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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트럼프, 모욕의 외교 - 제33장 시민권자 오체포와 인권단체(HRW)의 민주주의 후퇴 공식 경고
트럼프, 모욕의 외교, 텅 비어 가는 제국
제33장 시민권자 오체포와 인권단체(HRW)의 민주주의 후퇴 공식 경고
김경진 변호사
미국 시민권자들까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붙잡혀 구금되고,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국제 인권단체와 민주주의 평가 기관이 트럼프 2기 미국 민주주의의 빠른 후퇴를 공식 보고서로 경고한 내막
들어가며
시진핑 주석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내린 날, 워싱턴은 화려한 의전을 준비했다. 같은 시기 미국 안에서는 다른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복면을 쓴 연방 요원이 길에서 사람을 붙잡았다. 붙잡힌 사람 가운데에는 미국 여권을 가진 시민도 있었다.
앞의 세 장은 총격, 시민 사망, 창고형 수용소를 다뤘다. 이 장은 그 흐름의 끝에 있는 두 가지 질문을 다룬다. 첫째, 단속의 그물이 왜 자국 시민에게까지 닿았는가. 둘째, 국제 인권단체와 민주주의 평가 기관은 이를 어떻게 기록했는가.
두 질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시민이 신분을 증명해도 풀려나지 못하는 나라라면 법치의 기본이 흔들린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바로 이 지점을 근거로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는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도 보이지 않는 무게로 올라갔다.
33.1 여권을 보여 줘도 풀려나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이민 요원이 시민을 몇 명 붙잡았는지 집계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직접 셌다. 2025년 10월 나온 보도에서 확인된 사례는 170건이 넘었다. 기자들은 소셜미디어 게시물, 언론 보도, 법원 기록을 하나씩 대조했다.
붙잡힌 시민 가운데 20명 가까이는 어린이였다. 암 투병 중인 아이 두 명도 포함됐다. 임신한 상태에서 붙잡힌 여성 시민도 최소 3명이었다. 20명 넘는 시민은 하루 이상 갇혀 있었다. 그 사이 가족이나 변호사에게 전화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사례 하나하나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앨라배마의 건설 노동자 레오나르도 가르시아 베네가스는 미국 시민이다. 요원들은 그가 내민 리얼 아이디(REAL ID)를 가짜라고 했다. 이 신분증은 앨라배마주가 시민과 합법 체류자에게 신원 확인을 거쳐 내주는 것이다. 그는 한 시간 넘게 수갑을 찬 채 붙잡혀 있었다.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에서는 참전 군인 조지 레테스가 체포됐다. 요원들이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프로퍼블리카는 시민들이 끌려가고, 넘어뜨려지고, 전기충격기를 맞은 사례를 모았다. 목을 무릎으로 누르는 제압도 여러 건 확인됐다.
국토안보부(DHS)의 답은 한결같았다. 대변인은 이민 단속을 이유로 시민을 체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크리스티 놈 장관은 시민이 체포되거나 구금된 일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한 이민 당국 고위 인사는 요원들이 사람의 외모를 고려한다고 인정했다.
의회 민주당은 조사에 나섰다. 하원 감독위원회 로버트 가르시아 간사와 리처드 블루먼솔 상원의원이 앞장섰다. 두 의원은 서한에서 9개월 동안의 사례를 두 유형으로 나눴다. 요원 폭행이나 방해 혐의로 체포된 시민이 130명 가까이였다. 시민권을 의심받아 붙잡힌 시민은 50명이 넘었다. 두 의원은 폭행·방해 혐의가 법정에서 자주 기각된다고 지적했다.
블루먼솔 의원은 2025년 12월 상원 상설조사소위 소수당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견제받지 않는 권한』이다. 보고서는 10개 주 시민 22명의 증언을 담았다. 이들은 차에서 끌려 나오고, 최루액을 맞고, 치료를 거부당했다고 진술했다. 며칠씩 갇힌 사람도 있었다.
