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11장 통행료 국가의 탄생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11장 통행료 국가의 탄생
김경진
제11장 통행료 국가의 탄생
11.1 이란 의회의 통행료 법제화 추진
2026년 3월 26일 오전, 테헤란. 이란 이슬람의회(마즐리스)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의 회의실에 의원 열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안건은 하나였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상업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 반관영 파르스(Fars) 통신과 타스님(Tasnim) 통신이 동시에 이 소식을 타전했을 때, 런던과 뉴욕의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화면을 두 번 확인해야 했습니다. 자연 해협에 통행료를 매기겠다는 국가가 역사상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호르무즈 해협 신규 관리 계획안'이었습니다. 시민위원회 위원장 모하마드레자 레자이 코치(Mohammadreza Rezai Kouchi) 의원이 주도했고, 위원회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법안의 골격은 여덟 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해협 내 안보 조치의 법적 근거 마련, 선박 항행 안전 확보, 해양 환경 오염 방지, 이란 리알(Rial)화 기준 통행료 부과 제도 신설, 미국 및 이스라엘 국적 선박과 관련 화물의 통행 전면 금지, 이란 국가 및 군의 주권적 역할 명문화, 오만과의 공동 관리 협력 체계 구축, 대이란 일방적 경제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의 선박 통행 제한.
이 법안이 하루 만에 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법안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뒤늦게 법전에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월 초부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는 케슘 섬(Qeshm)과 라라크 섬(Larak) 사이에 사실상의 검문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은 IMO 식별번호, 화물 목록, 승무원 명단, 선박의 실질적 소유 구조, 최종 목적지를 혁명수비대 연계 중개인에게 제출해야 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선박에는 항로 코드와 혁명수비대 고속정의 호위가 부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호위의 대가가 선박 한 척당 200만 달러였습니다.
법안이 공식화하려는 것은 바로 이 시스템이었습니다.
레자이 코치 위원장은 국영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 감독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통행료 징수를 통한 수입원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마디를 보탰습니다. "호르무즈 해협도 하나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고 있고, 선박과 유조선이 우리에게 통행료를 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의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 위원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이란 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의 동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서 통행료를 받아야 합니다."
전쟁 비용의 청구서. 이것이 법안의 진짜 이름이었습니다.
2월 28일 개전 이후 26일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은 이란의 군사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했습니다. 핵 시설, 미사일 기지,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0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글을 올려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유정, 하르그 섬, 담수화 시설을 폭파해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하르그 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 이상을 처리하는 심장부입니다.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은 이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기반 시설입니다.
이란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석유 수출 인프라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이란은 석유를 수출하는 대신 석유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 자기 석유를 팔 수 없다면, 남의 석유가 지나가는 문 앞에 톨게이트를 세우겠다는 것. 전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익 모델이었습니다.
법안이 위원회를 통과한 날, 해상 정보 분석업체 윈드워드(Windward)의 데이터는 하나의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개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상업 통행량은 95% 감소했습니다. 3월 15일부터 일주일간 AIS(선박자동식별장치)를 켠 채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6척.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아르세니오 도밍게스(Arsenio Dominguez)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해협 양쪽에 약 2,000척의 선박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는 그보다 많은 숫자를 보도했습니다. 페르시아만 안팎에 발이 묶인 선박의 수가 3,200척에 달한다고.
이 선박들은 이란의 통행료 청구서가 확정되기만을 기다리며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는 3월 셋째 주까지 26척의 선박이 혁명수비대의 '톨부스' 시스템 아래 사전 승인된 항로를 따라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중 최소 2척은 위안화(Yuan)로 통행료를 지불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인 역할을 맡아 결제를 처리했다는 것이 로이즈 리스트의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법안은 이제 의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의 검토, 그리고 대통령의 서명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표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혁명수비대의 즉흥적인 갈취 행위는 이란 국내법에 기반한 영구적인 제도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 법안에는 한 가지 교묘한 장치가 숨어 있었습니다. 통행료의 납부 통화를 달러가 아닌 이란 리알화로 지정한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 제재로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네트워크에서 퇴출된 이란으로서는, 달러 결제 시스템 바깥에서 자체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통행료를 리알로 받으면, 해운사들은 제3국의 우회 채널을 통해 리알을 매입해야 하고, 이는 폭락을 거듭하던 이란 화폐의 가치를 떠받치는 효과를 냅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내수 경제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셈입니다.
