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16장 알파폴드 혁명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인공지능의 아버지
16 알파폴드 혁명
김경란, 김경진
어 있던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과학계의 시선은 줌(Zoom) 화면 속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단백질 구조 예측 학술 대회인 CASP(Critical Assessment of Structure Prediction)의 제14회 결과 발표 현장이었습니다.
이 대 회는 1994년부터 시작된 생물 학계의 올림픽과도 같은 행사로, 실험으로 밝혀지지 않은 단 백질의 3차원 구조를 컴 퓨터로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는지를 겨루는 전장입니다. 주최 측인 존 몰트(John Moult) 교수가 화면에 그래프 하나를 띄웠습니다. 그 그래 프에는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조금씩 쌓아 올린 완만한 성장의 기울기가 그려져 있었고, 그 끝에는 갑작스럽게 수직으로 치솟은 하나의 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점 은 '알파폴드 2(AlphaFold 2)'였습니다. 몰트 교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50년 된 난 제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순간은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 램이 인간을 이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세상은 놀 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지만, 알파폴드가 생물학의 난제를 풀었을 때 과학자들 은 경이로움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이 순간 은 알파고 대국보 다 더 중요한, 그의 평생의 미션이 증명되는 찰나였습니다.
게임을 정복한 지능이 마침내 현실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인 생명의 비밀을 풀기 시작 한 것입니다. 서막은 2년 전인 2018년 CASP13 대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딥마인드는 '알 파폴드1' 을 들고 처음으로 이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물학계는 구글의 AI 연구소라 는 곳에서 온 이방인들을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생물학 적 지식이 부족한 컴퓨터 공학자들이 단백질의 복잡성을 이해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파폴드1은 43개 문제 중 25개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 위 팀이 단 3개 문제에서만 최고 점수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차이였습니다.
알파폴드1은 단백질의 거리를 이미지의 픽셀처럼 처리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마치 컴퓨터 비전이 고양이 사진을 인식하듯, 아미노산 서열 사이의 거리 지 도를 이미지처럼 학습하 여 구조를 유추해 낸 것입니다. 하지만 허사비스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승은 했지만, 알파폴드1의 정확도는 실 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GDT(Global Distance Test) 점수로 환산하면 약 60점대 수준으로, 대략적인 모양은 맞추지만 세부 적인 원자의 위치는 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허사비스는 팀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1등을 하려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 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알파폴드1의 코드를 완 전히 폐기하 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때 프로젝트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존 점퍼(John Jumper)입니다. 시카 고 대학에서 화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는 단백질 시뮬레이션에 깊은 조예가 있는 연 구자였습니다. 점퍼는 딥마인드에 합류한 후 알파폴드 팀을 이끌며 허사비스의 비전을 기술적으 로 구현 하는 사령관 역할을 맡았습니다.
허사비스가 "무엇을(What)" 풀어야 할지를 정의했다면, 점퍼는 "어떻게(How)" 풀지를 설계했습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상사와 부하 관계를 넘어 과학적 동반자로서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점퍼는 알파폴드1이 사용했던 이미지 인식 방식인 CNN(합성곱 신경망)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단백질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움직 이는 3차원 그래프 구조라는 것이 그의 통찰이었습니다. 2019년, 딥마인드 연구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텐션(Attention)' 메 커니즘 이라는 새로운 AI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주로 언어 번역에 쓰이던 기술이었습니다. 점퍼와 그의 팀은 아미노산 서열을 하나의 문장처럼 취급했습니다. 문장 속 단어들 이 서 로 문맥에 따라 관계를 맺듯이, 멀리 떨어진 아미노산들이 서로 어떻게 당기고 밀어내는지를 AI가 스스로 학습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생물학적 직관과 AI 엔지니어링이 완벽하게 결합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들 은 이를 ' 에보포머(Evoformer)'라고 명명했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AI에게 생물학 교과서를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AI가 스스로 생물학의 원리를 깨우치도록 하고 있 다"고 표현했습니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CASP14 대회를 몇 달 앞둔 시점까지도 새로운 모 델은 불 안정했습니다. 팀원들은 지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이때 허사비스는 특 유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밤늦게 연구실을 찾아가 연구원들 과 체스를 두거나 차를 마시며 그들의 멘탈을 관리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인류가 수십 년간 기다려온 발견의 문턱에서 있다"며 팀의 사기를 북돋 았습니다.
