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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장 기계공과 여경이 키운 아이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1부 나라(奈良)에서 온 소녀 (1961~1984)
1장 기계공과 여경이 키운 아이
김경진
일본 정치를 오래 취재해온 기자들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의 출신 배경을 처음 들었을 때 한결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치인 집안이냐고요? 아닙니다. 재계 명문이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지방 유지의 딸이냐고요? 전혀. 아버지 다카이치 다이큐(高市大休)는 도요타 계열 기계 제조 회사의 영업직이었고, 어머니 가즈코(和子)는 나라현 경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습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영락없는 샐러리맨 가정이었습니다.
1961년 3월 7일. 쇼와(昭和) 36년의 이른 봄, 사나에는 나라현(奈良県)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 당시는 야마토코리야마시(大和郡山市)였고, 이후 가족이 가시하라시(橿原市)로 이사하면서 그 도시가 그녀의 고향이 됐습니다. 가시하라는 나라현 중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인구는 현재 약 12만 명. 나라시에 이어 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전국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곳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무게만큼은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가시하라라는 이름 자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본 건국 신화에서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神武天皇)이 기원전 660년에 일본 최초의 수도인 '가시하라 궁(橿原宮)'을 짓고 즉위했다고 전해집니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된 그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1890년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세워진 가시하라 신궁(橿原神宮)이 지금도 이 도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694년에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도성인 후지와라쿄(藤原京)가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조선(朝鮮)으로 치면 경주 같은 곳. 역사가 흙 속에 묻혀 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과거 위를 걷는 느낌이 나는 도시.
그 도시에서 자란 아이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감각을 거의 태어나면서부터 흡수했습니다. 학교 소풍은 고분(古墳) 견학이었고, 동네 축제는 천 년이 넘은 신사의 제례였습니다. 이것이 뒤에 이야기할 야스쿠니 참배나 헌법 개정에 관한 입장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땅은 사람을 만듭니다.
어머니 가즈코는 1932년생이었습니다. 마쓰야마시(松山市) 출신으로, 결혼 후 나라현으로 이사했습니다. 1960년대 초 일본 사회에서 기혼 여성이 경찰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유지하는 여성 자체가 드물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즈코는 그 길을 선택했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나라현 경찰청으로 출근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묘사하는 단어가 딸의 인터뷰에서 반복됩니다. 엄격했습니다.
엄격함의 사례는 구체적입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각료가 된 이후에도 어머니는 딸의 정책 결정에 대해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그 결정은 잘못됐어." 장관의 어머니가 장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딸은 기꺼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어머니의 말은 반박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인 척하거나, 조용히 자기 방식을 고수하거나. 후자를 택한 경우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 훈육의 방식이 딸에게 일종의 규율 감각을 심어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가즈코는 딸과 아들에게 가정 교육의 원칙들을 명확하게 가르쳤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조상에게 감사한다. 이 네 가지. 이 원칙들이 어느 만큼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정치인의 행동 방식에 반영됐는지는 그 정치인의 32년 경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육칙어(教育勅語)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이지 천황이 1890년에 발포한 교육칙어는 일본 전전(戰前) 교육의 핵심 문건이었습니다. 전후 연합국최고사령부(GHQ)에 의해 폐지됐고, 현재는 역사적 논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다카이치의 가정에서는 이것이 가족의 전통이었습니다. 사나에의 조부는 아들(사나에의 아버지)이 어릴 적에 교육칙어를 외우지 못하면 밥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자라서 다시 딸에게 같은 방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사나에가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양쪽 부모 모두 교육칙어 전문을 암기하고 있었고, 딸에게도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이 사실은 뒤에 이야기할 그녀의 역사관, 헌법관, 방위관과 연결됩니다.
아버지 다이큐는 1934년생이었습니다. 마쓰야마 출신. 도요타 계열 기계 제조 회사에 취직해 영업직으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나중에는 오사카 영업소 소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나라와 오사카를 오가는 일상. 그 영업직의 삶은 딸에게 하나의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나중에 의원이 된 딸은 선거구에서 가장 열심히 돌아다니는 의원 중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이큐는 딸이 처음 선거에 나섰을 때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은 짧았습니다. "자신감을 가져라. 악수와 목례를 잊지 마라. 필요하다면 내 퇴직금을 쓰렴." 정치가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아닙니다. 영업사원 아버지가 딸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법을 아는 아버지가 딸에게 알려주는 것들. 악수. 목례. 자신감.
