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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22장 여성 총리, 보수의 역설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5부 권력 —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22장 여성 총리, 보수의 역설
김경진
2025년 10월 21일, 도쿄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 취재진이 모였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총리관저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일본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숨을 죽이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세계 언론이 이 장면을 받아 썼습니다. BBC, CNN, 르몽드, 뉴욕타임스. 헤드라인들이 쏟아졌습니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 "유리 천장을 깨다." "아시아에서 다시 쓰이는 역사."
그런데 축하와 함께 다른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였습니다. 일본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일부는 취재진의 마이크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여성 총리입니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총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남성 총리에게는 "남성을 위한 총리냐"고 묻지 않습니다. 한 정치인이 자신이 속한 인구 집단의 대표자여야 한다는 요구 자체가 편견일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다카이치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선택적 부부별성(選択的夫婦別姓). 결혼 후에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姓)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직도 논쟁 중입니다. 현행 법률은 결혼하면 부부 중 한 명이 반드시 상대방의 성을 따라야 합니다. 실제로는 대부분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릅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이름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다카이치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반대. 법률혼에서 부부별성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민당과 유신회의 연립합의서에는 "부부동성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구 성(姓)의 통칭 사용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명시됐습니다. 결혼 전 이름을 공식 서류에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 자체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왜 반대하는가. 다카이치는 오래전부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회의 질서와 가족의 유대를 지켜야 합니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가족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2024년 총재 선거 운동 당시 그녀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クタバレ夫婦別姓(부부별성은 꺼져라)." 강한 표현이었습니다. 이후 이 표현은 비판을 받아 삭제됐지만, 그 표현이 보여주는 감정의 강도는 남았습니다.
동성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적 동성 결혼에는 반대했지만, 동성 파트너십 제도 도입에는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미묘한 차이였습니다. 국제 언론은 이를 "반대"로 보도했고, 다카이치 측은 "완전 반대는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2003년에 쓴 저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카이치는 자녀를 낳지 않은 여성은 노령 연금 수급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습니다. 당시에도 비판이 있었지만 책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그런데 총재 선거가 가열되면서 이 발언이 다시 소환됐습니다.
논란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카이치 자신이 자궁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를 원했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을 연금 수급에서 차별해야 한다고 썼다는 역설. 이것이 그녀를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다카이치는 이후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입장을 수정했습니다.
"여성이라서 특별 대우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다카이치가 여러 차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할당제(クォータ制)에 대한 그녀의 반감을 드러냅니다.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 배려를 받아서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동시에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하는 개인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여기서 마거릿 대처를 소환해야 합니다.
1979년, 영국. 마거릿 대처가 보수당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G7 최초의 여성 정상이었습니다. 그녀도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녀도 페미니즘 운동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 전례 없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카이치가 대처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으면 닮은 점이 많습니다. 보수 우파 정당 출신. 남성 중심적 정치 생태계에서의 생존. 강경한 안보 관. 시장 경제에 대한 믿음. 그리고 파란색 정장과 진주 목걸이. 스타일마저 비슷합니다.
자유민주당 측에서 발행한 한 기고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강한 여성 리더의 실상과 공통점 — 마거릿 대처와 다카이치 사나에: 두 명의 여성 총리에 부쳐." 자민당이 직접 두 사람을 연결 짓는 분석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습니다. 대처는 영국 복지국가 체제를 해체하는 급진적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노동조합을 해체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습니다. 이른바 대처리즘이었습니다. 다카이치의 사나에노믹스는 재정 확대와 성장 중심이라는 점에서 대처와 방향이 다릅니다. 사회 보수주의에서는 비슷하지만, 경제 정책에서는 다릅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카이치는 일본의 대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두 번째 리즈 트러스가 될까." 리즈 트러스는 대처 이후 두 번째 영국 여성 총리였는데, 취임 45일 만에 사임했습니다. 짧은 재임이었습니다. 경제 실패가 이유였습니다.
이제 역설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다카이치가 총리가 된 후 내각을 구성하면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여성 각료 수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채운 것입니다. 젠더 평등 의제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정작 자신의 내각에서는 여성 각료를 적극적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위선인가요, 아니면 현실적인 전략인가요. 한 가지 해석은 이렇습니다. 다카이치는 "여성이기 때문에" 자리를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유능한 여성들이 자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 그 자격 있는 사람들이 여성이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여성 각료가 늘었다. 이것이 그녀 식의 논리일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일본 최초 여성 총리로서 상징적 압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성 총리가 내각에 여성이 없으면 모양이 이상하다는 외부의 시선. 그 시선을 의식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습니다. 다카이치 내각에서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각료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역설이 있습니다. 여성 의료 문제입니다. 다카이치는 자신이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경험에서 출발해, 여성 특유 질환을 종합 진료하는 거점 병원을 전국에 정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선택적 부부별성이나 동성 결혼보다 더 일상적인 여성의 삶과 연결됩니다. 매달 생리통으로 직장을 빠지는 여성. 자궁근종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는 여성. 불임으로 홀로 눈물 짓는 여성. 이들에게 병원 인프라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은 구체적인 여성 정책입니다.
제도적 평등보다 실질적 복지. 이것이 다카이치식 여성 정책의 방향이었습니다. 진보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지만, 여성의 고통을 외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본 페미니스트 작가 타카마쓰 나나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습니다. "高市早苗 자민당 새 총재 — 선택적 부부별성에 반대. 여성 총리가 생겼지만, 이것이 여성의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역사는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여성이 총리가 되어야만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적인 여성 총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어떤 변화입니다. 일본의 소녀들이 처음으로 현직 여성 총리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나도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추상적 가능성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됐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는 주로 진보 진영의 의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실이 보수 정치인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역설이지만, 역사에서 변화는 자주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찾아옵니다.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여성 대통령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었지만, 그 경험은 탄핵으로 끝났고, 이후 여성 정치 지도자에 대한 논의는 복잡한 감정 속에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 여성의 정치적 진출에 어떤 의미인지, 다카이치의 사례는 하나의 참고점이 됩니다.
마거릿 대처는 집권 11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 각료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다카이치는 취임 직후 역대 최고 수준의 여성 각료를 임명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다카이치가 대처보다 진보적입니다. 그런데 젠더 평등 제도 문제에서는 대처보다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범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결국 다카이치 사나에는 우리가 가진 "여성 지도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대를 뒤흔드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채로 유리 천장을 깼습니다. 진보적 의제 없이 여성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환영해야 하는가, 경계해야 하는가.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역설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역설과 함께 살아가면서, 무엇이 진짜 변화인지를 계속 물어가야 합니다.
참고 자료
- 「ジェンダー政策」高市早苗氏はどう進める?: https://www.tokyo-np.co.jp/article/440595 - 高市早苗氏が「クタバレ夫婦別姓」で語っていたこと: https://www.buzzfeed.com/jp/kotahatachi/sanae-takaichi-1 - 有識者寄稿 マーガレット・サッチャーと高市早苗: https://www.jimin.jp/news/information/212147.html - 日本初の女性総理、しかし高市氏はフェミニストではない: https://www.arabnews.jp/article/japan/article_159633/ - 高市早苗首相、旧姓の通称使用の拡大を指示: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A224FH0S5A021C2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