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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6장 텅 빈 마닐라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16장 텅 빈 마닐라
김경진
제16장 텅 빈 마닐라
16.1 석유 수입 98%를 중동에 의존하는 나라
2026년 3월 20일, 마닐라 케손시티의 칼라야안 대로 주유소. 직원 한 명이 검은 테이프를 찢어 가격판의 숫자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리터당 89페소였던 디젤이 오늘은 105페소. 내일은 얼마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유소 앞에는 오토바이와 지프니 열댓 대가 줄을 서 있었고, 뒤쪽으로는 "1인당 주유 20리터 제한"이라는 손글씨 팻말이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국가입니다. 섬과 섬 사이를 잇는 페리와 로로(Ro-Ro) 화물선, 도서 산간 지역에 전기를 보내는 디젤 발전기, 메트로 마닐라의 거대한 인구를 실어 나르는 지프니(Jeepney)와 트라이시클(Tricycle)은 전부 화석 연료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필리핀은 자국 내에서 상업적으로 쓸 만한 원유를 거의 생산하지 못합니다. 국내 수요를 부분적으로 감당하던 말람파야(Malampaya) 해상 가스전도 고갈 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소비하는 석유의 98%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수입의 경로였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DOE)의 2024년 에너지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이 수입하는 원유의 95% 이상이 페르시아만에서 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절반 넘게 차지했고, 아랍에미리트와 이라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필리핀이 원유를 직접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은 바탄(Bataan) 반도에 있는 페트론(Petron) 정유소 하나뿐인데, 이 정유소가 국내 수요의 40%만 감당합니다. 나머지 60%는 싱가포르,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정유 허브에서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같은 정제유를 사옵니다. 그런데 이 아시아 국가들이 정제하는 원유의 대부분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들이었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필리핀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100% 노출된 나라였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수개월치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를 지하 암반이나 거대 저장 탱크에 쌓아둘 재정적, 인프라적 여력이 필리핀에는 없었습니다. 1998년에 제정된 석유산업 규제완화법(Oil Deregulation Law)이 비축 책임을 민간 정유사에 넘겼고, 정부 차원의 전략 비축유는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는 전적으로 민간 업체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15일에서 30일치 상업 재고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습니다. 유조선 보험이 사라지고 AIS 신호가 꺼진 뒤, 필리핀이 직면한 위기는 "가격 상승"이 아니라 "물리적 고갈"이었습니다. 돈을 더 준다고 기름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 일제히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면서 정제유 수출을 틀어막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게는 석유 말고도 하나의 동맥이 더 끊어지고 있었습니다. 중동은 필리핀 경제의 또 다른 핵심 축인 해외노동자(OFW, Overseas Filipino Workers) 240만 명의 거주지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81만 3,000명, 아랍에미리트에 97만 5,000명, 카타르에 25만 명. 이들이 매달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필리핀 GDP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전쟁이 터지자 중동의 공항들이 줄줄이 폐쇄되었고, 필리핀 정부는 석유 공급 차질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폭격의 공포에 떠는 자국민들을 구출해야 했습니다. 이주노동부(DMW) 장관 한스 카크닥(Hans Cacdac)은 전쟁 발발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송환은 아직 아닙니다, 경계태세 4단계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두바이에서만 80명이 귀국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월 14일까지 정부가 중동에서 본국으로 데려온 필리핀인은 1,315명. 전세기를 띄워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로로 수 시간을 달려 안전한 출국 지점까지 이동한 뒤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석유가 끊기고, 송금이 줄고, 가족이 전쟁터에 갇혀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움직이는 물리적 에너지와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적 에너지를 동시에 끊어버렸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비명을 지른 나라가 필리핀이었던 이유입니다.
16.2 "위기가 아니다"에서 "국가 비상사태"로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말라카냥궁(Malacañang). 대통령 공보관 클레어 카스트로(Claire Castro)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필리핀은 지금 "위기 상황이 아니라 가격 혼란(price disruption) 상태"라고.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Sharon Garin)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재고는 45일치가 남아 있고,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으니 패닉 바잉(사재기)을 할 필요가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했습니다.
