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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제10장. 3연임과 2047년의 꿈
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제10장. 3연임과 2047년의 꿈
김경진
10.1 2024년 총선: 연립 정부 구성, 3연임
2024년 6월 4일 오후, 뉴델리의 BJP 본부. 대형 전광판에 개표 결과가 올라올 때마다 당사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240. 숫자가 거기서 멈췄습니다. 선거 전 모디 총리가 직접 의회에서 "BJP 단독 370석, NDA 400석 돌파"를 장담했던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갔을까요. 과반선 272석에 32석이 모자란 240석. 인도국민당(BJP, Bharatiya Janata Party)이 지난 10년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숫자였습니다.
선거 자체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민주주의 행사였습니다. 등록 유권자 9억 7천만 명. 투표소 105만 곳.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44일간 7단계에 걸쳐 치러진 이 선거에 6억 4,200만 명이 투표했습니다. 히말라야 해발 4,000미터 산골 마을에는 코끼리 등에 전자투표기(EVM)를 싣고 올라갔고, 라자스탄 사막에서는 낙타가 투표 장비를 날랐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전 국민이 한 달 반 동안 돌아가며 투표하는 셈입니다.
선거 전 분위기는 압도적이었습니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성공적 외교 무대,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 7~8%대의 고속 성장. 모디의 '강한 인도' 이미지는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아브키 바르 400 파르(이번에는 400석 돌파)." 선거 슬로건은 아예 개헌 가능선까지 넘보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출구조사들도 일제히 BJP의 압승을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개표함을 열자 반전이 펼쳐졌습니다.
충격의 진원지는 아요디아(Ayodhya)였습니다. 모디가 2024년 1월 직접 봉헌식을 주재한 람 사원이 있는 곳, 힌두 민족주의의 심장부인 파이자바드(Faizabad) 선거구에서 BJP 후보가 떨어진 것입니다. 30년에 걸친 힌두트바 운동의 숙원이 이루어진 바로 그 도시에서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습니다(제5장 5.1 참조).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주 전체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80석 중 BJP가 가져간 것은 33석에 불과했습니다. 2019년에는 62석을 휩쓸었던 곳입니다. 대신 야당인 사마즈와디당(SP)이 37석을 차지하며 약진했습니다.
무엇이 '모디 매직'의 효력을 약화시켰을까요.
전문가들은 화려한 거시경제 지표 뒤에 가려진 서민의 고통을 지목합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광범위한 빈곤, 높은 청년 실업률, 물가 상승이 BJP의 선거 야망을 좌절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7%가 '실업'을 최대 관심사로 꼽았습니다. GDP가 8.2% 성장했다는 숫자는 뭄바이의 고층 빌딩과 방갈로르의 IT 캠퍼스에서는 실감이 났지만, 비하르 농촌의 청년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야당 연합 '인디아(INDIA, Indian National Developmental Inclusive Alliance)' 블록의 선전이 결정적 변수였습니다. 라훌 간디(Rahul Gandhi)가 이끄는 의회당(Congress)은 52석에서 99석으로 거의 배로 늘었고, INDIA 블록 전체로는 234석을 확보했습니다. 라훌 간디가 밀어붙인 "BJP가 400석을 넘기면 헌법을 뜯어고칠 것"이라는 내러티브는 예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달리트(Dalit)와 기타후진계층(OBC) 유권자들 사이에서 "내 예약 할당제(reservation)가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번졌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할당제는 달리트와 OBC에게 교육과 공직 진출의 거의 유일한 사다리입니다. 그 사다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 앞에서, 람 사원의 감동은 힘을 잃었습니다.
결국 모디는 지역 정당들과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안드라 프라데시의 찬드라바부 나이두(Chandrababu Naidu)가 이끄는 텔루구 데삼당(TDP) 16석, 비하르의 니티시 쿠마르(Nitish Kumar)가 이끄는 자나타 달 연합(JD-U) 12석. 이 두 정당이 '킹메이커'가 되었습니다. NDA(국민민주동맹) 전체로 293석을 모아 가까스로 과반을 넘겼지만, 이것은 2014년 336석, 2019년 353석과는 결이 다른 승리였습니다.
6월 9일, 모디는 대통령궁 라슈트라파티 바반(Rashtrapati Bhavan)에서 세 번째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초대 총리가 1962년 달성한 이래 62년 만의 3연임. 역사적 기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누려왔던 '제왕적 총리'의 지위는 끝났습니다. 이제 그는 연립 파트너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지역적 요구—재정 배분, 인프라 투자, 일자리, 주(州) 권한 확대—를 수용해야 하는 '조정자'가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에 빗대면, 대통령 단독 국정 운영에서 여소야대 국회와의 협치로 전환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밀어붙이기의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합의를 거친 정책의 내구성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합의가 '정책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권의 배분'으로 흐를 것인가입니다. 모디 3기의 출발선은 바로 이 딜레마 위에 놓였습니다.
