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서재

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2026 베이징: 두 거인의 위험한 춤 표지

16편 공개

2026 베이징: 두 거인의 위험한 춤

김경진 변호사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 목차와 서론, 13장, 맺음말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을 호르무즈, 희토류, 대만, 보잉, 대두, AI 칩이라는 장면으로 따라갑니다. 서론, 13장, 맺음말에서 미중 정상회담의 계산서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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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맡기고 자리를 뜨다 표지

27편 공개

AI에게 맡기고 자리를 뜨다

김경진 변호사

욜로 모드 완전 입문. 목차와 26장

클로드 코드와 코덱스의 욜로 모드를 처음 켜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입니다. 터미널, 안전장치, 도커 샌드박스, 되돌리기 순서를 26개 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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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전투기, 인공지능 공군 표지

43편 공개

인공지능 전투기, 인공지능 공군

김경진

목차, 서문, 40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인공지능 전투기, 인공지능 공군』입니다. AI 전투기, 인공지능 공군, 무인전투기, CCA, MUM-T, 6세대 전투기을 주제로 목차, 서문, 40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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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AI, 법정에 서다 표지

26편 공개

인공지능 AI, 법정에 서다

김경진 변호사

목차, 서문, 21장, 부록 3편

김경진 변호사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인공지능 AI, 법정에 서다』입니다. 인공지능과 법, AI 책임, 알고리즘 판단, 사법제도와 기술 변화을 주제로 목차, 서문, 21장, 부록 3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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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 표지

24편 공개

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

김경진

목차, 서문, 17장, 부록 4편,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입니다. 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 코카서스 여행을 주제로 목차, 서문, 17장, 부록 4편,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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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표지

23편 공개

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김경진

목차, 서문, 20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입니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 해상물류, 지정학, 세계 무역을 주제로 목차, 서문, 20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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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NTIR 전쟁 감시 인공지능 표지

16편 공개

PALANTIR 전쟁 감시 인공지능

김경진 변호사

목차, 서문, 14장

김경진 변호사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PALANTIR 전쟁 감시 인공지능』입니다. 팔란티어, 전쟁, 감시,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안보을 주제로 목차, 서문, 14장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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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는 사람들 표지

21편 공개

뇌를 읽는 사람들

김경진

목차, 프롤로그, 18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뇌를 읽는 사람들』입니다. 뉴럴링크,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 뇌과학, 인공지능을 주제로 목차, 프롤로그, 18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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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구조 변화와 대응 표지

16편 공개

AI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구조 변화와 대응

김경진

목차, 서문, 13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AI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구조 변화와 대응』입니다. AI 사회구조 변화, 인공지능 정책, 노동, 경제, 사회 대응을 주제로 목차, 서문, 13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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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기도, 하나의 산 아르메니아를 읽다 표지

13편 공개

천 개의 기도, 하나의 산 아르메니아를 읽다

김경진

목차, 서문, 10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천 개의 기도, 하나의 산 아르메니아를 읽다』입니다. 아르메니아 역사, 문화, 종교, 산과 기도을 주제로 목차, 서문, 10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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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Cowork 및 에이전트 활용 매뉴얼 표지

11편 공개

Claude Cowork 및 에이전트 활용 매뉴얼

김경진

목차, 서문, 8장, 말미 글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Claude Cowork 및 에이전트 활용 매뉴얼』입니다. Claude Code, AI 에이전트, 코딩 자동화, 업무 자동화을 주제로 목차, 서문, 8장, 말미 글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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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에게 던지는 10가지 질문 표지

12편 공개

AI가 인간에게 던지는 10가지 질문

김경진

목차, 서문, 10장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AI가 인간에게 던지는 10가지 질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 AI 윤리, 기술과 인간을 주제로 목차, 서문, 10장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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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선거 cover

14편 공개

인공지능 선거

김경진

목차, 저자 서문, 11장, 끝글

선거 메시지, 홍보물, 디지털 선거운동, 데이터 분석, 캠프 운영, 허위정보 방어, 법적 리스크와 프롬프트를 담은 온라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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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에 대한 7가지 오해 표지

10편

북극항로에 대한 7가지 오해

김경진

목차, 서문, 7장, 에필로그

김경진 AI서재 온라인 도서. 북극항로를 둘러싼 속도, 정기선, 보험, 안전 규정, 상시 개방, 탄소 절감, 인프라에 관한 일곱 가지 오해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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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바나나 프로 실전 프롬프트북 cover

24편 공개

나노 바나나 프로 실전 프롬프트북

김경진

6부 22장, 수업용 프롬프트 부록

나노 바나나 프로의 이미지 생성, 편집, 텍스트 렌더링, 캐릭터 일관성, 업무 적용, 수익화 모델을 수업과 실무에서 바로 쓰도록 엮은 온라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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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423게송 표지

28편

법구경 423게송

김경진

목차, 엮은 말, 26품, 423게송

김경진 AI서재 온라인 도서. 법구경 423게송을 26품으로 나누어 시집처럼 천천히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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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업무와 인공지능 표지

16편

법률업무와 인공지능

김경진

목차, 서문, 14부

김경진 AI서재 온라인 도서. 법률 리서치, 서면 작성, 증거 분석, 계약 검토, NotebookLM과 생성형 AI 활용법을 변호사 실무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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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람 표지

25편 공개

정치와 사람

김경진

목차, 프롤로그, 22장, 에필로그

정치는 사람을 읽고, 신뢰를 얻고, 관계를 지키고, 위기의 계절을 견디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은 김경진 AI서재 온라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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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이야기 표지

39편 공개

한동훈 이야기

김경진

목차, 프롤로그, 36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한동훈 이야기』입니다. 한동훈, 한국 정치, 법률가, 정치 인물, 공적 기록을 주제로 목차, 프롤로그, 36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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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천장을 넘어서 cover

총 39편 공개

유리 천장을 넘어서

김경진

목차, 프롤로그, 31장, 에필로그, 부록 5편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의 성장, 정치 입문, 세 번의 총재 도전, 총리 취임과 외교·안보·경제 노선을 추적한 정치 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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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이 대한민국에 남긴 그간의 흔적 표지

13편 공개

한동훈이 대한민국에 남긴 그간의 흔적

김경진

목차와 12장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한동훈이 대한민국에 남긴 그간의 흔적』입니다. 한동훈, 한국 정치, 법무부, 검찰, 정치 기록을 주제로 목차와 12장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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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알트만 전기: 인공지능 혁명의 개척자 cover

22편 공개

샘 알트만 전기: 인공지능 혁명의 개척자

김경진, 김경란

목차, 프롤로그, 7부 20개 장

샘 알트만의 성장, 창업, Y 컴비네이터, OpenAI, ChatGPT, 해고와 복귀, AI 시대의 책임을 따라가는 온라인 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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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황 이야기 표지

