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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0장 전통의 강호와 새로운 도전자들
10장 전통의 강호와 새로운 도전자들
가. Blackrock Neurotech: 유타 어레이와 9년 장기 이식 기록
백악관의 어느 행사장이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한 청년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이선 코플랜드. 10년 전 교통사고로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다가와 주먹을 내밀자 코플랜드는 자신의 마비된 손 대신 로봇 팔을 움직여 주먹 인사를 나눴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코플랜드는 로봇 손끝에 전해지는 대통령 피부의 감촉을 자신의 뇌로 직접 느꼈습니다. 기계가 수집한 촉각 정보가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그의 뇌 속 감각 피질로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감각이 인간의 뇌에 직접 입력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적 같은 장면의 배후에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아니었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연구실에서 20년 넘게 묵묵히 길을 닦아온 블랙록 뉴로테크가 있었습니다. 뉴럴링크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을 때, 블랙록은 이미 수십 년간 축적한 임상 데이터라는 거대한 성벽을 쌓고 있었습니다.
블랙록의 핵심 무기는 유타 어레이(Utah Array)라 불리는 작은 칩입니다. 1989년 유타 대학의 리처드 노먼 교수가 고안한 이 장치는 가로세로 4밀리미터에 불과합니다. 셔츠 단추보다도 작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96개에서 128개의 실리콘 바늘이 빗살처럼 솟아 있습니다. 마치 미니어처 침대 못과 같은 형상입니다. 이 바늘들은 뇌의 피질에 약 1.5밀리미터 깊이 로 침투하여 뉴런이 발사하는 전기 신호를 가장 가까이서 포착합니다. 뇌의 속삭임에 귀를 바짝 대고 듣는 것입니다.
유타 어레이가 BCI 연구의 표준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호의 품질입니다. 두피 위에 전극을 붙이는 EEG는 뇌의 소리를 콘서트장 밖에서 듣는 것과 같습니다. 벽과 공기를 통과하며 소리가 희미해집니다. 반면 유타 어레이는 콘서트장 맨 앞줄에서 듣는 것과 같습니다. 개별 악기 소리까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개별 뉴런의 발화, 즉 스파이크를 직접 기록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선명한 신호가 정교한 디코딩을 가능하게 합니다. 로봇 팔을 섬세하게 제어하고, 키보드를 생각만으로 두드리고, 잃어버린 촉각을 되살리는 모든 일의 출발점이 바로 이 신호의 품질에 있습니다.
블랙록 뉴로테크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시간이 증명한 신뢰입니다. 의학계에서, 그중에서도 뇌와 관련된 기술에서 최신이라는 단어는 종종 검증되지 않음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반면 블랙록의 시스템은 2004년에 시작된 브레인게이트(BrainGate) 임상시험을 통해 20년 넘게그 안전성을 입증해 왔습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5명 이상의 이식형 BCI 환자
중 31명이 블랙록 기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누적 3만 일 이상의 인간 이식 데이터가 쌓여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스타트업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9년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블랙록의 유타 어레이가 한 환자의 뇌 속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 기간입니다. 뇌는 이물질을 반기지 않습니다. 면역 체계가 칩을 침입자로 인식하고 흉터조직으로 감싸버립니다. 덥고 습하며 염분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전자 기기는 부식되기 쉽습니다. 그런 척박한 땅에서 10년 가까이 버텼다는 것은 공학적 기적에 가깝습니다. 2025년 7월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브레인게이트 임상시험에 참여한 14명의 환자로부터 얻은 20개의 유타 어레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전극의 35.6퍼센트가 신경 스파이크 신호를 성공적으로 기록했으며, 7.6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신호 품질 저하는 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계도 명확합니다. 유타 어레이는 유연하지 않은 실리콘 소재입니다. 뇌가 두개골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조직에 작은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흉터 조직이 전극을 감싸며 신호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한 전통적인 시스템은 머리 밖으로 튀어나온 금속 포트를 통해 유선으로 연결해야 했습니다. 이 페데스탈(Pedestal)이라 불리는 장치는 감염 위험을 높이고 환자의 행동을 제약합니다. 연구진이 퇴근하면 환자는 자신의 마법 같은 능력을 반납하고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에 블랙록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2년 말, 블랙록은 뉴럴레이스(Neuralace)라 불리는 차세대 시스템을 공개했습니다. 이 장치는 10,000개 이상의 채널을 목표로 하며, 얇고 유연한 구조로 뇌의 굴곡을 따라 밀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뉴럴링크의 N1 칩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2024년 4월에는 암호화폐 기업 테더(Tether)가 블랙록에 2억달러를 투자하며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기업 가치는 약 3억 5천만 달러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자금으로 블랙록은 무브어게인(MoveAgain)이라는 완전 이식형 무선 BCI 시스템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집에서도 자유롭게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블랙록의 철학은 뉴럴링크와 사뭇 다릅니다. 머스크가 뇌 전체를 덮는 수만 개의 채널과 AI와의 융합을 꿈꿀 때, 블랙록은 당장 내일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구에 집중합니다. 공동 창업자 마커스 게르하르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상과학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처방전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을 초월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능을 복원하여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리게 하는 것.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느끼는 것. 블랙록이 추구하는 혁신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의 회복에 맞닿아 있습니다.