실제 현장에서의 결제는 리알이 아닌 위안화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법안의 문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이란의 이중 전략을 보여줍니다. 법적으로는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금융 인프라에 기대는 것. 달러 패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도전의 도구로 위안화를 쓰는 것.
과거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에 반발하여 이란 의회 일각에서 호르무즈 통행료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토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폐기되었습니다. 전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봉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수비대가 해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6년은 달랐습니다. 해협은 닫혀 있었고, 기뢰가 깔려 있었고, 유조선이 불타고 있었고, 2,000척의 선박이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법안은 현실을 따라잡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11.2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첫 공개 성명
2026년 3월 12일, 전쟁 13일째. 이란 국영방송(IRIB)의 뉴스 앵커가 원고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검은 터번을 쓴 남자의 정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음성도, 영상도 없었습니다. 사진과 앵커의 낭독뿐이었습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 56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첫 공습에서 아버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어머니, 부인, 여동생, 조카, 매형을 잃은 사람. 3월 9일 전문가회의(Assembly of Experts)에 의해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사람. 선출 소식을 자신도 국영 TV를 통해 알았다고 말한 사람.
그가 살아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3월 11일, 모즈타바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일한 공습에서 다리를 다쳤으며, 부상의 정도는 아직 파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다리를 절단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돌았습니다. 성명이 정말 그의 것인지, 아니면 측근들이 작성한 것인지를 놓고 서방 정보기관들의 분석이 갈렸습니다.
성명의 진위와 관계없이, 그 내용은 세계 경제의 궤적을 바꿔놓았습니다.
앵커가 읽어 내려간 문장들 가운데 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지렛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계속 사용되어야 합니다(The lever of blocking the Strait of Hormuz must undoubtedly continue to be used)."
이 한 문장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분이었습니다. 유가가 즉각 반응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성명 직후 유가는 추가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모즈타바의 성명은 아버지에 대한 짧은 추모로 시작했습니다. "순교 후 그분의 시신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힘의 산이었고, 그분의 건강한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이란 국민의 인내와 용기를 칭송하고, 군의 "강력한 타격으로 적의 길을 막은" 전사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핵심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약속합니다. 우리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의도하는 복수는 최고지도자의 순교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적에 의해 순교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복수의 대상입니다."
그는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적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것입니다. 적이 거부한다면, 우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만큼의 재산을 가져갈 것이고,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같은 규모의 재산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리고 호르무즈가 나왔습니다. 해협의 봉쇄는 일시적인 전술이 아니라 영구적인 지렛대라는 선언. 미군 기지의 즉각 폐쇄 요구. "그 기지들을 하루빨리 폐쇄할 것을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안보와 평화를 제공한다는 주장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지가 폐쇄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경고.
성명은 확전의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적이 경험이 적고 극도로 취약한 다른 전선을 여는 것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그것들을 가동할 것입니다."
수판 센터(The Soufan Center)의 분석은 이 성명의 성격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모즈타바가 호르무즈를 세계 경제의 동맥이 아니라 이란의 국가 안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 동시에 정치적 해결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는 것. "이것은 전쟁이고, 이란은 계속 싸울 것이지만, 전쟁을 멈출 책임은 상대편에 있다"는 메시지였다고 수판 센터는 평가했습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안보학 강사 롭 가이스트 핀폴드(Rob Geist Pinfold)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했을 법한 것, 그러니까 새 최고지도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수사학의 변화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듣는 것은 기존 입장의 배가(倍加)입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란 정치에서 오랫동안 '은둔의 인자'였습니다. 공식적인 정부 직책도, 종교적 고위직도 맡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이력은 막후에 있었습니다. 혁명수비대 및 강경파 민병대 바시즈(Basij)와의 긴밀한 관계. 2009년 녹색 운동(Green Movement), 그러니까 부정선거 규탄 시위 당시 유혈 진압의 막후 지휘자라는 평판. 서방 정보기관들이 제기한 유럽 내 수천억 원대 차명 부동산 의혹. 그는 권력의 실체를 가리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통행료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외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내적인 권력 역학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즉위한 새 최고지도자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혁명수비대의 충성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석유 수출 대금이 말라붙고,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군부의 월급과 작전 비용을 댈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직접 거두는 주체는 혁명수비대입니다. 징수된 현금은 정부의 공식 예산을 거치지 않고 혁명수비대의 작전 기금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모즈타바는 "이 지렛대"를 혁명수비대에 위임함으로써, 충성의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서방에 대한 경제적 인질극의 선포. 대내적으로는 군부를 향한 약속. 나를 따르면, 마르지 않는 수입원을 쥐여주겠다.