16편 공개

젠슨황 이야기

김경진

목차, 서문, 13장, 에필로그

김경진이 AI서재에 공개한 온라인 책 『젠슨황 이야기』입니다. 젠슨 황, NVIDIA, GPU, 인공지능 반도체, AI 산업을 주제로 목차, 서문, 13장, 에필로그 구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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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cover

총 13편 공개

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김경진

목차, 서문, 10장, 에필로그

바드나가르의 짜이왈라 소년 나렌드라 모디가 RSS 조직가, 구자라트 주총리, 인도 총리 3연임 지도자로 성장한 궤적을 따라 현대 인도의 정치·경제·외교와 한국-인도 관계를 읽는 정치 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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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경진입니다 표지

10편

안녕하세요. 김경진입니다

김경진

목차, 들어가는 글, 추천사, 6장, 닫는글

김경진 AI서재 온라인 도서. 성장 과정, 과학기술 의정활동, 의원외교, 입법 투쟁, 동대문 비전, 대한민국 인구절벽 해법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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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러시아어-한국어판 표지 PDF 다운로드 가능

372쪽 PDF 공개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러시아어-한국어판

김경진

러시아어 번역 병기. 한국 유학생용 AI 교양 교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러시아어권 유학생을 위한 AI 교양 교재입니다. 한국어 원문과 러시아어 번역을 함께 배치해 AI의 역사, 생성형 AI 사용법, 대학 생활과 취업 준비 사례를 PDF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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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몽골어-한국어판 표지 PDF 다운로드 가능

372쪽 PDF 공개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몽골어-한국어판

김경진

몽골어 번역 병기. 한국 유학생용 AI 교양 교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몽골어권 유학생을 위한 AI 교양 교재입니다. 한국어 원문과 몽골어 번역을 함께 배치해 AI의 기본 개념, 생성형 AI 사용법, 이미지·영상·문서 작업 사례를 PDF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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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우즈베크어-한국어판 표지 PDF 다운로드 가능

372쪽 PDF 공개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우즈베크어-한국어판

김경진

우즈베크어 번역 병기. 한국 유학생용 AI 교양 교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우즈베크어권 유학생을 위한 AI 교양 교재입니다. 한국어 원문과 우즈베크어 번역을 함께 배치해 수업, 과제, 논문, 취업 준비에서 AI를 쓰는 방법을 PDF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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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카자흐어-한국어판 표지 PDF 다운로드 가능

372쪽 PDF 공개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카자흐어-한국어판

김경진

카자흐어 번역 병기. 한국 유학생용 AI 교양 교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카자흐어권 유학생을 위한 AI 교양 교재입니다. 한국어 원문과 카자흐어 번역을 함께 배치해 AI 도구 비교, 학과별 사용 사례, 저작권과 규제 쟁점을 PDF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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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제4장. 뉴델리 입성: 모디노믹스 (2014–2019)

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작성자
김경진
작성일
2026-05-07 06:08
조회
141

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제4장. 뉴델리 입성: 모디노믹스 (2014–2019)

김경진

4.1 2014년 압승: 소셜미디어·홀로그램 캠페인

2014년 4월의 어느 저녁,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한 마을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 마을의 공터에 수천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먼지투성이 바닥에 쪼그려 앉은 농민들이 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허공에서 빛줄기가 터져 나왔습니다. 3미터 높이의 남자가 무대 위에 나타났습니다. 구자라트 주총리 나렌드라 모디였습니다. 그는 팔을 벌리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바뀔 것입니다." 군중은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모디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 시각 그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스튜디오에 서 있었습니다. 무대 위의 모디는 빛으로 만든 분신, 3D 홀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에 2014년 인도 총선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 선거는 정권 교체가 아니었습니다. 인도 정치의 문법 자체가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무너지는 왕조, 떠오르는 차이왈라

모디가 등장하기 전, 인도 정치의 중심에는 네루-간디 가문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하나의 가문이 건국 이래 여당의 총재를 독점해 온 셈입니다.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총리(1947~1964)를 지낸 이래,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손자 라지브 간디가 총리를 역임했고, 2014년 당시 집권당인 국민회의(Congress)의 부총재는 라지브의 아들 라훌 간디(Rahul Gandhi)였습니다. 네루의 증손자가 4대째 정치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회의 주도의 연립정부(UPA)는 10년간의 집권 끝에 심각한 피로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정부 관리들의 부패 스캔들이 잇달아 터졌습니다. 2G 통신주파수 할당 스캔들(약 1.76조 루피 규모의 국가 손실 추정), 석탄 광구 배정 비리(Coalgate), 커먼웰스 게임 비리가 연달아 폭로되면서 "부패의 연립정부"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있었습니다. 2010년 9.6%였던 GDP 성장률이 2013년에는 6.4%로 떨어졌습니다. 언론은 이를 '정책 마비(Policy Paralysis)'라 불렀습니다. 정부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습니다.

8억 명에 달하는 35세 이하 유권자들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왕조의 후계자가 아니라,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틈새로 모디가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철저하게 '외부자'로 포지셔닝했습니다. 기차역에서 차를 팔던 하층 카스트 출신(제1장 참조). 가문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 배우자도 없는 남자. 그러나 구자라트에서 13년간 주총리를 하며 연평균 10% 넘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 실적의 사나이. 모디는 자기 인생 자체를 선거 캠페인의 서사로 만들었습니다.

허공에 나타난 사나이: 홀로그램 유세

인도의 크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남한 면적의 33배. 유권자 8억 1,400만 명. 공용어만 22개. 물리적으로 모든 곳을 돌며 유세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모디 캠프는 이 불가능을 기술로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구자라트 주 선거에서 시험한 홀로그램 기술(제3장 3.3 참조)을 전국 규모로 확대한 것입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3D 홀로그램 장비, 200여 대의 고성능 프로젝터, 400여 개의 위성 안테나가 동원되었습니다.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무대가 인도 전역의 시골 마을로 향했습니다. 원리는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라 불리는 19세기 무대 기법의 디지털 업그레이드였습니다. 무대 전면에 설치된 투명 호일에 빔을 쏘면 실물 크기의 3D 입체 영상이 허공에 떠오릅니다. 스튜디오의 모디가 손을 흔들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의 모디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1,300회 이상의 홀로그램 연설이 진행되었습니다. 1,400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이 '가상의 모디'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밤하늘을 가르며 나타난 거대한 빛의 형상. 힌두 신화에는 신이 여러 장소에 동시에 현신(顯身)하는 이야기가 흔합니다. 모디의 홀로그램은 의도했든 아니든, 그 신화적 상상력의 회로를 자극했습니다.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인상이 수천만 명의 머릿속에 각인되었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BJP는 홀로그램 캠페인에만 약 60억 루피(당시 환율로 약 1,200억 원)를 투입했습니다. 인도 정치사에서 가장 비싼 선거 캠페인이었습니다. BJP 전체의 2014년 선거 지출은 공식 신고 기준 7,140크로르 루피(약 1.2조 원)에 달했고, 이는 국민회의당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스마트폰 속으로 침투하다: 소셜미디어 전략

홀로그램이 시골의 밤하늘을 장악했다면, 도시의 낮은 소셜미디어가 지배했습니다. 모디는 2002년 구자라트 폭동 이후 주류 언론과 사이가 나빴습니다. 많은 기자와 편집자가 그를 비판적으로 다뤘습니다. 모디는 이 장벽을 뛰어넘기로 했습니다. 언론을 거치지 않고 유권자의 손바닥 위로 직접 들어가는 것.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YouTube), 왓츠앱(WhatsApp)이 그 통로였습니다.