뉴럴링크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혁명군이라면, 블랙록 뉴로테크는 오랜 세월 영토를 지켜온굳건한 성주와 같습니다. BCI의 모든 혁신이 블랙록이 지난 20년간 닦아놓은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유산만으로 미래를 지킬 수 있느냐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속도와 자본 앞에서 전통의 강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 답은 아직 쓰이 는 중입니다.
나. Precision Neuroscience: 뇌 표면의 초박형 필름 Layer 7
2023년 봄, 뉴욕의 한 신경외과 수술실이었습니다. 벤저민 라포포트 박사는 환자의 두개골을 크게 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두개골에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미세한 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노란색의 얇은 필름을 밀어 넣었습니다. 마치 편지 봉투에 편지지를 슬쩍 밀어 넣듯이. 필름은 뇌의 주름진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덮었습니다. 이 필름의 두께는 인간 머리카락 굵기의 5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레이어 7(Layer 7) 피질 인터페이스의 첫 인간 이식 장면이었습니다.
라포포트는 단순한 의사가 아닙니다. 그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 뉴럴링크를 창립했던 8인의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MIT에서 전기공학을, 하버드 의대에서 신경외과를 전공한 그는 기술과 의학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드문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뉴럴링크를 떠났습니다. 이유는 안전에 대한 철학적 차이였습니다. 뉴럴링크의 방식, 즉 전극이 뇌 조직을 뚫고 들어가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미세한 뇌 손상을 유발합니다. 라포포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 문장을 뇌 공학의 제1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
그가 찾은 해답은 뇌를 뚫지 않고 뇌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2021년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를 설립한 그는 뇌 표면에 밀착되는 초박형 전극 필름을 개발했습니다. 대뇌 피질은 6개의 세포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리시전은 자신들의 전극이 뇌를 뚫고 들어가는 대신 마치 7 번째 층처럼 뇌 표면을 부드럽게 감싸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레이어 7입니다.
레이어 7의 기술적 혁신은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초박형입니다. 폴리이미드라는 유연한 소재로 만들어진 이 필름은 인간 머리카락 두께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얇다는 것은 단순한 미학이 아닙니다. 뇌 표면에 놓이는 전극이 두껍고 뻣뻣하면 호흡이나 맥동, 자세 변화에 따른 미세한 움직임에서 마찰과 압박이 생깁니다. 이는 염증과 손상의 원인이 됩니다. 얇고 유연한 필름은 뇌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그 부담을 최소화합니다.
둘째, 고해상도입니다. 이 작은 필름 위에 1,024개의 미세 전극이 집적되어 있습니다. 뉴럴링크의 N1 칩과 대등한 수준의 채널 수입니다. 기존의 뇌 표면 전극인 ECoG 그리드보다 훨씬높은 밀도로, 뇌의 전기적 활동을 마치 고해상도 영상처럼 지도화할 수 있습니다. 프리시전은 2024년에 4,096개 전극을 가진 차세대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마이크로 슬릿 수술법입니다. 뉴럴링크가 동전 크기만큼 두개골을 뚫어야 하고, 블랙록이 뇌 조직을 찔러야 한다면, 프리시전은 두개골에 아주 미세한 틈만 만듭니다. 그 틈으로 필름을 마치 종이를 봉투에 넣듯 미끄러뜨려 삽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뇌 조직은 전혀 훼손되지 않습니다.
넷째, 가역성(Reversibility)입니다. 이것이 라포포트가 가장 강조하는 지점입니다. 뇌에 꽂히는 방식의 전극은 제거할 때 조직 손상을 동반할 위험이 큽니다. 반면 뇌 표면에 얹혀 있는 레이어 7은 살짝 당겨 빼내면 됩니다. 뇌 조직은 손상 없이 그대로 남습니다. 기술이 업그레이
드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환자에게 나중에 원하면 언제든 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있다는 것은 임상 현장에서 엄청난 심리적 장벽을 낮춥니다.
