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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2장 유럽을 향한 열망과 좌절
12장 유럽을 향한 열망과 좌절
가. EU 후보국 지위 획득과 갑작스러운 중단
2023년 12월 14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이사회 정상회의는 조지아에 유럽연합 가입 후보국 지위를 공식 부여했습니다. 이 결정이 발표되던 순간, 트빌리시의 자유 광장에는 환호 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EU 깃발과 조지아 국기가 뒤섞인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조지아인들은 스스로를 유럽 문명의 일원 으로 여겨왔습니다. 헌법 제78조에 "유럽 및 유로-대서양 통합을 위한 모든 조치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할 정도였습니다. 후보국 지위는 그 오랜 열망에 대한 공식적인 승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후보국 지위는 '입장권'이지 '결승선 통과'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위원회는 조지아가 가입 협상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할 '9개 핵심 조치(nine steps)'를 제시했습니다. 사법 독립 강화, 반부패 체계 정비, 선거법 개선, 허위 정보 대응 역량 강화, 탈과 두제화(de-oligarchisation)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부 터가 진짜"라는 구조였습니다. EU는 조지아에 기회를 주면서도 조건을 분명히 했습니다.
문제는 2024년 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집권당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이 이른바 '외국 영향력의 투명성에 관한 법률'을 재도입한 것입니다. 이 법안은 2023년에도 한 차례 추진되었다가 대규모 시위로 철회된 바 있습니다. 법안의 골자는 해외로부터 자금을 20% 이상 지원받는 비정부기구(NGO)와 언론 매체를 '외국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등록하게 하고 엄격한 감시를 받도록 강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판자들은 이 법안을 '러시아 법'이라고 불렀습니다. 2012년 러시아가 시민사회를 억압하기 위해 도입한 '외국 대리인법'과 구조가 거의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조지아 시민사회 단체들, 독립 언론, 인권 단체들은 서구 재단과 국제기구 지원에 많이 의존해왔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외국의 대리인'처럼 프레이밍하는 순간, 비판 세력 전체를 '비국민'으로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그렇게 해왔듯이 말입니다.
2024년 5월,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의회 표결 결과는 84대 11이었습니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회 다수를 차지한 여당은 이를 재의로 무력화시켰습니다. 법안은 그렇게 통과되었습니다.
EU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했습니다. 유럽위원회는 이 법이 "유럽의 핵심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베니스 위원회(Venice Commission)는 법안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2024년 6월, 유럽이사회는 조지아 정부의 행동이 "유럽 가입 경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고, 가입 절차의 사실상 중단(de facto halt)을 선언했습니다. 조지아에 직접 지원되던 예산이 동결되었고, 고위급 정치 대화도 중단되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조지아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집권당은 공식적으로 EU 통합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반서방 수사학을 강화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글로벌 전쟁 당(Global War Party)'이라는 음모론을 유포하며 서방을 공격했습니다. 서방이 조지아를 러시아와의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EU 입장에서 이런 수사학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을 넘어 근본적인 신뢰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2024년 10월 26일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공식 결과에 따르면 '조지아의 꿈'이 54%를 득표해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야당과 국제 선거 감시단은 광범위한 부정행위를 고발했습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선거감시단은 유권자 협박, 매수, 이중투표 등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유럽의회는 11월 28일 비구속 결의를 통해 선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신규 선거를 요구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후보국 지위는 사실상 빈껍데기가 되었습니다. EU가 제시한 9개 조건 중 조지 아가 진전을 보인 것은 3개에 불과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인 반부패, 사법 독립, 시민사회 환경 개선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3년 말의 희망 섞인 분위기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깊은 불신과 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조지아 정부는 EU의 조건부 접근을 '주권 침해'와 '내정 간섭'으로 프레이밍했습니다. 반면 EU는 후보국 지위 자체가 조건부 계약이며, 민주주의와 법치와 기본권은 선택 과목이 아