2014년 5월 기준, 모디의 트위터 팔로워는 390만 명이었습니다. 페이스북 '좋아요'는 1,300만 건. 세계에서 버락 오바마 다음으로 소셜미디어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 인도의 지방 주총리였습니다. 모디는 인도 정치인 최초로 구글 행아웃(Google Hangouts)을 통해 네티즌과 실시간 대화를 했고, 자체 모바일 앱 'NaMo App'은 1,0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2026년 현재 모디의 X(구 트위터) 팔로워는 1억 명을 넘어 세계 정치인 중 최상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진짜 무기는 모디 개인의 계정이 아니었습니다. BJP가 조직한 'IT 셀(IT Cell)'이라 불리는 디지털 작전 본부였습니다. 이 조직은 아미트 샤(Amit Shah)의 지휘 아래, 약 120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전국에 배치하여 모디의 메시지를 100여 개 언어로 번역하고, 왓츠앱 그룹을 거쳐 실시간으로 유포했습니다. 전국 10만 개 이상의 페이스북 그룹이 운영되었습니다. 농민에게는 농업 정책을,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여성에게는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는 맞춤형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이 디지털 동원 체계는 훗날 가짜 뉴스와 혐오 발언의 확산 통로라는 비판도 받게 됩니다. BBC 다큐멘터리 '인도: 모디 질문(India: The Modi Question)'은 IT 셀이 무슬림에 대한 혐오 콘텐츠를 조직적으로 유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이 다큐멘터리의 국내 상영을 차단했습니다.

약점을 무기로: '차이 페 차르차'

선거 과정에서 결정적인 반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국민회의의 한 지도부 인사 마니 샹카르 아이어(Mani Shankar Aiyar)가 공개 석상에서 모디를 조롱했습니다. "차나 팔던 사람이 총리가 되겠다고?" 한국이었다면 상대방의 출신을 비하한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을 겁니다. 인도에서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모디는 이 모욕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았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차이왈라(Chaiwala)입니다. 기차역에서 차를 팔았습니다. 그래서 서민의 고통을 압니다."

그리고 전국 1,000개 이상의 찻집을 위성으로 연결한 '차이 페 차르차(Chai Pe Charcha, 차 한잔의 대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모디가 델리의 스튜디오에서 차를 마시며 전국의 시민과 화상으로 대화하는 이벤트였습니다. 차를 팔던 소년이 차를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는 장면. 이것은 네루-간디 가문의 귀족적 이미지와 정확히 반대편에 놓인 서사였습니다. 야당이 모디를 '차 장수'라고 깎아내릴수록, 모디의 '흙수저 영웅' 서사는 더 빛났습니다.

282석, 그리고 그림자

2014년 5월 16일 개표일.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BJP 단독 282석. 연립 파트너까지 합하면 NDA(국민민주동맹) 336석. 1984년 이후 30년 만에 단일 정당이 과반 의석(272석)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국민회의는 44석으로 추락했습니다. 인도 의회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습니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를 '모디 물결(Modi Wave)'이라 불렀습니다. 유권자들은 BJP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모디라는 브랜드에 투표한 것이었습니다.

모디의 득표율은 31%였습니다. 인도의 다당제 구조에서 이 수치는 압도적이었지만, 바꿔 말하면 69%의 유권자는 모디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서 표의 분산이 거대한 의석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이 구조적 특성은 2024년 선거에서 다시 한번 부각됩니다(제9장 참조).

그러나 이 화려한 승리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습니다. 모디의 캠페인은 대도시에서는 '개발(Vikas)'을 말했지만, 힌두교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힌두 민족주의(Hindutva)가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동원되었습니다. 2억 명에 달하는 인도 무슬림들에게 이 선거 결과는 경축이 아니라 경계의 시작이었습니다.

모디는 그렇게 뉴델리에 입성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홀로그램이라는 21세기의 도구로 세계 최대 민주주의를 정복한 남자. 인도 정치는 이제 정당 간의 대결이 아니라 '모디 대 나머지'의 구도로 재편되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은 내각에서 총리실(PMO)로 급격히 이동했고, 모든 결정은 모디라는 하나의 깔때기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4.2 메이크 인 인디아: FDI 2배 증가, PLI 제도

2014년 9월 25일, 뉴델리 비기안 바완(Vigyan Bhawan) 컨벤션 센터. 무대 중앙에 톱니바퀴로 온몸이 이루어진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서 있었습니다. 역동적이되 우아한 이 기계 사자는 인도의 국장(國章)인 아쇼카 사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습니다. 로고 아래에는 세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Make in India.' 모디 총리는 전 세계 투자자를 향해 팔을 벌리며 말했습니다. "인도에 오십시오. 여기서 물건을 만드십시오. 우리가 길을 닦겠습니다."

취임한 지 넉 달. 모디가 가장 먼저 꺼내 든 경제 카드였습니다. 왜 제조업이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이해하려면 인도 경제의 기형적인 구조를 먼저 봐야 합니다.

IT 강국의 역설: 공장이 없는 나라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방갈로르의 IT 엔지니어, 실리콘밸리의 인도인 CEO들. 맞습니다. 인도는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IT 아웃소싱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입니다. 순다르 피차이(구글), 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파라그 아그라왈(전 트위터) 등 글로벌 빅테크의 수장들이 인도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2014년 기준 서비스업이 GDP의 약 57%를 차지하는 반면, 제조업은 고작 15~16%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이 약 27%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일자리였습니다. IT 기업이 아무리 잘나가도, 코드를 짤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입니다. 매년 인도의 노동 시장에는 1,200만 명의 청년이 새로 쏟아져 나옵니다. 한국에서 매년 대학 졸업자가 50만 명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24배입니다. 이 젊은이들 대부분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손으로 일하길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공장이었습니다.