2025년 3월 30일,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는 FDA로부터 510(k) 클리어런스를 받았습니다. 레이어 7-T(Layer 7-T)라 명명된 이 장치는 최대 30일까지의 이식 사용이 승인되었습니다. 이는 차세대 무선 BCI를 개발하는 기업 중 최초로 받은 완전한 규제 승인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이 승인으로 프리시전은 수술 중 뇌 맵핑과 같은 임상 응용에서 장치를 판매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CEO 마이클 메이거는 회사 창립 4년 만에 아이디어에서 FDA 승인까지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 10월, 프리시전은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첫 인간 환자들의 경험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임상 파일럿에서 레이어 7 시스템은 환자가 말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뇌파 패턴을 약 80퍼센트의 정확도로 감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단 4분의 훈련 데이 터와 54개의 발화 녹음만으로 달성한 결과였습니다. 논문 발표 시점까지 프리시전은 50명 이 상의 환자에게 레이어 7을 이식했으며, 미국 내 6개 주요 의료기관에서 장기 사용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리시전의 전략은 실리콘밸리의 속도전보다는 의료기기의 정석적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들은 병원이 이미 보유한 시설과 장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값비싼 수술 로봇을 새로 살 필요도, 신경외과 의사들이 새로운 수술법을 익히느라 몇 달을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라포포트의 철학입니다. 가장 좋은 기술은 이미 있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술이다.
레이어 7의 시장적 의미는 침투형 대 비침투형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깨는 데 있습니다. 침투형은 신호가 좋지만 수술 부담이 큽니다. 비침투형은 안전하지만 대역폭이 제한됩니다. 프리시전은 그 사이에 새로운 지점을 열었습니다. 라포포트는 이를 골디락스 솔루션(Goldilocks solution)이라 불렀습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 비침습 방식보다는 훨씬 강력하고, 완전 침습 방식보다는 훨씬 안전한 최적의 균형점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의문도 남습니다. 뇌 표면에서 읽는 신호가 뇌 안에서 직접 읽는 신호만큼 풍부할 수 있을까요. 개별 뉴런의 스파이크를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수천 개 뉴런의 합창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히 정교한 디코딩이 가능할까요. 프리시전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증명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30일이라는 현재의 승인 기간은 끝이 아니라 첫 단추입니다. 뇌를 뚫는 과감한 모험과 뇌를 덮는 신중한 접근. 이 두 철학의 대결은 BCI의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를 결정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다. Paradromics: 고대역폭 Connexus와 FDA
텍사스 오스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맷 앵글(Matt Angle) CEO가 이끄는 패러드로믹스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도전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 회사의 모토는 단순합니다. 대역폭이 곧 힘이다. BCI 업계가 인터넷 속도 경쟁을 하고 있다면, 패러드로믹스는 광섬유를 깔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인간의 뇌는 매초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성합니다. 우리가 단어 하나를 말하려고 마음먹을 때, 뇌의 운동 피질에서는 수만 개의 뉴런이 정교한 패턴으로 불꽃을 뿜습니다. 입술을 어떻게 움직이고, 혀를 어디에 대고, 성대를 어떻게 진동시킬지를 지시하는 명령들입니다. 기존의 BCI가 이 거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빨대 하나로 정보를 빨아들이는 수준이었다면, 패러드로믹스는 소방 호스를 연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개발한 커넥서스(Connexus) BCI는 이러한 철학의 결정체입니다. 400개 이상의 백금-이리듐 전극이 뇌 피질 표면 바로 아래에 삽입됩니다. 각 전극은 인간의 머리카락보다 가늡니다. 이 전극들은 개별 뉴런의 활동 전위, 즉 스파이크를 직접 측정합니다. 뉴럴링크가 유연한 폴리머 실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패러드로믹스는 수십 년간 의료 기기에서 검증된 백금-이리듐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앵글 CEO는 뇌 속의 가혹한 환경에서 장기간 버티려면 검증된 소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커넥서스의 구조는 독특합니다. 뇌에 삽입되는 피질 모듈, 두개골 안에서 신호를 처리하는 크래니얼 허브, 그리고 가슴에 이식되어 무선으로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는 트랜시버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룹니다. 뇌에서 나온 신호가 가슴의 수신기로 전달되고, 거기서 피부를 통해 외부 컴퓨터로 무선 전송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밀리초 단위로 일어납니다.