2026년 3월 3일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놈 장관이 증언대에 섰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시민 두 명이 연방 요원 총격으로 숨진 뒤 첫 의회 출석이었다. 방청석에는 연방 요원에게 붙잡혔던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시카고에서 총에 맞았던 마리마르 마르티네스도 그 자리에 있었다. 블루먼솔 의원은 장관의 답변이 회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2026년 7월에는 아이들이 증언대에 올랐다. 양원 민주당 의원들이 연 공개 토론회에서였다. 휴스턴의 16세 소년 아르놀도 바산도 증언자 명단에 있었다. 요원들이 서류 미비 이민자인 그의 아버지를 쫓다가 소년을 넘어뜨리고 목을 졸랐다.
이 모든 사례에서 반복되는 요소가 있다. 영장 없는 체포, 복면을 쓴 요원, 표식 없는 차량이다. 신분증을 믿지 않는 태도와 연락을 막는 구금도 되풀이된다. 미국 수정헌법 제4조는 부당한 체포를 금지한다. 수정헌법 제5조는 적법절차(適法節次)를 보장한다. 현장에서는 두 조항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33.2 대법원이 열어 준 문, 이른바 '캐버노 검문'
시민 오체포가 늘어난 데에는 법적 배경이 있다. 2025년 9월 8일 연방대법원이 내린 긴급 결정이다. 사건명은 '놈 대 바스케스 페르도모'다.
사건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됐다. 연방 1심 법원은 이민 요원의 불심검문(不審檢問)을 제한하는 명령을 냈다. 법원은 요원들이 네 가지 요소만으로 사람을 세운다고 판단했다. 겉으로 보이는 인종이나 민족, 스페인어나 억양 있는 영어 사용이 첫째와 둘째다. 세차장·버스정류장 같은 장소, 일용직 같은 직업 유형이 셋째와 넷째다.
대법원은 6대 3으로 이 명령의 효력을 멈췄다. 다수 의견은 따로 쓰이지 않았다. 정식 변론도, 충분한 서면 공방도 없었다. 이른바 '그림자 심리'로 불리는 긴급 절차였다.
유일하게 이유를 밝힌 글은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보충 의견이다. 그는 겉보기 민족만으로는 의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나 다른 요소와 함께라면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네 요소를 합치면 불법 체류를 의심할 만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는 시민이라면 곧 풀려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도 덧붙였다.
반대 의견을 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다르게 봤다. 민족과 언어는 서로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두 요소에 기대는 것은 민족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 뒤 이런 검문에는 '캐버노 검문(Kavanaugh stop)'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로퍼블리카의 집계는 캐버노 대법관의 낙관을 반박하는 자료가 됐다. 시민들은 곧바로 풀려나지 않았다. 하루 넘게 갇힌 사람이 20명을 넘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민권법 학술지는 결정 이후 요원들이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2026년 5월 기준으로도 이 효력 정지는 유지되고 있었다.
이 결정의 무게는 법리보다 신호에 있다. 최고 법원이 외모와 언어를 단속 요소로 인정한 셈이 됐다. 현장 요원들에게 이것은 넓은 재량으로 읽혔다. 라틴계와 아시아계 시민은 신분증을 늘 들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 신분증마저 가짜로 의심받는 일이 이어졌다.
33.3 합법 체류자와 아이들, 그리고 임산부
단속의 그물은 시민에게만 닿지 않았다. 합법 체류자, 영주권자, 장애 아동, 임산부에게도 닿았다.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사례가 있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이다. 이민 당국과 여러 연방 기관이 현장을 급습해 475명을 붙잡았다. 그 가운데 한국인이 300명을 넘었다. 이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출장 목적의 비자나 전자여행허가를 갖고 들어온 기술 인력이었다. 체류 자격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었지만, 당국은 수갑부터 채웠다. 이 사건의 전모는 제20장과 제21장에서 다뤘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짚는다. 합법 서류를 가진 사람도 현장에서는 '의심스러운 외모'로 먼저 분류됐다는 점이다.