니라 필수 과목이라는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정치적 간섭" 혹은 "약속 위반"으로 규정하면서 갈등은 외교 문제를 넘어 국내 정치의 정체성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 과정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지아 국민 대다수가 유럽 통합을 강하게 지지하는 상황에서, 즉 '국민 정서'와 '권력의 선택'이 갈라진 상황에서 중단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아 국민의 80% 이상이 EU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정치가 국민의 나침반을 꺾어버릴 때, 외교는 곧 정체성 위기가 됩니다. 조지아는 그 위기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편 집권당 '조지아의 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비지나 이바니슈빌리(Bidzina Ivanishvili)는 러시아에서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로, 2012년부터 당을 창당하고 조지아 정치를 좌우해왔습니다. 그가 공식 직함 없이도 실권을 행사한다는 분석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비판자들은 그의 러시아 사업 이력과 인맥이 조지아의 외교 노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집권당은 이런 주장을 "음모론"이라며 일축합니다. 진실이 어디에 있든, 이 의혹은 조지아 정치의 불투명성을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후보국 지위 획득은 조지아 사회가 오래 품어온 유럽 열망의 상징적 성취였지 만, 2024년의 법과 제도 변화와 권력의 통치 방식이 EU가 요구한 '유럽적 기준'과 충돌하면 서, 승격의 감격은 곧바로 "절차 동결"이라는 냉각수로 식어버렸습니다. 조지아는 유럽의 문턱에 도달했다가 스스로 뒷걸음질 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 "2028년까지 EU 협상 동결" 선언의 충격
2024년 11월 28일, 이라클리 코바히제(Irakli Kobakhidze)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은 조지아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외교적 선언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그는 "조지아는 2028년 말까지 EU 가입 협상 개시를 의제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EU로부터의 모든 예산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메시지도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이 왜 충격적이었는지 이해하려면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2028년은 "다음 분기"가 아닙니다. 정치 사이클로 따지면 대통령 임기 한 번, 의회 임기 한 번을 통째로 건너뛰는 시간입니다. 조지아처럼 후보국 지위가 국내 정치의 정당성 자원으로 작동하는 나라에서, 4 년 동결은 외교 정책이라기보다 체제 선택에 가깝습니다.
타이밍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이 발표는 2024년 10월 총선이 논란 속에 치러진 뒤, 유럽의 회가 선거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결의를 채택한 직후에 나왔습니다. EU의 비판에 대한 역공처럼 보이기 딱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정부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EU가 '협상'과 '지원'을 지렛대로 조지아를 "협박"한다는 것 입니다. 코바히제 총리는 "시혜처럼 취급받는 통합은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서방이 조지아에게 러시아와의 전쟁에 뛰어들라고 압박한다는 주장도 반복되었습니다. 이른바 '전쟁 당(War Party)' 음모론입니다.
EU 입장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후보국 지위와 가입 협상은 애초에 조건의 묶음입니다. 민주주의 후퇴를 방치한 채 협상만 열 수는 없습니다. EU는 11월 28 일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조지아의 선택이 유럽의 길에서 이탈하는 신호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선언이 헌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조지아 헌법 제78조는 "헌법 기관은 EU와 NATO로의 완전한 통합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 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스스로 4년간 협상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이 헌법적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를 '헌법적 쿠데타'라고 불렀습니다.
경제적 충격도 뒤따랐습니다. EU는 조지아 정부에 직접 지원되던 1억 2,130만 유로 규모의 재정 지원을 보류했습니다. 유럽 평화 기금(European Peace Facility)을 통한 3,000만 유로 규모의 지원도 중단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조지아에 대한 새로운 EU 지원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정학적 긴장과 국내 정치 위기가 조지아 경제의 하방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지아 통화인 라리(GEL) 가치에도 하방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의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EU 가입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기대했던 기업들과 청년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EU 가입은 단순한 정치적 통합을 넘어, 유럽의 노동 시장에 접근하고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2028년까지 논의 중단"이라는 뉴스는 이런 희망의 사다리가 걷어차인 것과 같았습니다.
2025년 1월, EU 이사회는 추가 조치를 채택했습니다. 조지아 외교관 및 관용 여권 소지자에 대한 비자 면제 혜택을 중단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이는 조지아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조치로 해석되었습니다. 같은 해 9월까지 19개 EU 회원국이 이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국내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미국도 움직였습니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조지아 고위 관리들에 대한 비자 제한 등 제재가 검토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서방의 파트너였던 조지아가 지정학적 경로를 급격히 변경하고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에서도 커졌습니다.
선언 직후 조지아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터졌습니다. 수도 트빌리시 의회 앞에는 수만 명 이 모였습니다. 12월 중순에는 10만 명 규모로 격화되었습니다. 시위는 단지 "친EU 시위" 가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장기 목표를 배신했다"는 배신감의 정치였습니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은 정부의 결정을 "반역"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프레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누가 누구를 협박 하느냐"라는 감정 싸움으로 논점을 돌리려 했습니다. 실무 개혁의 언어, 즉 사법 독립, 반부 패, 언론 자유, 시민사회 환경 같은 구체적인 과제들이 도덕적 낙인으로 치환되었습니다. 친서방과 반서방, 애국과 매국, 주권과 종속. 이런 이분법은 정책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인간 사회는 원래 쉬운 길을 좋아합니다.
