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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샘 알트만 전기: 인공지능 혁명의 개척자
제1부: 다락방의 컴퓨터광에서 실리콘밸리의 킹메이커로
1.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김경진, 김경란
다락방의 컴퓨터광, 세상과 연결되다.
1985년 4월 22일, 시카고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 코니 깁스타인은 피부과 의사였고, 아버지 제리 알트만은 부동산 중개인이었습니다. 네 명의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난 샘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교외의 클레이튼으로 이사했습니다. 1989년, 네 살 때였습니다.
클레이튼은 미국 중서부의 전형적인 주택가였습니다. 조용한 거리, 잘 가꾸어진 잔디밭, 오래된 벽돌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런 동네였죠. 겉으로 보면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녁이면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탁구나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샘의 인생에 일어난 건 그가 여덟 살 때였습니다.
부모님이 선물해 준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 어린 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밖에서 야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 샘은 다락방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늦도록 다락방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았죠.
샘은 단순히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분해했습니다. 하드웨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나사를 하나하나 풀고, 부품을 들여다보고,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말입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코드를 입력하면 화면에 뭔가 나타나는 게 신기했습니다. 명령을 내리면 컴퓨터가 따라하는 게 마법 같았죠. 샘은 스스로를 "컴퓨터 너드"라고 불렀습니다. 친구들도 그를 그렇게 불렀고요. 말수는 적었지만 한 번 뭔가에 빠지면 레이저처럼 집중하는 아이였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 지역번호 체계를 이해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숫자를 세는 것도 어려워하는 나이인데, 샘은 미국 전역의 지역번호가 어떤 규칙으로 배정되는지 파악하고 있었죠. 숫자와 패턴, 시스템을 읽어내는 능력이 남달랐습니다.
샘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었습니다. AOL 채팅방에서 샘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익명으로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매킨토시 컴퓨터는 그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생명줄이었죠.
"AOL 채팅방을 발견한 건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다락방에서 보낸 무수한 밤들. 컴퓨터 화면 앞에서 코드를 입력하고, 인터넷을 탐색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던 시간들. 이 경험이 샘을 만들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끈기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요.
샘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다락방에 앉아 밤늦도록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아이였어요. 그때부터 지금 OpenAI까지 이어지는 직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인트루이스의 그 다락방이 없었다면, ChatGPT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어린 샘이 컴퓨터 앞에서 보낸 무수한 시간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 AI 혁명의 출발점이었던 셈이죠.
고등학교 시절 : 수구, 수영, 펜싱 그리고 포커
존 버로우스 스쿨이라는 사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레이드 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였습니다. 연간 학비가 3만 달러가 넘는,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었죠.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교육 철학으로 유명했습니다.
샘은 학교에서 여전히 "컴퓨터 괴짜"였습니다. 학교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었고, 수업 시간표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했습니다. 열다섯 살, 열여섯 살짜리가 말입니다. 친구들은 그를 "공부벌레"라고 불렀지만, 샘은 공부만 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수구를 열심히 했습니다. 수구는 물속에서 하는 격렬한 스포츠죠. 체력도 필요하고, 팀워크도 중요합니다. 샘은 수구 팀에서 뛰었고, 형제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방과 후면 포리스트 파크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했습니다.
펜싱도 했습니다. 펜싱은 순간적인 판단력이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빠르게 반응하고, 전략을 세워야 하죠. 샘이 나중에 비즈니스에서 보여준 빠른 의사결정 능력은 어쩌면 펜싱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친구들은 샘을 "친절하지만 엄청나게 집요한 친구"로 기억했습니다.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었죠. 컴퓨터 프로젝트든, 운동이든, 뭐든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샘은 평범한 십대가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대학생 수준이었고, 온라인 사업 경험도 있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통해 단련된 체력과 정신력도 있었고요.
샘에게는 집요함이 있었습니다. 한번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장애물이 있으면 30가지 다른 방법으로 돌파하는 끈기. 이 특성은 나중에 루프트를 창업하고, Y 컴비네이터를 이끌고, OpenAI를 만들 때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존 버로우스 스쿨 시절의 샘 알트만.
다락방의 컴퓨터광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진학, 그리고 운명적 선택
2003년, 열아홉 살의 샘 알트만이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스탠퍼드.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 Google, Yahoo, Hewlett-Packard, Instagram.. 수많은 기술 기업들이 스탠퍼드 기숙사와 강의실에서 탄생했습니다. 샘에게 스탠퍼드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연한 선택이었죠. 여덟 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온 아이였으니까요. 스탠퍼드의 CS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뛰어난 교수들, 최신 연구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샘은 스탠퍼드에서 단순히 코딩만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과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글쓰기 수업도 들었습니다. 인문학 수업도요. 친구들이 왜 컴퓨터 전공자가 그런 수업을 듣냐고 물으면, 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런 수업들이 CS 수업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OpenAI를 이끌면서 샘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했고, 경제학자이기도 했고, 정책 입안자이기도 했습니다. AI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이해하려면 기술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했으니까요.
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온갖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 주위에 있었다는 거예요."