2026년 3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여섯 살 조셉이 붙잡혔다. 조셉은 청각장애가 있고, 프리몬트의 캘리포니아 농아학교에 다녔다. 그날 아이는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정기 이민 출석 일정에 따라갔다. 어머니 레슬리 로드리게스 구티에레스는 가정폭력을 피해 온 콜롬비아 출신 망명 신청자다. 어머니는 절차에 따라 출석했다. 당국은 어머니와 두 아이를 그 자리에서 구금했다.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리던 친척이 보청기를 전해 주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요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고, 사흘 뒤 콜롬비아로 추방됐다. 변호사가 가족을 찾아 이의를 제기하기 전이었다. 이민 당국은 2년 전 추방 명령이 있었고 어머니가 보고 의무를 어겼다고 밝혔다. HRW는 3월 10일 이 사건을 보고서로 기록했다. HRW는 구금 직후 먼 곳으로 옮기는 방식이 법적 구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 보좌진이 콜롬비아까지 가서 보청기를 전했다.
임산부 문제는 정부 자료로 확인됐다. 국토안보부는 패티 머리 상원의원의 질의에 답변서를 냈다. 2025년 1월 1일부터 2026년 2월 16일까지의 수치다. 이 기간 이민관세집행국(ICE)은 임신·출산 직후·수유 중인 여성 363명을 추방했다. 2월 16일 기준 구금 중인 임신부는 86명이었다. 그 가운데 9명은 임신 말기였다. 2025년 9월 말까지 구금 시설 안에서 기록된 유산은 16건이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2022년과 2023년에도 이 유형의 여성이 매년 350명 안팎 구금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부분 석방되거나 가석방됐다. ICE 내부 지침은 원칙적으로 이들을 구금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인권의사회(PHR)와 여성난민위원회는 온두라스 현지 면접 조사를 벌였다. 두 단체는 임산부들이 제대로 된 진료 없이 추방됐다고 보고했다. 이는 ICE 자체 지침을 어긴 것이라는 판단이다.
HRW가 2026년 4월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 낸 자료도 있다. 2025년 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이민 구금 시설에서 46명이 숨졌다. 미국 정부 자료를 근거로 한 수치다.
33.4 휴먼라이츠워치의 세 차례 공식 경고
HRW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단체다. 100곳 가까운 나라의 인권 상황을 조사해 매년 보고서를 낸다. 이 단체가 2026년 들어 미국을 겨냥해 낸 경고는 세 번의 큰 흐름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2026년 1월 20일이다. 트럼프 대통령 두 번째 취임 1주년에 맞춰 특집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권위주의로 미끄러지는가?(Sliding Towards Authoritarianism?)』다. HRW는 2025년 한 해 동안 낸 조사 결과를 일곱 분야로 묶었다. 소수자 공격, 정보 접근 차단, 불법적인 무력 사용이 앞의 세 분야다. 비판자 처벌, 행정부 권력 집중, 독립 기관 약화가 그다음이다. 마지막은 투표권 훼손이다. HRW는 행정부가 권위주의적 전술을 폭넓게 받아들였다고 진단했다. 그 목적은 권력을 행정부에 모으는 데 있다고 봤다.
두 번째는 2월 4일 나온 『세계인권보고서 2026』이다. 분량은 529쪽이고 100개국 넘는 나라를 다뤘다. 필리프 볼로피옹 사무총장은 서문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할애했다. 보고서는 첫해 미국이 권위주의 쪽으로 뚜렷하게 방향을 틀었다고 평가했다. 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는 표현도 썼다.
보고서의 근거는 구체적이다. 베네수엘라 이주민 252명을 엘살바도르 최고 보안 교도소로 보낸 일을 다시 짚었다. HRW는 이를 국제법상 범죄인 강제실종(强制失踪)으로 규정했다. 이민 단속, 투표권 위협, 국무부 인권 부서 축소도 사례로 들었다. 국제형사재판소 제재와 유엔 인권이사회 탈퇴도 비판 대상이 됐다. HRW는 세계 민주주의 지표가 1985년 수준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냉전이 끝나기 전, 소련이 아직 있던 때다.
볼로피옹 사무총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방향을 분명히 했다. 2026년 인권의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 미국에서 가장 날카롭게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가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2월 유로뉴스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를 되풀이했다. 미국 행정부가 인권 체계 전체를 등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백악관은 곧바로 반박했다. HRW가 '트럼프 망상 증후군'에 빠졌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공격해 온 단체라는 주장도 폈다.
