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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9장 딥마인드의 탄생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인공지능의 아버지
제4부 딥마인드
9 딥마인드의 탄생
김경란, 김경진
버시티 칼리지(UCL)의 개츠비 계산신경과학 유닛(Gatsby Computational Neuroscience Unit)은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괴짜들이 모여 인간 뇌의 비밀을 수 학으로 풀어내려는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 이곳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이 설립한 연구소로,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 곳에서 자 신의 뇌 과학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허사비스가 연구소 복도에서 마주친 키 크고 조용한 뉴질랜드 사람, 셰인 레그(Shane Legg)는 그곳의 분위기 와 묘하게 어울리면 서도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레그는 이미 스위스 아이디아(IDSIA) 연구소에서 위르겐 슈미트후버(Jürgen Schmidhuber) 의 지도를 받으며 이론적인 인공지능 모형에 대해 깊이 파고든 상태였습니다. 당시 학계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금기어에 가까웠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통계학 이나 기계학습이라는보다 안전한 용어 뒤에 숨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좁은 범위의 AI(Narrow AI)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그는 달랐습니다.
그는 허사비스가 가 슴 속에 품고 있던 단어, 바로 'AGI(범용 인공지능)'를 두려움 없이 입 에 올리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마다 연구소 근처의 벤치나 런던의 펍에 앉아 인간의 지능을 어 떻게 수 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 지에 대해 몇 시간이고 토론했습니다. 허사비스가 직관적이고 신경과학 적인 접근을 선호했다면, 레그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엄밀함을 중시했습니다.
둘의 만남은 불과 얼음의 결 합처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었습니다. 레그는 훗날 인 공지능이 인류에게 미칠 초 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데 핵심 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
이 지적 결합에 현실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은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이었습니다. 술레이만은 과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허사비스의 남동생인 조지 허사비스의 절 친한 친구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허사비스 가(家)를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던 '동네 동 생'이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한 그는, 10대 시절부터 이슬람 단체와 런던 시장의 자문역으로 활동할 만큼 사회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가진 활동가였습니다. 허사비스와 레그가 실험실 안에서 지능의 본질을 탐구 할 때, 술레이만은 세상 밖에서 이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그리고 이 거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사람 과 자본을 모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술레이만은 허사비스에게 과학적 비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야기'와 '설득'이라 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딥마인드가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훗날 구글과의 인수 협상이나 딥마인드 헬 스(DeepMind Health)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게됩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인물이 합류합니다. 허사비스의 케임브리지 대학동문이자, 그와 함께 엘릭서 스튜디오(Elixir Studios)에서 게임 개발의 흥망성쇠를 함께 겪었던 데이 비드 실버 (David Silver)였습니다.
실버는 엘릭서가 문을 닫은 뒤 학계로 돌아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허사비스는 딥마인드의 핵심 알고리 즘이 뇌의 학 습 방식인 '강화학습'이 될 것임을 직감했고,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된 옛 친구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실버의 합류는 딥마인드의 기술적 토대를 완성하는 마 지막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알파고(AlphaGo)의 수석 연구원으로서 전 세 계를 놀라게 한 승리를 이끌 어냅니다. 2010년 11월, 이들은 런던의 러셀 스퀘어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딥마인드 테 크놀로지 (DeepMind Technologies)'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스타트업 업계 는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앱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은 "사진 공유 앱을 만 들면 6개월 안에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인공지능 연구를 하느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나 허사비스와 공동 창업자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미 션은 명확했습니다. "지능을 푼다(Solve Intelligence)." 그리고 "그 지능을 사용해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Use it to solve
everything else).” 이것은 기업의 사훈이라기보다는 과학 혁명을 위한 선언문에 가까 웠습니다. 그들은 1960 년대 인류를 달에 보냈던 '아폴로 프로젝트'처럼, 최고의 인재 와 자본을 한곳에 집중시켜 지능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허사비스는 벤처 투자자들에게 수익 모델을 설명하는 대신, 인공지능이 질병을 치 료하고 기후 변화를 막으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낼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피터 틸(Peter Thiel)과 같은 비전 있는 투자자들이 이들의 무모해 보이는 꿈에 매료 된 것은 바로 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딥마인드의 탄생은 단순히 또 하나의 기술 회 사가 생긴 것 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겨울(AI Winter)을 끝내고 새로운 봄을 부르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허사비스, 레그, 술레이만이라는 세 사람의 독특한 조합은, 과학적 엄밀함과 철학적 고민, 현실적 돌파력이 하나로 뭉쳐 AGI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 아가는 엔진이되었습니다. 학계와 스타트업 문화의 결합 데미스 허사비스가 딥마인드를 설립하며 가장 깊게 고민한 것은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가' 였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와 UCL에서의 학계 생활을 통해 대학 연구실의 장단점을 뼈저리 게 느끼 고 있었습니다.
