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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4장 입법 투쟁기
안녕하세요. 김경진입니다
4장 입법 투쟁기
김경진
4장 입법 투쟁기
불법 콜택시 타다와 맞서다
특정한 물건, 재화에 대한 소유를 전제로 경제가 성립한다. 소유한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계속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자기 차량을 소유한다고 해서, 이 차를 24시간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내 물건이지만 내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필요한 제삼자가 합리적으로 사용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세상에 이롭지 않을까? 사람들이 필요할 때만 재화나 물건을 이용하도록 하여, 비용을 절약하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자원고갈을 막자는 개념이다. 훌륭한 생각이고, 이대로 된다면 세상은 더 효율적이 될 것 같다. 공유경제라는 용어는, 2008년 미국 법학자 로런스 레식이 그의 저서
리믹스 Remix에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꿈은 예쁘다. 문제는 그 예쁜 꿈에, 인간의 탐욕이라는 현실을 대입하면, 그 꿈은 대부분 악몽이 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들이 예쁜 꿈을 몰라서 콘크리트의 무채색 건물로, 이 세상을 건설한 건 아니다. 문제는 현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망은 갈수록 치솟는다. 이 상황에서 모두가 비교적 안녕하게 살아가려면 예쁘장한 이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가급적 손해 보는 사람이 적은, 합의될 수 있는 무채색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17년 10월 승차 공유서비스 '타다'라는 이름의 택시 서비스가 시작됐다. 타다는 한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환영했다. 기존 택시의 불편했던 점. 예컨대 내비게이션을 키지 않고 운행하는 문제, 차 안 냄새, 정치적인 의사표현, 혹은
불쾌한 대화를 유도하는 행위 등을 일거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타다는 편리함과 쾌적함의 대명사가 됐다. 그 덕분에 타다는 고속 성장을 했다. 서비스 1년 만에 가입자 125만 명을 확보했다.
소비자는 선호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었다. 타다 드라이버(운전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정식 노동자가 아니라, 매일 타다 회사에서 차를 배차받아야 했고, 만약 배차를 받지 못하면 더 이상 타다 차량 운전을 하지 못하는, 매일 새벽 인력시장 노동자와 똑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날 태운 승객의 별점 평가가 낮으면, 다음날부터 바로 영업을 해야할 운전용 차량을 배차받지 못하고, 해고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임금을 받는 일당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보니, 노동법상의 산재보험, 직장 건강보험 등 사회안전망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매일 해고 불안에 떨면서 운전하는 극히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택시 운전자격을 취득하려면, 직전 5년간 교통사고를 낸 사실이 없어야 하고, 성범죄 등 전과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타다 운전자는, 택시 운전자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일반 운전면허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 택시관련 법규를 조용히 파괴해 버린 것이다.
타다가 실내 공간이 쾌적하고, 운전자가 승객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장점은 있었지만, 택시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 장치, 그리고 택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은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것이 타다였다.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보편화될 경우 언제라도 폭탄으로 변할 수 있는 허술한 서비스였던 것이다. 타다는 택시와 달리 성범죄 경력조회 같은 다중을 상대로 서비스 하는 사람이 거쳐야 하는 인적 체크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저 2종 보통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인터넷을 통해 개개인이 연
결되면서 상거래의 양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과 요소를 고려해서 만든 기존의 제도를, 인터넷 상거래 도입에 따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오히려 과거 시스템의 장점을 없애 버리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근로자 혹은 기존 사업자들을 위한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보호장치를 없애버리고 모든게 가능해지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간다.
카카오 카풀도 그랬다. 공유경제라는 수식어를 달고 출발했지만, 근로자와 대중을 위한 여러 안전망을 없애버린 점에서는 타다와 같은 구조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아름다움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었고, 그저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파괴해서 돈을 버는데 급급한, 저급한 사업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택시업계와 타다 혹은 카카오 카풀 등과 같은 사업자와의 갈등의 골만 점점 더 깊어져갔다. 그
지지부진함 속에서 택시기사 세 분이 분신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카카오의 행태가 결국 소상공인인 회사 혹은 개인의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아니 이건 이 상황을 방기한 정치권도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지만, 우리는 점점 갈수록 비겁해지고 있다. 나는 카카오의 이런 행위를 일종의 약탈이자 플랫폼을 자처했을 뿐 본질은 포획 경제일 뿐이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이른바 '공유경제'라는 것은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다 같이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카카오 카풀은 플랫폼 중개인임을 자처했을 뿐, 노동착취, 사회안전망 제거라는 측면에서 매우 나빴다.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실질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파괴하는 '약탈경제'였다.
