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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0장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다
한동훈이 대한민국에 남긴 그간의 흔적
10장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다
인혁당 빚고문 해결과 제주 4·3 직권재심
김경진
국가 과오 인정 및 피해자 구제 — 인혁당·4·3 사건 (2022~2023) 인혁당 고문 사건 해결, 제주 4·3 사건 직권 재심을 추진했습니다. "진영논리나 정치 논리는 배제하고 오로지 개별 국민의 억울함만을 생각했다"는 원칙 아래, 보수 정권에서 과거사 피해자를 구제한 이례적 행보였습니다.
국가가 진 빚, 국가가 갚다 — 한동훈, 인혁당과 4·3의 억울함을 풀다
1 84세 노인에게 15억을 토해내라는 나라
이창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022년 당시 84세. 1974년 유신정권 시절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갔습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그 혐의는 거짓이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으로, 피해자들은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장기간 수감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8년, 피해자 76명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뒤이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판결에 따라 2009년 배상금을 가지급 받았습니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의가 작동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년 뒤인 2011년 대법원이 "배상금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며 배상금의 절반인 약 5억 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대법원이 이자 산정 기준 시점에 관한 판례를 변경하면서, 이미 지급된 배상금 중 일부가 초과 지급분이 된 것입니다.
이창복 씨는 받은 배상금으로 평화재단 설립에 보태고 여생을 보낼 시골집을 샀습니다. 5억 원을 돌려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이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에는 이씨 자택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했습니다.
돌려주지 못한 5억 원에는 해마다 이자가 붙었습니다. 원금 5억 원에 이자만 9억 6천만 원이 쌓였습니다. 국가로부터 10억 9천만 원을 받았다가 오히려 15억 원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던 사람이, 무죄를 받고 배상금을 받았다가, 판례가 바뀌는 바람에 받은 돈보다 더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사채업자처럼 이자를 물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빚고문'이라 불렀습니다.
2 첫 출근날 보고서를 본 장관
2022년 5월 18일.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으로 첫 출근을 한 날입니다. 그날 올라온 보고서 중에 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와 이창복 씨에게 화해를 권고한 사안이었는데, 법무부는 박범계 전 장관 시절 1차 화해권고를 거부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18일에도 2차 화해권고를 거부한 상태였습니다.
한동훈은 이 보고서를 보고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입장을 바꿨습니다.
2022년 6월 20일, 한동훈 장관 지시로 서울고검, 국가정보원과 함께 '초과 지급 국가배상금 환수 관련 관계기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창복 씨가 국가에 갚아야 하는 과다 배상금의 지연 이자 약 9억 6천만 원을 면제하고, 원금 5억 원만 분할 납부하도록 결정했습니다.
한동훈은 그날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의 상식적인 눈높이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책임 있는 당국자가 책임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개별 국민의 억울함만을 생각했고, 진영논리나 정치 논리는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의 무게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첨예한 진영 대립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진보 진영은 유신정권의 대표적 인권 유린 사례로, 보수 진영 일부는 국가안보 차원의 불가피한 조치로 각각 달리 해석해왔습니다. 보수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이 사건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은 정치적으로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한동훈은 진영 논쟁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법무부가 소송수행청인 국정원과 깊이 논의해 결정한 것이며, 오직 팩트, 상식,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논리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산수(算數)였습니다. "가지급 이후의 판례변경이라는 이례적 사정으로 이른바 '줬다 뺐는' 과정이 생겼고, 국가배상으로 받을 돈은 6억인데 토해내야 할 돈은 15억이 되어 그대로 방치하면 해당 국민이 억울해지게 됐다." 누가 보아도 불공정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3 한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다
이창복 씨 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한 뒤, 한동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2년 8월, 인혁당 사건의 다른 피해자 2명(고 전재권 씨와 정만진 씨의 유족)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각각 지연이자 8억 9천만 원과 3억 7천만 원을 면제하고 원금만 분할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한동훈은 이 조치에 대해 "이번 조치는 지난 6월 이창복 씨에 이어, 진영 논리를 초월해 민생을 살피고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는 국가의 임무를 다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혁당 피해자 77명의 배상금 490억 원 중 211억 원이 깎였고, 39명은 받은 돈보다 더 큰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의 이자를 면제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별 사안마다 법원의 화해권고를 기다려야 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피해자 이창복 씨의 아들 이송우 시인은 아버지의 빚고문이 끝난 것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았죠. 그런데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취임사와는 멀리 떨어진 일만 하다 퇴임하지 않았습니까." 이창복 씨 본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이 큽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걸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가, 결국 다시 보수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주니, 참 절반의 성공이라 해야할지요."