세 번째는 6월 25일이다. 7월 4일 독립선언 250주년을 아흐레 앞둔 날이었다. HRW는 『트럼프 치하에서 후퇴하는 미국 민주주의(US Democracy in Decline Under Trump)』를 냈다. 이 특집은 새 조사라기보다 2026년 상반기 기록을 한데 모은 성격이다. HRW는 첫머리에서 250주년의 의미를 먼저 짚었다. 많은 사람에게는 오래된 민주주의 전통을 기념하는 날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이후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전방위로 공격해 왔다고 썼다. 그 가운데에는 민주주의를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권리가 많이 포함됐다. HRW는 2026년에만 이런 위협 수십 건을 조사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세 보고서를 겹쳐 보면 HRW의 논리가 보인다. 이민 단속은 출발점일 뿐이다. 단속의 방식이 적법절차를 무너뜨렸다. 그 방식이 언론, 대학, 선거로 번졌다. HRW는 이것을 개별 공무원의 일탈이 아닌 통치 방식의 문제로 본다.
33.5 숫자로 본 후퇴, 평가 기관들의 동시 진단
HRW만 경고한 것이 아니다. 2026년 봄과 가을, 주요 민주주의 평가 기관들이 잇달아 보고서를 냈다. 평가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방향은 같았다.
V-Dem 연구소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의 V-Dem 연구소는 3월 17일 『민주주의 보고서 2026』을 냈다. V-Dem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 4,200명이 넘는 학자와 전문가가 각국을 평가한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1년 사이 24% 떨어졌다. 순위는 179개국 가운데 20위에서 51위로 내려갔다. 연구소는 미국의 후퇴 속도를 '전례가 없다'고 표현했다. 2025년 새로 권위주의화가 진행된 나라 10곳 중 6곳이 유럽과 북미에 있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가 여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낮은 '선거민주주의'로 분류가 바뀌었다.
연구소 설립자 스타판 린드베리 교수는 NPR 인터뷰에서 속도를 강조했다. 인도 모디 총리와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이 10년, 헝가리 오르반 총리가 4년 걸린 후퇴를 트럼프 행정부는 1년 만에 이뤘다는 취지다. 그는 권력 집중, 법 우회, 의회 무력화, 언론 공격을 하향 이유로 들었다. 보고서는 2026년 중간선거가 미국 선거의 질을 가늠할 시험대라고 적었다. 선거 관련 지표는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이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변인은 편향된 무명 단체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프리덤하우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프리덤하우스는 3월 『세계 자유 보고서 2026』을 냈다. 제목은 '짙어지는 독재의 그림자'다. 미국 점수는 100점 만점에 81점이었다. 2025년 한 해에만 3점이 떨어졌다. 최근 20년 동안 모두 12점이 빠졌다. '자유 국가' 가운데 점수 하락 폭이 큰 나라로 미국, 불가리아, 이탈리아가 꼽혔다.
세부 항목도 공개됐다. 의회 기능 마비와 사상 최장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한 항목이 3점에서 2점이 됐다. 정치적 표현에 대한 위협과 비시민권자의 발언 처벌로 다른 항목이 4점에서 3점이 됐다.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크게 나빠진 분야로 언론 자유, 개인의 표현, 적법절차를 들었다.
브라이트 라인 워치
브라이트 라인 워치는 미국 정치학자 500여 명이 참여하는 조사 사업이다. 다트머스대 존 캐리 교수와 브렌던 나이핸 교수가 공동으로 이끈다. 0점은 완전한 독재, 100점은 완전한 민주주의다. 2024년 11월 대선 직후 학자들의 평가는 67점이었다. 2기 출범 몇 주 뒤에는 55점으로 떨어졌다. 201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2026년 3월 조사에서는 미국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의 거의 중간에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만 나이핸 교수는 단서를 달았다.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그 영향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단서는 이 장의 결론과도 이어진다.
국제 IDEA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nternational IDEA)는 정부 간 기구다. 이 기구는 9월 15일 『세계 민주주의 현황 2026』을 발표했다. 부제는 '분쟁의 시대의 민주주의'다.
