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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장 트빌리시: 과거와 현대가 춤추는 수도
2장 트빌리시: 과거와 현대가 춤추는 수도
가. 나리칼라 요새에서 유황 온천까지, 올드타운 산책
트빌리시에 도착한 첫날 아침, 리케 공원(Rike Park)의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 섰습니다.
붉은색 곤돌라가 므트크바리 강(Mtkvari River)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케이블카 표를 끊으려고 줄을 서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중년의 조지아 남성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처음 오셨어요? 저 위에서 보는 트빌리시는 완전히 다른 도시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오르기(Giorgi)였습니다. 트빌리시 토박이로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 요새 아래서 양을 치셨어요. 지금은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놀이터입니다.”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강 위로 떠오르는 순간,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촘촘히 박힌 올드타운, 그 사이를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 그리고 언덕 위에 웅크린 고대 성벽들. 편도 5라리(약 2,5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토록 장엄한 파노 라마를 선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는 트빌리시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4세기경 페르시아인들이 처음 이 언덕 위에 성벽을 쌓았을 때, 그들은 이곳을 '슈리스-치헤(Shuris-tsikhe)', 즉 '질투의 요새'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난공불락의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아랍인들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나리칼라'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작은 요새' 라는 뜻입니다. 이름과 달리 이 요새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성벽 위를 걸으며 트빌리시의 역사를 곱씹어 봅니다. 몽골의 침략, 오스만 제국의 지배, 페르시아와의 끝없는 전쟁. 이 성벽은 그 모든 격동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1827년 대지진이 성벽의 상당 부분을 무너뜨렸지만, 남아 있는 돌들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요새 안쪽에는 1990년대에 복원된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규모지만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조지아 정교회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줍니다.
요새의 가장 높은 지점에 서면 트빌리시 전체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동쪽으로는 사메바 대성당의 황금 돔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서쪽으로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룹니다. 그 사이에 올드타운의 미로 같은 골목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 질 녘 이곳에 서면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요새에서 내려오는 길은 두 갈래입니다. 케이블카를 다시 타고 내려갈 수도 있고, 가파른 산책로를 따라 걸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걷기를 선택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거대한 여인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지아의 어머니상(Kartlis Deda)'입니다. 이 동상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계속 내려가면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유황 온천 지구에 도착합니다. 이곳이 바로 트빌리시의 탄생 설화가 깃든 장소입니다. 5세기경, 조지아의 왕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가 이 일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의 매가 꿩을 덮쳤고, 두 새가 뒤엉킨 채 뜨거운 물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왕이 달려가 보니, 땅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치유의 온천수에 감탄한 왕은 숲을 베어내고 도시를 세웠습니다. ' 트빌리시'라는 이름은 조지아어로 '따뜻하다'는 뜻의 '트빌리(Tbili)'에서 유래했습니다.
온천 지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돔 형태의 지붕들입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돔들은 페르시아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천연 유황 온천수는 섭씨 40도 내외의 온도를 유지합니다. 유황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금세 익숙해집니다.
온천탕을 운영하는 60대 여성 나나(Nana)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이 온천탕을 운영해 왔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이곳에 왔을 때, 제 증조할머니가 그에게 목욕물을 데워드렸어요." 나나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은 1829년 이곳을 방문하여 "트빌리시의 온천만큼 호사스러운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이곳을 찾아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프라이빗 룸을 대여해 온천욕을 즐겼습니다. 1시간에 50~100라리(약 25,000~50,000원) 정도입니다. 뜨거운 유황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립니 다. 원한다면 '키사(Kisa)'라고 불리는 조지아 전통 때밀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친 천으로 온몸을 문질러 주는데, 처음에는 따갑지만 마사지가 끝나면 피부가 한결 부드러워 집니다.
온천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레그브타헤비(Leghvtakhevi) 계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숨겨진 이 작은 계곡 끝에는 폭포가 있습니다.
폭포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절벽 위의 집들, 그 너머로 보이는 나리칼라 요새의 성벽. 이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올드타운(Dzveli Tbilisi)의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합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길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모든 길은 어딘가 아름다운 곳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낡은 벽돌집들 위로 덩굴 식물처럼 얽혀 있는 목조 발코니 들이 이 지역의 독특한 정취를 만들어냅니다.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조지아 전통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를 '트빌리시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건물 안쪽에는 이탈 리아식 안뜰(Italian courtyards)이 숨어 있습니다. 이 안뜰은 단순한 건축 요소가 아니라 이웃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동체의 공간입니다.