2025년으로 넘어가면서 동결 선언은 "말"이 아니라 "정책 패키지"로 실체화되었습니다. 조지아 의회가 외국 보조금(grant)을 정부 승인 아래 두려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시민사회 공간을 더 조이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EU가 문제 삼아온 방향, 즉 민주주의 후퇴와 정확히 겹칩니다. 2028 동결은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권력 운영 방식 자체가 EU 기준과 멀어지는 궤적의 상징이 됩니다.
조지아 정부는 한편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분석가들은 이를 서방 제재 회피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의 장기적인 안보와 번영을 위협하는 도박이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2028년까지 동결"의 충격은 단지 EU 가입이 늦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지아 정치가 유럽 통합을 '국가적 합의'에서 '정파적 선택'으로 강등시켰다는 신호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유럽은 더 이상 목적지가 아니라 전장이 됩니다. 조지아 사회가 보인 분노는 "EU 를 사랑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내 나라의 미래를 내 의사와 무관하게 보류당했다"는 감각에서 나왔습니다.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헌법의 EU 지향 조항이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러시아 통합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조지아가 서방과의 관계를 끊고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회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 선언은 결국 집권 세력의 '엘리트 쿠데타'로, 유럽 열망의 좌절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 깃발 혁명과 Z세대의 저항
'깃발 혁명'이라는 말은 정식 정치학 용어가 아닙니다. 2024년 조지아 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된 장면을 압축하는 별칭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시위 현장에 EU 깃발이 압도적으로 등장했고, 젊은 세대가 그 상징을 "외교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처럼 들어 올렸다는 점에서, 깃발은 장식이 아니라 메시지였습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Z세대가 무엇에 반응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들이 반응한 것 은 EU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길이 꺾이는 방식"이었습니다.
2024년 봄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인 도화선은 외국 영향력 관련 법안이었습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젊은 층은 그 법이 "투명성"이 아니라 "침묵 강요"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민사회 단체, 독립 언론, 인권 단체는 조지아에서 서구 재단과 국제기구 지원에 많이 의존해왔습니다. 그 연결고리를 '외국의 대리인'처럼 프레이밍하는 순간, 비판 세력 전체를 '비국민'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논리가 러시아식 통치 레퍼토리와 닮았 다는 지적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Z세대는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소비에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 고,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과 서구 문화를 향유하며 자랐습니다. 이들에게 유럽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기본 전제였습니다. 정당의 깃발이 아닌 조지아 국기와 EU 깃발을 나란히 드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습니다.
2024년 4월부터 5월까지 약 50일간 트빌리시 루스타벨리 거리에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최루가스와 고무탄 진압에도 시위는 지속되었습니다. 10월 총선 이후 다시 점화되었고, 11 월 28일 동결 선언 이후에는 17일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최대 20만 명이 모인 날도 있었습니다.
Z세대의 시위 방식은 몇 가지 특징을 드러냅니다.
첫째, 정체성 정치의 선점입니다. Z세대는 "친서방"이라는 말을 정부가 공격 프레임으로 쓰기 전에, 아예 "그래, 우리는 유럽을 원한다"로 선제 점유해버렸습니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었습니다. EU 깃발은 "외세 숭배"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규범, 즉 법치, 자유, 이동 권, 교육 기회"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둘째, 창의적이고 끈질긴 저항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위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주요 동원 수단이었습니다.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 앞에서도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비폭력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좌석 점거, 노래 부르기, 밤샘 농성이 주된 방식이었습니다.
셋째, 공포 관리와 지속성입니다. 시위는 탄압과 충돌 가능성을 동반했습니다. 언론인과 시위대에 대한 폭력과 협박 사례가 국제기구와 인권 단체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럼에
도 젊은 층은 "우리가 물러나면 나라가 되돌아간다"는 역사 감각을 공유했습니다. 이는 단발성 분노보다 장기적 동원으로 이어지기 쉬운 심리 구조입니다.
넷째,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의 표출입니다. Z세대의 거리 정치는 특정 야당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 '제도 정치 전반'에 대한 경고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특정 정당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메시지는 야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동원은 쉽고 조직화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권에도 불편합니다. 방향을 묻는 질문은늘 책임을 요구하니까요.
정부는 특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진압했습니다. 수백 명의 학생과 활동가가 체포되었습니다. 2024년 6월과 7월에는 8명의 야당 지도자들이 7~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향후 2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되었습니다. 사법 시스템이 정치적 보복의 도구로 악용되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국제기구들의 보고에 따르면, 구금된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구타, 고문, 가혹 행위가 광범 위하게 자행되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인들까지 공격하고 장비를 파손했습니다.
