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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6장 도시 공간과 부동산의 구조적 변화
AI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구조 변화와 대응
6장 도시 공간과 부동산의 구조적 변화
김경진
1. 오피스 빌딩 공실률 급증과 상업용 부동산 자산 가치 하락
2026년 4월, 미국 오피스 공실률이 17.8퍼센트로 소폭 내려갔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회복의 신호라고 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트로피급 빌딩은 공실률 3.7퍼센트, 시장 전체 평균은 15퍼센트. 같은 도시 안에서 빌딩의 등급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이 격차의 뿌리는 원격근무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공지능입니다. Anthropic의 2026년 1월 경제 지표에 따르면, AI 대화의 52퍼센트가 업무 증강(augmentation), 45퍼센트가 자동화(automation)로 분류됐습니다. 중간관리직이 해오던 업무 배분, 진척 추적, 성과 리포트를 에이전트가 처리하면서 상위 매니저의 관리 범위가 5배 이상 넓어졌습니다. 3년 내 실현 확률을 네 개의 AI 모델에게 독립적으로 물었을 때, 중간관리직 소멸에 65퍼센트, 오피스 빌딩 공실률 급증에 55퍼센트라는 숫자가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줄면 책상이 비고, 책상이 비면 층이 비고, 층이 비면 빌딩이 빕니다. 스탠퍼드의 닉 블룸(Nick Bloom) 연구팀이 추적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전일제 근무일 중 약 27퍼센트가 재택으로 수행되고 있고, 이 비율은 2023년 후반부터 2년 넘게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CEO의 83퍼센트가 2027년까지 전면 출근을 기대한다고 답했지만, 배지 스캔 데이터와 휴대폰 추적 데이터는 직원들이 그 기대만큼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원격근무 비율은 2022년 10월 17.9퍼센트에서 2025년 초 23.7퍼센트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사무실 출근율은 팬데믹 이전 대비 약 30퍼센트 낮은 수준에 고착됐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올해 초 매각된 오피스 빌딩의 절반 이상이 이전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패서디나의 한 빌딩은 직전 매매가에서 32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빌딩이 비어서 값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빌딩을 채울 사람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값이 떨어지는 겁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경기가 회복되면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인공지능이 그 사람들의 일자리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Newmark의 2026년 보고서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하이브리드 근무가 정착되면서 오피스 근로자 1인당 점유 면적이 2020년 초 대비 약 10퍼센트 줄었고, 사무실은 기본 업무 공간에서 협업과 연결을 위한 허브로 바뀌었다고. "오피스 붕괴"라는 초기의 공포는 과장됐지만, 오피스의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비워진 마천루는 경기 순환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노동의 문법을 고쳐 쓰면서 남긴 물리적 잔해입니다.
2. 업무 공간에서 영감 공간으로의 재정의
Kastle Systems의 출입 기록 데이터가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최상급(Class A+) 오피스 빌딩은 피크 요일에 거의 만석에 가까운 이용률을 기록하는 반면, 10개 도시 평균으로 보면 모든 등급의 오피스 이용률은 팬데믹 이전의 3분의 2에도 못 미칩니다. 좋은 빌딩에는 사람이 몰리고, 평범한 빌딩은 텅 비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람들은 일하러 사무실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가 업무 배분과 진척 추적과 성과 리포트를 처리하는 시대에,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은 급격히 짧아졌습니다. 집에서 AI와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분석, 보고서 작성, 데이터 정리를 굳이 출퇴근 1시간을 투자해서 사무실에서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는 것은 인간끼리만 가능한 것들입니다. 눈빛을 읽으며 진행하는 협상, 화이트보드 앞에서 벌어지는 즉흥적 토론, 점심 식사 중에 툭 튀어나오는 아이디어. 이것들은 줌(Zoom) 화면 안에서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오피스는 일하는 공간에서 만나고 영감을 받는 공간으로 재정의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설계된 건물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오피스 빌딩은 1990년대에서 2010년대 사이에 지어졌고, 설계 철학은 하나였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수용하는 것. 긴 복도, 균일한 조명, 칸막이로 나뉜 좌석 배치. 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으라는 것은, 공장 조립 라인에서 시를 쓰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CBRE는 프라임급 오피스 공실률이 2027년까지 팬데믹 이전 수준인 약 8.2퍼센트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저품질 빌딩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많은 저품질 빌딩이 주거용으로 전환되거나 철거될 운명입니다. 오피스 시장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은 프리미엄을 받고, 그렇지 못한 공간은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19세기 말 파리의 거리가 포스터와 카페와 갤러리로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도시 인터페이스였던 것처럼, 21세기의 오피스는 인간의 창의적 충돌을 유발하는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무대를 만들 수 없는 빌딩은,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3. 부동산 대출 부실화와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의 전이
뉴욕 맨해튼 620 8번가. 52층짜리 이 빌딩의 5억 1,500만 달러 규모 모기지는 2020년 이후 다섯 차례 연장됐습니다. 주요 임차인이 퇴거를 준비하면서 빌딩 소유주 브룩필드(Brookfield)는 대출 기관과 "구조화된 선의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건의 빌딩 대출이 이렇습니다. 이런 건이 수천 개 쌓여 있습니다.
