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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서문 탑건(Top Gun)의 시대는 끝났는가?
서문: 탑건(Top Gun)의 시대는 끝났는가?
2024년 5월 2일,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 모하비 사막에 정오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주황색과 흰색 도장을 두른 F-16 한 대가 활주로 끝에서 엔진을 울립니다. 프랫앤휘트니 F100 터보팬 엔진이 내뿜는 굉음은 수십 년간 미국 하늘을 지배해온 바로 그 소리입니다.
캐노피 안쪽, 조종석 앞좌석에는 프랭크 켄달 미 공군장관이 비행복과 헬멧을 갖추고 앉아 있습니다.
평범한 시험비행이 아닙니다.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은 인간 조종사가 아닙니다. 실리콘 칩 위에 새겨진 알고리즘, 수백만 번의 가상 전투에서 학습한 인공지능입니다.
켄달 장관은 조종간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뒷좌석의 안전 조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체가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곧, 인간이 조종하는 또 다른 F-16이 나타납니다. 두 전투기는 시속 900킬로미터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1986년, 영화 탑건이 전 세계 극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톰 크루즈가 조종간을 움켜쥐고, 라이벌 아이스맨과 하늘에서 자웅을 겨루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피트 미첼, 콜사인 매버릭. 그는 규칙을 어기는 무모한 조종사였지만, 결국승리했습니다. 인간의 직관과 배짱, 그리고 무엇보다 조종간 뒤의 심장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곧 영웅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36년 뒤인 2022년, 속편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이제 백발이 성성한 매버릭은 극초음속 시험기 다크스타를 조종합니다. 그런데 그의 프로젝트가 취소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산이 무인기 프로그램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한 제독은 매버릭에게 냉정하게 말합니다. "자네 같은 조종사들의 시대는 끝났어." 매버릭은 반박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인간 조종사의 불굴의 의지로임무를 완수하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2년 전인 2020년 8월, 워싱턴 D.C. 인근의 존스홉킨스대학 응용물리연구소에서 조용한 대회가 열렸습니다. DARPA,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주최한 알파도그파이트 트라이얼입니다. 여덟 개 팀이 개발한 인공지능들이 시뮬레이터 속 가상의 F-16을몰고 서로 싸웠습니다. 결승까지 올라간 AI는 헤론 시스템즈라는 작은 스타트업이 만든 알고리즘이었습니다. 이 AI는 예선에서 다른 AI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대가 등장했습니다. 인간입니다. 미 공군의 현역 F-16 조종사, 콜사인 뱅거. 2,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습니다. 가상의 조종석에서 뱅거는 조종간을잡았습니다.
AI와 인간의 대결.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5대 0. AI의 완승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교전에서뱅거는 단 한 번도 AI에게 유효한 타격을 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매번 격추당했습니다. AI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판단하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기동했습니다. 뱅거는 대회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놀라움보다는 경외심에 가까웠습니다.”
그것은 시뮬레이터 안의 일이었습니다. 가상 현실. 진짜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했습니다. 실제 비행은 다를 것이라고. 시뮬레이션에서는 공기의 저항도, 엔진의 떨림도, G-포스에 짓눌리는 조종사의 육체도 없다고. 현실은 언제나 더 복잡하다고.
그로부터 3년 뒤인 2023년 9월, 다시 에드워즈 공군기지. DARPA의 공중전투진화(ACE) 프로그램 연구진은 X-62A VISTA라고 불리는 개조형 F-16을 활주로에 세웠습니다. 이 전투기에는시뮬레이션에서 수천만 번의 가상 전투를 치른 AI 알고리즘이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전투기가 실제 하늘에서 인간 조종사가 모는 F-16과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시속 1,900킬로미터, 두 기체가 서로를 향해 돌진하며 600미터까지 접근했습니다. 코 대 코 교전. 진짜 공중전이었습니다.
누가 이겼느냐고요? 군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안보상의 이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실제 전투기를 조종하여 공중전을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시뮬레이션의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켄달 장관이 직접 그 전투기에 탑승했습니다. 장관은 한 시간 동안 비행했습니다. 시속 885킬로미터의 속도, 신체에 5G의 중력가속도가 가해지는 급격한 기동을 경험했습니다. 인간 조종사가 모는 F-16과 300미터 이내로 근접하며 뒤틀리고 선회하는 공중전
을 목격했습니다. 조종간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비행을 마치고 캐노피를 열고 내린 켄달장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기술을 갖추지 않는 것은 안보상의 위험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덧붙였습니다. AI에게 무기 발사 결정권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 비행에서 충분히 봤습니다.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하늘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는 밀랍으로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추락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 뒤인 1903년, 라이트 형제는 키티호크 해변에서 12초간 36미터를 날았습니다. 불과 66년 뒤인 1969년, 인간은 달에 발을 디뎠습니다. 전쟁터에서 비행기는 정찰 수단에서 폭격기로, 다시 전투기로 진화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복엽기 조종사들은 권총을 들고 서로를 쏘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무스탕과 스핏파이어가 유럽의 하늘을 가르며 메서슈미트와 격돌했습니다. 한국전쟁의 MiG 앨리에서는 제트기 시대가 열렸습니다. 베트남에서 F-4 팬텀이 적기를 추적하며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걸프전에서 F-117 스텔스기가 바그다드의 밤하늘을 갈랐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조종석 안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습니다. 심장이 뛰고, 땀을 흘리며, 두려움을 느끼고, 그럼에도 조종간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투기는 조종사의 연장이었습니다. 조종사 없는 전투기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공식이 바뀌려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지치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모릅니다. 9G의 중력가속도에도 의식을 잃지 않습니다. 초당 수백만 번의 계산을 수행합니다. 인간 조종사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AI는 상황을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며, 기동을 실행합니다. 미 공군은 이미 1,000대 이상의 AI 무인 전투기 함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2028년에는 첫 번째 협동전투기(CCA)가 작전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인간 조종사가 모는 F-35 스텔스기 곁에서, AI가 조종하는 무인 전투기들이 윙맨으로 따라붙을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윙맨. 그것이 그들의 이름입니다.
미국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GJ-11 이검과 암검 같은 스텔스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GCAP 템페스트와 FCAS라는 두 개의 6세대 전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KF-21 보라매를 기반으로 차세대 공중전투체계(NACS)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이스라엘, 튀르키예가 뒤를 잇습니다. 하늘의 지배권을 두고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무인기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부터, 프레데터와 리퍼가 전장의 암살자로 진화했던 과정, 알파도그파이트에서 AI가 인간을 5대 0으로 꺾었던 충격, 그리고 실제 하늘에서 벌어진 AI 대 인간의공중전까지. 강화학습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전투기를 날게 하는지, 시뮬레이션에서 익힌 경험이 어떻게 현실로 옮겨지는지, 센서들이 수집한 데이터가 어떻게 융합되어 적을 찾아내는지 설명합니다. 윙맨 드론과 군집 전술, 6세대 전투기와 지능형 편대의 개념도 다룹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질문들. 기계가 인간의 생사를 결정해도 되는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누구여야 하는가. AI가 오폭을 저질렀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탑건의 시대는 정말 끝났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매버릭이 옳을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인간의 판단과 직관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즈 기지 상공에서 AI가 F-16을 조종하며 인간 조종사와 맞붙은 순간,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질문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어떻게 함께할것인가입니다.
하늘의 지배자는 누가 될 것입니까. 그 답을 찾는 여정에, 이제 함께 떠나시겠습니다.
2026. 1. 17. AI 연구가 김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