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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8장 항공이 먼저 멈추다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18장 항공이 먼저 멈추다
김경진
제18장 항공이 먼저 멈추다
18.1 세부퍼시픽과 필리핀항공의 노선 축소
2026년 3월 24일 오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제3터미널. 전광판이 붉은 글씨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CANCELED. CANCELED. CANCELED. 세부퍼시픽의 마닐라-세부 오후 2시 40분편. 취소. 마닐라-다바오 3시 15분편. 취소. 마닐라-팔라완 4시편. 취소. 터미널 바닥에는 배낭을 안고 앉은 가족들, 휴대전화를 들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업가들, 아이를 업은 채 카운터 앞에 줄을 선 어머니들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날 세부퍼시픽과 필리핀항공은 국내선과 국제선의 상당수를 전격 취소했습니다.
같은 시각, 말라카냥궁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행정명령 제110호에 서명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 필리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란 전쟁에 대한 대응으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나라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마르코스가 블룸버그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짧고 직접적이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우리 항공사에 연료를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그래서 항공기들이 출발지에서 왕복 연료를 모두 싣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비행기가 지상에 묶이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인 가능성입니다."
항공유(Jet A-1, 항공기에 사용되는 등유 계열 연료)는 원유에서 뽑아내는 중간 유분 가운데서도 극히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연료입니다. 영하 50도의 성층권에서 얼지 않아야 하고, 불순물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되어야 합니다. 아시아 항공사들은 이 연료의 대부분을 중동산 원유를 정제해서 얻거나, 중동 정유소에서 완제품 형태로 수입해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이 공급망 전체가 끊어졌습니다.
정유소들은 냉정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원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유탑의 밸브를 조절해 디젤과 난방유 생산을 우선하고, 항공유 생산을 줄였습니다. 수율 조정(Yield Shift, 같은 양의 원유에서 어떤 제품을 더 많이 뽑아낼지를 바꾸는 결정)이라 불리는 이 과정에서, 항공유는 제일 먼저 희생되는 제품이었습니다. 트럭을 멈추면 사람이 굶지만, 비행기를 멈춰도 당장 누가 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이 타격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어느 나라보다 깊이 맞았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 필리핀의 석유 자급률은 바닥에 가깝습니다. 국내에 가동 중인 정유소는 바탄 반도에 있는 페트론(Petron) 시설 하나뿐이고, 이것으로 국내 연료 수요의 40%밖에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머지 60%는 한국,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의 정유소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정유소가 사용하는 원유의 70~8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걸프산입니다. 해협이 막히니 필리핀에 연료를 팔아줄 나라 자체가 사라진 셈이었습니다.
둘, 필리핀은 전략비축유(SPR)가 없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비축량은 정부 소유 비축유가 아니라, 민간 정유사와 유통사의 상업용 재고였습니다. 1990년대에 제정된 석유산업규제완화법(Oil Deregulation Law)에 따라, 민간 기업의 법적 의무 비축량은 고작 15일분이었습니다.
셋, 필리핀은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입니다. 섬과 섬을 잇는 교통수단 가운데 항공은 사치가 아니라 생명선입니다. 세부, 다바오, 팔라완, 보라카이, 민다나오의 도시들은 마닐라와 항공편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이 끊기면 의료품 수송, 긴급 구호, 산업 물류가 동시에 마비됩니다.
세부퍼시픽은 4월부터 10월까지의 노선 축소와 운항 빈도 감축을 발표했습니다. 항공유 가격이 2025년 평균의 두 배 이상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저비용 항공사의 마진으로는 비행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필리핀항공도 중동 노선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리야드, 두바이, 도하행 항공편이 모두 끊겼습니다. 3월 25일, 필리핀항공은 6월 말까지의 항공유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 공급 상황은 역동적입니다"라는 항공사의 성명서에 담긴 '역동적'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우리도 모릅니다"를 뜻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항공유 부족은 필리핀 경제의 또 다른 기둥을 흔들었습니다. 해외노동자(OFW, Overseas Filipino Workers). 중동,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본국에 달러를 송금하는 수백만 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은 이 나라 경제의 숨은 엔진입니다. 2025년 해외 송금액은 37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멈추니 노동자들이 출국할 수 없었습니다. 계약 기한이 다가오는데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마닐라 공항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일부는 출국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송금이 끊기면 가족들의 생활비가 끊기고, 생활비가 끊기면 내수 소비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면 소상공인이 쓰러집니다.
