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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사·사법기관의 인공지능 도입 현황,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제3국 정부기관의 인공지능 도입과 사용의 딜레마
한국 수사·사법기관의 인공지능 도입 현황,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제3국 정부기관의 딜레마
김경진 변호사
2026년 6월 25일, 대전 특허법원 특허5부의 재판장 김재령 고법판사가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A사가 지식재산처를 상대로 낸 특허거절심결 취소소송이었습니다. 사건번호 2025허10489. 이 재판이 특별했던 이유는 판결 내용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습니다. 원고와 피고 양측의 서면 동의를 받은 뒤, 재판부가 소송 기록 요약과 외국어 자료 번역 같은 작업에 클로드 지피티와 같은 상업용 인공지능을 써서 사건을 분석하고 심리한 후 재판을 진행한 첫 사건이었습니다. 법률상 근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의 자율적 동의를 전제로만 삼았습니다.
이 한 장면이 지금 한국 사법의 현주소를 압축합니다. 기술은 이미 법정 문턱을 넘었는데, 그것을 받치는 법과 규범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도입은 진행 중이고, 그 속도는 기관마다 제각각입니다. 변호사 업계가 제일 빠르고, 경찰과 검찰이 그 뒤를 따르며, 법원은 시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전체가 연구와 검토와 도입 준비가 뒤엉킨 혼돈으로 들어서는 중입니다.
증거분석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공지능 알고리즘 도입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먼저 짚어야 할 구분이 있습니다. 언어모델 인공지능과 그 밖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다릅니다. 과학수사와 증거 분석 영역에서 경찰과 검찰은 언어모델이 아닌 다른 알고리즘을 진작부터 써 왔고,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감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정에서 그런 알고리즘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심지어 자기 기관의 유능함을 알리는 언론 소재로 삼기도 합니다.
세 가지 사례를 보면 그 양상이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길거리 폭행 사건입니다. 피의자는 현장을 벗어나다 피해자와 부딪혔을 뿐, 폭행한 사실도 피해자가 넘어진 사실도 몰랐다며 고의를 부인했습니다. 수사 검사는 오픈소스 객체 인식 알고리즘 YOLOv8과, 머리 회전 및 3차원 시선 각도를 추적하는 시선 분석 모델 SixDRepNet을 CCTV 영상에 적용했습니다. 사고 전후 영상에서 피의자와 피해자, 이동 차량 같은 객체를 시간 순으로 정렬하고, 충돌 직후 피의자의 머리가 피해자가 쓰러진 지점을 향해 꺾이며 시선이 일정 프레임 이상 피해자에게 고정된 정황을 시각화했습니다. 부딪힌 걸 몰랐다는 진술을, 시선의 방향이 반박한 셈입니다.
두 번째는 언어모델을 쓴 분석입니다. 대용량 메신저 대화 데이터에서 범행 모의 정황, 은어 사용, 시간대별 위치의 모순을 뽑아내는 자연어 처리 엔진을 써서, 피의자의 진술 번복과 모순 주장을 대조합니다.
세 번째는 딥러닝 기반 영상 분석입니다. 수사관이 불법 사이트나 해킹된 IP 카메라, 유포망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올리면, 프로그램이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훑어 아동·청소년 신체 노출이나 성착취 정황을 0에서 100 사이의 확률값으로 산출합니다. 확률이 임계값을 넘는 영상을 먼저 분류하고, 유포 경로와 범죄 정황을 담은 표준 증거 보고서를 수사관의 승인 아래 자동으로 작성합니다.
여기서 숫자 하나가 눈에 띕니다. 경찰이 공개한 실증 데이터에 따르면, 약 890기가바이트 분량에 4,215개의 불법 동영상과 이미지, 재생 시간으로 약 403시간에 이르는 증거를 종전의 육안 판독과 문서 작성 방식으로 처리하면 약 320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쓰자 약 3시간 만에 분석과 보고서 작성이 끝났습니다. 100배 이상 단축된 수치입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026년 7월 9일 낸 보도자료에 실린 내용입니다.
경찰이 이 프로그램을 어디에 놓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무엇을 볼지 골라내는 도구로 씁니다. 기계가 방대한 영상을 훑어 의심 후보를 빠르게 골라내고, 실제 혐의 성립 여부는 인간 수사관이 눈으로 다시 확인합니다. 대량의 증거를 빠르게 줄여 추가 유포를 조기에 막되, 최종 판단은 사람이 맡는다는 업무 배분입니다.
