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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장 우네비(畝傍)의 바람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1부 뿌리 — 나라에서 워싱턴까지
2장 우네비(畝傍)의 바람
김경진
가시하라시 남쪽에 낮고 둥근 산이 하나 있습니다. 높이 198미터. 등산이라 부르기엔 너무 낮고, 그냥 언덕이라 부르기엔 너무 인상적인 산. 우네비 산(畝傍山)입니다. 일본 최초의 천황인 진무 천황이 이 산 동쪽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그 능(陵)은 지금도 궁내청(宮内庁)이 관리합니다. 가을이면 억새가 바람에 눕고, 봄이면 산벚꽃이 경사면을 덮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흙 속에 가라앉은 산.
그 산 기슭에 오래된 학교가 있습니다. 나라현립 우네비고등학교(奈良県立畝傍高等学校). 1896년, 메이지(明治) 2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2026년이면 창립 130주년을 맞습니다. 교정 안에 서 있는 본관 건물은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쇼와 초기 건축의 특징을 간직한 역사적 건조물입니다. 문화청은 2012년 이 건물을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교과서를 배우는 공간 자체가 역사의 일부인 학교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은 1976년 봄이었습니다. 쇼와 51년. 중학교를 마친 열다섯 살 소녀는 통학 거리가 훨씬 먼 이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부모와 함께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당시 나라현 공립 고등학교 중 학력 면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인문계 명문. 현재도 이 학교는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를 치르는 학생 비율이 70퍼센트를 넘는 진학 중점 학교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통학이었습니다. 집에서 우네비고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기차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매일 여섯 시간. 이 숫자는 나중에 고베대학 통학과 함께 그녀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수치가 됩니다. 한국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에서 수원 정도의 거리를 매일 왕복하는 것. 그것도 고등학교 3년 내내. 그것도 자발적으로.
그 여섯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이후 다카이치 사나에가 보여준 독서량과 사고의 깊이를 생각하면, 그 통학 시간이 낭비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신문을 읽었을 것입니다. 1970년대 중반의 일본은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전후 경제 고도성장이 막 정점을 지나고 있었고, 1973년 석유 위기가 일본 경제에 충격을 준 이후의 혼란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의 록히드 뇌물 사건이 법정에서 다투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치의 부패 문제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그 신문들을 기차 안에서 읽는 열다섯 살 소녀가 있었다면,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우네비고는 학업만의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교풍(校風)을 설명하는 말로 자주 쓰이는 단어가 문무양도(文武両道)입니다. 공부와 운동을 함께 중시하는 전통. 학교 행사도 많았고, 동아리 활동도 활발했습니다. 이 학교의 유명 졸업생 명단을 보면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학자, 경제인들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졸업생이 오쿠노 세이스케(奥野誠亮)입니다. 1913년 나라현 출생으로, 우네비고를 나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관료로 출발해 자민당 중진으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법무대신, 자치대신, 문부대신, 국토청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사나에가 우네비고에 재학 중이던 1976년부터 1979년 사이, 오쿠노는 현직 각료였습니다. 같은 학교 선배가 일본의 정치 중심에 있다는 사실. 이것이 어린 학생의 머릿속에 어떤 씨앗을 심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학교 출신도 그런 일을 한다'는 전례가 가능성의 지도에 점 하나를 찍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드럼은 계속됐습니다. 중학교 때 시작한 취미가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의 10대들 사이에서 록 음악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반들이 수입됐고,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사나에가 빠진 장르는 헤비메탈이었습니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무겁고 빠르고 복잡한 사운드. 일본의 여고생이 이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음악의 드럼을 직접 치는 것은.
헤비메탈 드럼을 제대로 치려면 두 손과 두 발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오른발은 킥 드럼을, 왼발은 하이햇을, 오른손은 심벌을, 왼손은 스네어를. 네 가지가 각자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그루브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드럼을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뇌가 여러 채널을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그 훈련이 이후 다카이치라는 정치인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그녀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입니다. 경제 안보 담당 대신 시절, 반도체 산업 정책과 공급망 보안과 데이터 규제 법안을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총무 대신 시절에는 방송 정책과 지방 행정과 통신 규제를 한꺼번에 다뤘습니다. 멀티태스킹. 드럼을 배우면서 발달한 근육이 다른 형태로 발현됐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추측입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추측입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3년. 우네비고 시절의 사나에에 대해서는 알려진 에피소드가 많지 않습니다. 전학을 다닌 것, 드럼을 친 것, 여섯 시간을 통학한 것. 이 몇 가지 사실만으로 그 시절을 전부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이 만들어낸 것들은 이후 그 사람의 행동 방식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인내. 통학 여섯 시간을 3년 동안 이어간 사람에게는 어떤 인내의 근육이 생깁니다. 긴 여정을 습관으로 만드는 능력. 불편함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이것이 나중에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치인의 근성과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닙니다.
