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14장 이혼, 재혼, 혈연 없는 가족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3부 성장 — 각료에서 당의 중심으로
14장 이혼, 재혼, 혈연 없는 가족
김경진
정치인의 사생활을 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록되는 것은 부당하고, 사사로운 이야기가 공적 평가를 왜곡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 사나에의 가족 이야기는 그녀 자신이 공개한 것들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정치인으로서 추진한 정책들과 복잡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 교차점에서 읽을 때, 이 장이 의미를 가집니다.
2003년 가을. 나라 제1구에서 다카이치가 낙선했습니다. 선거사무소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짐이 쌓였습니다. 포스터들, 선거운동 물품들, 사무집기들. 의원직을 잃은 정치인이 3년 5년간 모아온 것들을 하루아침에 치우는 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야마모토 다쿠(山本拓). 같은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습니다. 후쿠이현을 지역구로 삼고 있었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위로였습니다. 낙선한 동료를 격려하는 전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카이치는 선거사무소 짐을 치워야 하는데 손이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야마모토가 왔습니다. 사무소 짐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날, 짐을 다 치우고 난 자리에서 야마모토는 말했습니다.
"당신도 함께 데려가고 싶습니다."
즉석 프러포즈였습니다. 교제가 없었습니다. 만나고, 짐을 같이 치우고, 그 자리에서 청혼했습니다. 다카이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단하지는 않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훗날 이 일화는 "교제 0일 결혼(交際0日婚)"이라는 표현으로 일본 언론에 소개됩니다. 다카이치 자신도 이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의 칼럼에 결혼 과정을 직접 적었습니다.
2004년, 결혼. 두 사람 모두 현역 중의원 의원이었습니다. 다카이치는 43세, 야마모토는 50세였습니다. 일본 정계에서 두 의원이 결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교제 기간 없이 청혼에서 결혼까지 간 사례로 화제가 됐습니다.
야마모토는 다카이치와 정치 노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민당 보수파. 그러나 같은 자민당 안에서도 세부 입장 차이가 있었습니다. 경제 정책에서, 농업 보호 문제에서. 야마모토는 농업 보호에 강한 입장이었고, 무역 자유화에는 신중했습니다. 그 차이는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3년 만인 2007년, 다카이치는 아베 1기 내각에서 처음 각료를 맡았습니다. 저출산 담당, 식품안전 담당, 남녀공동참획 담당. 이후 경제산업 부대신을 거쳐, 정무조사회장, 두 차례 총무대신으로 올라갔습니다. 경력의 가속이 시작됐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야마모토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역구를 지키는 의원이었지만, 국정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부부 중 한 명이 크게 앞서가는 상황. 다카이치는 총무대신으로 미디어를 관장하는 내각의 핵심이 되어 있었고, 야마모토는 지역구 의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비대칭이 부부 사이에 어떤 공기를 만들었는지는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더해서, 정치적 입장도 시간이 가면서 갈라졌습니다. 야마모토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지지했고,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를 지지했습니다. 자민당 보수의 두 축이 충돌했습니다.
2017년 7월 19일. 두 사람은 이혼했습니다.
공식 발표에서 내세운 이유는 "정치적 입장 차이(政治スタンスの違い)"였습니다. 일본 정치 부부의 이혼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양측 모두 상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카이치는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이혼을 먼저 요청한 것은 야마모토였다고. "계속 참아왔다", "부부가 아니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데일리 신초의 보도가 전한 이 증언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13년의 결혼 생활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말들이 전하는 것은, 두 사람의 간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이혼은 다카이치가 총무대신직을 맡고 있는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대신직 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처리했습니다. 이혼이 알려진 것은 2017년 8월 총무대신에서 퇴임한 이후였습니다. 현직에 있는 동안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혼 이후 4년이 지난 2021년, 다카이치 사나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야마모토 다쿠는 그 선거에서 전 배우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총재 선거에 출마한 다카이치를 응원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치적 파트너로서의 연대가 개인적 관계를 앞선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감정의 복원이 정치적 지지로 이어진 것인지. 어느 쪽인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는 기시다 후미오에게 졌습니다. 패배 직후의 시간. 총재라는 자리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2021년 12월. 두 사람이 재혼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것은 일본의 주간지였습니다. 공식 발표나 기자회견은 없었습니다. 조용하게 이루어진 재결합이었습니다. 총재 선거 패배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재혼 과정에서 하나의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부부 중 누가 어떤 성을 사용할 것인가. 일본 법에서 부부는 원칙적으로 같은 성씨를 써야 합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성씨에 정치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이름은 유권자들에게 알려진 이름이었습니다. "야마모토 다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정은 내려졌습니다. 야마모토가 "다카이치" 성으로 개명했습니다. 야마모토 다쿠는 다카이치 다쿠(高市拓)가 됐습니다. 남성이 여성 배우자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일본에서 드물지 않습니다만, 두 사람의 경우는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오랫동안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 제도 도입에 반대해온 정치인이었습니다. "가족은 같은 성씨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가족 유대의 상징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 입장을 지키면서 재혼했고, 결과적으로 남편이 자신의 성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역설을 지적하는 비판이 따랐습니다. 본인은 원래 성씨를 유지하면서 남편에게 성을 바꾸게 하는 결과가, 개인이 성씨를 선택할 권리를 요구하는 부부별성 논의와 어디가 다른가. 다카이치는 이 비판에 대해 정면으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설명은 이것이었습니다. 일본 법은 어느 쪽 성이든 부부가 합의해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은 법의 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부부별성 반대 입장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2025년 10월, 다카이치가 총리가 됐습니다. 야마모토(다카이치) 다쿠는 "일본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 됐습니다. 이 자리에 아무런 선례가 없었습니다. 총리 부인은 외교 무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총리 남편에 대해서는 관례도, 기대도, 정해진 역할도 없었습니다.