알자지라의 중동 분석가 자이돈 알키나니(Zeidon Alkinani)는 이 구조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성명이 무장 저항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 개혁, 국가 건설, 그리고 일반 이란인들에게 중요한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성명이 발표된 같은 날,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습니다. 최고지도자의 성명과 대통령의 발언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있었습니다. 모즈타바는 결사항전. 페제시키안은 조건부 협상. 이란 내부의 권력 투쟁이 전쟁의 방향을 놓고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란의 헌법 구조에서 최종 결정권은 최고지도자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은 집행자입니다. 모즈타바의 성명이 공식적인 국가 방침이었고, 페제시키안의 발언은 그 방침의 테두리 안에서의 유연성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키스탄을 중재자로 내세워 이란에 전달한 15개 항목의 종전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자유 통행 보장"이었습니다. 이란의 응답은 모즈타바의 성명에 담겨 있었습니다. 해협은 닫힌 채로 둔다. 지렛대는 계속 쓴다. 강경파 일간지 카이한(Kayhan)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이란의 종전 전제조건으로 '중동 내 모든 미군 철수'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의 국제적 공식화'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전 협상에서 이란이 요구한 것은 제재 완화와 평화적 핵 기술의 권리 인정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은 요구 목록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새로운 요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봉쇄가 예상보다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CNN의 분석대로, "영향의 규모가 테헤란의 야망을 키웠습니다."
11.3 월 6억에서 8억 달러의 잠재 수입
숫자부터 보겠습니다.
평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대형 상선은 하루 약 120척에서 140척이었습니다. 이 선박들이 실어 나르는 원유와 석유 제품은 하루 2,000만 배럴. 여기에 카타르에서 출발하는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이 더해집니다.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5분의 1, 전 세계 LNG 교역의 4분의 1이 이 수로를 지나갑니다.
이란이 선박 한 척당 부과하는 통행료는 200만 달러(약 30억 원)입니다.
CNN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동한다면, 이를 운반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은 약 10척입니다. 척당 200만 달러이면 하루 2,000만 달러. 한 달이면 약 6억 달러. LNG 운반선까지 포함하면 한 달 8억 달러를 넘길 수 있습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한층 과감한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하루 120척의 선박이 척당 200만 달러를 내면 연간 1,000억 달러(약 150조 원). 이란 GDP의 20~25%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3,200척이 밀린 통행료를 한꺼번에 내고 해협을 빠져나간다면, 일시불로 64억 달러(약 9조 6,000억 원)가 이란의 손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선전용입니다. 전쟁 중에 하루 120척이 통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3월 말 기준으로 해협의 통행량은 평시의 5%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척당 200만 달러라는 금액 자체가 전쟁 직후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최고조에 달한 가격이고, 장기적으로 제도가 안착되면 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2023 회계연도에 사상 최고치인 94억 달러의 통행료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하루 약 50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며, 세계 무역의 12%가 이 운하를 거칩니다. 선박당 평균 통행료는 약 40만 달러. 이 수입은 이집트 국가 재정의 핵심 기둥이자 외환보유고의 원천이었습니다. (2024년에는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으로 수입이 40억 달러로 급감했지만, 이는 예외적 상황입니다.)
이란의 의원들이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끊임없이 인용한 사례가 바로 수에즈였습니다. "수에즈 운하에서 선박들이 통행료를 내듯,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는 대가로 비용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입니다. 1859년에 착공해 10년간 건설했고, 이후 160년 이상 유지 보수와 준설을 계속해왔습니다. 2015년에는 새로운 수로를 추가로 개통했습니다. 운하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통행료 징수에는 경제적 명분이 있습니다. 건설 비용의 회수, 유지 보수 비용의 충당.