보라카이와 세부의 리조트들은 텅 비었습니다. 관광업 종사자들이 무급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세부퍼시픽의 노란 꼬리날개가 찍힌 항공기들이 활주로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사진이 SNS에 퍼졌습니다. 누군가 그 사진에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새가 날개를 잃으면 그냥 닭이 됩니다." 필리핀에서 항공기는 새였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이 새들의 날개가 꺾였습니다.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3월 25일, 블룸버그는 아시아 전역에서 항공유 비축(Hoarding)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항공사들은 일부 해외 공항에서 급유 거부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수출용 항공유를 국내 시장으로 전환할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필리핀항공 사장은 인터뷰에서 연료 배급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베트남 민간항공청은 4월 초부터 항공유 부족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베트남의 상황은 필리핀 못지않게 심각했습니다. 베트남은 항공유의 3분의 2 이상을 수입하고, 그 수입의 60%를 중국과 태국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3월 들어 정제유 수출을 중단했고, 태국 역시 정제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베트남의 두 주요 항공유 수입업체인 페트로리멕스(Petrolimex)와 스카이펙(Skypec)은 3월분 공급만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4월 이후의 물량은 약속할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 민간항공청은 3월 9일, 교통부에 긴급 문서를 보냈습니다. "4월 초부터 베트남 항공사들의 항공유 부족 위험이 있습니다." 이 문서는 항공사들에게 운항 계획을 재검토하고, 공항 운영자에게는 지상에 묶일 항공기를 위한 추가 주기 공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3월 23일, 베트남항공은 4월 1일부터 주당 23편의 국내선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이퐁-부온마투옷, 하이퐁-캄란, 하이퐁-푸꾸옥, 하이퐁-칸토, 호찌민-반돈, 호찌민-락자, 호찌민-디엔비엔. 이 노선들은 대부분 관광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푸꾸옥의 해변 리조트, 칸토의 메콩 델타 관광, 디엔비엔의 역사 투어가 항공유 부족으로 멈추게 된 것입니다. 비엣젯 항공도 일부 노선을 축소했습니다. 민간항공청 문서에 따르면,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60~2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베트남항공은 월 비행편의 10~20%를 추가 삭감할 계획이었습니다. 국제선 최대 18%, 국내선 최대 26%까지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3월 15일, 베트남 외무장관 레 호아이 쭝이 중국 외교부장 왕이에게 에너지 안보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팜 민 찐 총리는 태국 대사를 만나 항공유 공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한국, 일본, 브루나이, 인도에서 대체 공급원을 찾고 있다고 민간항공청은 밝혔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는 극히 어렵다고 인정했습니다.
