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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4장 손에 잡힐 듯한 평화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4장 손에 잡힐 듯한 평화
김경진
제4장 손에 잡힐 듯한 평화
4.1 오만의 중재와 제네바 3차 협상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오만 외무장관 바드르 빈 하마드 알부사이디는 워싱턴 D.C.에서 CBS 뉴스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전날 제네바에서 끝난 미국-이란 3차 간접 핵협상의 성과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행자 마거릿 브레넌이 물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결과에 불만족스럽다고 했는데, 외교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냐고. 알부사이디는 대답했습니다. "평화 합의가 우리 손에 닿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기나긴 외교적 여정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은 2025년 4월 12일에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첫 번째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미국 측에서는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이란 측에서는 압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대표로 나섰습니다. 양측은 같은 방에 앉지 않았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복도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셔틀 외교 방식이었습니다. 첫 회담 뒤 양측 모두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2차 회담, 무스카트에서 열린 3차 기술급 회담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설정한 60일 시한이 지나도 합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25년 6월 12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미국도 이란 핵시설에 대한 타격에 가담했습니다. 12일간의 전쟁이었습니다.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이라 불린 이 공습으로 이란의 주요 핵시설이 파괴됐고, 협상 테이블은 쪼개졌습니다. 2025년 하반기 내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이란 내부에서 왔습니다. 2025년 12월 말, 경제난에 분노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2026년 1월, 이란 보안군은 수만 명의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란 국민에게 계속 시위하라고 독려하면서 군사 행동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였습니다.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타격단이 이란 해역 인근에 배치됐습니다.
이 압박 속에서 뜻밖의 외교적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튀르키예,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지역 국가들이 미국과 이란 양측에 대화 재개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원래 튀르키예가 협상 장소를 제공하고 지역 국가들이 옵서버로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란은 튀르키예에 중재 레버리지를 주거나 다른 지역 국가들의 추가 요구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대신 오만을 택했습니다.
2026년 2월 6일, 무스카트. 미국과 이란의 간접 대화가 재개됐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대표단의 구성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위트코프와 함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해군 대장이 정복 차림으로 협상장에 나타났습니다. 아라비아해에 항공모함이 대기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핵 협상과 핵심 현안의 해결은 위협과 압박 없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공개 석상에서 못을 박았습니다.
2월 17일, 제네바에서 2차 회담이 열렸습니다. 장소는 콜로니(Cologny)에 위치한 오만 대사 관저였습니다. 간접 형식으로 진행됐고, 약 두 시간 반 동안 메시지가 오갔습니다. 회담 뒤 양측은 공식 성명 없이 떠났습니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우라늄 농축 수준과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해외 반출 문제.
미국의 요구는 명확했습니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가 정리한 내용은 이랬습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완전 해체,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논의, 지역 대리 무장세력 지원 중단, 그리고 자국민에 대한 처우 개선. 루비오는 "이 사람들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만, 시도는 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의 입장은 다른 평면 위에 있었습니다. 이란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알리 라리자니는 테헤란이 핵 문제만 협상하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미사일 프로그램과 지역 영향력은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란은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따른 평화적 핵 프로그램의 권리를 주장했고, 미사일 전력은 국가 방위의 핵심이라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2월 26일, 제네바 3차 회담. 이것이 전쟁 전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오전 세션에서 양측은 세 시간 동안 오만 중재 하에 메시지를 교환했습니다.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은 중간에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아이디어들이 오가고 있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미국 측이 우라늄 농축 제로를 요구하자 협상이 잠시 중단됐습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가 우크라이나 대표단과 별도 회동을 갖는 동안 휴식 시간이 이어졌고, 오후에 다시 재개됐습니다.
이란은 이 자리에서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관리 네 명이 전한 제안의 골자는 이랬습니다. 3년에서 5년간 핵활동과 우라늄 농축을 중단한다. 이후 지역 핵 컨소시엄에 가입하고, 의료 연구 목적의 1.5% 수준 저농축만 유지한다. 기존의 고농축 우라늄(60% 순도 460킬로그램) 비축분은 단계적으로 희석한다. IAEA 사찰관의 모니터링 접근을 허용한다. 이전에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의 해외 반출을 '레드라인'이라고 선언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양보였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재적 합의의 주요 요소들을 식별하고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슈 해결 방법에 대해 최소한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습니다." 양측은 비엔나의 IAEA 본부에서 기술급 후속 협의를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날짜는 3월 2일 월요일로 잡혔습니다.
알부사이디는 회담 뒤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워싱턴에서 JD 밴스 부통령을 만난 뒤 CBS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가 전한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란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절대로 보유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바마 시절의 옛 합의에도 없던 내용입니다." 농축 여부보다 비축 제로가 핵심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농축을 하든 안 하든, 비축할 수 없으면 폭탄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
알부사이디는 90일 안에 기존 비축분 처리, 검증 체계 구축, 사찰 접근 확보를 모두 완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우리가 외교에 필요한 공간만 허락한다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 인터뷰가 방영된 시각, 페르시아만에는 항공모함 두 척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어 제럴드 포드 타격단이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4.2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밀 참석
2026년 3월 17일, 가디언(The Guardian)이 폭탄 같은 기사를 냈습니다.