수사행정에 들어온 독자 언어모델, 정작 경찰관이 잘 안 씁니다
문제는 언어모델 인공지능입니다. 수사 과정과 수사 행정에 도입은 됐지만, 정작 수사관과 검사의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경찰부터 보겠습니다. 경찰청은 2025년 11월 18일, 생성형 인공지능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연동한 지능형 수사 보조 플랫폼 경찰 수사지원 AI를 개통했습니다. 앞서 2025년 7월 일부 범위에서 시범 운영을 거쳤고, 11월 18일을 기점으로 전국 경찰관서로 넓혔습니다.
이 시스템은 수사 정보의 보안을 위해 폐쇄 인프라로 설계됐습니다. 외부 상용 인터넷망과 끊긴 사법·수사기관 전용 폐쇄망 안에서만 돌아갑니다. 민감한 개인식별 정보와 미공개 피의 사실, 수사 단서가 외부 클라우드로 빠져나가 재학습되는 상황을 구조 자체로 막기 위한 설계입니다. 두뇌에 해당하는 대형언어모델로는 LG의 엑사원을 쓰고, 학습과 분석 연산 서버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국가 슈퍼컴퓨터 GPU 자원을 받아 운영합니다. 한국 기업의 모델과 국내 공공 연산 인프라를 쓰는 구조입니다.
기능은 5가지 유형입니다. 진술조서와 사건기록의 자동 요약, 압수수색·검증영장 신청서 초안 작성, 유사 사건 판례와 결정문 추천, 수사 절차와 법률 지침의 실시간 확인, 그리고 금융 압수영장 집행 장소 검색과 금융회사 조회 자동화입니다. 영장 초안을 만들 때 엑사원은 입력된 조서에서 인과관계와 구성요건, 이를테면 사기죄의 기망 행위와 처분 행위, 재산상 이익 취득 여부 같은 요소를 식별해, 수작업으로 몇 시간이 걸리던 사실관계 기재란과 필요성 소명 초안을 짧은 시간에 구성해 제시합니다. 판례 추천 자료는 관계인 실명 같은 개인정보를 지운 가명 처리 형태로 나옵니다. 물론 수사관은 이 초안을 그대로 쓰지 않습니다. 문맥과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보완한 뒤 결재를 올립니다. 도구는 초기 절차의 누락을 줄이고 초안 품질을 받치는 보조 역할에 머뭅니다.
화려한 개통과 달리, 현장의 실제 접속 건수는 개통 직후부터 빠르게 줄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성곤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월별 접속 건수가 그 흐름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전국 개통 시점인 2025년 11월 46,728건에서, 12월 39,137건, 2026년 1월 33,638건, 2026년 2월 1일부터 24일까지 17,140건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석 달 만에 접속 빈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입니다.
왜 수사관들이 멀어졌을까요. 첫째 이유는 참조 판례 데이터의 결핍입니다. 사건 기밀과 데이터 보호 규정을 이유로 외부 유출을 막다 보니, 이 시스템은 법제처가 공개하는 무료 판례 데이터에 한정해 학습하고 쟁점을 매칭합니다. 그래서 최신 지식재산권 범죄나 까다로운 형사 쟁점의 선례를 검색해도 원하는 하급심 판결이 안 나오는 경우가 생깁니다. 정밀한 판례를 찾으려면 결국 사법 전산망을 벗어나 민간 유료 서비스인 엘박스나 로앤비에 따로 접속해야 하니, 이중으로 쓸 이유를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비정형 증거 분석 기능의 부재입니다. 현행 1단계 플랫폼은 한글과 PDF 같은 텍스트 기반 정형 정보만 처리합니다. 수사 현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CCTV 영상, 사진 이미지, 음성 녹음 같은 비정형 데이터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경찰청은 이 침체를 넘기 위해 학계와 법조계, AI 엔지니어 등 7명으로 구성된 경찰 수사지원 AI 정책자문단을 2026년 6월 9일 출범시켰습니다.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이 팀장을 맡은 고도화 전담팀도 함께 돌리고 있습니다.
검찰은 법원보다 앞서 민간 자원을 들여왔습니다. 안쓰는 것은 비슷합니다.
