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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장 페이팔 마피아와 9.11 테러
PALANTIR 전쟁 감시 인공지능
제1부 실리콘밸리의 이단아(異端兒)
1장 페이팔 마피아와 9.11 테러
김경진 변호사
가. 9.11 테러와 정보 실패의 교훈
(1) 연결되지 않는 정보(Silo)의 비극과 CIA의 한계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46분,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그로부터 17분 후,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를 관통했습니다. 버지니아주 랭리에 위치한 CIA 본부 지하 상황실에서는 분석관들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정보기관들은 자신들이 가진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CIA는 두 명의 알카에다 조직원, 나와프 알-하즈미와 칼리드 알-미드하르가 미국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000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알카에다 회합을 감시하던 중 이 두 남자를 처음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CIA는 이 정보를 FBI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FBI는 국내 업무를 담당했고, CIA는 해외 정보를 다루었습니다. 두 기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습니다.
한편 FBI 지부의 한 요원은 그해 여름, 중동 출신 남성들이 미국 전역의 비행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는 이것이 테러 계획과 연관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FBI 본부의 누군가의 책상 서랍 속에 파묻혔습니다. 미네소타주에서 체포된 자카리아스 무사위의 노트북 컴퓨터에는 비행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들어 있었습니다. FBI 현장 요원들은 그의 컴퓨터를 수색할 영장을 신청했지만, 본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영장 신청서에 적힌 문구가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NSA, 국가안보국은 그해 여름 내내 '거대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통신을 감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8월 6일자 대통령 일일 브리핑 문서의 제목은 "빈 라덴, 미국 내 공격 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격임박 브리핑은 구체적인 날짜도, 장소도, 방법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NSA는 자신들의 임무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지, 분석하거나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보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정보는 넘쳤습니다. CIA, FBI, NSA, 국무부, 이민귀화국, 이 모든 기관들이 퍼즐의 조각을 하나씩 갖고 있었습니다. 테러범들의 여권이 위조되었다는 사실, 그들이 비행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 그들이 알카에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들이 미국 내에 있다는 사실. 그러나 이 조각들은 서로 다른 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각 기관은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었고, 자신만의 분류 체계를 사용했고, 자신만의 보안 규정을 따랐습니다. CIA 분석관이 FBI의 수사 기록을 열람하려면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정보 사일로'라고 부릅니다. 사일로는 농장에서 곡식을 저장하는 원통형 창고입니다. 밀을 담은 사일로와 옥수수를 담은 사일로 사이에는 벽이 있습니다. 한쪽의 곡식은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9.11 이전의 미국 정보 체계가 그러했습니다. 정보는 수집되었지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9.11 위원회는 2년 뒤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의 주된 실패는 점들을 연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위원회는 이 실패가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냉전 시대에 설계된 정보 체계는 소련이라는 단일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적, 알카에다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국경을 넘나들었고, 네트워크처럼 움직였고, 규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부서별로 칸막이 친 관료주의적 구조로는 이런 적을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뒤, 미국 의회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신설했습니다. 정보 기관들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조직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데이터였습니다. 수십 개 기관이 각자 다른 형식으로 저장한 수억 건의 문서, 영상, 통신 기록, 재무 거래 내역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할 것인가.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컴퓨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가진 컴퓨터 시스템은 1980년대에 설계된 것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했고, 서로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되어 있었고, 서로 호환되지 않았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보기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군인도 아니었고,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온라인 결제 회사를 운영하던 기업가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피터 틸이었습니다.
(2) 피터 틸의 비전: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안전을 지키는 기술"
2002년 어느 날, 피터 틸은 팔로알토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9.11 위원회의 중간 보고서가 1면에 실려 있었습니다. '점들을 연결하지 못했다.' 틸은 그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 문제를 이미 풀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틸은 그때 막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한 직후였습니다. 페이팔은 온라인 결제 서비스였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 인터넷으로 돈을 주고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거래 중 상당수가 사기였다는 점입니다. 러시아 마피아, 나이지리아 사기단, 신용카드 도용범들이 페이팔을 이용해 돈을 빼돌렸습니다. 한때 페이팔의 전체 거래량 중 1% 이상이 사기 거래였습니다.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틸과 페이팔의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고르(IGOR)'라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이고르는 수백만 건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서 수상한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계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거래가 일어나면 플래그를 띄웠습니다. 같은 IP 주소에서 여러 개의 다른 계정으로 접속하면 경고를 보냈습니다. 거래 금액, 시간대, 위치, 카드 종류, 배송 주소 등 수십 개의 변수를 조합해서 사기 가능성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러나 이고르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판단은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시스템은 수상한 거래를 걸러내고, 분석가가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틸은 생각했습니다. 테러리스트도 사기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돈을 송금합니다. 비행기 표를 삽니다. 렌터카를 빌립니다. 아파트를 임대합니다. 통화를 합니다. 이메일을 보냅니다. 국경을 넘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디지털 흔적을 남깁니다. 정부가 이 흔적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면,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틸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지상주의자였습니다. 정부가 시민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것을 혐오했습니다. 9.11 이후 미국 사회는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애국자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정부는 영장 없이 통화 기록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안을 위해서는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틸은 이것이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도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포브스 인터뷰에서 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모든 사람의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혐의점이 있는 데이터만 골라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언제 어떤 데이터를 봤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분석가가 권한 밖의 정보를 열람하려 하면 시스템이 차단합니다. 열람 기록은 나중에 감사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테러리스트를 찾으면서도 일반 시민의 프라이버시는 보호할 수 있습니다.