3월 21일, 베트남은 러시아와 석유가스 생산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 휘발유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50%, 디젤은 70% 올랐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SAS 항공은 3월 18일, 4월에 최소 1,000편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CEO 안코 반 데르 베르프의 말은 간결했습니다. "제트연료 가격이 열흘 만에 두 배가 되었습니다." SAS는 하루에 약 800편을 운항하는 항공사입니다. 평시 기준 1,000편은 하루 반나절 분량입니다. 하지만 SAS의 결정이 주목을 받은 건 규모가 아니라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주요 항공사 가운데 순수하게 연료비 때문에 노선을 삭감한 첫 번째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에어 뉴질랜드도 3월 12일부터 5월 초까지 전체 운항편의 5%, 약 1,100편을 삭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항공 CEO 스콧 커비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제트연료 가격이 3주 만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항공유 위기의 수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연료가격 모니터에 따르면, 글로벌 평균 항공유 가격은 한 달 사이에 82.8% 올라 배럴당 175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6년 항공유 평균 가격 전망을 갤런당 2.67달러로 상향했습니다. 이전 전망치보다 37% 높은 수치입니다. 항공유가 항공사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시 25~30%인데, 이 비율이 40%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의 CEO 로널드 램은 3월 항공유 비용이 이전 두 달 평균의 두 배라고 밝혔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은 원유 부분의 30%만 헤징(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리 계약하는 기법)해놓은 상태였고, 정제 비용 부분은 헤징이 아예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항공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한항공은 4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편도 기준 최대 30만 3,000원으로 올렸습니다. 3월의 최대 9만 9,000원에서 세 배가 넘는 인상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최대 25만 1,900원으로 올렸습니다. 제주항공은 노선별로 3배 이상 인상했습니다. 인천-후쿠오카 노선의 유류할증료가 9달러에서 29달러로, 인천-싱가포르는 68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은 "인천-뉴욕 왕복 기준 유류할증료만 50만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진에어는 4월 괌, 나트랑 등 노선에서 45편을 삭감했습니다. 에어프레미아는 4~5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방콕, 뉴욕 노선에서 약 50편을 줄였습니다.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에어로케이도 동남아와 일본 노선을 축소하거나 중단했습니다. 대한항공은 3월 31일,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티웨이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세 번째였습니다. 대한항공의 원래 사업 계획은 항공유 가격을 갤런당 220센트로 가정하고 세운 것이었습니다. 실제 가격은 450센트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코리아헤럴드는 5월 유류할증료가 33단계 중 최고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22단계였습니다.
서울의 한 가장(家長)이 서울경제신문에 한 말이 이 상황을 압축합니다.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려고 다음 달 도쿄 여행을 계획했던 A씨는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일 기준 30만 원대였던 항공료가 50만 원으로 뛰어 있었습니다. "4인 가족이면 계산만 해도 80만 원이 늘어납니다. 그냥 여행을 취소하는 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18.2 중동 노선의 전면 중단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밤, 이란, 이스라엘, 이라크, 요르단,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가 동시에 영공을 폐쇄했습니다. 시리아도 이스라엘 국경 인근의 남부 영공을 12시간 동안 닫았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중동행 항공편의 24%가 취소되었습니다. 카타르행과 이스라엘행은 절반이 취소되었고, 쿠웨이트행은 28%가 사라졌습니다.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시리움(Cirium)의 집계입니다.
3월 3일까지, 두바이 국제공항, 하마드 국제공항(도하), 자이드 국제공항(아부다비), 샤르자 국제공항, 쿠웨이트 국제공항, 바레인 국제공항, 두바이 월드센트럴-알 막툼 국제공항 등 중동 7개 주요 공항에서 취소된 항공편은 1만 2,300편을 넘었습니다. 플라이트레이더24의 집계입니다. 3월 중순까지 누적 취소 편수는 2만 편을 돌파했습니다.
이 숫자들이 뜻하는 것이 있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은 2025년 연간 9,52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 세계에서 제일 바쁜 국제공항이었습니다.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은 5,430만 명,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제공항은 3,300만 명이었습니다. 세 공항을 합치면 연간 1억 8,250만 명입니다. 하루 평균 50만 명이 이 공항들을 거쳐갔다는 뜻입니다. 이 공항들이 멈추거나 운영을 극도로 축소했을 때, 전 세계 항공 네트워크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CNN은 이것을 "하늘의 구멍(the hole in the sky)"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30년간, 에미레이트 항공(두바이), 카타르 항공(도하), 에티하드 항공(아부다비)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글로벌 환승 허브를 만들어왔습니다. 항공 컨설턴트 마이크 아르놋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중동에 기반을 둔 항공사들은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맞춤형 항공사와 허브를 건설했습니다."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파리에서 시드니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울로 가는 승객들의 상당수가 두바이나 도하를 경유했습니다. 이 모델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두바이 국제공항과 아부다비 공항은 이란의 보복 공격 때 실제로 피격되었습니다. 유로뉴스는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공항 모두 이란의 공격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 상공에서 드론 경보가 울릴 때마다 항공기들이 인근 국가로 회항했습니다. 영공이 폐쇄된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운항 재개를 시도한 에미레이트 항공은 3월 7일까지 정규 운항을 중단했고, 에티하드도 비슷한 일정으로 운항을 멈췄습니다. 카타르 항공은 카타르 영공이 폐쇄된 채로 유지되면서 정규 운항 재개 시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영국항공은 암만, 바레인, 두바이, 텔아비브행 항공편을 5월 31일까지, 도하행은 4월 30일까지 취소했습니다. 아부다비행은 연말까지 중단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 그룹의 오스트리아 항공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비엔나로 승무원 대피 비행을 운항했습니다. 터키항공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도하, 두바이, 아부다비, 쿠웨이트, 바레인, 담맘행 항공편을 3월 19일까지, 이란행은 3월 20일까지 취소했습니다. 페가수스 항공은 이란, 이라크, 암만, 베이루트, 쿠웨이트, 바레인, 도하, 담맘, 두바이, 아부다비, 샤르자행을 4월 12일까지 취소했습니다.
