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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5장 서부 조지아: 흑해와 중세의 탑들
5장 서부 조지아: 흑해와 중세의 탑들
조지아의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동쪽의 건조한 고원과 달리, 이곳에는 흑해의 습한 바람이 불어오고 아열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랍니다. 코카서스 산맥은 더욱 높고 험준해지며, 그 깊은 골짜기에는 천 년 전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마을들이 숨어 있습니다. 서부 조지아는 화려한 해변 도시와 고대 동굴 수도원, 중세의 망루 마을이 공존하는 땅입니다. 이 장에서는 흑해의 라스베이거스 바투미, 시간이 정지한 스바 네티의 산악 마을, 신화의 도시 쿠타이시, 그리고 절벽에 새긴 기적 바르지아를 차례로 만나봅니다.
가. 바투미, 흑해의 라스베이거스와 알리-니노 동상
(1) 흑해가 품은 휴양의 도시
조지아의 서남쪽 끝, 튀르키예 국경에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바투미(Batumi)가 있습니다. 아자라(Adjara) 자치공화국의 수도이자 조지아 제2의 항구 도시인 이곳은, 트빌 리시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투미를 '흑 해의 라스베이거스' 혹은 '미니 두바이'라고 부릅니다.
바투미 해안가에 서면 기하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마천루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형상화한 130미터 높이의 알파벳 타워(Alphabetic Tower)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조지아 고유 문자인 33개의 알파벳이 탑의 외벽을 감싸고 올라가는 모습은 조지아인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타워 꼭대기에는 전망대와 회전 레스토랑이 있어 흑해와 도시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바투미 타워(Batumi Tower)는 더욱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00미터 높이의 이 건물은 상층부 외벽에 실제로 작동하는 관람차(Ferris Wheel)가 박혀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서 관람차를 타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험은 세계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원래 공과대학으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호텔과 카지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투미가 이토록 화려하게 변모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지아에서 카지노가 합법인 지역은 손에 꼽히는데, 바투미가 그중 하나입니다. 도박이 금지된 튀르키예, 이란, 아르메니 아의 부유층들이 주말마다 국경을 넘어 이곳으로 몰려옵니다. 밤이 되면 해안가의 카지노 들이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히고, 거리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북적입니다.
(2) 7킬로미터의 해변 산책로
바투미 불러바드(Batumi Boulevard)는 19세기 말에 조성된 약 7킬로미터 길이의 해변 산책 로입니다. 야자수와 대나무, 목련과 유칼립투스 나무가 늘어선 이 길은 바투미 시민들의
삶의 일부입니다. 아침이면 조깅하는 사람들로, 저녁이면 산책하는 연인들과 가족들로 가득 찹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독특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거대한 자전거 모양의 조형물, 바다를 향해 뻗은 손 모양의 동상, 악기를 연주하는 청동 인물들. 밤이 되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 쇼가 펼쳐지고, 형형색색의 조명이 흑해의 파도를 물들입니다.
바투미에서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기오르기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소련 시절에도 바투미는 휴양지 였어요.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에서 온 사람들이 여름마다 이곳에 왔죠. 그때는 지금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흑해의 바람과 아열대 기후는 똑같았어요." 그는 자전거 바퀴에 기름을 치며 덧붙였습니다. "지금은 튀르키예 사람들이 많이 와요. 국경이 가까우니까요. 주말 이면 차들이 줄을 서서 국경을 넘어옵니다.”
(3) 알리와 니노, 움직이는 사랑의 비극
바투미 해안 산책로의 끝자락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슬픈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알리와 니노(Ali and Nino) 동상입니다. 8미터 높이의 거대한 두 인물상은 얇은 금속 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뼈대만 남은 형상처럼 보입니다. 이 동상은 조지아 조각가 타마라 크베시타제(Tamara Kvesitadze)가 2010년에 제작했습니다.
동상의 모티프는 쿠르반 사이드(Kurban Said)라는 필명으로 1937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입니다. 소설은 20세기 초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를 배경으로, 무슬림 귀족 청년 알리와 조지아 기독교인 공주 니노의 사랑을 그립니다. 두 사람은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랑에 빠지지만, 볼셰비키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합니다.