틸은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영입한 사람은 페이팔의 엔지니어 네이선 게팅스였습니다. 게팅스는 이고르 시스템을 설계한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스탠퍼드 대학의 학부생들이었습니다. 조 론스데일과 스티븐 코헨. 둘 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틸의 페이팔 시절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2004년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틸에게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회사를 이끌 CEO였습니다. 틸은 훌륭한 투자자였지만, 경영자로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복잡한 조직을 관리하고, 정부 관료들과 협상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설파하는 일에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탠퍼드 로스쿨 시절의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알렉스 카프.
카프는 이상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랐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는 철학 박사였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신고전주의 사회 이론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공격성과 정치적 정체성'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런던에서 소규모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부유한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틸이 카프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의 이력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와 일하는 회사, 기밀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에는 법적, 윤리적 감각이 필요했습니다. 카프는 법학 학위가 있었고, 철학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기술이 잘못 사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본능적으로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틸은 그런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2003년 5월 6일, 델라웨어주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라는 이름의 법인이 등록되었습니다. 회사의 미션은 "대테러 작전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었습니다. 틸이 초기 자금 3천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카프가 CEO를 맡았습니다. 그들은 팔로알토의 작은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코드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다른 벤처 투자자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부와 일하는 스타트업에 돈을 넣는 것은 미친 짓으로 여겨졌습니다. 정부 계약은 느리고, 복잡하고, 이익률이 낮았습니다.
세콰이어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는 틸과 카프의 투자설명 미팅 내내 메모장에 낙서만 했습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한 임원은 "당신들 회사는 반드시 망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군데, 정확히 한 군데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CIA의 벤처 투자 조직, 인큐텔이었습니다.
나. CIA의 벤처 투자, 인큐텔(In-Q-Tel)과의 결합
(1)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와 정보기관 분석가의 만남
2004년 어느 날, 알렉스 카프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평범해 보이는 사무실 건물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헐렁한 재킷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장을 빳빳하게 다려 입은 전직 스파이들과 국방부 관료들이었습니다. 카프는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 긴장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인큐텔(In-Q-Tel)은 1999년 당시 CIA 국장 조지 테넷이 설립한 비영리 벤처 투자 기관이었습니다. 이름의 'Q'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기술 개발자 Q를 재치 있게 참조한 것이었습니다.
인큐텔의 미션은 명확했습니다. 민간 부문의 최신 기술을 발굴해서 정보기관에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 CIA는 기술적으로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구글이 웹 검색을 혁신하고 있을 때, CIA의 분석관들은 여전히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시트로 첩보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인큐텔의 CEO는 길만 루이였습니다. 그는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였습니다. 그가 만든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은 너무 정교해서 공군 조종사 훈련에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테넷 국장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영입했습니다. 루이는 첨단 기술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도 알았습니다.