Morningstar DBRS에 따르면, 2026년 만기가 돌아오는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증권화된 상업용 모기지 중 절반 이상이 만기에 상환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3년에는 상환율이 80퍼센트를 넘었고, 2024~2025년에도 75퍼센트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에 갑자기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CMBS(상업용 모기지 담보 증권) 오피스 부문 연체율은 2026년 1월 12.34퍼센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Trepp이 이 지표를 추적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최고치이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거의 2퍼센트포인트 높은 수준입니다.
"연장하고 모른 척하기(Extend and Pretend)" 전략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2022년 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 대출 기관들은 부실 대출의 만기를 연장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오피스 부동산 가치와 입주율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근무가 영구적으로 오피스 수요를 줄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많은 대출 기관이 이 전략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S&P Global은 상업용 부동산 만기 벽이 2027년에 1조 2,60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 위기는 빌딩 소유주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278개 은행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총자산의 50퍼센트를 넘는 은행들입니다. 빌딩 가치가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줄고, 담보 가치가 줄면 대출 건전성이 악화되고, 대출 건전성이 악화되면 은행의 자본 적정성이 흔들립니다. 2023년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이 보여줬듯이, 한 곳의 균열은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무실을 비우고, 비워진 사무실이 대출을 부실화하고, 부실 대출이 은행을 흔드는 이 연쇄 반응은 기술 발전의 2차, 3차 파급 효과가 어떻게 금융 시스템의 뇌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4. 동네 병원, 부동산 중개소, 학원가 등 근린상업 생태계의 재편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원장은 2025년 가을부터 등록 문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학부모들이 AI 튜터를 먼저 써보고 나서 오는 경우가 늘었다는 겁니다. 에이전트 튜터가 학생별 취약점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학습 경로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대에, 학원이 파는 것은 더 이상 성적 향상이 아닙니다. 학원이 진짜 파는 것은 자녀 돌봄과 부모의 불안 관리입니다. 성적보다 안심을 파는 산업이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래도 AI 모델 네 개가 매긴 3년 내 실현 확률은 45퍼센트였습니다.
동네 병원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1차 의료의 70퍼센트는 패턴화된 진단과 처방입니다. 감기, 소화불량, 가벼운 피부 질환. 기술은 이미 준비됐습니다. 타임라인을 결정하는 것은 의료법과 면허 체계뿐입니다. 환자는 기술이 아니라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죠. 규제가 풀리는 순간, 동네 의원의 상당수는 존재 이유를 다시 써야 합니다.
부동산 중개업의 구조조정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매물 검색, 시세 비교, 계약서 검토를 에이전트가 수행합니다. 2025년 Realtor.com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2퍼센트가 주택 시장 정보를 얻기 위해 AI를 사용합니다. 중개인이 독점하던 정보 비대칭이 무너진 겁니다. 정보 비대칭을 수익 모델로 삼았던 모든 에이전시 직업이 차례차례 같은 압력에 직면합니다. AI 부동산 시장 규모가 2029년까지 9,752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은, 중개인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남는 것은 기계가 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동네의 분위기를 읽는 감각, 매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안목, 계약 테이블에서의 협상력입니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보를 독점하거나, 물리적 접근성을 무기로 삼거나, 반복적 패턴 인식에 의존하던 근린 상업이 AI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목길의 간판이 사라지는 속도는 느리지만, 간판 뒤의 수익 구조가 무너지는 속도는 빠릅니다. 동네 상권의 권력은 건물주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 이동을 되돌릴 방법은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