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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2장 나라의 구조를 고민하다
한동훈이 대한민국에 남긴 그간의 흔적
12장 나라의 구조를 고민하다
이민청 설립, 국제법무국 신설, 간첩죄 개정
김경진
한동훈, 이민청 설립과 대한민국의 구조를 고민하다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한동훈은 취임사에서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이민청 설립 검토를 포함해 이민 정책을 수준 높게 추진해 나갈 체제를 갖춰 나가겠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일성으로 이민 이야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보통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 검찰 개혁이나 법질서 확립을 먼저 말합니다. 그런데 한동훈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느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가 본 숫자는 이랬습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뒤 생산가능인구가 지금보다 1,000만 명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일할 사람이 1,000만 명이나 사라진다는 것은, 공장이 멈추고, 병원이 문을 닫고, 군대가 줄어들고, 연금이 바닥난다는 뜻입니다. 한동훈은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인구 감소는 출산율 회복 정책만으로는 이미 늦었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더 낳으라는 정책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출산 장려는 계속하되, 그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이민으로 메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민정책 없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10년 뒤에 '왜 그때 하지 않았는지' 원망받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한동훈이 세계를 둘러본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호주는 "인구를 늘리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캐나다는 150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온라인 이민지원 시스템을 도입해 영주권을 신속하게 내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조차 브루킹스연구소를 통해 "합리적 이민정책 개발은 국가를 건강 상태로 되돌리는 수단"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세계의 선진국들은 이미 이민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만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이민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입국은 법무부가,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노동부가, 다문화 가정 지원은 여성가족부가, 사회 통합은 행정안전부가 각각 따로 맡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 환자를 다섯 명의 의사가 서로 상의하지 않고 각자 진료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이것을 조정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예산 배분 권한도 없고 실질적인 힘이 없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동훈은 이 구조를 바꾸려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이민청을 신설하고, 42개 법률에 흩어져 있는 출입국 업무를 이민청장 한 사람에게 모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민청이 출입국 및 체류 관리, 국적, 난민, 외국인 사회 통합 등 이민 관련 업무 전체를 맡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한동훈이 특히 강조한 것은 "유연한 이민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라는 원칙이었습니다. 문을 열되, 아무에게나 열지는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와 IT 강국인데 우수한 IT 인력이 안 들어오는 이유는 예측 가능성 때문"이라며 "유능하고 검증된 분들에 대해서는 파격적으로 대우하겠다"고 했습니다. 고급 인력에게는 빠르게 문을 열어주고, 불법 체류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질서를 잡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이 추천하는 숙련 외국인 근로자에게 체류 자격을 파격적으로 전환해주는 제도도 약속했습니다.
한동훈은 전남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전남은 2004년까지 인구 200만 명대를 유지했는데 지난해 181만 명까지 감소했다"며 지방 소멸의 위기를 직접 거론했습니다. 무안공항 무사증 제도, 조선업 외국인 인력 확보, 외국인 계절근로자 확대 등 지역 맞춤형 정책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전남도지사는 "체계적 외국인 정책을 위해 이민청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화답했습니다.
한동훈은 이민정책을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국가적 중대 사안으로 보았습니다. 1950년대 농지개혁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기초를 놓았듯이, 이민개혁이 인구 절벽 시대에 나라의 미래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이라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민청 설립은 사실 민주당이 4년 전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자 민주당은 반대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이 좋은 정책이 되기도 하고 나쁜 정책이 되기도 하는 여의도의 풍경이었습니다.
2024년 2월, 이민청 신설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습니다. 법무부를 중심으로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관계 부처의 조율을 거친 법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도 소극적이었고, 거대 야당인 민주당도 무관심했습니다. 한동훈이 법무부를 떠나 정치에 입문한 뒤,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이민청 법안은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한 언론의 기고문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부처 칸막이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한동훈이라는 개인 역량에만 의지한 이민개혁은 예견된 한계이기도 했다. 아무도 책임질 사람도 없고 수습할 부처도 없다. 이대로 막을 내리게 되면 또다시 잃어버린 5년을 추가하게 되고, 그 부담은 미래 세대에게 전가될 뿐이다."
한동훈이 이민청을 추진한 것은 단순히 외국인을 더 많이 들여오자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구조 자체를 고민한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일할 사람이 사라지는 나라에서, 지방이 텅 비어가는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 던진 이 질문은 법무 행정의 범위를 넘어 국가 설계의 영역에 닿아 있었습니다.
이민청은 아직 설립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남북도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민청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한동훈이 던진 화두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구 절벽이라는 시한폭탄 앞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들어야 합니다. 한동훈은 그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한동훈이 바꾼 간첩죄 — 73년 만의 개정, 그 전말
1 낡은 법의 구멍
대한민국 형법 제98조는 195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였습니다. 조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서 '적국'은 대법원 판례상 북한만을 가리킵니다. 70여 년 전 북한만이 위협이던 시절에 쓰인 법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설계도를 중국 기업에 넘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위해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항공모함을 몰래 촬영해 외국 SNS에 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법에 적혀 있는 '적국'이 북한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법으로 처벌할 길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산업기술보호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기술보호법의 법정형은 15년 이하 징역으로, 사형까지 가능한 간첩죄보다 처벌 수위가 훨씬 낮았습니다. 국가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외국에 팔아넘긴 사람을 '간첩'이 아니라 단순 기밀유출범 정도로 다루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 간첩인데 간첩죄를 쓸 수 없다 — 정보사 기밀유출 사건
이 법의 구멍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있습니다.