그러나 진압이 강해질수록 부모 세대까지 시위에 합류하며 저항의 불꽃은 더욱 커졌습니다. 대학교수, 외교관, 공무원들의 연쇄 파업과 사임도 이어졌습니다. 40개 대학에서 학생 파업이 조직되었습니다. Da oni, Atinati 같은 청년 단체들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흥미로운 현상도 있었습니다. 일부 시위대는 일본 만화 '원피스'의 해적 깃발을 들고 나왔습니다. 자유와 반권위주의를 상징하는 팬덤 문화가 정치적 저항과 결합한 것입니다. Z세대 특유의 글로벌 감성이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깃발 혁명'이 더 큰 불길로 번지는 계기는 2024년 10월 총선 이후의 정당성 위기와 11월 28 일의 "2028 동결" 선언이었습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불신이 이미 쌓여 있던 상황 에서, 동결 선언은 "정권이 국민 다수의 장기 목표를 폐기했다"는 감정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후의 시위는 단지 법안 반대가 아니라 "국가 경로의 강제 변경"에 대한 저항이 되었습니다.
여권은 시위를 "혁명 시도" 또는 "외부 세력의 조종"으로 규정하려 했습니다. 이런 프레이 밍은 공권력 강화와 규제 입법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반면 시위대는 "우리가 외부가 아니라 국민이다"라는 메시지를 깃발로 시각화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깃발이 많아질수록 논쟁은 더 단순해집니다. 복잡한 제도개혁의 실패가 "유럽이냐 아니냐"로 축약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할 때 얻는 것은 동원이고, 잃는 것은 해결입니다.
fi 글로벌 연대도 형성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지지 메시지가 왔습니다. 조지아 시위대가 우크라이나 깃발도 함께 흔든 것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연대의 상징 이었습니다.
Z세대 저항의 의미는 두 층위로 읽힙니다. 하나는 유럽 통합을 향한 세대적 열망의 가시화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후퇴의 조짐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EU 깃발은 외교적 상징이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사실 "여기서 미끄러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는 공포의 표식입니다.
조지아의 Z세대는 '정치적 선택'을 요구한 게 아닙니다. '정치적 후퇴 금지'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더 근본적인 요구입니다. 이들의 저항은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청년 운동으로 기록되며, 조지아 민주주의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최루탄과 물대포 앞에서도 EU 깃발을 놓지 않는 젊은 여성의 모습은 이 '깃발 혁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조지아의 미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젊은 세대의 확고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라.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의 고독한 싸움
살로메 주라비슈빌리(Salome Zourabichvili) 대통령의 위치는 2024~2025년 조지아 정치에서 독특합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핵심 결정을 통제하기 어렵고, 국가의 얼굴이면서도 국가의 방향키는 다른 손에 잡혀 있는 듯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싸움은 대중적 영웅 서사라기보다, 제도적 한계 속에서 '거부권·발언권·상징 자본'만으로 버티는 싸움에 가깝습니다.
주라비슈빌리는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지아 망명 귀족 가문의 후손입니다. 프랑스 외교관으로 경력을 쌓았고,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조지아로 돌아왔습니다. 2004년 부터 2005년까지 미하일 사카슈빌리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아의 꿈'의 지지를 받아 5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을 전후로 그녀는 여당과 결별했습니다. 정부가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고 친러시아적인 방향으로 선회하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고독"은 단순히 외로운 성격 같은 게 아닙니다. 구조적입니다.
첫째, 헌법적 역할의 제약입니다. 조지아는 의원내각제 성격이 강한 체제입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의회 다수파가 마음먹으면 대통령의 거부권을 재의로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2024년 봄 외국 영향력 법안 국면이 상징적입니다. 주라비슈빌리는 그 법을 위헌적이고 EU의 길을 막는 장애물로 규정하며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여당은 이를 뒤집을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멈춰!"라고 외칠 수는 있어도 "정 지"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둘째, 정당정치의 고립입니다. 대통령이 유럽 노선을 강하게 옹호할수록, 여권은 그녀를 ' 야권 편'으로 몰아붙이기 쉽습니다. 2024년 말 동결 선언 이후, 대통령은 정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거리의 시위대와 결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때 대통령은 '국가 통합'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 분열'의 한 축으로 프레이밍될 위험을 떠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침묵하면 "대통령이 국가의 방향 전환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따라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칭찬받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정치가 원래 그렇습니다.
