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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30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소비의 군사화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30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소비의 군사화
김경진
제30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소비의 군사화
30.1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는 군수기지다
2026년 3월 1일 새벽, UAE 아부다비. 아마존웹서비스(AWS, Amazon Web Services)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두 곳에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샤헤드 자폭 드론이 동시에 돌진했습니다. 같은 시각 바레인에서도 AWS 시설 한 곳이 인근 폭발로 파편 피해를 입었습니다. 콘크리트 벽이 갈라지고, 비상 소화 장치가 가동되면서 물이 서버 랙 위로 쏟아졌습니다. 수분 뒤 아부다비 상업은행, 에미리트NBD, 퍼스트아부다비은행의 모바일 뱅킹 앱이 꺼졌습니다. 결제 플랫폼이 멈추고, 차량 호출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결제할 수 없고, 공항에서 택시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UAE 전역으로 번졌습니다. 아마존은 수일이 지나도 해당 지역의 서비스 상태를 "장애 중(disrupted)"으로 표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국가 군대가 민간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의도적으로 타격한 것입니다. 이란 국영 매체 타스님 통신은 공격 직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팔란티어, 오라클의 이름을 나열하며 "적의 기술 인프라: 이란의 새로운 목표"라는 문구를 게시했습니다. IRGC는 이 공격의 근거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AWS가 미국 국방부의 AI 시스템을 호스팅하고 있으며, 앤스로픽의 클로드(Claude) 모델이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의 정보 분석과 표적 식별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장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이 에픽 퓨리 작전 개시 첫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하기 위해 AI 도구를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에 앤스로픽의 클로드가 내장되어 있었고, 이 시스템은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표적의 우선순위를 반자동으로 매기고, 각 타격에 대한 법적 정당화 초안까지 작성했습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 시스템으로 위성 이미지, 신호 정보, 통신 감청 자료를 실시간 처리하여 표적 좌표를 뽑아냈습니다. 펜타곤 수석정보관(CIO) 커스틴 데이비스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이 시스템은 현재 작전 중에 활용되고 있다"고 공식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클라우드(Cloud)'라고 부르는 것은 구름이 아닙니다. 수만 톤의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건물이고, 수십만 개의 서버가 배열된 금속 구조물이며, 화력발전소급 전력을 쉬지 않고 삼키는 물리적 시설입니다. 이 시설 안에서 미국의 킬 체인(Kill Chain, 표적 탐지에서 타격까지의 연쇄 과정)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이 건물을 공격하는 것은 적의 탄약고를 폭격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았습니다.
국제법 학자들의 해석도 이란의 논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버드 법대 방문교수 이오아니스 칼푸조스는 "데이터센터가 펜타곤의 JWCC(합동전투클라우드사업) 계약을 수행하는 한, 그 시설은 군사 목표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제52조 제2항은 군사 행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시설을 합법적 군사 목표물로 분류합니다. 기준은 군사 업무의 비율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서버 10만 대 가운데 단 하나의 클러스터가 군사 AI를 돌리고 있더라도, 건물 전체가 타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논리적 분리(가상 머신이나 가용 영역의 구분)는 물리적 타격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미사일이 건물에 떨어지면 군사 서버와 민간 뱅킹 서버가 함께 파괴됩니다.
이 사건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군사기지처럼 방어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누가, 어떤 비용으로?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방공은 이미 현실 문제가 되었습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의 제임스 셔즈는 "아이언 돔 같은 지대공 방어 시스템을 석유 시설이나 정부 인프라 옆에 배치하는 것은 이미 관행"이라며 "문제는 데이터센터를 핵심 인프라 목록에서 얼마나 높은 순위로 올릴 것이냐"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16대 핵심 인프라 부문에 포함시키고 있고, 영국은 2024년에 데이터센터를 핵심 국가 인프라로 지정했습니다.
