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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득권을 내려놓은 담백한 한동훈

작성자
김경진
작성일
2026-02-28 16:08
조회
285

항상 기득권을 내려놓은 한동훈

1. 총선 불출마 선언

2023 12 21,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한동훈은 당의 원내대표 즉 당대표 권한대행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 전, 당대표가 전격 사퇴하면서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당은 지도부 공백에 빠졌습니다. 당내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법무부 장관 자리를 내려놓고 당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장관님, 당을 맡아주셔야 합니다."

한동훈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당과 대통령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직언, 의료 사태에 대한 쓴소리, 명태균 게이트에 대한 문제 제기. 그는 이미 '불편한 장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그 균열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닷새 뒤인 12 26, 온라인 전국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재적 824명 중 650명이 참여했고, 찬성 627, 반대 23명으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되었습니다. 96.46%의 압도적 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한동훈이 취임 일성으로 꺼낸 말은 당 안팎을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비례대표에도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정치권의 통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언이었습니다.

비대위원장은 총선에서 승리한 뒤 당대표로 복귀하거나,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비례 1, 혹은 당선이 유력한 수도권 지역구 공천은 당연한 보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승리를 위해 뭐든지 다하겠지만, 제가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대선 직행'을 노린 계산된 행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오히려 발이 묶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라고요. 또 다른 이들은 그가 여의도 정치의 문법을 모르는 정치 초년생이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험지나 접전지에 출마하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날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당후사(先黨後私)보다 선민후사(先民後私)입니다.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먼저입니다."

'선당후사'는 정당 정치인들의 오래된 격언입니다.

당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은 뒤로 미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동훈은 그 격언마저 뒤집었습니다. 당보다 국민이 먼저라고요.

정당인으로서는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곳이 여의도가 아니라 여의도 밖의 국민들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불출마 선언 뒤 그의 일정은 빡빡해졌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전국을 돌았습니다. 접전지를 찾아다니며 후보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당선되면 좋겠지만, 그보다 당이 이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의 말에 어떤 후보는 울컥했다고 합니다.

정치인이 자기 당선보다 당의 승리를 말하는 것은 여의도에서 흔히 듣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대위원장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권력의과실을손에쥘수있는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여의도 문법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의 말은 선언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여의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이자, 새로운 정치 문화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2. 스스로 내려놓은 특권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뒤, 한동훈은 공천 과정에서 또 한 번 당내를 긴장시켰습니다.

그가 내건 조건은 간단했습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공천의 전제조건으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체포특권은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권한입니다.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을 권리입니다. 의정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특권은 종종 범죄 혐의를 받은 의원들의 방패막이로 전락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무소불위의 금뱃지'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한동훈은 후보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일부 후보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왜 우리만 그래야 하느냐"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정당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특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불체포특권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도 주장했습니다.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세비(歲費) 반납도 공천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받는 급여의 일부를 돌려놓자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인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고통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특권을 내려놓아야 국민이 우리의 말을 들어주실 겁니다."

물론 이런 제안들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고,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은 개헌 사항이었고,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었습니다. 비판자들은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 던진 질문은 유효했습니다. 정치인은 왜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왜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가?

한동훈이 던진 화두는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선출된 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인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국민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정치는 정치가 아닙니다."

3. 전관예우 경계

2024 7, 당대표 후보 토론회.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한동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습니다.

"공직이 끝나면 변호사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에 있는 로스쿨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가르치는 교수를 했을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은 그의 오래된 신념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전관예우(前官禮遇). 검사나 판사 출신이 변호사로 전직한 뒤 과거의 인맥을 활용하여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말합니다. 법조계의 고질적 적폐로 지목되어 온 문제입니다.

한동훈은 검사 시절부터 전관예우를 경계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전관예우 변호사와는 만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접대도 받지 않고, 선물도 받지 않고, 청탁도 받지 않았습니다.

검찰 내에서 그는 '공사 구분이 유별나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원칙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융통성 없음이라 비난했습니다.

검사장급 고위직까지 올랐으면서 전관예우의 혜택을 거부한다는 것. 그것은 한국 법조계에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선택입니다.

