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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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교양 인공지능
프랑스어·한국어 쌍어판
372쪽 PDF.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과 대학 생활에서 AI를 쓰는 방법을 두 언어로 읽는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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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교양 인공지능
러시아어·한국어 쌍어판
372쪽 PDF.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과 대학 생활에서 AI를 쓰는 방법을 두 언어로 읽는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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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교양 인공지능
베트남어·한국어 쌍어판
372쪽 PDF.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과 대학 생활에서 AI를 쓰는 방법을 두 언어로 읽는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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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교양 인공지능
라오스어·한국어 쌍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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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위한 교양 인공지능
몽골어·한국어 쌍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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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제12장. 고영향 인공지능 영향평가 -- 법적 강제 아닌 사실상 필수
제12장. 고영향 인공지능 영향평가 -- 법적 강제 아닌 사실상 필수
2026년 3월, 서울의 한 AI 스타트업이 교육부 산하 기관의 입찰 공고를 받았습니다. 중학교 학생 성적 예측 시스템 구축 사업입니다. 인공지능기본법 제2조 제4호 차목이 정한 "유아교육, 초등교육 및 중등교육의 학생 평가" 영역에 해당하는 고영향 인공지능입니다. 입찰 서류를 펼칩니다. 기술 역량, 보안 인증, 개인정보 처리 실적 항목 뒤에 한 줄이 보입니다. "인공지능 영향평가 이행 여부." 가산점 항목입니다. 법률이 영향평가를 의무화한 적은 없습니다. 과태료도 없습니다. 이 항목에서 0점을 받으면 경쟁사에 밀립니다. 컴플라이언스 팀장이 과기정통부의 인공지능 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을 내려받습니다.
1. 영향평가의 법적 성격
고영향 인공지능 영향평가는 의무가 아닙니다.
인공지능기본법 어디에도 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조항이 없습니다. 법 제4장은 고영향 인공지능 사업자에게 위험관리방안 수립(제34조 제1항 제1호), 설명 방안 마련(제2호), 이용자 보호(제3호), 사람의 관리·감독(제4호), 문서 작성·보관(제5호)이라는 다섯 가지 책무를 한 조문에 담아 의무로 부과하되, 영향평가 자체는 법 제35조 제1항에서 "노력하여야 한다"는 어미로 규정했습니다. 법학에서 이런 조항을 노력의무(努力義務)라고 부릅니다. 결과를 반드시 달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이 조항은 원래 다른 형태였습니다. 초기 법안에는 사전 영향평가를 의무로 부과하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기업 쪽이 반발했습니다. AI 시스템을 출시하기 전에 영향평가까지 거치면 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타협안이 나왔습니다. 영향평가를 자율적 노력의무로 두되, 이를 이행한 사업자에게 공공조달에서 우선 고려를 부여하는 구조입니다. 강제의 채찍 대신 인센티브의 당근을 택한 것입니다.
법률 교과서의 분류로 보면, 이 조항은 프로그램 규범에 가깝습니다. 국가와 사업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되, 위반에 대한 제재가 따르지 않습니다. 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아도 과태료가 없고, 행정처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는가.
2. 공공조달이라는 문
답은 제16조 제3항과 제35조 제2항에 있습니다.
2026년 1월 20일 공포된 개정법(법률 제21311호)은 공공부문 AI 도입 촉진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제16조 제3항입니다. 국가기관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용역을 발주할 때 인공지능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2026년 7월 21일 시행되는 개정 시행령 제15조 제4항은 우선 고려의 대상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확인한 AI 제품과 서비스로 정하고, 확인의 기준과 절차는 고시에 맡겼습니다.
영향평가는 이 구조 안에 들어갑니다. 법 제35조 제2항은 국가기관이 고영향 인공지능을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경우 영향평가를 실시한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정했습니다. 법률이 강제하지 않지만, 정부 시장에 들어가려면 평가를 받아 놓는 편이 유리합니다.