검찰은 법원보다 한발 앞서 민간 시장의 인공지능 검색 자원을 실무에 끌어왔습니다. 대검찰청은 2025년 8월, 민간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 같은 생성형 AI 기반 법률 검색 플랫폼과 공식 사용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계약으로 일선 지검과 지청의 검사, 검찰 수사관은 수사와 공소 유지 과정에서 유사 판례를 검색하고 법리 쟁점을 검토하는 데 민간 AI 플랫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실무에서 검사들은 피고인의 범죄 성립 여부를 가리려고 유사 판결문 속 무죄 판단 기준, 구성요건 해당성 판단 선례, 감형과 가중 처벌 요인 등을 검색합니다. 검찰 내부 설명에 따르면, 민간 서비스를 쓸 때는 사건 당사자의 신상 정보나 미공개 수사 단서가 외부망으로 나가지 않도록 사건번호와 관계인 실명 같은 개인식별 정보를 가명·비식별 처리한 텍스트만 제한적으로 입력하도록 관리합니다. 다만 도입 초기에는 쓰임새가 유사 판례 검색에 한정돼 있다는 이유로, 검찰이 법원이나 경찰처럼 포괄적인 내부 AI 사용 통제 가이드라인을 따로 정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각각 내부에서 폐쇄형으로 만들어 수사관과 검사에게 제공한 로컬 모델은, 상용 인공지능인 GPT나 클로드에 비해 성능이 떨어집니다.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클로드 같은 상용 모델을 평소 써 온 검사와 경찰관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분위기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모델을 씁니다, 나머지 나라는 정보누설우려때문에 고민입니다.
미국 정부기관은 자국 모델을 당당하게 씁니다. GPT의 정부용 버전이 연방기관에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기관도 자국 모델을 씁니다. 두 나라는 프론티어 모델을 만드는 나라이면서, 그 모델이 삼킨 데이터가 자국 영토 안에 남는 나라입니다. 성능과 주권 사이에서 고를 일이 없습니다.
제3국은 처지가 다릅니다. 한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나라의 정부기관이 최신 상용 모델을 쓰려면 자국민의 개인정보와 수사 기밀, 재판 기밀이 미국 기업의 서버를 거쳐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이면서 정보주권의 문제입니다. 정보가 어디로 이전되는지, 그 나라 법원이 그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정부가 답을 갖지 못한 채로는 도입 결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온 답이 독자 모델입니다. 자국 기업의 모델을 가져다 자기 데이터로 파인튜닝해 폐쇄망에 넣습니다. 경찰의 엑사원 기반 수사지원 AI, 법원의 폐쇄망 재판지원 시스템, 대형 로펌의 자체 언어모델 서버가 전부 같은 선택에서 나왔습니다. 데이터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결론이 낳은 구조입니다.
문제는 성능입니다. 독자 모델은 미국 프론티어 모델에 견주면 당장 훨씬 떨어집니다. 데이터센터 규모가 다르고, 학습에 넣은 데이터의 양이 다르고, 반복 학습에 쓴 돈이 다릅니다. 폐쇄망 안에 가두는 순간 그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그 결과가 앞에서 본 접속 건수 급감입니다. 최신 상용 모델을 도입하자니 정보 이전이 걱정되고, 독자 모델을 쓰자니 성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현장 공무원은 아예 쓰지 않습니다. 도입은 끝났는데 사용이 없는 상태입니다. 46,728건에서 17,140건으로 떨어진 숫자가 그 상태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유럽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프랑스 국내정보국은 2026년 6월 16일 팔란티어를 프랑스 기업 ChapsVision으로 교체했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도 같은 회사 제품을 샀고, 연방군은 국방클라우드 조달에서 팔란티어를 명시적으로 뺐습니다. 스위스는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최소 아홉 번 입찰을 거부했습니다. 핵심 이유는 미국 클라우드법의 역외 적용입니다. 미국 법인이 통제하는 데이터는 서버가 독일에 있어도 미국 법원 명령의 대상이 됩니다. 결정타는 미국이 수출통제로 유럽의 최상위 모델 접근을 실제로 끊어 본 사건이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이 이미 벌어진 일로 바뀐 것입니다. 유럽의 이 흐름은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https://kimkj.com/ai-board/?pageid=2&mod=document&uid=10347
한국의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인공지능 앞에서 겪는 근본 고민이 정확히 이 지점에 있습니다. 규범이 없다는 것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성능을 얻으면 주권을 내주고 주권을 지키면 성능을 잃는 구조를 풀지 못하는 한, 훈령을 몇 개 더 만들어도 현장의 접속 건수는 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뛰고 법은 걷습니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된 AI기본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건 산업 진흥 중심의 일반법입니다. 법원과 검찰, 경찰 각자의 업무 특성, 그러니까 재판 독립과 수사 기밀과 형사절차에 맞춘 세부 규범은 별도로 필요합니다. 인공지능기본법은 대한민국 전 산업을 아우르는 일반법이라,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직접 구속하는 사법·형사소송 절차 고유의 정밀한 규칙을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법원은 가이드북 하나를 냈고, 경찰은 사고 수습형 지침을 붙였고, 검찰은 아직 자체 규범 없이 범용 보안 가이드라인에 기대는 단계입니다.