2024년 7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가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블랙요원'들의 실명과 신상, 위장 기업 정보 등 2·3급 군사기밀을 중국 정보요원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A씨는 2017년 중국 연길 공항에서 중국 정보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에게 포섭된 뒤 7년간 기밀을 빼돌리고, 대가로 약 1억 6천만 원을 차명계좌로 받았습니다.
누가 봐도 간첩 행위입니다. 그런데 군 검찰은 A씨에게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죄를 적용했습니다. 유출된 기밀정보가 '적국'인 북한이 아닌 중국의 정보기관으로 흘러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 부산 해군기지에 정박한 미국 항공모함과 수원 공군기지 등을 중국인 유학생이 무단 촬영해 중국 SNS에 유출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이 역시 간첩죄로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에 군사기밀을 넘기면 간첩. 중국에 넘기면 간첩이 아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3 한동훈,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가운데 간첩죄 확대 문제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이슈화하고 공론화한 사람은 한동훈입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이 문제를 꺼냈습니다. 법무부 장관 재임 중에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시절에도 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24년 7월 당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간첩법 개정을 아예 당론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정보사 기밀유출 사건이 터지자 한동훈은 SNS에 이렇게 썼습니다. "중국 국적 동포 등이 대한민국 정보요원 기밀 파일을 유출했다.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죄로 처벌을 못 한다. 우리나라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8월에는 국회에서 열린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간첩죄에 있어 적국을 외국으로 바꿔야 한다."
한동훈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간첩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 러시아, 어느 나라든 우리 국가기밀을 노리는 스파이가 있다면 간첩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둘째, 다른 나라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확대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2023년 국가안보법을 도입했으며, 중국도 2023년 간첩법을 개정해 처벌 범위를 넓혔습니다. 셋째, 이것은 단순한 형벌 강화가 아니라 국익과 국민의 안전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동훈은 "형벌 규정의 확대 문제가 아니라 국익과 국민의 문제, 그리고 세계질서 속 우리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철학의 문제"라고 규정했습니다.
4 여야 공방과 길고 긴 입법 과정
한동훈의 주장에 야당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간첩죄를 넓혀야 한다는 큰 방향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이견이 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장경태, 강유정, 박선원, 위성락 의원 등이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세부 쟁점에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반대 측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법에서 말하는 '국가기밀'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입니다. 대법원 판례가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설될 경우 외국에 이익이 되고 대한민국에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명백하다면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어서, 외국인과 교류하는 일반 국민까지 간첩 혐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둘째, 국정원의 국내 사찰 범위가 다시 넓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입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11월 13일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공청회가 필요하다며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오지 않아 처리가 미루어졌습니다. 이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입법 논의가 멈추었습니다.
2025년 11월 법무부 장관 정성호가 개정 의사를 재차 밝히면서 논의가 재개되었고, 2025년 12월 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간첩죄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간첩죄 개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에 안건으로 오른 것 자체가 헌정사상 처음이었습니다.
5 73년 만의 개정 — 2026년 2월 26일
2026년 2월 26일, 간첩죄 적용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의 첫 손질이었습니다.
본회의 표결 결과는 재석 170명 중 찬성 163명, 반대 3명, 기권 4명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같은 법안에 묶인 법왜곡죄에 반대하며 표결 자체에 불참했습니다.
개정된 내용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기존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한다는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신설된 조항은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하여 외국 등의 지령, 사주, 그 밖의 의사 연락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는 종전과 같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형량에 차이를 두어 '적국'과 '외국'을 구분하되, 외국을 위한 기밀 유출도 간첩죄라는 무거운 이름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북한뿐 아니라 어떤 외국을 위해 국가기밀이나 첨단기술을 유출한 경우에도 간첩죄가 적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국 기업이나 해외 연구조직과 연계된 산업 스파이 행위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6 한동훈이 이 문제에서 갖는 의미
간첩죄 개정은 한동훈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야 의원들이 수십 건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법무부와 국정원이 논의를 거듭했으며, 국민청원에 5만 명 이상이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공론의 장 한가운데로 끌어낸 사람은 한동훈입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처음 개정을 추진했고, 비대위원장 시절 재차 강조했고, 당대표가 되어 당론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정보사 기밀유출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빠르게 짚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법무부 장관에서 당대표까지, 직책이 바뀔 때마다 한 번도 이 주제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검사 출신 정치인이 법의 빈틈을 발견하고,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정치적 자원을 투입한 사례입니다.