보고서는 미국을 별도 사례로 다뤘다. 미국 민주주의를 재는 30개 지표 가운데 거의 절반이 1975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사법 접근성, 경제적 평등, 의회의 실효성이 포함된다.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 사법부 독립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 전체로는 사법부 독립이 36년 만의 최저치였다. 2025년은 민주주의 성과가 나빠진 나라가 나아진 나라보다 많은 해가 11년째 이어진 해였다. 1975년 기록을 시작한 뒤 가장 긴 연속 하락이다.
케빈 카사스사모라 사무총장은 미국의 급격한 후퇴가 사법부 독립을 약화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 질서를 조각내 세계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트럼프 취임 직후 이 기구의 옵서버 지위를 버렸다. 60개 넘는 국제기구에서 발을 빼는 과정의 하나였다.
언론 자유와 여론
국경없는기자회(RSF)의 2026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미국은 180개국 중 64위였다. 1년 전 57위에서 일곱 계단 내려갔다. RSF는 정치 지표와 안전 지표가 크게 나빠졌다고 밝혔다. 엘살바도르 출신 기자 마리오 게바라의 구금과 추방도 사례로 들었다.
미국인 스스로의 평가도 비슷했다. 퓨리서치센터는 2026년 3월 성인 3,507명을 조사했다. 응답자의 68%가 미국 민주주의는 한때 좋은 본보기였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다수가 같은 답을 했다.
다섯 기관의 결과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은 여전히 선거가 치러지는 민주국가다. 그러나 선거와 선거 사이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V-Dem이 미국을 '선거민주주의'로 낮춘 이유가 여기에 있다.
33.6 선거를 앞둔 두 번째 전선, SAVE법과 투표소 ICE
인권단체들이 2026년 하반기 가장 크게 우려한 곳은 선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두 가지 쟁점이 떠올랐다.
첫째는 이른바 SAVE법이다. 정식 이름은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이다. 유권자 등록 때 시민권 증명 서류를 직접 내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투표 때 사진 신분증을 요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공화당은 비시민권자의 부정 투표를 막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서류 접근성이다. 뉴욕대 브레넌센터는 2,100만 명이 이런 서류를 곧바로 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여권을 가진 시민은 절반 정도다. 결혼으로 성이 바뀐 여성, 노인, 농촌 주민, 저소득층이 불리하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법률방어기금(NAACP LDF)은 이 법이 현대판 인두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HRW도 이 법이 유권자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안의 경과는 이렇다. 하원은 2026년 2월 11일 218대 213으로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을 의회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상원에서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에 막혔다. 공화당 일부가 필리버스터 규칙을 바꾸자고 했지만 지도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6월 NPR은 이 법이 상원에서 공식적으로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하원은 8월 새 판본을 다시 통과시켰다. 그러나 9월 현재까지 SAVE법은 법률이 되지 못했다. 브레넌센터는 행정부의 선거 개입 시도가 의회와 법원에서 막혔다고 평가했다.
행정명령으로 우회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시민권 확인과 우편투표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 기관이 유권자 시민권 명단을 만들어 주 당국에 넘기도록 하는 내용이다. 선거법 학자들은 헌법이 주와 의회에 맡긴 권한을 침범한다고 비판했다.
둘째는 투표소 주변의 이민 요원 배치 문제다. 행정부 인사들은 선거 기간 연방 법 집행 인력을 투표소 근처에 둘 수 있다는 발언을 거듭했다.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은 ICE가 투표소를 순찰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구체적 위협이 있거나 영장을 집행할 때는 갈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9월에만 두 건의 연방 소송이 제기됐다. 9월 10일 덴버시와 커먼코즈, 라틴계 시민단체들이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남북전쟁 시기 만든 연방법은 공무원이 투표소에 무장 인력을 보내는 것을 금지한다. 원고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9월 18일에는 민권·노동 단체 9곳이 두 번째 소송을 냈다. 이들은 투표권법이 금지하는 유권자 위협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민권운동 시대 이후 이런 수준의 유권자 위협은 처음이라고 했다. 9월 21일에는 무장 요원이 가정을 방문해 투표 자격을 묻는 관행에 대한 소송도 이어졌다.
