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게시판

아르메니아 고원과 그 시작

작성자
김 경진
작성일
2026-03-02 10:48
조회
179




ARMENIAN HISTORY

아르메니아의 땅과 시작


고원과 신화, 고대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2026. 03. 02





목 차

01   아르메니아 고원, 문명의 십자가로 피어난 고대 왕국

02   아라라트산 ― 신화가 새긴 민족의 성산

03   우라르투 왕국과 고대 문명의 뿌리





SECTION 01

아르메니아 고원, 문명의 십자가로 피어난 고대 왕국





아르메니아는 코카서스 산맥(Caucasus Mountains) 남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입니다. 면적은 약 29,743 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 작은 땅이 품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은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래 지도에 예레반으로 표시된 곳이 아르메니아의 수도입니다.


아르메니아는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고원(Armenian Highlands)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은 단순히 현재의 아르메니아 공화국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이 고원은 현재의 아르메니아를 중심으로 터키 동부, 이란 북서부, 조지아 남부, 아제르바이잔 일부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말합니다. 고대부터 고원 지대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형성된 공간이었습니다.


고원의 평균 고도는 해발 1,500미터에서 2,000미터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의 설악산 대청봉이 해발 1,708미터인 것을 생각하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우리의 높은 산 정상 높이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 Երևան)도 해발 약 1,000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높은 고도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하늘에 가까운 나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지역입니다. 이곳은 아프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곳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각 변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높은 산맥들과 깊은 협곡들이 만들어졌고, 화산 활동도 활발했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가끔 지진이 발생합니다. 1988년 아르메니아 북부 스피탁(Spitak) 지역을 강타한 큰 지진은 25,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화산 활동의 흔적은 아르메니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땅 위에는 검은 화산암들이 널려 있고, 많은 건물들이 이 화산암으로 지어졌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상징인 아라라트산(Mount Ararat)도 사실은 거대한 화산입니다. 비록 지금은 터키 영토에 속해 있지만,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이 산은 여전히 그들의 영혼이 깃든 성스러운 산입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입니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높은 고도 때문에 여름에도 밤이 되면 서늘해지고, 지역에 따라 기후 차이가 큽니다. 예레반이 있는 아라랏 평원(Ararat Plain)은 비교적 온화한 편이지만, 북부 산악 지대는 겨울이 매우 춥고 길어서 6개월 이상 눈에 덮여 있기도 합니다.


고원을 가로지르는 여러 강줄기들이 있습니다. 아라스강(Aras River)은 아르메니아의 젖줄과도 같은 강입니다. 터키 동부에서 발원하여 아르메니아 남쪽 국경을 따라 흐르면서 아제르바이잔과의 경계를 이루고, 카스피해로 흘러갑니다. 역사적으로 아라스강 유역은 비옥한 농경지로 아르메니아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또 다른 강은 흐라즈단강(Hrazdan River)입니다. 이 강은 아르메니아 최대의 호수인 세반호에서 발원하여 예레반을 거쳐 아라스강으로 흘러듭니다. 세반호는 해발 1,900미터 높이에 위치한 거대한 담수호로, 면적이 약 1,240 제곱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소양호의 약 18배 크기입니다. 세반호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곳으로, 식수 공급은 물론 관개용수, 발전용수로 사용됩니다.


세반호 주변의 풍경은 장관입니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호수 너머로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호숫가에는 고대 수도원들이 세월의 무게를 품고 서 있습니다. 세바나반크 수도원(Sevanavank)은 9세기에 지어진 곳으로,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서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봄이 되면 고원 전체가 야생화로 뒤덮입니다. 붉은 양귀비, 노란 민들레, 보라색 아이리스가 초록 융단 위에 수놓은 자수처럼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여름에는 강렬한 햇살 아래 밀과 보리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포도밭과 살구나무 과수원에서는 달콤한 과일 향기가 진하게 풍깁니다.


