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AI서재] 6장 창업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인공지능의 아버지
6 창업
김경란, 김경진
1998년 독립 게임 스튜디오 설립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Republic: The Revolution)' 가상 국가 전체를 인공지능으로 시뮬레이션하겠다는 데미스 허사비스의 야심은 1990년 대 말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과학계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대담한 도 전 중 하나였습니다. 1998년, 약관의 나이에 엘릭서 스튜디오를 설립한 허사비스가 처음으로 내놓은 청사진은 '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Republic: The Revolution)'이라 는 이름의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단순히 버튼을 눌러 숫자를 올리는 전략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허사비 스는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사회'를 통째로 집어넣고자했습니다. 그는 이미 '테마파크(Theme Park)'와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를 통해 가 상 세계의 주 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술의 매력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 하지 못했습니다.
더 거대한 것, 즉 수천 명의 시민이 각자의 신념과 직업, 가족 관계를 가 지고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장'을 꿈꿨습니다. 그에게 게임은 단순 한 오락이 아니라, 지능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가상 실험 실(Petri dish)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가상의 동유럽 국가인 '노비스트라나(Novistrana)'를 창조했습니다.
이 나라의 수도인 베레지나(Berezina)를 비롯한 여러 도시는 수천 개의 건물과 광장으로 이루어졌고, 그 길 위를 걷는 모든 시민은 엘릭서가 개발한 독자적인 인공지능 엔진에 의해 조종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에서 배경 인물(NPC)은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걷거나 간단한 대사만 반복하는 인형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리퍼블릭'의 시 민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점심에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 며, 저녁에는 선술집에서 정치적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사용자가 그들에게 선전물을 뿌리거나 매수하려고 시도하면, 시민 들은 자신의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난관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한 명의 천재적인 AI를 만 드는 대신, 수만 명의 '단순한 지능'들이 모여 어떻게 복잡한 '사회적 창발 성'을 만들어내는 지를 구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로터스(Lotus)'라는 혁신적인 3D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이 엔진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부터 시민의 눈높이에서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을 수 있 는 수준까지 자유로운 확장을 지원했습니다. 이는 2000년대 초반의 하드 웨어 사양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허사비스의 머릿속에서 '리퍼블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사회적 시뮬레이터 였습니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행동 양식을 코드로 공식화할 수 있다고 믿 었습니 전 세계 게임 언론은 이 소년 천재의 야심에 열광했습니다.
"모든 시민이 뇌를 가지고 있다"는 홍보 문구는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꿈은 동시에 엘릭서 스튜디오를 서서히 압박하는 족쇄가 되기도 했습니 현실의 국가를 시뮬레이션하겠다는 욕심은 그만큼 해결해야 할 변수가 무한하 다는 의 미였기 때문입니다. 허사비스는 인공지능이 해결해야 할 궁극적인 숙제가 '현 실 세계의 복 잡성'을 어떻게 추상화하고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 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범위로 인한 개발 지연 꿈이 클수록 그 꿈을 현실의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데미스 허사비스와 엘릭서 스튜디오는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을 개 발하며 창업가로서 가장 쓰라린 교훈을 얻 게됩니다. 바로 '범위의 함정(Scope Creep)'입니다.
당초 2년 정도로 예상했던 개발 기간은 5년으로 늘어났고, 전 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게임은 200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 상의 빛을 보게되었습니다. 개발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허사비스가 설정한 시뮬레이션의 깊이였습니다. 수천 명의 인 공지능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다 보니 하드웨 어 자원이 바닥나기 일쑤였습니다.