셋째, 국제관계에서의 비대칭입니다. EU와 서방 파트너들은 조지아의 공식 정부와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서방에게 "조지아 안에도 유럽을 지키려는 제도적 목소리가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서방 정치권 일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냈습니다. EU도 조지아 정부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노선 복귀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 핵심 파트너는 행정부와 의회 다수파입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 수는 있어도, 즉각적인 정책 전환을 강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국제무대에서 "상징 적으로는 강하지만, 집행력은 약한" 위치에 머뭅니다.
그럼에도 주라비슈빌리의 싸움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첫째, 유럽 노선의 '합법성' 보존입니다. 정부가 EU 절차를 사실상 동결하고 시민사회 공간을 조이는 방향으로 갈 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조지아 국가 전체가 그 방향으로 합의한 건 아니다"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정치의 싸움은 당장 이기지 못해도, 기록이 다음 싸움의 무기가 됩니다.
둘째, 시민사회에 대한 방파제 역할입니다. 외국 영향력 법안 같은 사안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은 결과적으로 뒤집혔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법의 위험성을 국제적으로 환기하고 국내적으로도 '정상화'를 저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무력화된 거부권조차, 최소한 " 이건 정상적인 민주주의 절차로 통과한 무해한 법"이라는 서사를 깨뜨립니다.
셋째, 거리와 제도의 연결 고리입니다. 조지아의 시위는 "반정부"이기도 하고 "친유럽"이 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거리의 언어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을 때, 거리의 분노가 전면적 체제 부정으로 치닫는 것을 어느 정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연결은 양날의 검입니다. 여권은 이를 '대통령의 정치 개입'으로 공격할 수 있고, 야권은 대통령을 '동원 자원'으로만 소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완전 단절보다 연결이 낫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절벽 앞에서야 연결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주라비슈빌리는 분열된 야권과 시민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 '조지아 헌장(Georgian Charter)'이라는 정치적 협약을 주도했습니다. 이 헌장은 친유럽 야당들이 2024년 총선 승리 시 수행해야 할 개혁 과제들과 EU 가입 절차 복귀를 위한 로드맵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헌장을 통해 야당들이 단일한 목표 아래 협력하도록 유도하고, 선거를 통해 평화 적으로 정권을 교체하여 조지아를 다시 유럽의 길로 돌려놓으려 했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제한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부의 독주를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2024년 시위와 관련하여 수감된 야당 정치인 두 명을 사면함으로써 사법적 탄압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법안이나 인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집권당은 그녀를 '외국 영향력을 받는 대리인'이라 비난하며 탄핵을 시도했습니다. 2024년 10월에 탄핵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습니다. 정부는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방해하거나 헌법재판소를 통해 그녀의 권한을 제한하려 했습니다. 예산을 삭감하는 등 치졸한 보복도 이어졌습니다.
2024년 12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었으나,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은 "불법적인 의회가 선출하는 후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지 않겠다"며 대통령궁에 머물며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정부의 결정이 '헌법적 쿠데타'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CNN 등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지아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EU 지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조지아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2024년 12월 유럽의회에 연사로 초청되어 "조지아의 꿈은 러시아의 에이전트"라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격화될 때마다 그녀는 궁 앞 광장에서 시민들을 맞이하며 "여러분의 유럽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트빌리시의 대통령 궁에서 내려다보는 시위대의 깃발 물 결은 그녀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2028년까지 닫혀버린 유럽의 문 앞에서 그녀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2025년 들어서도 조지아는 EU와의 관계가 복원되기보다는 더 거칠어졌다는 평가가 이어 졌습니다. 의회가 외국 자금 및 시민사회 활동을 더 강하게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EU 는 이런 방향이 조지아의 EU 열망을 스스로 훼손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주라비슈빌리의 싸움은 승리의 서사가 아닙니다. 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을 바꿨을 때 도, 반대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남습니다. 국제정치에서 증거는 때 로 국경보다 오래갑니다.
실권이 제한적인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트빌리시의 대통령 궁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만들었습니다. 여당에 의해 탄핵 위협과 정치적 고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리의 시위대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의 투쟁은 권력을 잃어가는 대통령의 저항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방향키를 다시 서쪽으로 돌려놓기 위한 조지아 민주주의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녀의 고독한 싸움은 조지아 민주주의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2025년 현재, 탄핵 재추진 위협 속에서도 그녀는 조지아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며 역사적인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Z세대 시위대에게 그녀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거대 여당에 맞선 1인의 고독한 투쟁이었지만, 조지아 시민들에게는 '유럽 조지아'의 희망을 상징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