가을이 오면 고원은 붉고 노란 단풍으로 물듭니다. 딜리잔(Dilijan, Դիլիջան) 국립공원의 숲속 풍경은 동화 속 세상 같습니다. 울창한 참나무와 너도밤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야생 사슴들이 조용히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딜리잔은 '아르메니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겨울이 되면 고원은 흰 눈으로 뒤덮입니다. 추운 겨울도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는 일상입니다. 그들은 눈 덮인 산에서 스키를 타고, 따뜻한 집 안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겨울 저녁이면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전통 음식인 하리사(Harisa, Հարիusage)를 끓여 먹습니다. 하리사는 밀과 고기를 오랫동안 푹 끓인 죽 같은 음식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데 꼭 필요한 음식입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동식물상도 다양합니다.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중동의 교차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세 지역의 생물종이 모두 발견됩니다. 산양, 야생 멧돼지, 늑대, 곰, 스라소니 같은 포유류가 살고 있고, 독수리, 매, 황새 같은 맹금류도 많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상징 동물인 무플론(Mouflon, Մouflون)은 야생 양의 일종으로, 거대한 뿔을 가진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식물은 약 3,500종 이상이 서식하는데, 그중 약 10%가 아르메니아 고원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입니다. 아르메니아의 국화인 마사오(Masao)라고 불리는 노란 수선화도 이곳의 특산 식물입니다. 또한 이 지역은 야생 밀의 원산지 중 하나로,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최초의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에는 풍부한 광물 자원도 매장되어 있습니다. 구리, 몰리브덴, 금, 은 등이 발견되며, 구리는 고대부터 채굴되어 아르메니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아르메니아라는 이름 자체가 구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aeramen'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산암인 튜프(Tuff)는 아르메니아 건축의 주요 재료로, 분홍빛이 도는 이 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아르메니아의 독특한 건축미를 만들어냅니다.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고대 무역로인 실크로드가 이곳을 지나갔고, 남쪽의 페르시아, 서쪽의 로마, 동쪽의 중앙아시아, 북쪽의 러시아를 연결하는 교차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지리적 특성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성격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은 그들을 강인하게 만들었고, 외부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정신을 키웠습니다. 동시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나뉜 지형은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언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서도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습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는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입니다. 평야 지역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농업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계단식 농경지를 만들어 포도, 살구, 복숭아 같은 과일을 재배해 왔습니다. 아르메니아 코냑(Cognac)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아라랏 평원의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듭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자연은 아르메니아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문화가 깃든 공간입니다.


험준한 산맥과 깊은 계곡, 푸른 호수와 맑은 강물,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하나하나가 모두 아르메니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이 고원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깃든 성스러운 터전입니다.






SECTION 02

아라라트산 ― 신화가 새긴 민족의 성산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의 영혼이 담긴 산입니다. 높이 5,137미터의 대 아라라트(Greater Ararat)와 3,896미터의 소 아라라트(Lesser Ararat)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화산은 예레반 어디에서나 보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아라라트산의 모습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신호입니다.


가슴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아라라트산은 현재 터키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1921년 소련연방이 모스크바 조약과 카르스 조약으로 이 산의 영유권을 터키에 넘긴 이후,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산을 바라만 볼 뿐 자유롭게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우리는 아라라트산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다"는 슬픈 말을 합니다.


산은 아르메니아 민족의 상징이자, 그들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아르메니아의 National Emblem에는 아라라트산이 중앙에 그려져 있고, 노아의 방주가 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아라라트산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라라트산의 역사는 성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이후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라랏'이 바로 아라라트산을 가리킨다고 전통적으로 믿어져 왔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라랏'은 산 이름이 아니라 우라르투 왕국이 있던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거대한 산을 노아의 방주가 머문 곳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전승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홍수가 끝난 후 아라라트산 정상에 안착했고, 노아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내려와 문명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노아의 증손자인 하이크(Hayk, Հայկ)가 아르메니아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하이크는 거인이자 용맹한 전사로, 바빌론의 폭군 벨(Bel)에 맞서 싸워 이기고 아르메니아 땅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이크의 자손들'이라는 뜻의 '하예르(Hayer)'라고 부릅니다.


신화 때문에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단순한 산이 아니라 성스러운 산, 생명이 다시 시작된 곳으로 여겨집니다.


중세 아르메니아 역사가들의 기록에는 아라라트산을 오르려는 시도들이 나옵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이 인간이 방주의 잔해에 도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상한 힘에 의해 다시 아래로 떨어지거나,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아라라트산 등정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1829년 독일인 프리드리히 파로트(Friedrich Parrot) 박사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했고, 이후 많은 탐험가들이 이 산을 올랐습니다. 그들은 방주의 잔해를 찾으려 했지만, 과학적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방주의 잔해를 찾으려는 탐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라라트산은 지질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산입니다. 36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형성된 성층 화산(Stratovolcano)입니다.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용암과 화산재가 쌓이면서 현재의 거대한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지막 분화는 1840년에 일어났는데, 이때 큰 지진과 함께 산사태가 발생하여 산 아래의 아후리(Ahuri) 마을과 수도원이 파괴되었습니다.


