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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3장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법
정치와 사람
13장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법
김경진
제4부 사람을 지키다
13장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법
서기 626년, 현무문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장안의 궁궐에서 당태종 이세민은 새로운 조정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형 건성과 아우 원길을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낸 뒤 황좌에 오른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할 길이었습니다. 신하들 대부분은 새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거나 아부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위징이었습니다.
위징은 원래 태종의 형 건성의 참모였습니다. 건성에게 이세민을 먼저 제거하라고 강력히 건의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태종이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어째서 나의 형에게 나를 이간질하였소?" 위징은 허리를 굽히는 대신 태종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대답했습니다. "태자(건성)께서 제 말을 들으셨더라면 오늘의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통의 군주였다면 그 자리에서 위징의 목을 쳤을 것입니다. 태종은 웃었습니다. 자신에게 아첨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입니다.
이후 17년간 위징은 200여 차례 이상 황제에게 직언을 올렸습니다. 황제가 화려한 궁궐을 짓겠다고 하면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입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습니다"라며 막았습니다. 황제가 사냥을 즐기며 정사를 소홀히 하면 "폐하의 활이 짐승을 쏘는 동안 천하의 민심은 폐하를 쏘고 있습니다"라며 따져 물었습니다. 태종은 때때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저 시골 촌놈을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황후 장손씨가 조용히 말렸다고 전해집니다. "충신이 있다는 것은 명군이 있다는 뜻입니다."
위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태종은 조회를 파하고 통곡했습니다.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 이 탄식은 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리더십의 교과서로 남아 있습니다. 정관의 치라 불리는 태종의 태평성대는 위징이라는 날카로운 거울이 만들어낸 정치적 예술이었습니다.
지도자의 집무실에 예스맨만 남는 것은 조직에 내리는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리더가 회의 테이블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참석한 모든 참모가 수첩에 적으며 훌륭한 통찰이라고 입을 모은다면 그 방의 공기는 이미 오염된 것입니다.
건강한 의사결정은 갈등과 반론의 마찰열 속에서 단련됩니다. 리더의 구상에 깃든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고,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무참히 깨부수는 반골 기질의 참모가 방 안에 반드시 한 명은 있어야 합니다. 그 한 명이 사라지면 조직은 절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가 됩니다.
예스맨이 지배하는 조직의 증상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매우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결정이 빠르고, 반대 의견이 없으니 회의 시간이 짧고, 조직원들 사이에 마찰이 없습니다. 병원 응급실의 심장 모니터에 직선이 나타나면 아무런 잡음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평온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건강한 심장은 끊임없이 불규칙한 파동을 만들어냅니다. 건강한 조직도 끊임없이 의견의 충돌과 긴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견을 불경스러움으로 취급하고 직언을 항명으로 받아들이는 리더는 결국 자신이 만든 침묵의 감옥 안에서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검찰 조직에서도, 국회에서도, 기업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수사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후배 검사를 짓누르면 수사의 객관성이 무너지고, 법안의 허점을 지적하는 참모를 배제하면 입법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참모에게 실패할 권리를 허락하는 것은 리더십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뛰어난 참모일수록 전례 없는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실수를 범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걷는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한 참모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리더의 밑에서는 아무도 모험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참모들은 복지부동의 기술을 완성합니다. 상부의 지시만 기계적으로 수행하고, 자신의 의견은 입 안에 묻어둡니다. 책임이 따르는 창의적 제안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조직은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 능력이 제로입니다.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모두가 얼어붙어 리더의 입만 바라봅니다.
반면, 실패의 쓴잔을 마신 참모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리더는 조직 전체에 거대한 역동성을 불어넣습니다. "첫 번째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 두 마디의 질문이 참모를 무능한 낙오자에서 경험 많은 전사로 탈바꿈시킵니다. 참모들은 리더가 자신의 뒤를 받쳐준다는 굳건한 믿음 아래, 두려움 없이 정책을 시도합니다.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과 무능을 용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도전하다 실패한 것과 태만하여 실패한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전자에게는 학습의 기회를, 후자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 경계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리더의 판단력입니다.
사람의 진가는 성공의 환호 속에서가 아니라 실패의 먼지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는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는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넘어진 참모를 일으켜 세우는 데 쓴 시간은, 새로운 참모를 처음부터 교육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언제나 효율적입니다.
정치판에서 평생 전투원으로 살아온 이들은 필연적으로 '쌈닭'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적의 급소를 찌르고 진영의 선봉에 서서 돌격하는 역할은 대중의 말초적인 열광을 이끌어냅니다. 지지자들은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포문을 여는 리더에게 환호합니다. 그 환호에 취하면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전투에서 이길 수 있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장수의 덕목이지만,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왕의 덕목입니다. 쌈닭 이미지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그 바깥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는 장벽이 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나를 모르거나 경계하는 사람들은 더욱 등을 돌립니다.
어느 늦은 밤을 상상해 봅니다.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온 오래된 참모가 술잔을 비우며 입을 엽니다. "이제 그 뾰족한 칼을 거두고, 적들마저 품어 안는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계속 쌈닭으로 남으면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평생을 전장에서 뒹굴어온 사람의 턱에 힘이 들어갑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 사람이 어떤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머리로는 압니다. 하지만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의 싸움이 틀렸다는 것인가. 나의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인가.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그 말을 삼키고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과, 그 말을 뱉어내고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 전자는 더 큰 산에 오를 수 있고, 후자는 지금 서 있는 봉우리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자존심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는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위징이 태종에게 거울이 되었듯, 쓴소리를 하는 참모는 리더에게 거울입니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아름다운 모습도, 추한 모습도 왜곡 없이 보여줍니다. 거울을 깨부수면 추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추함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질 뿐입니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불편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고, 때로는 모욕적이기까지 합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리더만이 자신의 결함을 교정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울을 깨는 순간, 리더는 어둠 속에서 혼자 걷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