동상이 특별한 이유는 멈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두 형상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마침내 입을 맞추듯 겹쳐집니다. 그러나 두 몸은 금속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를 안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몸을 통과해 지나쳐 버리고, 다시 서서히 멀어집니다. 하나가 되는 순간 이별해야 하는이 10분간의 움직임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인간의 운명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흑해의 석양을 배경으로 이 '사랑의 춤'을 지켜보는 것은 바투미 여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동상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연인들은 손을 잡고 서고, 사진작가들은 최적의 앵글을 찾아 분주히 움직입니다. 두 형상이 합쳐지는 순간에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4) 아자루리 하차푸리와 바투미의 맛
바투미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 있습니다. 아자루리 하차푸리(Adjaruli Khachapuri)입니다. 배 모양으로 구운 빵 가운데에 녹인 치즈와 버터가 가득 담기고, 그 위에 반숙 달걀이 올라갑니다. 먹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뜨거울 때 달걀노른자를 터뜨려 치즈와 버터와 섞은 뒤, 빵의 양쪽 끝을 뜯어 그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바투미 구시가지의 작은 식당에서 이 요리를 처음 맛보았을 때, 함께 앉은 현지인이 음식의 유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투미는 항구 도시잖아요. 뱃사람들이 많았죠. 빵을 배 모양으로 만든 건 그래서예요. 가운데 달걀노른자는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고요." 그는빵 끝을 뜯으며 말했습니다. "이 음식은 사실 아침에 먹는 거예요. 배를 타기 전에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하니까요. 근데 관광객들은 점심이고 저녁이고 언제든 먹죠."
(5) 바투미 식물원과 고니오 요새
도시의 화려함 뒤에는 차분한 자연과 역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바투미 시내에서 북쪽으로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바투미 식물원(Batumi Botanical Garden)이 있습니다. '그린 케이 프(Green Cape)'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흑해를 굽어보는 가파른 절벽 위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100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전 세계 9개 기후대의 식물 수천 종이 자라고 있습니다.
1912년에 러시아 식물학자 안드레이 크라스노프가 설립한 이 식물원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원, 호주 구역, 멕시코 선인장 구역, 히말라야 구역 등이 차례로 펼쳐지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흑해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입니다. 바투미의 습한 아열대 기후가 만들어낸 초록의 낙원입니다.
반대쪽, 남쪽으로 15킬로미터를 달리면 고니오 요새(Gonio Fortress)가 나옵니다. 기원전 1 세기부터 존재했던 이 요새는 로마 제국의 동쪽 방어선 역할을 했습니다. 두꺼운 성벽 안에는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12사도 중한 명인 마티아(Matthias)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바투미는 이처럼 카지노의 화려함과 2,000년 고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나. 스바네티, 코쉬키 망루가 지키는 시간 정지의 마을
(1) 코카서스의 숨겨진 보물
바투미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열대 해안의 야자수는 사라지고, 침엽수림과 만년설 봉우리가 나타납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몇 시간이고 달리다 보면, 유럽에서 가장 고립되고 신비로운 산악 지역인 스바네티(Svaneti)에 도착합니다.
스바네티는 대카프카스 산맥의 깊은 품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발 3,000미터에서 5,000 미터에 달하는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은, 험준한 지형 덕분에 역사적으로 외부 세력의 침략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몽골 제국도, 오스만 제국도, 페르시아 제국도 이 험준한 산을 넘어 스바네티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조지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고대의 관습과 언어, 건축 양식이 이곳에서는 생생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스바네티에 사는 사람들을 스반족(Svans)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조지아인의 한 지파이 지만, 독자적인 언어인 스반어를 사용합니다. 스반어는 조지아어와 뿌리가 같지만, 트빌리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다릅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용맹한 전사이자 뛰어난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님을 '신이 보낸 선물'로 여기는 조지아의 환대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2) 코쉬키, 생존을 위한 중세의 마천루
스바네티의 풍경을 압도하는 것은 마을 곳곳에 우뚝 솟아 있는 석조 망루들입니다. 조지아 어로 '코쉬키(Koshki)'라고 불리는 이 탑들은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지어졌습니다. 높이가 20미터에서 30미터에 달하는 사각형 석탑들이 마을마다 수십 개씩 서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중세의 마천루 숲 같습니다.
