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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장 프레데터와 리퍼: 하늘의 암살자로 진화한 드론
2장 프레데터와 리퍼: 하늘의 암살자로 진화한 드론
새벽 3시, 네바다주 크리치 공군기지. 에어컨이 윙윙거리는 컨테이너 안에서 조종사는 조이스틱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늘어서 있고, 화면에는 지구 반대편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마을이 적외선 영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흰 점으로 보입니다. 그중 한 점이 움직입니다. 목표입니다. 조종사의 손가락이 버튼 위에 올라갑니다. "파이어." 3초 후, 화면 속 점이 사라집니다. 조종사는 6시간 뒤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합니다.
이것이 MQ-1 프레데터(Predator)가 만들어낸 새로운 전쟁의 풍경입니다. 보는 것과 쏘는 것사이의 거리가 사라진 전쟁. 조종사가 전장에 없어도 되는 전쟁. 프레데터는 단순한 무인기가아니었습니다. 전쟁의 문법 자체를 다시 쓴 기계였습니다.
프레데터의 뿌리는 이스라엘 출신 엔지니어 에이브러햄 카렘(Abraham Karem)의 차고에서시작됩니다.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자비를 들여 '앰버(Amber)'라는 장기 체공 무인기를 설계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명쾌했습니다. 무인기는 오래 떠 있어야 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앰버의 설계는 GNAT-750을 거쳐 1990년대 중반 RQ-1 프레데터로 진화했습니다.
처음에 프레데터는 정찰기였습니다. 발칸 반도 분쟁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눈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프레데터가 목표를 발견하면 무전으로 유인 전투기를 불러야했고, 전투기가 도착할 때쯤 목표는 이미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정찰과 타격 사이에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 한, 적에게는 도망칠 틈이 있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가 바뀌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알카에다 지도부를 추적하여 즉각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급증했습니다. 미 공군과 CIA는 프레데터에 헬파이어(Hellfire)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하는 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정찰기에 발톱을 달아주는 수술이었습니다.
2002년 11월, 예멘의 어느 도로. 프레데터가 알카에다 고위 간부가 탄 차량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랭글리의 CIA 본부에서 버튼이 눌렸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신호가 위성을 타고 예멘 상공의 프레데터에 닿았고, 기체 날개 아래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이 발사되었습니다. 차량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드론 공격’이었습니다.
프레데터의 명칭은 RQ-1에서 MQ-1으로 바뀌었습니다. 'R'은 정찰(Reconnaissance)을 뜻하고, 'M'은 다목적(Multi-role)을 의미합니다. 이 글자 하나의 변화가 전쟁의 역사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무인기는 더 이상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사냥하는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프레데터의 성공은 더 강력한 후계기를 낳았습니다. MQ-9 리퍼(Reaper). 이름부터 ‘죽음의신’ 입니다. 리퍼는 프레데터의 단순한 개량형이 아니었습니다.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하여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고, 무장 탑재량은 15배나 늘어났습니다. 헬파이어 미사일 8발을 달 수 있었고, GBU-12 레이저 유도 폭탄이나 GBU-38 합동직격탄(JDAM)까지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기에 버금가는 화력이었습니다.
리퍼의 진정한 무서움은 체공 시간에 있습니다. 무장을 가득 채우고도 14시간 이상 하늘에 머물 수 있습니다. 연료만 채우면 27시간도 가능합니다. 이것은 적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리퍼는 목표 지역 상공에서 하루 종일 배회하며 '패턴 오브 라이프'를 관찰합니다. 누가 어디로 다니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언제 잠을 자는지. 모든 것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기회가 오면 미사일이 날아갑니다.
리퍼의 눈은 MTS-B(다중 스펙트럼 표적 지정 시스템)입니다. 주간에는 고해상도 카메라로, 야간에는 적외선 센서로 표적을 추적합니다. 합성 개구 레이더(SAR)는 구름이나 연기를 뚫고 지상을 들여다봅니다. 차량 번호판도 읽을 수 있고, 사람의 얼굴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암살자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리퍼는 느립니다. 최고속도는 시속 480킬로미터 이지만, 일반적인 운용속도는 시속 370킬로미터. 제트 전투기의 4분의 1 수준입니다. 날개 폭은 20미터에 달해서 레이더에 잘 잡힙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적의 방공망이 허술한 곳에서는 신처럼 군림할 수 있지만, 러시아나 중국처럼 현대적인 대공 미사일을 가진 상대 앞에서는 쉽게 격추됩니다.
2024년까지 예멘 후티 반군에게 격추된 MQ-9 리퍼는 20대가 넘습니다. 대당 가격이 3,000만 달러를 훌쩍 넘는 기체가 수십만 달러짜리 구형 미사일에 떨어지는 상황. 이것은 비용 비대칭의 함정입니다. 강대국 간의 전면전에서 리퍼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 공군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텔스 성능을 갖추고, AI가 스스로 비행하며, 통신이 끊겨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새로운 무인기. 프레데터와 리퍼는 그 다리를 놓은
기계들입니다. 원격 조종의 시대에서 자율 비행의 시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인간이 조종하는 마지막 무인기였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