수만 명의 승객이 중동 공항에 발이 묶였습니다. CNN은 이것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본국 송환 작전"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고 묘사했습니다. 영국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런던 스탠스테드로 정부 전세기를 띄웠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이스라엘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위해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 이집트 타바 국경까지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캐나다는 UAE 영공 개방에 맞춰 전세기를 준비했습니다. 뉴질랜드는 국방부 수송기 두 대를 중동에 파견했습니다. 오만 무스카트 공항은 대피와 재배치 항공기들이 몰려들면서 혼잡해졌고, 일부 비즈니스 항공편 제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승무원 사라 굿윈은 도하에 발이 묶인 채 틱톡에 영상을 올렸습니다. "미사일 소리를 직접 듣게 될 줄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이 닫히자 남은 길은 돌아가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악순환의 시작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영공은 이미 대부분의 국제 항공사에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가자 분쟁으로 동지중해 일부 영공도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시리아, 카타르, 바레인, UAE, 이스라엘 영공이 추가로 폐쇄되거나 심하게 제한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안전한 항로가 극히 좁아졌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공기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북쪽 우회 항로: 코카서스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돌아가는 길. 남쪽 우회 항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오만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길. 두 경로 모두 직항에 비해 2~4시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추가 비행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항공유 소비의 기하급수적 증가입니다. 홍콩-런던 노선의 항공권 평균 가격은 한 달 만에 560% 올라 3,318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방콕-프랑크푸르트는 505% 올라 2,870달러가 되었습니다. 시드니-런던의 이른바 '캥거루 루트'는 429% 상승했습니다. 알톤 에이비에이션 컨설턴시의 분석입니다.
알톤 에이비에이션의 브라이언 테리 디렉터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란 전쟁이 일찍 끝나더라도, 낮아진 가격이 항공유 공급망에 반영되기까지 최대 3개월이 걸립니다. 우회 경로에 따른 비행시간 증가, 좌석 공급 감소, 지속적인 고유가가 결합되어 상당 기간 가격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입니다." 아시아-유럽 항공료는 10월까지 전년 대비 3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보험 시장이 최후의 타격을 가했습니다.
해운 보험이 해상 봉쇄를 완성했듯이, 항공 보험이 하늘의 봉쇄를 완성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의 기억은 보험업계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런던 로이즈를 비롯한 글로벌 항공보험사들은 중동 영공을 통과하는 모든 상업 비행에 대해 전쟁 위험 보험(War Risk Insurance)의 인수를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올렸습니다. 인도 항공사들은 광폭동체 항공기(보잉 777이나 에어버스 A380 같은 대형기) 한 대의 왕복 비행당 전쟁 위험 보험료가 1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1미터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보험은 물리적 위험이 아니라 금융적 판단으로 하늘길을 차단한 것입니다. 미사일과 드론은 바다를 막았지만, 보험사의 계산기가 하늘을 막았습니다.
18.3 45일 비축분의 의미
2026년 3월 24일, 필리핀 상원 청문회. 에너지부 장관 샤론 가린이 증언석에 앉았습니다. 의원 로렌 레가르다가 질문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뭡니까?" 가린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라가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이 한 문장이 필리핀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가린이 제시한 숫자는 이랬습니다. 가솔린 53.14일, 디젤 45.82일, 등유 97.93일, 항공유 38.62일, 중유 61.49일, LPG 23.51일. 평균 약 45일. 여유가 있는 쪽은 등유(약 98일)였고, 제일 급한 것은 LPG(약 24일)와 항공유(약 39일)였습니다.
