송전탑(765kV)을 타고 수도권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이 전기의 길목에 있는 핵심 변전소와 송전탑 몇 곳이 파괴되면, 발전소는 멀쩡해도 수도권 전체가 어둠에 잠깁니다. 765kV급 초대형 변압기는 주문 제작에 2년 이상이 걸립니다. 국내 제조 설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번 파괴되면 복구까지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습니다. 더 조용한 위협은 사이버 공간에서 옵니다. 한국의 에너지 인프라는 SCADA(원격감시제어, 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 시스템과 산업제어시스템(ICS, Industrial Control System)으로 운영됩니다. 이 시스템들은 인터넷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완벽하게 격리된 것도 아닙니다. 2026년 이란 전쟁 기간 중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해커 그룹들이 서방의 에너지 인프라를 상대로 무차별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사실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는 한국에게 이 위협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활발한 사이버 전력을 운용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시도, 금융기관 전산망 침투, 방산업체 기밀 탈취. 이미 수차례 실증된 능력입니다.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의 군사력이 그쪽으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에너지 제어망이 이중으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우려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항만 역시 있었습니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관문인 평택·인천항과 통영·광양의 LNG 인수기지가 일시에 기능을 잃으면, 비축유와 LNG가 창고에 있어도 꺼내 쓸 방법이 없습니다. 유조선이 입항하지 못하면 비축고는 그냥 시간 지연 장치에 불과합니다. 해상 운임이 이미 기존 대비 50~80%가 폭등했고, 전쟁 위험 보험(War Risk Insurance)은 사실상 인수 거부 상태였습니다. 우회 경로인 희망봉을 돌아오면 기존 25일이던 수송 기간이 35~60일로 늘어났습니다. 원유를 싣고 출발했어도 항구에 닿을 때쯤이면 이미 비축고가 더 빨리 비어가는 수학입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봉쇄 해제 후에도 정상화까지 봉쇄 기간의 2배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 달 막히면 두 달 더 흔들린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모든 취약성의 근원은 한 가지 구조적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효율을 위해 집중했다는 것. 정유 시설을 해안가에 모았습니다. 발전소를 대도시에서 멀리 세웠습니다. 송전망을 방사형으로 단순하게 뽑았습니다. 평상시 이 선택들은 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집중은 취약성의 동의어가 됩니다. 해결의 방향은 분산입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분배하는 노드(Node, 연결망의 교점)를 여러 곳에 나누는 것입니다. 전국의 산업 단지에 소규모 천연가스 발전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를 갖춘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소규모 전력망)를 구축하면, 중앙 계통이 흔들려도 각 지역이 며칠은 자력으로 버틸 수 있습니다. 군사 기지와 병원, 주요 정부 청사는 비상 발전 설비와 독립 전원망을 갖춰야 합니다. 항만에 드론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고, 사이버 방호를 위한 에너지 계통 망분리와 실시간 침해 탐지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비축유 계산에서 빠지는 항목들을 채워야 합니다. LNG 비축량은 52일분에 불과했습니다. 원유 208일분에 비하면 극명하게 짧습니다. LNG 저장 탱크 용량을 늘리는 것은 돈이 들지만, 해협이 막혔을 때의 손실에 비하면 작은 투자입니다. 2026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시나리오의 비상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비상계획이 서류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한국이 지금까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뒤로 미뤄왔던 청구서를 직접 앞으로 꺼내야 합니다. 에너지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군대도 경제도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2026년 이란 전쟁이 보내온 전보였습니다.