모디는 취임 후 당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의 "아픔(Tees)"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압승이 아닌 승리가 가르쳐준 교훈이었습니다. 짜이왈라 출신의 정치인이 74세의 나이에 세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하면서 직면한 것은,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 권력의 재정의였습니다.
10.2 모디 3기 개혁: 노동법 통합, GST 개편, FTA 체결, 세계 4위 경제
연립 정부라는 새로운 정치적 조건 아래서도, 모디 3기 정부의 경제 개혁 엔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거에서 드러난 '서민 경제의 고통'이라는 숙제가 개혁의 속도를 재촉했습니다. 모디는 2025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차세대 개혁 태스크포스(Task Force for Next-Generation Reforms)"의 구성을 발표하며, "개혁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신념의 첫 번째 시험대는 노동법이었습니다.
인도의 노동법은 '규제의 정글'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중앙정부 법률만 29개, 주 정부 규정까지 합치면 수백 개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1947년 독립 이후 시대별로 덧붙여진 법률들이 서로 모순되고, 같은 사안을 다른 법이 중복 규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근로기준법, 파견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보험법이 각각 20개씩 존재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을 늘릴수록 준법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 채용을 꺼리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작 보호가 필요한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역설이 벌어졌습니다.
모디 정부는 이 복잡한 법률들을 네 개의 노동 코드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했습니다. 임금 코드(Wages), 노사관계 코드(Industrial Relations), 사회보장 코드(Social Security), 산업안전·보건·근로조건 코드(OSH). 법안 자체는 이미 2기 때 의회를 통과했지만, 실제 시행은 정치적 고려와 노조의 반발, 주 정부들의 미온적 태도로 계속 미루어져 왔습니다. 3기 정부는 이 숙제를 밀어붙일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기그 워커(Gig worker)와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연금(PF)과 보험(ESI) 혜택을 확대하고, 여성의 야간 근무를 허용하며, 기업의 해고와 고용 절차를 투명하게 간소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려면,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고용을 감행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노이다(Noida)에 세계 최대 스마트폰 공장을 짓고, 현대자동차가 첸나이(Chennai)에서 연간 80만 대를 생산하는 것은 인도 제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노동법의 경직성은 여전히 투자를 결심하는 외국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입니다.
두 번째 축은 GST(상품서비스세, Goods and Services Tax) 체계의 고도화입니다. 2017년 도입된 GST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금"이라는 기치 아래 인도를 단일 시장으로 묶어낸 역사적 성과였습니다(제4장 4.4 참조). 주마다 제각각이던 간접세를 통일해 물류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세수 기반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복잡한 세율 구간(0%, 5%, 12%, 18%, 28%)과 빈번한 규정 변경은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모디 3기 정부는 이 세율 구간을 5%와 18% 두 개로 대폭 줄이는 방향의 개편을 추진했습니다. 일상 소비재와 의약품의 세율을 낮추고, 소형차, 건강보험, 생명보험 등에 대한 세율도 낮추거나 면제하는 감세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120만 루피(약 1,900만 원, 12 lakh rupees) 이하 소득에 대한 세금 면제도 시행했습니다.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려는 포석입니다.
세 번째 축은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의 확장입니다. 모디 정부는 보호무역과 전략적 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습니다. 2019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막판에 빠져나간 것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양자 협정에서는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UAE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2022년 5월 발효), 호주와의 경제협력무역협정(ECTA, 2022년 12월 발효)에 이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과의 무역경제동반자협정(TEPA)을 2024년 3월 서명하고 2025년 10월 발효시켰습니다. EFTA 측은 15년간 1,000억 달러의 대인도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영국과의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 체결도 타결되었고, EU와의 FTA 협상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모든 개혁의 목표는 하나의 숫자로 수렴합니다. 세계 4위 경제. IMF의 2025년 4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인도의 명목 GDP는 4조 1,870억 달러에 도달하여 일본(4조 1,860억 달러)을 근소한 차이로 추월했습니다. 2014년 모디 취임 당시 세계 10위였던 경제가 11년 만에 4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미국, 중국, 독일에 이은 네 번째 자리. 1인당 GDP도 같은 기간 1,438달러에서 2,880달러로 두 배 늘었습니다.