한국 정부의 연간 공공조달 규모는 180조 원을 넘습니다. 이 가운데 AI 관련 사업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개정법 제16조 제3항이 AI 우선 고려를 법제화하면서, 정부 대상 시장(B2G)은 AI 사업자에게 무시할 수 없는 매출 원천이 됩니다. 공무원 면책 조항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AI 도입에 따른 배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AI 도입을 주저할 이유가 하나 줄었습니다. 구매자 쪽의 장벽이 낮아지면, 공급자 쪽에서 영향평가라는 자격 요건의 무게는 그만큼 커집니다.
영향평가를 받지 않은 사업자가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받은 사업자에 비해 불리해집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공공 시장에서 밀릴 뿐입니다." 이것이 소프트 규제의 설계입니다.
3. 영향평가의 세 단계
과기정통부가 2026년 1월 22일 배포한 인공지능 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은 세 단계를 제시합니다. 5대 가이드라인(투명성 확보, 안전성 확보, 고영향 AI 판단, 사업자 책무, AI 영향평가) 가운데 마지막입니다.
사전 준비 단계가 있습니다. 평가 대상 AI 시스템의 목적, 기능, 적용 영역을 확정합니다. 해당 시스템이 고영향 인공지능에 해당하는지 판단합니다. 판단 기준은 법 제2조 제4호의 11개 영역과 시행령 제25조의 2단계 절차입니다. 1단계에서 영역 해당성을 확인합니다. 에너지 공급, 보건의료, 의료기기, 원자력시설, 생체인식, 채용과 대출심사, 교통수단, 공공서비스, 학생 평가 같은 영역에서 쓰이는가. 2단계에서 사람의 생명, 신체 안전,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검토합니다. 판단이 어려우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확인을 요청할 수 있고, 장관은 기본 30일 안에 결과를 회신하되 한 차례에 한해 30일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평가 팀을 구성하고, 외부 이해관계자(이용자, 영향받는 자, 시민단체)의 의견 수렴 방법을 정합니다.
본 평가 단계가 이어집니다. 핵심은 위험 시나리오 작성입니다. AI 시스템이 잘못 작동하거나 편향된 결과를 내놓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대출심사 AI가 특정 지역 거주자를 체계적으로 거부하는 시나리오. 학생 평가 AI가 장애 학생의 성적을 실제보다 낮게 예측하는 시나리오. 채용 AI가 여성 지원자의 서류를 남성보다 낮게 점수를 매기는 시나리오. 추상적 위험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피해를 입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평가 항목은 여러 기준에 걸쳐 있습니다. 공정성(편향과 차별이 없는가), 투명성(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안전성(오작동 시 안전장치가 있는가), 책임성(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분명한가), 개인정보 보호(데이터가 적법하게 처리되는가), 인적 통제 가능성(사람이 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있는가). 기본권 영향 분석에서는 평등권, 알 권리, 프라이버시, 직업 선택의 자유 같은 헌법적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핍니다.
사후 조치 단계가 마무리합니다. 평가 결과를 토대로 위험을 줄이는 조치를 수립합니다. 모니터링 계획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재평가를 실시합니다. 평가 결과와 조치 내역을 문서화하여 보관합니다. 법 제34조 제1항 제5호와 시행령 제27조 제2항이 요구하는 이행 근거 문서 5년 보관 의무와 맞물립니다.
4. 누가 평가하는가
사업자 자신입니다.
자체 평가가 기본입니다. 시행령 제28조 제2항은 직접 또는 제3자에게 의뢰하여 실시할 수 있다고 정하지만, 외부 인증기관의 검증을 받으라는 의무 규정은 없습니다.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은 가이드라인이 권장하는 사항이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사업자가 자기 시스템의 위험 시나리오를 쓰고, 자기가 평가 항목을 채점하고, 자기가 사후 조치를 수립하고, 자기가 문서를 만들어 보관합니다.
이 구조가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맞섭니다.
자율 평가를 지지하는 쪽은 이렇게 봅니다. AI 시스템의 내부 작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체는 개발한 사업자 자신입니다. 외부 인증기관이 복잡한 머신러닝 모델의 편향성을 짧은 심사 기간 안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체 평가가 실질적으로 더 깊은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외부 인증을 의무화하면 비용이 늘고, 국내에 AI 전문 인증기관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병목이 생깁니다.
