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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8장 디지털 생물학의 여명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인공지능의 아버지
18 디지털 생물학의 여명
김경란, 김경진
구조 예측의 새 지평 2024년 5월, 런던 킹스크로스의 구글 딥마인드 본사는 다시 한 번 조용한 흥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불과 4년 전 알파폴드2로 단백질 구조 예측이 라는 50년 난제를 해결하며 전 세 계를 놀라게 했던 그들이었지만, 허사비스와 그의 팀에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알파폴드2가 단백질이라는 '고독한 조각상'의 모양을 밝혀냈다면, 이제 그들은 그 조각상 들이 서로 어떻게 손을 잡고 춤을 추는지를 밝혀내야했습니다.
생명은 정지된 구조가 아 니라 상호작용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허사비스는 늘 직원들에게 "생물학 은 정적인 명사 가 아니라 동적인 동사다"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 철학의 결정체가 바로 알파폴드3였습니다.
알파폴드3의 등장은 단순히 이전 버전의 성능 개선판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근본 적인 아키텍처의 재설계이자, 생물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이었습니다. 기존의 알파폴드2가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받아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면, 알파폴드3는 생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분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 몸속의 단백질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DNA라는 설계도에 달라붙어 유전자를 읽어내고, RNA와 결합하여 정보를 전달하며, 리간드라고 불리는 작은 분자 신호들과 끊임 없이 결합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특히 리간드는 약물 개발의 핵심 열쇠입니다.
대부분의 약은 단백질이라는 자물쇠 에 딱 맞 는 리간드라는 열쇠를 찾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알파폴드2는 자물쇠 의 모양은 보여 주었지만, 열쇠가 꽂힌 모습까지는 완벽하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알 파폴드3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허사비스와 연구팀이 '확산 모델(Diffusion Model)'을 도입했다 는 사실입니다. 미드저니나 달리 같은 AI가 텍스트를 입력받아 이미지를 생 성할 때 사용하 는 기술과 유사합니다. 초기에 흐릿하고 노이즈가 가득한 구름 같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점차 노이즈를 제거해가며 선명하고 정확한 분자 구조를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허사비스는 이 과정을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에 비유하곤했습니다. 이 확산 모델의 도입으로 알파폴드3는 기존의 에보포머(Evoformer) 모듈을 일부 대체하거 나 보완하면서,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 RNA, 그리고 각종 이온과 수식 화된 분자들까지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 안에서 처리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것은 AI가 생물학적 직관을 넘어서, 물리적 결합의 확률론적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갔음을 의미합니다. 이 성과는 과학계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습니다. 기존에는 엑스선 결정학이나 초 저온 전 자현미경(Cryo-EM)을 사용하여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려야 확인할 수 있 었던 거대 복합 체의 구조를 불과 몇 분 만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세포가 증식하기 위해 DNA의 특정 부위에 결합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알 수 있다면, 그 결합을 방해하는 약물을 설계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알파폴드3는 단백질-DNA 상호작용 예측에서 기존 최고의 툴보다 정확도를 50% 이상 향상시켰습니다. 허사비스가 10대 시절 체스판 위에서 수읽기를 하며 느꼈던 전율, 즉 '보이지 않는 패턴을 읽어 내는 기쁨'이 이제는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세계에서 재 현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네이처(Nature)에 논문을 게재하며 이 도구를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무료로 공개(비 상업적 용도에 한해)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가장 널 리 쓰일 때 가치가 있다"는 그의 오랜 신념을 다시 한번 증명한 행동이었습니다.
알파폴드-멀티머(AlphaFold-Multimer)와 단백질 복합체 연구 알파폴드3로 가는 여정에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2021년 말에 공개된 '알 파폴드-멀티 머'입니다. 이 단계는 허사비스가 이끄는 딥마인드 팀이 '단일 개체'에서 '시스템'으로 시야를 넓힌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헤모글로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헤모글로빈은 하나의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네 개의 소단위체가 정교하게 결합된 복합체입니다. 이 네 개의 조각 이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으면 우리 몸은 산소를 운반할 수 없습니다.
알파폴드2가 각 조각의 모양을 훌륭하게 빚어냈다면, 알파폴드-멀티머는 이 조각 들이 어 떻게 조립되는지를 풀어낸 해결사였습니다. 연구팀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존 점퍼(John Jumper)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단 백질이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했습니다. 실 제로 세포 내 의 거의 모든 기능은 단백질들이 짝을 이루거나 거대한 기계처럼 뭉쳐서 수행합니다.