진보 정권에서 풀지 못한 매듭을 보수 정권의 장관이 풀었습니다. 그 장관은 진보도 보수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국민이 있으니 풀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근거였습니다.
4 70년 전 억울함에 국가가 무릎 꿇다 — 제주 4·3 직권재심
한동훈의 과거사 구제는 인혁당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취임 석 달째인 2022년 8월, 그는 제주 4·3 사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주민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수천 명은 죄가 없음에도 재판을 통해 내란죄·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했습니다.
2022년 2월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군사재판(군법회의)을 받은 수형인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주고등검찰청 산하에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설치되어 군법회의 수형인 340명에 대한 직권재심을 청구했고, 이 중 250명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에 명시된 직권재심 대상은 군사재판 수형인뿐이었습니다. 일반재판을 받은 수형인 약 1500명은 이 혜택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같은 사건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갔는데, 군사재판을 받은 사람은 국가의 도움을 받고, 일반재판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 비용을 들여 재심을 청구해야 했습니다.
제주 4·3 도민연대의 한 가족은 그 모순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거주하는 강철훈 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4·3 당시 재판을 받고 끌려가 다시는 제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군사재판을 받았고 아버지는 일반재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아버지는 재판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한동훈은 이 간극을 메우라고 지시했습니다. "4·3특별법에 명시된 '군법회의'뿐만 아니라 '일반재판' 수형인들과 그 유가족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권리구제 필요성도 크다. 앞으로 4·3특별법에 명시되지 않은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도 직권재심 청구를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
법에 명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지시였습니다. 한동훈은 이에 대해 "과거 정부가 일반재판 4·3 희생자까지 직권재심 업무를 확대하지 않은 것은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군사재판은 수형인명부가 존재하지만, 일반재판은 각각의 판결문을 전수조사해야 해 해독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니 하지 않은 것이라면, 손이 많이 가더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한동훈의 판단이었습니다.
제주 4·3 유관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주 4·3 평화재단은 "이번 조치가 일반재판 수형인 명예회복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했고, 제주 4·3 연구소도 "4·3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 조치를 두고 "인혁당 피해자 이자 면제 결정에 이은 '탈진영' 행보"라고 보도했습니다.
5 왜 보수 정권의 장관이 이 일을 했는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과오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비극입니다. 이 두 사건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몫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일부 성과를 냈지만 인혁당 빚고문이나 4·3 일반재판 수형인 문제는 끝내 풀지 못했습니다.
한동훈은 이 일을 '진보의 과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과오'로 보았습니다. 국가가 잘못한 일은 어느 정권이든 바로잡아야 합니다. 보수 정권이라고 해서 보수 정권의 과오를 외면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수 정권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할 때, 그 행위는 더 큰 무게를 갖습니다.
한동훈은 2023년 7월 제주를 직접 방문해 합동수행단의 업무를 점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는 사법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다. 70여 년 전 일에 대한 직권재심은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이지만, 현재 기준 사법 시스템 안에서 억울함이 풀려야 정당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70년 전 사건의 판결문을 한 장 한 장 찾아 해독하고, 생존자를 확인하고, 유족을 만나고, 재심을 청구하는 일은 성과가 빨리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정치적으로 표가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전 정부들이 "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한동훈은 그 일을 했습니다. 인혁당에서는 빚고문을 끝냈고, 제주 4·3에서는 직권재심의 문을 넓혔습니다. 두 사건 모두 그의 정치적 기반인 보수 진영에서는 불편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불편함을 감수했습니다.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에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설 자리는 없다"는 말은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 행정 결정으로 뒷받침된 원칙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