45일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시 배급 체제로 쥐어짜며 연명하는 45일이 아니라, 평시 소비량을 기준으로 계산한 45일이었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평소처럼 쓰면 45일 만에 바닥난다는 뜻입니다. 배급제를 시행하고 수요를 억제하면 기간을 늘릴 수 있지만, 그래 봐야 두세 달이 한계입니다.
게다가 이 비축분은 정부가 소유한 전략비축유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민간 정유사와 유통업체의 상업용 재고였습니다. 석유산업규제완화법에 따른 민간 기업의 법적 의무 비축량은 고작 15일분이었습니다. 나머지 30일분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업 재고인데, 정부가 이것을 강제로 징발할 법적 근거가 취약했습니다.
레가르다 의원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이것도 위기가 아니란 말입니까?" 불과 하루 전인 3월 23일, 청와대(말라카냥궁)는 "에너지 위기는 없다"고 공식 발표했었습니다. 24시간 만에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로 바뀐 것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나라에서, "누구에게 먼저 남은 기름을 줄 것인가"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입니다. 마르코스 정부는 이 문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1순위는 서민 경제와 식량망이었습니다. 필리핀의 대중교통은 지프니(Jeepney,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지프를 개조해 만든 미니버스)가 떠받치고 있습니다. 마닐라의 서민들은 지프니 없이 출퇴근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지프니 운전사들에게 5,000페소(약 83달러)의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고, MRT와 LRT 등 도시철도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요금을 할인했습니다. 농부와 어부에게는 디젤 보조금이 우선 배정되었습니다. 섬 지역의 전력을 담당하는 국가전력공사(Napocor)의 디젤 발전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지정되었습니다.
2순위는 산업 시설과 병원이었습니다. 메트로 마닐라의 전기를 공급하는 메랄코(Meralco) 전력회사는 3월 초에 이미 킬로와트시당 64센타보의 요금 인상을 단행했고, 4월에는 추가로 16%의 인상이 예고되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3월 6.3~7.5%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항공은 이 우선순위에서 맨 아래에 놓였습니다. 쌀을 실어 나를 트럭의 디젤이 바닥나는 판에, 해외여행을 위한 비행기에 기름을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비행기 운항 중단은 현실적 가능성"이라고 인정한 것은, 항공의 멈춤을 용인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민들의 분노는 보조금으로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3월 19일, 지프니 운전사 연합체 피스톤(PISTON, Pagkakaisa ng mga Samahan ng Tsuper at Operator Nationwide, 전국 운전사 및 운영자 통합연맹)이 하루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피스톤 의장 모디 플로란다의 요구는 세 가지였습니다. 석유제품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폐지, 리터당 55페소 가격 상한제, 5페소 요금 인상 허용.
파업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었습니다. 1월에 리터당 57.60페소였던 디젤이 3월 말 126~130페소로 올랐습니다. 두 배가 넘었습니다. 휘발유는 54.90페소에서 94~99페소로 뛰었습니다. 지프니 운전사 아르투로 모델로, 52세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600페소를 벌었는데, 지금은 그 3분의 1밖에 못 법니다. 아이 점심값도 못 줍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귀먹은 정부가 들으라고요."
3월 23일, '유가 인상 반대 연합(No to Oil Price Hike Coalition)'이 출범했습니다. 피스톤, 마니벨라(Manibela), 라반 TNVS(Laban TNVS), 카라이더스(Kariders), 카굴롱(Kagulong) 등 전국 운수 노동자 단체들의 연합이었습니다. 3월 26~27일 이틀간의 전국적 운수 파업이 예고되었습니다.