올드타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종교적 다양성입니다. 조지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원, 유대교 시나고그, 이슬람 모스크가 서로 가까운 거리 내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교차로였던 트빌리시는 수 세기 동안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어우러진 도시였습니다.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테히 절벽(Metekhi cliff) 위에 서 있는 메테히 교회(Metekhi Church)는 13세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절벽 끝에 우뚝 선 이 교회의 실루엣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입니다. 교회 앞에는 트빌리시를 건설한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기마상이 서 있습니다. 왕은 강 건너 자신이 세운 도시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은 6세기에 처음 지어진 후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3세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의 중심지로, 성녀 니노(St. Nino)의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성녀 니노는 4세기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올드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안치스하티 바실리카(Anchiskhati Basilica)입니다. 6세 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트빌리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작은 규모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천 년이 넘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올드타운 산책을 마무리하며 작은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테라스에 앉아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걷고,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발코니에서 빨래가 나부낍니다. 이 모든 것이 트빌리시 올드타운의 일상입니다.
나. 평화의 다리와 사메바 대성당, 도시의 상징들
므트크바리 강은 트빌리시를 동서로 가릅니다. 강의 남쪽에는 올드타운이, 북쪽에는 현대 적인 신시가지가 펼쳐집니다.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평화의 다리(Bridge of Peace)입니다. 2010년에 개통된 이 다리는 트빌리시의 현대적인 면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다리 위에서 만난 젊은 건축학도 레반(Levan)은 이 다리에 대한 트빌리시 사람들의 반응을 들려주었습니다. "처음 지어졌을 때 논란이 많았어요. '생리대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죠."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좋아합니다. 이 다리 없는 트빌리시는 상상할 수 없어요."
이탈리아 건축가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가 설계한 이 보행자 전용 다리는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졌습니다. 길이 156미터, 폭 5미터의 이 다리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강 위를 가로지릅니다. 마치 거대한 해양 생물이 물결치는 듯한 형태입니다. 올드타운의 고풍 스러운 건물들 사이에 들어선 이 초현대적인 구조물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평화의 다리가 진정한 매력을 발산하는 시간은 밤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수천 개의 LED 조명이 일제히 켜집니다. 다리 전체가 환상적인 빛으로 물듭니다. 이 조명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조명은 모스 부호(Morse code)로 주기율표의 화학 원소들을 점멸합니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은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평화와 화합의 상징인 것입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낭만적인 풍경 중 하나입니다. 동쪽으로는 조명을 받아 빛나는 나리칼라 요새와 메테히 교회가 보입니다. 서쪽으로는 대통령 궁의 유리 돔이 은은하게 빛납니다. 강물에 비친 조명들이 일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 어냅니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거닐고, 거리의 악사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다리를 건너면 리케 공원(Rike Park)입니다. 이 공원은 트빌리시 시민들의 휴식처입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아이들이 뛰어놉니다. 공원 한쪽에는 거대한 피아노 모양의 건물이 있습니다. 콘서트 홀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끕니다. 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나리칼라 요새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 다리가 트빌리시의 현대적 지향점을 보여준다면, 사메바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 Sameba)은 조지아의 영적 뿌리를 상징합니다. 엘리아 언덕(Elia Hill) 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이 성당은 트빌리시 어디에서나 보입니다. 황금빛 돔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사메바 대성당은 비교적 새로운 건물입니다. 1995년에 착공하여 200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과 예수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여 지어졌습니다. 소련 붕괴 직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성당이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 덕분이었습니다. 이는 조지아인들의 깊은 신앙 심과 민족적 자부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성당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규모에 압도됩니다. 높이가 약 87미터에서 101미터에 이르는 이 성당은 캅카스 지역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의 정교회 성당입니다.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당 입구에서 만난 안내원 마리암(Mariam)은 성당 건축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제 어머니는 월급의 일부를 매달 성당 건축 기금에 보냈어요. 그 당시에는 먹을 것도 부족 했는데 말이에요." 그녀의 눈에 자부심이 어렸습니다. "이 성당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조금씩 보태서 지은 것이니까요."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장엄한 분위기에 숨이 막힙니다. 거대한 아치와 기둥들,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아이콘들, 대리석 바닥과 스테인드글라스. 모든 것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냅
니다. 정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당 내부에는 의자가 거의 없습니다. 신자들은 서서 예배를 드립니다.