경찰의 통제 장치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상징적입니다. 수사지원 AI를 전면 도입한 뒤, 국정감사에서 한 경찰서가 AI로 불송치 결정문을 작성하며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사례가 지적됐습니다. 그러자 경찰청장 지시로 수사관이 반드시 AI 결과를 검토하도록 대응했습니다. 사전에 체계적으로 설계된 규범이 아니라, 문제가 터진 뒤 붙인 안전장치입니다. 국회가 만든 법률까지는 물론 아닙니다.
검찰은 엘박스와 2025년 8월 정식 계약을 맺어 생성형 AI 기반 판례 검색을 법리 검토와 유사 사례 분석에 쓰고 있고, 이용할 때는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이 제시한 생성형 AI 서비스 활용 보안 가이드라인을 따른다고 합니다. 검찰 자체의 AI 사용 훈령이 아니라, 행안부와 국정원 차원의 범용 정보 보안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형태입니다. 검찰 고유의 AI 사용 준칙은 없습니다.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은, 검찰과 경찰 모두 지난해부터 내부 인공지능 교육 시간을 늘리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한국 법원 역시 독자적인 폐쇄망 인공지능을 세우는 중입니다
법원은 시범 실시 중입니다. 정식 운용이 아니라 일부 재판부에서 테스트하는 단계입니다. 대법원은 외부의 범용 인공지능 서비스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사법부 자체 폐쇄망 안에 독립된 인공지능 플랫폼을 세우는 쪽을 골랐습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이 인터넷망과 분리된 내부 인프라에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위에서 돌아가는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이런 선택의 배경에는 사법 정보의 성격이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다루는 소송기록과 판결문 초안, 당사자의 개인정보와 미공개 사건 정보가 외부 클라우드나 상용 생성형 AI로 전송되면, 재판 정보의 누출과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폐쇄망 안에서만 도는 자체 플랫폼은 그 전송 자체를 막는 구조입니다.
시스템의 특징은 3가지입니다. 먼저 외부 상용 인터넷망과 끊긴 사법부 폐쇄망 안에서만 돌아갑니다. 다음으로 검색증강생성 방식을 씁니다. 인공지능이 답을 지어내기 전에 내부 데이터베이스에서 실제 문서를 먼저 찾아 그 근거 위에서 답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내부 데이터베이스에는 대법원 판례, 2013년 이후 선고된 민형사 하급심 판결문 전체, 현행 법령과 대법원규칙, 결정례, 법원행정처 유권해석, 실무제요와 주석서 같은 문헌이 들어 있습니다. 법관이 자연어로 질문을 넣으면 시스템이 이 자료를 훑어 쟁점을 정리해 답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면을 좌우로 나눕니다. 왼쪽에 인공지능이 만든 요약을 두고, 오른쪽에 그 근거가 된 원문 판결서로 바로 넘어가는 링크를 나란히 배치합니다. 법관이 두 화면을 맞대어 사실을 직접 확인해야 판단 자료로 삼도록 만든 장치입니다.
2026년 2월 13일 시범 오픈해 각급 법원에 개방한 재판지원 AI 시스템 1단계는, 자동 배당이나 분류 자동화보다 법률 정보 검색과 판례 리서치 보조에 기능이 맞춰져 있습니다. 접수 서류를 자동으로 분류해 배당하는 전면적 자동화는 이 1단계의 기능 범위와 별개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법원 행정업무에 아직까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도입된 것은 없습니다.
