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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인공지능,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다 - 제8장 동물의 환경세계와 기호학적 경계
인공지능,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다
제8장 동물의 환경세계와 기호학적 경계
김경진 변호사
8.1 저마다 다른 세상, 환경세계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생명마다 자기만의 세상을 산다. 이 생각을 처음 또렷하게 말한 사람이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생물학자 야코프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이다. 그는 동물마다 세상을 다르게 느낀다고 본 학자다 [1].
윅스퀼은 이 세상을 환경세계라고 불렀다. 독일어로는 옴벨트(Umwelt)라고 한다. 환경세계란 한 생명이 자기 감각으로 느끼고 만드는 자기만의 세상이다. 사람은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사람처럼 느끼지는 않는다.
환경세계라는 말은 어렵지 않다. 같은 운동장에 있어도 개와 사람은 다른 것을 느낀다. 개는 냄새로 세상을 읽고 사람은 눈으로 읽는다. 생명마다 자기에게 맞는 감각으로 세상을 짓는다.
향유고래(Physeter macrocephalus)를 보자. 향유고래는 수백 미터 깊은 바다로 내려간다. 그곳은 빛 한 점 없는 어둠이다. 어둠 속에서는 색이 아무 뜻이 없다. 대신 향유고래는 이마에서 강한 소리를 쏜다. 그 소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듣고 세상을 읽는다. 향유고래의 세상은 색이 아니라 소리로 그려진 세상이다 [2].
사람은 오랫동안 한 가지 착각을 했다. 사람이 못 느끼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자기 감각을 유일한 잣대로 삼았다. 이런 태도를 인간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인간 중심주의란 사람의 감각과 생각만 세상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이 태도 때문에 사람은 동물의 소리를 그저 울음이나 반응으로만 보았다.
동물의 소리와 몸짓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동물기호학(Zoosemiotics)이다. 동물기호학은 동물이 주고받는 신호의 뜻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호란 뜻을 담은 소리, 냄새, 몸짓이다. 미국 학자 토머스 시비옥(Thomas Sebeok)이 이 학문의 이름을 지었다. 이 학문은 윅스퀼의 환경세계 생각 위에 서 있다. 뜻을 담은 신호는 사람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자기 세상 안에서 신호를 주고받는다 [3].
윅스퀼의 생각은 새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학자 니콜라 젠쟈로(Nicola Zengiaro)는 생성 동물기호학이라는 생각을 내놓았다. 그는 인공지능이 동물의 신호를 기계로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그 뜻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동물이 사는 환경과 몸짓을 함께 보아야 뜻을 바로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4].
이제 인공지능이 이 문제를 새롭게 열고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넓은 소리 영역을 계산으로 읽는다. 사람이 빈 침묵이라고 여겼던 곳에 소리가 가득했다. 바다와 숲과 땅속에 신호가 오가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그 숨은 규칙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문제는 사람 사회와도 이어진다. 지구종 프로젝트(Earth Species Project)를 세운 아자 래스킨(Aza Raskin)은 기술이 사람을 서로 갈라놓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연과도 멀어졌다. 인공지능으로 동물의 소리를 듣는 일은 이 끊긴 줄을 다시 잇는 일이다 [5].
[1] Bakker, K. (2022). The sounds of life: How digital technology is bringing us closer to the worlds of animals and pla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ctv2hnkcc3
[2] Bakker, K. (2022). The sounds of life: How digital technology is bringing us closer to the worlds of animals and pla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ctv2hnkcc3
[3] Sebeok, T. A. (1972). Perspectives in zoosemiotics. Mouton.
[4] Zengiaro, N. (2025). AI and animal communication: A generative zoosemiotics perspective. Linguistic Frontiers, 8(2). https://doi.org/10.2478/lf-2025-0021
[5] Earth Species Project. (2026, April 2). Animal language processing: An AI convergence in animal communication. Earth Species Project. https://earthspecies.org/2026/04/02/animal-language-processing-an-ai-convergence-in-animal-communication/
8.2 사람 감각 너머의 소리와 떨림
사람 귀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사이 소리만 듣는다. 헤르츠는 소리가 1초에 몇 번 떨리는지 세는 단위다. 이보다 높거나 낮은 소리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 소리를 붙잡아 사람에게 보여 준다 [1].
먼저 식물의 소리를 보자. 오랫동안 식물은 소리와 관계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의 요시 요벨(Yossi Yovel) 교수와 릴라흐 하다니(Lilach Hadany) 교수 연구진이 이 생각을 바꾸었다. 물이 마르거나 줄기를 다친 토마토와 담배가 초음파를 냈다. 초음파는 사람이 못 듣는 높은 소리다. 그 소리는 사람이 대화할 때만 한 크기로 공기에 퍼졌다.