건축 양식은 조지아의 전통적인 교회 건축과 비잔틴 양식을 조화롭게 결합했습니다. 외부는 전통적인 조지아 교회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규모와 세부 장식에서는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습니다. 성당 단지는 본관뿐만 아니라 종탑, 수도원, 신학교 등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성당 방문 시 복장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성은 긴 바지를, 여성은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성은 머리에 스카프를 쓰는 것이 예의입니다. 입구에서 스카프를 빌려주기도 합니다. 사진 촬영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한 허용됩니다.
성당 지하에는 무덤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조지아 정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성당 정원에는 분수와 벤치가 있어 산책하기 좋습니다. 종탑에 올라가면 트빌리시 시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성당 전체가 황금색 조명으로 밝혀집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메바 대성당은 마치 도시를 비추는 등대 같습니다. 평화의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야경은 트빌 리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장면입니다.
두 건축물은 트빌리시의 양면을 보여줍니다. 평화의 다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현대적인 디자인, 첨단 기술, 개방성. 사메바 대성당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신앙을 상징합니다. 고대의 건축 양식, 깊은 영성, 공동체 의식.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트빌리시입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이 두 건축물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습니다. 유리와 강철의 다리 너머로 황금 돔이 빛납니다. 이 풍경이야말로 트빌리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보여주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다. 하차푸리와 힌칼리, 그리고 테크노 클럽 바시아니
조지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미식의 향연에 초대받는 것과 같습니다. 배고픈 여행 자에게 조지아만큼 행복한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드타운의 한 식당에서 만난 셰프 다토(Dato)는 조지아 요리의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조지아 음식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음식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조지아의 식탁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닙니다. '수프라(Supra)'라고 불리는 전통 연회 문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수프라는 조지아식 잔치입니다. 친구나 손님을 초대하면 테이블 위에 수십 가지 음식이 올라옵니다. 연회의 중심에는 '타마다(Tamada)'라고 불리는 건배 제의자가 있습니다. 타마다는 건배사를 통해 조상에 대한 존경, 조국에 대한 사랑, 우정과 가족에 대한 헌사를 이끕니 다. 건배는 단순히 술잔을 부딪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시와 이야기가 오가고, 노래가 울려 퍼지는 사회적 의식입니다.
조지아 식탁의 주인공은 단연 하차푸리(Khachapuri)입니다. '하초(Khacho)'는 치즈를, '푸리(Puri)'는 빵을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치즈 빵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름이 담고 있는 맛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조지아 전역에서 50여 가지가 넘는 하차푸리 변형이 존재합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자라 식 하차푸리(Adjaruli Khachapuri)입니다. 흑해 연안의 아자라 지방에서 유래한 이 하차푸리는 배 모양의 빵 가운데에 치즈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버터와 날달걀 노른자를 올립니다.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빵의 뾰족한 양 끝을 뜯어서 뜨거운 치즈와 달걀, 버터를 휘휘 섞습니다. 그리고 빵 조각으로 이 황금빛 혼합물을 퍼 먹습니다. 첫입을 베어 무는 순간, 고소하고 짭짤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며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메레티 식 하차푸리(Imeruli Khachapuri)는 둥근 모양입니다. 반죽 안에 치즈를 넣고 납작하게 눌러 구워냅니다. 메그렐리아 식(Megrelian Khachapuri)은 이메레티 식과 비슷하지만 위에 치즈를 한 번 더 얹어 더욱 풍성합니다. 페노바니(Penovani)는 퍼프 페이스트리 반죽에 치즈를 넣어 바삭하게 구워냅니다.
하차푸리는 조지아인들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소중한 국가적 상징입니다. 가격은 5~15라리(약 2,500~7,500원) 정도로 저렴합니다. 든든하게 한 끼를 때우기에 충분합니다.
또 하나의 대표 메뉴는 힌칼리(Khinkali)입니다. 조지아식 만두입니다. 두툼한 밀가루 피 안에 다진 고기(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혼합)와 향신료, 그리고 육즙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힌칼리 하나의 무게는 상당합니다. 보통 5~10개를 한 접시로 주문합니다.