반대쪽은 이렇게 봅니다. 자기가 만든 시스템의 위험을 자기가 평가하면, 위험을 낮게 잡을 유인이 생깁니다. 영향평가 결과가 나빠지면 사업에 지장이 오니, 시나리오를 온건하게 쓰거나 편향 분석을 형식적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이를 확인할 외부 장치가 법에 없습니다.
대출심사 AI를 개발한 핀테크 회사가 자체 영향평가를 실시하는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이 회사의 모델이 비수도권 거주자에 대해 통계적으로 낮은 신용점수를 산출하는 패턴이 있다고 합니다. 자체 평가에서 이 패턴을 솔직하게 기재하면, 고영향 인공지능으로서의 위험이 높게 나오고, 공공기관과의 거래에서 추가 설명 부담을 집니다. 기재하지 않으면, 아무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이 유인 구조의 취약점은 법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율 규제에 내재된 한계입니다.
5. EU의 적합성 평가: 같은 이름, 다른 칼날
유럽연합 AI법의 적합성 평가(conformity assessment)는 성격이 다릅니다.
한국은 권장합니다. EU는 강제합니다.
EU AI법 제43조는 고위험 AI 시스템의 제공자(provider)에게 시장 출시 전에 적합성 평가를 의무화합니다. 평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CE 마킹을 받지 못하고, CE 마킹이 없으면 EU 시장에 출시할 수 없습니다. 문이 닫힙니다.
적합성 평가의 경로는 두 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고위험 AI 시스템에는 내부 통제(internal control) 방식이 적용됩니다. 제공자가 EU AI법 제9조부터 제15조까지의 요건을 충족함을 스스로 입증합니다. 위험 관리 체계, 데이터 거버넌스, 기술 문서, 기록 보관, 투명성 정보 제공, 인적 감독 장치, 정확성과 견고성과 사이버 보안. 이 일곱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내부 통제라 해도 기술 문서를 작성하고, 품질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며, EU 적합성 선언서를 발급해야 합니다.
원격 생체인식에 쓰이는 AI 시스템에는 더 엄격한 경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화표준을 온전히 적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독립된 제3자 인증기관(notified body)이 시스템을 직접 심사합니다. 사업자의 자기 평가만으로는 부족해지고, 외부의 눈이 들어옵니다.
EU AI법 제27조는 기본권 영향평가(Fundamental Rights Impact Assessment, FRIA)를 별도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적합성 평가와 다른 의무입니다. 공공기관이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업이 고위험 AI를 배치할 때, 배치 전에 기본권 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공자(provider)의 의무가 아니라 배치자(deployer)의 의무입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의 범주, 사용 기간, 구체적 위험, 인적 감독 조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대응 방안을 문서화합니다. 결과를 국가 감독기관에 통보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U는 두 개의 평가를 분리했습니다. 제공자에게는 적합성 평가, 배치자에게는 기본권 영향평가. 둘 다 의무입니다. 한국은 EU식 적합성 평가는 두지 않고, 영향평가 하나를 자율적인 노력의무로 두었습니다.
6. 결정적 차이 다섯 가지
한국의 영향평가와 EU의 적합성 평가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법적 성격이 다릅니다. 한국은 노력의무입니다. EU는 시장 진입의 법적 전제조건입니다. 한국에서 영향평가를 하지 않으면 공공조달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EU에서 적합성 평가를 하지 않으면 시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평가 주체가 다릅니다. 한국은 사업자가 직접 하거나 제3자에게 의뢰하는 자율 평가이고, 외부 검증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EU는 대부분 자체 평가(내부 통제)이지만, 원격 생체인식 같은 민감 영역에는 제3자 인증기관이 투입될 수 있습니다.
결과의 형식이 다릅니다. 한국의 영향평가 결과는 사업자가 보관하는 내부 문서입니다. EU의 적합성 평가를 통과하면 CE 마킹이라는 물리적 표시가 제품에 부착되고, EU 적합성 선언서가 발급됩니다. 시장과 소비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호입니다.