CPU는 시민들의 일정을 계산하느라 비명을 질렀 고, 메모리는 거 대한 도시의 디테일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허사비스는 완벽주의자였습니 타협하기보다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밤낮으로 코드를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퍼 블리셔인 에이도스(Eidos)의 압박은 거세졌고, 결국 엘릭서는 게 임의 많은 핵심 기능을 쳐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게임 플레이의 재미로 직결되지 않았다 는 점입 니다. 허사비스는 시민 한 명 한 명의 지능을 구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았지만, 정작 플레이어 가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보드게임처럼 다소 단조로운 선택의 연속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내면적으로 어떤 복잡한 계산을 거치든, 플레이 어의 화면에는 간단한 아 이콘과 숫자로만 나타났습니다. 공들여 만든 인공지능의 깊 이를 독자들이 직접 느끼기에 는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2003년 출시된 '리퍼블릭'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기술적 성취 는 놀랍지만,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리뷰 집계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서 받은 62점이라는 점수는, 허사비스가 이전에 참여했 던 '블랙 앤 화이트'나 '테마파크'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팬 들은 "너무 많 은 것을 약속했지만, 정작 손에 쥔 것은 반복적인 클릭뿐"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실패는 허사비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수 십 명 의 엔지니어와 예술가를 이끄는 CEO로서 팀을 관리하고, 거대 기업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밀고 당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사용자(플레이어)가 그 가 치를 즉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비즈 니스의 냉혹함도 깨 달았습니다. 아이작슨이 묘사한 스티브 잡스처럼, 허사비스 역시 자신의 '현실 왜곡 역장' 이 기술적 물리 법칙과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뼈저리게 배운 것입니다. 이 시기의 좌절은 훗날 그가 딥마인드를 운영할 때 '연구 의 혁신성'과 '제품의 실행력'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을 잡게 만드는 토양이되었습니다.
범용 인공지능(AGI)을 만들기엔 아직 이르다 '리퍼블릭'의 출시 이후 허사비스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 을 만들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목표로 했던 '지능의 재현'이라는 과제가 당시 의 컴퓨터 과학 수준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벽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엘릭서 스튜디오의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질문했습니다. "왜 인공지능은 여전히 실제 인간처럼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가 직면한 가장 큰 벽은 '지능 의 일반성' 부족이었습니다. '리퍼블릭'의 시민들은 정치적 시뮬레이션이라는 닫힌 세
계(Closed world) 안에서는 나름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거나, 스스로 학습하여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미리 짜놓은 '이럴 땐 저렇게(If-Then)' 식의 알고리즘 뭉치는 아무리 정교해 도 진짜 지능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허사비스는 이때 인공지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 해서는 단순히 더 빠른 하드웨어나 더 복잡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우리는 지능을 풀고 싶어 하지만, 정작 지능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당시 게임 산 업에서 사용되던 인공지능 기술은 일종의 '속임수'에 가까웠습니다.
사용자가 지능적 이라고 느끼 게끔 교묘하게 연출된 스크립트였을 뿐입니다. 허사비스는 이러한 가짜 지능이 아니라, 어 떤 환경에 던져져도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AGI)'을 원했습니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기술 환경에서 AGI는 그저 공상과 학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깨달았습니다.
컴퓨터 과학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말입 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지능을 만들어내는지, 기억과 상상력은 어떤 신경학적 메커 니즘을 거 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능을 코드로 옮기려는 시도는 마치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지으려 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엘릭서 스튜디오가 상업적인 게 임 개발에 매몰되 어 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더 큰 문제를 풀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도구로는 안 된 지능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다시 기초 과학으로 돌아 가야 한다.” 이 결정은 허사비스 인생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됩니다. 2005년 스튜디 오를 매각하고 안 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던 게임 업계를 떠나기로합니다.
주변에서는 "백만 파운드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왜 포기하느냐"며 말렸지만, 그의 시 선은 이미 체스판이나 모 니터 너머의 세상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인지 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대학으로 돌 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엘릭서 스튜디오에서의 7년은 그에게 '성공한 창업가'라는 타이 틀 대신 '지능 의 정복자'가 되기 위한 절실한 동기부여를 남겼습니다.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준비를 시작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때다." 이 확신이 훗날 딥마인드의 씨앗 이되었습니다. '이블 지니어스(Evil Genius)'와 BAFTA 인터랙티브 음악 제임스 해니건(James Hannigan) 엘릭서 스튜디오의 두 번째 작품인 '이블 지니어스(Evil Genius)'는 허사비
스의 또 다른 천 재적 면모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이 아니 라, 비밀 기지에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이 된다는 신선한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허 사비스는 이 독창적인 테마를 완성하기 위해 게임의 분위 기를 결정짓는 '소리'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게임 음악 작곡가인 제임 스 해니건(James Hannigan)을 엘릭서로 초대했습니다. 허사비스와 해니건의 협업은 단순히 배경 음악을 주문하고 제작하는 수준을 넘어 섰습니 두 사람은 음악이 게임의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해야 한다는 '인터랙티브 음악'의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악당의 비밀 기지에 첩보원이 침입했을 때, 플레이어가 사악한 계획을 성공시켰을 때, 혹은 부하들이 한가롭게 휴식을 취할 때의 음악이 자 연스럽게 이어져야했습니다.
