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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5장 전투기 자동화의 진화: 기계식 조종에서 디지털 FBW까지
5장 전투기 자동화의 진화: 기계식 조종에서 디지털 FBW까지
1974년 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시험 조종사 필 오슬러는 새로운 전투기 시제기 YF-16의 조종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은 고속 활주 시험 예정일이었습니다. 비행이 아니라 단지 활주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오슬러가 스로틀을 밀어 넣자 애프터버너에 불이 붙었습니다. 전투기가 맹렬하게 가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활주 도중 기체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슬러는 조종간을 움직여 균형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체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흔들림이 점점 심해지더니, 갑자기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뛰어올랐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이륙이었습니다. 노련한 시험 조종사였던 오슬러는 순간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다시 착륙하려 하면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그는 그대로 상승하여 6분간 비행한 뒤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양산형 플라이바이와이어 전투기 F-16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말한 플라이바이와이어가 무엇인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이 기술을 이해하려면 먼저 전통적인 비행 조종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라이트 형제가 1903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이후, 비행기를 조종하는 방식은 수십 년간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당기면, 그 움직임이 강철 케이블과 도르래, 지렛대를 통해 날개의 조종면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마치 인형극에서 줄을 당겨 인형을 움직이는것과 비슷합니다. 조종사의 팔 힘이 직접 비행기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 기계식 조종 방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습니다. 조종사는 바람의 저항을 손끝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의 상태를 온몸으로 감지하며 비행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점점 빨라지고 커지면서, 조종에 필요한 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음속을 돌파하는 제트 전투기의 조종면을 인간의 근력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압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자동차의 파워 스티어링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살짝 움직이면, 유압 펌프가 그 힘을 증폭시켜 조종면을 움직여줍니다. F-4 팬텀이나 F-15 이글 같은 명기들이 이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조종사의 부담은 줄었지만, 조종간과 날개 사이는 여전히 기계적인 연결 장치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복잡한 유압배관은 무겁고, 적의 공격에 취약했으며, 정비도 까다로웠습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계식 조종으로는 불안정한 비행기를 다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불안정하다니, 그게 좋은 걸까요? 사실 전투기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안정적인 비행기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강합니다. 이것은 안전하지만, 기동성을 떨어뜨립니다. 급격한 방향 전환에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불안정한 비행기는 마치 팽이처럼 언제든 방향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공중전에서 결정적인 이점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이 불안정성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안정한 비행기는조종사가 손을 놓는 순간 균형을 잃고 추락하려 합니다. 이를 막으려면 초당 수십 번씩 조종면을 미세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뇌와 손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플라이바이와이어, 줄여서 FBW는 조종간과 날개 사이의 기계적 연결을 끊어버립니다. 대신전선을 통해 전기 신호를 보냅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당기면, 센서가 그 움직임을 감지하여디지털 신호로 변환합니다. 이 신호는 비행 제어 컴퓨터로 보내집니다. 컴퓨터는 조종사의 의도를 해석하고, 현재 비행 상태(속도, 고도, 자세 등)를 고려하여 각 조종면을 얼마나 움직여야할지 계산합니다. 그런 다음 유압 작동기에 명령을 보내 조종면을 움직입니다.
핵심적인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계식 조종에서 조종사는 조종면의 각도를 직접 제어했습니다. FBW에서 조종사가 입력하는 것은 각도가 아니라 의도입니다. "기수를 들어 올리고싶다"는 의도를 넣으면, 컴퓨터가 현재 상황에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조종면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NASA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72년, NASA 드라이든 연구센터는 F-8 크루세이더 전투기의 기계식 조종 장치를 모두 제거하고 아폴로 달 착륙선의 컴퓨터를 이식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FBW 항공기 실험이었습니다. 시험 조종사 게리 크리어는 1972년 5월 25일, 기계적 백업 없이 오직 컴퓨터만으로 제어되는 비행기를 하늘로 띄웠습니다. 13년에 걸친 210회의시험 비행 동안 단 한 번도 컴퓨터 고장으로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비행 제어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F-16은 이 기술을 양산기에 처음 적용한 전투기입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불안정하게 설계된전투기에 말입니다. F-16의 무게 중심은 양력 중심보다 뒤에 위치합니다. 이것은 기체가 끊임없이 기수를 들거나 숙이려 한다는 뜻입니다. 컴퓨터가 초당 수천 번씩 조종면을 조정하여 이불안정성을 상쇄합니다. 조종사가 느끼기에는 안정적이고 반응성 좋은 비행기입니다. 그러나컴퓨터 없이는 몇 초도 비행할 수 없는 기체인 것입니다.