선거 쟁점은 이 장의 첫 주제와 이어진다. 외모와 억양으로 사람을 세우는 단속이 투표소 옆에 선다고 해 보자. 귀화한 시민과 라틴계·아시아계 시민은 투표소 가는 길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민 오체포가 투표권 침해로 번지는 구조다. 인권단체들이 중간선거를 '민주주의의 시험대'로 부르는 까닭이다.
33.7 워싱턴 정상회담 테이블에 드리운 그림자
이 장의 사건들은 미국 국내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무대에서는 외교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글쓴이의 해석이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인권과 민주주의를 대중국 외교의 한 축으로 삼아 왔다. 신장, 홍콩, 티베트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때마다 그랬다. 중국은 이에 맞서 매년 미국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 왔다. 과거에는 이 대응이 선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2026년의 상황은 다르다. 중국이 인용할 수 있는 자료가 미국 안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의회 보고서, 미국 언론의 탐사보도, 미국 국토안보부의 답변서다. 여기에 HRW, V-Dem, 프리덤하우스 같은 서방 기관의 평가가 더해진다. 중국 외교관이 "당신들 자료를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도 인권을 대외 의제에서 내려놓았다. HRW는 국무부 인권 부서 축소와 연례 인권보고서 왜곡을 지적했다. 프리덤하우스와 V-Dem은 미국이 민주주의 증진 역할에서 물러났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 의제가 보잉기, 대두, 관세, 희토류에 집중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인권은 협상 카드 목록에서 빠졌다.
동맹국의 시선도 달라졌다. 유럽 여러 나라와 캐나다는 이미 관세와 그린란드 문제로 미국과 부딪쳤다. 한국은 조지아 공장 사태로 자국 기술자들이 수갑을 차는 장면을 봤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말은 동맹의 접착제 역할을 해 왔다. 그 접착력이 약해지면 미국이 중국에 맞서 동맹을 묶기도 어려워진다. 빈손 협상의 배경에는 이런 약해진 도덕적 권위도 자리한다.
33.8 맺음말
이 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 시민이 이민 단속 과정에서 붙잡힌 사례는 2025년 10월까지만 170건을 넘었다. 정부는 이를 집계하지 않았고, 부인했다. 대법원의 긴급 결정은 외모와 언어를 단속 요소로 쓸 여지를 넓혔다.
둘째, 단속의 피해는 합법 체류자, 장애 아동, 임산부로 번졌다. 조지아의 한국인 기술자, 보청기를 빼앗긴 여섯 살 아이, 추방된 임산부 363명이 그 사례다.
셋째, HRW와 주요 평가 기관은 2026년 한 해 동안 같은 결론을 냈다. 미국 민주주의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으며, 그 속도가 전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진단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평가 기관들은 미국이 독재 국가가 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미국은 여전히 선거를 치르고, 법원은 여전히 판결을 내린다. SAVE법은 상원에서 막혔고, 시민단체는 투표소 문제로 소송을 걸었다. 의회 소수당은 피해 시민들을 증언대에 세웠다. 나이핸 교수의 말처럼 훼손이 곧 영구적인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2026년 11월 중간선거가 중요하다. V-Dem은 이 선거를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대로 불렀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고 결과가 존중된다면 회복의 길이 열린다. 반대의 경우 평가 기관들의 경고는 기록을 넘어 현실이 된다.
독립선언 250주년에 미국이 받은 성적표는 이렇게 정리된다. 건국자들이 피하려 했던 방향으로 나라가 움직이고 있다는 경고다. 그 경고를 되돌릴 힘은 아직 미국 시민의 손에 남아 있다.
1. 이 책 제20장, 제21장, 제30장, 제31장, 제32장 원고 및 프로젝트 제공 제33장 초고.
2. Nicole Foy, "We Found That More Than 170 U.S. Citizens Have Been Held by Immigration Agents," ProPublica,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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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Freedom House, Freedom in the World 2026: The Growing Shadow of Autocracy 및 미국 국가 보고서,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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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Protect Democracy·NAACP LDF·NILC, "Civil rights coalition files federal lawsuit challenging threatened use of ICE and federal law enforcement at polling locations," 2026년 9월 18일.
33. Arizona Mirror(Tucson Sentinel 재게재), "Second lawsuit this month challenges ICE presence at the polls," 2026년 9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