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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2장 배럴당 126달러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12장 배럴당 126달러
김경진
제12장 배럴당 126달러
12.1 유가 급등의 타임라인
2026년 2월 27일 오후 4시(런던 시간),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 종가는 배럴당 71달러였습니다.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그날 오후를 평범하게 마감했습니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하루 1,358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고, OPEC+ 감산 합의 이후에도 글로벌 원유 시장은 구조적 공급 과잉 상태였습니다.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팀은 2026년 연간 브렌트유 평균가를 65달러로 전망하고 있었습니다. "저유가 시대의 지속"이라는 컨센서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이란의 밤하늘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궤적이 그려졌습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 발발 직후 48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숫자로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3월 1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봉쇄를 선언했습니다. 같은 날 해협 부근에서 유조선 3척이 피격되었고, 그중 1척은 오만 앞바다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선박 추적 데이터 업체 보르텍사(Vortexa)의 기록에 따르면, 3월 1일 해협을 통과한 원유 유조선은 이란 국적선 3척을 포함해 총 4척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24척이 통과하던 곳이었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3일 장중 84.57달러를 찍었습니다. 개전 전 대비 19%. 머스크(Maersk), CMA CGM,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동시에 해협 통과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는 페르시아만 안쪽에 발이 묶인 국제 원유 및 석유제품 유조선이 약 200척에 달한다고 추산했습니다.
3월 8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이날 해협을 통과한 상업 선박은 딱 1척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138척이 오가던 수로에서 1척. CNBC의 에너지 전문 기자는 이 숫자를 보도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같은 날 이란군의 드론과 미사일이 바레인의 밥코(Bapco) 정유소를 타격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Ras Tanura) 석유 터미널 인근에서도 폭발이 보고되었습니다. 걸프 에너지 인프라 전체가 사정권에 들어온 것입니다.
3월 10일 월요일, 시장이 열리자마자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119.5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WTI(서부텍사스산원유, West Texas Intermediate)도 119.48달러를 찍었습니다. 전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 담당 국장이었던 닐 앳킨슨(Neil Atkinson)은 CNBC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폐쇄는 에너지 시장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입니다. 뭔가 곧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유례 없는 에너지 위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26달러를 찍었습니다.
71달러에서 126달러. 상승률 약 55%. 소요 시간은 20거래일 남짓이었습니다. CNBC는 이것이 1988년 브렌트유 선물 계약 출범 이래 월간 기준 최대 상승 기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전 기록은 1990년 걸프전 당시 9월의 46% 상승이었습니다.
서방의 벤치마크가 126달러를 기록하는 동안, 아시아 시장이 체감한 충격은 이보다 훨씬 가혹했습니다. 3월 19일, 두바이유(Dubai crude)가 배럴당 166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S&P 글로벌의 플래츠(Platts) 가격 평가 기준입니다. 두바이유는 중동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의 가격 지표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물리적으로 배달이 불가능해진 원유의 가격이, 배달 가능한 브렌트유보다 60달러 이상 높게 거래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JP모건의 원자재 리서치 총괄 나타샤 카네바(Natasha Kaneva)는 이 괴리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해협이 열리지 않으면 이 가격 차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브렌트유와 WTI가 결국 위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서양 쪽 재고가 빠지면서 글로벌 시장 전체가 훨씬 빠듯한 공급 수준에서 가격을 다시 매겨야 합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라이스타드(Rystad)의 수전 벨(Susan Bell) 수석부사장은 싱가포르 시장의 두바이유 가격을 놓고 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거의 허구적인 가격(fictitious price)에 가깝습니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 사이의 이 간극은 숫자가 아니라 지리의 산물이었습니다. 같은 기름이되 호르무즈를 통과해야 하느냐, 통과하지 않아도 되느냐에 따라 배럴당 60달러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21마일 폭의 수로가 글로벌 원유 시장을 둘로 쪼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숫자가 있습니다. 이 기간 중 유가의 일간 변동 폭입니다.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란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브렌트유는 114달러에서 102달러로 하루 만에 12달러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란 측이 이를 부인하자 다시 올랐습니다. 엑슨모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타일러 굿스피드(Tyler Goodspeed)는 CERAWeek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협이 정상 교통량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보다, 해협이 더 오래, 더 확실하게 닫혀 있는 시나리오의 수가 훨씬 많고 확률도 높습니다."