하지만 순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위를 지탱하는 산업의 질입니다. GDP 6%대 성장이 서비스업과 자본집약적 장치산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제조업이 고용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면, 인도는 '큰 나라의 큰 내수 시장'으로만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숫자는 올라갔습니다. 그 숫자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올라갔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10.3 비크싯 바라트 2047: 독립 100주년 선진국 진입 비전
20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렌드라 모디는 이 해를 향해 하나의 거대한 슬로건을 세웠습니다. 비크싯 바라트(Viksit Bharat). '발전된 인도', 즉 선진국 인도입니다. 그는 현재부터 2047년까지의 25년을 '암리트 칼(Amrit Kaal, 감로의 시대, 황금기)'이라 명명하며, 이 기간 동안 인도가 개발도상국의 껍데기를 벗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목표 수치는 야심 찹니다. GDP 30조~40조 달러. 1인당 소득 15,000~18,000달러. 빈곤률 5% 이하. 기대수명 80세 이상. 문해율 100%. 현재 인도의 1인당 소득이 약 2,880달러임을 감안하면, 22년 안에 5~6배를 높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연평균 7~10%의 실질 성장을 22년간 유지해야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한국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년간 연평균 8~9% 성장하며 이룬 '한강의 기적'과 비슷한 속도를 요구하는 셈입니다. 다만 한국은 당시 인구 3,000만~4,000만이었고, 인도는 14억입니다.
모디는 이 비전의 정신적 토대로 '5대 결의(판치 프란, Panch Pran)'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선진국 도약이라는 확고한 목표. 둘째, 식민지적 사고방식의 완전한 탈피. 셋째,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 넷째, 국가 통합과 연대. 다섯째, 시민의 의무 이행. 경제 수치만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재정립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프로젝트입니다. G20 정상회의에서 '인디아(India)' 대신 '바라트(Bharat)'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국호가 적힌 명패를 사용한 것은 이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비전의 물리적 토대는 인프라입니다. '가티 샥티(Gati Shakti)'로 불리는 국가 인프라 마스터플랜은 도로, 철도, 항만, 공항, 통신망 건설 계획을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통합하여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입니다. 16개 중앙 부처와 주 정부들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GIS 기반으로 연결하여, 도로를 깔았는데 다음 달에 다시 파서 가스관을 묻는 식의 비효율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모디는 지난 10년간 고속도로 건설 속도를 두 배로 높이고, 낡은 철도를 현대화했으며, 공항 수를 74개에서 149개로 두 배로 늘렸습니다. 2047년의 인도에는 뭄바이-델리 간 고속철도가 달리고, 스마트 시티들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이라는 청사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핵심 동력은 인구입니다. 인도는 2023년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되었습니다. 평균 연령 28세. 전 세계가 고령화로 신음할 때, 인도만이 향후 30년간 풍부한 젊은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거대 경제권입니다. 모디는 이 '인구 배당 효과(Demographic Dividend)'를 극대화하기 위해 청년을 비전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PM 비크싯 바라트 로즈가 요자나(PM Viksit Bharat Rozgar Yojana)'라는 1조 루피(약 160억 달러) 규모의 고용 계획을 발표했고, 3천만 명의 청년에게 취업 지원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교육 정책(NEP 2020)을 개혁하여 코딩, AI, 로봇공학 등 미래 기술 교육을 강화하고, 스타트업 인디아(Startup India)를 통해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도 청년 전략의 일환입니다.