개정된 법은 공포 절차를 거쳐 6개월 뒤 시행됩니다. 73년 된 낡은 울타리가 비로소 새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한동훈과 국제법무국 신설 — 나라 곳간을 지키는 조직을 만들다
1 왜 이 조직이 필요했는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외국 투자자가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있습니다. 이것을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외국 기업이 "한국 정부 때문에 투자금을 손해 봤다"며 국제 중재기관에 소송을 거는 것입니다.
2023년 7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는 총 10건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이 론스타(약 6조 원 규모)와 엘리엇(약 7700억 원 규모)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국제 소송에 대응할 전담 조직이 법무부 안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송이 걸릴 때마다 외국 로펌에 사건을 맡기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가 반복되었습니다. 한동훈은 이 구조의 문제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ISDS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는 국내에서 대응할 역량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외국 로펌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이 문제를 더 직설적인 비유로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중재 관련 로펌이나 비즈니스가 굉장히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문제 제기가 많다. 사실상 당구를 오래 치면 당구장 주인만 돈을 버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외국 로펌에 흘러가는 수임료만 수백억 원입니다. 한동훈은 이것을 구조적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 국제법무국,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2023년 7월 26일,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면서 국제법무국 신설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국제법무국 산하에는 3개 과가 설치되었습니다.
첫째, 국제법무정책과입니다. 법률시장 개방, 조약 등 국제협정 체결 협상 참가 및 관련 법률자문 업무를 맡습니다. 외국과 새로운 투자 협정을 맺을 때, 나중에 분쟁의 빌미가 될 조항은 없는지 미리 살피는 일입니다.
둘째, 국제법무지원과입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등 중앙행정기관의 민사·상사 분야 검토 업무와 ISDS 예방에 관한 사안을 담당합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그것이 외국 투자자의 ISDS 제기 빌미가 되지 않도록 사전에 법적으로 점검하는 역할입니다.
셋째, 국제투자분쟁과입니다. ISDS 대응과 실무 운영 사안을 총괄합니다. 이미 제기된 소송에 직접 대응하는 실전 부대입니다.
국제법무국장은 검사 또는 고위공무원단이 맡고, 총 8명의 인력이 배치되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작은 조직입니다. 그러나 이 8명이 수조 원 규모의 국제 소송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합니다.
한동훈은 이 조직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ISDS 경험을 축적하면 우리도 충분히 대응하면서도 국익을 증진하고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 외국 로펌에만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스스로 국제 분쟁을 다루는 역량을 키우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3 신설의 배경 — 론스타와 엘리엇
국제법무국이 만들어진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3년 7월입니다.
불과 열흘 전인 2023년 7월 18일, 한동훈은 엘리엇 ISDS 판정에 대한 후속 조치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론스타 ISDS는 이미 2022년 8월 중재판정부가 약 3000억 원 규모의 배상을 명한 상태였고, 한동훈은 이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한 직후였습니다.
법무부는 국제법무국을 만들면서 "론스타·엘리엇 ISDS 선고 등 주요 사건들이 연이어 쟁점화됐다"며 "대응 체계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건의 ISDS 금액을 합치면 7조 원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이 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한동훈은 이 소송들을 직접 지휘하면서, 소송 한 건 한 건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분쟁이 터진 뒤에 허둥지둥 외국 로펌을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상시부터 분쟁을 예방하고, 분쟁이 생기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상설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4 국제법무국의 첫 번째 전과 — 론스타 승소
국제법무국이 만들어진 뒤 초대 국장으로 부임한 인물이 정홍식 국장입니다. 국제법·국제중재 전문가였습니다.
한동훈은 2023년 12월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법무부 장관에서 사퇴했습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국제법무국은 계속 작동했습니다. 론스타 ISDS 취소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까지 정홍식 국장이 이끄는 국제법무국이 총괄했습니다.
2025년 11월 18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는 론스타에 대한 약 3000억 원 규모의 배상 판정 전부를 취소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승소 소식을 전하면서 "실력 있는 국제법·국제중재 전문가"라며 "정홍식 국장의 노고가 굉장히 컸다"고 인정했습니다.
한동훈이 만든 조직에서, 한동훈이 발탁한 전문가가, 한동훈이 제기한 소송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조직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국익을 지키겠다던 한동훈의 구상이 현실에서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5 한 사람의 결단이 만든 시스템
국제법무국 신설은 화려한 사건이 아닙니다. 8명짜리 조직을 만든 행정적 결정에 불과합니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은 조직이 지켜낸 돈은 수조 원에 달합니다. 론스타 ISDS에서만 이자를 포함해 약 4000억 원의 배상 결정이 전부 취소되었고, 앞서 엘리엇 ISDS에서도 정부의 방어 논리가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습니다. 2026년 3월 확정된 쉰들러 ISDS 완전 승소(약 3200억 원 청구 기각)까지 더하면, 국제법무국이 관여한 사건들의 총액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한동훈은 검사 시절 론스타의 주가조작을 직접 수사해 유죄를 이끌어낸 사람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되어서는 그 형사판결을 ISDS 방어 논리의 핵심 무기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 싸움이 계속될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를 받아내고, 그 판결을 국제 소송의 방패로 전환하고, 그 방패를 영구히 들고 있을 조직까지 세운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20년에 걸쳐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론스타 사건에서 한동훈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