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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0장 헌법 개정 — 전후 체제의 금기를 넘어서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5부 권력 —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20장 헌법 개정 — 전후 체제의 금기를 넘어서
김경진
어떤 문장들은 그 자체가 역사입니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밖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국헌법 제9조입니다. 두 개의 항으로 이루어진 이 조문이, 전후 80년 가까이 일본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습니다.
2025년 10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이 시작됐습니다. 경제 정책, 외교 안보에 이어 세 번째 큰 주제가 나왔을 때 방청석이 조용해졌습니다.
"총리로서 임기 중에 헌법 개정 국회 발의를 실현하겠습니다."
직접적인 말이었습니다. 에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총리들이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를 진전시키겠다" "심도 있는 검토를 지원하겠다"는 방식으로 말해온 것과 달랐습니다. 다카이치는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임기 중에, 발의를. 1947년 헌법 시행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는 헌법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일본을, 그리고 아시아를 들뜨게 했습니다.
헌법 제9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연합국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일본의 점령 행정을 맡았습니다. 점령군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시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를 해산시키고, 전쟁의 법적 근거를 없애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1946년 2월 3일, 맥아더는 자신의 참모들에게 헌법 초안 작성을 지시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른바 "맥아더 노트"입니다. 그 두 번째 원칙이 핵심이었습니다. "국가의 주권적 권리로서의 전쟁을 포기한다. 일본은 자기 방위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도 포기한다."
그러나 헌법 9조의 실제 기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습니다. 맥아더가 먼저 제안했는가, 아니면 당시 일본 총리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는가. 맥아더는 회고록에서 "시데하라가 먼저 제안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시데하라의 측근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기원의 진실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어찌 됐든,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1946년 11월 3일, 일본국헌법이 공포됐습니다. 1947년 5월 3일, 시행됐습니다. 그 안에 9조가 담겨 있었습니다. 전쟁의 포기. 전력의 불보유. 교전권의 부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처음에 이 조항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이 조항 덕에 일본은 군비 부담 없이 경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군사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의 출발이었습니다. 그것이 전후 일본의 기본 틀이 됐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나서, 모순이 생겼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맥아더는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했습니다. 1950년 경찰예비대가 창설됐고, 1954년에 자위대(自衛隊)로 개편됐습니다.
헌법 9조 2항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위대는 전 세계 10위권 수준의 군사력을 갖춘 조직이 됐습니다. 수십만 명의 대원. 첨단 전투기와 군함. 미사일 방어 시스템.
이것이 "전력"이 아니라는 논리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일본 정부의 해석은 이랬습니다. "헌법 9조가 포기한 것은 '침략 전쟁'을 위한 전력이다. 자기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실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라 '자위력'이다."
이 논리는 법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일본은 이 취약한 논리 위에서 나라를 운영했습니다. 헌법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군사력을 보유하는 방법으로 "해석"을 택한 것입니다.
이 모순을 처음부터 문제라고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야 한다. 아니면 헌법을 개정해서 방위력을 인정해야 한다. 개헌 논의는 자민당이 창당한 1955년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그 논의의 가장 선명한 주창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자위대원들이 헌법에 의해 그 존재가 부정되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문장이 강렬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위대원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속된 조직은 헌법적으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헌법이 부정하는 조직에 소속된 채 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헌법 논쟁을 개인의 이야기로 만드는 이 접근이 다카이치 특유의 방식입니다.
그녀가 제안한 개헌 방향은 구체적입니다.
첫째, 헌법 9조 2항을 개정해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합니다. 자민당이 마련한 구체안은 9조 1항과 2항을 그대로 두고, "9조의 2"라는 새 조문을 신설하는 것입니다. "전항의 규정은 자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자위대를 보유한다." 9조의 평화주의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자위대는 헌법 위반이 아닌가"라는 논쟁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자위대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합니다. 현행 헌법에는 전쟁이나 대형 재난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에 특별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 헌법의 대부분은 이런 조항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이 유일하게 없는 이유는 전전(戦前)의 "비상대권" 조항이 군부에 의해 남용됐던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일본은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긴급 봉쇄 명령을 내릴 법적 권한이 없었습니다. 영업 자제 요청은 말 그대로 요청이었고 강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경험이 긴급사태 조항 신설 논의를 실질적인 필요의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개헌 찬반 세력의 대립은 날카롭습니다.
찬성 측의 핵심 논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현실론입니다. 자위대는 이미 존재합니다. 헌법이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모순을 해결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안보론입니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 북한의 핵 개발, 러시아의 침공. 지정학적 위기가 현실화된 세계에서, 헌법의 제약이 일본의 자기 방위를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 측의 핵심 논리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사론입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9조는 그 반성의 산물입니다.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신호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험론입니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면, 다음 단계는 집단적 자위권의 확대, 그 다음은 해외 파병의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반대 진영은 또한 긴급사태 조항이 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역사적으로 긴급사태 조항은 독재를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에게 무너진 것도 긴급사태 조항을 통한 권한 확대 과정이 있었습니다.
