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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성품, 스타일

작성자
김경진
작성일
2026-02-26 23:46
조회
2386

강강약약(強强弱弱) 한동훈

 

1. 대통령 부부에게 쓴소리한 유일한 사람

2024년 1월 21일, 주말 오후였습니다.

겨울 햇살이 창문을 비스듬히 가르던 그 시간, 한동훈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화면에 뜬 이름은 대통령실 유력인사.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을 대신한 목소리는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위원장님, 사퇴를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동훈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전화는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 그가 던진 열두 글자가 용산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고작 열두 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열두 글자는 용산 대통령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마지노선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 그것은 김건희 여사였습니다.

한동훈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순간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타협점을 찾으려 애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동훈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국민 보고 나선 길입니다. 할 일은 하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다음 날인 1월 22일, 한동훈은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사퇴 요구설이 언론에 이미 번진 뒤였습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입니다."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용산과 여의도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심'과 '한심'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의 마음과 한동훈의 마음. 한때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거리가,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틀 뒤인 1월 23일, 충남 서천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전통시장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찾았고, 한동훈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쳤습니다.

한동훈은 윤석열 앞에서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 인사는 언론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굴복으로 읽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의로 읽었습니다. 한동훈 자신은 그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는 대통령 전용열차에 동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봉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친윤계 핵심인 L ㅁ의원은 "대화에 오해가 있었다"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한동훈이 대통령실과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그는 '쓴소리하는 각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부하는 법을 몰랐고, 눈치 보는 법도 몰랐습니다.

의료 사태가 터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2024년 2월 6일,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병원 응급실이 하나둘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기다리던 환자들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국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있었습니다.

복지부 장관은 단계적 증원을 주장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일괄 증원을 원했습니다. 결국 2000명이 확정됐습니다.

2024년 4월 1일, 부산 유세 현장이었습니다. 총선을 앞둔 뜨거운 현장에서 한동훈은 마이크를 잡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습니다.

"2000명 숫자를 고집한 것은 아쉽습니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오늘 정부도 2000명의 숫자를 고수하지 않고 대화할 거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비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에 이견을 표명한 것입니다. 그것도 전국에 생중계되는 선거 유세장에서.

용산에서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당에서 왜 저러느냐"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제가 국민의힘을 이끈 후 지적한 부분을 바꾸지 않은 게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9월 6일, 한동훈의 중재로 '여·야·의·정 협의체'가 제안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마침내 한 발 물러섰습니다.

"2000명이란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합리적 안을 가져오면 논의하겠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중재로 대화의 장이 열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제안했습니다. "10년 동안 1004명 증원안 등을 살펴보며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합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2025년 11월 27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결론은 냉혹했습니다.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미흡하고, 논리 정합성이 부족합니다."

감사원은 더 나아가 지적했습니다.

"복지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맞춰 필요한 의사 수를 추계했습니다."

한동훈이 처음부터 우려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대에 앞서 너무 일찍 옳았을 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헌정사에 영원히 기록될 그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한동훈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려 했지만, 그는 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계엄 해제를 이끌었습니다.

계엄은 해제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최고위원 5인이 총사퇴했습니다. 지도부가 붕괴됐습니다.

12월 16일, 한동훈은 당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 탓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2026년 1월 13일 밤 11시 45분.

깊은 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기습적으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안건은 한동훈에 대한 제명 의결이었습니다.

1월 29일, 최고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제명이 확정됐습니다.

한동훈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2024년 1월 21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전화를 받던 그날부터 이 순간까지. 정확히 2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부부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의료 사태에서 고집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비상계엄을 막았습니다.

그 대가로 그는 당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권력 옆에서 아부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훗날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분들은 대통령과 밥 먹고 다니면서 계속 자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직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뭐 하셨는지를 그분들이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강약약(強强弱弱).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게.

그것이 한동훈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 때문에 그는 가장 강한 자, 대통령과 그의 부인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각료가 됐습니다.

그 대가가 제명이라 하더라도.

2. 네 번의 좌천에도 굴하지 않다

2019년 7월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한동훈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찰 내 특수통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여섯.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그 자리에 서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습니다.

정상에 오른 기분이었을까요?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또 다른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한동훈은 이 수사의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딸의 대학입시 비리 의혹, 사모펀드 투자 의혹, 가족 관련 비리 의혹. 수사 대상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거물이었고, 그 뒤에는 문재인 정부 전체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한동훈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후배 검사들에게 늘 하던 말이었습니다.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법의 원칙이 기준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불법은 불법이었습니다.

수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나중에는 대법원에서 실형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습니다.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습니다. 취임 직후 단행한 첫 검찰 인사에서 한동훈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대검 부장에서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지방으로 발령받는 것은 검찰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좌천이었습니다.

