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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5장 미국 연방의회의 동양인 여성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1부 뿌리 — 나라에서 워싱턴까지
5장 미국 연방의회의 동양인 여성
김경진
1987년 가을. 덜레스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았습니다. 스물여섯 살의 일본 여성이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워싱턴 D.C.의 대기 속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손에는 짐 가방 하나. 주머니에는 아버지에게서 빌린 10만 엔. 당시 환율로 700달러 남짓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워싱턴에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공항 밖에 나서자 도시는 조용했습니다. 연휴였습니다. 상점마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도 물 살 곳이 없었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지도 한 장을 들고, 낯선 거리를 걸었습니다. 밤이 되자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그날 밤은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1박에 70달러. 10만 엔으로는 열흘도 버틸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워싱턴 포스트』 광고란을 펼쳤습니다. 아파트를 찾아야 했습니다. 전화를 돌리고, 발품을 팔고, 결국 월세 300달러짜리 방을 구했습니다. 15평방미터 남짓의 작은 공간. 화장실과 부엌과 난방이 딸린 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가 없었습니다. 이불도 없었습니다. 바닥에 종이 상자를 깔고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건물 관리인인 매코이라는 흑인 여성이 안타깝게 여겨 낡은 담요 한 장을 빌려줬습니다. 그 담요 한 장이 워싱턴의 첫 겨울을 버티게 해준 전부였습니다.
이 장면이 훗날 일본 총리가 되는 사람의 스물여섯 시절 모습입니다. 단순히 가난한 유학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어떤 선택이 있었습니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정경숙의 공식 파견이 아닌, 자신이 직접 쓴 편지 한 통으로 워싱턴行을 만들어냈습니다.
계기는 TV였습니다. 정경숙 재학 시절, 다카이치는 CNN 뉴스에서 한 미국 여성 의원을 봤습니다. 패트리샤 슈로더(Patricia Schroeder). 콜로라도주 제1선거구 출신의 민주당 하원의원. 1973년부터 하원에 있었고, 군사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여성 권리와 가족 정책, 국방 예산 감축을 주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1987년 9월, 슈로더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울었습니다.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전국 뉴스로 나갔습니다. 일부 언론은 조롱했습니다. "여자 정치인은 감정적"이라고.
다카이치는 그 장면을 달리 봤습니다. 여성이 정치의 한가운데서 우는 것이, 그녀의 눈에는 약함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보였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흘리는 눈물. 다카이치는 편지를 썼습니다. 영어로. 슈로더 의원 사무실로 발송했습니다. "당신 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일본 총리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정경숙 학생이 미국 연방의원 사무실에 무작정 보낸 편지였습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슈로더 의원 사무실의 수석 보좌관 댄(Dan)이었습니다. "와도 됩니다."
정경숙 측은 처음에 우려했습니다. 공식 파견이 아닌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워싱턴 연수를 정경숙 해외 연수의 일환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카이치는 담요 한 장과 함께 워싱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레이번 빌딩(Rayburn House Office Building). 워싱턴 D.C. 캐피톨 힐 남쪽에 있는 하원 의원 사무실 건물. 슈로더의 사무실이 이 건물에 있었습니다. 다카이치가 처음 그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수석 보좌관 댄이 놀란 표정으로 맞았습니다. "정말 왔군요." 편지를 보낸 일본 여성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의외였던 모양입니다. 슈로더 의원은 악수를 건네며 웃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맡은 일은 단순했습니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는 편지를 분류하는 일. 그리고 전화를 받는 일. 콜로라도 유권자들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여러 요구사항, 민원, 불만, 때로는 고함. 일본 여성이 전화를 받으면 "의원 직접 바꿔"라고 했습니다. 그 요구를 적절히 처리해야 했습니다. 영어로. 미국식 정치 문화로.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습니다. 발음이 통하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었고, 관용 표현을 몰라 곤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슈로더 사무실에서 일본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 1980년대 후반, 미국과 일본 사이의 가장 뜨거운 현안은 무역이었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미국 제조업체들은 일본 기업들의 '불공정 경쟁'을 문제 삼았고, 미 의회는 일본에 대한 무역 보복 법안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협정을 맺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고, 해외 반도체 시장에서 덤핑을 하지 않기로 한 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3월, 미국 무역대표부는 일본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산 전자 제품에 100퍼센트 보복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양국 관계는 험악했습니다.