신 호 전달, 물질 수송, 세포 분열 등 생명의 핵심 현상은 모두 '결합'에서 시작됩니다. 허사비스는 이 복합체 예측 문제가 단순히 계산량을 늘리는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두 단백질이 만날 때 그 접점에서는 미묘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두 사람이 악 수할 때 손 모양이 살짝 변하듯, 단백질들도 서로 유도 적합(Induced Fit) 과정을 거칩니다. 알파폴드-멀티머는 진화 정보를 담고 있는 다중 서열 정렬(MSA) 데이터를 교차 분석하여, 두 단백질이 진화 과정에서 함께 변화해 온 흔적, 즉 '공진화(Co- evolution)'의 신호를 찾아 냈습니다.
A 단백질의 특정 부위가 변할 때 B 단백질의 맞 닿은 부위도 함께 변했다면, 그 두 지점이 결합 부위일 확률이 높다는 논리입니다. 이 기술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구조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거대 단백질 복합체 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퍼즐 맞추기'와 같은 싸움을 해왔습니다.
알파폴드-멀 티머는 이 퍼 즐의 완성 그림을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미지의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스파이 크 단백질이 인간의 수용체와 어떻게 결합하는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고, 면역 세포 가 항원을 인 식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는 학문 적 호기심을 충족시 키는 것을 넘어, 질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열쇠를 제 공했습니다.
허사비스에게 있어 알파폴드-멀티머와 알파폴드3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의 AGI 비 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지능을 "정보를 처리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능 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생명 현상 또한 유전 정보가 단백질이라는 하드웨어로 번역되고, 이 하드웨어들이 상호작 용하며 생명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가 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예측한다는 것은, 곧 생물학이라는 거대한 정보 처리 시스템의 운영 체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허사비스는 종종 "우리는 디지털 세 계에서 훈련된 지능을 물리적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인 생물학에 적용하 고 있다"고 말합 니다. 알파폴드 시리즈는 그가 꿈꾸는 '과학을 위한 AI(AI for Science)'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류의 지식 지평을 실제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제 연구 실의 모니터 속에서는 수십만 개의 원자들이 춤을 추고 있으며, 인류는 그 춤의 안무를 비 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아이소모픽 랩스 분사: 신약 개발을 '계산 가능한 문제'로 바꾸다 AI를 통한 신약 개발 가속화: 10년 걸릴 일을 수개월로 단축 2021년, 데미스 허사비스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산하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름은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 수학 용어인 ‘동형 (Isomorphism, 같은 형태)'에 서 따온 이 이름에는 허사비스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생물학적 과정과 정보 처리 과정이 근본적으로 같은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입 니다. 딥마인드가 순수 과학의 영역에서 '지능을 푸는' 곳이라면, 아이소모픽 랩스는 그 풀 린 지 능을 이용해 인류의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인 '질병'을 해결하는 실전 부대였습니다.
허사비 스는 딥마인드의 CEO직을 유지하면서 아이소모픽 랩스의 CEO를 겸임하 기로 결정했습니 이는 그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실패를 전제로 한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하나의 신약이 시장 에 나 오기까지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2조 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됩니다.
수만 개 의 후보 물질 중에서 실험실의 비커와 샬레를 오가며 일일이 반응을 테스트하고, 동물 실험을 거쳐 임상 시험에 들어가도 성공 확률은 10% 미만입니다. 마치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비효율적인 과정을 '디버깅 가능한 소프트웨어 문제'로 전환하고자 했습니 아이소모픽 랩스의 핵심 전략은 알파폴드의 예측 능력을 바탕으로 약물이 될 수 있는 작은 분자(Small Molecule)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표적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만 수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AI가 며칠 만에 표적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의 '주머니(Binding Pocket)'에 딱 들어맞 는 화합물을 가상 공간에서 수백만 번 시뮬레이션합니다. 이것은 물리적 실험을 디지 털 실험(In Silico)으로 대체하는 거대한 전환입니다. 2024년 초, 아이소모픽 랩스는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 노바티스 (Novartis)와 총액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보 수적인 제약 업계가 설립된 지 3년밖에 안 된 신생 기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베팅한 것은, AI가 보여준 가능성 이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선 확신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허사비스는 이 과정을 설명하며 "우리는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화학자들이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 화합물을 합성했다면, 이제는 생성형 AI가 물 리 법칙과 생물학적 제약 조건을 학습하여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구조 의 약물을 제 안합니다.