F-16의 FBW가 제공하는 또 다른 기능은 비행 영역 보호입니다. 과거의 전투기에서는 조종사의 실수로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기동을 하여 날개가 부러지거나, 실속(양력을 잃는 것)에 빠져 추락하는 사고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F-16의 컴퓨터는 조종사가 아무리 거칠게 조종간을 움직여도 기체가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기동하도록 제한합니다. 9G를 넘는 하중이 걸리지않게, 실속 각도를 넘지 않게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조종사는 적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자체와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초기의 F-16은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은 전압이나 전류의 변화로 숫자를 표현합니다. 반면 디지털 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을 사용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F-16은 디지털 비행 제어 컴퓨터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디지털의 장점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비행 특성을 소프트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같은 기체라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다르게 비행시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민간 항공에서도 FBW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988년 취항한 에어버스 A320은 완전 디지털 FBW를 채택한 최초의 양산 여객기입니다. 에어버스의 철학은 비행 영역 보호를 극대화하는것이었습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아무리 세게 당겨도 비행기가 실속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잉은 777에서 FBW를 도입했지만 조종사가 컴퓨터의 보호 기능을 무시하고 수동 조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두 회사의 다른 철학입니다.
이제 자동 지상 충돌 회피 시스템, Auto-GCAS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기술은 FBW의연장선상에 있으면서, AI 전투기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입니다.
전투기 조종사에게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지면 충돌입니다. 공중전 중에 상황 인식을 잃거나, 고G 기동으로 의식을 잃어(G-LOC라고 합니다) 비행기가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는 사고가 적지않았습니다. 멀쩡한 비행기와 숙련된 조종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Auto-GCA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시스템은 지형 데이터베이스, GPS, 레이더 고도계를 결합하여 현재 비행 경로를 예측합니다. 만약 이대로 가면 지면과 충돌할 것으로 판단되면, 먼저 조종사에게 경고합니다. 조종사가 반응하지 않으면, 컴퓨터가 조종권을빼앗아 기체를 상승시킵니다. 날개를 수평으로 돌리고 5G로 당겨 올리는 것입니다.
2016년, 미 공군은 극적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애리조나 공군 주방위군 소속 F-16 훈련생이공중전 훈련 중 G-LOC에 빠졌습니다. 8.4G의 하중을 견디다 의식을 잃은 것입니다. 전투기는 기수를 아래로 향한 채 시속 700킬로미터 이상으로 지면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교관의 다
급한 외침이 무전기를 타고 울렸습니다. "투, 리커버! 투, 리커버!" 그러나 반응이 없었습니다. 고도 8,700피트에서 Auto-GCAS가 작동했습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기체를 회복시켜 조종사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2014년 실전 배치 이후 Auto-GCAS는 12대의 F-16과 13명의 조종사(한 대는 복좌기였습니다) 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F-35에도 탑재되어 있고, F-22에서도 최소 1건의 구조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술로 30년간 30억 달러 이상의 자산과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Auto-GCAS의 도입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는 1990년대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실전 배치에 20년 이상이 걸렸을까요. 조종사들의 저항 때문이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비행기를 조종하는 능력은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기체를정밀하게 다루는 것이 그들의 자부심입니다. Auto-GCAS는 이 영역에 기계가 침범하는 것을의미했습니다. "내가 조종하고 있는데 컴퓨터가 내 손을 치운다고?" 많은 조종사가 이렇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량이 의심받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DARPA의 ACE 프로그램 매니저인 라이언 헤플린 중령은 이를 1930년대의 기병대에 비유합니다. 당시 기병대원들에게 말 타는 기술은 그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기계화 부대의 도입을거부했던 것처럼, 조종사들도 자동화에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기병대는 전차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기술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F-22나 F-35 같은 5세대 전투기는 FBW를 넘어 센서 융합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자동화를 구현했습니다. 과거에는 조종사가 레이더 화면을 보고, 적외선 센서를 확인하고, 레이더 경보 수신기 소리를 듣고, 이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서 통합해야 했습니다. 인지 부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5세대 전투기의 컴퓨터는 이 작업을 대신합니다. 여러 센서의 정보를 융합하여 "저것은적기다, 이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이 최적이다"라는 가공된 정보를 조종사에게 제공합니다.
이 진화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AI 전투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기계식 조종에서 유압조종으로, 아날로그 FBW에서 디지털 FBW로, 비행 영역 보호에서 Auto-GCAS로, 센서 융합에서 AI 파일럿으로. 각 단계는 인간 조종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끝에는 인간 없이도 비행하고 전투할 수 있는 완전 자율 전투기가 있습니다.
디지털 FBW는 AI가 전투기를 조종하기 위한 필수 인터페이스입니다. 기계식 연결이 남아 있었다면, AI가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로봇 팔이 물리적으로 조종간을 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러나 FBW 덕분에 AI는 소프트웨어 코드를 통해 직접 비행 제어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조종사의 손이 조종간에 입력하던 것을 AI의 알고리즘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을 떠올려 보십시오. 검사의 숙련된 손이 검을 휘둘렀습니다. 이것이 기계식 조종입니다. 이제 검과 손 사이에 정교한 장치가 끼어들었습니다. 검사의 의도를 읽고, 검이 가장 효과적인 각도로 목표를 향하게 조절하는 장치입니다. 이것이 FBW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장치 위에 전술 참모가 앉았습니다. 언제, 어디를, 어떻게 공격할지를 판단하는 지능입니다. 이것이 AI 전투기입니다.
전투기 자동화의 역사는 인간의 한계를 기계로 보완해온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우리는 인간 없이도 하늘을 지배하려는 기계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