카카오 카풀뿐만 아니다. 공유민박, 게스트하우스 등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성범죄, 절도, 화재 등의 안전사고 발생은 물론 탈세, 불법 영업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국민 개인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한국에서 숙박업을 하려면 엄청나게 촘촘한 소방법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이건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규제가 아니라. 많은 수의 사람이 돈을 내고 자는 공공숙박업 공간이 갖춰야 할 꼼꼼한 안전사항일 뿐이다. 다중의 사람이 이용해야 하기에 오피스텔, 아파트, 주택보다 호텔, 모텔 여관 등의 경우에는 소방, 위생법률상 더 촘촘한 규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유숙소라는 명목으로 개인주택, 오피스텔을 가지고 호텔 모텔 영업을 한다면 이러한 대중을 위한 보호장치가 깨져 버리는 것이다. 속칭 '공유'라는 이름 하의 상당수 숙소가 일반 주택으로, 정식 숙박업소로 등록되지 않아 각종 위생, 화재 및 재난 안전관리, 소비자 사생활 보호 등의 법적 의무 없이, 이런저런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공유경제라는 명목의 우버,
아파트 숙박 공유 시스템은 인터넷 플랫폼의 형태로 운영이 되고, 이 플랫폼 운영 주체는 대기업 혹은 다국적 기업이다.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선의의 중계자임을 자처하지만 실상은 과도한 수수료를 챙겨가 플랫폼 운영 기업만 배를 불리는 구조였던 셈이다.
'공유'라는 그럴듯한 명칭으로 탄생한 ICT 플랫폼 중개 서비스를 4차 산업 혁명의 신성장동력, 미래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거듭 밝히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유경제라 칭하는 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신기술도, 혁신 기술도 아니다.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포탈 업체들이 영세 산업을 잠식하고 수수료를 착취하는 구조일 뿐이다. 그저 수많은 국내법과 상충하는 편법 서비스에 불과하다. 제발 더디 가더라도, 상식과 공정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걸맞는 길을 가길 바란다.
참고로 2023년 6월 대법원은 타다가 '불법 콜택시'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
기사 딸린 렌터카'가 불법이라고 선언하는 개정안을 이미 통과시킨 상태다. 결론적으로 타다 측은 형사처벌만 면한 것이 됐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갑자기 떠밀려 가는 일만큼은 막고자 한다. 그게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의 억울함을 보면서 법조인의 꿈을 키운, 나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입법의 존재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류문명이 동물 세계와 다른 점은 결과에 따라 차등은 둘 수 있지만, 설사 경쟁에서 밀렸다 해도 방치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뛰지 못하는 이들을 돌보지 않을 거라면, 우리는 굳이 애써 이렇게 빛나는 문명을 구축할 이유가 없다. 적자생존은 정글의 법칙이지 인간세계의 법칙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쉽다. 계층 상위에 있을수록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소연할 수 있는 인맥과 방법도 많은
법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쉽지 않다. 잘나가는 사람이야 한, 두 다리 건너면 기자, 의사, 법조인이 가득하지만 사회적 약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조차 만나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 더 디딤돌을 제공하는 것이 좀 더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보는 이유다.
로마만 봐도 귀족정 일색의 정치를 보완하기 위해 평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 제도를 뒀다. 이게 로마가 우리보다 더 온정적이라 그렇게 시스템을 구축한 게 아니다.
모든 국가는 흥망성쇠를 겪기 마련이다. 생명체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결국 소멸한다. 국가가 망하는 경우는 잘 살펴보면 크게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있는데, 외적 요인은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해 망하는 것이고 내적 요인은 거의 대부분 내분이다. 내분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발생한다. 요즘 말로 하면 중산층이 붕괴되고 그들이 유
랑민화하면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국가는 세금이 안 걷히니 더 폭력적이 되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싸우다 스스로 망하거나 이 틈을 노린 외부의 침입에 의해 망한다. 조선 후기가 그랬고, 청 제국 말기가 그랬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그 갈등을 근대화로 돌파하면서 넘긴 특이한 사례다.
불평등의 심화는 필연적으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결국 우리의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우리가 지금 구축해 놓은 시스템과 공동체의 안정성, 그리고 번영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 살지 않으면, 번영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역사는 항상, 왕조와 국가가 망할 때마다 말해주지만, 우리는 매번 못 알아듣고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국회 의정활동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 및 입법 활동에 할애해 왔다. 가난한 농민
의 아들로 태어난 나의 근본이기도 하고, 우리 공동체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들이 목숨 걸고 저항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냉혹한 시대에 카카오 카풀과 타다의 불법을 파헤친 것도, 학대받는 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사각지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도, 한부모 가정을 위해 양육비를 소득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낸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입법 활동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사회적 약자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데 쓰이게끔 노력했던 일이다. 요즘은 정보접근성이 생존과 직결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국가의 복지 정책조차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가 유통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복지가 제공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해 사회적 약자의 가계 통신비 지원을
확대하고자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한부모가정 등이 지원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의미 있는 노력에서 그쳤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저소득층 및 한부모 가정의 현실적인 양육비 지급을 위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현행법상 기초생활수급자의 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 등을 합산해 평가하는데, 이전소득 항목에 '양육비'가 포함된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양육비를 받게 되면 수급권을 잃게 되어, 오히려 양육비를 포기하는 불합리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던 것이다. 배려 없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은 때로는 가혹하기 마련인데, 이게 바로 그 경우였다.