모디는 이 문제를 구자라트에서 이미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총리 시절 그는 타타 자동차의 나노 공장을 유치하며 '비즈니스 프렌들리' 지도자의 명성을 쌓았습니다(제3장 3.2 참조). 이제 그 경험을 국가 단위로 확장할 차례였습니다. 그가 참조한 발전 모델에 한국이 있었다는 사실은 제7장에서 다룹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열다: FDI 규제 해체

메이크 인 인디아의 첫 번째 수순은 외국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의 빗장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독립 이후 인도 경제는 '허가의 왕국(License Raj)'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이었습니다. 공장 하나 세우려면 수십 개의 정부 허가를 받아야 했고, 외국 기업이 인도에 투자하려면 미로 같은 규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1991년 만모한 싱의 경제 자유화 이후 상당 부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국방, 철도, 보험 등 핵심 분야는 외국 자본에 문을 걸어잠근 상태였습니다.

모디는 이 문을 과감하게 열었습니다. 방위 산업의 FDI 한도를 기존 26%에서 49%로, 이후 조건부 100%까지 확대했습니다. 철도 인프라에 100% 외국 투자를 허용했고, 보험 분야도 26%에서 49%, 다시 74%로 올렸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외국 기업이 한국의 방위산업체나 철도공사에 대주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과 유사한 충격이었습니다.

동시에 구자라트에서 검증한 '레드 테이프를 레드 카펫으로' 전략을 전국에 적용했습니다. 수십 개로 나뉘어 있던 인허가 절차를 온라인 단일 창구로 통합하고, 각 주(州) 정부가 투자 유치를 놓고 경쟁하도록 '경쟁적 연방주의(Competitive Federalism)'를 도입했습니다. 구자라트가 타타 공장을 따냈듯이, 이제 28개 주가 서로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Ease of Doing Business)' 순위에서 인도는 2014년 142위에서 2019년 63위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5년 만에 79계단을 뛰어오른 것은 이 순위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세계은행은 이후 이 순위의 데이터 조작 의혹으로 2021년 순위 발표를 중단했습니다.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순위 산정에 부정이 있었다는 내부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순위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입니다.)

숫자가 반응했습니다. 2013-14 회계연도에 약 360억 달러였던 연간 FDI 유입액은 2020-21 회계연도에 817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이후 글로벌 자본 흐름이 주춤하면서 2023-24 회계연도에는 약 714억 달러로 조정되었지만, 인도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의 최대 수혜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월마트의 플립카트(Flipkart) 160억 달러 인수, 구글과 페이스북의 릴라이언스 지오(Jio) 투자 등 대형 딜이 줄줄이 성사되었습니다.

한국 기업, 모디의 부름에 답하다

이 거대한 자본 이동의 흐름 속에 한국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Noida)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공장을 완공했습니다. 축구장 35개를 합친 크기의 이 공장에서 매달 수백만 대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준공식에는 모디 총리가 직접 참석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화상으로 축사를 보냈습니다. 모디는 이재용 부회장의 손을 잡으며 "삼성이 인도의 꿈을 함께 짓고 있다"고 치하했습니다. 삼성은 이후에도 노이다 공장을 확장하여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품까지 현지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96년부터 첸나이(Chennai)에 뿌리를 내린 '인도의 터줏대감'이었습니다. 메이크 인 인디아의 바람을 타고 생산 능력을 확충하며, 인도 시장 점유율 2위의 자리를 굳혔습니다. 2024년 10월에는 인도법인(Hyundai Motor India Limited)이 봄베이 증권거래소(BSE)에 상장하며, 인도 증시 역대 최대 IPO(약 279억 달러 기업가치)를 기록했습니다. 한국 본사가 인도 법인의 가치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LG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 시장에서 인도 가전의 기준을 새로 썼습니다. 포스코는 오디샤주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토지 수용과 환경 규제 문제로 10년 넘게 난항을 겪었습니다. 이 사례는 인도에서 '레드 카펫'과 '레드 테이프'가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2025년 기준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약 550여 개에 달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인도 투자는 한-인도 양국 관계의 밀도에 비해 아직 잠재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7장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PLI: "더 만들면 돈을 주겠다"

메이크 인 인디아가 문을 열고 자본을 들였다면, 이를 실제 생산으로 연결한 핵심 장치는 PLI(Production Linked Incentive, 생산 연계 인센티브) 제도였습니다. 전자제품 제조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이 2016년부터 전략적으로 추진되었고, 이것이 PLI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PLI는 14개 핵심 산업 분야(스마트폰, 의약품, 자동차 부품, 반도체, 섬유, 식품가공 등)로 전면 확대되었습니다. 총 예산 규모는 약 1.97조 루피(약 32조 원)에 달합니다.

작동 원리는 직설적이었습니다. 기업이 인도에서 생산을 늘리고 매출이 증가하면, 그 증가분의 4~6%를 정부가 현금으로 돌려줍니다. 세금 감면 같은 간접 혜택이 아니라, 기업의 통장에 직접 돈이 꽂히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가 사후적인 혜택이라면, 인도의 PLI는 "지금 만들어라, 지금 돈을 주겠다"는 즉각적인 당근이었습니다.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분야는 스마트폰 제조였습니다. 2014년 인도의 휴대폰 공장은 2개에 불과했고, 수요의 대부분을 중국산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모디 정부는 완제품 수입 관세를 단계적으로 올리는 동시에, 국내 생산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했습니다. 삼성, 폭스콘(Foxconn), 위스트론(Wistron) 등이 잇달아 공장을 세웠습니다. 2024년 인도는 세계 2위의 스마트폰 제조국으로 부상했으며, 연간 생산량은 3억 대를 넘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도 인도에서 조립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아이폰 생산의 약 14%가 인도 공장에서 나오며, 이 비율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기계 사자는 울부짖었지만

성과는 분명했습니다. FDI는 두 배 이상으로 뛰었고, 인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목적지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제조업 비중을 GDP의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에도 여전히 17%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화려한 투자 유치 실적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충분한 일자리로 이어졌느냐는 질문 앞에서 모디노믹스는 궁색해졌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라는 비판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근본적인 장애물도 남아 있었습니다. 토지를 수용하려면 수년이 걸렸고, 전력 공급은 불안정했으며, 물류 비용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베트남이 6개월 만에 공장을 가동하는 동안 인도에서는 3~5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 현실을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삼성 노이다 공장이 가동되기까지의 과정, 현대차 첸나이 공장에서 벌어진 노사 갈등, 포스코 오디샤 제철소의 끝없는 토지 분쟁. '레드 카펫'이 깔린 곳은 총리의 연설대 앞이었고, 공장 현장에는 여전히 '레드 테이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메이크 인 인디아의 과실은 아다니(Adani)와 릴라이언스(Reliance) 같은 거대 인도 재벌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2023년 1월 미국의 공매도 전문 투자조사기관 힌덴버그 리서치(Hindenburg Research)가 아다니 그룹의 주가 조작과 회계 부정 의혹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모디-아다니 관계는 국제적 쟁점으로 비화했습니다. 아다니 그룹의 시가총액은 며칠 만에 1,500억 달러 이상 증발했습니다. 아다니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인도 대법원은 규제 기관의 추가 조사를 지시했지만 직접적인 위법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모디 1기의 메이크 인 인디아는 인도 경제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문을 열었고, 자본이 들어왔고,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투자가 까다로운 나라'라는 인도의 오래된 꼬리표는 '가능성의 나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4.3 디지털 인디아: 아다르 ID, 잔단 요자나, UPI 혁명