호르무즈 해협은 자연이 만든 바다입니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34킬로미터. 이란이 한 일은 해협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해협을 막은 것입니다. 기뢰를 깔고, 유조선을 공격하고, 고속정과 대함 미사일로 위협한 뒤, "우리가 보안을 제공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화범이 불을 지른 뒤 소방 서비스 비용을 청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CNN은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전쟁 이후 해협의 통행량이 평시의 절반인 하루 50~60척으로 회복되고, 척당 통행료가 수에즈 수준인 40만 달러로 조정된다면, 이란은 매달 6억에서 8억 달러의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있습니다. 연간 72억에서 96억 달러. 수에즈 운하의 정상 연수입(94억 달러)과 거의 같은 규모입니다.
이 비교가 보여주는 것은 이란의 야망의 크기입니다. 이집트가 160년간 운하를 건설하고 유지하며 쌓아올린 수익 구조를, 이란은 전쟁과 무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선례가 있습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반대로 물러났고, 이집트는 운하의 통제권을 영구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이후 70년간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가장 안정적인 외화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이란이 원하는 것은 호르무즈의 수에즈화입니다. 전쟁을 통해 해협의 통제권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종전 협상에서 그 통제권의 국제적 인정을 받아내고, 법제화를 통해 통행료 징수를 영구적인 제도로 고착시키는 것. 이란의 5대 종전 조건 가운데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권의 국제적 인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컬럼비아대학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의 선임연구원 카렌 영(Karen Young)은 CNBC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톨게이트를 세우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이런 조치를 수용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선박들은 이미 통행료를 내고 해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이집트의 선박들도 이란이 '우호국'으로 분류한 목록에 포함되어 통과를 허용받고 있었습니다. 제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그 효과는 동일합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은 호르무즈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통행료 부과로 인한 해상 운임 폭등과 보험료 급등은 원유 도입 단가에 고스란히 전가되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공급 부족 규모가 8억 배럴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65달러를 넘겼습니다.
11.4 국제법과 현실의 간극
1429년, 덴마크 왕 에리크 7세는 외레순드 해협(Øresund)을 지나는 모든 외국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헬싱외르(Helsingør)의 크론보르 성(Kronborg Castle),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무대로 삼은 바로 그 성에서 선박들은 닻을 내리고 순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양안의 대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이 해협 통행료, 일명 '외레순드 관세(Sound Dues)'는 16~17세기 덴마크 국가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했습니다. 428년간 지속된 이 통행료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 프로이센 등 유럽 열강의 분노를 샀고, 여러 차례의 전쟁 원인이 되었으며, 마침내 1857년 코펜하겐 협약(Copenhagen Convention)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대가로 덴마크는 12개국으로부터 3,350만 릭스달러(rigsdaler), 당시 덴마크 국가 지출의 약 1년치에 해당하는 일시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별도의 양자 협정으로 39만 3,000달러를 지불했습니다.
169년이 지난 2026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하려는 것은 덴마크가 외레순드에서 했던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좁은 해협을 물리적으로 지배하고, 지나가는 선박에 돈을 받는 것. 차이점은 하나입니다. 1857년에 국제 사회는 해협 통행료가 자유 무역을 방해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합의에 도달했고, 이후 169년간 자연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이란이 최초입니다.
CNN은 이 역사적 선례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19세기에 덴마크는 덴마크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했지만, 여러 국가의 항의 끝에 1857년 코펜하겐 협약에 동의하여 이른바 '외레순드 관세'를 폐지했습니다." 이란의 통행료가 현대 해양사에서 전례가 없다는 뜻입니다.