한부모 가족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중위소득 52% 이하인 한부모 가족에게 '아동 양육비'가 지급되지만 이 또한 가구별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정부 지원을 신청하려 해도 양육비가 소득에 포함되면서 실질적인 중위소득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양육비를 소득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입법도 미완인 상태로 남아있다. 발의했지만 국회 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이 법으로 혜택을 볼 수많은 사람들의 눈망울을 그려보지만, 모든 꿈들을 다 보듬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늘 죄송스럽다.
빈틈을 메꿔가며
대한민국은 만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거권을 주고 있다. 2019년 이전만 해도 만 19세, 2005년 이전에는 만 20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했었다. 민주주의 역사는 선거권 투쟁이라도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거권을 얼마나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하느냐를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로 봤다. 여성의 선거권만 해도 우리는 제헌헌법부터 보장했지만 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위스조차 70년대나 돼서야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이 선거행위, 정치 참여에서 소외되는 유일한 국민은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다. 국회의원
이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여의도 사람들에게 선거권이 없는 존재의 정책은 항상 중요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아동, 청소년 정책이라곤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을 양육하는 부모의 관점이 더 많이 개입된다.
검사 시절부터 아동학대 피해를 다루면서 느낀 문제의식도 이 부분이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국민들은 공분하지만, 이게 입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동학대와 관련된 엄청난 사회적 비극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거의 없었다. 나는 재임 시절 학대로 인한 피해 아동의 보호와 수용자들의 미성년 자녀들을 위한 '아동복지법 개정안'과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냈었다. 현행법상 학대 아동의 보호자나 가족이 피해 아동을 위한 심리치료를 거부하면 이를 강제하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다. 아이들은 누군가 데려가지 않으면 스스로 병원이나 심리센터를 가지 못한다.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검사 시절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이 법률의 보완이 필요해 보였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이 문제를 들여다봤다. 그나마 검사 시절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이, 그 사이 법이 개정되면서 법원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소 등에 피해 아동의 상담이나 치료 위탁명령을 내릴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가 이뤄진 건수는 단 1명, 총 5회 교육에 불과했다. 곧바로 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해, 피해 아동의 보호자나 기관이 피해 아동에게 제공되는 지원 등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했다.
참고로 현행 법률은 '모든 지원 여부의 결정 및 지원의 제공 등 모든 과정에서 피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막상 이익의 최종 종착점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피해 아동의 참여'를 보장하진 않는다. 내 개정안에는 '피해 아동의 참여'를 구체화했었다.
수용자의 미성년자 자녀 보호 등을 위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검사 시절 범죄자를 잡고 그들을 교도소에 보냈지만, 홀로 남겨진 그들의 어린 아이들을 보며 참 가슴이 아팠다. 부모가 죄를 지었다지만 그 아이들은 죄가 없지 않는가.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 이 문제도 다시 살펴봤다. 여전히 수용자들의 미성년 자녀들의 상당수가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모의 체포 과정을 그대로 지켜본 어린 아이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국에는 14만여 명이 교정시설에 수용되었고, 그들의 미성년 자녀만 5만 4천 명에 달했다. 이에 교도소장 등이 신입 수용자들에게 『아동복지법」에 따른 미성년 자녀의 보호조치를 의뢰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수용자의 요청 시 보호조치를 지원토록 하는 법안을 냈다. 최종적으로 이 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제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수용자들의 어린
자녀들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여성 수용자의 경우만 '접촉차단시설'이 없는 곳에서 미성년 자녀의 접견이 가능하고, 남성 수용자들은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양성의 책임과 권한에서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모든 수용자가 접촉차단시설이 없는 따뜻한 장소에서 미성년 자녀와 접견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했다. 이 법이 2019년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금은 수용소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와 눈을 맞추며 사랑으로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다. 수용자 자녀들이 접견 때만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건전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2018년, 언론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기사를 접했다. 소아당뇨병 자녀의 치료를 위해 개인적으로 의료 기기를 해외 직접 구매해 개조한 엔지니어 출신 어머니가 범죄자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해당 어머니는 다행히 기소유예가 되긴 했지만,
현행법상 이런 사례에 대한 구제 방안이 전무하기 때문에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법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개인치료, 임상시험, 연구개발 목적으로 해외에서 수입하는 의료기기의 수입 허가•인증•신고를 면제하는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내에 대체 의료기기가 없고 해외에서 안전성을 인정받은 경우에 한해, 판매•임대 목적이 아닌 순수 연구·사용 목적으로 수입되는 의료기기와 그 부속품에 대해서, 그 수입허가•인증·신고 절차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 대체재가 없어 치료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해외에서 의료기기를 구매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법체계의 미비함으로 인해 범법자의 굴레를 안겨줘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의료기기법 개정안은 결국 통과되진 못했다. 식약처는 단지 문제가 된 '연속혈당측정기'를 수입허가 면제 의료기기로 등록하는 조치를 취해 해당 건에 대해서만 면피를 해버렸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신약, 새로운 의료기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법이, 시스템이 좀 더 빨리 여기에 따라야 할 필요성은 커져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