식물이 소리를 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이 마르면 줄기 속 가느다란 물길에 작은 공기 방울이 생긴다. 이 방울이 터질 때 딸깍 소리가 난다. 사람 귀에는 안 들리지만 기계는 잡아낸다.
이 소리를 딥러닝 인공지능에 넣어 보았다. 딥러닝은 소리의 특징을 스스로 찾아내는 인공지능이다. 그러자 물이 부족한 소리와 상처 입은 소리가 서로 다른 무리로 나뉘었다. 두 소리는 파형이 뚜렷이 달랐다. 파형은 물결처럼 출렁이는 소리의 모양이다. 곤충처럼 초음파를 듣는 동물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식물이 소리를 듣기도 한다. 요벨 교수와 하다니 교수 연구진은 달맞이꽃을 살폈다. 벌이 날 때 나는 소리를 꽃 옆에서 틀어 주었다. 그러자 꽃은 3분 안에 꽃꿀을 더 달게 바꾸었다. 다른 잡음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꽃잎이 소리를 모으는 귀 역할을 한 셈이다 [2].
미국 미주리 대학교의 하이디 애플(Heidi Appel) 교수와 렉스 코크로프트(Rex Cocroft) 교수 연구진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애기장대라는 작은 풀에 여러 소리를 들려주었다. 비바람 소리에는 풀이 잠잠했다. 그러나 애벌레가 잎을 갉는 떨림을 들려주자 달랐다. 풀은 곧바로 벌레를 쫓는 물질을 만들어 냈다. 잎이 갉는 떨림을 다른 떨림과 구별한 것이다 [3].
2026년에 나온 연구는 이 사실을 한 걸음 더 밀고 갔다. 요벨 교수와 하다니 교수 연구진은 나방을 관찰했다. 암컷 나방은 알을 낳을 자리를 고를 때 식물 소리를 들었다. 나방은 물이 마른 식물의 소리를 피하고 건강한 식물을 골랐다. 식물의 소리에 동물이 반응한다는 첫 증거였다 [4].
땅속과 작은 생명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꿀벌은 어두운 벌집 안에서 8자 춤을 춘다. 이 춤은 꽃이 있는 방향과 거리를 알리는 신호다. 그런데 이 신호는 눈으로 보는 춤만이 아니었다. 날개의 떨림과 벌집을 타고 흐르는 진동도 함께 섞여 있었다. 팀 랜드그라프(Tim Landgraf) 교수 연구진은 이 춤을 인공지능으로 읽었다. 로봇과 카메라가 벌집을 한 달 넘게 지켜보았다. 인공지능은 영상 속 춤을 하나하나 자동으로 풀어냈다 [5].
쥐도 사람이 못 듣는 소리로 말한다. 쥐는 불안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초음파를 낸다. 워싱턴 대학교의 케빈 코피(Kevin Coffey) 연구진이 딥스퀵(DeepSqueak)이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이 인공지능은 쥐 소리를 잘게 나누어 읽었다. 그 결과 쥐의 마음 상태를 소리로 읽어 낼 수 있었다 [6].
쥐 소리는 사람 귀로는 잡히지 않는다. 쥐는 겁을 먹으면 22킬로헤르츠 안팎의 소리를 낸다. 기분이 좋으면 50킬로헤르츠 대의 높은 소리를 낸다. 킬로헤르츠는 1000헤르츠를 뜻한다. 딥스퀵은 이 소리를 그림처럼 바꾸어 기분의 지도를 그렸다.
이 발견들은 한 가지를 함께 말한다. 사람이 못 듣는다고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땅과 풀과 작은 동물이 늘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이 숨은 소리를 사람 앞에 펼쳐 놓는다.