위반 시 제재가 다릅니다. 한국에서 영향평가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없습니다. EU에서 적합성 평가 없이 고위험 AI를 출시하면 최대 1,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매출의 3퍼센트가 과징금으로 부과됩니다. CE 마킹 부정 부착을 포함한 제공자 의무 위반도 같은 구간에 듭니다. 금지된 AI 관행을 위반하면 최대 3,500만 유로 또는 매출의 7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한국의 인공지능기본법 전체의 최대 과태료 3,000만 원과 EU의 3,500만 유로 사이에는 네 자릿수의 간극이 있습니다.
적용 시점이 다릅니다. 한국의 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은 2026년 1월 22일부터 적용 중입니다. EU의 고위험 AI 적합성 평가 의무는 디지털 옴니버스 개정안이 확정되면 2027년 12월 2일까지 늦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먼저 움직였으나, EU가 실제로 적용을 시작하면 규제의 무게는 EU쪽이 압도적으로 무겁습니다.
7. 한국이 자율 규제를 택한 이유
의도된 선택입니다.
인공지능기본법의 정식 명칭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입니다. "발전"이 "신뢰"보다 앞에 옵니다. 이 법은 진흥법과 규제법의 혼합체이며, 무게중심은 진흥 쪽에 놓여 있습니다.
국회 심의 당시 산업계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한국 AI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 주자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형 AI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게 사전 적합성 평가를 부과하면, 시장 진입 속도가 느려지고 비용이 늘어납니다. EU조차 디지털 옴니버스 개정안으로 고위험 AI 의무를 2027년 12월까지 16개월 늦추는 방안을 내놓고 중소기업 규제 비용 35퍼센트 감축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EU가 자기네 규제의 속도를 늦추는 판에, 한국이 먼저 강한 규제를 세울 이유가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과기정통부도 같은 방향을 잡았습니다. 민간 전문가 80여 명으로 하위법령 정비단을 구성하면서, 사업자의 자율적 안전 확보를 기본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가이드라인 5건과 고시 2건(최첨단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고시, 고영향 인공지능 사업자 책무 고시)이 이 원칙을 따릅니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사업자가 법률상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실무 지침의 역할을 합니다.
과태료 수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최대 3,000만 원. 국내 AI 산업이 초기 성장 단계에 있다는 판단이 깔렸습니다. 높은 과징금이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법안 심의 내내 제기되었습니다.
인센티브 구조도 이 철학에서 나왔습니다. 법으로 벌을 주는 대신, 시장으로 끌어당기겠다는 것입니다. 영향평가를 하면 공공조달에서 유리해집니다. AI 기본법 지원데스크에서 익명 컨설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도기간(최소 1년, 2027년 1월까지) 동안 과태료 대신 행정 지도와 시정 권고가 우선합니다. 당근을 여럿 깔아두고, 채찍은 잠시 내려놓은 구조입니다.
8. 이 설계의 빈틈
비판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한국법제연구원 정원준 연구위원은 2025년 9월 보고서("인공지능기본법의 합리적 규율 및 발전방안 연구")에서, '고영향 인공지능' 개념의 정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법 안에서 "영향"과 "위험"이 병행 사용되고, "안전"과 "기본권"이 "및(and)"으로 연결되어 해석의 혼선을 빚습니다. 사업자가 영향평가를 하려 해도, 무엇이 "중대한 영향"인지 기준이 모호하면 평가 자체가 형식으로 흐릅니다.
같은 보고서는 규율 대상이 너무 넓어서 정부기관까지 '인공지능사업자'에 포함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EU AI법처럼 가치사슬(provider, distributor, deployer, user)에 따라 수범자를 세분하지 않고, 개발사업자와 이용사업자라는 큰 두 묶음만 두었기 때문입니다. 영향평가의 주체와 범위가 이 모호함 위에 서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준화 연구관은 법 시행일인 2026년 1월 22일에 발간한 보고서("국가 AI 전략 실현을 위한 행정의 과제")에서, 고영향 AI 개념과 요건의 구체화, 사업자 유형별 의무 차등화가 남은 과제라고 밝혔습니다.