국제법의 관점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는 명확합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37조는 호르무즈와 같이 "공해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연결하는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제38조는 이러한 해협에서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가 방해받지 않는 '통과 통행권(Right of Transit Passage)'을 누린다고 규정합니다. 제44조는 해협 연안국이 통과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shall not hamper)"고 명시하며, 이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정지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미국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의 국제해양법 교수 제임스 크라스카(James Kraska)는 CNN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이며, 이란과 오만의 영해가 겹칩니다. 이 수역에서는 이란법과 오만법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국제 해협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 대해 통과 통행권이 적용되며, 이는 방해받지 않는 수상, 상공, 잠수함 통과를 허용합니다." 통행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는 국제법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프랑스에서 열린 G7 외무장관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국제 사회에 돈을 지불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고 결정한다면, 이것은 불법일 뿐만 아니라 용납할 수 없고, 세계에 위험한 일입니다. 세계가 이에 대처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G7 외무장관들은 "안전하고 통행료 없는 항행의 자유를 회복할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걸프협력회의(GCC)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가 "유엔 해양법 협약에 대한 침략"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11일 결의안 2817호를 채택했습니다. 이란의 역내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자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상선과 상업 선박의 항행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재확인한 결의안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 항행을 폐쇄하거나 방해하거나 간섭하는 이란의 모든 행동과 위협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국제법은 이란의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합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존재합니다. G7이 성명을 냈습니다. GCC가 규탄했습니다.
그런데 이란은 법적 방어 논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168개국이 비준한 이 협약에 이란은 서명만 한 채 40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미국도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므로 통과 통행권 조항에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 영해에서는 통과 통행이 아닌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만 적용된다. 무해 통항은 연안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전면전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적대국 선박의 통항을 제한할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분석은 이 논리의 약점을 짚었습니다. 통과 통행권은 유엔 해양법 협약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관습 국제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으로도 확립되어 있습니다. 세계 압도적 다수의 국가가 이 법리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협약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이란도 구속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법학적 견해입니다.
저스트 시큐리티(Just Security)에 기고한 전 미 해군 장교 출신의 법학자는 이 상황의 핵심적 모순을 정리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해양법의 근본적 취약점을 드러냅니다. 통과 통행권은 교리(Doctrine)에서는 강력하게 보호되지만, 연안국이 규칙을 위반할 의지가 있을 때 실제로 집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법이 이란의 행위를 위법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그 위법 행위를 실제로 멈추게 하는 것 사이의 간극.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21해리(39킬로미터)입니다. 런던 시티대학의 해상법 교수 제이슨 추아(Jason Chuah)가 알자지라에 설명한 것처럼, 해협의 전체 폭이 이란과 오만의 영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해(高海, High Seas)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란은 자국 해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로 주장하고, 오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협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이란에 유리합니다.
이란은 이 지리적 이점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국제 항로로 지정된 해협의 중앙 수로는 기뢰와 공격의 위험 구역이 되었습니다. 선박들은 이 위험 구역을 피해 이란 연안에 붙은 케슘 섬과 라라크 섬 북쪽, 이란의 영해 안쪽으로 우회해야 했습니다. 선박이 국제 수역에서 이란의 영해로 들어오는 순간, 통행의 법적 성격이 바뀝니다. 이란은 영해 내에서의 '보안 서비스'를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합니다.
이란 외무부는 국제해사기구 176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비적대적 선박은,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지 않고 선언된 안전 및 보안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는 한, 이란 관계 당국과의 조율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불법적인 무력 통제를 합법적인 행정 절차로 포장하는 서한이었습니다.
인도 법률 사무소 ANB리걸의 파트너 아푸르바 메타(Apurva Mehta)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선박이 통행료를 내야 하고 어떤 통화로 결제해야 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상업적 고려가 이런 '통행료'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을 압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은 통행료를 내더라도 화물을 통관시키는 데 열중할 것입니다."
이것이 2026년 3월의 현실이었습니다.
