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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에필로그: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에필로그: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말레이시아 여행의 마지막 날, 저는 쿠알라룸푸르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히잡을 쓴 말레이 여성, 차이나타운에서 온 듯한 중국계 노인, 인도계 가족이 함께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각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도, 같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으로, 세대로, 지역으로, 종교로. 조금만 다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터넷에서는 날마다 누군가와 다른 누군가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700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작은 나라가 세계에 던지는 질문
말레이시아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중 하나입니다. 큰 나라는 아닙니다. 경제 규모도 네 번째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지역에서 하는 역할을 보면 놀랍습니다.
말라카 해협을 기억하시나요? 세계 무역의 4분의 1이 지나가는 그 바다를 말레이시아가 지키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와 함께 해적과 테러를 막고, 배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매일 순찰을 돕니다.
작은 나라지만 큰 역할을 합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미국도 만나고, 중국도 만납니다. 일본, 유럽, 러시아 모두와 대화합니다. 어느 한쪽 편만 들지 않습니다.
이게 쉬운 일일까요?
요즘 세상은 편을 나누라고 요구합니다. "너는 어느 편이야?"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편입니다. 하지만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강하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자기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9명의 왕이 순서대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
말레이시아에는 9명의 술탄이 있습니다. 5년마다 돌아가면서 한 분이 국왕이 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상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함께 사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의 가문이 계속 권력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갖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왕이 될 때도 있고, 네가 왕이 될 때도 있습니다. 기다리면 차례가 옵니다.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권력을 나누는 것, 기회를 돌아가며 주는 것, 한 사람이나 한 그룹이 계속 독점하지 않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이것을 7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나라에 산다는 것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모스크에서 기도 소리가 들립니다. 점심에는 중국 식당에서 향이 피어오릅니다. 저녁에는 인도 사원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크리스마스 때는 쇼핑몰에 트리가 서고, 라마단 때는 거리마다 특별 음식 시장이 열립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한 나라야?”
그런데 며칠 지나니 알았습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생깁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서로의 명절을 함께 축하합니다. 무슬림 친구가 중국 설날 파티에 가고, 중국계 친구가 하리라야(이슬람 명절)에 초대받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갈등도 있습니다. 불만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많은 갈등을 봤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 기술 때문에 또 다른 걱정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으면 어떡하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말레이시아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변화와 다름은 피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느냐는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나라
말레이시아가 완벽한 나라는 아닙니다.
민족 간 경제적 격차가 있습니다. 어떤 정책은 공평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종교 문제로 법정에서 다투기도 합니다. 정치인들도 싸웁니다.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69년에 큰 민족 갈등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그때 말레이시아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이제 각자 갈라서서 살까? 아니면 계속 함께 방법을 찾아볼까?”
그들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50년이 넘도록 계속 조정하고, 타협하고, 대화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완벽한 답은 없다는 것. 하지만 계속 노력하면 된다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
저는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한국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온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대 간 생각의 차이도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기술은 우리 삶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레이시아는 답을 줍니다.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시도해볼 만한 답입니다.
첫째,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방식만이 옳다고 우기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함께 사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것입니다. 한 번의 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대화하고, 조정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셋째, 작아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중립을 지키고, 자기 길을 가는 말레이시아처럼요.
마지막 이야기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 다시 그 카페가 생각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 같은 거리를 걸어가던 그 풍경이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700년 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래가 불안하고, 변화가 빠르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는 이 시대에. 말레이시아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르지만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노력하면 된다는 것.
작아도 자기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이 여러분께 편안한 휴식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책을 덮으실 때, 내일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희망합니다.
말라카 해협의 바람처럼, 우리도 계속 흘러갈 것입니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하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갈 것입니다.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길지 않은 두번의 말레이 기억을 정리하며 이 책을 쓰다. 2025 김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