24시간 뒤인 3월 24일 화요일 저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대통령이 말라카냥궁에서 행정명령 110호(EO 110)에 서명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State of National Energy Emergency) 선포. 유효 기간 1년. 전 세계에서 이란 전쟁에 대응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어제까지 "위기가 아니다"고 했던 정부가 하루 만에 백기를 든 셈입니다.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합동위원회 UPLIFT(Unified Package for Livelihoods, Industry, Food, and Transport)가 가동되었습니다. 에너지부, 교통부, 사회복지부, 농업부, 재정부, 예산관리부, 경제기획부의 장관들이 전원 참여하는 범정부 대응 체계입니다. 비상사태 선포는 정부에 연료와 석유 제품의 긴급 조달 권한, 사재기와 폭리 단속 권한, 에너지 배급 계획 시행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국영 석유회사 PNOC(Philippine National Oil Company)와 탐사 자회사 PNOC-EC에는 입찰 절차를 건너뛰고 긴급 구매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 극적인 뒤집기의 배경에는 상원 청문회에서 드러난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너지부가 밝힌 재고 현황은 이랬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 55일에서 57일치였던 석유 재고가 3월 20일 기준으로 45일치까지 떨어졌습니다. 항공유(Jet Fuel)는 38일치. 서민들의 취사와 식당 영업에 필수인 LPG는 23일치.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이상, 이 숫자들은 줄어들기만 할 뿐 다시 채워질 전망이 없었습니다.
상원의원 로렌 레가르다(Loren Legarda)가 청문회에서 에너지부를 향해 분노를 쏟았습니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이웃 나라들은 평소에 전략비축유를 비축해 두었는데, 필리핀 정부는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정상 가격의 두 배를 주고 긴급 물량을 사려 허둥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산관리부(DBM)가 승인한 긴급 구매 예산은 200억 페소(약 4억 600만 달러). 말람파야 가스전 기금에서 끌어온 돈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200만 배럴의 디젤을 사올 계획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돈이 있어도 당장 기름을 실어올 배가 없었습니다.
페트론은 러시아에서 ESPO 블렌드 원유 75만 배럴(10만 톤)을 실은 유조선 사라 스카이(Sara Sky)호를 바탄 정유소로 불렀습니다. 미국이 4월 11일까지 유효한 제재 면제를 내준 덕분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5년 만에 러시아산 원유가 필리핀에 들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과 협의 중입니다, 이란산이든 베네수엘라산이든,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맹국의 전쟁이 필리핀의 에너지를 끊었고, 필리핀은 그 동맹국의 적대국에서 기름을 사오고 있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누나인 이미 마르코스(Imee Marcos) 상원의원은 정부의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쪼잔한 구호금을 뿌리는 것은 반창고 처방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필리핀인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이고 광범위한 전략적 계획입니다." 상원의원 밤 아키노(Bam Aquino)는 에너지 비상사태가 아니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정부에 가격 통제와 위기 대응의 실질적 권한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진보 시민단체 바얀(Bayan)의 레나토 레예스 주니어(Renato Reyes Jr.)는 더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비상사태 선포문에는 세금 철폐도, 가격 통제도, 석유산업 규제완화법 폐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선언입니다."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는 이 사태를 분석하면서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의 자체 통계 보고서가 호르무즈 봉쇄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거의 수학적인 정밀도로 기술해 놓았었다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자료는 있었습니다. 숫자도 있었습니다. 없었던 것은 그 숫자에 따라 행동하는 긴박함이었습니다.
16.3 사라진 교통체증
메트로 마닐라 개발청(MMDA) 국장 니콜라스 토레 3세(Nicolas Torre III)가 3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수치가 있습니다. 에드사(EDSA, Epifanio de los Santos Avenue) 대로의 통행량이 5%에서 8% 감소했다고. 2023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40만 7,342대가 지나가는 도로에서 2만 대에서 3만 대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토레 국장은 "유가 상승 이후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일부는 카풀로 전환했으며, 일부는 대중교통으로 옮겨갔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5%에서 8%입니다. 그런데 마닐라의 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압니다. 에드사 대로는 23.8킬로미터 길이의 10차선 도로로, 평소라면 출퇴근 시간마다 거대한 주차장이 됩니다. 매연, 경적, 서로 먼저 가려 엉켜 붙은 차량들.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 도시 순위에서 마닐라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도로가 눈에 띄게 비어 있었습니다.