결혼과 이혼과 재혼. 그 사이에 다카이치가 공개적으로 밝힌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친자녀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낳은 아이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그녀는 숨기지 않았습니다.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이후 임신과 출산이 어려운 몸이 되었다고, 공식 홈페이지의 칼럼에 직접 썼습니다.
이 공개의 배경이 있었습니다. 2007년 아베 1기 내각에서 그녀는 저출산 및 남녀공동참획 담당 대신을 맡았습니다. 그 직책에 대해 일부에서 이런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저출산 대책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그 비판에 답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자신의 의료 이력을 공개했습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했지만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정책 판단의 결격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더 나아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풍조도 없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함께 말했습니다.
이 발언이 어느 정도의 솔직함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치적 계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공개. 그러나 공개 자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부인과 질환과 수술과 임신 불가를 공직자가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일본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자녀는 없지만, 다카이치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야마모토의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세 명이 있었습니다. 다카이치가 야마모토와 결혼하면서 이들의 계모가 됐습니다. 이혼하면서 그 관계는 법적으로 정리됐지만, 재혼하면서 다시 이어졌습니다. 세 사람은 이제 의붓자녀들이자, 성인이 된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손주가 넷입니다. 의붓자녀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생긴 아이들입니다. 다카이치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손주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그녀의 가족인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어에는 "家族(가족)"과 "血縁(혈연)"이 따로 있습니다. 가족이 반드시 혈연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카이치의 가족은 그 구분을 실제로 보여줍니다. 법적 이혼과 재혼을 거쳐, 혈연 없이 이어진 가족 관계.
그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추진해온 전통적 가족관과 어떤 긴장 관계를 이루는지를 그녀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공개된 발언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다카이치가 총리가 된 이후, 그녀는 여성 특유의 질환을 종합 진료하는 거점 병원을 전국에 정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정책이었습니다. 그녀가 수십 년 전 홀로 감당해야 했던 고통, 정치적 비판의 빌미가 될까봐 숨겨야 했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정책으로 변환됐습니다.
이혼하고 재혼한 부부, 친자녀 없이 의붓자녀와 손주들로 이루어진 가족, 전통적 가족관을 지지하면서도 법의 범위 안에서 남편이 성을 바꾼 결혼. 이 복잡성이 그녀의 공적 입장들과 맺는 관계를 독자들이 각자 판단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다카이치가 부인과 질환을 공개한 이후 일본에서는 여성 정치인의 의료 이력 공개가 이전보다 덜 이례적인 일이 됐습니다. 삶의 흔적이 정치를 바꾸는 방식은 이렇게도 작동합니다.
정치인의 사생활은 공적 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어떤 정책을 만드는가에 영향을 줍니다. 그 연결을 너무 단순하게 그리는 것도 오류이고, 전혀 없다고 보는 것도 오류입니다. 다카이치의 가족 이야기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참고 자료
- 山本拓 (政治家)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E5%B1%B1%E6%9C%AC%E6%8B%93_%28%E6%94%BF%E6%B2%BB%E5%AE%B6%29 - 高市早苗 公式コラム — 結婚のご報告: https://www.sanae.gr.jp/column_detail336.html - NEWSポストセブン — 야마모토 다쿠 소개 (2025년 10월):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251017_2070809.html - デイリー新潮 — 이혼 경위 인터뷰: https://www.dailyshincho.jp/article/2025/10220601/?all=1&page=2 - BuzzFeed Japan — 夫婦別姓に反対する理由: https://www.buzzfeed.com/jp/kotahatachi/sanae-takaichi-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