71달러에서 126달러까지, 이 한 달의 타임라인이 증명한 것은 명확합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이 가격을 점진적으로 조정한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공급망이 끊어지는 순간,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가격 발견 메커니즘 자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12.2 IEA의 선언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파리 9구 라펠 드 라 뮤에트 거리에 자리한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 본부. 32개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의 긴급 화상회의가 끝난 직후, 파티 비롤(Fatih Birol)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비롤은 외교적 수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석유 시장의 도전은 규모에서 전례가 없습니다(unprecedented in scale). IEA 회원국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 석유 비축유 공동 방출에 만장일치로 합의했습니다." 4억 배럴. IEA 창설 52년 역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 숫자를 과거와 비교하면 규모가 선명해집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IEA가 방출한 양은 1억 8,270만 배럴이었습니다. 4억 배럴은 그 두 배를 넘깁니다. IEA가 창설 이래 비상 공동 방출을 실행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였습니다.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1년 리비아 내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두 차례. 그리고 2026년.
비롤이 이 사태를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의 공급 차질"이라고 부른 데는 정확한 산술이 있었습니다. IEA의 3월 석유시장보고서(Oil Market Report)에 따르면, 전쟁과 해협 봉쇄로 인해 중동 지역의 총 원유 생산량은 3월 12일 기준 최소 1,000만 배럴/일(b/d)이 감소했습니다. 해협이 막혀 수출을 할 수 없게 되자,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저장 용량 한계에 부딪혀 생산 자체를 70%까지 줄인 결과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도 일부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1973년 아랍 석유 금수 당시 시장에서 사라진 양은 하루 약 400~500만 배럴, 당시 세계 소비량의 약 6~7%였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때는 약 200~400만 배럴. 2026년 호르무즈 봉쇄는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던 수로를 한 줄기로 줄였고, 이로 인해 중동 전체의 생산 감소까지 합치면 글로벌 석유 공급이 한 달 사이에 800만 배럴/일 이상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IEA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급 차질(the largest supply disruption in the history of the global oil market)"이었습니다.
4억 배럴 방출의 구체적 배분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1억 7,200만 배럴. 전체의 43%입니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성명을 통해 "방출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며, 계획된 방출 속도에 따라 약 120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20일에 걸쳐 1억 7,200만 배럴을 방출하면 하루 약 140만 배럴입니다. 일본은 80만 배럴을 3월 16일부터 방출하기로 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 수입의 약 70%를 조달하는 일본의 사나에 다카이치(高市早苗) 총리는 "극도로 높은 수준의 중동 의존도"를 언급하며 조기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영국은 1,350만 배럴을 약속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방출에 동참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비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방출 발표 직후 브렌트유는 120달러 근처에서 약 9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약 30달러의 하락. 그러나 이 효과는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3월 14일 금요일, 브렌트유는 다시 100달러를 넘겼습니다. 방출 발표 이후 이틀 사이에 17% 이상 다시 올랐습니다.
왜 400만 배럴이라는 전례 없는 물량이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을까요. 맥쿼리(Macquarie)의 분석가들이 계산을 내놓았습니다. 4억 배럴은 전 세계 하루 생산량의 약 4일치이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약 16일치에 해당합니다. 맥쿼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많게 들리지 않는다면, 실제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If that doesn't sound like much, it isn't)."
CNBC는 더 직접적인 산술을 제시했습니다. 미국의 방출 속도 하루 140만 배럴은 호르무즈 봉쇄로 사라진 공급량의 1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5%의 공백은 어디서도 메워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비축량은 이미 2022년 방출 이후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지하 소금 동굴에 저장된 원유는 약 4억 1,500만 배럴. 최대 용량 7억 1,500만 배럴의 58%였습니다. 여기서 1억 7,200만 배럴을 더 빼면, SPR은 2억 4,300만 배럴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NPR의 보도에 따르면, 지하 소금 동굴의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비축유를 다시 채워 넣는 작업도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비롤은 기자회견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안정적인 석유와 가스 흐름의 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운항의 재개입니다." 비축유 방출은 다리(bridge)입니다. 끊어진 동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동맥이 다시 열릴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KPMG의 글로벌 석유·가스 리더 앤지 길디(Angie Gildea)의 말이 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접근을 복구하는 것을 대체할 수단은 없습니다. 전략비축유, 수출 우회, 해상 재고 등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들은 일부 완화 효과를 줄 수 있지만, 구조적 해법은 아닙니다."
