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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0장 "자객 후보"로 돌아오다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2부 등장 — 당선과 방랑
10장 "자객 후보"로 돌아오다
김경진
2004년 9월의 어느 날, 다카이치 사나에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발신자는 야마모토 다쿠(山本拓). 자민당 의원이었습니다. 후쿠이현(福井県) 선거구의 베테랑 의원이고, 경제 정책 전문가이며, 정통 자민당 보수 계열의 인물이었습니다.
그 통화의 내용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진지하게 결혼 상대를 찾고 계시다면, 저도 이혼 경험이 있으니 후보로 나서겠습니다."
다카이치는 44살이었습니다. 야마모토는 50살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의원직을 두고 치열하게 살아온 정치인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전 결혼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색한 교제 기간 없이, 그 통화가 사실상 프로포즈였습니다.
일본 언론은 나중에 이것을 '교제 0일 결혼(交際ゼロ日婚)'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년 후인 2004년 9월, 다카이치와 야마모토는 혼인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다카이치 43세, 야마모토 50세.
두 사람이 연결된 계기는 다카이치의 남동생이었습니다. 남동생이 야마모토의 사무소에서 일했고, 그 인연이 두 정치인을 이어줬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은 각자의 선거구에서 독립적인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자민당 의원 부부. 같은 당이지만 서로 다른 지역구를 가진 독립적인 두 사람.
그리고 그 결혼 이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일본 정치에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2005년 7월 5일, 중의원 본회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가장 중요하게 밀어붙이던 법안, 우정 민영화 법안이 찬성 233, 반대 228로 가결됐습니다. 자민당 의원 37명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간신히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8월 8일,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됐습니다. 찬성 108, 반대 125. 자민당 참의원 22명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날 저녁, 고이즈미는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중의원을 해산합니다." 상원에서 법안이 부결됐다는 이유로 하원을 해산하는 것은, 일본 헌법 해석의 극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선례가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했습니다.
'우정 해산(郵政解散)'.
고이즈미는 말했습니다. "우정 민영화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국민에게 직접 묻겠습니다." 선거는 9월 11일로 확정됐습니다. 한 가지 이슈를 두고 싸우는 선거. 찬성이냐 반대냐.
우정 민영화가 무엇인지, 짧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전국의 우체국은 단순히 편지를 배달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편 저금과 간이보험을 운영하는 거대한 금융 기관이었습니다. 2005년 당시 우편 저금 잔액이 약 220조 엔, 간이보험 적립금이 약 120조 엔. 합산 약 340조 엔. 이 엄청난 자금이 정부 관리 아래 시장 바깥에 있었습니다.
고이즈미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이 자금을 민간 시장으로 개방해야 한다. 낡은 공적 자금 관리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반대파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농어촌의 우체국 네트워크가 무너진다. 지역 주민들의 금융 접근성이 떨어진다."
자민당 내에서도 37명의 중의원과 22명의 참의원이 반대했습니다. 고이즈미는 이들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법안에 반대한 자민당 의원들에게 공인을 박탈하거나 탈당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탈당 의원들이 지키고 있는 선거구마다, 고이즈미는 자민당의 새 후보를 보냈습니다. 언론이 이것을 '자객 후보(刺客候補)'라고 불렀습니다.
2005년 8월, 자민당 본부로부터 다카이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나라 제2구(奈良2区). 그 선거구에 자객으로 가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나라 제2구는 야마토 고리야마시(大和郡山市), 카시하라시(橿原市), 사쿠라이시(桜井市) 등을 포함하는 선거구였습니다. 나라현 남부와 중부에 걸쳐 있는 지역. 다카이치가 기존에 활동하던 나라 제1구(나라시 중심)와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 선거구의 현역 의원은 다키 미노루(滝実)였습니다. 1935년생으로 당시 70세. 자치성(현 총무성) 관료 출신으로 1990년부터 자민당 의원을 해온 베테랑이었습니다. 다키는 우정 민영화에 반대했고, 찬성 표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자민당의 공인이 박탈됐고, 다키는 신당 일본(新党日本)에 합류해 무소속에 가까운 입장에서 선거를 치르게 됐습니다.
다카이치가 그 선거구에 자객으로 투입됐습니다.