사법부의 인공지능 도입을 규범과 기술 양면에서 총괄하는 기구는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입니다. 위원장은 이숙연 대법관이 맡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 사법정보화실장 등 사법행정과 정보화 실무에 밝은 인력이 참여한다고 공개 자료에 소개돼 있습니다. 개별 위원의 직책은 시점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특정 인물의 현재 보직까지 단정하려면 사법부 최신 발표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 위원회는 인간 중심 AI를 통한 사법정의 구현이라는 방향 아래 2030년까지 이어지는 단계별 로드맵을 세워 공표했습니다. 첫 단계인 2025년에서 2026년까지는 기반 구축 단계입니다. 자체 보안 인프라를 설계하고, 재판지원 AI 시스템의 시범 개시와 법률정보 지능형 검색을 안착시키며, 대국민 지능형 판결문 검색 시스템 개발을 병행합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소장과 답변서, 준비서면 같은 비정형 소송 자료를 분석해 사건의 핵심 요지를 뽑고 쟁점을 분류하는 모델을 다듬습니다. 2028년에서 2030년에 이르는 후반 단계에서는 판결문 초안의 논리적 모순과 오탈자, 비문을 자동 점검하고, 송달 주소 보정과 소장 기재 오류의 사전 필터링 같은 행정 지원을 넓히며, 재판 데이터를 표준화해 품질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로드맵의 공동 추진 의제에는 온라인 분쟁해결 플랫폼 구축과, 변론 내용을 실시간으로 문자화하는 자동기록 시스템이 들어 있습니다. 장애인과 고령자, 외국인처럼 사법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를 위한 접근성 지원 서비스도 포함됩니다. 위원회는 회의를 거치며 판사 지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장을 주요 의제로 세웠습니다. 자막 자동생성과 음성변환, AI 수어 통역, 그림 기반 의사소통, 실시간 외국어 통번역 같은 기능을 법원 전산 포털과 서비스에 단계적으로 넣겠다는 방향도 밝혔습니다.
회의록 공개 여부도 짚어 둘 만합니다. 이 위원회는 법원행정처장 자문기구로, 회의를 열 때마다 대법원이 보도자료 형태로 요지를 공개합니다. 언론이 전한 제3차 회의를 보면 AI 기술과 판결서 공개, 그 쓰임을 논의했고, 판결서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와 재판공개 원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위원회 건의문이 인용돼 있습니다. 판결서 데이터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데이터 안심구역과 규제 샌드박스를 결합하는 방식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회의 후 정리된 보도자료이지, 발언자별 발언을 그대로 옮긴 회의록 원문은 아닙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제4차 회의 개최 보도자료도 확인되지만, 역시 개최 사실과 논의 주제를 알리는 수준입니다. 사법행정 관련 회의록은 정보공개법상 의사결정 과정 중의 내부 검토 정보로 분류돼 비공개 대상이 될 여지가 있고, 실제로 대법원은 전자기록 열람 로그 공개를 둘러싼 최근 논란에서도 재판의 합의 비공개 원칙을 근거로 내부 절차 정보 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법원행정처는 2025년 10월 법관을 위한 AI 가이드북 제작 연구반을 꾸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상용 AI를 재판 실무에서 안전하게 쓰는 방법을 정리한 가이드북을 만들었고, 2026년 3월부터 전국 판사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사법연수원 36기 권창환 안산지원 부장판사가 팀장을 맡아 법관 8명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AI 환각,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침해 같은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실무 체크리스트가 들어 있습니다. 다만 이건 가이드북이지 강제력 있는 법규정이나 훈령은 아닙니다.
대전 특허법원의 시범재판부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앞머리에서 말한 그 재판을 이제 제대로 풀어 놓겠습니다. GPT CLAUDE등 상용 인공지능을 재판에 전면 도입한 아주 예외적인 사례가 2026년 대한민국 법원에서 나왔습니다. 법률적 근거가 없었기에 원고와 피고 양측의 자율적 동의를 얻은 뒤에야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실제 재판 심리 과정에 AI 기술을 넣어 실증한 대표 사례가 바로 대전 특허법원의 AI 시범재판부 운영입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은 2026년 4월부터 9월까지 여섯 달 동안 대전 특허법원의 특허2부와 특허5부 두 곳을 AI 시범재판부로 공식 지정해 운영했습니다. 이 시범 운영은 인공지능이 들어온 시대에 맞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모델을 발굴하고, 실제 재판에서 생길 수 있는 알고리즘 오류나 개인정보 침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사법적 샌드박스 환경으로 가동됐습니다.
