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역사 문화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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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산맥 남쪽 기슭, 남한 면적의 70퍼센트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에는 8,000년 전 인류가 처음 포도를 발효시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땅속에 묻힌 항아리, 크베브리 안에서 와인이 익어가는 동안 조지아인들은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 러시아 제국의 군화 소리를 번갈아 들어야 했습니다. 트빌리시 올드타운의 유황 온천 위로 나리칼라 요새가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파괴와 재건이 켜켜이 쌓인 결과입니다. 이 책은 그 켜를 한 겹씩 벗겨냅니다.
제1부는 여행자의 눈으로 조지아를 걷습니다. 트빌리시에서 마슈루트카를 타고 카헤티의 포도밭으로, 조지아 군사도로를 따라 카즈베기의 설산으로, 다시 흑해 연안 바투미의 야자수 아래로 이동하는 여정입니다. 시그나기에서 만난 와인 농부는 크베브리를 가리키며 “이건 기술이 아니라 기도”라고 말했고, 스바네티의 천년 된 망루 마을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여행자를 압도합니다. 수프라 연회장에서 타마다가 건네는 끝없는 건배사 속에 조지아인의 환대와 자존심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제2부는 그 자존심의 뿌리를 추적합니다. 4세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세계 최초의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독자 문자와 다성 음악 폴리포니, 12세기 타마르 여왕 치세의 황금기. 쇼타 루스타벨리가 쓴 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의 원천이며, 19세기 일리아 차브차바제가 외친 “조국, 언어, 신앙”이라는 세 단어는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도, 소비에트 70년 동안에도 조지아어 알파벳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제3부에서 서정은 사라지고 냉정한 분석이 시작됩니다. 2003년 장미혁명의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8년 러시아와의 5일 전쟁으로 국토의 20퍼센트를 잃었고, 점령선은 지금도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올리가르히 비지나 이바니슈빌리가 이끄는 ‘조지아의 꿈’은 EU 후보국 지위를 얻어놓고도 2028년까지 가입 협상을 동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2024년 총선 부정 의혹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트빌리시 거리를 메웠고, ‘외국대리인법’이라는 러시아식 입법이 시민사회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EU 깃발을 흔드는 Z세대와 정교회의 보수적 가치 사이에서 조지아는 갈라지고 있습니다.
제4부는 경제의 수치와 삶의 질감을 교차시킵니다. 소련 붕괴 후 GDP가 바닥을 쳤던 나라가 낮은 세율과 규제 완화로 비즈니스 환경 세계 7위까지 올라섰지만,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인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경제동반자협정 체결, 조지아 의대 유학 붐, 한 달 살기 트렌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생존하는 조지아의 전략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와인 잔을 들고 건배하면서도 칼자루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 이 책은 그 이중성 안에서 조지아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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