마침내 대회를 몇 주 앞두고 알파폴드2는 기하급수적인 성능 향상을 보이기 시 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CASP14의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알파폴드2는 100점 만점에 평균 92.4 점이라는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통상적으로 90점 이상이면 실험적 오차 범 위 내에서 실제 구조와 동일하다고 간주합니다. 즉, AI가 예측한 구조와 엑스선 결정 학이나 초 저온 전자 현미경 같은 수십억 원짜리 장비로 몇 년에 걸쳐 분석한 구조가 겹쳐 놓았을 때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뜻입니다. 특히 가장 어렵다고 알려 진 '자유 모델링' 카테 고리에서도 알파폴드2는 압도적인 정확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과가 발표되자 채팅창과 트위터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경악으로 도배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구조 생물학의 대가인 벤키 라마크리슈난(Venki Ramakrishnan) 은 "이것은 내 생애에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독일 막스 플랑 크 연구소의 안드레이 루파스(Andrei Lupas) 교수는 "이제 구조 생물 학은 알파폴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며 "이것은 지진과도 같은 변화"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평생 철학인 "지능을 풀어, 다른 모 든 것을 해결한다"는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는 첫 번째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훈련된 AI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과 생물학적 복잡성을 이해하고, 인간 지성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런던의 자택에서 줌으로 발표를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4살 때 체스판을 보며 느꼈던 지적 호기심이, 10대 때 게임을 개발하며 꿈꿨던 시뮬레이션의 가능성이, 그리고 성인
이 되어 신경과학과 AI를 융 합하려 했던 모든 노력이 이 하나의 정점으로 수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알파폴드2의 성공은 2024년 그와 존 점퍼가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되는 결 정적인 계기가되었습니다. 허사비스는 상보다 더 큰 보상은 이 도구가 가져올 미래의 변화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제 인류는 생명의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설명서를 손에 넣게 된 것입니다. 2억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 공개 알파폴드2가 CASP14에서 거둔 압승 은 이후, 데미스 허사비 스의 야망은 대회 우승 트로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딥 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될 때부 터 지켰던 철칙, 즉 "가장 강력한 기술은 가장 널리 쓰여 야 한다"는 신념을 실행에 옮길 준 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술을 독점하여 제약 회사에 라이선스를 팔거나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길도 있 었습니 실제로 많은 투자자와 기업가들은 그런 모델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허사비 스와 딥마인드 팀은 다른 선택을했습니다. 그들은 인류가 가진 생물학적 지식의 지 평을 단숨에 확 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21년 7월, 딥마인드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와 협력하여 '알파폴드 단 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AlphaFold Protein Structure Database)'를 전 세계에 무료 로 공개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 유전체(게놈)에 포함된 약 2만여 개의 단백질 구조를 공개하는 것으 로 시작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생물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의 엄청난 분량이었습니다.
과 거 한 명의 박사 과정 학생이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4~5년 동안 단백질 하나, 혹은 두 개의 구조를 규명했던 것과 비교하면, AI는 며칠 만에 인간의 모든 단백질 지도를 그려낸 셈이었습니다. 진짜 충격은 1년 뒤인 2022년에 찾아왔습니다. 딥마인드는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 트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알려진 단백질의 구조를 공개했습니다.