첫 번째 좌천이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한동훈은 담담하게 짐을 쌌습니다. 부산행 KTX에 오르며 그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서울 도심이 점점 멀어졌습니다. 20년 걸려 올라간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나는 기분이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20년 3월 31일, MBC가 충격적인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채널A 기자와 검찰이 유착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범죄 혐의를 조작하려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그 중심에 한동훈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한동훈은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이미 들끓고 있었습니다. 검찰과 언론이 손잡고 야당 인사를 음해했다는 프레임은 강렬했습니다. 연일 그의 이름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범죄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2020년 6월, 두 번째 좌천 인사가 발표됐습니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찰 내에서 '유배지'로 불리는 자리였습니다. 직접적인 수사나 지휘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한직이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적한 연수원에서 그는 연구보고서나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

한때 재벌 총수를 구속하고, 국정농단을 수사하던 검사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020년 7월 29일, 검찰은 한동훈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날, 수사 검사가 압수수색팀을 이끌고 왔습니다.

사건은 압수수색 도중에 벌어졌습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함께 있던 검찰 수사관들도 그 순간 한동훈이 증거인멸을 의심할 만한 행동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직 검사가 현직 검사에게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독직폭행 피해자가 된 한동훈은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1심에서 가해 검사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유죄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 7월 21일, 2심에서 "고의와 상해 입증이 어렵다"며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억울합니까?"

누군가 물었습니다. 한동훈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징징대면 구차합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습니다. 억울해도 징징대지 않는다. 부당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2021년 6월, 세 번째 좌천 인사가 발표됐습니다.

사법연수원 부원장.

언뜻 보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보다 나아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사법연수원 부원장 자리에는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검사가 갈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연수원에서 연수원으로. 검찰의 핵심에서 변방으로. 한동훈은 묵묵히 그 길을 걸었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4월 9일.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검언유착 사건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2년간 한동훈을 옭아맸던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검찰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조작된 의혹이었습니다.

누명이었습니다.

한 달 뒤인 2022년 5월 17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한동훈은 제69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네 번의 좌천 끝에 그는 검찰의 수장이 아닌, 검찰 위에 선 자리에 올랐습니다.

훗날 한동훈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이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력이 잘못된 길로 갔을 때 어떤 교정력이 발생하느냐가 그 정권의 성패를 좌우해 왔습니다. 저는 손해를 보더라도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정의는 때로 긴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어둠 속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수사 철학

"세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동훈이 후배 검사들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라도, 핵심은 단순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피의자가 무슨 짓을 했고, 왜 그것이 잘못인지,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이 세 줄만 읽으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복잡하게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핵심을 꿰뚫어야만 비로소 단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기름기를 빼고 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수사의 정당성은 정치적 상황이나 권력의 눈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법 앞에 공정한지,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불법을 바로잡는 것인지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한동훈은 이 원칙을 평생 지켰습니다.

한동훈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강강약약(強强弱弱)'.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불법에는 더욱 엄정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철학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삽니다. 강한 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약한 자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동훈은 달랐습니다.

2003년, 서른 살의 한동훈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그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의 대기업과 맞섰습니다.

SK그룹 주식 부당거래 사건.

800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이면거래를 지시한 혐의가 포착됐습니다. 재벌비리를 수사한다는 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론의 관심, 정치권의 압력, 기업 측 로비. 보이지 않는 손들이 수사를 힘들게 했습니다.

한동훈은 흔들리지 않고 증거를 수집했고, 관련자들을 구속 기소했습니다. 재판 결과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3년 뒤인 2006년, 한동훈은 또 다른 재벌기업과 마주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한동훈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추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관련자들은 구속됐고, 배임과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07년에는 공직자가 타깃이 됐습니다.

국세청장 비리 사건.

국가의 세금을 관장하는 최고위 공무원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한동훈은 이 사건 역시 끝까지 추적해 기소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한동훈이 수사한 대상은 특정 정파 세력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진영 무관,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하게."

이것이 그의 일관된 원칙이었습니다.

2015년, 한동훈은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국제 경제 사건.

전 세계에서 담합을 벌인 기업들을 추적하고 처벌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국제 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한동훈은 이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2015년 '올해의 경제검사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무렵 그가 맡았던 사건 중 하나가, 20년 뒤 대한민국을 구하는 열쇠가 됩니다.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당시 한동훈은 론스타 대표에게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형사판결은 훗날 6조 원 규모의 국제투자분쟁에서 대한민국의 승소를 이끄는 결정적 무기가 됩니다. 그 이야기는 제3부에서 다루겠습니다.

한동훈의 수사 철학을 압축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 있습니다.

"악인은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악인의 정의입니다.

권력을 가졌든, 돈을 가졌든, 그것을 이용해 약한 사람을 짓밟는 자가 악인입니다. 지위가 높든 낮든, 학벌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남을 착취하는 순간, 그는 악인이 됩니다.

한동훈은 그런 악인들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들에게는 두려운 이름이었습니다.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이름이었습니다.

재벌이든 대법원이든, 불법을 저질렀다면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는 평가였습니다. 권력자들에게 그 이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동훈 자신은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원칙을 지켰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하게."

그것이 그가 검사로서 평생 지켜온 원칙이었습니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불법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국정농단 수사가 끝난 뒤, 한동훈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국 전 장관 수사를 지휘하게 됩니다. 그 수사가 불러온 폭풍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권력에 맞서는 검사. 강자의 불법을 용납하지 않는 검사.