대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 즉 '푸른 하늘 사고 (Blue Sky Thinking)'가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당장의 수익이나 결과물에 얽매이지 않 고 근본적인 질 문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학은 느 렸습니다.
교수들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서류 작업에 매몰되었고, 연구자들은 자신 의 좁은 전공 분야에 갇혀 옆방의 동료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반면, 허사비스가 10대 시절부터 경험한 게임 회사와 스타트업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곳은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속도와 에너지가 있었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 함이 혁신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에는 호흡이 너무 짧았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두 세계의 장점만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조직'을 꿈꿨습니다. 그의 롤 모델 은 20세기 중반 트랜지스터와 레이저, 정보 이론을 탄생시킨 미국의 '벨 연구소 (Bell Labs)' 였습니다. 벨 연구소처럼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되, 스타
트업처럼 명확한 목표와 마감 시한을 가지고 움직이는 조직, 그것이 딥마인드의 설계 도였습니다. 먼저 사람을 모으는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허사비스는 전 세계의 머신러닝, 신경과학, 수학, 물리학 분야의 박사급 인재들을 직접 찾 아다녔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연구 자들을 싹쓸 이해가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유망한 학자들을 불안정한 스타트업으로 데려오는 것은 쉬 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허사비스는 그들에게 돈이 아닌 '미션'을 팔 았습니다. "학교에서 논 문 실적에 쫓기며 작은 문제만 풀고 있지 않은가? 우리와 함 께 지능 그 자체를 풀어보자. 여 기에는 연구비 걱정도, 강의 의무도 없다."
이 말은 지 적 갈증을 느끼던 천재들의 심장을 꿰 뚫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코딩 잘하는 엔지니어를 뽑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기계'를 만 들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을 모았습니다. 조직 문화 설계에 있어서 허사비스는 '융합'을 강제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이 자신 의 전 문 분야라는 '사일로(Silo)'에 갇히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무실 구조부터 바꾸었습니다. 신경과학자와 컴퓨터 공학자가 옆자리에 앉도 록 배치했고, 정해진 시간마다 모두가 모여 티타임을 가지며 연구 내용을 공유하 게 했습니 '벽돌 깨기' 게임을 하는 AI를 보여주며, 이것이 어떻게 뇌의 도파민 시스템 과 연결되는 지를 신경과학자가 설명하고, 이를 수학자가 수식으로 정리하며, 엔지니 어가 코드로 구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의 결합이라는 딥마인드의 핵심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서로 다 른 학회에 참석하 느라 만날 일조차 없었던 분야들이 딥마인드라는 용광로 안에서 섞 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허사비스는 스타트업 특유의 '속도감'을 연구에 이식했습니다.
일반적인 학계 연구 가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과 달리, 딥마인드는 프로젝트 단위를 짧게 끊고 빠 르게 프로 토타입을 만들어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패해도 좋으니 빨리 실패하라(Fail fast)"는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과학 연구에 적 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속도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에게 논문 출판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습니다. 기업의 비밀주의 때문에 연구 결과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꺼리는 학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단, 조건 이 있었습니다.
논문을 쓰기 전에 먼저 내부적으로 기술을 증명해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 이는 연구원들에게 건강한 경쟁심을 유발했고, 딥마인드가 훗날 《네 이처》나 《사이언 스》 같은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표지 논문을 쏟아내는 기반이되었습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문화는 초기에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자유분방한 학자 들은 회사의 규율을 답답해했고, 성과를 중시하는 경영진은 진척 없는 기초 연구를 기 다리기 힘 들어했습니다.
하지만 허사비스는 그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는 연구자 들에게는 "우리는 과학을 하는 것이다"라고 독려하면서도, 투자자들 에게는 "이 과학이 결 국 거대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라고 설득했습니다. 딥마인드는 대학의 지성과 기업의 야성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었습니다.
새벽 3 시까 지 알고리즘을 토론하는 열기, 화이트보드 가득한 수식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돌아가는 고사양 게임기. 이 독특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인 공지능인 알파고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허사비스가 만든 것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 라, 지능을 제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었습니다. 허사비스의 하루는 두 개의 교대로 나뉩니다. 낮에는 CEO로서 회의와 경영을 하 고, 밤에는 "두 번째 교대(second shift)"라 부르는 시간에 논문을 읽고 아이디어를 정 리합니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이 패턴은, 2,000편이 넘는 연구 논문과 h-인덱스 83이라는 학술적 성과의 배경이기도합니다.
딥마인드 런던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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