2015년의 어느 무더운 오후, 오디샤(Odisha)주의 한 오지 마을입니다. 홀어머니 수니타(가명)는 낡은 피처폰에 도착한 짧은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봅니다. 정부 지원금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녀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읍내 관공서까지 반나절을 걸어야 했고, 창구에서 만난 하급 관리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지원금의 30%를 떼어주어야 했습니다. 뒷주머니에 돈을 챙기는 관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니타에게는 자신이 수니타라는 것을 증명할 서류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지문과 홍채 정보가 담긴 '아다르(Aadhaar)' 카드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잔단 요자나(Jan Dhan Yojana)'로 만든 은행 통장에 1루피의 누수도 없이 전액이 꽂힌 것입니다.

모디가 인도의 낡은 신경망을 뜯어내고 새로운 디지털 혈관을 이식한 이야기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금융 문맹 13억의 나라

2014년, 인도는 거대한 역설 위에 서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IT 인력을 배출하는 나라였지만, 국민 절반 이상이 은행 계좌조차 없었습니다. 정부가 빈곤층에게 보조금을 보내면 중간에서 다 새어 나갔습니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1985년에 남긴 말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정부가 1루피를 보내면 빈민에게 도달하는 돈은 15파이사에 불과하다." 보조금의 85%가 중간 브로커, 유령 수혜자, 부패한 관료의 호주머니로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모디는 이 고질적인 문제를 기술로 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도구는 세 가지였습니다. '잔단(Jan Dhan, 은행 계좌)', '아다르(Aadhaar, 생체 인식 신분증)', '모바일(Mobile)'. 이 세 가지를 묶어 'JAM 트리니티(JAM Trinity)'라 불렀습니다. 수천 년간 인도 사회를 지배해 온 '중간자(middlemen)'들의 권력을 박탈하고, 중앙정부와 개인을 직접 연결하는 거대한 권력 재편이었습니다.

잔단 요자나: 한 명도 빠짐없이 통장을 만들어라

2014년 8월 28일, 모디는 취임 첫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예고했던 '프라단 만트리 잔단 요자나(Pradhan Mantri Jan Dhan Yojana, 총리 국민 금융 계획)'를 전격 발표합니다. 핵심은 간명했습니다. 잔액이 0원이어도 계좌를 열어주겠다. 루페이(RuPay) 직불카드를 무료로 주겠다. 상해보험도 붙여주겠다. 은행 문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영 은행 직원들이 태블릿 PC를 들고 시골 마을로 쏟아져 나갔습니다. 출범 첫날에만 1,500만 개의 계좌가 개설되었습니다. 첫 주에 1,809만 개의 계좌가 열려 기네스북에 '1주일간 가장 많은 계좌를 개설한 기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2025년 8월 기준, 잔단 요자나로 개설된 은행 계좌는 5억 6,160만 개를 돌파했습니다. 이 중 67%가 농촌·준도시 지역 계좌이고, 56%가 여성 명의 계좌입니다. 총 예금 잔액은 2조 6,700억 루피(약 43조 원)에 이릅니다.

물론 빈 깡통 계좌가 많다는 비판이 있었고, 실제로 2025년 7월 기준 전체 계좌의 23%인 1억 3,040만 개가 비활성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통장들은 곧 정부 보조금이 직접 꽂히는 '파이프라인'이 됩니다.

아다르: 14억의 지문을 찍다

잔단 요자나가 배관을 깔았다면, 아다르(Aadhaar)는 그 배관에 물을 흘려보내는 밸브였습니다. 12자리 고유 번호에 지문과 홍채 정보를 담은 생체 인식 신분증,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지만 위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신원 증명입니다.

아다르는 모디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전임 만모한 싱 정부에서 난단 닐레카니(Nandan Nilekani) — 인포시스(Infosys) 공동창업자 — 가 인도고유식별번호청(UIDAI) 초대 의장으로 부임해 설계하고 출범시킨 프로젝트입니다. 닐레카니가 IT 기업인의 감각으로 만든 기술 플랫폼을, 모디가 정치적 의지로 사실상 의무화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현재 14억 인구의 99% 이상이 아다르를 발급받았습니다.

아다르, 잔단 계좌, 모바일이 결합되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정부가 빈곤층에게 보내는 식량 보조금, 가스 보조금, 장학금, 연금을 중간 단계 없이 수혜자의 통장으로 직접 쏘아주는 '직접 혜택 이체(DBT, Direct Benefit Transfer)' 시스템이 완성된 것입니다. 블루크래프트 디지털 재단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DBT 시스템을 통해 누적 3조 4,800억 루피(약 56조 원)의 예산 누수를 차단했습니다. 식량 배급(PDS) 부문에서만 아다르 기반 인증으로 1조 8,500억 루피를 절감했고, 농민 지원 프로그램 PM-KISAN에서는 2,100만 명의 부적격 수혜자를 걸러내 2,210억 루피를 아꼈습니다. 수혜자 수는 2014년 1억 1,000만 명에서 17억 6,000만 명으로 16배 늘었는데, 보조금 지출은 총 예산 대비 16%에서 9%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관공서에 가서 뇌물을 주지 않아도, 띠링 하는 문자 메시지와 함께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경험. 이것이 모디에 대한 빈곤층의 철벽 지지로 직결되었습니다.

UPI 혁명: 짜이 한 잔도 QR코드로

은행 계좌 보급이 1단계, 복지 전달 체계 혁신이 2단계였다면, 3단계는 결제 방식의 혁명이었습니다. 2016년 4월 인도 국립지불공사(NPCI)가 출시한 '통합 결제 인터페이스(UPI, Unified Payments Interface)'가 그 주인공입니다.