다카이치는 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의회 청문회 자료를 정리했고, 의원들이 일본 관련 발언을 할 때 그 맥락을 설명하는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미국 측에서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매일 피부로 느꼈습니다. 단순한 경제 마찰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시각에서 일본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나라",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 시각이 어디서 오는지, 어떤 논리 구조를 갖고 있는지, 가까이서 관찰했습니다.
이 경험이 훗날 다카이치의 경제 안보 정책에 녹아듭니다. 총무대신, 경제산업대신을 거쳐, 특히 경제 안전 보장 담당 대신으로 활동하면서 그녀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공급망(supply chain)의 안전, 핵심 기술의 국내 생산,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 탈피. 그 정책의 원형은 1987년 워싱턴의 의회 사무실에서 목격한 장면들에 있었습니다. 반도체 하나 때문에 양국 관계가 뒤흔들리는 현실. 기술과 경제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워싱턴에서의 일상은 쉽지 않았습니다. 동양인 여성이라는 존재는 주목을 받기보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회 복도를 걸어다니면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습니다. 회의실에서 발언을 해도 무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 라는 시선이 배어 있었습니다. 일본 출신이라는 것이 추가적인 편견을 불렀습니다.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 일본은 "경제 침략국"으로 인식됐습니다. 그 나라에서 온 여성이라는 이중의 편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이 그녀를 부드럽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편견 속에서도 버티는 법,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법, 상대방의 논리를 정확히 파악한 뒤 그것을 뒤집는 법. 워싱턴이 그녀를 훈련시켰습니다. 정경숙이 이론을 가르쳤다면, 워싱턴은 현실을 가르쳤습니다.
슈로더 의원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보좌-의원 관계를 넘어섰습니다. 슈로더는 다카이치의 능력을 인정했고, 일본 관련 현안에서 점점 더 실질적인 역할을 맡겼습니다. 다카이치는 훗날 자신의 첫 저서 표지에 "미 연방의회 입법 조사관"이라는 직함을 사용했습니다. 이 표현을 둘러싸고 훗날 경력 과장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그녀가 의회에서 수행한 업무가 단순 인턴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은 슈로더 사무실 관계자들의 증언으로도 확인됩니다.
1989년, 다카이치는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워싱턴에서의 2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1992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저서를 출판했습니다. 제목은 『アメリカの「女性大国」神話を斥ける』(미국의 '여성 대국' 신화를 배격한다). 미국이 여성에게 평등한 나라라는 통념을 반박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녀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이 담겼습니다. 의회 복도에서 무시당한 동양인 여성의 시선으로, 미국 민주주의와 젠더 정치의 실상을 해부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계층의 여성들만이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구조가 있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려면, 상징적 여성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실질적 정책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미래 총리가 쓴 첫 번째 책의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패트리샤 슈로더는 2023년 3월,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살아서 다카이치가 일본 총리가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987년, 그 울음의 기자 회견 이후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인연이, 그런 형태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워싱턴은 다카이치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바꿨는지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미국을 동경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동시에 미국을 냉정하게 보는 사람이 됐습니다. 동맹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동맹국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키웠습니다. 반도체 협상의 현장을 목격한 스물여섯 살의 기억이, 반세기 뒤 경제 안보 정책의 설계자를 만들었습니다. 단단한 바닥에 깔린 종이 상자 한 장. 그 위에서 시작된 워싱턴의 밤이 그렇게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