36.3 원전, 재생에너지, 가스의 균형

2026년 3월 31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신규 원전 건설 후보지 공모에 4개 지자체가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울산 울주군과 경북 영덕군이 대형 원전을, 경북 경주시와 부산 기장군이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을 신청했습니다. 중동 전쟁이 한창인 그날, 한국의 네 개 지자체는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겠다며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10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은 오랫동안 이념의 충돌이었습니다.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 안전이냐 경제성이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혔습니다. 한 정부가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추진하면, 다음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그 다음 정부가 다시 원전 생태계 복원을 선언하면, 에너지 산업계는 투자를 어느 쪽으로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원전 확대 논의 배경에는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안보 문제가 있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 전기차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이 에너지 공급 리스크에 쐐기를 박으며 추진에 속도가 붙은 것입니다. 2026년 이란 전쟁은 그 이념 논쟁을 잠시 옆으로 밀어놓았습니다. 호르무즈가 막히자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LNG가 안 들어오면 발전소는 어떻게 돌리는가. 원유가 안 들어오면 대체 전력을 어디서 구하는가.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원자력이었습니다. 연료인 우라늄(Uranium)은 카자흐스탄, 캐나다, 호주 등에서 옵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관계없는 경로입니다. 한 번 장전하면 수년간 연료 재공급 없이 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후나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됩니다.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 RE100(Renewable Energy 100%, 재생에너지 100% 사용 기업 이니셔티브) 등 글로벌 환경 규제와도 충돌이 적습니다. 원자력은 앞으로도 견고한 저탄소 전력원으로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30% 수준의 기저부하(Baseload, 수요 변동과 무관하게 항상 공급되어야 하는 최소 전력량)를 담당하여 그리드 보호, 에너지 안보, 산업경쟁력 및 에너지 복지에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원전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Barakah) 원전을 짓는 과정에서 공기(工期)를 지키고 비용을 예산 내에서 통제하며 세계에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한수원은 조만간 원전 30기를 보유한 거대 기업이 될 예정입니다. 이미 원전 전력 규모로는 세계 3위 수준입니다. 정부는 2038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5.2%로 확대하고 최소 1기의 SMR을 포함한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번에 추진되는 대형 원전 2기는 국내 33·34번째 원전이 됩니다. SMR은 2028년까지 설계 인가를 받고, 2030년까지 건설 허가를 확보해 2035년 가동을 목표로 합니다. SMR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대형 원전의 한계를 돌파하기 때문입니다. 300MWe(메가와트 전기, Megawatt electric) 이하의 소형 원자로로,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 기간이 짧고 입지 제약이 적습니다. SMR의 가장 큰 강점은 모듈 단위로 운송 및 설치가 가능하여 건설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 크다는 점입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의 발전량이 뚝 떨어지는 야간이나 흐린 날, 그 빈틈을 정확하게 채우는 역할이 가능합니다. 한반도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를 놓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분산형 전원으로서 가치가 큽니다. 그러나 SMR 역시 만능이 아닙니다.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의 첫 상용 프로젝트가 초기 예상보다 건설 단가가 2배 이상 치솟아 중단된 사례는 SMR의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음을 보여줬습니다. 규제 인허가 체계는 여전히 대형 원전 중심으로 짜여 있어 SMR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 처리 문제는 국민의 수용성을 계속 시험합니다. 국내에서 반드시 한 기를 먼저 지어야 수출도 가능한데, 그 첫 기를 어디에 짓느냐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은 식지 않습니다. 원전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재생에너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태양광과 해상 풍력은 한국이 보유한 유일한 '국산 에너지'입니다. 수입이 필요 없습니다. 분산 전원이기 때문에 송전망 집중에 따른 취약성도 줄여줍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생존을 위해 RE100 이행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그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요구가 이미 고객사들로부터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지리적 조건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불리합니다. 일조량이 독일보다 많지 않고, 풍량은 북해 연안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산지가 많고 해안선 인근에 군사 제한 구역이 많아 입지 확보도 쉽지 않습니다. 주민 수용성 문제로 태양광 단지는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빚습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발전량 변동성이 커져 계통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추가 비용이 올라갑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Intermittency,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특성)을 메울 방법도 필요합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전력 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기술)이 그 답입니다.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기술로 송전 손실을 줄이고,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지능형 전력망)를 구축해 전력망 전체의 효율을 높여야 합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100GW로 설정하며 이를 위한 전력망 확충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목표는 야심찹니다. 