IEA는 공급 측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수요 측면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IEA 3월 보고서는 2026년 글로벌 석유 수요 성장 전망을 전월 대비 하루 21만 배럴 하향 조정해 64만 배럴/일로 낮췄습니다. 3월과 4월의 수요 전망은 평균 100만 배럴/일 이상 깎였습니다. 중동 주요 공항의 운항 중단으로 항공유 수요가 급감했고, 나프타(Naphtha)와 LPG 공급 차질로 석유화학 공장들이 가동을 줄이기 시작한 결과였습니다.
인위적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 공급이 끊어진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감수하더라도 소비를 강제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일요일 자동차 운행 금지, 고속도로 속도 제한 55마일이 등장했던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2026년 3월, IEA의 4억 배럴 방출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를 꺼내 들었다"는 신호인 동시에, "그 무기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고백이었습니다.
12.3 200달러 시나리오
IEA의 4억 배럴 방출 발표가 나온 3월 11일,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은 성명을 냈습니다. "배럴당 200달러의 석유를 기대하라(Expect oil at $200 per barrel)."
허풍인지 경고인지.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이 숫자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였습니다. 원자재 리서치 공동 총괄이자 석유 리서치 총괄인 단 스트라위번(Daan Struyven)이 이끄는 팀은 전쟁 발발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전망을 수정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3월 2일(개전 직후): 골드만삭스는 현재 유가에 배럴당 약 14달러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되어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 4주간 완전 폐쇄되고, 우회 파이프라인이 부분적으로 가동되는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가격이었습니다. 해협이 25%만 차단되고 파이프라인이 가동되면 추가 상승분은 배럴당 1달러. 완전 폐쇄에 아무런 상쇄 수단이 없으면 15달러.
3월 11일: 골드만삭스는 전망을 크게 수정했습니다. 해협 통과량이 정상의 10%에 불과한 상태가 21일간 지속된 뒤 30일에 걸쳐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시나리오를 기본 가정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전 전망은 10일 차단이었습니다. 브렌트유 3~4월 평균 전망은 98달러. 상방 리스크 시나리오에서는 120달러.
3월 22일: 세 번째 수정. 기본 가정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해협 통과량이 정상의 5%에 머무는 기간을 6주로 늘렸고, 이후 1개월에 걸친 점진적 회복을 가정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누적 원유 손실은 8억 배럴을 넘깁니다. 2026년 연간 브렌트유 평균 전망은 85달러(종전 77달러에서 상향). 3~4월 단기 전망은 배럴당 110달러.
골드만삭스의 극단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습니다. "가혹한 시나리오(adverse scenario)"에서는 차질이 10주 지속되고 브렌트유가 140달러에서 정점을 찍은 뒤 4분기에 100달러로 내려옵니다. "극도로 가혹한 시나리오(severely adverse scenario)"에서는 10주 차질에 에너지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가 더해져 브렌트유가 160달러까지 치솟고, 4분기에도 115달러에 머뭅니다. 골드만삭스는 극단적 상황에서 가격이 이론적으로 2008년 7월 WTI 최고치인 147.25달러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바클레이스(Barclays)의 전망은 골드만삭스보다 더 과격했습니다. 바클레이스는 전쟁이 2주 더 지속되면 브렌트유가 120달러를 시험할 수 있으며, 상방 시나리오에서는 월말 전에 15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에너지 전문 컨설팅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닐 시어링(Neil Shearing) 팀은 더 긴 시간축을 놓고 봤습니다. 전쟁이 3개월 지속되는 시나리오에서 브렌트유는 향후 6개월 평균 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BCA 리서치의 지정학 전략가 마르코 파피치(Marko Papic)는 산술을 좀 더 잔인하게 제시했습니다. 3월 28일자 보고서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현재(4월 19일 전후까지)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잃고 있는 원유는 하루 450~500만 배럴, 글로벌 공급의 약 5%입니다. 그러나 4월 중순이 되면 이 숫자가 두 배로 뜁니다. 전략비축유 방출분이 소진되고, 제재 면제로 풀린 러시아산 원유도 바닥나기 때문입니다. "원유 공급의 역사상 최대 손실이 됩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사드 알카비(Saad al-Kaabi)는 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 천연가스 가격은 100만 BTU당 40달러까지 갈 수 있으며, 이는 "세계 경제의 붕괴(collapse of world economies)"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0달러라는 숫자 자체가 현실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3월 31일 현재 브렌트유 선물 기준으로는 아닙니다. 브렌트유는 3월 말 기준 112달러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시장(physical market)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유가 166달러를 찍었고, 한때 170달러를 터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매켄지(Wood Mackenzie)의 리처드 하본(Richard Harbourne)은 이 간극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은 호르무즈 폐쇄의 지속 기간의 함수입니다. 