문제는 규모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약 415테라와트시(TWh)였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입니다. IEA는 이 수치가 2030년까지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미국에서만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4년 183TWh에서 2030년 426TWh로 13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폭발적 성장의 원인은 인공지능(AI)입니다. IEA는 AI를 "이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AI에 최적화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늘어납니다. 미국에서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화학 제품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데이터 처리에 더 많은 전기가 들어가는 시대가 옵니다.
버지니아주의 '데이터센터 앨리'는 이미 주 전체 전력의 26%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수도 더블린 전력의 79%가 데이터센터로 들어갑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기존 CPU보다 2~4배 많은 전력을 소비합니다. 서버가 전기를 먹으면 열을 냅니다. 그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이 또 전기를 먹습니다. 효율적인 하이퍼스케일 시설에서도 냉각이 전체 전력의 7%를 차지하고, 비효율적인 시설에서는 30%를 넘깁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냉각이 멈추고, 냉각이 멈추면 서버가 과열되어 수분 안에 셧다운됩니다. 비상용 무정전 전원장치(UPS)와 디젤 발전기가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디젤 공급마저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비상 발전기의 작동 시간은 수일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3월 1일의 AWS 타격은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데이터센터 다이내믹스(DCD)의 분석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데이터센터 업계는 사이버 사고, 운영 장애, 자연재해에 대한 리스크 모델을 갖추고 있다. 군사 목표물로서의 법적 재분류에 대한 리스크 모델은 없다."
전기를 먹는 이 건물들이 미사일의 표적이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존의 주가는 공격 직후 오히려 약 3% 올랐습니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단일 리전(Region) 배치를 포기하고 다중 리전으로 이전하는 수요가 클라우드 매출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사업 기회가 되는 아이러니. 데이터센터는 전쟁의 도구이자 전쟁의 표적이며, 동시에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30.2 칩 생산과 무기체계
2026년 3월 2일, 카타르 라스 라판 산업도시.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이 시설을 타격한 뒤, 국영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는 천연가스 처리 및 수출 시설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라스 라판은 세계 최대 규모의 LNG 수출 거점입니다. 그런데 이 시설에서 천연가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물질이 있었습니다. 헬륨(Helium)입니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의 약 3분의 1을 생산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약 6,300만 세제곱미터. 라스 라판이 멈추자 그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헬륨이 왜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풍선을 채우는 가스 정도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헬륨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반도체를 만들 때, 실리콘 웨이퍼 위에 극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식각(Etching) 공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웨이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조지타운대학 안보신기술센터(CSET)의 제이콥 펠드고이즈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식각 공정 중에 웨이퍼에서 열을 끌어내야 합니다. 헬륨은 열 전도성이 뛰어난 기체이기 때문에, 웨이퍼 뒷면에 헬륨을 불어넣어 열을 빠르고 균일하게 제거합니다."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빛을 이용해 칩의 정밀한 회로 패턴을 인쇄하는 기술) 공정에서도 헬륨은 필수 소재입니다. 5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칩 제조에서 누설 감지(Leak detection)에도 쓰입니다. 헬륨을 대체할 물질은 없습니다. 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23년에 이미 이렇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헬륨 공급이 중단되면 글로벌 반도체 제조 산업에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약 3분의 2를 생산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세계 최대의 메모리 칩 제조사 두 곳이 모두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국제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헬륨 수입의 64.7%를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이 취약성을 직접 지적했습니다.
헬륨만이 아니었습니다. 브롬(Bromine)이라는 원소가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 형성에 쓰이는 화학물질입니다. 한국은 브롬 수입의 약 90%를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브롬 생산의 약 3분의 2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사해(Dead Sea) 연안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 당사자였습니다.