독립심. 하루 여섯 시간을 혼자 이동하면서 혼자 시간을 관리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부모의 눈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스스로를 이끄는 것. 이것은 뒤에 그녀가 당내에서 비주류로 활동하면서도 자기 입장을 유지하는 정치 스타일의 기원이 됩니다.
1979년 봄, 우네비고를 졸업했습니다. 그 해에 대학 입시를 치렀습니다. 성적은 도쿄의 명문 사립대학인 게이오(慶應義塾大学)와 와세다(早稲田大学)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나중에 알려졌습니다. 두 학교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부모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도쿄의 사립대학은 학비가 비쌌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도쿄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많은 일본 가정에서 딸의 원거리 독립 생활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딸에게는. 아들이라면 몰라도. 그것이 그 시대 일본 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사나에의 집도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정이 딸에게 어떤 감정을 안겨줬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이 있었는지, 수긍이 됐는지, 아니면 이미 다른 선택을 마음속에 정해두고 있었는지. 나중에 그녀가 이 시기를 돌아보며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약이 길을 만들었다고. 고베대학은 나라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의 국립대학이었습니다. 그 제약이 그녀를 고베로 데려갔고, 고베대학의 경영수학 전공이 훗날의 정책통 정치인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네비고의 졸업식이 있던 날 아침, 우네비 산 위에서 바람이 불었을 것입니다. 봄이었으니 차갑지는 않았겠지만, 가시하라의 바람은 강합니다. 야마토 분지(大和盆地)를 가로지르는 바람. 그 바람 속에서 한 소녀가 교문을 나섰습니다. 나라에서 고베로, 역사가 잠들어 있는 땅에서 항구 도시로. 그 거리가 우네비의 시간을 닫고 새로운 장을 여는 경계선이었습니다.
그 6시간이 그녀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차 안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내면의 세계를 키웠습니다. 우네비고교의 3년이 그녀에게 준 것은 학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긴 통학이 심어준 인내. 혼자서 자신의 시간을 채우는 능력.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환경에서 스스로 서는 훈련.
그 훈련은 이후 정치 활동에서도 반복됐습니다. 1993년 선거에서 당의 지원도, 선배의 후광도 없이 혼자 선거를 치렀습니다. 우네비고교의 통학이 그 준비 운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네비(畝傍). 일본의 고대 신화에서 신성한 산으로 불리는 이름. 그 이름을 가진 학교에서 3년을 보낸 소녀는 1979년 고베를 향해 떠났습니다.
우네비고교는 1896년 창립했습니다. 나라현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공립고교 중 하나입니다. 매년 도쿄대, 교토대, 오사카대 등 전국 최상위 대학에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합니다. 3시간의 통학을 감수하고 이 학교를 선택한 것 자체가, 그 가정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학벌과 학력에 대한 투자. 그것이 1970년대 일본 중산층 가정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일본 사회가 어떤 공기를 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은 일본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서서히 확대되던 시기였습니다. 1975년에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를 선포했고, 1979년에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채택됐습니다. 일본에서도 여성이 경영자가 되고, 공무원이 되고, 의원이 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었습니다. 우네비고 재학 시절의 사나에가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후 선택한 길이 그 시대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979년 졸업 당시, 우네비고는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는 학교였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건물 안에서 쇼와 후기의 학생들이 미래를 꿈꿨습니다. 수백 년의 역사가 잠든 우네비 산 아래에서, 한 소녀가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참고 자료
- 奈良県立畝傍高等学校 公式サイト: https://www.unebiko-h.ed.jp/ - 高市早苗 Wikipedia (日本語) — 経歴: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nippon.com, 「高市早苗氏: 総裁の椅子に座るまでのタイムライン」: https://www.nippon.com/ja/japan-topics/g02425/ - 畝傍山 —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E7%95%9D%E5%82%8D%E5%B1%B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