이는 단순히 속도만 빨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편향에 갇혀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던 '케미컬 스페이스(Chemical Space)'의 미개척지를 탐험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소모픽 랩스의 연구원들은 이제 10년이 걸리던 초기 약물 발견(Discovery) 단 계를 수 개월, 심지어는 수주 단위로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는 '희망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5년 AI 설계 약물의 임상시험 진입 발표 2025년은 디지털 생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입니다. 허사비스와 아이소 모픽 랩스는 순수하게 AI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된(de novo design) 약물 후보 물질 들이 본격적으로 임상 시험 (Clinical Trial)에 진입하는 해로 2025년을 지목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AI를 활용 해 약물을 재창출하거나 부분적으로 도움을 받은 사례는 있었지만, 알 파폴드3와 같 은 고도화된 구조 기반 약물 설계(SBDD) 기술이 빚어낸 '차세대 AI 신약'이 인 간에게 투여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약물들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공략하기 어려웠던 'undruggable(약물 치료가 불가 능한)' 표적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조가 너무 유연해서 약물이 달라붙기 힘든 암 유발 단백질이나, 기존 약물에 내성이 생긴 변이 바이러스 등이 그 대상입니다. 아이소모픽 랩스는 AI를 통해 단백질의 움직임(Dynamics)까지 예측하여, 단백질이 특정 모양을 취하는 찰나의 순 간을 포착해 결 합하는 약물을 설계했습니다. 이는 정지 사진을 보고 사격하는 것과,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고 사격하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임상 진입 발표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규제 과학(Regulatory Science)의 변 화를 예고합니다.
FDA와 같은 규제 기관들도 AI가 설계한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을 만드는 방 법 그 자 체를 재발명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2025년의 임상 시험은 AI가 실험실의 보조자를 넘 어, 생명을 구하는 주체적인 발명가가 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최종 시 험대'가 될 것입니 만약 이 시험들이 성공적인 데이터를 내놓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AI 네이티브 제약(AINative Pharma)'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가상 세포(Virtual Cell) 시뮬레이션의 꿈 아이소모픽 랩스와 허사비스가 바라보는 궁극의 지점은 신약 개발 너머에 있습니다. 바로 ' 가상 세포(Virtual Cell)'의 구현입니다. 현재의 생물학 연구는 복잡한 시계 내부를 이해하기 위해 부품 하나하나를 떼어내 어 살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부품을 다 안다고 해서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Virtual Cell은 이 모든 부품들—단백질, DNA, 대사 물질, 세포소기관—이 상호작 용하는 전 체 시스템을 컴퓨터 안에 쌍둥이처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사비스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시뮬레이션'의 정점입니다. 게임 개발자 시절 그 가 테마파크 속 관람객들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했듯이, 이제는 세포 안의 분자 들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려는 것입니다.
가상 세포가 구현된다면, 우리는 실제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 기 전에 가상 세포에 먼저 약을 넣어보고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어떤 연쇄 반응이 일어 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동물 실험의 윤리적 문 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자, 임상 시험의 실패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 법입니다.
물론 이것은 알파폴드 하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도전입니다. 하지만 허 사비스 는 "우리는 이제 생물학의 퍼즐 조각들을 맞출 준비가되었다"고 말합니다. 알파폴드가 구조를 예측하고, 다른 AI 모델들이 대사 경로와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예측 하며, 이들이 결합하여 거대한 '디지털 생명체'를 형성하는 미래. 그것이 아이 소모픽 랩스 가 2021년 분사하며 내건 비전의 종착역입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 기처럼 들릴지 모르 지만, 알파고가 바둑을 정복하고 알파폴드가 단백질을 정복했듯 이, 허사비스의 시계는 언 제나 세상의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상 세 포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가 쌓일수록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예정된 미래입니다. 생물학은 정보 처리 시스템이다 연구에서 제품으로: 규제, 임상, 파트너십의 현실 "생물학은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정보 처리 시스템입니다."
허사비스의 이 선언은 생물 학을 Wet Lab (실험실)의 영역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건조한 실험 실(Dry Lab) 의 영역으로 끌어왔습니다. 하지만 비전을 현실의 제품으로, 즉 실제 환 자가 복용할 수 있 는 알약으로 만드는 과정은 순수한 과학적 발견과는 또 다른 차원 의 투쟁을 요구했습니 2024년 노벨상 수상으로 과학적 권위의 정점에 선 그였지만, 제약 산업의 복잡한 현실 은 AI 모델의 정확도(Accuracy)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거 대한 장벽들이었습니다. 아이소모픽 랩스가 직면한 첫 번째 현실적 과제는 '데이터의 비대칭성'이었습니다.