알자지라(Al Jazeera)의 사진 기자가 3월 26일 에드사 대로의 러시아워를 촬영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마닐라의 거리가 텅 비다(Manila's streets empty)"였습니다. 전광판에는 "중동을 위해 기도합시다(Pray for the Middle East)"라는 문구가 떠 있었고, 그 아래를 지나는 차는 몇 대 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엄격한 봉쇄(Lockdown)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침묵과 지금의 침묵은 본질이 달랐습니다. 코로나 때는 바이러스를 피하려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잠근 격리의 침묵이었습니다. 지금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도 이동할 수단이 사라진 마비의 침묵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멈춘 것은 지프니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 지프를 필리핀 사람들이 개조해서 미니버스로 쓰기 시작한 것이 지프니의 기원입니다. 마닐라의 가장 저렴한 대중교통 수단이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 경제의 핏줄입니다. 기본 요금 13페소. 경유 가격이 리터당 100페소를 넘어 120페소, 130페소까지 치솟자 산술이 무너졌습니다. 지프니 한 대가 하루에 소비하는 경유는 평균 30리터. 30리터에 130페소를 곱하면 하루 연료비가 3,900페소입니다. 그런데 운전사들이 하루 종일 운행해서 버는 돈은 300페소에서 400페소. 운전대를 잡을수록 빚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3월 19일, 전국운수노조 피스톤(PISTON, Pagkakaisa ng mga Samahan ng Tsuper at Opereytor Nationwide)이 전국적인 교통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피스톤 위원장 모디 플로란다(Mody Floranda)는 요구 사항을 내걸었습니다.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를 즉각 철폐할 것, 연료 가격을 리터당 55페소로 되돌릴 것, 1998년의 석유산업 규제완화법을 폐지할 것. 피스톤은 전국에서 7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메트로 마닐라에만 15개에서 20개의 파업 거점이 생겼고, 세부, 일로일로, 파식(Pasig), 불라칸(Bulacan)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차량 운행이 멈췄습니다.
52세의 지프니 운전사 아르투로 모델로(Arturo Modelo)가 알자지라에 말했습니다. "평소에는 하루 600페소(약 10달러)를 벌었는데, 지금은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아이 점심값도 못 줍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귀먹은 정부가 듣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요즘은 도로에 나가도 생계가 안 됩니다."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2차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지프니뿐 아니라 버스, UV 익스프레스, 오토바이 택시, 차량공유서비스(TNVS) 운전사들까지 합류한 20개 이상의 운수단체가 연합했습니다. "유가 인상 반대 연합(No to Oil Price Hike Coalition)"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3월 27일 금요일, 수천 명이 말라카냥궁까지 행진했습니다. 시위대 가운데 이란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국노동자단체 킬루상 마요 우노(Kilusang Mayo Uno, 5월 1일 운동)의 제롬 아도니스(Jerome Adonis) 의장이 말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고, 이 전쟁에 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 우리에게도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이 멈추자 여파가 도시 전체로 번졌습니다. 마닐라의 여러 대학이 대면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Ateneo de Manila University)는 교통 사정으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수에게 통보하라고 안내했습니다.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PUP)는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습니다. 성주간 이동 준비 기간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에 올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려 보조금을 뿌렸습니다. 오토바이 택시와 운수 노동자들에게 1인당 5,000페소(약 83달러)의 긴급 현금 지원. 교통부의 10억 페소 예산으로 무료 버스 운행. 전철 MRT3와 LRT2의 요금 할인.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그러나 5,000페소는 이틀치 연료비에 불과했습니다. 피스톤은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조치들 가운데 석유 산업의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텅 빈 에드사 대로는 마닐라의 경제가 멈추고 있다는 가장 시각적인 증거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의 교통체증이 사라졌다는 것은, 교통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서민들은 21마일의 좁은 수로가 막히면 자기 동네 골목길의 지프니마저 멈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16.4 바클라란 성당의 수요일
2026년의 성주간(Semana Santa, Holy Week)은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였습니다. 필리핀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이 나라에서 성주간은 한 해의 가장 크고 거룩한 명절입니다. 평소라면 메트로 마닐라 인구의 절반이 고향(프로빈시아, Provincia)으로 향하는 버스와 배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몰려드는 거대한 민족 이동의 주간입니다.