그러나 목표와 실행 사이의 거리는 멀었습니다. 전력망 확충 속도가 재생에너지 증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만들어진 전기가 계통에 연결되지 못하고 버려집니다. 실제로 이미 제주도에서는 태양광 발전 과잉으로 인한 출력 제한 사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천연가스(LNG)는 어디에 위치할까요. 원전이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담당하고 재생에너지가 낮 시간대의 피크 전력을 담당할 때, LNG 발전소는 그 사이의 빈틈을 빠르게 채우는 '피크 보조원(Peaker Plant)'으로 기능합니다. 재생에너지가 갑자기 줄거나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치솟을 때 수십 분 안에 가동할 수 있는 유연성은 LNG 발전의 고유한 장점입니다. 이것은 에너지 전환의 완성 이전까지 반드시 필요한 다리입니다. 다만 그 LNG를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바뀌어야 합니다. 2026년 3월 31일, 러시아산 나프타 선적 2만 7,000톤이 한국에 도착하여 대산 석유화학 단지로 보내졌습니다. 중동의 공급이 막히자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의 LNG 수출 터미널, 호주 북서부 대륙붕,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모잠비크. 이 경로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습니다. 카타르와 이란으로 들어가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두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 다변화에는 비용이 붙습니다. 먼 곳에서 오는 LNG는 가깝게서 오는 것보다 운임이 비쌉니다. 장기 계약을 맺으면 안정성이 높아지지만 유연성이 줄어듭니다. 해외 자원 개발(Upstream) 사업에 직접 지분 투자를 단행하면 비상시 자국으로 원료를 끌어올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지만, 초기 투자 규모가 큽니다. 한국석유공사(KNOC, Korea National Oil Corporation)와 한국가스공사(KOGAS, Korea Gas Corporation)의 역할이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국가가 직접 에너지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종전 여부와 무관하게 원유와 원자재의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대체 루트를 확보하는 구조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원전, 재생에너지, 가스. 세 가지 에너지원의 균형은 정해진 정답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지리, 기술력, 경제 규모, 안보 환경에 맞게 비율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한국의 조건은 분명합니다. 섬처럼 고립된 전력망. 수입 에너지 의존도 93.7%. AI와 반도체가 이끄는 폭발적인 전력 수요 증가. 좁은 국토와 재생에너지 입지의 제약.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운영 기술과 배터리, 조선, 에너지 기기 제조 능력. 이 조건 안에서 한국의 에너지 믹스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원전이 30% 수준의 기저 전력을 안정적으로 담당하고,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비중을 늘려 변동성 속에서도 탄소 없는 전력 공급을 이어가고, LNG 가스발전이 그 사이를 유연하게 메우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핵심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스마트 그리드와 에너지저장 시스템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투자 없이는, 원전을 10기 더 짓고 태양광 패널을 백만 장 더 깔아도 계통이 버티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정치적 일관성입니다. 에너지 인프라는 정권 5년의 시간 단위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원전 한 기를 짓는 데 최소 10년이 걸립니다. 해상 풍력 단지를 만들려면 수년간의 환경 평가와 주민 설득 과정이 필요합니다. LNG 터미널을 하나 짓는 데도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뒤집히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영원히 그 자리를 맴돕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던 2026년 3월의 경험은 한 가지를 증명했습니다. 에너지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이기 전에 살고 죽는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살고 죽는 문제는 이념 논쟁의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은 이미 SMR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삼성물산은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했고,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핵심 기기 제작 역량을 갖춰 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2038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5.2%로 올리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이라는 목표도 공식화됐습니다. 대형 원전 신규 건설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에서 찬성이 70%를 넘었습니다. 숫자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속도와 실행이었습니다. 다변화라는 단어는 쉽습니다.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십 년간 구축된 공급망, 계약 관계, 인프라를 바꾸는 일은 하나의 선언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2026년 3월의 대한민국은 그 어려운 일을 미룰 수 있는 여유를 잃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기회비용을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30년간 에너지 다변화를 미뤄온 비용이 단 한 달 만에 청구서로 날아들었습니다. OECD가 추산한 한국의 성장률 하락 0.4%포인트. 제조업 생산비 11.8% 상승. 원화 가치 폭락. 코스피 선물 5.25% 하락.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이 '처음 있는 일'로 뉴스가 되는 나라. 이 숫자들은 30년의 제자리걸음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이제 한국은 선택해야 합니다. 해협이 다시 열리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 충격을 기억하며 실제로 구조를 바꿀 것인지. 답은 질문 안에 있습니다. 해협은 다시 막힐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호르무즈가 아닌 말라카(Malacca) 해협일 수도 있고, 바브엘만데브(Bab el-Mandeb) 해협일 수도 있고, 남중국해일 수도 있습니다. 초크포인트(Chokepoint, 해상 수송로에서 지리적으로 좁아지는 병목 지점)는 세계 곳곳에 있고, 그것들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30년 후 다음 세대가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느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에필로그 해협이 열리는 날, 그리고 열리지 않는 세계