대 아라라트산 정상은 일 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습니다. 정상 부근의 기온은 여름에도 영하권이며,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집니다. 강한 바람과 낮은 산소 농도 때문에 등반이 매우 어렵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관입니다. 동쪽으로는 세반호가, 서쪽으로는 터키의 광활한 평원이, 남쪽으로는 이란의 산맥이 보입니다.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 문학과 예술에서도 중요한 소재입니다. 수많은 시인들이 이 산을 노래했고, 화가들이 그렸으며,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19세기 아르메니아 낭만주의 시인 호반네스 투마니안(Hovhannes Tumanyan)의 시에는 아라라트산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라라트산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우리의 과거와 미래"라고 노래했습니다.


20세기 들어 아르메니아가 소련의 일부가 되고, 아라라트산이 터키 영토로 확정되면서, 이 산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상실과 향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15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로 150만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이 고향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아라라트산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유명한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음악에도 아라라트산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발레 음악 '가야네(Gayane)'에 나오는 '칼의 춤(Sabre Dance)'은 아르메니아의 정열과 함께 아라라트산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라트산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국가 상징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르메니아 코냑 브랜드가 '아라라트(Ararat)'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합니다. 매일 이 산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자유롭게 오를 수 없습니다. 1990년 아르메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터키와의 국경은 닫혀 있고,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터키의 인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도 예레반의 거리 어디에서나 아라라트산이 보입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발코니에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라라트산을 바라봅니다. 일몰 때 붉게 물드는 아라라트산의 모습은 마치 불타는 듯하여, 사람들은 그 순간을 사진에 담으려 합니다.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 정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의 중요한 영적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르메니아는 301년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아의 후손이고, 그들의 땅이 홍수 이후 새 생명이 시작된 축복받은 땅이라고 믿습니다. 아라라트산은 이런 신앙과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아르메니아의 많은 교회와 수도원에서 아라라트산이 보입니다. 호르 비랍 수도원(Khor Virap)은 아라라트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그레고리오(Saint Gregory the Illuminator)가 13년간 갇혀 있던 지하 감옥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라라트산의 모습은 정말 장엄합니다. 수도원의 돌담 너머로 거대한 산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그 모습은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같습니다.


현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언젠가 아라라트산을 다시 자유롭게 오를 수 있기를 꿈꿉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실현되지 않더라도, 아라라트산은 영원히 그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입니다. 이 산은 아르메니아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역사를 지켜본 아라라트산은 앞으로도 계속 아르메니아 민족의 영혼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SECTION 03

우라르투 왕국과 고대 문명의 뿌리





우라르투 왕국(Kingdom of Urartu)은 기원전 9세기부터 6세기까지 아르메니아 고원에 존재했던 강력한 고대 국가였습니다. 이 왕국은 아르메니아 문명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여겨지며, 아르메니아 역사의 뿌리를 이루는 중요한 문명입니다.


우라르투라는 이름은 아시리아 문헌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아시리아인들은 아르메니아 고원에 살던 강력한 부족들을 '우라르투'라고 불렀습니다. 우라르투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아이니(Biainili)의 땅' 또는 '반(Van)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언어는 후르리안(Hurrian) 언어와 관련이 있었으며, 현대 아르메니아어와는 직접적인 언어적 연속성은 없지만, 문화적 연속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라르투 왕국의 중심지는 반호(Lake Van) 주변이었습니다. 반호는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가장 큰 호수로, 현재는 터키 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호수는 면적이 약 3,755 제곱킬로미터로 세반호보다 세 배나 크며, 염호입니다. 우라르투의 수도 투슈파(Tushpa)는 바로 이 반호 동쪽 해안에 건설되었습니다.