UPI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복잡한 계좌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QR코드만으로 실시간 송금이 가능한 오픈 소스 플랫폼입니다. 중국의 알리페이가 특정 기업 중심의 폐쇄형 시스템이라면, UPI는 공용 철로와 같습니다. 구글페이, 폰페(PhonPe), 페이티엠(Paytm), 왓츠앱 같은 민간 기업들이 이 공용 철로 위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초기에는 회의론이 많았습니다. 현금 의존도가 절대적인 인도 사회에서 디지털 결제가 뿌리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11월의 화폐개혁(다음 절에서 다룹니다)이 충격 요법으로 작용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지갑 속 현금이 휴지가 된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디지털 지갑을 설치했고, 상인들은 가게 앞에 QR코드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인도 최대 기업 릴라이언스(Reliance)의 통신 자회사 지오(Jio)가 4G 데이터를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풀면서 스마트폰 보급이 폭증했습니다. 지오의 공격적 가격 정책으로 인도의 모바일 데이터 가격은 1GB당 약 0.17달러로 세계 최저 수준이 되었습니다. 기반 위에 연료가 부어진 셈이었습니다.

성장세는 경이로웠습니다. 2017년 1월 446만 건이었던 UPI 월간 결제 건수는 2025년 월간 185억 건을 돌파했습니다. 2025년 연간 거래량은 2,283억 건, 거래액은 299조 7,000억 루피(약 4,800조 원)를 기록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UPI를 세계 최대의 실시간 소액 결제 시스템으로 인정했고, ACI 월드와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UPI는 전 세계 실시간 결제 거래량의 약 49%를 차지합니다. 한 나라의 시스템이 전 세계 실시간 결제의 절반을 처리하고 있는 셈입니다(서문 참조). 2026년 초 기준 UPI 이용자는 5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뭄바이의 고급 쇼핑몰에서 길거리 채소 노점까지, 릭쇼(삼륜차) 기사에서 사원의 기부금함까지, 인도 전역이 QR코드로 뒤덮였습니다. 10루피(약 160원)짜리 짜이 한 잔도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신용카드 단계를 건너뛰고 현금 사회에서 바로 모바일 핀테크 사회로 직행한 것입니다. 한국이 1990년대 신용카드 대중화를 거쳐 2010년대 카카오페이·삼성페이에 도달했다면, 인도는 그 과정을 한꺼번에 건너뛰었습니다.

UPI의 성공에 주목한 국제사회는 이 시스템의 수출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부터 싱가포르의 페이나우(PayNow)와, 2024년에는 프랑스·영국 등과 UPI 연동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인도가 만든 공공 디지털 인프라가 글로벌 표준의 하나로 자리 잡는 과정입니다.

빛과 그림자: 효율의 축복과 감시의 공포

세계은행(World Bank)은 인도가 다른 나라라면 47년이 걸렸을 금융 포용 과제를 6년 만에 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Paul Romer)는 아다르를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기술 혁신 중 하나"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전광판 뒤편에 그림자도 짙습니다. 14억 인구의 지문, 홍채, 금융 거래가 하나의 디지털 ID로 묶이면서, 국가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2017년 인도 대법원은 역사적인 K.S. 푸타스와미(Puttaswamy) 판결에서 프라이버시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선언하며, 아다르의 과도한 의무화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은 2018년 후속 판결에서 아다르를 복지 수급과 세금 신고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은행 계좌 개설이나 휴대전화 가입에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노인,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하층민들은 이 시스템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아다르 인증 오류로 식량 배급을 거부당해 사망한 사례가 라자스탄주 등에서 보고되었습니다. 개인 정보 유출과 사기 사건도 급증했습니다. 2024-25 회계연도에 디지털 결제 관련 사기 건수는 1만 3,500건을 넘었습니다.

모디는 이 기술을 통해 효율적인 관료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14억을 하나의 그물망 안에 넣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인디아는 빈곤층을 구제하는 자비의 손이자, 권력의 렌즈이기도 했습니다.

4.4 구조개혁의 명암: 화폐개혁, GST, 스와치 바라트

2016년 11월 8일 저녁 8시, 인도 전역의 TV 화면에 모디 총리의 얼굴이 떴습니다. 국민들은 여느 때와 같은 연설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폭탄이었습니다. "오늘 자정부터 현재 유통되는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는 법정 통화로서의 효력을 상실합니다." 자정까지 4시간. 시중에 돌아다니는 현금의 86%가 종잇조각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어느 날 저녁 뉴스에서 대통령이 "내일부터 5만 원권과 1만 원권을 못 씁니다"라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새 화폐는 아직 충분히 찍어놓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검은 돈과의 전쟁, 혹은 무모한 도박

모디가 내세운 명분은 세 가지였습니다. 부패한 부자들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 벽 속에, 논밭에 묻어둔 '검은 돈(Black Money)'을 끄집어내겠다. 국경 너머 파키스탄에서 유입되는 위조지폐를 차단해 테러 자금줄을 끊겠다. 인도를 현금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강제 전환하겠다.

이 결정을 알고 있던 사람은 총리 본인과 극소수 측근뿐이었습니다. 인도준비은행(RBI) 총재조차 발표 몇 시간 전에야 통보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정도의 비밀을 유지한 채 이 규모의 경제적 충격을 가한 사례는 전례가 없었습니다.

대혼란: 줄 서다 죽은 사람들

발표 직후 인도는 혼돈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구권 지폐를 은행에 입금하고 신권으로 교환하기 위해 며칠 밤낮을 은행 앞에서 줄을 섰습니다. ATM기에서는 신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로 찍은 2,000루피 지폐는 크기가 달라 기존 ATM기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줄에서 100명 이상의 시민이 탈진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현금 의존도가 절대적인 농촌 경제와 중소 상공업은 마비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종자를 살 현금이 없어 파종을 포기했습니다. 공장들은 임금을 줄 돈이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결혼식 시즌이었던 11월, 수백만 가정이 하객에게 대접할 음식을 살 현금이 없어 식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었습니다.

RBI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화폐개혁 직후 2016-17년 3분기 GDP 성장률은 7.5%에서 6.1%로 급락했습니다. 국제금융센터(CMIE)는 화폐개혁으로 1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추정했습니다. 전 RBI 총재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은 화폐개혁을 "장기적 비용이 단기적 이익을 압도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99.3%의 아이러니

결과는 역설적이었습니다. 모디가 "소각하겠다"고 공언한 검은 돈은 소각되지 않았습니다. 무효화된 지폐의 99.3%가 은행으로 회수되었습니다. 부자들은 하인, 친척, 노숙자의 계좌를 동원해 돈을 분산 입금하는 등 온갖 편법으로 자금을 세탁했습니다. 인도준비은행의 공식 보고서가 이 수치를 확인했을 때, 비평가들은 "정책의 목표 자체가 실패했다"고 공격했습니다.