허사비스는 해니건에게 게임 속 인공지능 시스템과 음 악 엔진이 긴밀하게 연동 되도록 요구했습니다. 해니건은 1960년대 첩보 영화의 거장 존 배리의 음악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여 '이 블 지니어스'만의 독특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악당 테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웅 장한 오케스 트라 사운드와 복고풍의 전자음이 섞인 이 음악은 게임의 풍자적인 분위 기를 완벽하게 살 려냈습니다.
허사비스는 해니건의 창의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기술적인 지원을 아끼 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게임의 '인지적 경험'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 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업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블 지니어스'의 사운드트랙 은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 인터랙티브 부문에서 음악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독립 스튜디오인 엘릭서가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 록버스터 게임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허사비스는 해니건과의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비전 아래 모였을 때 발 생하는 '창의적 시너지'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아이작슨이 스티브 잡스와 조니 아이브의 협력을 묘사했듯이, 허사비스와 해니건의 만남 은 기술과 예술의 절묘한 결합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구 조를 제공 했고, 해니건은 그 위에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선율을 입혔습니다. 훗날 딥마인드에서 허사비스가 인공지능 연구자뿐만 아니라 철학자, 예술가, 신경 과학자 들을 한데 모아 '다학제적 팀'을 구성한 배경에는 엘릭서 시절 제임스 해니건과 함께했던 이 빛나는 협업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AI 에이전트와 창발적 현상을 실험하다 '이블 지니어스'는 '리퍼블릭'에서 실패했던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의 꿈을 좀 더 영리하고 효과적으로 구 현한 작품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리퍼블릭'의 실패를 통해 너무 광범위한 시뮬레이 션은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블 지니어스'에서는 비밀 기지라는 '통제된 환경' 안으로 범위를 좁혔습니다.
플레이어의 명령을 따르는 수백 명의 부하(Minions)와 그들을 방해하는 정부 요 원들은 각각 독립적인 지능을 가진 'AI 에이전트'로 설계되었습니다. 허사비스가 이 게임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창발성(Emergence)'이었습니다. 창발성 이란 개 별 요소들은 단순한 규칙을 따르지만, 그들이 모였을 때 전체 시스템에서 예 측하지 못한 복잡한 행동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블 지니어스'의 기지 안에서 부하들은 배고 픔, 피로, 충성도라는 간단한 수치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수백 명 의 부하가 기지 안의 가구 배치나 플레이어의 갑작스러운 명령과 상호작용하기 시작 하면, 개발자인 허사비스조차 예상하지 못한 독특한 상황들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지 내 식당의 위치가 숙소와 너무 멀면 부하들이 이동 중에 지쳐 쓰러 지거나, 특정 구역에 인파가 몰려 병목 현상이 생기기도했습니다.
허사비스는 이러한 현상을 관찰 하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게임 개발자로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과학자 로서 " 어떻게 하면 이 가상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가"를 탐구했습니다. 그에 게 게임 속 에이전트들은 지능의 기본 단위를 테스트하는 피실험자였습니다.
인공지능이 복잡한 환경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Planning)'을 세우는 과정을 실험했습니다. 적 요원이 침입했을 때 부하들이 스스로 경보를 울리고, 적을 함정으로 유인하 며, 부상당한 동료를 치료하는 과정은 정교하게 짜인 스크립트가 아니라 에이전트들의 자 율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훗날 딥마인드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AI가 스스로 최적의 전략을 찾 아내게 만드는 방식과 궤를 같이합니다.
'이블 지니어스'는 평론가들로부터 "심오한 시뮬레이션과 유머가 어우러진 수작"이 라는 평 가를 받았습니다. 허사비스는 이 게임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시스템 기반의 게임 디자인' 이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완전한 AGI에 도달하기엔 기술적 한계가 여전했지만, 그는 가상 세계라는 샌드박 스 안에서 지능의 파편들을 하나씩 조립해 나가는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이 시기의 실험들은 허 사비스에게 "지능은 정적인 규칙이 아니라,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피어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심어주었습니다. 백만 파운드 스카우트 제의 거절과 2005년 스튜디오 매각 게임 산업에서 배운 것: 팀 관리, 일정, 실패 비용, 리더십의 첫 연습 2005년, 데미스 허사비스는 엘릭서 스튜디오를 정리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게임 개발자로서의 첫 번째 챕터를 마무리합니다.