[1] Khait, I., Lewin-Epstein, O., Yovel, Y., & Hadany, L. (2023). Sounds emitted by plants under stress are airborne and informative. Cell, 186(7), 1328-1336. https://doi.org/10.1016/j.cell.2023.03.009
[2] Veits, M., et al. (2019). Flowers respond to pollinator sound within minutes by increasing nectar sugar concentration. Ecology Letters, 22(9), 1483-1492. https://doi.org/10.1111/ele.13331
[3] Appel, H. M., & Cocroft, R. B. (2014). Plants respond to leaf vibrations caused by insect herbivore chewing. Oecologia, 175(4), 1257-1266. https://doi.org/10.1007/s00442-014-2995-6
[4] Seltzer, R., Zer Eshel, G., Hadany, L., & Yovel, Y. (2026). Female moths incorporate plant acoustic emissions into their oviposition decision-making process. eLife, 14, e104700. https://doi.org/10.7554/eLife.104700
[5] Landgraf, T., et al. (2024). Autonomous tracking of honey bee behaviors over long-term periods with cooperating robots. Science Robotics, 9(95).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n6848
[6] Coffey, K. R., Marx, R. G., & Neumaier, J. F. (2019). DeepSqueak: A deep learning-based system for detection and analysis of ultrasonic vocalizations. Neuropsychopharmacology, 44(5), 859-868. https://doi.org/10.1038/s41386-018-0303-6
8.3 여러 감각을 한꺼번에 읽는 인공지능
동물은 소리 하나로만 말하지 않는다. 소리와 몸짓과 냄새가 함께 어울려 뜻을 만든다. 이렇게 여러 통로를 함께 쓰는 소통을 멀티모달(multimodal)이라고 부른다. 소리뿐 아니라 눈빛과 몸짓과 냄새까지 함께 섞어 쓰는 소통이다 [1].
소리 하나만 보면 뜻을 놓치기 쉽다. 같은 소리라도 몸짓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사람도 같은 말을 웃으며 할 때와 화내며 할 때가 다르다. 그래서 여러 신호를 함께 봐야 뜻이 통한다.
바하마 바다의 점박이돌고래 연구가 좋은 예다. 데니스 허징(Denise Herzing) 박사와 태드 스타너(Thad Starner) 교수가 챗(CHAT)이라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 기계는 돌고래와 사람이 소리를 주고받게 돕는다. 그런데 소리만으로는 대화를 풀 수 없었다. 돌고래가 사람과 눈을 맞추는 순간과 몸이 그리는 각도까지 함께 기록해야 했다. 여러 신호를 함께 봐야 뜻이 통했다.
까마귀 연구도 여러 신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존 마즐러프(John Marzluff) 교수 연구진이 까마귀를 살폈다. 연구진은 특별한 가면을 쓰고 까마귀를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 그 뒤 같은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나자 까마귀가 크게 울며 몰려들었다. 까마귀는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 것이다. 그 사람이 오면 경고 소리를 질러 동료에게 위험을 알렸다 [2].
이 기억은 오래갔다. 까마귀는 2년이 넘도록 그 얼굴을 잊지 않았다. 소리만 들어서는 이런 사실을 찾기 어렵다. 까마귀의 소리와 행동을 함께 봐야 뜻이 풀렸다.
이런 연구를 넓게 하려고 지구종 프로젝트(Earth Species Project)가 나섰다. 이 단체는 인공지능으로 동물의 말을 풀려는 연구 모임이다. 이들은 소리만 보는 방법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동물 몸에 붙인 감지기가 모으는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감지기는 소리, 움직임, 물속 깊이 같은 것을 잰다 [3][4].
동물 몸에 붙인 감지기는 많은 것을 잰다. 헤엄친 거리와 물속 깊이와 심장 뛰는 리듬을 모은다. 소리에 이 자료를 더하면 뜻이 더 또렷해진다. 배가 고픈 소리인지 겁먹은 소리인지 가릴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이 여러 자료를 시간 순서에 맞추어 함께 읽는다.
지구종 프로젝트는 2026년 글에서 새 이름을 소개했다. 동물 언어 처리(Animal Language Processing)다. 이 말은 2024년 발표에서 처음 쓰였다. 이 방법은 사람 말의 문법을 동물에게 억지로 씌우지 않는다. 소리든 몸짓이든 여러 신호를 규칙이 있는 자료로 보고 분석한다. 사람 말을 잣대로 삼지 않고 동물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읽으려는 태도다.
이 연구를 돕는 자료 창고도 나왔다. 지구종 프로젝트는 2026년에 알피데이터(alp-data)라는 도구를 열었다. 새와 고래와 곤충 소리 자료 35가지 이상을 한곳에 모았다. 지금은 소리 자료가 중심이고, 움직임과 영상 자료는 앞으로 더할 예정이다. 누구나 같은 자료로 연구할 수 있게 열어 두었다. 그래야 연구가 빠르게 쌓인다.