2026년 3월 31일 오전 9시(UTC 기준),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 1층 인수 데스크의 화면에는 숫자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6. 전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의 수입니다. 31일 전, 에픽 퓨리 작전이 이란을 강타하기 하루 전인 2월 27일, 같은 화면에 찍힌 숫자는 138이었습니다. 전쟁 전 하루 평균 통과량의 4%만 남은 셈입니다.

6이라는 숫자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중국 국적 벌크선 두 척, 인도 국적 LPG 운반선 한 척, 파키스탄 국적 유조선 한 척, 이란 국적 화물선 두 척. 이 배들이 공유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가 운영하는 '통행 허가 시스템'을 통해 사전 승인을 받았다는 점. 통행료는 선박당 200만 달러. 결제 통화는 중국 위안화(Yuan). 이 여섯 척의 배는 국제법이 보장하는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 아닙니다. 이란이라는 국가의 허가를 사서 지나간 것입니다.

같은 시각, 해협의 양쪽에는 약 2,000척의 선박이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아르세니오 도밍게스가 알자지라에 전한 숫자입니다. 페르시아만 안쪽의 사우디, 쿠웨이트, UAE, 카타르, 이라크 항구에서 원유와 LNG를 싣고 나가지 못하는 유조선, 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그리고 해협 바깥 오만 해에서 기다리며 연료를 태우고 있는 배들. 4만 명의 선원이 바다 위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이미 한 달째 같은 좌표에서 닻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여기서 멈춥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폭격 시한을 4월 6일로 연장했고, 이스라엘은 이스파한의 군사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자국 해군사령관의 사망을 확인하면서도, 위안화 통행료 시스템을 의회 입법으로 공식화하겠다는 방침을 꺾지 않았습니다.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예가 중재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직접 대화는 없었습니다. 양쪽 모두 상대가 먼저 양보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기록한 것은 결말이 아닙니다. 구조입니다.

21마일의 수로가 닫혔을 때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벌어짐의 메커니즘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 속에서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고, 어떤 것은 이 전쟁이 처음 밝혀낸 것입니다.

첫째. 보험이 해협을 닫았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협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봉쇄할 해군력은 없었습니다. 미 해군이 이란의 수상 전투함 대부분을 격파한 뒤에도 해협은 닫혀 있었습니다. 전쟁 보도를 따라가면 미사일과 드론과 기뢰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해협을 닫은 것은 런던과 취리히의 보험 인수자들이었습니다. 전 세계 해상 보험 시장의 90%를 인수하는 12개 보험 클럽(P&I Club) 중 7곳이 72시간 안에 전쟁 위험 보험을 취소했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배는 항구를 떠날 수 없고, 항만에 접안할 수도 없으며, 화물을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이란은 드론 몇 기로 보험료를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물리적 봉쇄가 아니라 보험 시장의 리스크 계산이 해협을 닫았습니다.

이것은 이 책이 기록한 핵심 발견 중 하나입니다. 세계 에너지 공급의 안전은 미 해군의 항공모함에만 달린 것이 아닙니다. 런던 시티의 보험 데스크에도 달려 있습니다. 보험 시장은 전쟁을 이진법으로 처리합니다. 위험이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인수를 거부합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이 이진법의 구조를 이해하는 국가는, 물리적 해군력 없이도 해상 봉쇄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 파이프라인으로는 바다를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 일일 용량 최대 700만 배럴), UAE의 아부다비-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일일 180만 배럴),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명목 160만 배럴, 실제 가동 20만 배럴). 세 개를 합산해도 900만 배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매일 통과시키던 물량은 2,000만 배럴입니다. 사우디 아람코가 3월 10일에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500만 배럴을 수출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1월과 2월의 실제 파이프라인 유량은 하루 77만 배럴에 불과했습니다. 명목 용량과 실제 가동 사이의 간극. 그리고 LNG는 파이프라인으로 보낼 수 없다는 물리적 제약. 카타르의 LNG 수출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해상 운송 외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IEA는 역대 최대인 4억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했습니다. 미국이 1억 7,200만 배럴, 한국이 2,246만 배럴, 일본, 독일, 프랑스가 분담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 침공 당시의 1억 8,270만 배럴을 두 배 넘게 뛰어넘는 규모였지만, 4억 배럴은 호르무즈 해협의 일일 통과량 기준으로 20일치에 불과했습니다. ING의 전략가 프란체스코 페솔레의 표현을 빌리면, "물총이지 바주카가 아니었습니다."