스튜디오를 매각하고 청산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이 과 정에서 얻은 무형의 자산이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지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 릭서 스튜디오는 허사비스에게 '리더십의 혹독한 훈련장’이었습니다. 허사비스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수십 명의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경영자(CEO)가되었습니 그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관리의 영역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는 '리퍼블릭'의 개발 지연을 겪으며 프로젝 트 일정 관리의 중요성과 '선택과 집중'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라 도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구현되지 못하면 실패로 돌아간 다는 경영의 기본 원칙을 몸 소 체험한 것입니다. 실패의 비용에 대해서도 깊이 깨달았습니다.
'리퍼블릭'의 미온적 성과와 그로 인한 재정 적 압박은 허사비스에게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무엇 이 잘못되 었는지를 체스 대국을 복기하듯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술적 완벽주의에 빠져 시장의 속도와 사용자의 요구를 간과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훗날 그가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 안에서 딥마인드라는 거 대한 조직을 이끌 때, 연구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상업적 성과를 내는 탁월한 전략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제임스 해니건과 같은 각 분야의 최고 전 문가들과 협업하며, 그는 리더의 역할이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 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엘릭서 출 신의 많은 개발자 가 훗날 영국 게임 산업의 주역이 되고, 일부는 딥마인드 초기 멤버 로 합류하게 된 것은 허 사비스가 초기부터 사람에 투자했음을 보여줍니다.
아이작슨이 묘사한 젊은 시절의 엘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가 첫 창업에서 겪었던 시행착 오처럼, 허사비스에게 엘릭서 스튜디오는 거친 원석이었던 그를 다듬어준 숫 돌이었습니 그는 이곳에서 승리의 기쁨보다 패배의 교훈을 더 많이 얻었지만, 그 교훈 이야말로 지 능이라는 거대한 산을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였습니다. 그는 게임 산업을 떠나 며 더 이상 일개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꾸 기 위해 지식을 조직하 는 법'을 아는 젊은 리더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AI를 훈련시키는 완벽한 샌드박스"라는 확신 엘릭서 스튜디오를 떠나며 내린 결론은 "게임은 인공지능을 완성하기 위한 최고의 도구" 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게임 업계를 떠나 과학의 세계로 귀순한다고 생각했 지만, 허사비스의 머릿속에서 두 세계는 분리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더 강력 한 도 구를 얻기 위해 잠시 전장을 옮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엘릭서에서의 경험을 통해 현실 세계를 인공지능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가 현실의 복잡 함을 안전하 고 빠르게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만약 인 공지능이 복잡한 전략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 인공지능은 현실의 복잡한 과학 난제도 해결할 수 있 지 않을까?"라는 가설이 그의 머릿속에 뿌리내렸습니다.
이 확신은 훗날 딥마인드의 근간이 된 '샌드박스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허사비스는 인공지 능을 처음부터 신약 개발이나 기후 변화 예측에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는 벽돌 깨 기,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고전 아타리 게임과 체스, 바둑 같은 보드게임을 AI의 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게임은 규칙이 명확하고 성공과 실패의 보상이 뚜렷 하며, 무엇보다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순식간에 돌려볼 수 있는 완벽한 실험실이었 기 때문입니다.
허사비스가 불프로그 시절 겪었던 "백만 파운드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대학으 로 향 했던 일화는 그가 얼마나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눈앞의 돈이나 명 성보다 '지능을 풀겠다'는 궁극적인 미션에 더 충실했습니다. 엘릭서를 매각 한 돈을 자신 의 다음 단계인 신경과학 연구를 위한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게임 산업에서 지능의 외형(시 뮬레이션)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뇌 과학을 통해 지능의 본질(알 고리즘)을 배우러 간 것입 니다.
게임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공지능의 한계를 보았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지도를 그렸습니다. 2005년 엘릭서의 문을 닫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도서관으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에는, 조만간 다시 가상 세계로 돌아와 진짜 지능을 구현해내 겠다는 서늘한 집 념이 서려 있었습니다. "게임은 끝났지만, 퀘스트는 이제 시작이다."
그가 전 세계 게이머 와 과학계에 던진 보이지 않는 메시지였습니다. 엘릭서 스튜디오(Elixir Studios)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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