미국 해군 제5함대는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은 혁명수비대의 통행료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미 에너지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시인했습니다. 통행료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려면 이란의 초계정을 요격하고, 경우에 따라 위안화 결제를 중개하는 중국 상선까지 저지해야 합니다. 워싱턴도 베이징도 그 수준의 확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의 소해(掃海, Mine Countermeasures) 전력도 문제였습니다. 미 해군이 보유한 어벤저급(Avenger-class) 소해함은 14척 가운데 4척만 남아 있었고, 모두 일본 사세보에 전진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연안전투함(LCS) 4척에 소해 모듈을 장착하고 시드래건(Sea Dragon) 소해 헬기 25대를 운용할 수 있었지만, 중동에 배치된 LCS는 3척에 불과했습니다. 1987~88년 탱커 전쟁 당시의 호위 작전, 선박 재등록(Reflagging), 대규모 호위함대 편성 같은 방식은 2026년에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글로벌 해운사들과 화주들은 자본주의적이고 실용적인 계산을 했습니다. 1억 달러짜리 유조선과 그 안에 실린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이란의 미사일에 격침되거나 나포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내고 무사히 지나갈 것인가. 답은 분명했습니다.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은 걸프 해역을 최고 등급의 전쟁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여 선박 가치의 수 퍼센트에 달하는 전쟁 보험료를 매기고 있었습니다. 200만 달러의 통행료는 전쟁 보험료보다 저렴할 수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해양 보험 중개사 캄비아소 리소 아시아(Cambiaso Risso Asia)의 클레임 부문 대표 아만다 비에른(Amanda Bjorn)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이란을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우리가 누려온 항행의 자유를 가로막는 글로벌 무역의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이집트, 한국, 파키스탄의 선박들이 이란의 승인을 받아 해협을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별적 개방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박은 차단. 서방 동맹국의 선박은 제한. 이란이 '우호국'으로 분류한 나라의 선박은 통과 허용. 통행료는 위안화로.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
이 구조는 유엔 해양법 협약의 핵심 원칙인 비차별(Non-discrimination)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크치(Abbas Araqchi)가 확인한 대로, 이란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별적으로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반을 선언하는 것과 위반을 중단시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2026년 3월 27일, 유엔의 요청에 응해 이란은 인도주의적 지원 물자와 농산물 화물의 해협 통과를 촉진하고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네바 주재 이란 대사 알리 바흐레이니(Ali Bahreini)가 이 합의를 확인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양보의 제스처. 동시에 이란이 해협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기도 했습니다. 통과를 '촉진'할 수 있는 자만이 통과를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중국의 COSCO(중국원양해운)는 고객들에게 UAE,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등 걸프 항만으로의 일반 화물 컨테이너 예약을 재개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3월 27일 두 척의 중국 컨테이너선이 해협을 통해 빠져나가려다 되돌아갔다는 선박 추적 데이터가 확인되었습니다. 혁명수비대의 시스템이 일관되게 작동하지 않았거나, 통과 조건에 대한 합의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외레순드 해협에서 덴마크가 428년간 통행료를 걷을 수 있었던 것은 법이 허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크론보르 성의 대포가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이 반복적으로 항의하고 전쟁까지 치렀지만, 대포가 해협을 지배하는 한 통행료는 계속되었습니다. 통행료가 폐지된 것은 법적 논쟁에서 덴마크가 졌기 때문이 아니라,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해양 열강들의 군사력과 경제적 압력이 덴마크의 대포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도 덴마크는 공짜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3,350만 릭스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란이 이 역사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란이 하고 있는 것은 덴마크가 했던 것의 21세기 판입니다. 크론보르 성의 대포 대신 혁명수비대의 고속정과 대함 미사일과 자폭 드론. 헬싱외르의 세관 대신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의 검문소. 릭스달러 대신 위안화.
차이점은 하나 있습니다. 1857년에 국제 사회는 해협 통행료를 폐지시킬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26년에 국제 사회가 그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3월 26일,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 소장과 정보 참모 베남 레자이(Behnam Rezaei) 준장을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에 대한 공습으로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탕시리를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부설과 봉쇄를 직접 담당한 테러 작전의 책임자"라고 규정했습니다. 해양 분석가들은 레자이의 정보 네트워크 상실이 혁명수비대 해군의 작전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관료화된 통행료 시스템은 지속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사령관이 죽었지만, 시스템은 살아남았습니다.
통행료 국가의 탄생은 국제법이 가진 근본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제네바의 회의실에서 작성된 법전의 조항들은, 호르무즈 해협 위에 떠 있는 기뢰와 고속정 앞에서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817호가 이란의 행위를 규탄했지만, 결의안이 기뢰를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G7 외무장관들이 "통행료 없는 항행의 자유"를 강조했지만, 그 선언이 200만 달러의 청구서를 찢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법은 말합니다. 통행료는 위법입니다. 현실은 답합니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 간극 속에서, 세계 해양 질서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잠시라도 당신 곁에 머물렀다면, 다음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후원해 주세요.
(자발적 후원 부탁 구좌 : 농협 302-1096-0948-81 예금주 : 김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