에너지와 우주는 비전의 양 날개입니다. 모디는 2025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2047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10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10기의 신규 원자로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비화석연료 에너지 비중 50%라는 2030년 목표를 2025년에 조기 달성했다고 발표하며, 그린 수소와 태양광 분야에서의 세계적 리더십을 자임했습니다. 우주 분야에서는 독자 우주 정거장 '바라티야 안타릭시 스테이션(Bharatiya Antariksh Station)' 건설 계획을 세우고, 가가냐안(Gaganyaan)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제6장 6.4 참조). 300개 이상의 우주 스타트업이 위성 기술과 우주 탐사 혁신에 뛰어들었습니다. 2023년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 성공이 열어준 문이 민간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전이 정치적으로 유용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위대함으로 정당화"하는 데 장거리 목표만큼 좋은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이 수십 년에 걸친 구체적 산업 정책과 교육 투자의 누적으로 이루어졌듯, 비크싯 바라트도 슬로건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측정 가능한 중간 목표로 쪼개져야 합니다. 제조업 고용 비율, 교육 성취도, 행정 디지털화 수준, 기후 적응 역량. 이런 것들이 숫자로 따라붙지 않으면, 2047년이 가까워질수록 비크싯 바라트는 비전에서 허언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모디는 국민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퀀텀 점프를 원합니다." 그 점프가 14억 명 모두를 태우고 갈 수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10.4 남겨진 과제: 불평등 심화, 청년 실업, 제조업 정체, 민주주의 후퇴
화려한 숫자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습니다. 모디 시대 인도의 그림자는 네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불평등. 인도의 경제 성장은 'K자형'입니다. K자의 위쪽 획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다니(Adani), 암바니(Ambani) 같은 재벌 그룹은 항만, 공항, 에너지, 통신 등 국가 핵심 인프라를 장악하며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습니다(제5장 5.4 참조). 프리미엄 SUV, 고급 아파트, 명품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장이 그들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K자의 아래쪽 획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하르 농촌에서 하루 200루피(약 3,200원)에 일하는 농업 노동자, 뭄바이 다라비 슬럼에서 쪽방에 사는 일용직 가족. 옥스팜(Oxfam)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상위 1%가 국가 전체 부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모디 정부가 8억 명 이상에게 무료 식량을 배급해야 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그 성장이 얼마나 불균등한지를 보여줍니다. 무료 식량 프로그램은 선정(善政)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8억 명이 스스로 먹고살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청년 실업. 이것이 네 과제 중 제일 뼈아픈 것입니다. 인도의 15~29세 청년 실업률은 2025년 기준 약 14.9%입니다. 여성 청년의 경우 16.3%에 달하고, 케랄라주의 여성 청년 실업률은 44%에 이릅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왔는데 일자리가 없다. 하위직 공무원 1만 명 모집에 수만 명의 석사, 박사 학위 소지자가 몰리는 풍경은 인도에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국도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지만, 인도의 규모는 차원이 다릅니다. 매년 1,200만 명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옵니다. 한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가 매년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셈입니다. '인구 배당 효과'가 모디 정부의 자랑이지만, 배당은 자동으로 지급되지 않습니다. 교육과 기술 훈련이 산업의 수요와 맞물리지 않으면, 인구 배당은 '인구 재앙(Demographic Disaster)'으로 바뀝니다.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고전한 결정적 이유도 바로 이 청년들의 분노였습니다.
세 번째, 제조업 정체. 모디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외치며 제조업 GDP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제조업의 GDP 기여도는 2014년 약 17%에서 오히려 13~15%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삼성, 현대, 애플 협력사인 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에 공장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투자가 대규모 고용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동화와 기술 집약적 생산 방식 때문입니다. 로이 연구소(Lowy Institute)는 "인도의 GDP 성장이 고용 유발 효과가 적은 서비스업과 자본집약적 산업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합니다. FDI도 기대만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인도 중앙은행(RBI) 자체 데이터에 따르면, GDP 대비 FDI 비율은 2016년 1.7%에서 0.5%대로 급락했습니다.
인도가 '세계의 공장'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인프라 부족, 토지 수용의 어려움, 전력과 용수의 불안정, 복잡한 관료주의, 예측 불가능한 세무 행정. 이 모든 것이 동시에 풀려야 하는 연립방정식입니다. 인도의 전체 노동 인구 중 40% 이상이 여전히 저소득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구조적 전환이 얼마나 지체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네 번째, 민주주의 후퇴. 이 문제는 경제 지표로 측정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네 과제 중 제일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2025년 보고서에서 인도를 '부분적 자유(Partly Free)' 국가로 분류하며, 점수가 전년 대비 하락했다고 기록했습니다. V-Dem 연구소는 인도를 '선거 권위주의(Electoral Autocracy)' 국가로 분류합니다(제5장 5.3 참조).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세무 조사,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수사 기관 동원, 무슬림 소수자에 대한 배제적 정책과 혐오 발언. '고디 미디어(Godi Media)'라는 조어가 등장할 만큼 주류 언론의 정부 친화적 변질도 지적됩니다.
시민권법 개정(CAA), 카슈미르 자치권 박탈(370조 폐지), 아요디아 람 사원 건설. 이 세 가지는 힌두 민족주의의 핵심 의제이자, 동시에 인도 사회의 종교적 분열을 심화시킨 정책입니다. 14억 인구 중 2억이 넘는 무슬림이 소외감을 느끼는 사회가 과연 통합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인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입니다. 2024년 총선에서 당선된 543명의 하원 의원 중 무슬림은 24명뿐이었고, 이 중 NDA 소속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인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하원 의석의 5%도 채우지 못하는 현실은, 대표성의 위기를 숫자로 말해줍니다.