핵심 원칙은 당사자 동의주의입니다. 시범재판부는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송 기밀이 새거나 특정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당사자 동의주의를 철저한 전제로 삼았습니다. 재판부가 사건에 임의로 AI를 개입시키지 않고, AI 도구가 재판 문서 검토와 요약 등에 쓰인다는 사실을 소송 당사자 양측에 사전에 명확히 고지한 뒤, 양측 대리인 쌍방의 서면 동의를 얻은 사건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최초의 판결 선고는 2026년 6월 25일에 나왔습니다. 특허법원 특허5부, 재판장 김재령 고법판사와 이지영 고법판사, 성재혁 판사는 당사자 양측의 동의를 얻은 첫 사건, A사가 지식재산처를 상대로 낸 특허거절심결 취소소송에 대해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 첫 실증에서 재판부는 변론 준비와 실제 변론 진행, 법리 검토와 판결 초고 작성처럼 법관의 주체적 판단이 필요한 본질적 핵심 영역은 온전히 인간 법관의 몫으로 남긴 채, AI를 철저히 보수적이고 보조적인 행정적 검수 및 요약 도구로만 한정해 썼습니다.
구체적으로는 4가지 방식이었습니다. 첫째는 방대한 소송 기록의 요약과 구조화입니다. 원고와 피고가 낸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의 방대한 텍스트를 요약 정리하고 핵심 쟁점을 뽑아 재판부의 기록 검토 시간을 줄였습니다. 둘째는 외국어 선행기술자료 전문 번역입니다.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다수 제출되지만 기존 번역이 충분치 않았던 외국어 선행기술자료의 서증 전문을 기계 번역으로 변환해 증거 채부 판단을 도왔습니다. 셋째는 특허 명세서 교정과 해설입니다. 난해하고 비선형적인 특허 발명 명세서 문장을 현행 한국어 문법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고치고, 기술 용어에 부연 설명을 더하는 과정에 썼습니다. 넷째는 판결문 초고 검수입니다. 인간 법관이 독립된 심증으로 완성한 판결서 초안에 오탈자나 형식적 흠결, 논리 흐름의 어색한 비문이 있는지 최종 송고 전에 2차로 감수했습니다.
법원도 올해 들어 법관 대상 인공지능 교육을 대폭 늘리는 추세입니다. 사법연수원은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의 AI 리터러시 역량강화 건의문과 현장의 높은 교육 수요를 반영해, 법관과 재판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AI 교육과 연구를 전담할 인공지능교육센터를 설립하고 5월 29일 공식 개소식을 열었습니다. 센터 설립에 따라 사법연수원은 신임법관 연수와 5년 주기 경력별 연수 프로그램에 AI 기초 강좌를 정규 과목으로 편성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선택적으로 듣던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법관이 일정 주기로 AI 강좌를 필수 이수하게 됩니다.
2026년 주요 프로그램은 이렇습니다. 인공지능 리터러시 슈퍼위크가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닷새간 진행됩니다. 법관과 재판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수준별 집중 실습과 이론 강의입니다. 8월 31일 초급 실습은 상용 AI의 개요와 주요 모델의 기초 사용법을, 9월 1일 중급 실습은 법관을 위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가이드북에 기반한 재판 직무 특화 실습을, 9월 2일 고급 실습은 에이전트 AI 개념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 구축 실습을 다룹니다. 마지막 이틀은 인공지능과 법, 그리고 법원이라는 대주제로 이론과 실무의 쟁점을 함께 짚습니다. 이 밖에 6월 5일 온라인 국제세미나를 미국 듀크대학교 볼치 사법연구소와 공동으로 사법에서의 AI 사용을 주제로 열었고, 2027년 말까지 모든 법관이 들을 수 있는 온라인 AI 리터러시 기본강의 콘텐츠 개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제일 빨랐습니다. 하지만 대형 로펌은 법원과 비슷하 고민입니다.