비축유 방출이 사들인 시간은 3~4주였습니다. 그 시간이 끝나갈 무렵인 4월 중순이면, 석유 업계 분석가들이 경고한 대로 순 공급 부족이 하루 800~1,000만 배럴로 불어날 것이었습니다.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피치는 이를 "사상 최대의 원유 공급 손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 석유 너머의 세계가 무너졌습니다.

이 책이 제15장과 제33장에서 추적한 내용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서 멈춘 것은 석유만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비료 교역의 약 30%가 이 수로를 지나갔습니다.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은 글로벌 요소(Urea) 수출의 30~35%, 암모니아 수출의 20~3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질소비료 생산은 천연가스를 원료로 쓰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료 생산 비용을 이중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뉴올리언스 비료 허브의 요소 가격은 전쟁 전 톤당 475달러에서 680달러로 뛰었습니다. 문제는 시기였습니다.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와 대두 파종 시기가 코앞이었습니다. 석유와 달리 비료에는 국제적으로 조정된 전략 비축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유가만 올린 것이 아니라 식량 가격의 상승 압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프타(Naphtha)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중동산 나프타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해협 봉쇄 직후 한국의 석유화학 기업들은 가동률을 50%까지 줄였습니다. 일본도 나프타 공급의 42%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었기에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대서양평의회(Atlantic Council)의 분석이 지적한 것처럼, 중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석탄 기반 공정에 의존하고 있어서 호르무즈 봉쇄의 직격탄을 피했습니다. 아시아의 석유화학 생산이 위축되는 사이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알루미늄, 헬륨, 황(Sulfur). 이들의 공급망도 흔들렸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황 공급의 "거의 완전한" 단절이 방위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에너지 위기로, 에너지 위기가 산업 위기로, 산업 위기가 식량 위기로 번지는 연쇄. 이 도미노의 첫 조각이 21마일 폭의 수로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 책의 핵심 논지입니다.

넷째. 이란은 해협을 봉쇄한 것이 아니라 사유화했습니다.

이것이 2026년의 위기를 1973년 아랍 석유 금수나 2022년 러시아 가스 차단과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지점입니다.

1973년에 사우디는 자기 석유를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2022년에 러시아는 자기 가스관을 잠갔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자국이 생산한 자원을 무기로 쓴 것입니다. 2026년 이란은 다른 나라들의 석유와 가스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를 점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출구를 통과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매겼습니다. 선박당 200만 달러. 위안화 결제.

이란 의회의 안보위원회는 통행료를 법제화하는 법안을 승인했고, 시행을 위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CNN의 계산에 따르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LNG 운반선에 현재의 요율을 적용하면 이란의 월수입은 6~8억 달러에 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서 연간 벌어들이는 약 90억 달러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인공 수로이고, 이집트가 건설하고 운영하는 시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자연 수로이고, 국제법상 모든 선박에 무해통항권이 보장되는 국제 해협입니다. 이 두 가지 사이의 법적, 윤리적 간극은 엄청납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최고경영자 술탄 알 자베르는 이란의 해협 통제를 "경제적 테러리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인질로 잡으면, 모든 나라가 주유소에서, 식료품점에서, 약국에서 몸값을 치르게 됩니다." 한편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치는 해협에 대한 주권 행사가 이란의 "자연적이고 법적인 권리"라고 반박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논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란이 해협에 대한 통제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미국이 해협을 군사적으로 열어젖히더라도, 이란이 산발적 공격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는 한 보험 시장은 경계를 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곳이 보입니다. "세계의 동맥이 멈출 때, 패권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해협이 열리는 날이 오더라도, 해협이 닫히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섯째.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미국의 패권을 갉아먹었습니다.

이 책의 제7부와 제8부가 추적한 역설입니다. 에픽 퓨리 작전은 이란의 핵무장을 막고 탄도미사일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그 목표가 달성됐는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낸 부수적 결과는 이미 선명합니다.

