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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4장 네트워크 중심전: 데이터 링크로 연결된 전장
4장 네트워크 중심전: 데이터 링크로 연결된 전장
고도 3만 피트.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조종석 밖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날카로운 비프음을 내뱉었습니다. 누군가 있다는 뜻입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손바닥에 땀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적기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 레이더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디스플레이에 새로운 심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나로부터 약 12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보지 못한 적기였습니다.
이 정보는 내 레이더가 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200킬로미터 후방에서 비행 중인 조기경보기 E-3 센트리가 포착한 표적이었습니다. 조기경보기의 강력한 레이더가 잡아낸 적기의 위치, 속도, 방향이 데이터 링크를 타고 내 전투기에 전송된 것입니다. 나는 이제 볼 수 없던 적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눈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네트워크 중심전의 본질입니다.
전쟁사에서 정보는 언제나 무기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무기보다 더 중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중세 시대의 척후병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정보를 얻은 지휘관은 매복을 준비하거나 퇴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였습니다. 척후병이 말을 타고 달려와 보고하는 동안 전장의 상황은 이미 바뀌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음성 무전기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조종사들은 라디오를 통해 서로 교신했습니다. "3시 방향에 적기 발견!" 이런 외침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할 수 있다는것이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혼전 중에 여러 조종사가 동시에 보고하려 하면 주파수가 뒤엉켜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인간의 혀와 귀를 통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말한 것을 듣고,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몇 초의 시간. 초음속 전투기의 세계에서 몇 초는 생사를 가르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1991년 걸프전은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미군과 연합군은 이라크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의 비밀은 더 좋은 전투기나 더 강력한 미사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차이는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미군은 'Link-16'이라 불리는 전술 데이터 링크를 통해 전장의 모든 아군 플랫폼을 연결했습니다. 전투기, 폭격기, 함정, 지상 부대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인 것입니다.
Link-16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과거의 무전기가 사람의 목소리를 전파로 바꿔 보내는 것이었다면, 데이터 링크는 컴퓨터와 컴퓨터가 직접 대화하는 것입니다. 조종사가말로 "적기가 3시 방향, 거리 80킬로미터, 고도 2만 피트에 있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레이더가 포착한 정보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아군에게 동시에 전송됩니다. 위도, 경도, 고도, 속도, 방향, 그리고 아군인지 적군인지의 식별 정보까지. 말로 설명하면 수십 초가 걸릴 정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 기술의 탄생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 해군 제독 윌리엄 오웬스는 1996년 "체계의 체계"라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센서와 지휘통제 시스템, 그리고 정밀 무기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곧이어 아서 세브로우스키 제독이 "네트워크 중심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명쾌했습니다. 정보의 공유가 전투력의 기하급수적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1+1이 2가 아니라 10이 되고, 100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Link-16의 기술적 특성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스템은 시분할 다중접속 방식을 사용합니다. 시간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각 참여자에게 할당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발언권을 갖는 회의와 비슷합니다. 다만 그 순서가 초당 수백 번씩 바뀌기 때문에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주파수 도약 기술을 사용하여 적의 전파 방해에 강합니다. 통신 주파수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적이 방해 전파를 쏘려해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조종석에서 네트워크 중심전의 효과를 체감하는 순간은 극적입니다. 과거에는 내 레이더가 보여주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레이더가 볼 수 있는 범위 바깥의 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데이터 링크가 연결된 순간, 내 시야는 수백 킬로미터 밖으로 확장됩니다. 동료 전투기가 본 것, 조기경보기가 본 것, 해상의 이지스함이 본 것, 심지어 지상의레이더 기지가 본 것까지 모두 내 디스플레이에 통합되어 나타납니다. 마치 신의 눈으로 전장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기술은 아군 오인 사격의 위험도 크게 줄였습니다. 혼전 상황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 속에는 비극적인 오인 사격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Link-16을 통해 피아식별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이런 위험이 획기적으로 감소했습니다. 내 화
면에 표시된 심볼이 파란색이면 아군, 빨간색이면 적기입니다. 컴퓨터가 식별해 주기 때문에실수의 여지가 줄어든 것입니다.
2024년 12월,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노르웨이 공군의 F-35와 P-8 해상초계기가 우주의 위성을 통해 Link-16 통신에 성공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Link-16은 가시선 통신, 즉 서로 볼 수 있는 거리 안에서만 작동했습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수평선 너머의 아군과는 직접 통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우주개발청의저궤도 위성 군집을 중계기로 활용하면서 이 한계가 돌파되었습니다. 이제 지구 반대편의 아군과도 실시간으로 전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중세 영국의 장궁병을 떠올려 보십시오. 개인 궁수의 솜씨도 중요했지만, 진정한 위력은 일제사격에 있었습니다. 지휘관의 신호에 맞춰 수백 명의 궁수가 동시에 화살을 쏘아 올렸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화살이 적진에 쏟아질 때, 개별 화살의 위력이 아니라 조율된 집단의 힘이 전장을 지배했습니다. 네트워크 중심전은 현대판 일제사격입니다. 개별 전투기의 성능이 아니라, 연결된 전력의 조율이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만능은 아닙니다. 데이터 링크는 적의 전자전 공격 표적이 됩니다. 적이 강력한 전파 방해를 가해오면 통신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조종사의 인지 부하도 늘어납니다. 화면에 수십 개의 심볼이 떠 있을 때, 어떤 것이 당장의 위협이고 어떤것이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할 수도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AI는 네트워크를 통해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당장 대응해야 할 위협을 상단에 올리고, 무시해도 될 정보는 걸러냅니다. 편대 전체의 표적 분담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네트워크가 신경망이라면, AI는 그 신경망을 관장하는 두뇌입니다. 미래의 합동전영역지휘통제 체계에서 AI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공군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F-15K와 KF-16에 Link-16을 탑재하여 한미 연합작전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독자적인 데이터 링크 체계인 Link-K도 개발 중입니다. KF-21 보라매는 처음부터 네트워크 중심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습니다. 미래에는 KF-21과 무인충성윙맨이 데이터 링크로 연결되어 협동 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네트워크 중심전의 시작은 단순한 통신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바라보는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이었습니다. 개체에서 체계로, 화력에서 정보로, 플랫폼에서 네트워크로. 이 패러다임 전환이 인공지능 전투기가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