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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에필로그: 짜이 한 잔의 거리
짜이왈라에서 총리까지
에필로그: 짜이 한 잔의 거리
김경진
델리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 뒷골목에 짜이왈라가 한 명 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양은 냄비의 찌그러진 각도와, 우유를 부을 때 그의 손목이 꺾이는 방향, 그리고 짜이 한 잔에 15루피를 받으면서 거스름돈 대신 건넨 웃음입니다.
나렌드라 모디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드나가르역 플랫폼에서 짜이를 팔던 소년. 이 사실을 모디는 좋아합니다. 선거 때마다 꺼내고, 유세장에서 울먹이며 말하고, 인도 전역의 짜이왈라들이 자기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짜이왈라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서사는 인도판 아메리칸 드림이고, 그것은 실제로 수억 명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코넛 플레이스 뒷골목의 그 짜이왈라는 총리가 되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도 15루피짜리 짜이를 팔 겁니다. 아들이 있다면 아들도 짜이를 팔거나, 운이 좋으면 우버 기사가 되겠죠. 모디의 인도에서 GDP는 세계 4위로 올랐습니다. 통합결제인터페이스(UPI)를 통한 디지털 결제 건수는 연간 2,280억 건을 넘어섰고, 세계가 그 시스템을 부러워합니다. 달에 탐사선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짜이왈라의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제가 이 책을 덮으며 남기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인도를 20년 넘게 드나들면서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모르는 것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모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10개의 장에 걸쳐 한 사람의 궤적을 따라갔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잡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2002년 구자라트 폭동 때 그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법원은 무혐의라고 했고, 반대편은 학살의 방조자라고 합니다. 진실은 아마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 '어딘가'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디 자신만이 알 겁니다. 어쩌면 그도 모를 수 있습니다. 권력이 오래 지속되면 기억도 편집됩니다. 이건 인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용산에서, 세월호에서. 국가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수십 년째 다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디를 판결하는 대신, 질문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그게 더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이태원에 가면 인도 식당이 있습니다. 해방촌 골목에도 있고, 동대문 근처에도 있습니다. 커리를 시키면 난(naan)이 나오고, 라씨를 시키면 망고 라씨가 나옵니다. 한국 사람들은 거기서 인도를 먹습니다. 맛있습니다. 분위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 주방에 서 있는 인도인 요리사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있나요. 그가 어떤 카스트 출신인지, 왜 한국까지 왔는지, 모디를 지지하는지, 가족은 어디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나요. 대부분 없을 겁니다. 저도 오래도록 그랬습니다.
여행이 기쁨만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것처럼, 한 나라에 대한 이해도 커리 한 접시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책이 그 커리 한 접시 너머에 있는 14억 명의 복잡한 사정을 조금이라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은 한 셈입니다.
한 가지 더. 한국과 인도의 관계에 대해서.
외교관들은 "특별 전략적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삼성은 노이다에 세계 최대 스마트폰 공장을 지었고, 현대차는 인도 주식시장 역대 최대 IPO를 기록했습니다. BTS를 따라 부르는 인도 청소년이 1,500만 명이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세계 2위랍니다. 숫자만 보면 장밋빛입니다.
그런데 저는 첸나이 외곽의 한국 기업 공장 근처에서 만난 인도인 노동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월급이 이전 직장보다 세 배라고요. 그러면서 정전이 하루 서너 번은 된다고, 마시는 물이 좀 그렇다고, 한국인 관리자가 가끔 소리를 지르는 게 서운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합니다. 불만을 이야기하면서도 웃습니다. 그 웃음을 낙천이라고 읽을 수도 있고, 체념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 사이에 2,000년 전 허왕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아유타에서 배를 타고 김해까지 왔다는 전설. 모디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꺼냈고, 문재인 대통령도 꺼냈습니다. 양국 정상이 만나면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전설이 외교의 윤활유가 되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윤활유만으로 엔진이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진짜 엔진은 첸나이 공장의 그 노동자이고, 노이다 공장의 조립 라인이고, 델리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스무 살짜리 학생이고, 서울 대림동에서 인도 식재료를 파는 가게 주인입니다. 이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쌓여서 양국 관계가 됩니다. 정상회담 사진보다 그 사람들의 하루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도의 궤적은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5년 4월,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관광객을 향한 총성이 울렸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치솟았습니다. 핵보유국 두 나라가 국경에서 대치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GDP 4위 경제와 달 탐사 성공이 만들어낸 상승 곡선은 한 번의 총성으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취약성까지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모디는 2047년을 말합니다. 독립 100주년. 선진국 진입. 비크싯 바라트(Viksit Bharat). 거창한 비전입니다. 그때 모디는 97세입니다.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인도는 있을 겁니다. 14억 명이 아침에 일어나 짜이를 끓이고, 기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저녁에 로티를 뜯으며 크리켓 중계를 보는 나라. 모디가 있든 없든, 그 일상은 계속될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때로는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아도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합니다. 치킨을 시켜 먹고 아이를 재웁니다. 국가는 그렇게 지속됩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비전이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의 반복되는 하루가 국가를 지탱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디라는 렌즈를 통해 14억 명의 나라를 들여다본 것이고, 그 나라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본 겁니다. 한국이라는 거울에 인도를 비추고, 인도라는 거울에 한국을 비춘 겁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항상 예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짜이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인도에서 짜이를 마시면 종이컵이 아니라 작은 토기잔, 쿨하드(kulhad)에 나오는 데가 아직 있습니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고 나면 잔을 땅에 내려놓습니다. 토기이니까 깨집니다. 그게 예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이 닿은 잔은 다시 쓰지 않는 것. 어떤 사람은 이걸 카스트의 잔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위생 관념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전통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쿨하드가 깨지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작고 건조한 소리. 뭔가 끝났다는 소리. 이 책도 여기서 끝입니다.
다 읽고 나면 잔은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다음에 인도 식당에 가시거든, 짜이 한 잔 시켜보십시오. 그리고 그걸 만든 사람의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거기서부터가 14억의 나라를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