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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2장 새로운 보수의 언어
한동훈 이야기
PART 05 기득권을 내려놓은 한동훈 · 원문 04
22장 새로운 보수의 언어
김경진
한동훈이 정치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동료 시민(Fellow Citizens)"이라는 호칭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유권자를 부르는 말은 대개 '국민 여러분'입니다.
조금 더 친근하게 부를 때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은 낯설었습니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의식적으로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동료 시민입니다."
이 표현에는 그의 정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걸어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Jon Favreau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추구했던 것과 같은 철학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이끄는 영웅이 아니라, 국민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대변인이라는생각입니다.
한동훈은 '운동권 청산'도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운동권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민주화 운동의 유산을 독점하면서 새로운 기득권이 된 세력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결탁해서 본인이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직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운동권'은 오랫동안 도덕적 우위를 점해왔습니다. 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역사적 정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동훈은 그 유산이 새로운 특권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언어는 보수의 전통적 레토릭과 달랐습니다. 과거의 보수는 '반공'과 '성장'을 앞세웠습니다. 반공은 냉전 시대의 유산이었고, 성장은 산업화 시대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은 끝났고, 고도성장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그 언어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한동훈은 다른 언어를 찾았습니다. 그는 '공정'을 말했습니다. 그는 '상식'을 말했습니다. 그는 '기회의 평등'을 말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원래 진보 진영이 선점해왔던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것을 보수의 언어로 재정의하려 했습니다. "공정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시장경제의 핵심이 바로 공정한 경쟁입니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 그것이 보수가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그의 새로운 언어가 보수 지지층 전체에게 수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그를 ' 위장한 진보'라고 비난했습니다. 다른 일부는 '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도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오래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수의 가치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낡은 언어로 설명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5 총선 패배와 성찰
2024년 4월 10일 밤. 개표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격차가 벌어지기시작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이 12석을 가져가며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참패였습니다.
한동훈은 여의도 당사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주변 참모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온 것은 총선 승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의석수로 보면 2020년 총선보다 더 나빴습니다.
다음 날인 4월 11일 오전, 한동훈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짧고 담담한 회견이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습니다."
변명은 없었습니다. 남 탓도 없었습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상대방의 비방 전략을 비난하거나, 언론의 편파 보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정치인이 패배 후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곧이어 변명이 따라붙고, 다른사람들에게 책임이 분산됩니다. 한동훈의 사퇴 회견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로 거기서 멈췄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그의 태도를 '너무 쉽게 물러났다'고 비판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패배한 장수가 할 일은 변명이 아닙니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후임자의 몫입니다."
그는 그 후 한동안 공개 활동을 자제했습니다. 칩거라 부를 수도 있고, 성찰의 시간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그가 석 달 후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가 2025년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정치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일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4월의 패배는 한동훈에게 상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필요한 상처였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은 승리에서 자만을 배우고, 패배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한동훈이 그 패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말해줄 것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패배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정치에서 드문 장면을 남겼습니다.
"정치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치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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