그 수는 무려 2억 개 가 넘었습니다. 식물, 박테리아, 동물, 곰팡이 등 과학이 이름을 붙인 거의 모든 생명체의 단백질이 포함되었습니다. 허사비스는 이를 두고 "생물학의 구글 어스(Google Earth)"라고 표
현했습니다. 우리가 구글 어스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골목길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제 과 학자들은 모니터 앞에서 클릭 몇 번으로 생명 현상의 가장 깊은 곳, 분자 수준의 기계를 3 차원으로 돌려가며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데이터베이스의 공개는 과학 연구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동굴을 탐험하던 과학자들에게 갑자기 동굴 전체를 비 추는 조명 스 위치가 켜진 것과 같았습니다. 전 세계 190개국에서 200만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생물학자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실험실의 벤치에서 파이 펫을 들고 씨 름하던 연구자들은 이제 알파폴드의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 고, 실험을 설계하 며, 실패의 확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되었습니다. 실질적인 응용 사례들은 즉각적이고 폭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 는 말라리아 백신 연구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팀은 수년간 말라리아 기생충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 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파폴드가 공개되자마 자 자신들이 연구하던 단백질의 구조를 검색했고, 단 몇 분 만에 수년간 찾아 헤매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새로운 백신 후보 물질을 설 계하는 단계로 즉시 넘 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AI가 어떻게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 한 자원을 과학자들에게 선 물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류의 골칫거리인데, 포츠머스 대학의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을 분해 하는 효소(PETase)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파폴드를 이용해 이 효소 의 진화 과 정을 추적하고,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도록 효소의 구조를 개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500년이 걸려야 썩는 플라스틱을 며칠 만에 분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허사비스가 꿈꾸던 "AI를 통해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비전 이 구체화된 사례였습니다. 항생제 내성 문제와 희귀 유전 질환 연구에서도 알파폴드는 필수적인 도구가되었습니다. 콜로라도 대학의 연구팀은 항생제 저항성 박테리아의 구조를 분석하여 새로 운 치료법을 모색했고, 노르웨이의 연구자들은 꿀벌의 면역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이 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멸종 위기 종을 보존하거나, 기후 변화에 강한 작물을 개발하는 농업 분야 에서도 알파폴드의 데이터는 씨앗이 되어 새로운 발견을 싹틔 웠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거대한 데이터의 공개가 가져올 파급력을 '디지털 생물학(Digital Biology)' 의 시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생물학이 이제 정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믿었습니다.
생명이란 결국 정보의 복잡한 처리 과정이며, AI는 그 정보를 해석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2억 개의 구조를 공개했을 때, 그 것은 인류에게 보 내는 선물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단백질의 모양을 아는 것을 넘어,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 고, 어떻게 신약이 되고, 어 떻게 질병을 고치는지 예측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합니다.” 이러한 성과는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되었습니다.
노벨 위 원회 는 알파폴드가 단순히 기술적으로 뛰어난 소프트웨어여서가 아니라, 전 세계 과 학자들에 게 강력한 연구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의 진보를 가속화했다는 공로를 높이 샀습니다. 허사비스와 존 점퍼는 이 도구를 사유화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과학 이 가진 본연의 가치 인 '지식의 공유와 확산'을 실리콘밸리의 방식이 아닌, 가장 고전 적이고 학술적인 방식으로 실현해 냈습니다. "생물학의 구글 어스"는 허사비스가 12세 때 던졌던 질문, "이 지능을 더 나은 곳에 쓸 수 없을까?"에 대한 가장 웅장한 대답이었습니다.
체스판 위의 64칸을 넘어, 우주 만큼이나 광 활한 생명의 미시 세계를 인류의 눈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이것은 한 천 재의 승리가 아니 라, 그 천재가 만든 도구를 통해 수백만 명의 과학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든, 진정한 의미의 '집단 지성의 승리'였습니다.
알파폴드 예측 구조(파란색)와 실험 구조(초록색) 비교

이 책이 잠시라도 당신 곁에 머물렀다면, 다음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후원해 주세요.
(자발적 후원 부탁 구좌 : 농협 302-1096-0948-81 예금주 : 김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