시장 전체가 실시간으로 가정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paper market)과 현물 시장(physical market)의 괴리. 이것이 2026년 3월 에너지 시장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이었습니다. 선물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하나에 12달러씩 움직였습니다. "트럼프의 입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jawboning)"는 표현이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통용되었습니다. S&P 글로벌 CERAWeek 컨퍼런스에 참석한 텍사스대학 에너지·환경시스템분석센터의 벤 카힐(Ben Cahill)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의 더 큰 반응을 막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물리적 시장 차질의 현실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BCA 리서치. 이들의 전망이 수렴하는 지점은 하나였습니다. 200달러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얼마나 오래 닫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셰브론(Chevron) CEO 마이크 워스(Mike Wirth)는 CERAWeek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의 매우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결과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셸(Shell) CEO 와엘 사완(Wael Sawan)은 같은 자리에서 덧붙였습니다. "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차질이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그리고 4월에 접어들면서 유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200달러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함수입니다.
12.4 스태그플레이션의 유령
배럴당 126달러가 의미하는 것은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1970년대에 서방 경제를 무너뜨린 악몽, 즉 물가는 치솟고 성장은 멈추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유령이 21세기에 돌아왔다는 신호입니다.
경제학에서 유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추산하는 데 흔히 쓰이는 경험칙(rule of thumb)이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2026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headline PCE) 인플레이션은 약 0.2%포인트 상승하고, GDP 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도 비슷한 범위입니다. 에너지 가격의 지속적인 10%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40bp(0.4%포인트) 밀어 올리고, 경제 성장률을 0.1~0.2%포인트 깎아 냅니다.
이 경험칙을 2026년 3월의 현실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개전 전 브렌트유 71달러에서 126달러로의 상승은 약 77%입니다. 경험칙대로라면 미국 인플레이션만 1.5%포인트 이상 추가 상승 압력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골드만삭스는 실제로 2026년 12월 기준 미국 PCE 인플레이션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에서 3.1%로, 가혹한 시나리오에서 3.6%로, 극도로 가혹한 시나리오에서 4.0%로 제시했습니다. 봄철 정점은 각각 2.9%, 4.6%, 4.9%입니다. OECD는 미국의 2026년 인플레이션이 전쟁 전 전망보다 1.2%포인트 높은 4.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유럽은 더 나빴습니다. EU는 전쟁의 심각도에 따라 인플레이션 전망을 2.6%에서 4.4% 사이로 제시했습니다. S&P 글로벌 마킷의 크리스 윌리엄슨(Chris Williamson)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월 유로존 PMI(구매관리자지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로존 PMI가 스태그플레이션의 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중동 전쟁이 물가를 급격히 올리는 동시에 성장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3월 유로존 종합 PMI는 50.5로, 전월의 51.9에서 급락해 10개월 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확장과 수축의 경계선인 50에 거의 닿은 수준입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2026년 중 5%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물가 상승의 경로는 휘발유나 경유 가격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나프타(Naphtha) 가격이 오르고,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 포장재, 화학섬유, 의약품 원료 가격이 오릅니다. 그러나 2026년 호르무즈 위기에서 가장 위험한 전달 경로는 비료였습니다.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은 전 세계 요소(Urea) 수출의 3분의 1, 암모니아 수출의 4분의 1을 담당합니다. 중동의 비료 생산업체들은 저렴한 천연가스를 원료로 쓸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했습니다. 전 세계 질소 비료 수출의 최대 4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해협이 닫히면서 요소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50% 급등했고, 암모니아는 20% 올랐습니다.