보통 루이는 투자설명 미팅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부하 직원들이 먼저 걸러낸 뒤에야 그의 책상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팔란티어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피터 틸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틸은 페이팔로 이미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고, 그의 돈과 네트워크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루이는 직접 미팅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카프와 팔란티어 팀이 모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CIA는 새로운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CIA가 주로 사용하던 프로그램은 '애널리스트 노트북(Analyst's Notebook)'이라는 영국 회사 i2의 제품이었습니다. 인터페이스는 쓸 만했지만, 데이터 처리 능력에 심각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면 시스템이 느려지거나 멈췄습니다. 분석관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카프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대신 말로 설명했습니다. 철학자답게, 그는 문제의 본질부터 짚었습니다. 9.11의 실패는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연결의 부재였습니다. 각 기관이 가진 데이터를 하나로 모으고,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고, 그것을 분석관에게 보여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블랙박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석관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언제 무슨 데이터를 봤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인큐텔은 팔란티어에 약 2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준으로는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인큐텔의 투자는 팔란티어에게 ' 정부가 인정한 회사'라는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을 열어준 것'이었습니다. 인큐텔은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들에게 보안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실제 CIA 분석관들 앞에 세워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충돌이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과 워싱턴의 정보 분석관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반바지를 입고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싫어했고, 규칙을 무시했고,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고쳐라'가 신조였습니다. 반면 분석관들은 평생을 관료제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차를 중시했고, 위계를 존중했고, 실수는 곧 경력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팔란티어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CIA 분석관들 앞에서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시스템은 화려했지만, 분석관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한 분석관이 물었습니다. " 이 버튼을 누르면 빈 라덴이 어디 있는지 나옵니까?" 엔지니어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기술을 이해했지만, 사용자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팔란티어는 새로운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전진 배치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캘리포니아의 쾌적한 사무실을 떠나, 워싱턴의 지하 벙커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초 기지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분석관 옆에 앉았습니다. 분석관이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했습니다. 무엇이 불편한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코드를 고쳤습니다.
이것은 기존 방산 업체들의 방식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록히드 마틴이나 레이시온 같은 대형 방산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요구사항 문서를 받고, 몇 년에 걸쳐 제품을 개발한 뒤, 완성품을 납품했습니다. 제품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수정하는 데 또 몇 년이 걸렸습니다. 팔란티어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몇 주 안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현장에서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아 고치고, 다시 배포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속도로 정부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분석관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로 몇 달이 걸리던 분석 작업을 몇 시간 만에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라크에서 급조폭발물(IED)이 매설되는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자금줄의 흐름을 추적했습니다. 마약 카르텔의 네트워크를 시각화했습니다. 분석관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팔란티어를 써봐. 다를 거야."
(2) '정부를 위한 구글'이라는 정체성의 확립
2008년, 팔란티어는 첫 번째 공식 제품인 '고담(Gotham)'을 출시했습니다. 이름은 배트맨의 도시 '고담시'에서 따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범죄와 싸우는 영웅의 이미지였습니다. 고담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 통합, 시각화를 위한 플랫폼이었습니다. 정보기관과 군사 작전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고담의 핵심은 검색이었습니다. 그러나 구글과는 다른 종류의 검색이었습니다. 구글은 공개된 웹페이지를 검색합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를 빠르게 찾아줍니다.
고담은 잠긴 데이터를 검색했습니다. 기밀 문서, 첩보 보고서, 감청 기록, 금융 거래 내역, 항공권 예매 기록, 출입국 기록. 각기 다른 데이터베이스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하나의 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분석관이 특정 테러 용의자의 이름을 검색합니다. 고담은 그 이름과 연관된 모든 정보를 끌어옵니다. 그가 사용한 전화번호들. 그 전화번호로 통화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은행 계좌. 그 계좌로 들어오고 나간 돈의 흐름. 그가 예매한 항공권. 그 항공편에 같이 탄 사람들. 이 모든 정보가 그래프로 시각화됩니다. 점들이 선으로 연결됩니다. 분석관은 한눈에 네트워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팔란티어를 '정부를 위한 구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별명은 적절하면서도 불완전했습니다. 구글은 정보를 찾아주기만 합니다. 판단은 사용자의 몫입니다. 팔란티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구글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팔란티어 시스템에는 엄격한 접근 통제가 내장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용자는 권한 등급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석관은 A 데이터베이스에만 접근할 수 있고, 어떤 분석관은 B 데이터베이스에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권한이 없는 정보를 열람하려 하면 시스템이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활동은 로그로 남았습니다. 누가 언제 어떤 파일을 열었는지, 어떤 검색어를 입력했는지, 어떤 결과를 내보냈는지 기록되었습니다. 나중에 감사관이 이 로그를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피터 틸이 말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안전'의 의미였습니다. 무차별적인 감시가 아니라, 통제된 분석이었습니다. 물론 이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접근 권한은 누군가가 설정해야 했고, 그 누군가가 실수하거나 남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존 시스템보다는 나았습니다. 이전에는 분석관이 마음대로 파일 캐비닛을 뒤질 수 있었고,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았습니다.