검사 생활을 마친 뒤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 연봉 수십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후배들, 동료들과의 관계가 사건 수임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한동훈은 그 길을 처음부터 배제했습니다.

"정치를 그만두면 변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 말은 정치인 한동훈의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에서 밀려나더라도 법조계 인맥을 활용해 '먹고사는' 길은 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배수진이었습니다.

비판자들은 물었습니다. 정치인이 퇴로를 차단하면 더 위험하지 않은가? 뒤가 없는 사람은 더 필사적으로 권력에 매달리는 것 아닌가?

한동훈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뒤가 있어서 쉽게 물러나는 정치와,

뒤가없어서국민만바라보는정치중

어느 쪽이 더 진정성 있는 정치입니까?"

그의 검사 시절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대형 사건을 수사할 때, 피고인 측 변호사가 전직 고위 검찰 간부였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후배 검사가 선배의 체면을 세워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법과 원칙대로 수사했고,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에게는 '독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칭찬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전관예우를 경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청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의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한동훈은검찰이라는권력조직의내부자이면서도

그 관행에 동화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선택이 그를 고립시키기도 했지만,

또한 다른 종류의 신뢰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4. 새로운 보수의 언어

한동훈이 정치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동료 시민(Fellow Citizens)"이라는 호칭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유권자를 부르는 말은 대개 '국민 여러분'입니다.

조금 더 친근하게 부를 때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은 낯설었습니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의식적으로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동료시민입니다."

이 표현에는 그의 정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걸어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Jon Favreau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추구했던 것과 같은 철학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이끄는 영웅이 아니라, 국민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대변인이라는 생각입니다.

한동훈은 '운동권 청산'도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운동권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민주화 운동의 유산을 독점하면서 새로운 기득권이 된 세력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결탁해서 본인이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직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운동권'은 오랫동안 도덕적 우위를 점해왔습니다. 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역사적 정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동훈은 그 유산이 새로운 특권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언어는 보수의 전통적 레토릭과 달랐습니다. 과거의 보수는 '반공' '성장'을 앞세웠습니다. 반공은 냉전 시대의 유산이었고, 성장은 산업화 시대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은 끝났고, 고도성장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그 언어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한동훈은 다른 언어를 찾았습니다. 그는 '공정'을 말했습니다. 그는 '상식'을 말했습니다. 그는 '기회의 평등'을 말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원래 진보 진영이 선점해왔던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것을 보수의 언어로 재정의하려 했습니다.

"공정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시장경제의 핵심이 바로 공정한 경쟁입니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 그것이 보수가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그의 새로운 언어가 보수 지지층 전체에게 수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그를 '위장한 진보'라고 비난했습니다. 다른 일부는 '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도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오래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수의 가치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낡은 언어로 설명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5 총선 패배와 성찰

2024 4 10일 밤. 개표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175, 국민의힘 108. 조국혁신당이 12석을 가져가며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참패였습니다.

한동훈은 여의도 당사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주변 참모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온 것은 총선 승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의석수로 보면 2020년 총선보다 더 나빴습니다.

다음 날인 4 11일 오전, 한동훈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짧고 담담한 회견이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비대위원장직에서사퇴하겠습니다."

변명은 없었습니다. 남 탓도 없었습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상대방의 비방 전략을 비난하거나, 언론의 편파 보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정치인이 패배 후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곧이어 변명이 따라붙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이 분산됩니다. 한동훈의 사퇴 회견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로 거기서 멈췄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그의 태도를 '너무 쉽게 물러났다'고 비판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패배한 장수가 할 일은 변명이 아닙니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후임자의 몫입니다."

그는 그 후 한동안 공개 활동을 자제했습니다. 칩거라 부를 수도 있고, 성찰의 시간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석 달 후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가 2025년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정치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일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4월의 패배는 한동훈에게 상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필요한 상처였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은 승리에서 자만을 배우고, 패배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한동훈이 그 패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말해줄 것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패배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정치에서 드문 장면을 남겼습니다.

"정치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치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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