이 탑들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었습니다. 몽골이나 페르시아 같은 외부의 침략에 대비한 요새였고, 겨울철 눈사태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인근 가문 간의 '피의 복수(Blood Feuds)'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스반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살해당하면 피해자의 가문이 가해자 가문에 복수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복수의 연쇄는 수 세대에 걸쳐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각 가문은 자신만의 방어 탑을 짓고, 위험이 닥치면 그곳으로 피신했습니다.
탑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 용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보통 4층에서 5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1층은 가축을 위한 공간, 2층은 가족의 거주 공간, 상층부는 식량 저장고와 방어용 망루로 사용되었습니다. 입구는 지면에서 몇 미터 위에 있어 사다리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적이 침입하면 가족들은 탑 위로 올라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좁은 총안구(Gunport)를 통해 돌이나 뜨거운 물을 부으며 저항했습니다.
메스티아에서 만난 가이드 레반은 자신의 집안도 400년 된 코쉬키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복수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탑은 여전히 우리 가문의 상징이에요. 탑이 높고 튼튼할수록 가문의 위세가 높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탑 꼭대기에서 밤마다 불을 밝혀 다른 마을에 신호를 보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 탑은 통신 수단이기도 했어요. 봉화를 올리면 다른 마을에서도 봉화로 답했 죠."
(3) 메스티아, 스바네티의 관문
스바네티 여행의 출발점은 메스티아(Mestia)입니다. 해발 1,500미터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 에는 약 2,500명이 살고 있습니다. 트빌리시에서 비행기로 1시간, 또는 쿠타이시에서 4륜 구동 차량으로 4~5시간이 걸립니다. 길이 험하고 좁아서 겨울에는 눈으로 막히기 일쑤입니다.
메스티아에 들어서면 30개가 넘는 코쉬키 탑이 마을 곳곳에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낡은 돌탑과 현대적인 게스트하우스가 묘하게 공존합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스바네티 역사 민속 박물관(Svaneti Museum of History and Ethnography)은 반드시 들러야 할 곳입니다. 9세기 에서 12세기 사이에 제작된 금은 세공 복음서, 고대 동전, 무기, 전통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바네티가 외부 세계와 단절된 덕분에, 다른 지역에서는 약탈당하거나 파괴된 조지아의 국보급 유물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마르지아니 가옥 박물관(Margiani House-Museum)'은 전통 스반 가옥과 코쉬키 탑의 내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마치니라는 이름의 나이 든 여주인이 집안 대대로 내려 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탑은 우리 가문이 13세기에 지었어요. 30년 전만 해도 할아 버지가 여기서 살았죠.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오면 마을 전체가 고립되는데, 그때 탑 안에 저장해 둔 식량으로 버텼어요."
(4) 우슈굴리,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을
메스티아에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스바네티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우슈굴리(Ushguli)에 닿습니다. 4륜 구동 차량으로 비포장 산길을 2~3시간 달려야 합니다. 강을 건너 고, 절벽 옆을 지나고, 때로는 길이 끊긴 곳에서 차가 물속을 뚫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험난한 여정 끝에 만나는 풍경은 말을 잃게 합니다.
해발 2,100미터에서 2,200미터에 위치한 우슈굴리는 유럽에서 사람이 연중 거주하는 가장 높은 마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아 최고봉인 시카라 산(Mt. Shkhara, 5,193m)이 마을 바로 뒤에 웅장하게 서 있고,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 아래로 빙하가 흘러내립니다. 그 장엄한 배경 앞에 20여 개의 고대 망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옥빛 강물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소와 말들이 풀을 뜯고, 아이들이 좁은 돌길을 뛰어다닙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우슈굴리는 1년 중 6개월 이상 눈에 덮여 있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됩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스반 문화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마을 언덕 위에 있는 라마 리아 교회(Lamaria Church)는 10세기에 지어진 작은 성당입니다. 내부에는 오래된 프레스 코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지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타마르 여왕(Queen Tamar)이 여름을 피해 이곳의 탑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800년이 지난 지금도 타마르 여왕을 마치 어제 살다 간 이웃처럼 이야기합니다.
(5) 트레킹과 스반의 음식
스바네티는 트레커들의 천국입니다. 메스티아에서 우슈굴리까지 이어지는 4일간의 트레킹 코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빙하 계곡,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 만년설 봉우리를 넘나드는 이 루트는 코카서스 트레킹의 정수로 꼽힙니다. 하루 코스를 원한다면 찰라디 빙하(Chalaadi Glacier)나 코룰디 호수(Koruldi Lakes)로 향하는 트레킹을 추천합니다.