패러드로믹스가 주목하는 첫 번째 응용 분야는 말하기 복원입니다. 루게릭병(ALS)이나 뇌졸중으로 인해 말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환자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의 뇌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말하고 싶은 문장이 있고, 전하고 싶은 감정이 있습니다. 다만 그 신호가 입술과 혀까지 도달하지 못할 뿐입니다. 패러드로믹스는 이 막힌 다리를 대체하는 우회로를 만들려 합니다. 뇌에서 말하려는 의도를 읽어내고, 그것을 텍스트나 합성 음성으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대화 속도는 분당 약 150단어입니다. 기존의 BCI로 구현된 의사소통 속도 는 이에 훨씬 못 미칩니다. 커서를 움직여 글자를 하나씩 선택하는 방식은 너무 느립니다. 눈동자 추적 시스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패러드로믹스는 초당 200비트 이상의 정보 전송률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어떤 BCI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문자나 단어수준을 넘어, 연속적인 음성에 가까운 복잡한 출력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규제 측면에서 패러드로믹스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이 회사는 FDA로부터 획기적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 지정을 두 차례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말하기 능력을 잃은 환자의 의사소통 복원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심각한 운동 기능 손실 환자의 컴퓨터 제어 능력 복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획기적 의료기기 지정은 승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FDA가 이 기술이 생명을 위협하거나 비가 역적인 질환을 치료하는 데 잠재적 혁신성을 가졌다고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개발과 심사 과 정에서 FDA의 긴밀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2025년 6월, 패러드로믹스는 최초의 인체 기록(First-in-Human Recording)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미시간 대학의 신경외과의 매튜 윌시 박사 팀이 뇌전증 수술 중 일시적으로 커넥서스를 삽입하여 고해상도 신경 신호를 기록했습니다. 장치는 20분 이내에 안전하게 삽입되고 기록을 마친 후 손상 없이 제거되었습니다. 앵글 CE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수술은 패러드로믹스에게 핵심적인 전환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임상 단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1월, 패러드로믹스는 FDA로부터 IDE(Investigational Device Exemption) 승인을 받아 커넥트-원(Connect-One) 초기 타당성 임상시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회사
는 완전 이식형 BCI를 이용한 음성 복원 분야에서 IDE 승인을 받은 최초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2026년 1분기부터 두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이 시작됩니다. 환자들은 UC 데이비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미시간 대학 세 곳의 임상 현장에서 모집됩니다. 이들은 중증 운동 장애로 인해 말하기와 사지 움직임이 심각하게 제한된 사람들입니다.
앵글 CEO의 자신감은 대단합니다. 뉴럴링크의 장치가 가진 한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2025년 10월에는 뉴럴링크 장치 한계라는 제목의 긴 블로그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2026년 1분기에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링을 갖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임상을 시작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환자들이 받아 마땅한 장치입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패러드로믹스의 접근법은 침습성이 높습니다. 뇌조직 깊숙이 전극을 삽입하는 것은 수술 부담, 장치 내구성, 조직 반응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발열 문제도 있습니다. 고성능 칩은 필연적으로 열을 발생시키는데, 뇌는 열에 민감한 기관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기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패러드로믹스의 승부는 고대역폭이 실제 임상 효용으로 환산되는 순간에 결정될 것입니다. 환자가 더 빠르고 덜 피곤하게 말할 수 있느냐. 오타와 오류율을 낮추고 일상에서 쓸 수 있느냐. 그 결과가 의료 가치, 즉 삶의 자율성 회복으로 증명되느냐. 획기적 의료기기 지정과 IDE 승인은 그 증명을 위한 링 위로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데이터가 곧 힘인 시대, 가장 많은 뇌데이터를 깨끗하게 뽑아내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BCI 경쟁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라. 커널(Kernel): 비침습 fNIRS 헬멧의 소비자 시장 도전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Bryan Johnson)은 기이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체 나이를 18세로 되돌리기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합니다. 매일 수십 알의 영양제를 삼키고, 매일 밤 자신의 모든 생체 데이터를 측정합니다. 블루프린트(Blueprint)라 불리는 이 노화 역전 프로젝트는 그를 기술계의 가장 극단적인 바이오해커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2016년, 자신의 사재 5천만 달러 이상을 털어 설립한 회사가 바로 커널(Kernel)입니다.
존슨의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왜 우리는 심장 박동이나 혈당은 매일 측정하면서, 우리 존재의 핵심인 뇌는 측정하지 않는가. 스마트워치는 우리의 걸음 수와 수면 패턴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우울증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커널이 그리는 미래는 뇌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마음의 체온계가 있는 세상입니다.