한국 국회에서 여당 의원 김영배는 이란 전쟁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공급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반도체 소재 및 장비 품목에 대한 수급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헬륨의 물리적 특성이 문제를 더 키웠습니다. 헬륨 원자는 원소 가운데 가장 작습니다. 기체 상태로는 아무리 정밀한 용기에서도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카타르에서는 헬륨을 극저온으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뒤, 단열 처리된 특수 저온 컨테이너에 담아 배로 수송합니다. 이 컨테이너의 보관 기한은 35일에서 48일입니다. 그 이후에는 액체 헬륨이 서서히 증발하여 기체로 돌아가고, 대기 중으로 날아갑니다. 비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물질입니다. 헬륨 전문 컨설턴트 필 콘블루스는 "세계 극저온 헬륨 ISO 컨테이너의 약 3분의 1이 카타르 안팎에 고립되어 있다"며, "분쟁이 끝나더라도 이 장비를 재배치하는 데만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전 세계가 헬륨 공급의 3분의 1을 잃으면, 보상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공급망 병목은 무기체계 생산으로 직결됩니다. 대만의 TSMC는 전 세계 최첨단 로직 반도체의 약 90%를 위탁 생산합니다. 엔비디아, 애플, AMD, 퀄컴의 칩이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AI 가속기의 단독 공급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만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합니다. 천연가스 비축분은 11일치에 불과합니다. 카타르가 대만 LNG 수입의 약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호르무즈가 닫히고 카타르의 생산이 멈추면, 대만의 전력 공급이 흔들리고, 전력이 흔들리면 칩 생산이 흔들립니다.
반도체는 현대 무기체계의 두뇌입니다. F-35 스텔스 전투기의 항전 장비,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의 유도 장치, 이지스함의 방공 레이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날아다니는 상용 드론까지 반도체 없이 작동하는 무기는 없습니다. 미국이 에픽 퓨리 작전에서 첫 24시간에 1,000개 표적을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은 AI가 정보를 처리하고 표적을 분류했기 때문이고, 그 AI는 GPU 위에서 돌아갔으며, 그 GPU는 TSMC의 공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헬륨이 없으면 그 공장이 멈춥니다.
칩의 공급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가장 편중되어 있으며, 가장 취약한 산업 체인입니다. 칩을 설계하는 기업은 미국에 있습니다. 설계를 위탁 생산하는 곳은 대만과 한국에 몰려 있습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만 만듭니다. 희토류 정제는 중국이 쥐고 있습니다. 이 체인의 어느 한 고리라도 끊기면, 전 세계의 무기 생산 라인이 멈춥니다.
미국이 이 취약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칩스법(CHIPS Act)으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고 있습니다. 동시에 AI 칩 수출 통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고성능 AI 칩의 중국 수출 허가 정책을 수정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했습니다. 하원 외교위원장 브라이언 매스트는 'AI 오버워치 법안(AI OVERWATCH Act)'을 밀어붙이며, AI 칩 수출 허가에 대한 의회의 거부권을 요구했습니다. 이 법안은 AI 칩 수출을 무기 판매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투기에 대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칩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는 것이 매스트 위원장의 말이었습니다.
AI 칩을 둘러싼 수출 통제는 과거 해군이 적국의 항구를 봉쇄하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입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는 중국의 AI 군사력 성장을 원천에서 질식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조지타운대학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동맹은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거의 모든 핵심 노드를 통제하고 있다." 이 구조적 우위를 보존하는 것이 미국 기술 전략의 핵심축입니다.
그런데 이란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그 구조적 우위를 흔드는 역설이 생겼습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카타르의 헬륨을 끊었고, 카타르의 헬륨 차단이 한국과 대만의 칩 공장을 위협했습니다. 미국의 전쟁이 미국의 무기를 만드는 공급망을 스스로 공격한 셈입니다.