그런 검사는 언제나 권력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4. 한동훈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

이 글을 쓰면서 저는 계속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동훈이라는 사람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는 서른 살에 재벌 총수를 구속했습니다.

마흔에 대법원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쉰 살에 비상계엄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대가로 좌천당하고, 폭행당하고, 누명 쓰고, 결국 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더 쉬운 길이 있었습니다.

눈 감으면 됐습니다. 고개 숙이면 됐습니다.

권력자들과 밥 먹으며 웃으면 됐습니다.

그러면 좌천도, 폭행도, 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 길을 가지 않았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강강약약(強强弱弱).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게.

이 네 글자가 그의 삶 전체를 설명합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그 반대로 삽니다. 강한 자 앞에서는 작아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커집니다. 윗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갑질합니다. 그것이 세상 이치라고, 처세술이라고,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한동훈은 그 상식을 뒤집었습니다.

권력이 클수록 더 엄격하게. 지위가 높을수록 더 철저하게. 힘이 셀수록 더 당당하게.

그래서 그는 재벌앞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로 그는 네 번 좌천당했습니다. 폭행을 당했습니다. 조작된 의혹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당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징징대면 구차합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억울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부당해도 변명하지 않는다. 손해 봐도 징징대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그것이 한동훈이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강한 자 앞에서 눈을 감을 것인가, 눈을 뜰 것인가. 약한 자 앞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낮출 것인가. 옳은 일을 하고 손해 볼 것인가, 편한 길을 가고 득을 볼 것인가.

한동훈은 한 가지 답을 보여줬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옳은 일을 한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칙을 지킨다. 쫓겨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강강약약.

이 네 글자가 그를 쓰러뜨렸고, 이 네 글자가 그를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습니다. 정의는 때로 긴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어둠 속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동훈은 그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써 나가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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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1

  • 2026-02-27 01:33

    강강약약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좋아합니다 인간 한동훈 그리고
    정치인 한동훈을 좋아합니다 최소한
    그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정치인과
    많이 다를것 같아서 그를 신뢰 합니다


    • 2026-02-27 01:45

      공감합니다


  • 2026-02-27 01:56

    김경진 위원장님 잘 읽었습니다 강강약약 특히저는 공과사를 확실히하는 한동훈을 지지하는이유지요 했던말 뒤집는 얕은정치인도아니구요 김경진위원님의 다음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제정신아닌 국힘상황에 많이 힘드실텐데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 2026-02-27 03:36

    한동훈을 지지하게 된 이유가 고스란히 잘 적혀 있네요. 위의 사실들은 뒤에 밝혀진 것들이죠. 한동훈은 군중심리에 의해 지지하는게 아니라 몇번의 케이스를 보면 엥? 이런 정치인이 있다고? 하며 다시 한번 더 쳐다보다가 푹 빠져 버립니다. 한번 빠지면 못나옵니다. 완전 내돈 내시간 내열정을 바쳐서그의 가는 길을 응원합니다. 60평생에 누굴 응원하려고 시장을 가고 먼발치에서 뒷통수만 보여도 소리칠것같은 설렘은 첨입니다. 그를 응원하는 국민이 점점 더 많아질겁니다.


  • 2026-02-27 04:25

    마치 나라가 위기에 빠질것을 예측 이라도 한듯 우리에게 위기에서 구하라는 사명을 갖고 이땅에 태어나신것 같은 실력있고 유능한 한동훈이라는사람의 쓰임새를 이제 제자리 찾아 가는 여정이 시작 되었다고 봅니다. 이시대의영웅 한동훈 으로 우뚝 서실겁니다. 이미 론스타,엘리엇 승소 이 두가지만 이라도 이미 영웅 이긴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추천합니다.


  • 2026-02-27 04:38

    애민정신입니다


  • 2026-02-27 05:51

    최고의 업적은 계엄을 막았던 분입니다.밤새안녕이라계몽령이란 헛소리 하는 인간들한테는 성공한계엄으로 입에다 보리죽을 쑤셔 넣었어야 되는 경험을 해서야 되는디..극우들이 좀 읽어서 한대표님 좋아해주면 좋겠다.


  • 2026-02-27 07:57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정치인이 몇 명 있을까요?
    김경진 의원님 감사합니다


  • 2026-02-27 08:52

    우리나라의 행운입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이런분이 계시다는게 감사한마믐입니다


  • 2026-02-27 11:33

    김경진의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한동훈을 꼭 지켜야하고 정의가 승리하는것을 보여줘야합니다~지금 너무 힘든 시간들이지만 이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국가중심세력으로 헌법 사실 상식이 우선이 되어 미래로 나아가야합니다~함께가는길에 작은 점하나 동행하겠습니다~뭉치고 말하고 행동하는 다수가 역전승하는 그날까지 함께해요


  • 2026-02-28 20:22

    김경진 의원님! 올바른 목소리 용기있게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의도에서 무대에 올라 말씀하실 때 정말 큰 열정과 힘을 얻었습니다.
    이 글 외에도 게시판을 둘러보니 정말 식견이 대단하시고 멋지시네요! 자주 글 남겨주세요. 저도 자주 와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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