커널은 앞서 언급한 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두개골을 열지 않습니다. 수술용 로봇도, 멸균실도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만든 것은 헬멧입니다. 자전거 헬멧이나 미래적인 헤드셋처럼 생긴 이 장치, 커널 플로우(Kernel Flow)는 비침습 BCI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커널 플로우는 시간 분해 기능성 근적외선 분광법(TD-fNIRS)이라는 기술을 사용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헬멧에서 뇌로 근적외선 레이저를 쏩니다. 150피코초 미만의 아주 짧은 펄스입니다. 이 빛이 두피와 두개골을 통과해 뇌 표면까지 도달한 뒤 반사되어 돌아옵니다. 빛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흡수된 정도를 분석하면, 뇌혈관의 산소 농도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뇌의 어느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면 그곳으로 산소가 풍부한 혈액이 몰려듭니다. 커널 플로우는 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 지도를 그립니다. 전기 신호가 아닌 혈류를 통해 마음을 읽는 기술입니다.
커널 플로우 헬멧의 무게는 약 2킬로그램입니다. 머리 양쪽에 배치된 52개의 모듈 속에 레이 저 광원과 광 검출기가 집적되어 있습니다. 각 모듈에는 레이저 소스 하나와 6개의 검출기가 육각형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전체 시스템은 3,500개 이상의 측정 채널을 제공하며, 뇌 전체를 커버합니다. 초당 200회 이상의 샘플링 속도로 뇌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TD-fNIRS 장비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했습니다. 가격은 수십억 원에 달했습니다. 환자는 병원에 가서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만 측정이 가능했습니다. 커널의 혁신은 이 거대한 실험실 장비를 머리에 쓸 수 있는 크기로 줄이고, 연구실 밖으로 가져온 데 있습니다. 2022년 생명의학 광학 저널(Journal of Biomedical Opt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커널 플
로우는 기존의 벤치탑 TD-fNIRS 시스템과 유사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휴대성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한계는 명확합니다. 두개골 밖에서 빛으로 측정하는 신호는 뇌 안에 전극을 꽂는 방식에 비해 해상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개별 뉴런의 활동을 볼 수는 없습니다.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어렵습니다. 또한 근적외선은 머리카락과 피부 색소에 따라 흡수율이 달라집니다. 다양한 모발과 피부 유형에서 정확한 측정을 보장하는 것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커널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요. 그들이 겨냥하는 시장은 전통적인 의료 BCI와 다릅니다. 한 축은 임상과 연구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치료 경과를 비침습적으로 추적하고, 약물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입니다. FDA는 케타민 같은 정신의약품이 뇌에 미치는 효과를 커널 플로우로 측정하는 연구를 승인했습니다. 제약 임상시험에서 약물의 효과를 객관적 지표로 보여줄 수 있다면, 개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 축은 소비자 시장입니다. 명상의 효과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하고, 집중력 훈련의 성과를 수치로 확인하고, 인지 저하의 초기 징후를 미리 감지하는 것입니다. 스마트워치가 심박수를 보여주듯, 커널은 뇌의 활성도를 보여주는 웨어러블이 되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멉니다. 커널의 개발자용 페이지에 명시된 커널 플로우 시스템의 가격은 117,200달러입니다. 세금과 배송비는 별도입니다. 이 숫자 하나로 소비자 시장의 문은 일단 닫힙니다. 커널이 노리는 것은 지금 당장 일반인이 헬멧을 사는 시장이 아닙니다. 그들의 전략은 우회로입니다. 장비를 표준화해 대규모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로 뇌 기반 바이 오마커를 만들고,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되면 결국 더 가볍고 저렴한 형태로 대중에게 내려가 는 것입니다.
2023년에 출시된 커널 플로우2는 기존 모델에서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TD-fNIRS에 EEG(뇌전도) 기능을 통합하여 혈류 변화와 전기 신호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용자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자동 품질 보고서, 실시간 데이터 처리 기능도 추가되었습니다. 연구용을 넘어 임상 연구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널의 도전은 기술적인 것을 넘어 문화적인 것입니다. 뇌를 해킹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뇌를 측정하고 이해함으로써 인간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시도입니다. 브라이언 존슨은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알기 위해 거울을 봅니다. 하지만 거울은 껍데기만 보여줍니다. 커널은 내면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수술대 위가 아닌 거실 소파에서 이루어지는 BCI 혁명. 커널은 가장 안전하고 대중적인 방법으로 포스트휴먼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 문이 열릴지, 열린다면 언제 열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뉴럴링크, 싱크론, 블랙록, 프리시전, 패러드로믹스가 중증 장애인을 위한 의료기기를 지향한다면, 커널은 건강한 사람의 뇌까지를 포괄하는 새로운 층위의 뉴로테크 생태계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