[1] Herzing, D. L., Starner, T., et al. (2025). CHAT Jr: A wearable bioacoustics system for two-way communication research between humans and cetaceans. NeurIPS 2025. https://neurips.cc/virtual/2025/131501
[2] Marzluff, J. M., Walls, J., Cornell, H. N., Withey, J. C., & Craig, D. P. (2010). Lasting recognition of threatening people by wild American crows. Animal Behaviour, 79(3), 699-707. https://doi.org/10.1016/j.anbehav.2009.12.022
[3] Earth Species Project. (2026, April 2). Animal language processing: An AI convergence in animal communication. Earth Species Project. https://earthspecies.org/2026/04/02/animal-language-processing-an-ai-convergence-in-animal-communication/
[4] Earth Species Project. (2026, July 22). Introducing alp-data: A shared data layer for animal language processing. Earth Species Project. https://earthspecies.org/2026/07/22/introducing-alp-data-a-shared-data-layer-for-animal-language-processing/
8.4 향유고래의 소리 알파벳과 인공지능
향유고래는 딸깍이는 소리로 말한다. 여러 딸깍 소리가 짧게 모인 것을 코다(coda)라고 부른다. 코다는 향유고래가 서로 나누는 짧은 딸깍 소리 묶음이다. 프로젝트 세티(Project CETI)가 이 코다를 연구한다. 세티는 인공지능으로 고래 말을 풀려는 연구 계획이다 [1].
2024년에 세티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연구진이 큰 발견을 했다. 이들은 고래 소리 8700조각이 넘는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그러자 코다가 규칙을 가진 소리 체계임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 규칙을 향유고래 음성 알파벳이라고 불렀다 [2].
이 알파벳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었다. 첫째는 딸깍 소리 사이의 일정한 박자인 리듬이다. 둘째는 전체 빠르기인 템포다. 셋째는 대화 흐름에 따라 빠르기를 늘이고 줄이는 루바토다. 넷째는 끝에 딸깍 소리를 하나 더 붙이는 장식음이다. 이 요소를 섞으면 여러 코다가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자주 나타나는 조합만 143가지 넘게 찾아냈다. 사람 말에 자음과 모음이 있는 것과 비슷한 짜임이다.
2025년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와 세티의 가슈페르 베구시(Gašper Beguš) 연구진이 코다를 자세히 살폈다. 딸깍 소리 속에 사람의 모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어 있었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고래 모음을 찾았다. 사람의 아 소리와 이 소리처럼 서로 다른 소리였다. 향유고래가 사람처럼 소리를 세밀하게 나눈다는 뜻이다 [3].
코다는 대화 상황에 따라 모양이 달라졌다. 앞 고래가 낸 소리에 맞추어 뒤 고래가 소리를 바꾸었다. 사람이 서로 맞장구치며 말을 주고받는 것과 닮았다. 이런 흐름은 많은 자료와 계산 분석 덕분에 더 잘 드러났다.
프로젝트 세티는 2026년에 새 소식도 전했다. 연구진은 향유고래의 출산 장면을 자세히 기록했다. 물속 소리를 6시간 넘게 담고, 하늘에서 찍은 영상도 함께 모았다. 그 자료에서 무리가 새끼의 탄생을 함께 돕는 모습이 드러났다. 사람과 원숭이 같은 무리가 아닌 동물에서 이런 협동 돌봄을 숫자로 밝힌 첫 사례였다 [4].
고래 말을 사람 말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두 언어를 나란히 적은 사전이 없기 때문이다. 베구시 연구진은 새 방법을 찾고 있다. 정답표 없이 소리의 규칙을 스스로 찾아 뜻을 짐작하는 방법이다 [5].
이런 연구는 인공지능 없이는 하기 어려웠다. 사람 귀로는 그 많은 딸깍 소리의 규칙을 찾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소리를 빠르게 견주어 숨은 규칙을 찾아낸다.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코다의 규칙을 찾았다고 뜻을 다 안 것은 아니다. 소리의 짜임을 아는 것과 뜻을 아는 것은 다르다. 향유고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는 이제 문을 연 단계다.