한국법제연구원 이유봉 연구위원은 2024년 10월 "AI 영향평가를 위한 입법 연구"에서 EU와 미국의 영향평가 제도를 비교 분석하며, 한국형 영향평가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평가 결과의 공개 범위와 외부 검증 체계를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자체 평가 구조 자체의 취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자가 위험 시나리오를 의도적으로 낮게 쓰거나, 편향 분석을 형식적으로 채운다 해도 이를 확인할 장치가 법에 없습니다. EU가 원격 생체인식 AI에 제3자 인증기관 평가를 요구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과태료 3,000만 원의 억지력 문제도 있습니다. 연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AI 기업에게 3,000만 원은 사업 비용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EU가 매출의 7퍼센트를 상한으로 잡은 것은, 과징금이 사업 결정에 영향을 줄 만큼 무거워야 규제가 작동한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9. 소프트 규제는 작동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프트 규제가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가 법의 취지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따르거나, 이행하지 않았을 때 시장에서의 불이익이 충분히 커야 합니다. 공공조달 시장이 충분히 크고, 영향평가 이행 여부가 조달 평가에서 실질적 비중을 차지해야 합니다.
지지하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정부의 AI 정책은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99개 실행과제와 326개 정책권고를 담은 행동계획을 확정했습니다. 48개 중앙행정기관에 차관급 인공지능최고책임관(CAIO)이 전원 지정되어 매월 정례 협의회를 엽니다. 인공지능정책센터가 NIA 안에 설치되어 59명이 정책 개발과 영향 분석을 수행합니다. 이 체계가 돌아가면, 공공기관의 AI 조달에서 영향평가 이행 여부는 자연스럽게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됩니다.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시장이 강제합니다.
반대하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의 자율에 기대는 규제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 실패합니다. B2G 시장에 관심이 없는 사업자, 소비자 대상(B2C) 서비스만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공공조달 인센티브는 효과가 없습니다. 채용 AI를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대기업, 대출심사 AI를 내부에서만 쓰는 금융사에게는 공공조달 가산점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 사업자들이 영향평가를 자발적으로 실시할 동기는 법 안에 없습니다.
AI 기본법 지원데스크의 실적은 참고가 됩니다. 시행 10주 만에 552건의 상담이 접수되었습니다. 문의의 절반가량이 투명성 의무에 몰렸고, 고영향 인공지능 확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사업자들이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상담 건수와 실제 영향평가 이행 건수는 별개입니다. 물어보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세 나라의 경로를 놓고 보면 각각의 선택이 선명합니다. EU는 경성 규제를 선택했습니다. 적합성 평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시장에 들어갈 수 없고, 위반하면 글로벌 매출의 퍼센트 단위로 과징금이 나옵니다. 중국은 사전 등록(备案)을 선택했습니다. 여론 형성력이나 사회 동원 능력을 가진 생성형 AI 서비스를 내놓으면 10영업일 이내에 알고리즘을 등록해야 합니다. 2025년 11월 기준 611개 서비스가 등록을 마쳤습니다. 등록하지 않으면 시정 요구를 거쳐 서비스 중단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인센티브를 선택했습니다. 하지 않아도 벌은 없고, 하면 공공 시장에서 유리해집니다.
어느 접근이 옳은지는 2026년 7월에 판정할 수 없습니다. EU의 고위험 AI 적합성 평가 의무는 2027년 12월에야 본격 적용됩니다. 한국의 공공조달 연동 구조는 2026년 7월 21일에 시행됩니다. 실증적 비교는 수년 뒤에나 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방향은 읽힙니다. 48개 기관의 CAIO가 매달 모이고, 99개 과제가 추진되며, 제16조 제3항이 AI 우선 고려를 법으로 못 박은 이상, 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AI 시스템이 공공 입찰에서 선택될 가능성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서울의 그 스타트업은 영향평가를 시작합니다. 법이 시켜서가 아닙니다. 입찰에서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옆자리의 경쟁사도 같은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 없는 규제가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그 작동이 B2G 너머의 시장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자체 평가의 형식화를 막을 수 있는지, 3,000만 원의 과태료가 충분한 억지력을 갖출 수 있는지. 법이 열어 둔 질문들이 시장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