제네바 3차 회담에 영국의 국가안보보좌관 조너선 파웰(Jonathan Powell)이 비밀리에 참석해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 곳의 독립적 소식통이 그의 참석을 확인해줬습니다. 파웰은 콜로니의 오만 대사 관저에서 자문 역할로 회담 건물 안에 있었고, 영국 내각부(Cabinet Office) 소속 기술 전문가를 동행했습니다.
파웰의 참석 배경에는 미국 협상단의 역량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회담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전직 관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는 미국 기술팀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를 자신들의 기술 전문가로 활용했는데, 그것은 그로시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너선 파웰이 자기 팀을 데려온 겁니다."
파웰의 평가는 낙관적이었습니다. 서방 외교관들과 전직 관리들은 가디언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조너선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이란이 아직 거기까지 다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엔의 핵시설 사찰 문제에서 간극이 남아 있었습니다." 영국 팀은 이란이 내놓은 제안에 놀랐습니다. 완성된 합의는 아니었지만, 진전이었고, 이란의 최종 제안일 가능성도 낮았습니다. 영국 측은 제네바에서 이뤄진 진전을 바탕으로 다음 라운드, 즉 3월 2일 비엔나 기술 협의가 당연히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영국 관리들이 인상 깊게 본 점이 있었습니다. 이란이 이번 합의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겁니다. 2015년 핵합의(JCPOA)와 달리 시한(sunset clause)이 없는,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이 기한 없이 유지되는 구조를 이란이 수용할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디언 기사에서 가장 파장이 컸던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한 소식통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위트코프와 쿠슈너를, 대통령을 전쟁으로 끌고 간 이스라엘의 자산(Israeli assets)으로 봤습니다." 위트코프의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공식 발언들이 기본적인 오류로 가득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습니다. 쿠슈너가 회담 도중 떠났는데, 이란 측에 트럼프가 합의된 내용을 환영할 것이라는 인상을 줬는지, 아니면 미국 협상단 스스로가 트럼프를 전쟁 대신 외교로 설득하려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증언은 엇갈렸습니다.
가디언 보도 직후, 다우닝가 10번지의 대변인은 부인에 나섰습니다. "이 협상은 미국과 이란 간의 양자 협상이었으며 오만이 중재했습니다. 조너선은 제네바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고 관저 내 회담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미묘한 언어의 기술이었습니다. 파웰이 "회담 자체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같은 건물 안에서 자문 역할을 했다는 보도를 직접 반박하지는 못했습니다.
파웰의 참석이 밝힌 것은 외교적 실패의 깊이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키어 스타머 총리 밑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지지를 거부한 배경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영국 관리들은 이란의 미사일이 유럽을 위협한다는 증거도,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했다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적 선택지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이 영국의 판단이었습니다. 파웰은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길이 폭격으로 막힌 것은 파웰이 그 건물을 떠난 지 48시간도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4.3 트럼프의 10일 최후통첩과 협상의 결렬
제네바의 외교관들이 합의문 초안을 다듬고 있을 때, 워싱턴에서는 다른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2026년 2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첫 회의에서 이란에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10일에서 15일 안에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다음 날인 2월 20일, 트럼프는 기자들 앞에서 다시 못을 박았습니다. "합의를 하든지, 아니면 그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겁니다. 시한은 확정입니다."
10일. 외교에서 10일은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핵 프로그램의 기술적 검증, 농축 수준의 조정, IAEA 사찰 체계의 설계, 제재 완화의 범위와 일정. 이 중 어느 하나도 10일 안에 결론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2015년 JCPOA 협상은 2년이 걸렸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최후통첩의 시한은 IAEA 이사회가 비엔나에서 소집되는 3월 2일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이사회는 이란에 대한 새로운 비난 결의안을 검토할 예정이었습니다. 2025년 6월에도 IAEA 이사회의 이란 비난 결의가 나온 지 24시간 안에 이스라엘이 공격을 개시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관리들은 IAEA 결의가 군사 개입의 법적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시사했습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최후통첩이 협상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려면, 이란 내부의 역학을 봐야 합니다. 2월 17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트럼프가 제시한 협상 조건을 거부하며 "트럼프가 이슬람공화국을 무너뜨릴 능력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미 해군을 격침시킬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혁명수비대(IRGC)는 2월 초 최신 탄도미사일 호람샤르-4의 시험 발사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였습니다. IRGC 정치 부사령관 야돌라 자바니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군사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미국 측의 요구 조건은 점점 가혹해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워싱턴은 이란의 3대 핵시설인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모든 잔여 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할 것. 합의에 시한을 두지 않을 것. 미국은 합의 초기에 제한적인 제재 완화만 제공하고, 이란이 장기간 이행할 경우 추가 완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란 국영 IRIB TV는 이란 대표단이 농축 우라늄의 해외 이전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메네이의 선임 고문 알리 샴카니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습니다. 핵심 문제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 방지라면, 이란은 그것을 보장하는 방안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그러나 트럼프가 이란 핵 프로그램 전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이 간극이 어떤 식으로 충돌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2월 26일 제네바 회담에서 이란이 자체 제안을 제출한 직후, 이란 언론은 미국이 "제로 농축"과 60% 농축 우라늄 전량의 미국 인도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일시 중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 외교관들은 로이터에 "미국이 핵 문제와 비핵 문제를 분리해 접근한다면 합의 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핵만 논의하자는 이란의 요구. 미사일과 대리세력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 이 평행선은 2025년 4월 첫 회담부터 단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차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오만 중재자와 이란은 낙관적이었습니다. 알부사이디는 "상당한 진전"을, 아라그치는 "잠재적 합의의 주요 요소를 식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측은 실망한 채 제네바를 떠났습니다. 보도들은 트럼프가 회담 경과에 불만을 품었으며, 이것이 2월 28일 공격의 무대를 깔았다고 전했습니다.