힌칼리를 먹는 방법에는 예절이 있습니다.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손으로 꼭지(손잡이 부분, 조지아어로 'Kudi')를 잡습니다. 만두피를 살짝 베어 물어 안에 있는 뜨거운 육즙을 먼저 호로록 마십니다. 육즙을 흘리면 실패입니다. 그다음 나머지를 먹습니다. 꼭지 부분은 밀가루 뭉치라 보통 먹지 않고 접시에 남겨둡니다. 자신이 몇 개를 먹었는지 세는 용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올드타운의 힌칼리 전문점에서 이 모든 과정을 실습했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현지인 가족이 내 서툰 솜씨를 보며 웃었습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천천히, 너무 세게 물지 마세요. 육즙이 다 빠져나가면 맛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그의 조언 덕분에 두 번째 힌칼리부터는 제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10개에 10라리(약 5,000 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조지아 요리의 세계는 넓습니다. 사츠비(Satsivi)는 호두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요리입니다. 새해에 즐겨 먹는 명절 음식이기도 합니다. 로비오(Lobio)는 강낭콩을 푹 끓인 요리로, 토기 냄비에 담겨 나옵니다. 프할리(Pkhali)는 시금치, 비트, 콩 등의 채소를 호두와 마늘로 버무린 전채 요리입니다. 색색의 프할리가 접시에 담겨 나오면 눈이 먼저 즐거워집니다.
조지아의 음식 문화는 8,000년 역사의 와인 전통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식사에는 반드시 와인이 따릅니다. 조지아 와인에 대해서는 카헤티 지방을 다루는 장에서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배를 채웠다면 이제 트빌리시의 밤을 즐길 차례입니다. 트빌리시는 최근 '새로운 베를린'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테크노 음악의 성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 중심에 클럽 바시아니(Bassiani)가 있습니다.
바시아니는 디나모 아레나 축구 경기장 지하에 위치해 있습니다. 과거 수영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클럽으로 개조했습니다. 물이 빠진 거대한 수영장 바닥이 댄스 플로어가 되었습니다. 천장은 낮고 콘크리트 벽은 거칠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쿵쿵거리는 베이스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집니다. 전 세계 클럽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시아니에 입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페이스 컨트롤(Face Control)'이라 불리는 엄격한 입장 심사가 있습니다. 문 앞에서 직원이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봅니다. 복장, 태도, 분위기. 모든 것이 심사 대상입니다. 클럽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2018년에 경찰이 마약 단속을 명목으로 바시아니를 급습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수천 명의 젊은이가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테크노 음악을 틀고 춤을 추
며 항의했습니다. 'We Dance Together, We Fight Together'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바시 아니는 단순한 유흥 공간을 넘어 조지아 청년들의 자유와 저항 정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바시아니는 성소수자(LGBTQ+)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안전한 공간을 지향합니다. 조지아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바시아니는 그런 차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춤추고 즐길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 입니다.
주말 밤 바시아니에 들어가 봤습니다. 입장료는 20~50라리(약 10,000~25,000원) 정도입니다. 자정이 넘어서 입장했는데, 클럽 안은 이미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DJ의 비트에 맞춰 수백 명의 젊은이가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도 파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가 뜰 때까지 음악은 계속되었습니다.
바시아니 외에도 트빌리시에는 수준 높은 클럽들이 많습니다. 키디(Khidi)는 강변 창고를 개조한 클럽으로, 산업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무트카(Mtkvarze)는 강 위에 떠 있는 배를 클럽으로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클럽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밤마다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전통 와인바에서 8,000년 역사의 크베브리 와인을 음미하고, 밤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테크노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 전통의 맛과 현대의 비트가 공존하는 것. 이것이 트빌리 시가 가진 반전 매력입니다.
루스타벨리 대로(Rustaveli Avenue)와 올드타운 주변에는 트렌디한 바와 펍, 라이브 음악 공연장이 즐비합니다. 젊은 예술가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공간들입니다. 밤늦도록, 아니 새벽까지 활기가 넘칩니다. 트빌리시는 결코 잠들지 않는 도시입니다.
라.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말하는 민족의 기질
트빌리시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어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거대한 여인의 동상이 눈에 들어 옵니다. 솔롤라키 언덕(Sololaki Hill) 위에 우뚝 서서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이 동상은 '조지 아의 어머니상(Mother of Georgia)', 조지아어로 '카르틀리스 데다(Kartlis Deda)'입니다.