스바네티에 왔다면 전통 음식을 맛봐야 합니다. 쿠브다리(Kubdari)는 스바네티의 대표 음식입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스바네티 소금과 향신료로 양념한 뒤 두툼한빵 안에 넣어 구워냅니다. 척박한 산악 환경에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 맛이 진하고 든든합니다. 스바네티 소금은 이 지역에서만 나는 특산품으로, 마늘과 여러 가지 허브를 섞어 만든 향신료입니다. 어떤 음식에 뿌려도 맛을 살려줍니다.
메스티아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을 때, 주인 아주머니가 쿠브다리와 함께 차 차(Chacha)를 내왔습니다. 조지아의 전통 증류주인 차차는 포도를 발효시켜 만드는데, 도수가 50도를 넘습니다. "우리 스반 사람들은 겨울에 이걸로 몸을 녹여요. 눈이 허리까지 쌓이면 탑에서 나올 수도 없는데, 차차 한 잔이면 추위가 싹 가시죠." 아주머니는 웃으며 잔을 채워주었습니다.
다. 쿠타이시와 프로메테우스 동굴
(1) 황금 양털 신화의 땅
조지아 서부의 중심 도시 쿠타이시(Kutaisi)는 수도 트빌리시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입니다. 인구 약 14만 명의 이 도시는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약 220킬로미터,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바투 미에서는 북쪽으로 3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쿠타이시 국제공항에는 저가 항공편이 많이 취항하여, 유럽에서 조지아로 오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쿠타이시의 역사는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영웅 이아손(Jason)과 아르고 원정대(Argonauts)가 황금 양털(Golden Fleece)을 찾아 떠난 콜키스(Colchis) 왕국의 수도가 바로 이곳으로 추정됩니다. 콜키스의 공주 메데아(Medea)는 이아 손을 도와 황금 양털을 훔치고 함께 도망쳤습니다. 이 신화가 단순한 전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대 조지아 서부의 강에서는 실제로 양털을 이용해 사금을 채취했다고 합니다. 양털에 걸러진 금이 햇빛에 반짝였고, 그것이 '황금 양털' 전설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쿠타이시 시내 중앙 광장에는 콜키스 분수(Colchis Fountain)가 있습니다. 고대 콜키스 유적 에서 발굴된 황금 장신구들을 확대하여 만든 청동 동상들이 분수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말, 사슴, 사자, 황소 등의 동물 형상이 금빛으로 빛나며, 이곳이 '황금의 땅'이었음을 상징 적으로 보여줍니다.
(2) 바그라티 대성당과 겔라티 수도원
쿠타이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이 서있습니다. 11세기 초, 조지아를 통일한 바그라트 3세가 건설한 이 성당은 중세 조지아 건축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에메랄드빛 지붕과 웅장한 돔이 인상적입니다. 성당 앞에 서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리오니 강(Rioni River)과 쿠타이시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 다.
바그라티 대성당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어 수백 년간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폐허 상태의 성당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조지아 정부는 성당을 완전히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복원 과정에서 철제와 유리 같은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것이 원래의 역사적 진정성을 훼손한다고 판단하여, 바그라티 대성당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했습니다. 논란은 있지만, 복원된 성당의 웅장한 자태와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로서의 가치는 여전합니다.
쿠타이시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겔라티 수도원(Gelati Monastery) 이 있습니다. 12세기 초, 조지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인 다비드 건설왕(David the Builder)이 세운 이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중세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철학, 신학, 과학, 천문학을 연구하는 아카데미가 이곳에 있었고, 조지아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제2의 아테네'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수도원 내부에는 12세기에 제작된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습니다.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성인들의 얼굴, 성경 이야기, 기하학적 문양이 눈을 압도합니다. 다비드 건설왕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을 수도원 정문 바닥에 만들어 달 라고 유언했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바그라티 대성당과 달리 여전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3) 프로메테우스 동굴, 지하 세계의 신비
쿠타이시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자연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낸 지하 궁전, 프로메 테우스 동굴(Prometheus Cave)입니다. 쿠타이시에서 서쪽으로 약 20킬로미터, 츠칼투보(Tskaltubo)라는 작은 온천 마을 인근에 있습니다. 1984년에 발견된 이 동굴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벌을 받아 묶여 있었다는 전설이 깃든 산(Khvamli Mountain) 근처에 있어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타이탄입니다. 제우스는 분노하여 그를 코카서스 산맥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고, 매일 독수리가 그의 간을 파먹도록 했습니다. 밤이 되면 간이 다시 자라고, 다음 날 또 독수리가 와서 파먹는 고통이 영원히 반복되었습니다. 이 전설의 무대가 바로 이곳 코카서스 산맥 어딘가입니다. 동굴 이름에 프로메테우스가 붙은 것은 그 연유입니다.