모디 시대의 인도는 속도와 규모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모든 사람을 태우고 갔는지, 그 규모가 모든 사람에게 닿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나뉘지 않는 사회에서, 성장은 결국 불안정의 연료가 됩니다.
10.5 한국 독자 시사점: 14억 인구 파트너의 전략적 가치와 리스크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에게 인도는 어떤 나라여야 할까요. '장밋빛 기회의 땅'도 아니고 '절망적인 혼돈의 나라'도 아닙니다. 인도는 기회와 리스크가 같은 속도로 커지는 나라입니다.
전략적 가치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은 한국 기업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분산해야 한다면, 14억 인구와 거대한 내수 시장, 그리고 28세의 젊은 평균 연령을 가진 인도를 대체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베트남은 인구 1억, 인도네시아는 2.7억. 규모에서 인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인도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제8장 참조). 현대자동차의 2024년 인도 증시 사상 최대 IPO, 삼성전자 노이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공장, K-9 자주포 '바지라(Vajra)'의 인도군 배치 등은 한국 기업이 인도 시장에서 쌓아온 신뢰의 결과물입니다. 모디 정부의 PLI(생산 연계 인센티브) 제도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한국의 제조 기술과 하드웨어 역량, 인도의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과 풍부한 인력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한국은 인구가 줄고 있고, 인도는 인구가 넘칩니다. 한국은 기술이 있지만 시장이 작고, 인도는 시장이 있지만 기술 기반이 약합니다. 퍼즐 조각이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외교적으로도 인도는 한국과 묘하게 닮은 딜레마를 공유합니다(제7장 참조). 미국의 핵심 파트너이면서도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하는 '전략적 자율성'의 외교. 쿼드(QUAD)에 참여하면서도 BRICS에도 이름을 올리는 양다리.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인도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이 공통된 딜레마는 양국이 서로의 외교적 공간을 넓혀주는 레버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습니다. 2025년 4월 카슈미르 파할감(Pahalgam)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과 그에 따른 인도-파키스탄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도 경제의 성장 서사가 언제든 안보 위기로 중단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보유국입니다. 이 지역의 안보 불안정은 한국 기업의 인도 투자에 대한 리스크 평가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입니다.
하지만 리스크를 직시해야 합니다.
인도는 '세계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실패하고 철수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벽은 예측 불가능한 행정입니다. 약속했던 인센티브가 소급 취소되거나,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막대한 세금이 부과되는 '조세 테러'에 가까운 사례가 보고됩니다. 전력 공급의 불안정, 용수 부족, 열악한 도로 상태 같은 기초 인프라 문제도 여전합니다. 주(州)마다 다른 법률 체계, 복잡한 토지 수용 절차, 관료주의적 인허가 과정. 모디 정부가 '레드 테이프(관료주의)'를 줄였다고는 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차갑습니다. '자립 인도(Atmanirbhar Bharat)' 정책이 수입 규제와 관세 장벽 강화로 작동할 때,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는 역풍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인도와 어떤 관계를 설계해야 할까요.
인도를 '수출 시장'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장기 파트너'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단기 수익을 기대하고 진출하면 실망합니다. 인도의 제도, 문화, 노동 환경을 깊이 이해하는 '인도 특화 전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개선 협상을 가속화하고, 한국 기업이 인도에서 공정한 환경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외교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현지화(Localization)를 넘어 현지 사회와의 공존(Co-existence)을 설계해야 합니다. 공장만 짓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교육, 위생, 환경 문제에 기여하는 기업 시민의 모습이 브랜드 신뢰도를 결정합니다.
모디 총리는 한국을 "경제 발전의 롤모델"로 여기며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습니다.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 "구자라트를 한국처럼 만들겠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짜이를 팔던 소년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을 고민할 때 눈에 들어온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이 우호적 분위기를 자산으로 활용하되, 감정에 기대지 않는 냉철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2047년, 독립 100주년의 인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디가 꿈꾸는 대로 30조 달러 경제의 선진국이 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빈부 격차와 종교 갈등에 시달리는 거대한 모순의 나라로 남아 있을까요.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인도는 늘 그래왔습니다. 눈부신 성취와 뿌리 깊은 모순이 한 몸에 공존하는 나라. 한국에게 중요한 것은 그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상호 이익의 접점을 찾아가는 지혜입니다.
거대한 코끼리와 나란히 걸으려면, 코끼리의 보폭과 습성을 이해하고 호흡을 맞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14억의 파트너와 함께 성장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다음 30년을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