2023년, 인도 대법원도 이 사안을 심리했습니다. 4대 1의 의견으로 화폐개혁의 합헌성은 인정했지만, 반대 의견을 낸 B.V. 나가라트나(Nagarathna) 대법관은 "의회의 승인 없이 행정부 단독으로 이 규모의 경제적 충격을 가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밝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모디의 완승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민들은 자신이 겪는 불편함을 "국가를 위한 애국적 희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은행 앞에서 줄을 서면서도 "부자들은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모디는 이 감정을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패 기득권과 싸우는 성전"이라는 프레임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그에게 '행동하는 지도자', '청렴한 개혁가'라는 이미지를 굳혀주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 충격 요법은 앞서 다룬 UPI와 디지털 결제의 강제 확산을 앞당기는 의도치 않은 성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GST: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금

화폐개혁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2017년 7월 1일, 모디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뢰를 해체합니다. 상품서비스세(GST, Goods and Services Tax) 도입이었습니다. 1947년 독립 이후 최대 규모의 조세 개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인도는 주(State)마다 세법이 달랐습니다. 29개 주가 제각각 소비세, 부가가치세, 입국세, 오락세를 부과했습니다. 트럭이 구자라트에서 타밀나두까지 물건을 실어 나르려면 주 경계를 넘을 때마다 세금을 내기 위해 검문소에서 며칠씩 대기해야 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경기도세, 충청도세, 경상도세를 따로따로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류 비용은 천문학적이었고, 인도는 사실상 29개의 분리된 경제권이었습니다.

모디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금, 하나의 시장(One Nation, One Tax, One Market)"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101번째 헌법 개정까지 감행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중앙세와 지방세를 단일한 GST로 통합한 것입니다.

시행 초기의 혼란은 극심했습니다. 0%, 5%, 12%, 18%, 28%의 다섯 구간으로 나뉜 세율은 "하나의 세금"이라는 슬로건과 정면으로 모순되었습니다. 빈번한 규정 변경과 IT 시스템 오류 때문에 중소 상공인들은 세금 신고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야당은 GST를 "가바르 싱 택스(Gabbar Singh Tax)"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이 안정되자 긍정적 효과가 드러났습니다. 주 간 검문소가 사라지면서 물류 이동 시간이 20% 이상 단축되었습니다. 지하 경제 거래가 양지로 나오면서 세수가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2025년 4월 GST 월간 징수액은 2조 3,700억 루피(약 38조 원)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등록 납세자 수는 1,4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시행 초기 800만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75% 이상 늘어난 것입니다. GST는 인도를 사실상의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켰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 공장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체감하는 변화가 바로 이 GST 통합이었습니다.

스와치 바라트: 화장실이 사원보다 중요하다

경제 개혁과 나란히, 모디가 심혈을 기울인 사회 개혁이 있었습니다. 2014년 10월 2일, 마하트마 간디의 생일에 맞춰 시작된 '스와치 바라트 아비얀(Swachh Bharat Abhiyan, 클린 인디아 미션)'입니다.

모디는 붉은 성채(Red Fort) 연설에서 금기를 깼습니다. "사원을 짓는 것보다 화장실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힌두 민족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이 발언은 청중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2019년 간디 탄생 150주년까지 '야외 배변 없는 인도(Open Defecation Free India)'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려면 숫자가 필요합니다. 2014년 당시 인도 농촌 가구의 62%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약 5억 5,000만 명이 야외 배변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야외 배변 인구의 약 60%가 인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이것은 위생 문제를 넘어 안전과 존엄의 문제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인적 없는 들판으로 나가야 하는 여성들은 성범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 가정과 학교, 공공장소에 화장실을 지었습니다. 5년 동안 약 1억 1,000만 개의 화장실이 건설되었고, 2019년 10월 인도 정부는 공식적으로 'ODF(Open Defecation Free)' 달성을 선언했습니다. 모디 총리 자신이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은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고, 안경 모양의 스와치 바라트 로고는 인도의 모든 지폐와 공문서에 인쇄되어 모디의 존재감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게 했습니다.

물론 화장실을 지어놓고도 창고로 쓰거나, 물 부족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인도 국가표본조사국(NSS)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화장실이 있는 가구 중에서도 실제 사용률은 95% 수준으로 100%에 미치지 못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문화적 관습이 인프라를 앞섰습니다. 그러나 위생 문제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가장 가난한 여성들의 일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 캠페인은 모디에게 '간디의 계승자'라는 이미지를 선사했고, 농촌 여성들 사이에서 견고한 지지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통의 정치학

화폐개혁, GST, 스와치 바라트. 이 세 가지 구조개혁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수반했지만, 모디는 그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국가를 위해 쓴 약을 삼키자"는 호소는 내셔널리즘적 감정과 결합해 역설적인 결집력을 발휘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를 "조직적 무능을 애국심으로 포장한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지지자들은 "수십 년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구조적 모순을 깨뜨린 유일한 지도자"라고 칭송했습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을 거치며 모디가 "어려운 결정을 피하지 않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고, 그 이미지가 2019년 재집권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4.5 안보 내셔널리즘: 우리 타격, 발라코트 공습

2019년 2월 26일 새벽 3시 30분, 인도 공군의 미라주(Mirage) 2000 전투기 편대가 어둠을 가르며 이륙합니다. 목표는 통제선(LoC, Line of Control)을 넘어 파키스탄 영토 깊숙한 곳, 카이베르 파크툰크와(Khyber Pakhtunkhwa)주 발라코트(Balakot)에 위치한 테러 단체 훈련 캠프입니다.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인도 전투기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새벽의 출격은 군사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의 안보 독트린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자, 모디를 '인도의 수호자(Chowkidar)'로 각인시킨 정치적 모멘텀이었습니다.

전략적 인내의 폐기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한반도의 남북 관계를 떠올리는 것이 가장 가깝습니다. 1947년 분리 독립 이후 네 차례 전쟁을 치른 두 나라는, 카슈미르(Kashmir)라는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묶여 있습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은 테러 단체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인도를 공격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십 년간 벌여왔습니다. 2001년 12월 인도 의회(Parliament) 건물 자체가 무장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9명이 사망했고, 2008년 11월에는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기반 테러 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의 무장 대원 10명이 타지마할 호텔 등을 60시간 동안 점거하며 166명을 살해했습니다.

역대 인도 정부의 대응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Restraint)'였습니다. 핵무장 국가 간의 확전을 우려해, 외교적 항의와 국제 사회 호소에 그치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한 것입니다. 2008년 뭄바이에서 166명이 사망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만모한 싱 정부는 군사적 보복을 자제했습니다. 많은 인도 국민이 느낀 감정은 분노와 무력감이었습니다.

모디의 등장은 이 공식을 바꾸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처음에는 평화의 제스처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14년 취임식에 파키스탄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초대했고, 2015년 크리스마스에는 샤리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예고 없이 파키스탄 라호르를 깜짝 방문하는 파격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6년 1월 파탄코트 공군 기지 테러가 터지자, 모디는 냉정하게 판을 뒤집었습니다. "대화와 테러는 양립할 수 없다."