2010년, 팔란티어의 고객 중 70%가 정부 기관이었습니다. CIA, FBI, NSA, 해병대, 공군, 특수작전사령부, 국립실종아동센터. 나머지 30%는 민간 금융 기관이었습니다. JP모건과 같은 대형 은행들이 사기 탐지를 위해 팔란티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페이팔에서 시작된 기술이 월스트리트로 확장된 것이었습니다.
팔란티어 주변에는 신비로운 소문이 돌았습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팔란티어가 기여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미 해군 특수부대 SEAL 팀 6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를 급습해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그를 추적하는 데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사용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팔란티어는 이 소문을 부인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침묵은 신비감을 키웠습니다. 신비감은 새로운 고객을 불러왔습니다.
팔란티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단순한 IT 용역 업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핵심 인프라 공급자'로 정의했습니다.
알렉스 카프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팔란티어를 사용해 반군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급조폭발물 매설 패턴을 분석하고, 적의 자금 흐름을 추적했습니다. 정보가 빨라지면 결정이 빨라지고, 결정이 빨라지면 작전이 빨라집니다. 전쟁터에서 속도는 생명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이단아들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신경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 반지의 제왕과 팔란티르
(1) '멀리 보는 돌(Seeing Stones)'이라는 사명의 의미
피터 틸은 J.R.R. 톨킨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스탠퍼드 학부 시절부터 《반지의 제왕》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는 소설 속의 신비로운 물건을 떠올렸습니다. '팔란티르(Palantír)'. 복수형으로는 '팔란티리(Palantíri)'.
팔란티르는 톨킨이 창조한 엘프어 '퀘냐(Quenya)'로 '멀리 보는 것'을 뜻합니다. 'Palan'은 '멀리', 'tir'은 '지켜보다'입니다. 소설 속에서 팔란티르는 파괴할 수 없는 수정 구슬입니다.
이 구슬을 가진 자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팔란티르를 가진 자와 통신할 수도 있습니다.
톨킨의 신화에 따르면, 팔란티르는 발리노르의 놀도르 엘프들이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위대한 장인 페아노르 자신의 작품일 것입니다. 총 8개의 팔란티르가 존재했고, 그중 7개가 중간계에 있었습니다. 충실한 누메노르인들이 곤도르와 아르노르 왕국에 배치했습니다.
이 돌들은 왕국 전체를 감시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왕은 멀리서 일어나는 반란을 미리 알 수 있었고, 국경의 침입자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틸은 이 이름이 회사의 미션을 완벽하게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방대한 데이터를 꿰뚫어 보고, 그 속에 숨겨진 위협을 감지하여 국가를 보호한다. 9.11의 비극은 바로 '멀리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정보기관들이 조각난 데이터를 연결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는 바로 그 '멀리 보는 눈' 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톨킨의 이야기에는 경고도 담겨 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팔란티르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백색의 마법사 사루만은 팔란티르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악의 군주 사우론이 다른 팔란티르를 갖고 있었고, 사루만은 사우론에게 정신을 지배당했습니다. 그는 타락하여 사우론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곤도르의 섭정 데네소르도 팔란티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적의 군세를 파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우론이 팔란티르를 통해 데네소르에게 절망적인 환영을 보여주었습니다. 데네소르는 압도적인 적의 군대를 보고 희망을 잃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톨킨 학자 제인 찬스 니츠슈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사루만은 "단순한 지식"을 선택하고 " 진정한 지혜"를 버렸기 때문에 몰락했습니다. 팔란티르는 정보를 주었지만, 그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지혜는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판단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틸과 카프는 이 문학적 경고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기술이 사루만의 팔란티르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력한 감시 능력은 잘못 사용되면 전체주의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접근 통제와 감사 로그를 시스템의 핵심에 두었습니다.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팔란티어의 사무실들도 톨킨의 세계관을 따랐습니다. 팔로알토 본사는 '샤이어(The Shire)', 호빗들의 고향 이름이었습니다. 버지니아주 매클린의 사무실은 '리븐델(Rivendell)', 엘프들의 은신처였습니다. 워싱턴 D.C. 사무실은 '미나스 티리스(Minas Tirith)', 곤도르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회의실마다 톨킨의 지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신입 직원들은 《반지의 제왕》을 필독서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브랜딩이 아니었습니다. 팔란티어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간계를 지키는 자유로운 민족들의 연합군'에 비유했습니다. 적은 사우론, 즉 테러리스트와 전체주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칼과 활이 아니라 코드와 알고리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팔란티르는 서구 문명을 지키는 '보는 돌'이었습니다.
비판자들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팔란티어야말로 사우론의 눈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도구. 자유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아이러니. 팔란티어라는 이름이 가진 양면성은 회사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논쟁이 되었습니다.