선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자객 후보에게 불리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다키의 지역 기반. 수십 년간 쌓인 지역 인맥과 후원회 조직. 나라 제2구 유권자들에게 다키는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다카이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일부 지역 자민당 지부는 탈당한 다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자민당 공인 후보가 자민당 지역 조직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의 선거는 일반적인 선거가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주요 언론이 자객 선거구에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고이즈미 대 반란 세력의 드라마. 다카이치 대 다키. 나라 제2구는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지역에서 수십 년을 보낸 의원의 얼굴이 아니라, 우정 민영화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고이즈미의 개혁을 지지하느냐. 그 기준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습니다.
9월 11일 개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자민당): 92,096표, 44.5% 중무라 데쓰지(민주당): 34.8% 다키 미노루(신당 일본): 14.5% 나카노 아케미(일본공산당): 6.1%
다카이치의 압승이었습니다. 다키는 14.5%로 3위. 비례 부활로 의석을 얻었지만, 소선거구 직접 대결에서는 크게 졌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자민당이 압승했습니다. 480석 중 자민당 296석, 공명당 31석. 합계 327석으로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넘었습니다. 자민당이 1960년 이후 가장 높은 의석률을 기록한 선거였습니다.
다카이치는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2003년 낙선 후 2년 만이었습니다. 나이 44세였습니다. 이것이 4선이었습니다.
12년의 정치 경력. 무소속 초선, 정당 편입, 낙선, 비례 복귀, 낙선, 교수 생활, 자객 당선. 이 길은 직선이 아닙니다. 굴곡과 우회로와 막힌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굴곡이 그녀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자객 후보로 투입되어 이겼다는 것의 의미는 단지 선거 승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민당 본부가 자객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선거구에서 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이길 수 있는 후보. 그 역할을 요청받고 해냈습니다.
그리고 자객 당선은 이듬해 입각의 발판이 됐습니다.
세습 의원들은 낙선을 모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선거구, 후원회, 이름. 그것이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출발선에 섭니다. 다카이치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낙선 후에도 돌아오는 법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파벌 없이 자기 힘으로 서는 법을 익혔습니다. 새로운 선거구에 들어가 낯선 땅에서 이기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 경험들이 나중에 세 번의 자민당 총재 도전과 총리 취임으로 이어지는 길의 토대가 됩니다.
2005년 9월 11일 밤, 개표 결과를 확인한 다카이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나라 제2구 선거구 사무소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당선 의원으로서. 새로운 지역구에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자객 후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이 선거에서였습니다. 고이즈미가 자민당의 우정민영화 반대파 의원들의 선거구에 유명인이나 능력 있는 인물들을 투입한 것입니다. 여배우, 방송인, 관료 출신들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그 중 다카이치 사나에는 정치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습니다. 단순한 유명세가 아니라 실력으로 선거를 치른 것입니다. 나라 제2구에서 현역 의원을 꺾은 것은 그 증거였습니다. 돌아온 국회. 이번에는 자객으로, 더 강해진 모습으로.
2005년 9월 11일의 자민당 압승은 일본 정치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단순한 정당 대표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변화 열망을 폭발시킨 정치적 촉매제였습니다. 그 선거에서 자민당이 얻은 296석은 1960년 이후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그 압승의 이면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었습니다. 선거 승리는 정책 집행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이후 우정 민영화는 실제로 진행됐지만, 처음 기대했던 대대적인 금융 자유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정 민영화 이후 일본 우체국은 민간 기업이 됐지만, 운영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카이치에게 2005년 선거의 의미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자객 후보로 투입되어 현역 의원을 이겼다는 것. 이것이 자민당 내에서 그녀의 위치를 높였습니다. 어려운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평판이 이듬해 아베 내각 첫 입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라 제2구. 처음에는 낯선 땅이었습니다. 가시하라시, 야마토 고리야마시, 사쿠라이시. 그녀의 뿌리가 아닌 곳. 그러나 그 낯선 땅에서 이긴 경험이 그녀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파벌의 지원 없이, 지역 기반 없이, 오직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해서 이기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참고 자료
- 高市早苗 Wikipedia (日本語):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奈良県第2区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E5%A5%88%E8%89%AF%E7%9C%8C%E7%AC%AC2%E5%8C%BA - 일본의 우정민영화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98_%EC%9A%B0%EC%A0%95%EB%AF%BC%EC%98%81%ED%99%94 - 고이즈미 준이치로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9D%B4%EC%A6%88%EB%AF%B8_%EC%A4%80%EC%9D%B4%EC%B9%98%EB%A1%9C - 山本拓 Wikipedia (日本語): https://ja.wikipedia.org/wiki/%E5%B1%B1%E6%9C%AC%E6%8B%93_(%E6%94%BF%E6%B2%BB%E5%AE%B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