2월 25일, 트럼프는 미 의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 재개를 언급하며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미국과의 "역사적" 합의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한쪽은 전쟁을 예비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평화를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2월 26일 회담이 끝난 뒤, 비엔나에서의 기술급 후속 협의가 3월 2일로 잡혔습니다. 알부사이디는 "각국 수도와 협의한 뒤 곧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월 27일 밤, 알부사이디가 JD 밴스 부통령을 만나고 CBS 인터뷰를 녹화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대에, 이란 주재 외국 대사관들이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란을 "부당한 억류 지원국(State Sponsor of Wrongful Detention)"으로 지정했습니다. 방위 전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원래 일주일 전에 공격을 개시할 예정이었으나 연기한 상태였습니다.
오만의 외교관이 CBS 스튜디오에서 "평화가 손에 닿는 거리"라고 말하는 동안, 중부사령부에서는 마지막 작전 브리핑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방위 전문매체 디펜스 업데이트에 따르면, 2월 27일 밤 알부사이디가 밴스 부통령을 만난 바로 그 즈음에, 오만 외무장관은 이란이 농축 우라늄 비축 제로와 IAEA의 완전한 검증에 동의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트럼프는 중부사령부에 최종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동부시간 오후 3시 38분의 "노 어보트(No Aborts, 작전 중단 불가)" 명령이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테헤란 시각 오전 7시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이스라엘 측 작전명은 '포효하는 사자(Operation Roaring Lion)'였습니다. 트럼프는 동부시간 새벽 2시에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올린 8분짜리 영상으로 공격을 발표했습니다.
첫 12시간 동안 약 900회의 미국 공습이 집행됐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작전을 수행해 약 200대의 전투기가 이란 서부와 중부의 약 500개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습니다. 24시간 안에 총 타격 목표는 1,000개를 넘었고, 48시간 만에 1,250개를 초과했습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관저가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3월 1일 새벽, 이란 국영매체가 하메네이의 사망을 발표했습니다. IRGC 계열 파르스 통신은 하메네이의 딸, 사위, 손주, 며느리 자흐라 하다드아델도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40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국방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 국방회의 사무총장 알리 샴카니를 포함한 군 수뇌부 다수가 사망했습니다. CBS 뉴스에 따르면, 첫 공습으로 이란 관리 40명이 사망했다는 정보 당국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경악합니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협상이 또다시 훼손됐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이익도, 세계 평화의 대의도 이것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또다시'라는 한 단어에 오만의 좌절이 응축돼 있었습니다. 2025년 6월에도 6차 회담이 잡혀 있었는데, 그 직전에 이스라엘이 공격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엔나 기술 협의가 3월 2일로 잡혀 있었는데, 그 이틀 전에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외교가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에 군사 행동이 끼어드는 패턴. 그것이 두 번 반복됐습니다.
위트코프는 공격 직후인 3월 2일, 이란이 제네바에서 우라늄 농축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며 미국의 제로 농축 제안을 거부했고, 심지어 60% 농축 우라늄 460킬로그램으로 핵폭탄 11개를 만들 수 있다고 자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 협상단이 이란의 제안을 오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란이 수년간 농축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한 것, 그리고 미국의 핵연료 공급 제안을 이란이 왜 신뢰하지 못하는지를 미국 측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커먼드림스에 실린 분석은 알부사이디의 CBS 출연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공개 석상에 나선 것은 미국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트럼프가 전쟁을 택한 그 순간, 평화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손에 닿는 거리. 그 거리를 재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알부사이디는 90일이면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파웰은 한 라운드만 더 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비엔나 기술 협의는 3월 2일로 잡혀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2월 28일 새벽, 페르시아만 상공에 B-2 스텔스 폭격기가 날아들었을 때, 비엔나 회의까지 남은 시간은 48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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