알파고 는 바둑 규칙이라는 완벽한 정보 안에서 무한한 자가 대국을 통해 데이터를 생 성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 개발은 다릅니다. 양질의 생물학 데이터는 대부분 거대 제 약사들의 금고 깊숙한 곳에 비공개로 잠겨 있습니다. 허사비스가 노바티스나 일라이 릴리 같은 전통적인 제약 공룡들과 손을 잡은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이는 딥마인드의 천재적인 알고리즘(엔진)과 제약사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임상 데이터 및 화학 라이브러리(연료)를 결 합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파트너십은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쓰는 문명 간의 만남과도 같았습니다. 실리콘밸 리의 속도(Speed)와 제약 업계의 안전(Safety) 제일주의가 충돌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버그는 패 치로 수정하면 되지만, 약물의 부작용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허사비 스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아이소모픽 랩스 내에 AI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노련한 의 약 화학자와 생물학 자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우리는 AI 회사가 아니라, AI를 모국
어로 사용하는 제약 회사 (AI-native Pharmaceutical Company)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었습니다. 규제(Regulation) 또한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FDA를 비롯한 규제 기관들은 AI 가 내놓은 결과를 '블랙박스'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 분자가 효과가 있다고 예측했 는가?"라는 질문 에 대해 초기 딥러닝 모델들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허사비스 팀은 설명 가능한 AI(XAI) 기술을 도입하여, AI의 예측 근거를 화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하는 데 막대 한 노력을 기울여야했습니다. 연구실의 혁신이 병원의 처방 전으로 이어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신뢰의 관문'이었습니다.
과학적 정확성 vs 사업적 속도의 균형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인물 내부에는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와 '세상을 바꾸고 싶 은 기업가'가 공존해 왔습니다. 디지털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이 두 자아는 끊임없 이 대화하고 때로는 갈등했습니다. 알파폴드3의 개발과 아이소모픽 랩스의 운영 과정에서 이 긴장은 극대화되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허사비스는 완벽함을 추구합니다. 그는 자연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 고, 단백질 접힘과 같은 난제를 완전히 해결(Solve)하고 싶어합니다. 그에게 있어 성 공의 척도는 네 이처 표지 논문, CASP 대회의 우승, 그리고 노벨상이었습니다.
그러 나 아이소모픽 랩스의 CEO로서의 허사비스는 '충분히 좋은(Good Enough)' 해결책을 적시에 내놓아야 한다는 압 박을 받습니다. 신약 개발에서는 100% 완벽한 구조 예 측보다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빠 르게 합성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후보 물질을 찾 아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기 때문입 니다. 이 균형점은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의 설계에서 찾아졌습니다. 아이소모픽 랩스는 단순히 AI 모델만 돌리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측된 분자를 실제로 합성 하고 테스트 하는 자체 실험실을 구축했습니다.
AI가 설계(Design)하고, 로봇이 합성(Make)하고, 생물학적 분석(Test)을 거쳐 나온 데이터를 다시 AI가 학습(Learn)하는 'DMTL 사이클'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허사비스는 과학적 정확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업적 속도를 높이 는 방법을 배웠습니 모든 것을 다 예측하려 하지 않고, 약물 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상호작용 에 컴퓨팅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AI 업계에 만연한 '과대광고(Hype)'와 차별화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많은 AI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장밋빛 미래만을 팔 때, 허사비스는 냉정할 정도로 과학 적 검증 (Validation)을 강조했습니다. "생물학은 속일 수 없다(Biology doesn't lie)."
그는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데 모가 아 니라, 실제 실험실에서 재현 가능한 결과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구글이라는 거대 자본의 보호막 아래 있었기에 가능한 인내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학적 진실 성만이 결국 상업 적 성공을 담보한다는 그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기도했습니다. 결국 디지털 생물학의 비전은 생명을 0과 1로 환원하여 통제하겠다는 오만이 아닙 니다. 그 것은 생명이라는 경이로운 복잡성 앞에 겸손해지되, 우리가 가진 최고의 도 구인 지능 (Intelligence)을 사용하여 그 복잡성의 패턴을 이해하고, 질병이라는 버그를 수정하여 인류 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허사비스가 12세 때부터 품어온 "지능을 풀 어 세상을 구한다"는 미 션의 가장 구체적이고 숭고한 실천인 것입니다. 단백질 분자의 3D 렌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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