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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에필로그 — 2026년 봄의 일본
유리 천장을 넘어서
에필로그 — 2026년 봄의 일본
김경진
2026년 3월, 도쿄.
벚꽃이 피기 직전의 계절이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황궁 주변 공원의 나무 가지 끝에는 작은 봉오리가 맺혀 있다. 저 작은 봉오리들은 머지않아 흰 꽃이 되어 도시 전체를 물들일 것이다. 일본에서 벚꽃이 피는 것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새 직장이 시작되고, 새 정부가 자리를 잡는 계절이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총리가 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다섯 달은 짧다. 역사의 자에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다. 그러나 이 다섯 달 안에 일어난 일들을 나열해 보면, 그것이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5년 11월,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즉흥 발언 하나가 베이징에 폭탄처럼 떨어졌다. 대만 유사 시 존립위기사태 발언. 중국의 강경 반응. 외교 채널이 얼어붙었다. 중국 관광객이 줄었다. 경제계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물러서지 않았다.
12월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압박이 계속됐다. 총리로서의 참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웃 나라들이 긴장했다.
2026년 1월, 고도 나라에서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500년 된 사찰 호류지의 돌담 앞에서 두 정상이 나란히 섰다. "한국 김 좋아합니다"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그 뒤에 있는 복잡한 역사의 무게는, 그 말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만남이 성사됐다는 것은 무언가를 말해준다.
2월에 총선거를 실시했다. 결과는 역사적이었다. 자민당 단독 316석. 전후 일본에서 하나의 정당이 이만큼 많은 의석을 얻은 적은 없었다. 스캔들로 뒤흔들린 자민당이, 새 얼굴의 깃발 아래 역대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3월에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테이블에 올렸다. 만찬에서 "최강의 파트너"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통령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아베 신조가 했던 것이고, 이제 다카이치가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섯 달 안에 일어났다.
돌아보면, 이 다섯 달은 32년의 여정이 압축된 것이기도 하다.
프롤로그의 장면이 기억난다. 2025년 10월 21일, 국회 본회의장. 수상 지명 투표.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이름이 최다 득표로 확인되는 순간. 방청석에서 누군가 숨을 참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정적.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순간.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32년이 걸렸다.
1993년 여름, 32살의 무소속 여성이 나라현에서 득표 1위로 당선됐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당의 조직도, 선배의 후광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지역 지반도 없었다. 있었던 것은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4년 동안 배운 것들, 워싱턴 의회에서 1년 동안 보고 배운 것들, 그리고 나라현 가시하라시라는 땅에서 자라면서 몸에 밴 무언가였다.
이후의 경로는 이 책이 기록했다. 낙선, 재기, 또 낙선, 또 재기. 자객 후보로 돌아온 것, 첫 입각, 야스쿠니 각료 참배, 역대 최장 총무대신, 이혼과 재혼, 아베 신조의 암살, 세 번의 총재 선거 도전, 그리고 총리. 직선이 아니었다. 굴곡이 그녀를 만들었다. 두 번의 낙선이 그녀를 단련시켰다. 세 번의 총재 선거 도전이 그녀를 완성시켰다. 아베라는 후원자를 잃은 후에도 혼자 서야 했다. 그 과정이 지금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만들었다.
2026년 봄, 총리 관저에 벚꽃이 피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라현 우네비의 들판에서 자전거를 타며 놀던 아이를 떠올릴까.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섰을 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할까. 두 번의 낙선 후 지지자들 앞에서 눈물을 참던 밤을 기억할까.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녀만이 아는 것이다.
총리가 된 다카이치에게 일본은 여전히 어렵다.
인구가 줄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거듭 경신하고 있다. 태어나는 아이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 GDP 대비 국가 채무 세계 최고. 방위비 증액, 저출산 대책, 사회보장 확대. 모두 돈이 필요한 일들이다. 중국과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 해협의 불확실성. 야스쿠니 참배로 촉발된 외교 갈등. 헌법 개정의 길은 멀고 험하다. 미국의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어려움들은 다카이치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카이치가 풀어야 할 것들이다. 그것이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몫이다.
이 책은 다카이치 사나에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녀도 외부에서 완전히 알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야스쿠니를 참배할 때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아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세 번째 총재 선거에서 이겼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것들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것들은 기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이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하게 한다.
이해가 동의는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다카이치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총리를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용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를 이해하는 것과, 그것에 찬성하는 것도 다른 일이다. 이 책은 한 번도 그녀의 입장에 동의하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는 필요하다.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것이 한국에, 아시아에, 세계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복잡한 이웃 나라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지를 생각하기 위해서.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일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 나라의 장점과 단점, 역사와 현재,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는 것이다. 그 시각이 있어야 우리는 이 이웃과 현명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지금도 총리 관저에 있다. 국회에서, 외교 무대에서, 기자회견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 책이 끝나는 지점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어떤 도전을 맞을지,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역사를 쓸지. 그것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장들이다.
봄이 오면 벚꽃이 핀다. 벚꽃은 열흘쯤 피었다가 진다. 그러나 나무는 남는다. 나무는 다음 봄을 위해 다시 봉오리를 맺는다. 그 반복 속에 역사가 흐른다.
32년의 굴곡진 여정. 수십 번의 선택. 그리고 총리.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자 후기
이 책은 저 김경진이 외국 정치 지도자에 대해 쓴 첫 번째 전기다.
국회의원으로 일했던 시절, 나는 일본 정치를 여러 번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했다. 역사의 무게, 현재의 이해관계, 미래를 향한 기대. 이 세 가지가 항상 뒤엉켜 있었다. 한국 정치인으로서 일본을 이해하는 일은 불편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했을 때였다.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도 의원 투표에서 뒤진 그 결과. 일본 정치의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그 선거가 많은 것을 보여줬다. 풀뿌리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과 권력 내부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그 갈등의 풍경이 흥미롭고 시사적이었다.
이 책을 쓰면서 불편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야스쿠니 참배를 서술할 때. 역사 인식의 차이를 설명할 때. 한국인인 나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을 담담하게 기술해야 했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사실을 전달하려 했다. 그 순간들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했다.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하려는 시도. 이해가 반드시 동의로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해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이 책을 이끌었다.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일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복잡한 이웃과 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웃을 이해하지 않고 사는 것은 더 어렵다.
2026년 3월, 봄을 기다리며
저자 김경진
참고 자료
- 다카이치 사나에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anae.gr.jp/ - 수상관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kantei.go.jp/ - 高市早苗 Wikipedia (일본어):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2026년 총선 자민당 316석 압승 (nippon.com): https://www.nippon.com/ja/japan-data/h02703/ - 고이치 다카이치 워싱턴 정상회담 보도: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A0333X0T00C26A2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