달러 패권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기 시작하면서, 세계 최대의 해상 에너지 교역로에 달러가 아닌 통화가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는 선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국적 선박들이 이란의 통과 허가를 받아 해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이 아닌 나라들의 선박이 우선권을 얻는 구조. 로이즈 리스트에 따르면, 3월 넷째 주까지 이란의 '통행 허가 시스템'을 통해 해협을 건넌 선박은 26척이었고, 결제는 중국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CIPS)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러시아 제재의 역설도 드러났습니다. 호르무즈 봉쇄로 중동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된 아시아 수입국들이 일제히 러시아산 원유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에너지 청정대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첫 24일간 러시아의 원유 수출 일일 수입은 3억 8,800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전월 대비 20% 증가. 미국은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러시아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해야 했고, 이란이 위안화로 돈을 벌고 러시아가 제재 해제로 숨을 쉬는 전쟁에 미국이 군사비를 쏟아붓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국내 정치의 비용도 쌓여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6%로 떨어졌습니다. 3월 28일, 50개 주 3,300곳 이상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미국 역사상 단일 최대 규모의 시위였습니다. 주최 측은 참가 인원을 약 800~900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세인트폴의 미네소타 주 의사당, 맨해튼의 7번가, 샌프란시스코의 엠바카데로, 덴버의 주 의사당 앞. 시위자들이 든 피켓에는 "전쟁을 끝내라(End the Wars)", "트럼프는 물러나라(Trump Must Go Now)", "파시즘과 싸우자(Fight Fascism)"가 적혀 있었습니다. 시위는 미국 밖으로도 번져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로마, 파리, 런던에서 수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3월 31일자 분석에서 이 교착 상태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미국의 15개 항목 종전 제안은 사실상 이란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이란의 5개 조건은 해협에 대한 주권 인정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 이 교훈은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도,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복된 것이지만, 반복됐다고 해서 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여섯째. 한국은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한국은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원유의 약 70%, LNG의 약 15~18%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사실상 에너지 섬입니다. 주변의 바다와 닫힌 북쪽 국경 때문에 인접국의 전력망에서 긴급 전력을 끌어올 수 없습니다. 일본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일본은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원자력 발전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전략비축유 170일분을 쌓아두는 등 구조적 대비를 해왔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번 위기를 "한국의 에너지 모델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라고 불렀습니다. 한국 증시는 4거래일 만에 18% 폭락했고, 시가총액 5,000억 달러 이상이 증발했습니다.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가동률을 50%로 낮췄고, 정부는 나프타 수출을 5개월간 금지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소의 조기 재가동을 지시했고, 석탄 화력 발전소의 가동을 확대하는 긴급 조치를 취했습니다. IEA 회원국으로서 전략비축유 2,246만 배럴을 방출했습니다.

서울경제가 보도한 '4월 에너지 위기론'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2월 28일 직전에 해협을 빠져나온 마지막 유조선 이글 벨루어(Eagle Velour)호가 3월 20일에 한국 항구에 도착한 이후, 해협을 통한 원유 공급은 사실상 끊겼습니다. 정부는 UAE 등 대체 경로를 통해 원유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남았습니다. 1970~80년대의 석유 위기를 겪고도 왜 한국은 중동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지 못했는가.

답은 경제성, 공급 안정성, 정유소 호환성이라는 세 가지 요인에 있었습니다. 중동산 원유는 해상 운송 거리가 가깝고, 가격이 저렴하며, 한국의 정유 시설이 중동산 중질유(Heavy Crude)에 맞춰 설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산 셰일 오일은 경질유(Light Crude)로, 한국 정유소의 시설 구조와 맞지 않았습니다. 다변화가 선택이 아니라 안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경제적 합리성이 의존 구조를 고착시키는 메커니즘. 이 메커니즘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꾸려면 정유소 시설의 대규모 개조, 미국과의 에너지 공급 장기 계약, 태평양 항로의 운송 인프라 확대 같은, 수년에서 십수 년이 걸리는 구조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카네기의 또 다른 분석은 이 위기가 반도체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의 칩 공장은 대규모 전력을 소비합니다. 그 전력의 상당 부분이 수입 화석연료에서 나옵니다. "반도체 리더십을 지키려면 그 반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먼저 지켜야 한다." AI 붐이 칩 수요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초크포인트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됐습니다.