파업 당일, 마닐라는 마비되었습니다. 퀘존시의 리텍스와 필코아, 파라냐케의 수캇 로드에서 통근자들이 발이 묶였습니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는 교통 문제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출석을 면제했습니다.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는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세부에서도 지프니 대부분이 운행을 중단했고, 거리에는 오토바이 택시(하발하발)와 현대식 지프니만 과적 상태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3월 27일 금요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말라카냥궁(대통령 관저)까지 행진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유가 통제, 유류세 폐지, 정유 산업 규제 강화였습니다. 시위대 가운데 누군가가 이란 국기를 흔들었습니다. '유가 인상 반대 연합'은 필리핀이 겪는 경제적 고통의 원인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침략"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3월 26일 재외국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3월 26~27일 전국적 교통 파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중교통 전면 마비, 추가적 교통 혼잡, 대사관 인근을 포함한 시위가 예상됩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3월 25일, 원유 가격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유류 개별소비세를 일시 정지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4일제 근무와 재택근무 확대도 검토되었습니다. 하지만 파업을 주도한 노동 단체들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에너지부의 가린 장관조차 인정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디젤 가격이 리터당 약 2.7달러인데, 필리핀은 2.3달러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의 주유소 가격은 그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차이의 원인은 정부 보조금의 유무입니다. 필리핀은 이웃 나라들과 달리 석유제품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없습니다. 규제 완화법이 가격 결정을 전적으로 민간 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필리핀 신용평가투자서비스(CRISP)의 수석경제학자인 에마뉘엘 레이코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범은 1998년의 석유산업규제완화법입니다. 작은 가격 조정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인구의 절반이 가난하니까요."
45일의 카운트다운은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비슷한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비축량의 크기와 정부의 대응 여력이었습니다.
일본은 석유 비축량이 약 230일분으로, 아시아에서 넉넉한 편에 속합니다. 국가 비축과 민간 비축을 합친 수치입니다. 한국은 약 90일분의 전략비축유와 민간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추정치가 다양하지만, 120일분 이상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으로 일부 대체가 가능합니다.
반면 필리핀의 45일, 베트남의 항공유 3월분 보장,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취약한 비축 구조는 에너지 위기가 먼저 도달하고 오래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위키피디아의 '2026년 이란 전쟁의 경제적 영향' 항목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취약한 곳은 아시아에 있다."
필리핀은 3월 23일, 5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코즈미노항에서 출발한 유조선 사라 스카이호가 ESPO 블렌드(러시아 극동산 원유) 10만 톤, 약 75만 배럴을 싣고 바탄 반도의 페트론 정유소로 향했습니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경제적 고통을 미국의 동맹국이 러시아의 석유를 수입해서 완화하는 상황. 이 아이러니를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도 같은 주에 러시아와 석유가스 생산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카타르, 쿠웨이트, 알제리, 일본에도 연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는 한국, 일본, 중국 정부와 긴급 G2G(정부 간) 대화를 타진했습니다.
항공유가 먼저 바닥났다는 사실은 에너지 위기의 해부학을 보여줍니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 제일 먼저 죽는 것은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 제일 정교한 것, 제일 대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항공유는 그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영하 50도에서 작동하는 고품질 연료,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유일한 운송 수단, 한 번 끊기면 복구에 수개월이 걸리는 공급망.
그리고 항공이 멈추면 세계화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세계화란 사람과 화물이 24시간 안에 지구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구조입니다. 반도체 부품이 태국에서 일본으로 하루 만에 도착하고, 긴급 의약품이 인천에서 마닐라로 같은 날 배송되고, 사업가가 서울에서 두바이를 거쳐 런던으로 하루 만에 건너가는 것이 세계화의 일상이었습니다. 2026년 3월, 그 일상이 멈췄습니다.
텅 빈 공항의 탑승구, 활주로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항공기들, 전광판의 붉은 글씨. 이것은 단지 여행 불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1마일의 수로가 막히면 하늘길도 막힌다는 것, 에너지의 흐름이 끊기면 세계의 연결도 끊긴다는 것.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2026년 3월의 항공 위기였습니다.
필리핀 에너지부 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말한 "나라가 말라버리는 것"이라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45일이 지나면 정말로 말라버립니다. 그리고 그 45일은, 누구를 먼저 살릴지를 결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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