[1] Project CETI. (2024, May 7). Sperm whale phonetic alphabet proposed for the first time. Project CETI. https://www.projectceti.org/blog-posts/sperm-whale-phonetic-alphabet-proposed-for-the-first-time
[2] Sharma, P., Gero, S., Payne, R., Gruber, D. F., Rus, D., Torralba, A., & Andreas, J. (2024). Contextual and combinatorial structure in sperm whale vocalisations. Nature Communications, 15, 3617. https://doi.org/10.1038/s41467-024-47221-8
[3] Beguš, G., Sprouse, R. L., Leban, A., Silva, M., & Gero, S. (2025). Vowel- and diphthong-like spectral patterns in sperm whale codas. Open Mind, 9. https://doi.org/10.1162/OPMI.a.252
[4] Project CETI. (2026, March). Studies documenting rare sperm whale birth and ancient cooperative care released. EurekAlert! https://www.eurekalert.org/news-releases/1120823
[5] Beguš, G., Leban, A., & Gero, S. (2026). Approaching an unknown communication system by latent space exploration and causal inference. Royal Society Open Science, 13(8), 250829. https://doi.org/10.1098/rsos.250829
8.5 기호학적 경계와 종간 외교
인공지능은 넓은 감각을 사람에게 열어 준다. 그러면 바닷속 생명의 소리는 무엇으로 모을까. 사람은 수중 청음기를 쓴다. 수중 청음기는 물속 소리를 잡는 마이크다. 고래나 돌고래 몸에는 작은 기록 장치를 붙인다. 바다 곳곳에는 소리를 잡는 부표 센서망을 띄운다. 이렇게 모은 소리를 인공지능이 읽는다 [1].
앞으로 나올 기술을 두고 나온 생각도 있다. 곧 다가올 6세대 통신망(6G)을 감지기로 쓰자는 제안이다. 6G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무선 통신망이다. 이 망의 전파가 물체에 부딪히는 것을 읽으면 움직임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는 아직 제안 단계의 생각이다. 게다가 전파는 바닷물을 거의 지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방법은 땅 위와 공기 속을 살피는 데 쓰려는 것이다. 바닷속 소리를 모으는 일에는 맞지 않는다 [2].
여기서 중요한 경계선이 나타난다. 기호학적 경계란 신호와 뜻을 어디까지 읽어도 되는지 가르는 선이다. 인공지능이 동물의 신호를 다 모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신호를 사람 말의 틀에 억지로 끼워도 될까. 예를 들어 고래 소리를 사람 음악에 하나씩 짝지어도 될까. 이런 짝짓기는 사람 생각을 동물에게 씌우는 일이다 [3].
잘못된 짝짓기의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돌고래 10마리 가운데 3마리가 명사를 쓴다고 말할지 모른다. 고래의 딸깍 소리를 사람 음악에 하나씩 맞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틀을 억지로 씌운 것이다. 동물의 소리는 동물의 세상 안에서 읽어야 한다.
소리를 풀어내는 일에는 윤리 문제가 따른다. 학자들은 동물의 말을 사람이 함부로 흉내 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잘못 쓰면 동물을 속이거나 괴롭히는 데 쓸 수 있다. 그래서 규칙을 먼저 세우자고 말한다 [4].
윅스퀼의 환경세계 생각은 오늘도 길잡이가 된다. 동물과 식물은 사람 사전의 번역어가 되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신호는 오랜 세월 이어 온 그들만의 문화다. 현대 연구자들은 윅스퀼의 뜻을 이어받아 인공지능으로 동물을 함부로 흉내 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목표는 말하는 동물 장난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 다시 들려주는 실험이 있다. 이것을 재생(playback)이라고 부른다. 녹음한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고 동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실험이다. 이 도구를 함부로 쓰면 동물의 세계를 어지럽힐 수 있다. 재생 소리에 놀란 동물이 진짜 신호와 가짜 신호를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조심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정복이 아니라 경청이다. 사람이 지구의 유일한 해석자라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이다. 동물의 소리가 그들의 땅과 바다에서 오래 이어지도록 지키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종간 외교(interspecies diplomacy)라고 부른다. 종간 외교란 사람과 다른 생명이 서로 해치지 않고 지내기 위한 약속이다 [5].
경청은 말없이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물이 사는 바다와 숲을 지키는 일까지 이어진다. 소리를 지키려면 소리가 나는 곳을 함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종간 외교의 참뜻이다.
[1] Bakker, K. (2022). The sounds of life: How digital technology is bringing us closer to the worlds of animals and pla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ctv2hnkcc3
[2] Ericsson. (2025). Integrated sensing and communication (ISAC) explained. Ericsson. https://www.ericsson.com/en/6g/isac
[3] Zengiaro, N. (2025). AI and animal communication: A generative zoosemiotics perspective. Linguistic Frontiers, 8(2). https://doi.org/10.2478/lf-2025-0021
[4] Alcantara, L., & Andrews, K. (2026). Can we talk to the animals? The ethics of using machine learning to decode animal communication. Topoi. https://doi.org/10.1007/s11245-026-10409-2
[5] Earth Species Project. (2026, April 2). Animal language processing: An AI convergence in animal communication. Earth Species Project. https://earthspecies.org/2026/04/02/animal-language-processing-an-ai-convergence-in-animal-communic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