사나에 아래로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 도모지(知嗣)가 있었습니다. 부모 모두 직장을 다녔기에 어린 시절 집은 분주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이 비어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여섯 살 아래 남동생을 돌보는 것도 사나에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그 빈 공간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아이는 그 공간에서 스스로 채울 것을 찾습니다. 사나에는 후자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라현의 공립 학교 교육은 당시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학교, 중학교를 공립으로 다녔습니다. 나라시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가시하라시로 이사한 뒤 새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전학은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은 경험입니다. 새 친구들, 새 교사들, 새 규칙들. 사나에는 원래 내향적인 아이였다고 합니다. 전학 이전에는 더 그랬습니다. 전학을 계기로 조금 더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됐다고 본인이 나중에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적응의 훈련이 그 아이를 조금씩 바꿨습니다.
소학교 시절부터 피아노와 서예를 배웠습니다. 피아노는 일본의 많은 중산층 가정에서 딸에게 가르치는 교양이었습니다. 서예는 한자 쓰기와 함께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훈련이 이후 국회에서 법안 문서를 직접 작성하고, 연설문을 스스로 쓰는 정치인을 만드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확한 언어와 정확한 숫자에 집착하는 그녀의 스타일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을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드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중학교 여학생이 헤비메탈 음악에 빠지고 드럼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취미는 이후 수십 년간 그녀와 함께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각료가 된 뒤에도, 총리가 된 뒤에도. 의원회관 사무실에 전자 드럼 세트가 놓여 있었다는 것은 보좌진들이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드럼이라는 악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드럼은 밴드 전체의 리듬을 책임지는 악기입니다. 드러머가 흔들리면 밴드 전체가 흔들립니다. 박자를 유지하는 것. 힘이 있되 절제하는 것.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전체를 지탱하는 것. 좋은 드러머의 자질과 좋은 정치 지도자의 자질이 어디선가 겹친다는 생각은 과한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부모가 모두 그녀의 총리 취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 다이큐는 2013년,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가즈코는 2018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이 2015년, 2021년, 2024년 세 번에 걸쳐 총재 선거에 도전하는 것을 가즈코는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2025년 총재 선거와 총리 취임은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결정은 잘못됐다"고 전화를 걸어오던 어머니. 딸이 각료가 되어도, 중요한 정책을 발표해도, 그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가장 고집 있는 비판자를 잃은 것이 언제부터인지. 그 빈자리는 그 어떤 정치적 지지나 여론 조사 수치로도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1961년 3월 7일 나라현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기계공 아버지와 경찰관 어머니가 심어준 것들을 안고 자랐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엄격하되 따뜻하게. 역사를 잊지 않는다. 스스로 감당한다. 이 원칙들은 이후 그 아이가 국회의원이 되고, 각료가 되고, 총재 선거에서 세 번 도전하고, 마침내 총리가 되는 과정 내내 그 사람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라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시하라 신궁 앞 길은 여전히 넓고 조용합니다. 우네비 산은 여전히 낮고 둥글게 솟아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자란 소녀는 오랫동안 이름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가정에서 자란 사나에에게 정치는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국가 기관인 경찰청에서 일했습니다. 교육칙어를 외우며 자랐습니다. 나라의 역사가 발 아래 묻혀 있는 고도(古都)에서 살았습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감각이 일찍부터 형성됐습니다. 그 감각은 이후 의원이 되고, 각료가 되고,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행동 원리 중 하나로 작동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은 어린 시절 환경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만든 토대를 무시하고 한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1961년 나라의 한 가정. 그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참고 자료
- 高市早苗 公式ホームページ プロフィール: https://www.sanae.gr.jp/profile.html - 高市早苗 Wikipedia (日本語):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橿原市 公式サイト — 歴史・文化: https://www.city.kashihara.nara.jp/ - Sanae Takaichi — Wikipedia (English): https://en.wikipedia.org/wiki/Sanae_Takaichi - 奈良県立橿原考古学研究所: https://www.kashikoken.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