일반적인 현황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변호사들 위주로 언어모델 인공지능을 법원 제출 서면 작성과 증거 분석 등에 다양하게 썼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파트너급 시니어 변호사들도 적극적으로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시니어들의 사용이 급격히 느는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주니어 리서치 변호사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건, 이를테면 한밤중에 편하게 시킬 수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통한 리서치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부탁할 때 따르는 부담이 기계에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출시된 엘박스, 슈퍼로이어 같은 제품이 쓰이고, 일부 법무법인은 외국 인공지능 모델인 하비를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만 변호사 업계에서도 개인정보와 소송 정보의 유출 가능성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공지가 주기적으로 내부망에 올라온다고 합니다. 일부 초대형 로펌은 자체 로컬 언어모델 서버를 만들어 운용 중입니다. 다만 그 성능 평가에 대해서는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합니다.
젊은 법관과 검사, 경찰관이 상용 AI를 얼마나 쓰는지는 신뢰할 만한 정량 조사가 없습니다. 한 일간지가 5월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변호사들이 제일 활발하게 AI를 쓰는데 공공기관인 법원·검찰보다 도덕적 해이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판검사도 쓰긴 쓰는데 공직자 신분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심스럽다는 뜻입니다. 같은 기사는 판사들이 판례를 찾고 기록을 분석하는 데 AI 도움을 받는다고 전하는데, 그게 챗GPT인지 사법부 내부 시스템인지는 시기에 따라 갈립니다.
2026년 2월 재판지원 AI 시스템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상용 AI를 쓰던 판사도 있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로펌 변호사에게 연령대별 사용도 차이가 뚜렷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패턴이 법원과 검찰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이건 추정이지 확인된 통계는 아닙니다.
경찰 쪽은 내부 도구가 이미 있어 사정이 다릅니다. 한 경제지 인터뷰에서 서울의 경찰서 수사관은 판례가 궁금하면 네이버나 다음에서 검색하듯 수시로 수사지원 AI를 쓴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다른 수사과장은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며, 영장 신청서 초안은 자기 스타일이 더 낫다고 평가했습니다. 요컨대 젊은 세대일수록 AI에 거부감이 적다는 건 법조계 전반의 일반적 관측이지만, 법원과 검찰 내부의 연령별 사용률을 숫자로 제시한 공식 조사는 아직 나온 게 없습니다.
혼돈 무기력함의 사이에서 시작한 독자모델, 미중을 제외한 전세계의 고민
인공지능 기술 자체는 오래됐지만, 언어모델 인공지능은 2022년 12월부터입니다. 2024년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쓸 만하다고 느꼈고, 이제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벌써 클로드와 GPT, 제미나이를 만든 회사 일부에서는 범용 인공지능의 도래가 임박했다고 말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된 모든 지식이 이 상용 인공지능 세 군데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이한 일은, 전제 체제인 중국은 오히려 체계적인 규정을 마련해 가지만, 정작 미국조차도 연방 차원의 체계적 규율이 없다는 점입니다. 노동시장의 혼돈에 대한 대비도 없고, 모든 지식이 흡수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분석과 예측도 없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서 개별 사건에 대한 중간 판결 몇 개가 나와 있을 뿐입니다.
한국도 다양한 영역에서의 계획과 규정화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앞에서 본 제3국의 딜레마가 추가로 더해져 겹칩니다. 규율도 없고 선택지도 없는 자리에 서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제도 대비를 위해서라면,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판결 제도와 입법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의 경찰과 검찰과 법원은 언어모델 인공지능 도입의 초기 단계에 서 있습니다. 반면 증거 분석과 증거 채취, 치안 영역의 과학기술 알고리즘 도입은 과거부터 적극적이었습니다.
각 기관은 이제 막 내부 직원 교육과 제도 도입 토론회를 열고, 국회의 정식 법률이 아닌 기관 내부의 훈령과 지침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GPT나 클로드 같은 상용 모델 사용은 사법부와 정부에서 원칙적으로 금지이고 내부 모델을 만들어 제공하지만, 성능 문제로 인기가 적고 몰래 상용 모델을 쓰는 공무원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변호사 업계는 로펌마다 다릅니다. 대형 로펌도 정부처럼 자체 모델을 개발해 쓰려는 경향이고 상용 모델의 위험성을 내부에 경고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용은 빠르게 늘어가는 중입니다.
법정에 인공지능이 들어오는 속도는 우리가 규범을 만드는 속도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규범보다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이 있습니다.
성능 대 수사기밀과 데이터 주권이냐. 미국과 중국은 이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한국은 매일 받습니다. 두 강대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이 문제를 계속해서 질문받습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도 아직 답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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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변호사
변호사 · 전 국회의원 · AI 정책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