대만은 이 취약성을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역설적 안보 자산으로 삼아왔습니다. TSMC가 파괴되면 전 세계 경제가 멈추니까 미국이 대만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2026년의 교훈은 달랐습니다. 적이 대만을 직접 침공하지 않아도, 해협 하나를 닫는 것만으로 대만의 칩 공장을 서서히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분석은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란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만들지 않았다. 그 취약성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30.3 에너지와 기술이 하나의 전장이 되는 시대
한국의 주식시장은 2026년 3월 첫째 주, 나흘 동안 18% 하락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낙폭이었습니다. 시가총액 5,000억 달러 이상이 증발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 폭락의 원인을 "에너지 안보 교란이 한국의 반도체 중심 주식시장에 연쇄적으로 전이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LNG 가격이 뜁니다. LNG 가격이 뛰면 전기 요금이 오릅니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칩 생산 원가가 올라갑니다. 칩 생산 원가가 오르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올라갑니다. 데이터센터 비용이 오르면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 비용이 올라갑니다. AI 비용이 오르면 그 AI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국가의 국방비가 올라갑니다. 하나의 해협이 만든 에너지 쇼크가 기술과 안보의 연쇄를 타고 전 세계 국가의 경쟁력을 재배열하는 것입니다.
이 연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기 가격입니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누가 가장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를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수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IEA의 2025년 보고서가 "전기는 새로운 석유가 되고 있다(Electricity is becoming the new oil)"고 선언한 것은 비유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전력 수요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이 수요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칩스법이 동시에 추진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자국에 반도체 공장과 배터리 공장을 유치하려면, 그 공장이 소비할 막대한 전력을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장 없는 칩스법은 종이고, 전기 없는 공장은 고철입니다.
문제는 전력의 질입니다. 데이터센터는 1초의 전압 강하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고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적(Intermittent)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전력망이 흔들리면, 적의 물리적 공격이 없어도 데이터센터가 멈출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빅테크 기업과 국방부가 동시에 주목하는 기술이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데이터센터 옆에 SMR을 건설하여 외부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에너지 요새(Micro-grid)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안보 정책입니다. 적의 사이버 공격이나 전력망 타격으로부터 핵심 연산 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체계입니다.
대만의 TSMC는 204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기후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전략입니다.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 호르무즈 같은 초크포인트 하나에 의해 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2026년의 위기가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한국에도 같은 교훈을 적용했습니다. "반도체 리더십을 지키려면 그 반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먼저 지켜야 한다."
이란 전쟁이 만들어낸 에너지 쇼크는 흥미로운 비대칭을 드러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교란에 허덕이는 동안, 중국은 다른 경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완화되면서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가 중국으로 더 많이 흘러들었습니다. 중국은 자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가동하며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유지했습니다. 헬륨 시장에서도 러시아산 헬륨이 중국 시장에 진입할 여지가 생겼습니다. CNBC의 분석에 따르면, "카타르의 차질이 지속되면 러시아는 중국의 헬륨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에너지 위기를 겪고, 그 에너지 위기가 반도체 공급망을 흔들고, 그 공급망의 혼란 속에서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 전쟁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멀어진 적은 드물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전력망 과부하와 수자원 고갈을 우려하는 풀뿌리 저항이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지연과 취소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중동에서는 AWS의 사우디 투자가 불확실해졌습니다. 브룩필드 자산운용은 카타르와의 200억 달러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을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습니다. 유로뉴스는 "중동의 클라우드 및 AI 전략이 우려스러운 방식으로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세기에는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Petro-state)가 지정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21세기에는 값싼 전기를 무한하게 공급하여 AI와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수 있는 국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석유 수송로를 지키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했던 시대는, 자국의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우라늄, 천연가스, 그리고 전력망 사이버 보안을 지키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의 실패가 기술의 실패로 이어지고, 기술의 실패가 군사적 열세로 직결되는 시대. 배럴(Barrel)의 가격표가 와트(Watt)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 호르무즈 해협의 21마일이 닫혔을 때 세계가 목격한 것은 석유 위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에너지와 기술과 안보가 하나의 전장 위에서 뒤엉켜 분리할 수 없게 된 21세기의 지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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