(2) 17년간의 침묵: 유니콘에서 상장까지의 여정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거래 개시 벨이 울렸습니다. 화면에 'PLTR'이라는 티커가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주식이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기준가 7.25달러로 시작해 10달러에 개장했고, 9.50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시가총액은 약 165억 달러. 완전 희석 기준으로는 217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팔란티어가 설립된 것은 2003년이었습니다. 상장까지 무려 17년이 걸렸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보통 5년에서 10년 사이에 상장하거나 인수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왜 이토록 오래 비상장 기업으로 남았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고객의 특성이었습니다. 팔란티어의 주요 고객은 CIA, NSA, FBI, 국방부였습니다. 스파이들과 특수부대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상장 기업이 되면 재무제표를 공개해야 합니다. 매출 내역을 밝혀야 합니다. 어느 정부 기관이 얼마를 지불했는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알렉스 카프의 철학이었습니다. 카프는 월스트리트의 단기 실적 압박을 경멸했습니다. 분기마다 실적을 발표하고, 애널리스트들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전략을 바꾸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10년, 20년 단위로 생각했습니다. 서구 문명을 수호하는 기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 장기 프로젝트는 분기별 실적 보고와 양립하기 어려웠습니다.
2013년, 카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장하면 우리 같은 회사를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 해 12월, 팔란티어는 민간 투자자들로부터 4억 5천만 달러를 조달했습니다.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로 평가되었습니다. 포브스는 팔란티어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가치 있는 비상장 기술 기업 중 하나"라고 불렀습니다.
2014년에는 추가로 5천만 달러를 조달했고, 기업 가치는 150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8억 8천만 달러를 유치하며 200억 달러 가치에 도달했습니다. '유니콘'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팔란티어는 '데카콘', 10억 달러 가치의 열 배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숫자 뒤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팔란티어는 매년 수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8년에 5억 9,800만 달러 순손실. 2019년에 5억 8,800만 달러 순손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팔란티어는 오랫동안 컨설팅 회사처럼 운영되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을 고객 현장에 파견해서 소프트웨어를 맞춤 설치하고, 고객의 특수한 요구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 데 수백만 달러와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16년에 전환점이 왔습니다. 팔란티어는 '파운드리(Foundry)'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출시했습니다. 파운드리는 고담과 달리 민간 기업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제조업, 금융, 헬스케어, 에너지 분야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파운드리는 이전보다 표준화되어 있었습니다. 맞춤 작업이 줄어들었고, 배포 시간이 몇 달에서 며칠로 단축되었습니다. 비용 구조가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모건 스탠리는 팔란티어의 가치를 60억 달러로 평가했습니다. 2015년의 200억 달러에서 급락한 수치였습니다.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17년 동안 적자만 내는 회사에 언제까지 베팅할 수 있는가. 팔란티어 내부에서도 상장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은 팔란티어에게 기회였습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는 팔란티어의 파운드리를 사용해 백신 배포와 병상 관리를 했습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티베리우스(Tiberius)'라는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로 백신 할당을 관리했습니다. 갑자기 팔란티어는 국가 보건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가 되었습니다. 매출이 급증했습니다.
2020년 9월, 팔란티어는 마침내 공개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업공개(IPO)가 아닌 '직상장(Direct Listing)' 방식을 택했습니다. IPO에서는 회사가 새 주식을 발행하고, 투자은행이 가격을 책정하며, 은행에 수수료를 지불합니다. 직상장에서는 기존 주주들이 자신의 주식을 직접 시장에 내놓습니다. 새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대신, 월스트리트 중개인들에게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
카프는 이 방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관행을 경멸했습니다. 상장 전날, 그는 뉴햄프셔의 숲속에서 촬영한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그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습니다. 헬멧을 벗으며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식을 사지 마십시오."
상장 첫날 카프는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회사가 상당한 가치를 지니는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공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고객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되고 성장을 촉진할 것입니다." 5년이 지난 2025년 9월, 팔란티어의 주가는 상장 첫날 대비 1,700% 상승했습니다. 시가총액은 4,3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분기 매출은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고객 수는 2020년 125개에서 849개로 늘었습니다. 직원 수도 1,500명 이상 증가했습니다.
17년간의 침묵과 인내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피터 틸의 초기 비전,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안전을 지키는 기술'은 월스트리트에서 수천억 달러의 가치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팔란티르가 보여주는 미래가 정말로 밝은 것인지, 아니면 톨킨의 경고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인지, 그 판단은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