환경단체 우리기후(Solutions for Our Climate)의 보고서는 지난 11년간 한국이 화석연료에 141조 원, 재생에너지에 11조 원을 투자했다고 집계했습니다. 13대 1. 이 투자 비율이 한국의 호르무즈 의존도를 만든 것입니다. "태양은 호르무즈에서 목 졸려 죽지 않습니다(The sun is not being choked at Hormuz)." 이 한 문장이 한국 에너지 안보 논의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전쟁이 한국에 던진 질문은 분명합니다. 다음번 호르무즈가 닫힐 때,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인가.

이 책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전쟁이 만들어낸 변화의 폭과 깊이를 지금 단정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몇 가지를 확인합니다.

에너지는 전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미국의 '최대 압박' 제재, 유가 하락에 따른 이란 경제의 붕괴, 대규모 민중 시위와 유혈 진압.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석유 수입으로 유지되는 이란 체제의 경제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에너지는 전쟁의 무기였습니다. 이란은 자국의 석유가 아니라 타국의 석유가 지나가는 수로를 무기로 삼았습니다. 보험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용해, 물리적 해군력 없이 경제적 봉쇄를 달성했습니다.

에너지는 전쟁의 결과였습니다. 브렌트유 배럴당 126달러. IEA 역대 최대 4억 배럴 비축유 방출. 한국 석유화학 가동률 50%. 필리핀 국가비상사태 선포. 비료 가격 50% 급등. 미국 "노 킹스" 사상 최대 시위. 위안화 결제 시스템의 호르무즈 진출. 러시아의 반사이익.

그리고 에너지는 전쟁 이후의 질서를 결정할 것입니다. 해협이 열리는 날이 오더라도,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세계는 21마일 폭의 수로 하나에 하루 2,000만 배럴의 석유를 계속 맡겨둘 것인가. 아시아의 산업 국가들은 호르무즈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경제적 합리성이 다시 의존 구조를 고착시킬 것인가. 이란의 '통행료 국가' 모델은 전쟁 종결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것인가. 달러 패권의 균열은 이 전쟁을 기점으로 가속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끝나면 원래의 궤도로 돌아갈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 책 안에 없습니다. 이 책이 한 것은 질문의 구조를 보여준 것입니다.

2026년 3월 31일 자정(UTC 기준), 호르무즈 해협의 AIS(자동식별시스템,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화면에는 움직이는 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138개의 점이 빽빽하게 찍혀 해협을 채웠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점이 해협 바깥 오만 해상과 페르시아만 연안에 정지한 채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어둠 속의 배(Dark Ship)', AIS를 끈 채 해협을 건너는 290미터 이상의 대형 선박이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허가를 받고, 누군가는 허가 없이, 위험을 감수하고 해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 프롤로그에서 시작한 AIS 화면의 빈 공간으로 이 책은 돌아왔습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신호가 사라져가는 장면을 봤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보는 것은, 그 빈 공간이 채워지지 않은 채 세계가 어떻게 적응하고, 타협하고, 변형되고 있는가 하는 풍경입니다.

해협이 열리는 날은 올 것입니다. 전쟁은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문제는 열린 뒤의 세계입니다. 호르무즈가 닫히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란은 해협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보험 시장은 그 증명을 기억할 것이고, 프리미엄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아의 수입국들은 다변화를 다짐하겠지만, 중동산 원유의 경제적 합리성이 그 다짐을 시험할 것입니다. 위안화 결제 시스템은 호르무즈에서의 실험을 발판 삼아 다른 해상 교역로로 확장을 시도할 것입니다.

해협이 열려도, 열리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전쟁의 혈액이라는 사실. 초크포인트가 곧 권력이라는 사실. 21마일의 수로에 세계 경제를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를 이제 모든 사람이 알게 됐다는 사실.

이 책이 기록한 것은, 그 앎의 대가입니다.





전쟁과 에너지

전자책 발행 | 2026년 4월 20일

저 자 | 김경진
펴낸이 | 김경진
펴낸곳 | 김경진 변호사 출판사

출판사등록 | 2025. 3. 10. (제2025-000015호)
주 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로 91, 백일빌딩 304호
전 화 | 02-6338-1905
이메일 | kimkj008@gmail.com

ISBN |
가격 20,000원

ⓒ 김경진 2026
본 책은 저작자의 지적 재산으로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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