브라질이 이 타격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브라질은 수입 비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 절반 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옵니다. 브라질은 전 세계 대두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옥수수와 설탕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합니다. 비료 부족이나 가격 급등이 장기화되면 농가들이 비료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수확량 감소로 직결됩니다. 2026년 하반기 글로벌 식량 위기의 그림자가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서 성장이 동시에 멈추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유가 급등은 가계에 보이지 않는 세금처럼 작용합니다. 주유비, 난방비, 전기요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나머지 소비가 줄어듭니다. 외식, 여행, 가전 구매가 미뤄집니다. 소비가 줄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듭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3월 둘째 주에 갤런당 5달러를 넘겼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갤런당 5달러를 먼저 돌파했습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카르멘 라인하르트(Carmen Reinhart) 교수,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올라가고 성장은 낮아질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기타 고피나스(Gita Gopinath)는 2026년 유가가 평균 85달러에 머물 경우에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전쟁 전 전망(3.3%)보다 0.3~0.4%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85달러가 아니라 126달러라면, 혹은 150달러라면 그 수치는 훨씬 더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종합 경제 분석 기관 솔어빌리티(SolAbility)는 시나리오별 GDP 손실을 모델링했습니다. 전쟁이 즉시 끝나는 경우 글로벌 GDP 손실은 5,900억 달러(세계 GDP의 0.54%). 전쟁이 수개월 지속되는 경우 손실은 3조 5,000억 달러(세계 GDP의 3.15%)까지 커집니다. 이 추산에는 석유와 LNG 충격뿐 아니라 비료 공급망 차질의 파급 효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Y파르테논(EY-Parthenon)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레고리 다코(Gregory Daco)는 미국의 향후 1년 내 경기침체 확률을 40%로 올렸습니다. 평시의 경기침체 확률은 15%입니다. 골드만삭스도 미국 경기침체 확률을 30%로 높였고, 실업률이 2월의 4.4%에서 연말 4.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모든 숫자 앞에서 중앙은행들은 꼼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딜레마를 보겠습니다. 인플레이션이 3~5% 범위로 치솟고 있으니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동시에 둔화되고 있으니 금리를 올리면 침체를 앞당깁니다.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3월 19일 예정되어 있던 금리 인하를 연기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전망을 올리고 GDP 성장률 전망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의 그 자체입니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멈추고, 중앙은행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 메리 데일리(Mary Daly)는 3월 중순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유소에서의 가격 상승과,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넘고 있다는 현실이 합쳐지면, 소비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Mark Zandi)는 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 머물면 휘발유 가격은 다음 주까지 갤런당 4달러에 근접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가속화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깎아먹고, 소비와 GDP와 일자리를 타격할 것입니다."
MIT의 에너지 경제학자 크리스토퍼 니텔(Christopher Knittel)은 시간의 변수를 짚었습니다. "1주일 전, 혹은 2주일 전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전쟁이 오늘 끝나면 장기적 파급은 꽤 작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입니다. 이것은 이 전쟁의 후유증이 오래 갈 것임을 의미합니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의 에너지 경제학자 루츠 킬리안(Lutz Kilian)은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카타르 LNG 시설의 일부 피해는 수리에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웨이트의 정유소와 걸프만 내 유조선들도 재정비와 연료 보급이 필요합니다. 최선의 상황에서도 회복 과정은 느릴 것입니다."
배럴당 126달러. 그 숫자 뒤에는 이런 연쇄가 놓여 있습니다. 유가 급등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올립니다. 비료 가격이 뜁니다. 식품 가격이 오릅니다. 물류비가 오릅니다. 모든 소비재 가격이 오릅니다. 가계가 지갑을 닫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줄입니다. 고용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오릅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집니다. 내리면 물가가 더 오릅니다.
1970년대와 2026년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Paul Volcker)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인플레이션을 때려잡았습니다. 대가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대량 실업이었지만, 미국의 국가 부채 규모가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의 미국 국가 부채는 약 36조 달러, GDP의 120%를 넘습니다. 금리를 1%포인트 올릴 때마다 연간 이자 비용이 수천억 달러 늘어납니다. 볼커식 해법은 더 이상 선택지에 없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유령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6달러, 166달러, 4.2%, 0.4%포인트, 3조 5,000억 달러, 40%. 그 숫자들 각각은 따로 떼어 놓으면 경제 모델의 변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합은 모델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현실을 바꿉니다.
3월 31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사실상 닫혀 있습니다. 브렌트유는 112달러 내외입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피치가 말한 "석유 절벽(oil cliff)"의 날짜, 4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략비축유 방출분이 소진되고, 제재 면제 러시아산 원유가 바닥나는 시점. 그때가 되면 지금의 126달러가 바닥이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숫자는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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