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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4장 표적 탐지·추적·식별: ATR과 멀티타깃 트래킹
14장 표적 탐지·추적·식별: ATR과 멀티타깃 트래킹
고도 2만 5천 피트. 캐노피 너머로 펼쳐진 하늘은 쨍하게 파랗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아래에는 치명적인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삐- 삐- 하고 울리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조종석의 전술 디스플레이에는 여섯 개의 녹색 점이 나타났습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민항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심장이 쿵쿵 뜁니다. 시속 1천 킬로미터로 날아가는 상황에서 이 여섯 개의 점 중 하나가 나를 죽이러 오는 적기라면, 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몇 초뿐입니다.
옛날 전투 조종사들은 이 순간을 온전히 자기 눈과 감각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 마크 원 아이볼(Mk.1 Eyeball)'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의 눈이라는 뜻입니다. 레이더가 뭔가를 잡아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때쯤이면 이미 적의 미사일이 발사되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죽는다. 이것이 공중전의 잔인한 현실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TR이 등장합니다. ATR은 '자동 표적 인식(Automatic Target Recognition)'의 줄임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계가 스스로 적을 찾아내고 "저건 적입니다" 또는 "저건 아군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기술입니다.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레이더 화면을 노려볼필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신 보고, 대신 판단합니다.
ATR 시스템의 핵심에는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딥러닝은 인공지능이 수백만 장의 사진을 보면서 스스로 패턴을 배우는 방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수없이 많은 개 사진을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건 개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적 전차, 적 전투기, 적 미사일 발사대의 모양과 특징을 학습합니다. 포탑의 형태, 날개의 각도, 배기 가스의 열 패턴. 이런 것들을 외우고 또 외웁니다.
실제 전장에서 ATR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합성개구레이더(SAR)라는 장비가있습니다. 이 레이더는 구름을 뚫고, 밤에도, 비가 와도 지상의 모습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SAR가 보내오는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사진과 다릅니다. 회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알쏭달쏭한 그림입니다. 훈련받은 분석관도 그 그림을 해독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립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0.1초 만에 답을 냅니다. "저 그림자 아래 숨어 있는 건 T-72 전차입니다. 포탑이 15도회전한 상태이고, 엔진이 켜져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은 이 기술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정찰 드론이 찍어온 수천 시간 분량의 영상을 분석관들이 일일이 들여다봐야 했
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화면을 노려보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치지 않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영상을 분석하면서 의심스러운 장면만 골라서 사람에게 보여줍니다. 덕분에 분석관들은 정말 중요한 판단에만 집중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F-35 라이트닝 II가 '하늘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전투기는 센서 융합(Sensor Fusion)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이더, 적외선카메라, 전자전 장비에서 들어오는 온갖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합쳐서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줍니다. 조종사의 헬멧 디스플레이에는 적기가 붉은색 박스로 표시되고, 그 아래에 기종과 무장 상태까지 친절하게 적혀 나옵니다. "Su-35, 공대공 미사일 4발 탑재 추정." 조종사는 더 이상 레이더 스코프를 해독하느라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적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멀티타깃 트래킹(Multi-Target Tracking)이 등장합니다. 다중 표적 추적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전에서 적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무인기 수십 대가 벌떼처럼 몰려오고, 그 사이에 진짜 전투기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미끼이고, 어떤 것은 진짜 위협입니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서너 개 이상의 물체를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화면에 스무 개의 점이 나타나면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어떤 놈을 먼저 상대해야 할지 결정하는 동안 적의 미사일이 날아옵니다.
인공지능은 다릅니다. 수백 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각 표적에 고유한 번호를 붙이고,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며, 앞으로 어디로 갈지 예측합니다. 마치 천 개의 눈을 가진 괴물 같습니다. 2024년 7월, 미국 공군은 'ATA-AI(Advanced Tracking Architecture Using AI)'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9,9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차세대 표적 추적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스텔스기, 극초음속 무기, 드론 스웜처럼 탐지하기 어려운 위협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드론 스웜을 상상해 보십시오. 수백 대의 작은 드론이 벌떼처럼 몰려옵니다. 어떤 놈이 자폭 드론이고, 어떤 놈이 단순한 교란체인지 사람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각 드론의 비행 패턴을 분석합니다. "1번부터 80번까지는 단순한 미끼입니다. 열 신호도 없고직선으로만 날아갑니다. 그러나 81번, 95번, 112번은 다릅니다. 회피 기동을 하고 있고, 적외선신호가 포착됩니다. 이 세 놈이 진짜 위협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런 분석을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해냅니다.
이 기술의 핵심 알고리즘 중 하나가 칼만 필터(Kalman Filter)입니다. 1960년대에 개발된 수학 공식인데, 움직이는 물체의 다음 위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됩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항법 시스템에도 쓰였던 유서 깊은 기술입니다. 현대의 인공지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적기의 과거 행동 패턴을 학습해서 "이 조종사는 왼쪽으로 도는 것을 좋아한다" 또는 "이 기종은 고도를 낮추면서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까지 예측합니다.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웍스(Skunk Works)는 미사일 회피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적의미사일이 날아올 때, 편대 중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하고 최적의 회피 기동을 계산합니다. 예전에는 조종사가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를 번갈아 보면서 판단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그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지금 당장 오른쪽으로 5G 선회하세요!"라고 알려줍니다.
중국도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습니다. J-20 전투기에 정교한 전자광학 추적 시스템을 통합하고 있고, 미국의 스텔스기인 F-22와 F-35를 탐지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양자 레이더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스텔스 기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도 진행 중입니다.
유럽의 FCAS(미래전투항공체계) 프로젝트는 '컴뱃 클라우드(Combat Cloud)'라는 개념을 추구합니다. 전장에 떠 있는 모든 비행체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각자가 본 것을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유인 전투기가 보지 못한 적을 무인기가 발견하면 즉시 정보가 전달됩니다. 이것은 마치 수백 개의 눈이 하나의 뇌에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결국 공중전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보고(First Look), 먼저 쏘고(First Shoot), 먼저 죽이는(First Kill) 쪽이 이깁니다. 달라진 것은 속도입니다. 인간의 판단 속도에는 생물학적한계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뇌가 인식하고, 손이 움직이기까지 최소 수백 밀리초가 걸립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연산 속도는 밀리초 단위가 아니라 마이크로초 단위입니다. 인간이 " 어?" 하는 사이에 인공지능은 이미 표적을 식별하고 미사일 시커를 개방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계가 아무리 많은 표적을 탐지하고 분류한다 해도, 최종 결정은 인간의 몫입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민간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한다면? " 아니, 저건 적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사냥개를 부리는 사냥꾼. 그것이 미래 전투 조종사의 역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