1958년 트빌리시 건립 1,5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이 동상은 높이가 20미터에 달합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으며, 조각가 엘구자 아마슈켈리(Elguja Amashukeli)의 작품입니다. 전통 조지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당당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그녀의 두 손에는 각각 다른 물건이 들려 있습니다.
왼손에는 와인이 든 잔이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징 물이 조지아 민족의 기질을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와인잔은 환대(Hospitality)를 상징합니다. 조지아에는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조지아인들은 방문객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깁니다. 낯선 이가 문을 두드리면 가장 좋은 음식과 와인을 내놓습니다. 손님이 배부르다고 해도 계속 권합니다. 조지아의 식탁에서 접시가 비어 있는 것은 주인의 수치입니다.
여행 중 이 환대 문화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길을 물었습니다. 농부 바크타(Bakhta)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길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쉬었다 가세요." 그의 아내가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음식을 차려냈습니다. 하차푸리, 로비 오, 채소 절임, 그리고 물론 와인. "마시세요, 마시세요." 바크타는 연신 잔을 채웠습니다. 두 시간 동안 그 집에 머물렀습니다. 떠날 때 그들은 포도 한 바구니를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조지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방인에게 베푸는 이 따뜻한 환대. 이것이 바로 와인잔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반면, 칼은 저항과 용기를 상징합니다. 조지아의 역사는 끝없는 침략과 저항의 역사입니다. 페르시아, 아랍, 몽골, 오스만, 러시아. 수많은 외세가 이 작은 나라를 넘보았습니다. 캅카스의 험준한 산맥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땅은 동서양의 교차로였기 때문입니다. 실크로드가 이곳을 지나갔고, 기름이 풍부한 카스피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하지만 조지아인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왕국이 멸망하고 지배를 받으면서도 언어와 문자, 종교와 문화를 지켜냈습니다. 산악 지대의 요새에서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적이 쳐들어오면 여자와 아이들도 무기를 들었습니다. 이 강인한 생명력과 독립 정신이 바로 칼에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상 앞에 서면 이 양면적인 기질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는 한없이 따뜻하지만, 적에게는 가차 없이 단호한. 환대와 저항, 부드러움과 강인함.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조지아인입니다.
어머니상을 가까이서 보려면 나리칼라 요새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요새로 올라간 뒤, 요새 성벽을 따라 걸으면 동상이 있는 언덕에 도달합니다. 동상 바로 앞에는 전망대가 있어 트빌리시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봤습니다. 올드타운의 붉은 지붕들, 그 사이로 흐르는 므트크 바리 강, 언덕 위의 사메바 대성당.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전망대에서 만난 노인 바소(Vaso)는 어린 손자에게 동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 와인잔은 너처럼 착한 아이들을 환영하기 위한 거야. 하지만 저 칼은..." 그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우리를 해치려 할 때 물리치기 위한 거란다." 손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상을 올려다봤습니다.
일몰 시간에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동상이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도시 전체가 붉은 빛에 물들고, 어머니상의 실루엣이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전망대가 붐빕니다.
어머니상은 1958년에 처음 세워진 이후 한 번 교체되었습니다. 원래의 목조 동상은 풍화로 손상되어 1990년대에 현재의 알루미늄 동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동상은 원래의 디자인을 충실히 재현했지만,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소련 시대에도 이 동상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는 민족주의적 상징이었지만, 소련 당국도 이 동상만큼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조지아인들의 저항이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동상이 지닌 예술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상은 소련의 지배 속에서도 조지아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을 묵묵히 지켜주었습니다.
오늘날 어머니상은 트빌리시의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도시 홍보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입니다. 하지만 이 동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조지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와인잔과 칼이 상징하는 환대와 저항, 이 두 가지 정신이 어떻게 조지아 민족의 DNA에 새겨져 있는지를.
어머니상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온 민족의 자화상입니다. 친구에게는 가장 좋은 와인을, 적에게는 가장 날카로운 칼을. 이것이 조지아입니다.
동상의 눈빛은 온화하면서도 결의에 차 있습니다. 도시를 굽어보는 그 시선에는 과거의 영광과 아픔,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머니상은 와인과 칼을 든 채, 트빌리시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조지아의 정신을 묵묵히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