물리학과 친구들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합니다. 우주의 본질에 대해 토론했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밤새 풀었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샘에게는 다른 "수업"이 있었습니다.
포커였습니다.
매일 밤 친구들과 포커판이 벌어졌죠. 샘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포커는 제 대학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강의에서보다 포커에서 더 많은 걸 배웠습니다."
무엇을 배웠을까요?
패턴 인식.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심리를 읽고, 다음 수를 예측하는 능력.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법. 리스크를 계산하고, 때로는 큰 판돈을 거는 용기. 감정을 통제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력.
샘은 말했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준 두 가지가 있어요. 포커와 엔젤 투자입니다. 둘 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2018년 한 팟캐스트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포커는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니지만, 세상과 비즈니스, 심리학, 리스크에 대해 배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스탠퍼드 2학년이 되던 해, 샘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놀랐습니다. 스탠퍼드를 중퇴한다고요? 세계 최고의 대학을 졸업장 없이 떠난다고요? 샘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저는 2학년이고, (지금 바로) 갈 겁니다."
Y 컴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이 투자를 주저하자 샘이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샘은 자신의 첫 스타트업인 루프트를 창업하기로 마음먹었고, 학교는 방해물일 뿐이었습니다.
폴 그레이엄의 파트너 제시카 리빙스턴은 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이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걸 바로 알았어요."
샘은 스탠퍼드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졸업장은 받지 못했지만, 훨씬 더 귀중한 것들을 얻었습니다. 포커에서 배운 의사결정 능력, 다양한 학문에서 얻은 폭넓은 시각,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한다"는 확신.
2017년,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는 샘에게 명예 공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샘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셈이죠.
스탠퍼드를 떠나면서 샘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건 과거예요. 나는 미래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정말로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AI가 작동하지 않던 시절: 앤드류 응 교수의 연구실
스탠퍼드 1학년과 2학년 사이 여름방학.
샘 알트만은 특별한 곳에서 일했습니다.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의 인공지능 연구실이었습니다.
앤드류 응은 누구일까요? 그는 AI 분야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Google Brain을 창립했고, Coursera를 공동 창업했고, 머신러닝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중 한 명이죠. 2000년대 초반, 그는 스탠퍼드 AI 연구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샘은 그 연구실에서 여름 내내 일했습니다. 열아홉 살 대학생이 최첨단 AI 연구를 접한 거죠.
문제가 있었습니다.
AI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AI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ChatGPT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AI는 꿈도 꾸지 못할 시절이었죠. 당시 AI는 간단한 작업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미지 인식? 형편없었습니다. 자연어 처리?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습니다. 데이터도 부족했습니다. 알고리즘도 원시적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작은 실험을 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 실패했습니다.
AI는 "주변부" 분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AI가 실제로 쓸모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샘은 달랐습니다.
그는 AI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흥미를 느꼈죠. 왜일까요?
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할 확률이 낮더라도, 성공한다면 가장 멋지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흥미로운 일이 될 거예요."
기대 가치(expected value)의 개념입니다. 포커에서 배운 거죠. 승률이 10%라도, 성공했을 때 보상이 엄청나다면, 그 판에 베팅할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샘은 연구실에서 AI 모델들이 실패하는 걸 봤습니다. 간단한 패턴도 인식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내놓고,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막막했습니다."
실험들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로봇 손으로 물건을 잡는 실험. 비디오 게임을 학습하는 AI. 다 잘 안됐습니다.
샘은 연구실을 떠났습니다. 루프트를 창업하러 갔죠. AI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샘의 마음 한구석에는 AI가 남아 있었습니다. 작동하지 않던 그 기술. 실패만 반복하던 그 실험들. 그 기억이 그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2010년대 초반, 뭔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IBM 왓슨이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습니다. Google 딥마인드의 AlphaGo가 바둑 세계 챔피언을 이겼습니다.
샘은 직감했습니다. "뭔가 큰 변화가 오고 있어요."
2015년 말, 그는 OpenAI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초기 OpenAI는 여전히 막막했습니다. 2016년 사무실에는 14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믿음과 방향, 확신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실행 계획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화이트보드 앞에서 토론했고, 논문을 읽었고,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처음에는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라는 아이디어는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디오 게임을 잘하는 AI를 만들어볼까 고민했습니다. 로봇 손 실험도 했습니다.
Nvidia CEO 젠슨 황이 직접 첫 번째 DGX-1 시스템을 배달해 줬습니다. 상징적인 순간이었죠. AI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샘 알트만의 AI 여정은 "작동하지 않던" 시절에서 시작됐습니다.
실패로 가득한 연구실. 아무도 믿지 않던 기술. 막막한 미래.
샘은 그 실패들 속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10년 후 ChatGPT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샘도 정확히는 몰랐을 겁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작동하지 않는 기술이라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작동할 거라고.
그리고 그는 옳았습니다.
스탠퍼드 AI 연구실의 그 여름이 없었다면, OpenAI도 없었을 겁니다. ChatGPT도, GPT-4도, 인류를 바꿀 AI 혁명도 없었겠죠.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샘 알트만은 AI가 작동하지 않던 시절을 경험했기에, AI를 작동시키는 법을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