그런데 MMDA가 성주간 직전에 관측한 결과는 이랬습니다. 터미널과 주요 간선도로의 승객 수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MMDA 교통기동대장 에디슨 네브리하(Edison Nebrija)가 방송에 출연해서 말했습니다. "원래 이맘때 금요일이면 터미널마다 승객이 넘쳐나고 에드사 대로에서 이미 전환(성주간 이동의 시작)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년만큼 많지 않습니다."
가톨릭 주교회의(CBCP,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the Philippines)의 공보위원회 사무국장 제롬 세실라노(Jerome Secillano) 신부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정했습니다. 유가 위기가 비시타 이글레시아(Visita Iglesia, 성주간에 일곱 개의 성당을 순례하는 필리핀 가톨릭 전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교회가 참배객이 줄어드는 것만 걱정한다면 이기적일 겁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유가 상승이 필리핀 국민의 삶 전체에 눈덩이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절약하려고 이동을 줄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라냐케(Parañaque)에 있는 바클라란 성당(National Shrine of Our Mother of Perpetual Help). 매주 수요일이면 수만 명의 신도가 몰려드는 곳입니다. 재스민 꽃 파는 사람들, 바비큐 노점상, 지프니 호객꾼들이 성당 안팎에서 뒤섞이고, 그 사이로 묵주를 쥔 신도들이 끊임없이 드나듭니다. 수요일의 바클라란은 신앙과 생활이 한데 엉킨 마닐라의 축제이자 의식입니다.
3월 25일 수요일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알자지라의 현지 기자 테드 레헨시아(Ted Regencia)가 그날의 바클라란 성당을 촬영했습니다. 평소의 혼잡한 활기가 거의 사라져 있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바깥에서 울려 퍼지던 지프니 경적 소리가 잦아들었고, 노점상들의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멈추어 있었습니다.
성당 앞 주차 안내원 루벤(Ruben), 27세. 새벽 3시부터 12시간 넘게 서 있었지만 팁 수입은 약 6달러.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에밀리 루아도(Emily Ruado), 59세, 네 아이의 어머니. 성당 주변에서 화장지와 잡화를 팔아 하루 10달러를 벌었는데, 전쟁 이후 수입이 하루 5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대중교통이 줄면서 성당에 오는 사람들의 이동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버스와 지프니 대신 몇 시간씩 걸어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통수단이 사라졌으니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주간의 전통적인 고행(Penance)으로서 길을 걷는 것과, 기름이 없어서 강제로 걷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졌습니다. 종교적 침묵과 경제적 마비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겹쳤습니다.
버스와 지프니가 줄었으니 남은 선택은 전철이었습니다. 마닐라의 MRT와 LRT에 승객이 몰렸습니다. 평소에도 부족한 전철 시스템이 러시아워마다 병목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연료 위기가 마닐라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입니다.
성주간의 침묵 아래에는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에너지는 운송비이고, 운송비의 폭등은 쌀과 생필품 가격의 연쇄 상승을 뜻합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농부와 어부들에게 연료와 비료 보조금을 지급해서, 경유 가격 상승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막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통령궁은 4월 16일까지 기본 생필품의 가격 인상을 금지하는 행정 조치를 내렸고, 산업통상부(DTI)가 매주 모니터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Urea)의 주요 생산지가 중동이고, 그 수출 경로가 호르무즈 해협인 이상, 보조금 살포만으로 식량 가격의 근본적인 상승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한 문장으로 요약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가면, 필리핀 사람들은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바클라란 성당의 신도들은 이미 바꾸고 있었습니다. 버스 대신 걸었고, 촛불을 켜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일 아이들을 먹일 쌀을 살 수 있기를. 남편이 타고 다닐 지프니가 다시 움직이기를. 중동의 전쟁이 제발 끝나기를.
마닐라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의 거리는 약 7,000킬로미터입니다. 페르시아만의 폭격 소리는 이곳까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유소 가격판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지프니가 한 대씩 골목에서 사라질 때마다, 성당에 걸어서 오는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전쟁의 충격파는 소리 없이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사 대로의 전광판에 띄워진 문구가 있었습니다. "중동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닐라의 서민들에게 그 기도는 중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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