입헌민주당, 공산당, 사민당은 개헌에 반대합니다. 노동조합, 교원 단체, 일부 법조 단체도 반대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여론은 복잡합니다. "헌법 개정 자체"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9조 개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특히 "전쟁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세대를 넘어 일본 사회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두 나라 모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온도 차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2025년 11월)과 함께, 헌법 개정 의지는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견제로 읽혔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는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중국 외무부는 "주변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이 분석한 것처럼, 중국의 과격한 반응이 일본 국내에서 오히려 개헌 세력의 지지를 높이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한국은 중국보다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내부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외교 채널을 통해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각은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일본 헌법 9조의 의미는 일본인과 다릅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으로의 강제 동원. 그 기억이 살아 있는 한, 일본의 재무장 논의는 단순한 이웃 나라의 내부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이 전수방위 원칙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자위대의 헌법 명기가 이후의 재해석을 위한 문을 여는 것은 아닌가. 긴급사태 조항이 권한 남용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우려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 헌법 개정은 이렇게 어려운가.
기술적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헌법 96조는 개정 절차를 규정합니다.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의 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하고, 그 후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장벽이 높습니다.
2026년 2월 총선 대승으로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3분의 2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참의원의 장벽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민당, 유신회, 협력 세력을 합쳐도 참의원 3분의 2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심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세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경험이 가족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헌법은 1947년 시행 이래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한 글자도 바뀌지 않은 헌법입니다. 그 불변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관성이 됐습니다.
아베 신조도 두 번의 총리 재임 동안 국회 발의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국민투표에서 과반을 얻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는 여성 운동과 깊은 연결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 전시 폭력의 피해자들. 이 경험이 평화 헌법 수호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여성이 헌법 9조를 지키는 것은 일본 진보 진영에서 자연스러운 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헌법 개정론자로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념과 젠더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다카이치가 직접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 주장을 했습니다.
반대 진영은 이 구도가 불편했습니다. 여성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여성 총리. 평화 헌법을 바꾸려는 여성 총리. 지지 진영은 다르게 읽었습니다. 젠더 정치의 틀을 깨고 국가 전략을 논하는 총리.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국가 안보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자. 어느 쪽이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 정치인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가 내릴 것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모든 장벽을 알면서도 "임기 중에 발의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정치인의 말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언이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더 이상 헌법 개정을 먼 미래의 일로, 언젠가 해야 할 일로 미루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정권에서, 이 의석 구조에서,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헌법 개정이 일본 정치의 진지한 의제로 자리잡게 된 것은, 아베와 다카이치가 수십 년에 걸쳐 이 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올려놓은 결과입니다. 한때 금기에 가까웠던 개헌 논의가 이제는 정규 정치 과정의 일부가 됐습니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참의원의 장벽이 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 자체가 역사입니다.
전후 일본이 건드리지 못했던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총리. 그리고 그 총리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것. 그 두 개의 사실이 겹치는 곳에서, 역사가 쓰이고 있습니다.
헌법 9조는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됐습니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세계는 달라졌습니다. 일본도 달라졌습니다. 그 달라진 일본이, 달라지지 않은 헌법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자위대원들이 헌법에서 부정되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다카이치의 헌법 개정 논리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추상적인 법 이론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 당당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그녀가 헌법 개정을 통해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 꿈이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시작됐습니다.
참고 자료 - 日本国憲法第9条 Wikipedia: https://ja.wikipedia.org/wiki/%E6%97%A5%E6%9C%AC%E5%9B%BD%E6%86%B2%E6%B3%95%E7%AC%AC9%E6%9D%A1 - 国立国会図書館 — 헌법 9조 논점, 전쟁 포기의 의미: https://www.ndl.go.jp/constitution/ronten/02ronten.html - 高市早苗 공식 사이트 — 일본국헌법 9조 개정 사안: https://www.sanae.gr.jp/column_detail363.html - 西日本新聞 — 헌법 개정 기가 무르익었다, 다카이치 수상의 본명은 9조: https://www.nishinippon.co.jp/item/1462033/ - 自民党 — 4가지 바꾸고 싶은 것, 자민당의 제안: https://www.jimin.jp/kenpou/proposal/ - Bloomberg Japan — 중국의 과잉 대응이 다카이치를 도왔다: https://www.bloomberg.com/jp/news/articles/2025-11-19/T5XWKIT96OSK00 - CNN Japan — 보수 강경파 다카이치 사나에 씨, 일본 첫 여성 수상으로: https://www.cnn.co.jp/world/35239465.html - 防衛省 자위대 — 헌법과 자위권: https://www.mod.go.jp/j/policy/agenda/kihon0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