동굴의 총 길이는 약 11킬로미터에 달하지만, 관광객에게 개방된 구간은 약 1.4킬로미터입니다. 도보로 약 1시간이 소요됩니다. 동굴 내부는 연중 14~15도의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 므로, 여름에도 긴 소매를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동굴에 들어서면 수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기괴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천장에서 늘어진 종유석,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 둘이 만나 기둥이 된 석주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어떤 것은 커튼처럼 늘어지고, 어떤 것은 성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동굴 관리 당국은이 자연의 조각품들에 형형색색의 LED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파란색, 보라색, 녹색, 주황색 빛이 종유석과 석순을 비추면,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지하 궁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됩니다.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동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찾아옵니다. 동굴 내부를 흐르는 지하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배에 올라 물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합니다. 머리 위로는 종유석이 늘어지고, 물속에는 형광등이 비친 바위들이 아른거립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지하 세계 하데스(Hades)로 들어가는 스틱스 강을 건너는 기분입니다.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배가 동굴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의 해방감은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4) 쿠타이시의 하루
쿠타이시는 하루면 주요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도시입니다. 오전에 겔라티 수도원을 방문하고, 점심은 시내로 돌아와 먹습니다. 오후에는 프로메테우스 동굴을 탐험하고, 저녁에는 리오니 강변의 '화이트 브리지(White Bridge)'를 산책합니다. 화이트 브리지는 19세기에 지어진 보행자 전용 다리로, 저녁이면 연인들이 모여들어 강물에 비친 조명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쿠타이시에서 맛봐야 할 음식은 이메레티 하차푸리(Imereti Khachapuri)입니다. 바투미의 아자루리 하차푸리가 배 모양에 달걀이 올라간 것과 달리, 이메레티 하차푸리는 둥근 빵안에 치즈만 가득 들어 있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치즈가 쭉쭉 늘어납니다. 조지아 사람들은 이메레티 지역의 치즈가 가장 맛있다고 자부합니다.
쿠타이시 중앙 시장(Kutaisi Green Bazaar)은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선한 과일, 채소, 치즈, 향신료, 말린 과일, 견과류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상인들은 "맛 좀 봐"라며 끊임없이 시식거리를 건넵니다. 무언가 사지 않고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입니다.
라. 바르지아, 절벽에 새긴 동굴 도시의 장엄함
(1) 프로메테우스가 묶인 절벽
조지아 남부, 튀르키예 국경과 멀지 않은 곳에 바르지아(Vardzia)가 있습니다. 쿠타이시에서 남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자동차로 4시간 거리입니다. 아할치헤(Akhaltsikhe)라는 도시를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면, 에루셰티 산(Erusheti Mountain)의 깎아지른 절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절벽 전체에 벌집처럼 뚫린 수백 개의 구멍들. 그것이 바르지아입니다.
바르지아는 12세기 말, 조지아의 황금기를 이끈 게오르기 3세와 그의 딸 타마르 여왕(Queen Tamar) 시대에 건설되었습니다. 원래는 몽골과 페르시아 등 외부 침략에 대비한 비밀 요새 도시였습니다. 절벽 안쪽에 도시 전체를 숨겨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그저 험준한 절벽으로 보일 뿐, 그 안에 수만 명이 살 수 있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바르지아가 처음 내 눈에 들어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황량한 협곡을 따라 달 리다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거대한 절벽 전체가 인간의 손으로 뚫린 채 드러납니다. 마치 거인이 칼로 산을 베어낸 것 같습니다. 어떻게 800년 전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믿기 어렵습니다.