우라르투 왕국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 우라르투(기원전 9세기)는 여러 부족 연합체로 시작했습니다. 아라메(Arame) 왕과 사르두리 1세(Sarduri I) 같은 초기 왕들은 아시리아의 압박에 맞서면서 부족들을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르두리 1세는 투슈파를 수도로 정하고, 반 바위(Van Rock)에 거대한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반 바위 요새는 우라르투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만든 이 요새는 높이가 약 100미터에 달하며, 바위 곳곳에는 설형문자(Cuneiform)로 새겨진 비문들이 있습니다.


사르두리 1세의 비문은 "사르두리, 위대한 왕, 강력한 왕, 우주의 왕, 비아이니 땅의 왕"이라는 웅장한 문구로 시작합니다.


우라르투 왕국의 전성기는 기원전 8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였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왕들은 메누아(Menua), 아르기슈티 1세(Argishti I), 그리고 사르두리 2세(Sarduri II)입니다. 메누아 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했고, 많은 도시와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그는 또한 우라르투의 관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메누아 운하(Menua Canal)는 8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로, 산에서 물을 끌어와 농경지에 공급했습니다. 이 운하의 일부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르기슈티 1세는 많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유명한 것이 에레부니(Erebuni) 요새입니다. 기원전 782년에 건설된 이 요새는 현재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에레부니 요새 터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비문에는 "아르기슈티가 말한다: 나는 이 위대한 요새를 건설했고, 그것을 에레부니라고 이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발견으로 예레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사르두리 2세 시기에 우라르투는 최대 영토를 자랑했습니다. 북으로는 조지아 지역까지, 남으로는 시리아 북부까지, 동으로는 현재 이란 북서부까지, 서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까지 영토가 확장되었습니다. 우라르투는 이 시기에 아시리아와 대등한 강국이 되었으며, 때로는 아시리아를 능가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우라르투의 경제는 농업과 목축, 그리고 금속 공예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아르메니아 고원의 비옥한 토양과 관개 시스템 덕분에 밀, 보리, 과일 재배가 활발했습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발달했는데, 우라르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유명했던 것은 금속 공예였습니다.


우라르투 장인들은 청동, 금, 은으로 만든 정교한 공예품을 제작했습니다. 청동 갑옷, 투구, 방패는 당대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으며,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와 그릇들은 예술 작품 수준이었습니다.


우라르투의 건축 기술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사이클로페안 석조(Cyclopean Masonry)라고 불리는 건축 방식은 모르타르 없이도 돌들이 완벽하게 맞물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라르투의 종교는 다신교였습니다. 최고신은 할디(Haldi)로, 전쟁과 하늘의 신이었습니다. 그 외에 태양신 쉬바니(Shivini), 폭풍우의 신 테이슈바(Teisheba) 등이 숭배되었습니다.


우라르투의 쇠퇴는 기원전 7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북쪽에서 스키타이(Scythian)와 킴메르(Cimmerian) 같은 유목 민족들의 침입이 있었고,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하면서 지역의 세력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결정적인 타격은 메디아(Media) 제국의 침공이었습니다. 기원전 590년경 메디아는 우라르투 왕국을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우라르투의 문화와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계속 남아서 새로운 정복자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갔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우라르투 왕국이 멸망한 후 이 지역에 아르메니아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프리기아(Phrygia)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라르투 문명이 아르메니아 문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라르투 유산은 오늘날 아르메니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레반의 에레부니 박물관에는 우라르투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정교하게 새겨진 청동 벨트, 아름다운 금 귀걸이,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들이 3,000년 전 우라르투의 찬란한 문명을 증언합니다.


에레부니 요새 유적도 여전히 예레반 남동쪽 언덕에 남아 있습니다. 복원된 성벽과 신전 터에서 우라르투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새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그림, 신들의 모습이 선명한 색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우라르투의 또 다른 유적은 아르메니아 북부의 가르니(Garni) 요새입니다. 가르니에는 1세기에 지어진 헬레니즘 양식의 신전이 있는데, 이것이 지어진 자리도 원래 우라르투의 신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우라르투의 유산은 물리적인 유적만이 아닙니다. 우라르투의 관개 기술, 농업 방식, 금속 공예 전통은 아르메니아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2011년 아르메니아 남부 아레니(Areni) 동굴에서 발견된 6,100년 전의 와이너리 유적은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임을 증명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우라르투를 자신들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깁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우라르투는 아르메니아 고원에 최초로 세워진 강력한 국가였고, 이 땅의 문명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우라르투는 단순히 사라진 고대 왕국이 아니라, 오늘날 아르메니아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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