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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0장 인생을 건 수사
한동훈 이야기
PART 03 론스타, 6조 원의 국익을 지킨 한동훈 · 원문 01
10장 인생을 건 수사
김경진
2006년 어느 늦은 밤.
서초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7층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유리창에 어른거렸지만, 사무실 안의 서른셋 젊은 검사는 그것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수만쪽에 달하는 서류 뭉치가 쌓여 있었습니다. 식은 믹스커피 종이컵이휴지통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동훈 검사는 밤새 형광펜을 들고 숫자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파고드는 사건은 '론스타(Lone Star)’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본부를 둔 이 거대 사모펀드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 3,834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외환위기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절, 정부는 부실화된 외환은행을 급히 매각해야 했고, 론스타는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하면서 합병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감자(減資)' 설을 시장에 퍼뜨렸습니다. 감자를 하면 주가가 떨어집니다.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려외환카드 주식을 팔아치웠고,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론스타는 그렇게 떨어진 주가를기반으로 외환카드를 헐값에 합병했습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론스타 측은 "경영상의 판단이었고, 감자 계획은 나중에 철회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법률 자문단이 있었고, 그들의 논리는 철옹성처럼 보였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넘어온 자료에는 의심 정황만 있을 뿐,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할결정적 증거는 없었습니다.
한동훈 검사는 현대차그룹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소속청 복귀를 준비하던 참이었습니다. 상부는 그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맡겼습니다. 그는 동료 이동열 검사(훗날서울서부지검장)와 함께 론스타 사건을 맡았습니다.
처음 기록을 받아들었을 때, 그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직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포장해도 죄는 죄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이득을 보게 놔둘 수는 없다.’
그는 일주일에 닷새를 검찰청사에서 잤습니다.
신문지를 덮고 소파에서 눈을 붙이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기록을 뒤졌습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고행이었습니다.
그의 승부수는 론스타의 자문사였던 씨티그룹(당시 살로몬스미스바니)에 대한 압수수색이었습니다.
외국계 투자은행에 대한 강제 수사는 당시로서는 금기였습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상부에서는 신중론이 나왔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국제적 망신만 당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동훈은 법원을 설득했습니다.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 압수된 수만 건의 이메일 속에서 한동훈은 마침내 '스모킹 건(smokinggun)'을 찾아냈습니다.
론스타 측이 감자 계획을 발표하던 바로 그 시점, 실무자들 사이에서 오간 이메일에는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Capital reduction is off the table."
'감자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겉으로는 감자를 검토한다고 시장에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이미 감자계획을 폐기했다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의도적인 허위 정보 유포, 즉 주가조작이었습니다.
한동훈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대한민국을 우습게 아는 그들의 오만에 대해 정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증거를 바탕으로 그는 끈질긴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외국인 임원들을 소환하고 논리적인 추궁끝에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론스타 코리아 대표 폴 유에 대한 구속영장을 네 번이나 기각했습니다. 사법부와 검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외압의 기미. 그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은 10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동훈은 부산지검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아 내려가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로 올라와 공판에 참석했습니다. 그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2011년, 대법원은 마침내 론스타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대표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범죄자를 처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론스타가 '범죄를 저지른 부도덕한 자본'임을 대한민국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날 밤, 한동훈 검사는 짐을 정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동훈이 밝혀내고 얻어낸 유죄 판결 하나가, 20년 뒤 대한민국을 6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소송에서 구해낼 유일한 무기가 될 줄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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