(2) 5만 명을 품었던 난공불락의 요새
전성기의 바르지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습니다. 13층 높이의 절벽에 6,000개 이상의 방을 뚫었습니다. 최대 5만 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완전한 자급자족 도시였습니다. 주거 공간, 교회, 도서관, 약국, 빵집, 와인 저장 고(마라니), 그리고 수백 미터 길이의 관개 수로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적이 수개 월간 포위하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동굴들은 복잡한 터널과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내부에서는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었고, 비밀 탈출로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적이 침입해도 내부 구조를 모르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습니다. 벽에는 작은 환기구와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 뚫려 있어, 깊은 동굴 안에서도 숨을 쉬고 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283년, 대지진이 이 비밀 도시를 세상에 드러내 버렸습니다. 지진으로 절벽의 앞부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숨겨져 있던 동굴들의 단면이 밖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산의 3분의 2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요새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바르지아는 이후 거대한 동굴 수도 원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래 규모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에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3) 타마르 여왕의 프레스코화
바르지아의 중심에는 성모 승천 교회(Church of the Dormition)가 있습니다. 절벽 깊숙이 자리 잡은 이 교회는 바르지아의 영적 중심지였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벽면과 천장에 800 년 된 프레스코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인들의 얼굴, 성경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타마르 여왕의 생전 모습을 그린 벽화입니다.
타마르 여왕은 조지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습니다. 1184년부터 1213년까지약 30년간 조지아를 통치하며, 영토를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확장하고 문화와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치세에 조지아는 코카서스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프레스코화 속 타마르 여왕은 젊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미혼 시절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왕관을 쓰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조지아 전역을 뒤져도 타마르 여왕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습니다.
바르지아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어린 타마르 공주가 삼촌과 함께 공사 현장에 왔다가 동굴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삼촌이 애타게 찾자 그녀는 "아크 바르, 지아(Aq var, dzia)"라고 외쳤습니다. 조지아어로 "삼촌, 저 여기 있어요"라는 뜻입니다. 이 외침이 훗날 이곳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4) 살아 있는 수도원
지금도 바르지아에는 소수의 수도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굴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가며, 매일 아침 7시에 종을 울립니다. 황량한 협곡 사이로 종소리가 메아리치면, 마치 800년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듭니다.
바르지아를 방문할 때는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탐방로는 절벽을 따라 오르내리며,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이 이어집니다. 일부 구간은 어둡고 천장이 낮아 손전등이 필요합니다. 전체를 둘러보는 데 1~2시간이 소요됩니다.
바르지아 입구에서 만난 관리인 기오르기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 때부터 이곳에서 놀았어요. 동굴 구석구석을 손바닥처럼 알죠." 그는 관광객이 없는 시간에 홀로 동굴을 거닐 때가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해가 뜨면 빛이 절벽에 부딪혀 동굴 안으로 스며들어요. 그 순간 800년 전 사람들이 이 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요. 그들도 이 아름다움을 알았을까요?"
(5) 황량한 아름다움
바르지아 주변의 풍경은 황량합니다. 나무가 거의 없고, 갈색 언덕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절벽 아래로 쿠라 강(Mtkvari River)이 유유히 흐릅니다. 이 강은 트빌리시를 지나 카스피해로 흘러갑니다. 절벽 끝 난간에 서서 협곡을 내려다보면, 바람 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 적막 속에서 800년 전 이곳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바르지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비스(Vanisis) 동굴 수도원이 있습니다. 바르지아보다 규모는 작지만, 관광객이 적어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아할치헤로 돌아가는 길에는 라바티 성(Rabati Castle)에 들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이 성은 최근 복원되어, 모스크와 교회, 박물관이 함께 있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바르지아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닙니다.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조지아인 들의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비입니다. 절벽에 새긴 수천 개의 구멍 하나하나에 그들의 땀과 기도와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바르지아를 떠나며 뒤돌아보면, 석양에 붉게 물든 절벽이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장엄한 풍경은 조지아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서부 조지아는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투미의 화려한 밤문화와 현대 건축, 스바네티의 시간이 멈춘 산악 마을, 쿠타이시의 고대 신화와 지하 동굴, 바르지아의 절벽에 새긴 기적. 이 모든 것이 자동차로 몇 시간 거리 안에 있습니다. 조지아 서부를 여행하는 것은 마치 여러 세기를 동시에 걷는 것과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