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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6장 대통령 부부에게 쓴소리한 유일한 사람
한동훈 이야기
PART 02 강강약약(強强弱弱) 한동훈 · 원문 01
6장 대통령 부부에게 쓴소리한 유일한 사람
김경진
2024년 1월 21일, 주말 오후였습니다.
겨울 햇살이 창문을 비스듬히 가르던 그 시간, 한동훈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화면에 뜬 이름은 대통령실 유력인사.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화가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을 대신한 목소리는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위원장님, 사퇴를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동훈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전화는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 그가 던진 열두 글자가 용산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고작 열두 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열두 글자는 용산 대통령실이 목숨 걸고 지키려했던 마지노선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 그것은 김건희 여사였습니다.
한동훈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순간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타협점을 찾으려 애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동훈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국민 보고 나선 길입니다. 할 일은 하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다음 날인 1월 22일, 한동훈은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사퇴 요구설이 언론에 이미 번진뒤였습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입니다.”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용산과 여의도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심'과 '한심'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의 마음과 한동훈의 마음. 한때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거리가,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틀 뒤인 1월 23일, 충남 서천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전통시장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찾았고, 한동훈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쳤습니다.
한동훈은 윤석열 앞에서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 인사는 언론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굴복으로 읽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의로 읽었습니다. 한동훈 자신은 그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는 대통령 전용열차에 동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봉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친윤계 핵심인 L ㅁ의원은 "대화에 오해가 있었다"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한동훈이 대통령실과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그는 '쓴소리하는 각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부하는 법을몰랐고, 눈치 보는 법도 몰랐습니다.
의료 사태가 터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2024년 2월 6일,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병원 응급실이 하나둘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기다리던 환자들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국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있었습니다. 복지부 장관은 단계적 증원을 주장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일괄 증원을 원했습니다. 결국 2000명이 확정됐습니다.
2024년 4월 1일, 부산 유세 현장이었습니다. 총선을 앞둔 뜨거운 현장에서 한동훈은마이크를 잡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습니다.
"2000명 숫자를 고집한 것은 아쉽습니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오늘 정부도 2000명의 숫자를 고수하지 않고 대화할 거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비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에 이견을 표명한 것입니다. 그것도 전국에 생중계되는 선거 유세장에서.
용산에서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당에서 왜 저러느냐"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제가 국민의힘을 이끈 후 지적한 부분을 바꾸지 않은 게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9월 6일, 한동훈의 중재로 '여·야·의·정 협의체'가 제안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마침내한 발 물러섰습니다.
"2000명이란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합리적 안을 가져오면 논의하겠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중재로 대화의 장이 열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제안했습니다. "10년 동안 1004명 증원안 등을 살펴보며 단계적으로늘리는 방안을 논의합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2025년 11월 27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결론은 냉혹했습니다.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미흡하고, 논리 정합성이 부족합니다."
감사원은 더 나아가 지적했습니다.
"복지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맞춰 필요한 의사 수를 추계했습니다."
한동훈이 처음부터 우려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대에 앞서 너무 일찍 옳았을 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헌정사에 영원히 기록될 그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한동훈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려 했지만, 그는 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계엄 해제를 이끌었습니다.
계엄은 해제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최고위원 5인이 총사퇴했습니다. 지도부가 붕괴됐습니다.
12월 16일, 한동훈은 당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 탓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2026년 1월 13일 밤 11시 45분.
깊은 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기습적으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안건은 한동훈에 대한 제명 의결이었습니다.
1월 29일, 최고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제명이 확정됐습니다.
한동훈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2024년 1월 21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전화를 받던 그날부터 이순간까지. 정확히 2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부부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의료 사태에서 고집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비상계엄을 막았습니다.
그 대가로 그는 당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권력 옆에서 아부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훗날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분들은 대통령과 밥 먹고 다니면서 계속 자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직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뭐 하셨는지를 그분들이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강약약(強强弱弱).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게.
그것이 한동훈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 때문에 그는 가장 강한 자, 대통령과 그의 부인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각료가 됐습니다.
그 대가가 제명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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