우리(Uri): 통제선을 넘다

2016년 9월 18일, 카슈미르의 우리(Uri) 지역에 위치한 인도 육군 기지에 파키스탄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침투했습니다. 새벽 기습으로 19명의 인도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인도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사건 발생 11일 후인 9월 29일 밤, 모디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도 육군 특수부대(Para SF)가 야간을 틈타 통제선을 도보로 넘어 침투했습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내의 테러리스트 발진 기지(Launch Pads) 여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고, 상당수의 테러리스트와 파키스탄 군 관계자를 사살한 뒤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다음 날 이를 '외과수술적 타격(Surgical Strike)'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공식 발표'에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인도군이 비공식적으로 통제선 부근에서 소규모 작전을 수행한 적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적으로 LoC 월경 작전을 인정하고 홍보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는 파키스탄의 "인도는 핵 보유국인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정면으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볼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우리: 외과수술적 타격(Uri: The Surgical Strike)〉으로 만들어져 흥행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영화 속 대사 "하우스 더 조시?(How's the Josh? — 사기가 어떻습니까?)"는 모디 지지자들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모디는 선거 유세장에서 이 대사를 직접 외치기도 했습니다.

풀와마와 발라코트: 1971년 이후 최초의 공습

2019년 총선을 불과 몇 달 앞둔 2월 14일, 더 큰 비극이 터졌습니다. 잠무 카슈미르의 풀와마(Pulwama)에서 폭약을 가득 실은 차량이 중앙예비경찰부대(CRPF) 수송 행렬에 돌진했습니다. 40명의 대원이 사망했습니다.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테러 단체 자이쉬-에-무함마드(JeM, Jaish-e-Mohammed)가 배후를 자처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자살 폭탄 테러범이 파키스탄 국적자가 아니라, 카슈미르 현지 출신의 22세 청년 아딜 아메드 다르(Adil Ahmed Dar)였다는 사실입니다. 카슈미르의 급진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모디는 군에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2일 후인 2월 26일 새벽, 인도 공군 미라주 2000 전투기 편대가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해 발라코트의 JeM 훈련 캠프에 정밀 유도탄을 투하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타격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수부대의 지상 침투가 아니라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이었고, 통제선 인근이 아니라 파키스탄 본토 깊숙한 곳을 타격한 것이었습니다. 핵무장 국가 간에 공군력을 동원해 상대방 영토 깊숙이 폭격을 감행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비난단 중령과 60시간의 위기

다음 날 파키스탄이 반격에 나섰습니다. 양국 전투기 간의 공중전(Dogfight)이 벌어졌고, 인도 공군의 구형 미그-21(MiG-21) 전투기가 격추되었습니다. 조종사 아비난단 바르타만(Abhinandan Varthaman) 중령이 파키스탄군에 생포되는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핵 보유국 둘이 전면전 직전까지 간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압력과 모디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직면한 파키스탄 임란 칸(Imran Khan) 총리가 "평화의 제스처"라며 아비난단 중령을 60시간 만에 송환했습니다. 콧수염에 붕대를 감은 채 당당하게 인도 쪽 국경을 넘어온 아비난단 중령의 모습은 TV를 통해 인도 전역에 생중계되었고, 그는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 아비난단은 비르 차크라(Vir Chakra) 훈장을 받았고, 2022년 그룹 캡틴(Group Captain)으로 진급했습니다.

진실 공방,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

발라코트 공습의 실제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남았습니다. 인도 정부는 "수많은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지만, 로이터, AP 등 서구 언론과 유럽 위성 분석 기관 디지털 글로브(DigitalGlobe)의 위성 사진 분석은 "폭탄이 숲에 떨어져 나무만 쓰러졌다"고 반박했습니다. 파키스탄은 공습 다음 날 외국 기자단을 현장에 데려가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디에게 팩트는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도 국민들이 느낀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우리 전투기가 적의 안방까지 쳐들어갔다." 이 감정의 에너지를 자신의 권력으로 치환하는 것이 모디의 진짜 전략이었습니다.

안보가 선거를 집어삼키다

발라코트 공습은 2019년 총선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실업률 상승, 농촌 경제 침체, 화폐개혁의 후유증 등 모디 정부의 경제적 실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야당 국민회의당(INC)의 라훌 간디는 프랑스제 라팔(Rafale) 전투기 도입 비리 의혹을 파고들며 공세를 폈습니다. "초키다르 초르 하이(Chowkidar Chor Hai, 파수꾼이 도둑이다)!"

모디는 이 공격을 역이용했습니다. 자신의 트위터 아이디 앞에 'Chowkidar(파수꾼)'를 붙이고, "#MainBhiChowkidar(나도 파수꾼이다)"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수천만 명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SNS 이름 앞에 '초키다르'를 붙였고, 온라인은 온통 "나도 이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유세장에서 모디는 외쳤습니다. "우리는 적의 집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때린다(Ghar mein ghus ke marenge)!" 군중은 열광했습니다. 실업, 물가, 농민 부채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는 '국가 안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야당의 경제 실정 비판은 '반국가적 행위'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안보 내셔널리즘이라는 양날의 검

결과는 모디의 압승이었습니다. 2019년 총선에서 BJP는 2014년의 282석보다 많은 303석을 차지했습니다. 안보 내셔널리즘과 힌두 민족주의가 결합한 폭발적 시너지의 결과였습니다.

모디는 인도의 대외적 전략을 '수세적 방어'에서 '적극적 억제'로 전환시켰습니다. 우리 타격과 발라코트 공습은 군사적 효용성을 넘어, 14억 국민에게 "우리는 강대국이다"라는 심리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칼에는 양날이 있습니다. 안보를 명분으로 야당은 "파키스탄의 영웅이 되려는 자들"로 매도되었고, 비판적 언론은 "국가의 적"으로 몰렸습니다. 카슈미르의 무슬림 주민들에 대한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습니다. 안보 내셔널리즘은 인도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켜주는 갑옷이 되었지만, 동시에 인도 내부의 다양성과 민주적 공간을 압축하는 프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2025년 4~5월,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다시 한번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졌습니다. 카슈미르 파헬감(Pahalgam)에서 관광객 26명이 살해된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모디 정부는 인더스강 수계 조약(Indus Waters Treaty)의 사실상 중단, 외교관 추방, 영공·항구 봉쇄 등 2019년을 넘어서는 수준의 조치를 취했고, 양국 간 군사적 교전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듯했습니다. 이 사태의 전개는 제9장에서 다룹니다.

모디가 인도 정치에 도입한 '안보 내셔널리즘'이라는 도구는, 그가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가두기도 하는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한번 깨어난 대중의 보복 심리는, 지도자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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